인천 애관극장의 리사이틀을 고대한다

  

    지금은 보고 즐길 것이 많아졌지만, 저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 집에 TV 수신기도 없던 시절에 가난한 서민들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이따금씩 화려한 스크린 앞에 앉아서 영화를 보며 휴식과 감동을 받았던 단관극장 시절이 있었다. 무뚝뚝했던 아버지가 모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극장에서 만화영화를 보여주시고 나와서 만두까지 사주시던 기억, 좋아하는 여친과 어렵사리 극장에는 들어갔으나 설레는 마음에 영화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손목조차 끝내 잡아보지 못했던 아쉬움의 기억 등 누구에게나 비슷한 추억의 한 토막을 선사했던 단관극장들이 있었던 시절.
    대기업이 주도하던 멀티플렉스 극장의 위세에 밀려 하나둘씩 사라졌지만, 인천에만도 일일이 예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극장들이 옛 도심지뿐만 아니라 도심에서 비켜난 변두리에도 동시상영관일망정 극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방극장, 인천키네마, 문화극장, 오성극장, 인형극장, 인천극장, 도원극장, 자유극장, 장안극장, 현대극장, 부평극장, 백마극장⋯⋯. 이제 또 하나의 극장이 사라지려 한다. 애관극장이다.
  

애관극장의 역사와 매각 위기

    코로나19 사태가 3년 넘게 훑고 지나갔다. 그 와중에 한국 최고의 실내극장으로 128년 역사를 이어온 인천의 대표극장인 애관극장愛館劇場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18년 1월 멀티플렉스 극장들에 밀려 경영난을 겪던 애관극장의 매각 소식이 지역사회에 처음 전해진 지 4년여 만인 2022년 초에 코로나19로 인한 극장 관람객의 급감으로 애관극장의 대형관인 1관이 문을 닫고, 급기야 애관극장이 매각될 수 있다는 소문이 또다시 흘러나왔다. 그 이후부터 애관극장을 살리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이 2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지만, 애관극장을 어떻게 존속시킬 것인지에 대해서 인천 지역사회에서는 아직 그 어떤 합의도 해답도 찾지 못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애관극장은 1895년 무렵 정치국丁致國에 의해 ‘협률사協律舍’라는 이름으로 한국인이 건립한 최초의 실내극장으로 알려져 있다. 고일, 최성연 선생 등의 기록에 따르면, 협률사는 개항장 인천에서 일본인이 최초로 세운 인부좌仁富座(1892)에 이어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실내극장이다. 이는 서울에서 최초의 실내극장으로 기록된 아현무동연희장(1899)보다 빠를 뿐만 아니라 1902년 관립극장으로 설립된 협률사協律社보다 5년 앞서 세워진 한국인 최초의 극장인 셈이다. 아직 회고의 기록 이외에 협률사의 존재를 입증할 관련 문서자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협률사는 1911년 축항사로 명칭을 변경해 신파극을 줄곧 상연하였고, 1920년대 들어 지금의 ‘애관’이란 명칭으로 바꾸면서 신연극뿐만 아니라 무성영화 시대부터 유성영화로 발전하던 한국 근대영화사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지역적 거점극장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애관극장은 공공시설이 없던 식민지 시대 인천에서 시민들의 문화운동과 학생들의 청년문화운동이 발화했던 문화의 전당이었다. 광복과 한국전쟁, 전후 복구기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극장들이 명멸하는 가운데서도 그 자리를 지켜온 애관극장은 인천의 문화적 자긍심이자 상징적 문화자산이다. 일제강점기 애관극장이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근대극장사를 연구해온 김남석 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당연히 지역 극장은 지역 주민을 위한 경영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연 원칙은 애관 같은 조선인 극장에서는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애관의 지역민(주민) 친화적인 경영 방침은 1920년대 후반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 있다.
    최초 사주였던 정치국으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한 김윤복은, 1927년 10월 10일에 애관 낙성식을 치르면서 ‘공공적 모임에는 애관을 공개한다’는 원칙과 ‘극계를 위해 애관을 활용한다’는 포부를 발표했다. 김윤복은 이러한 운영 방침을 천명하여, 애관의 공공성publicness과 개방성openness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그 결과 애관의 관객 증가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애관의 관객 동원과 입장 수익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일단 애관은 인천에서는 조선인 경영자가 운영하는 유일한 극장이었기 때문에,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극장 지명도와 대관 선호도가 높았다. 많은 중앙과 지역 극단들이 인천 순회공연에서 애관을 공연장으로 애호했다.
    한편 애관은 지역 자치 행사를 유치하고 각종 자선 행사를 후원하며 심지어는 조선인 야구팀을 운영하였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과 정서적으로 밀착되는 경영 방식을 선택했던 극장이었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일본인에게 열세였던 조선인들은 이러한 애관을 후원했고, 애관은 이러한 지역 주민들의 성원과 후원을 통해 지역을 대표하는 거점극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거점극장으로서의 애관의 위상은 전 조선에 강력한 인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지역 정서 밀착형 극장 운영 방식은, 애관의 흥행 수입 증폭으로 그 효과가 발현되었다. 1930년대 중엽에 조사된 애관의 입장객은 한 해 15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그중에서 12만 명 즉 80%가 유료 관객인 것으로 조사 집계되었다. 따라서 그 수익은 28,284원 50전에 이를 정도였다.
    더욱 주목되는 바는 이러한 관객 수와 수익이 매년 급증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1936년에 12만 명이던 유료 관객 수가 1937년에는 14만 5천 명으로 증가하였고, 그 결과 2만 8천 원이던 수익이 1937년에는 4만 3천4백 원에 달했다. 이러한 수치는 근 20%의 성장세에 해당한다. 신문에서도 표현했듯이, 이것은 대성황이 아닐 수 없었다. (김남석, 『조선의 지역극장』, 연극과인간, 2018, 319~320쪽.)

    다른 도시도 그 도시의 역사와 함께했던 극장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인천은 애관극장이 바로 그런 곳이다. 인천에서 태어나거나 성장한 사람치고 애관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가장 오래된 극장인 애관극장을 필두로 해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천에는 적지 않은 단관극장들, 동시상영관들이 있었다. 무수했던 인천 극장들의 맏형이 애관극장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대자본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인천시민들과 애환을 함께했던 여러 극장들이 사라졌다. 지금은 오직 최초의 극장인 애관극장과 함께, 동구의 미림극장만이 폐관된 지 10여 년 만에 다시 개관해 수년째 원도심의 대안문화공간이자 예술전용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림극장은 현재 ‘인천미림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실버·예술·독립 영화관으로 운영돼왔고, 최근에는 여기에 더하여 치매 가족을 위한 안심극장의 기능까지 겸하여 문화소외 계층을 위한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영화관으로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문화의 블랙홀인 서울이 멀지 않은 인천이기에 겪고 있는 문화 다양성의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인천사회적기업협의회에서 공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미림극장은 지난한 실험을 통해 생존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대안 문화극장이자 원도심의 공공문화 인프라로 자리하고 있다.

그림1) 1948년 11월 무렵의 인천시가지와 애관극장 ⓒ NorbFaye

    미림극장은 물론이고 조선 최초의 실내극장인 애관극장이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대형 단관 스크린 상영 위주였던 1970년대까지의 전성기를 거쳐 1980년대 이후 컬러TV와 비디오의 대량 보급, 게다가 인천의 신도시 확장 등으로 신생극장에 고객을 뺏기며 고전을 면치 못하던 애관극장은 2000년대 들어 대기업 자본들이 설립한 멀티플렉스 극장들과도 힘겨운 경쟁을 해야 했다. CJ CGV를 위시한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신도시 곳곳에 설립되면서 단관극장들은 자본의 위력 앞에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고 거의 모든 극장들이 그때 사라졌다.
    애관극장도 바로 그 무렵에 경영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경매에 넘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애관극장을 운영해온 선친의 유지를 지키고자 경매에 넘어간 애관극장을 다시 낙찰받은 현 극장 소유주 탁경란 대표는 애관극장 건물(현 1관) 바로 옆에 위치한 여관 건물을 매입해서 2~5관을 설치하고 극장 전면을 현대적 감각으로 리모델링해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재개관하면서 다른 멀티플렉스 극장들과 당당히 경쟁하면서 애관의 역사를 이어왔다. 한때 CJ CGV에서 고가로 매각하라는 흥정이 들어왔지만 이를 거절하고 ‘애관’이란 이름의 역사를 지켜온 탁경란 대표가 아니었다면 애관극장의 역사는 벌써 여타의 극장들과 마찬가지로 중단되고 말았을 것이다. 인천시민들로서는 고마워해야 할 일이고 인천시는 응당 감사패를 선사하고도 남을, 소중한 역사문화유산 지킴이 역할을 감당해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애관극장의 가치를 지키려는 시민들

    그러나 멀티플렉스 극장들과 경쟁하면서도 애관극장의 역사를 지켜온 극장주의 노력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8년 1월 매각 소문이 처음 떠돌았을 때부터 적자경영에 허덕이는 극장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일찌감치 시청이 이전한 구월동에 이어 송도, 청라를 비롯한 신도시로 인구가 쏠리면서 원도심으로 고립된 동인천의 상권의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민간극장인 애관극장 폐관은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애관극장의 매각 소식은 냉엄한 자본주의 시장논리에서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근대문화 인프라가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조종이었다. 2018년 당시 매각 풍문을 듣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인천시민들이 ‘인천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약칭 ‘애사모’)’을 만들어 애관극장의 매각 반대 및 인천시의 공공매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때늦은 일이었으나 애관의 역사만은 어떻게든 보전해야 한다는 시민의식의 발로였다. 다행히 애사모의 활동을 계기로 인천시도 애관극장의 가치에 주목하고 물밑 협상이 이루어졌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당시 여론의 부담을 느낀 극장주가 매각 의사를 철회하면서 애관극장의 보전 및 공공적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4년이 지난 2022년에 시민들은 다시 모여 애관극장의 역사와 존속을 더 이상 개인에게 맡기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인천시가 공공매입할 것을 제안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50여 년간 극장의 운영을 맡아온 한 개인에게만 애관극장의 존속을 기대하기에는, 그 역사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고 존속을 위한 재정적 압박은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2020년 3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언제 해소될지 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를 위시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빠르게 영화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인천 전역을 장악한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조차도 속속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원도심의 애관극장은 이미 반쯤 문을 닫은 상태였다. 관객이 거의 들지 않는 1여 년의 시간 동안 제일 규모가 큰 제1관의 문을 닫았을 뿐만 아니라 인력 감축 등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해왔으나 운영을 하면 할수록 쌓이는 적자를 감내하지 못한다는 소식이 지난해부터 흘러나왔다. 이제 한 민간 기업인에게 128년 이어져온 인천 근대문화의 자부심을 끝까지 지켜달라고 요구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신뢰를 잃어버린 인천시 문화당국의 갈지자 행보

    최근 광주와 원주 등지에서 오래된 단관극장을 지역 시민들과 전국의 문화단체들이 연대해 극장의 역사를 현재진행형으로 지켜나가고 있는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35년 10월 광주 충장로5가에 연 “광주 조선인 최초의 영화 전용 상영관”이었던 광주극장은 전국 25곳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의 하나로 코로나19 시대에도 의연히 광주시민들을 위한 영화제를 진행하며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군사도시였던 원주에서도 1963년 세워진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단관극장을 지키기 위해 2022년 2월 22일에 시민들이 모여 ‘아카데미보존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구광역시나 강릉시는 민간예술극장을 공공자원으로 보고 이미 조례를 제정해 운영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림2) ‘인천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의 제1차 영화 단체 관람 ⓒ 애사모

    2018년 1월에 이어 다시 인천의 문화단체와 시민들이 나서서 제2기 ‘인천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을 발족하고 애관극장의 역사와 문화를 보전하며 이를 공공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시민문화운동을 전개해왔다. 이들은 애관극장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월 1회 애관극장에서 영화보기운동’을 시민들과 함께 전개하는 동시에, 애관극장의 공공매입을 통한 항구적 보전대책 수립을 촉구하며 원도심 복합역사문화공간으로서 애관극장을 다양하게 공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128년 동안 인천의 역사와 함께해온 애관극장의 존재는 그 자체가 인천이라는 도시의 역사다. 그렇기 때문에 애관극장은 소유주 개인의 것인 동시에 인천시민 모두의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기에 인천시민들이 거듭 애관극장 살리기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도심 균형발전을 제1의 공약으로 내세웠던 민선 7기 박남춘 시정부는 애관극장의 공공매입에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신뢰를 상실했다. 2021년 박찬훈 문화관광체육국장이 재직할 당시에는 ‘애관극장의 보존 및 활용을 위한 민관협의체’도 구성하고 3곳의 감정평가 법인에 애관의 감정평가를 의뢰하여 도출된 70억이라는 감정평가액으로 극장주와 공공매입에 합의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2021년 7월경 담당 국장이 홍준호 국장으로 바뀌면서 신중론으로 돌아서 민관협의체의 공공매입을 촉구하는 권고문을 무시하고 애관극장의 가치와 활용방안 등에 대한 용역을 쪼개서 발주하더니, 일부 부정적인 근거를 확대해면서 부정적 여론을 불러 일으켜 논란만 부추겼다.
    민간 소유인 애관극장만 왜 인천시가 매입을 하느냐라는 인천 문화계 일각에서 익명으로 나오는 볼멘소리와 더불어 활용방안도 없이 애관극장을 무턱대고 매입해서는 안 된다는 거친 주장을 근거로 삼아 복지부동하는 인천시 행정이 겨우 한 일이라고는, 박남춘 시장 임기 말, 지방선거가 임박한 2022년 4월 18일 ‘애관극장의 보존 및 활용을 위한 상호 협약서’를 인천시와 인천시 영상위원회, 애관극장, 애사모 등 4자 합의로 체결하면서 사진 찍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장이 낙선하면서 결과적으로 사진만 찍고 만 협약으로 끝나고 말았다. 신흥동 옛 시장관사나 송학동 이기상 소유 주택 등 인천시나 인천도시공사가 민간 소유의 건축물을 매입한 사례는 이미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애관극장의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인천영상위원회가 다양하게 검토해본 보고서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제안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시의 문화 담당 공직자들은 이처럼 인천의 역사문화유산을 지키고 살리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고,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애관극장주를 상대로 신뢰마저 잃어버렸다.
  

미래의 애관극장을 꿈꾼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애관의 역사를 개인에게만 맡겨둘 시점은 지났다. 도시의 문화자산을 공공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대책을 공공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근대의 역사와 함께한 도시인프라를 많이 갖고 있는 인천에서 최근 다양한 영화들이 촬영되고 있다. 인천영상위원회도 발족해 다양한 영화들의 로케이션을 지원하는 한편 인천의 영화인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인천의 영화산업 진작에 일조하고 있다. 인천 애관극장을 인천영상위원회가 관리하면서 영화를 중심으로 한 공공복합문화공간으로 활성화하는 다양한 방안을 꿈꿔본다. 애관극장의 메인 상영관인 1관뿐만 아니라 2~5관을 활용해 원도심 지역의 다양한 문화적 활동이 상시적으로 펼쳐지도록 운영해보자. 또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가 이미 성가聲價를 드날리고 있지만, 한국과 세계가 통하는 관문이었던 인천이야말로 국제적인 영화제를 상영할 만한 역사적 콘텐츠와 네트워크를 갖춘 도시 아닌가?

그림3) 애관극장 보존 및 활용을 위한 협약식 ⓒ 애사모

    시민들에게 다양한 영화를 제공할 수 있도록, 주제별 영화제와 더불어 국제적인 영화제를 공들여 기획한다면, 나날이 침체되어가는 원도심에 문화적 재생의 활력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애관극장의 보전뿐만 아니라 공공적 활용을 위한 창조적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애관극장을 중심으로 한 싸리재, 중구 일대의 문화적 재생을 위한 큰 그림을 지역전문가, 시민사회와 함께 구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이제 문제는 인천시의 의지이다! 시민들은 이미 준비돼 있다. 인천 애관극장이 애처로운 단관극장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와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21세기의 새로운 공공문화 극장으로 거듭나, 다채로운 리사이틀recital을 펼쳐 보일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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