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착취 횡행하던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어”─안전운임제 일몰 후 60일,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삶

  

명세서에 얼마가 찍혀 있을지 몰라 두려워……

그림1) 2023년 2월 15일에 국회 앞에서 열린 화물연대 기자회견 ⓒ 연정

    “대기업 화주들만 배 불리는 안전운임 개악 반대한다!”

    “안전운임 폐지 위한 정부 입법안 반대한다!”

    “안전운임 3년 연장 국회 통과 촉구한다!”

    2023년 2월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앞. ‘대기업 화주를 위한 안전운임제 개악반대 화물연대 기자회견’(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 주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친다. 입춘이 온 지 열흘이 지났지만, 두툼한 겨울 점퍼를 입은 화물노동자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지난 12월 31일,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 시행되었던 안전운임제1의 일몰2을 맞이한 이들에게선 애써 작은 미소를 지어줄 여유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해 말,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철강재, 자동차, 위험물질, 곡물 및 사료, 택배 지·간선’ 5개 대상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16일간의 총파업을 진행하고 현장에 복귀한 화물연대본부는 국회 맞은편에서 천막농성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림2) 화물연대 천막농성장 ⓒ 연정

    “약속은 지키라고 하는 것이지, 어기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국민과 했던 약속을 정치인이 지키지 않았다면, 또는 정부가 국민과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안전운임제를 지속하고 품목 확대를 논의하겠다는 6월 합의, 안전운임제를 연장하겠다며 국민 앞에서 약속했던 것이나, 화주 책임 삭제 추진을 할 생각이 없다고 했던 것까지 모두 정부가 국민 앞에서 화물연대와 했던 합의이자 공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 것 하나 지켜진 게 없습니다. 약속을 지키라고 절박한 심정으로 총파업에 내몰린 화물노동자들을 매도하고 폭력을 행사한 것은 정부였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모든 잘못이 총파업을 한 화물연대에 있다며 여론을 호도했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화물연대본부 이봉주 본부장이 성토한다. 12월 총파업이 끝나고 이봉주 본부장은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과 품목 확대 논의기구 구성을 촉구하며, 18일 동안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진행해 30킬로그램 대로 체중이 줄었었다.

    “안전운임제도가 일몰되고 벌써 두 달째입니다. 현장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습니다. 화주 기업들이 다음 계약부터 최저 입찰로 저가 입찰을 할 테니 준비하라고 운송사에 전화를 돌렸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현재 부산에는 모 운송사에서 벌써 화주가 셔틀(shuttle: 화물을 부두에서 물류창고 등 근거리 운송을 하는 것) 운임을 주지 않으니 자신들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일몰제가 사라졌으니 예전처럼 무료로 셔틀 운송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발 빠른 운송사는 이미 덤핑 계약을 시작했습니다. 물량확보를 위해 안전운임보다 5만 원, 많게는 15만 원 낮은 금액을 제시하며 물량을 뺏고 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벌써 운송사에서는 화주가 운송료를 제대로 주지 않아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제 1월 운송료 지급될 때가 되어갑니다. 명세서에 얼마가 찍혀 있을지 몰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는 조합원들에게 답변할 말이 없어 답답합니다. 화물연대 조합원마저 이렇게 혼란스럽고 불안한데, 비조합원들은 하루하루 얼마나 불안 속에서 두려워하고 있겠습니까.”

    화물 안전운임제 일몰 이후의 현장 상황을 증언하는 화물연대본부 송천석 부산지역본부장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불안한 조합원들은 매일 노동조합을 찾아와 ‘운임이 20퍼센트 내려간다는데 진짜인지, 노동조합이 없어지는 게 진짜인지’ 묻는다. 심지어, 답답한 운송사들도 화물연대본부에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줄 수 있습니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십시오’ 하는 문의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운임·장시간·고강도 노동을 위한 정상화 방안

    화물운송 현장의 혼란은 단순히 안전운임제의 일몰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실상 기존 안전운임제의 폐지라고 할 수 있는 정부·여당의 ‘안전운임제 개악’이 현재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화물연대 총파업 이후 물류산업발전협의체와 공청회(1월 18일)를 통해 화주자본의 입장만을 반영하여 안전운임제를 무력화하기 위한 개악 시도의 수순을 밟아왔습니다. 이어 2월 6일 국토교통부는 당정 협의를 통해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이하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안전운임제의 명칭부터 내용까지 전면 개편하여, 사실상 기존 안전운임제를 폐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당정협의회 발표 결과로 2월 9일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 대표 발의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였습니다. 이 발의안은 안전운임제에서 안전을 삭제하고, 화주 책임 면제 처벌조항 완화, 위원회 구성 변경 등 안전운임 도입 취지를 전면으로 부정하고 화물노동자의 삶과 안전을 위협하는 근본 원인인 저운임·장시간·고강도 노동으로의 회기를 가져올 것입니다.”3

    2월 1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원희룡 장관이 국토교통부 업무보고를 통해 정부 입법안 발의 추진에 대해 설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화물연대가 국회 앞에서 이 기자회견을 하게 된 이유다.
    이 개정 법률안에 대해 대기업 화주를 제외한 운송사·차주 등 모든 화물운송산업 업계 관계자들은 화물운송업계에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비판과 우려를 하고 있다. 기존의 강제성 있는 ‘안전운송운임’은 강제성 없는 ‘표준운송운임’으로 바뀌고, ‘안전운임위원회’는 ‘운임위원회’로 바뀌었다. 화주 책임을 면제하고, 처벌조항을 완화하였다. 또한, 기존에 화주-운수사-화물노동자가 동수로 구성되어 의견을 조정하던 위원회 구성을 변경하여, 당사자인 화물노동자의 발언권을 축소하였다. 과열 덤핑 경쟁과 이로 인한 운송료 인하,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으로 인한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삶의 질 악화, 이것이 야기할 화물노동자·시민의 안전 위협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는 ‘정상화 방안’ 마련을 위해 화물연대를 포함한 차주·화주·운수사·민간전문가 등과 물류산업발전협의체를 발족하여 한 달간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였고, 공청회·간담회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 수렴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각 이해당사자들이 어떤 의견을 제시했고, 어떤 이견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 협의체에 참석해온 화물연대본부 박연수 정책실장은 그 회의가 ‘각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한 번씩 들어보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이 중에 정부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을 취사선택해서 만든 게 정상화 방안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림3) 2022년 12월 안전운임제 확대 현수막을 걸었던 화물차 ⓒ 연정

    “12월 21일에 시작되어 8차례 진행된 협의체에서 화물연대와 운송사 등 업계 대다수가 안전운임제 지속과 일몰기한 전 연장법안 처리 후 품목 확대 등의 제도개선 논의를 요구해왔습니다. 1월 18일 공청회에서도 화주를 제외한, 운수사업자와 화물노동자 모든 이해관계자가 정부의 안전운임제 개악에 반대하는 입장을 제출했습니다. 그날 화물연대와 운수사업자들이 피켓 시위를 하면서 소란이 일고, 공청회는 정부안에 대한 강한 반발 속에 종료되었습니다. 정부는 그런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다 합의가 됐다면서 일방적으로 발표를 한 거죠. 화물연대는 안전운임 위반 화주 처벌 강화 대책을 계속 요구했는데, 오히려 더 개악이 된 겁니다.”

    박연수 실장은 협의체의 구성부터 형평성에 맞지 않았다는 지적을 한다. 총 16명의 성원 중에 차주·운수사에 할당된 인원이 4명이고, 나머지 12명의 대부분이 정부와 화주단체 그리고 이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민간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다. 화주단체는 한국무역협회 등 대기업 중심으로, 기존 안전운임제를 찬성해온 중소 화주들은 의견을 낼 수조차 없는 구조였다. 그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한국무역협회 등은 ‘화주에게 운임을 강제하는 것이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정부와 국회에 안전운임제 일몰을 요구해왔다. 이를 전폭 수용한 것이 정상화 방안과 ‘개정 법률안’이다.
  

화주 처벌조항이 없는데, 운송료를 제대로 줄까요?

    안전운임제 일몰 후 화물운송 현장 상황과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안전운임제 개악’ 문제를 30년 경력 화물운송 노동자 고정기 씨에게 들었다. 고정기 씨는 안전운임제 일몰의 직접적인 대상 품목인 컨테이너 화물을 25톤 트레일러에 싣고 부산-수도권을 오가며 일하고 있다. 정기 씨는 1990년대 중반에 운수업체 직접고용 정규직 노동자로 화물운송 일을 처음 시작하여, 1998년 무렵 지입차주4 특수고용5으로 고용 형태가 바뀌는 과정을 경험한 화물운송업계의 산전수전을 겪은 노동자다.

    “전반적으로 컨테이너 쪽은 어수선합니다. 지금 불경기라 물량이 엄청나게 감소했어요. 무역수지도 많이 적자라고 하잖아요. 저희는 이중고 삼중고입니다. 운송 원가는 물가 상승률에 따라 계속 올라가는데, 물량은 경기 침체로 감소했습니다. 안전운임이라는 최소한의 조치마저 제거돼버린 상태에서 힘 있는 사람들은 원가절감 한다고 물류비며 원자재값 후려쳐서 자기들 이익을 극대화시키려고 할 거 아닙니까. 이런 상황이 맞물리면서 지금 많이 불안한 상황이죠.”

    1월에만 해도 화주나 운송사들이 정부의 조치를 지켜보며 관망하는 분위기였다. 막연하게 운송료가 인하될 거라는 소문만 돌았다. 하지만, 2월 6일 국토교통부의 정상화 방안이 나오고 사흘 뒤 여당이 관련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고 나자, 화주와 운송사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12월에 일한 것까지는 법적으로 보장된 안전운임제에 의해 지급했지만, 1월 운송료부터 기존 대비 20퍼센트 정도 삭감한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 2월 중순이 넘은 시점에, 1월 운송료를 받았냐고 묻자 정기 씨는 아직 받지 못했다고 했다.

    “저희는 월말에 마감 짓고 45일 후에 운송료를 받아요. 1월 운송료는 3월 15일에나 받게 되는 거죠. 실질적으로 1월 1일에 일한 것은 75일 후에 받게 되는 겁니다. 내가 현찰을 주고 기름 때가면서 대기업 물량을 외상으로 운송해주고 있는 거예요.”

    정기 씨는 3월 중순 정도는 되어야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거라며, 정부가 화물운송산업을 진심으로 개선하고 싶다면 이런 것부터 개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아직까지 현장에서 큰 동요가 없는 것은 1월 운송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기 씨는 안전운임제가 화물노동자들이 노무현 정부 때부터 줄기차게 요구를 해서 거의 20년 만에 문재인 정부 때 시행이 된 건데, 현 정부가 졸속으로 이를 개악하면서 오히려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었다고 했다.

    “안전운임제는요. 예를 들면, 40피트 컨테이너가 부산에서 수원을 갈 경우, 화주가 운송사에 지불하는 금액이 정해져 있어요. 그리고 운송사의 마진을 고려해서, 차주(화물기사)가 받아야 할 금액이 명시 되어 있었다고요. 근데 이 개악안(정부의 정상화 방안과 여당이 발의한 개정 법률안)에는 화주가 운송사에 지급해야 하는 금액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근데 운수사가 차주한테 줘야 될 금액은 명시를 하게 되어 있단 말이에요. 그럼 대형 화주는 저가 입찰을 붙일 게 뻔합니다. 저가 입찰이 되면 운송사는 우리한테 제대로 운임을 줄 수 없으니까 편법으로 그 손실을 우리한테 전가할 것도 뻔한데, 정부에서는 아니라고 해요. 안전운임제가 있던 때도 그런 편법이 횡행했는데, 없어지면 오죽하겠습니까. 지금 정부와 여당이 개정하겠다고 하는 법률에는 화주 처벌 조항도 과태료 조항도 없는데, 운송료를 제대로 줄까요?”

    국토교통부는 기존 안전운임제가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유발하고, 교통안전 효과도 불분명 하다고 주장한다. 국토교통부는 그 원인이 화주 처벌 조항 때문이라며, 화주-운수사 계약을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화주의 운임 지급 의무 및 처벌 삭제)으로 바꾸고, 시장기능을 회복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운수사-차주 간 운임계약은 강제하여 차주를 보호하겠다고 한다. 화주에게 제대로 운임을 받지 못한 운수사가 차주에게 어떻게 운임을 제대로 지급할 수 있단 말인가.

    정부 정상화 방안의 또 한 가지 핵심적인 내용은 ‘일하지 않는 운송사(지입전문회사) 퇴출’이라는 명분 하에, 운수사의 최소 운송의무 비율을 20퍼센트로 정하고 미달 시 사업권을 취소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정기 씨는 지금처럼 물량이 감소한 상황에서 증차를 하겠다는 것은 화물운송산업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지입료만 받던 운송회사들까지 알선 시장에 뛰어들게 해서 물량확보 경쟁을 심화시킬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량을 확보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화주가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리겠죠.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안전운임제 하에서는 과다 덤핑 경쟁을 할 수 없는 구조였는데, 저가 입찰 방식이 만연해지면 운송사들이 물량확보를 하기 위해 덤핑 경쟁을 한다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운송사가 손실 본 걸 운송사가 감수를 할까요? 이런저런 편법을 써서 화물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는 게 수십 년 동안 내려왔던 이 업계의 관행이란 말입니다. 이게 지입제를 개선하는 물류 선진화 방안입니까? 지입제는 전근대적인 제도가 맞아요. 정말 정부가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지입제를 폐지해야죠. 아무 역할도 안 하면서 ‘남바 사용료’만 받아먹는 운수회사에 소속돼 있는 지입화물노동자들을 개별 전환하게 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운수회사가 직접고용을 하게 하면 간명해요. 지금 정부는 지입제의 특정한 부분을 안전운임제 전체와 등치시켜 안전운임제를 없애려고 하는 겁니다.”

  

안전운임은 화물노동자의 최저임금

    정기 씨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화물운송산업 문제의 본질은 다 가리고, 대기업 화주 물류 자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정기 씨는 안전운임제가 그 명칭 때문에 교통사고와 직결되는 문제로만 접근되는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현한다.6

    “안전운임이 결과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게 맞죠. 하지만, 그 원개념은 화물노동자의 최저임금, 최저운임과 같은 겁니다. 공산품 가격을 인상할 때, 원부자재값 인상·유가 상승·물류비 상승 이런 이유를 들잖아요. 근데 정작 물류를 운송하는 화물노동자들에게는 적용을 안 해줬다고요. 근데 안전운임은 안전운임위원회 논의를 통해 연간 물가 상승률 비례해서 해마다 조금씩 인상이 되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저운임으로 보는 게 맞는 거죠.”

    기존에 비해 안정적인 생계유지 운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맞지만,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 이야기한 ‘귀족노동자’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작년에 국토교통부 원희룡 장관이 안전운임제 이후 화물노동자들의 순수익이 월 500만 원이라고 했는데, 정기 씨는 정말 그만큼 벌면 좋겠다고 했다.

    “제가 한 달에 1만 6천 킬로미터 운행을 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1년 동안에도 도달하지 못할 거리를 운행하는 건데, 얼마나 많은 차량 유지관리비가 들어가겠습니까. 그 비용을 다 저희가 부담하는 거잖아요. 이번 달에 1,800만 원을 받았다고 해봐요. 그중에 절반이 기름값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도로비가 한 달에 100만 원, 보험료 100만 원, 기타 차량 유지관리비가 100만 원, 차량 할부금으로 350만 원이 나갑니다. 제 차는 타이어만 22개인데, 계속 갈아줘야 해요. 원료로 기름을 쓰다 보니 유가 상승이 되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게 타이어값입니다. 일반 승용차 운전자들이 느끼는 차량 유지관리비하고는 개념이 다릅니다. 보통 연간 차량 관리비가 1,500만 원 이상 들어가요. 제가 최근에 3억에 차를 샀는데, 보통 새 차의 내구연한을 10~12년으로 봅니다. 연간 3천만 원씩 감가상각이 된다는 건데, 그런 계산은 전혀 안 하는 거잖아요.”

    특수고용노동자인 화물노동자들은 건강보험과 국민연금도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계산을 해보니 월 순수익이 최저임금이나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금액이다. 하지만, 화물노동자들에게는 안전운임제 하에서 몇 단계를 거치든 법에 정해진 운임을 매월 안 떼이고 받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중요했다. 적정한 운임이 보장되면 화물노동자들의 과로, 과속, 과적 운행 문제는 자연스럽게 개선이 된다. 안전운임제 시행 시기 근무 시간의 변화를 묻자, 정기 씨는 몇 시간 또는 며칠을 일했는지보다는 하루 24시간 중에 화물노동자가 자유롭게 휴식과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저희는 장거리를 다니는 차량이기 때문에 일요일 저녁에 나와서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새벽에 귀가하는 근무 패턴이 일반적입니다. 나올 때 일주일 치 옷 보따리를 싸가지고 나와갖고 차 안에서 숙식을 다 하는 거죠. 그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예전에는 운송료 마진이 워낙 작다 보니까 1회전이라도 더 하기 위해서 거의 잠을 안 자고 운행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안전운임제 적용 후에는 한 주에 4~4.5회전만 해도 생계 유지가 되는데, 과거에는 5~6회전을 해야 생계 유지가 되었으니까요. 똑같이 주 5일을 일해도, 그 안에서 지금보다 노동강도가 훨씬 세지는 거죠. 부산-서울을 오갈 때, 지금은 하루는 올라가고 하루는 내려가는데, 과거에는 하루에 서울-부산을 왕복했다는 얘기입니다.”

    정기 씨의 예전 수면 시간은 하루 4~6시간. 안전운임제 실시 이후에도 차 안에서 자는 것은 변함없지만, 6~8시간 정도의 수면이 가능해졌다.

    “안전운임제 이후에는 잠을 안 자면서 무리하게 일을 안 해도 기본적인 생계유지가 되니까 대부분은 무리해서 안 하려고 해요. 많은 화물차 사고가 운전 스킬 부족으로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고는 졸음운전이에요. 졸음운전이 아니더라도 피로한 상태에서 장거리 운행을 하면 주의력이 떨어지게 되잖아요. 휴식이나 수면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화물차들은 사고가 나도 안 죽는다. 그래서 무조건 밀어버린다’는 인식과는 달리, 실제 화물노동자 대부분은 사고에 대한 심각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자신과 시민의 안전 문제와 함께 경제적 비용 발생, 생업 중단 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p style="font-size: 90%; padding-left: 30px; text-align: justify;">    “우리 대형차들은 1년에 보험료를 5백만 원 이상씩 내요. 사고가 나서 할증이 되면 10퍼센트만 해도 550만 원이 되고, 그게 누적이 되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에서도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거죠. 화물 차량은 자차 보험 가입이 어려워서, 사고가 나면 많게는 몇천만 원의 수리비를 내가 다 부담해야 하거든요.”

    안전운임제가 시행되면서 과거에 화물노동자들이 불량 생산 등 화주 상황에 의해 상하차 시 3~4시간씩 무상으로 대기하던 시간이 사라졌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그만큼의 휴식 시간을 더 확보하게 되어 무리한 운행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안전운임제에는 법적으로 시간당 대기비 얼마, 공휴일 운행 시 할증 얼마, 이런 게 명시가 되어 있거든요. 물론, 지금도 우리는 고용불안 때문에 대기비 청구는 거의 못합니다. 하지만, 화주들이 대기 시간이 발생하면 법적으로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게 되니 상하차 물류 시스템을 알아서 개선을 해버렸습니다.”

  

목숨 끊는 사람이 비일비재했어요

그림4) 2023년 2월 27일 국회 앞에서의 화물연대 시위 ⓒ 연정

    안전운임제가 시행된 지난 3년 동안 유가 인상 등의 이슈가 있었지만,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는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은 한 번도 없었다. 정기 씨는 안전운임제가 사회안전장치 기능을 하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순기능을 해왔다는 걸 정부와 시민들이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3년 동안 안전운임제가 컨테이너·시멘트 2개 품목에만 적용이 되었지만, 현장에서는 운송료 산정 시 일정한 기준점이 되어온 게 사실이다.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개악안이 통과되면 우리 삶은 다시 다단계 착취가 횡행하던 과거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보통 3단계까지도 가는데, 한 단계 건너뛸 때마다 3~4만 원씩 깎여요. 내가 원하는 수준의 수익을 맞추려면 죽어라 일을 해야 하겠죠. 다단계가 횡행하면 부실한 업체들이 많이 생겨나게 됩니다. 석 달 동안 기름값, 도로비, 차량 할부금 내 돈으로 다 넣고 일한 걸 어음으로 받았어요. 어음 대신에 현금을 받게 되면 업체들은 또 수수료 명목으로 ‘깡비’를 떼어갑니다. 어음으로 받았는데, 부도가 나버리면 순간적으로 몇천만 원이 사라져버립니다. 심한 경우 밀리고 밀리다가 10개월 치 손실이 나는 경우도 있어요. 그게 정말 겁이 나고 불안하죠. 차량 할부금 한두 달 안 들어오면 캐피탈에서 바로 압류가 들어오거든요. 그러면 가정적으로 엄청나게 고통스럽다고요. 목숨을 끊는 사람이 비일비재했어요. 이제 앞으로 그게 다시 현실화될 수 있잖아요. 다시 그 끔찍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화주-운송회사’ 2단계로 이루어졌던 화물운송산업은 1998년 이후 ‘화주-운송회사-지입차주’로 한 단계가 늘어난다. 그리고 운송사와 지입차주 사이에 알선업체가 들어와, 적게는 2단계에서 5단계까지 다단계 알선이 만연해진다. 화물노동자들은 한 단계씩 거칠 때마다 3~5퍼센트 정도의 수수료를 떼였고, 심한 경우 화주가 지불한 운송료의 60퍼센트만 가져가는 일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40퍼센트의 불필요한 중간 물류비가 발생했던 것이다. 안전운임제가 시행되면서 기존의 부실·악덕 업체들은 어느 정도 퇴출 또는 자정이 된 상황인데, 현재 정부는 다시 과거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

    “정부는 화물운송이 공공성이 있는 필수산업이라고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잖아요. 우리가 원자재부터 완제품까지, 식자재·의약품·의류 등 대한민국 국민이 사용하는 모든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걸 생각하면, 일정 부분 맞는 얘기예요. 그런데 그 공공성의 주체로 일하고 있는 화물노동자들의 최소운임이나 안전에 대해서는 개인사업자라고 하면서 나 몰라라 하잖아요. 우리가 물량이 없어 일을 못할 때, 어떤 지원도 안 해줍니다. 그러면서, 또 필수산업이라고 마음대로 차를 세우는 건 못하게 한다고요.”

    정기 씨는 정부가 공공성을 이야기하려면 그에 걸맞은 처우나 안전장치를 화물노동자들에게 먼저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기존의 안전운임제에는 ‘화물 차주에 대한 적정한 운임 보장을 통한 교통안전 확보’라는 노동자·시민의 안전에 관한 공공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표준운임제’에는 ‘운수사업의 효율적 운영을 위하여’라고 하여 시장경제 원리를 명분으로 일몰제 폐지를 주장해온 화주들의 입장만 반영되어 있다.
    설사, 정상화 방안이 입법화된다 해도 정부는 화물노동자들의 정체성을 ‘공공성의 주체’와 ‘개인사업자’ 사이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오가며 규정할 가능성이 크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공공성이 사라진 삶을 타인의 존재가 사라진 ‘사적private’인 상태로 표현한다. 아렌트는 공공성이 사라진 이러한 삶을 타자로부터 응답 가능성을 상실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버려짐’이라고 부른다. 이 버려진 사람들은 자신을 세상에 전혀 속하지 않는 잉여자라고 느끼게 된다.7
    2023년 2월 마지막 날, 우리가 사용할 생필품들을 싣고 차 안에서 밥을 먹고 쪽잠을 자며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을 정기 씨를 포함한 42만 명의 화물노동자들을 생각한다. 씁쓸하고 쓸쓸하다.

그림5) 2023년 2월 15일 ⓒ 연정

  
  
  

주석

  1.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도란 ‘화물 차주에 대한 적정한 운임 보장을 통해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방지하는 등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운임’을 법(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으로 규정해놓은 것을 말한다. 안전운임제는 2020년에 3년 일몰제로 (전체 화물자동차 42만 대 중 6퍼센트에 해당하는 2만 6천 대의)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 시행되었다. 안전운임은 화물자동차 안전운송 원가에 적정 이윤을 더한 것으로,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표하게 돼 있다. 안전운임에는 기본적인 차량 유지관리비도 포함돼 있다. 정부에서 정한 안전운임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하는 등 안전운임제를 위반한 화주에게는 과태료를 건당 500만 원을 부과하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다.
  2. 법률이나 각종 규제의 효력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
  3. 2월 6일, 국토교통부(장관 원희룡)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을 당정 협의를 통해 발표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 화물운송산업 체질 개선 ▲ 화물차 안전운임제 근본적 개선 ▲ 화물차주 처우 개선 ▲ 화물차 교통안전 실질적 강화로, 기존 안전운임제 문제와 지입제 폐단 등 화물운송산업이 지닌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흘 뒤인 2월 9일,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 등은 이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다. 정부와 여당은 ‘안전운임제’ 명칭과 내용을 전면 개편한 ‘표준운임제’를 도입하고, 지입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운송기능은 수행하지 않고 지입료만 수취하는 운송사(지입 전문회사)를 퇴출하겠다고 했다. 이 역시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 한해 3년 일몰제로 시행하겠다고 한다.
  4. 화물 차량의 실소유자가 화물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차량 번호를 국가에서 운수회사에만 부여하게 되어 있어 노동자가 매월 30~40만 원을 운수회사에 지불하고 차량 번호판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5. 특수고용이란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도급·위임 형태 등의 계약을 했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고용 형태를 말한다. 화물노동자들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례가 꾸준히 나오고 있음에도, 정부는 화물노동자를 근로기준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현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하여, 노동3권 침해 문제가 대두되자 ‘일률적으로 화물운송기사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가, 올해 1월 공정거래위원회의 화물연대 검찰 고발을 위해 화물연대의 지위를 사업자단체로 명시하는 등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6. 국토교통부는 한국교통연구원이 안전운임제 초기 1년(2020년 10월 5일~2021년 12월 6일)간 조사한 결과 중 일부 내용만을 갖고, ‘기존 안전운임제의 교통안전 효과가 불분명하다’고 단정지었다.
    여기에 대해 화물연대본부 박연수 정책실장은 “한국교통연구원의 조사만으로도 안전운임제 시행 전(2019년)에 비해 시행 후(2021년)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평균 8.3퍼센트 감소하였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이러한 노동시간 감소라는 직접적인 목표 달성에는 눈을 감고, 짧은 시행 기간과 부족한 데이터로 인해 확인할 수 없는 궁극적 목표인 교통안전 확보 달성으로만 안전운임제 효과를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안전운임제 위반 신고에 대한 처리율이 2퍼센트에 불과한 점 등, 미온적인 처벌로 제도 효과가 반감되는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는 안전운임제 관련 법안 발의 이후(2016년 11월~2021년) 화물연대의 파업 일수가 3일(1회)로, 그 이전(2012~2016년) 15일(2회)에 비해 80퍼센트가 감소한 점 역시 언급하지 않는다(한국교통연구원은 위 조사에서 안전운임위원회 등을 통해 정부와 화주·운수사·차주 간 공식적인 소통창구가 마련됨에 따라 예측 불가능한 파업 발생 가능성이 감소하였다고 명시하였다).
  7. 사이토 준이치, 『민주적 공공성: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넘어서』, 윤대석·류수연·윤미란 옮김, 이음, 2009.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