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개념정원 〈17회〉: 인가된 무지sanctioned ignorance

  

지식과 지혜

    아는 것이 힘이다. 17세기 영국 철학자 베이컨의 말에서 나온 유명한 격언이다. 이 문장은 지식이 권력이다,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어감이 매우 달라지지만, 앎의 중요성과 지식의 무게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에 관한 한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서나 큰 차이가 없다. 사태의 원인과 만물의 이치를 알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해당한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뭔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좋은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 나름으로 배우고자 하고 익히고자 하고 아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나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매우 좋은 일이다. 물론 몰라서 좋은 것도 있고, 알아서 오히려 치명적이 되는 지식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예외적이거나 결과적으로 그러할 뿐으로, 앎과 모름 앞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사람들이 앎 쪽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앎이라는 단어는 매우 폭이 넓은 말이다. 지식·인식·지혜·진리·진실·정보 등의 뜻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지식은 현재 한국어 어감에서 앎과 가장 유사한 포괄적인 뜻의 단어로서, 배움을 통해 얻는 학식과 경험으로 획득한 깨달음이 함축되어 있다. 지식이라는 말은 대체로, 올바르고 쓸모 있는 앎을 지칭하지만 별 소용이 없거나 심지어는 그릇된 앎도 지식이라는 말로 통칭되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 잘못된 앎이란 그것을 알고 있는 당사자가 아니라 외부에서 판단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때 그렇다는 뜻이다. 지식이라는 말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지닌 당사자가 옳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참된 앎과 그렇지 않은 앎, 혹은 가치 있는 앎과 그렇지 못한 앎을 구분하고자 했다. 앎 사이의 서열을 나누기도 했다. 플라톤의 분류법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다. 참된 앎을 지칭하는 에피스테메episteme와 그렇지 못한 억견臆見, doxa의 구분이 그것이다. 억견은 사람의 감각을 통한 앎이기 때문에 참된 것일 수 없고, 에피스테메는 인간의 감각에 의존하지 않는 앎이기 때문에 진정한 것일 수 있다는 논리이다. 좀 더 자세히 보자면, 플라톤은 앎 일반을 지성적 인식noesis과 감각적 인식인 억견으로 구분했다. 여기에서 감각적 인식인 억견은 다시 추측eikasia과 믿음pistis으로, 또 지성적 인식은 직관적 인식(episteme, 혹은 좁은 의미의 noesis)과 추론적 인식dianoia로 구분된다. 이런 구분법의 바탕에는, 참된 앎이란 인간의 감각이나 경험을 넘어서 있는 불변의 절대성과 조응한다는 생각이 놓여 있다.
    참된 앎과 그릇된 앎을 나누고 서열을 정하는 이런 식의 설정은 플라톤의 시대 이래로 오랜 시간 이어진다. 17세기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세 가지 형태의 앎을 구분했다. 첫 번째 종류는 주관적 앎으로서의 의견opinio과 상상imaginatio, 두 번째 종류는 인간이 지닌 보편적 능력에 입각한 것으로서의 이성ratio, 그리고 세 번째 종류는 직관intuitio으로서 세계의 신적 속성에 대한 앎이다. 스피노자는 첫 번째 종류의 앎은 오류의 원인이고 나머지 둘은 참된 인식라고 했다. 물론 여기에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은 기독교의 인격적인 신과는 다른 개념으로서, 인간을 포함한 세계 자체이자 그 세계를 운행하는 신성한 원리를 뜻한다. 그럼에도 여기에서도 여일하게 작동하는 것은 감각에 입각한 앎(억견)과 감각을 통하지 않은 앎(에피스테메)을 구별하는 플라톤적인 방식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앎의 이런 위계는 정확하게 반대로 뒤집힌 형국이 되어 있다. 과학혁명 이후로 생겨난 가장 큰 변화는 앎의 표준이 연역적인 것에서 귀납적인 것으로 바뀌었다는 점에 있다. 지식 세계의 표준은 자연과학이 되었으며, 여기에서 앎의 핵심은 데이터를 통해 검증과 반증이 가능한 구조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영혼이나 신이나 이데아 같은 개념은 해당 데이터가 없어서 검증은 물론이고 반증조차 불가능한 대상이다. 일방적 주장만 가능한 것들은 믿음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과학적 지식의 대상일 수는 없다.
    과학혁명이 지식의 관념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지식의 영역에는 그 어떤 절대 불변의 진리도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 되었다는 점이다. 불변자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은 그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지만(불변자가 없다는 주장이 불변자가 되기 때문에 모순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지식 자체가 그런 역설과 예외성 위에 건설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가 감내하거나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시대가 바뀌고 지식 생산의 프레임이 변화함에 따라 한때 진리로 통했던 것이 허위가 되기도 한다. 특정 지식의 진위 여부를 나누는 기준은 지식 생산의 체계에 내장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과 마찬가지로 지식 생산의 프레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진다. 『말과 사물』이라는 저서에서 푸코가 사용했던 에피스테메라는 개념, 그리고 그에 앞서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사용했던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은 모두,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지식 생산의 프레임을 지칭한다.
    플라톤의 제자이기도 했던 고대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지혜sophia는 존재의 제일원리에 대한 앎이었으며, 그것을 따지는 일이 형이상학의 임무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앎을 다루는 것은 세 영역, 이론학(theoretike: 수학, 자연학, 형이상학), 제작학(poietike: 시학, 수사학), 실천학(praktike: 윤리학, 정치학)으로 구분된다. 지혜는 그중 한 부분인 형이상학에 속하는 앎인 것이다. 정확하게 서열화된 것은 아니지만, 형이상학을 통해 획득되는 지혜는 앎 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할까.
    현재의 우리에게 지식은 어떤 범위와 한도 내에서만 통용되는 앎을 뜻한다. 반면에 지혜는 지식이나 인식 너머에서 작동하는 실천적 유연성을 뜻한다. 자기 영역 속에 한정된 지식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그리고 영역 밖으로 나온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지혜의 일이다. 현재 한국어의 어감에서 지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법으로 말하자면 지혜=소피아의 반대편에 있는 실천적 지식phronesis에 가깝다. 지식의 대상이 사람들이 사는 세계라면, 지혜의 대상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플라톤식으로 말하자면 에피스테메가 아닌 억견, 곧 사람들의 주관적인 견해가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곳이다. 서로 주고받는 견해들이 만들어내는 체계는, 특정 전문가 집단이 해당 영역 안에서 유통되는 지식의 진리치를 확정하는 바탕이 되고, 또한 공동체 내에서 교환되는 의견들의 힘은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원천이 된다. 그렇게 의견과 견해들이 모여 생겨나는 것인 앎은 영원한 진리 같은 것일 수는 없다. 비록 잠정적인 것일지라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의 합의된 견해는 현실 속에서 올바른 지식으로 간주된다. 우리가 체계화한 앎의 근본 바탕에 세계에 대한 무지가 있다는 점을 재삼 강조할 필요는 없겠다. 지식은 그 밑바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힘을 지니고 있으나, 지혜는 오히려 그 무지의 밑바닥에 바짝 들러붙는다. 현명함과 지혜는 낮은 자리에서 생겨난다.
  

무지의 지docta ignorantia

    지식이 전면에 부각되어 있을 때 무지는 퇴치되어야 할 어둠과도 같다. 그런데 문제는 앎의 세계가 끝이 없다는 것이다. 앎의 세계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이것은 누구나 몸으로 느끼는 것이어서 앎의 무한성은 언제나 세계의 무한성과 함께 절벽처럼 사람을 막아서곤 한다. 그렇다면 영원성이나 절대 불변의 무한성 같은 이 절망적인 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불가지不可知의 존재가 지닌 치명성을 방어하기 위해 사람들이 취하곤 했던 전통적인 방법은, 인간 지식의 한계를 설정하고 그 나머지는 절대자와 신의 영역으로 돌리는 것이다. 지식의 끝까지 가볼 수는 없더라도, 그래서 사람은 결국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인간의 삶은 유지되어야 하고 유한자의 앎은 또 자기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철학자 니콜라우스 쿠사누스(Nicolaus Kusanus: 1401~64)의 책 제목이기도 한 ‘무지의 지’(유식한 무지, 박학한 무지, 아는 무지 등으로 번역된다)는 인간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지식의 한계를 표현하는 말로서, 종국적으로 자기 자신의 무지함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앎에 대한 추구를 뜻한다. 자기 자신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자처했던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이런 생각의 바탕에 있거니와, 그래도 쿠사누스의 시대는 여전히 스콜라 신학과 신앙의 세계가 현실적 위력을 발휘하고 있을 때이기에, 이런 한계 설정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치명적인 질문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과학혁명이 시작되고 스콜라 신학의 세계가 해체되어버리고 난 다음에 본격화된다.
    신이라는 절대자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신은 숭배의 대상이지 인식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한자인 인간이 무한자인 신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그 무한자의 자리에 신이 아니라 세계가 들어서면 이것은 제법 심각한 난국이 된다. 무한자로서의 세계 속에는 그것을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인간 자신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세계의 무한성은 신과는 달리 경악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경배의 대상일 수 없다. 이런 사태가 생겨난 것은 무한 공간의 존재가 물리적으로 확인되면서부터이다.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한 갈릴레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세상이 무한할 것이라 막연히 짐작하는 것과, 관측 결과를 통해 그 무한성이 증명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에 칸트가 제출한 세 권의 책,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은 이런 지적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증이다. 여기에서 주목되어야 할 것은 세 권의 책 제목에 있는 비판이라는 단어이다. 순수이성이란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말하자면 이론학에 적용되는 지적 능력을 뜻한다. 그런데 그것이 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인간 이성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과 앎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점에 그 까닭이 있다. 요컨대 인간의 세 가지 지적 능력에 비판이라는 단어가 추가된 것은 인간의 자기 한계를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인 것이다.
    그렇게 설정된 한계 안에서 최선의 지적 결과를 도출해내고자 했던 것이 칸트의 세 책의 내용이거니와, 칸트가 ‘물자체Ding an sich’라 지칭한 것은 그로부터 배제된 것들의 총칭이다. 사람의 감각기관을 통해서는 접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물자체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상응한다. 고대인 플라톤에게 이데아는 사람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이었으나, 근대인 칸트에게 물자체는 몸을 가진 인간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설정된다. 칸트의 체계 내에서 물자체는 부재하는 신과도 같다. 칸트가 물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접근 가능성을 차단하는 순간, 신은 인간 이성의 영역에서 추방의 대상이자 동시에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물자체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지시하는 거대한 표지판과도 같다. 인간은 자기가 사는 세상의 진짜 모습을 절대 알 수 없다고 그 표지판은 말하고 있다.
    세계가 무한하니 앎 또한 무한할 수밖에 없다. 유한자인 인간이 무한한 앎을 좇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미 고대인 장자가 말해두었거니와, 또 다른 고대인 공자는 앎에 대해 매우 간명하게 말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이 말은 공자가, 성질이 급하여 자주 덜렁거리고 남들에게 굽힐 줄 몰랐던 제자 자로에게 한 말이다. 자로는 다 떨어진 베옷을 입고도 여우 가죽옷을 입은 사람 앞에서 당당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자로이기 때문에 공자가 저런 식으로 면박을 주었겠으나, 저 문장이야말로 앎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자기 지식에 대한 확신 속에서 위험한 무지는 싹튼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진정 위험한 것이다.
  

인가된 무지

    ‘인가된 무지’는 낯선 말이다. 포스트식민 이론가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 1942~)이 썼던 용어인데, ‘무지’ 앞에 ‘인가된’이라는 말이 붙어 이상한 느낌조차 준다. 무지란 기본적으로 부끄러운 것인데, 인가된 무지라는 말이 어떻게 가능할까. 몰라도 부끄럽지 않거나 혹은 몰라도 되는 것을 뜻하는가.
    여기에서 ‘인가’란 승인이나 공식적인 허용을 뜻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겠다. 몰라도 전혀 부끄럽거나 이상하지 않은 것, 더 나아가 오히려 몰라야 당당하고 버젓한 상태가 되는 것을 스피박은 인가된 무지라고 칭했다. 이는 오만한 무지나 무지에 대한 의지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스피박은 특히 식민 시대나 포스트식민의 문화 정치적 상황에서 이 말을 썼다. 그 뜻인즉, 지배적 계층의 사람들이 피지배자의 문화를 대하는 오만한 태도를 지칭하는 것인데, 이런 태도는 포스트식민의 조건들 속에서만이 아니라 한 사회 내부에서도 문화 정치나 감각 정치가 드러나는 장에서라면 어디서든 발견될 수 있다.
    앎과 모름 사이에는 다양한 단계가 있다. 알아야 할 것, 알면 좋을 것, 몰라도 될 것, 몰라야 할 것. 아는 사람이 대접받는다는 것은 알아야 할 것을 아는 사람의 경우이다. 문화와 풍속이 다른 곳에 가서도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그 지역의 생활 양식을 미리 알아두어야 한다. 풍속이 다른 곳에 가면서도 그런 지식을 챙길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자신을, 오랑캐나 미개인의 땅에 강림한 문명인으로 자임했던 사람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남의 땅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지배자로 군림했던 19세기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대표적이다. 식민지의 지배자들은 현실적 위력의 소유자들이므로 남의 땅에 있더라도 거리낌 없이 자기 방식대로 행동할 수 있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게다가 일단 지배자가 되면 문화적 헤게모니도 장악한다. 지배 집단의 풍습과 문화는 고급스러운 것으로 대접받는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간주되지만, 그 반대로 서열이 낮은 문화나 풍습을 모르는 것은 그렇지 않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오히려 몰라야 당당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인가된 무지가 생겨나는 이와 같은 구조는 한 사회 내부의 문화정치적 조건 속에서도 재연되곤 한다.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집단을 이루고 그 집단 고유의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원론적으로 보자면 이런 문화 사이에 우열이나 위계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문화정치적 현실은, 문화와 취향이 그것을 향유하는 집단의 현실적 서열에 따라 위계를 이루곤 하는 것을 보여준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윤리나 이념의 영역은 오히려 단순할 수 있으되, 취향의 영역은 훨씬 더 섬세하고 예민하다. 문화적 취향을 바꾸는 일과 정치적 신조를 바꾸는 일 중에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 한 사람의 취향에 대한 비난은 그 사람이 지닌 종교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비난보다 오히려 더 자극적일 수 있다. 그 안에서 작동하는 올바름에 대한 감각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인가된 무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1970년대 한국에서 부엌일을 하고 있는 성인 남성의 이미지에는 다양한 문화정치적 함의가 교차한다. 가부장제 전통이 여전히 현저한 현실 속에서, 남성에게 부엌일은 인가된 무지의 영역이다. ‘사내는 부엌에 들어오지 마라’라는 식의 엄마들의 목소리가 힘을 썼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보란 듯이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일을 하는 남성의 모습은 인가된 무지의 비윤리성을 배척하려는 의지의 표상이 된다. 그 남성의 진짜 의도와 무관하게 행위 자체가 그렇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한 여성의 시선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싸늘해질 수 있다. 남성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부엌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윤리적 정당성까지 덤으로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인가된 무지와 윤리적 올바름의 섬세함이 교차하는 현장은 젠더적, 문화적, 세대적, 지역적 차이가 차별로 전화되는 장소에서는 어김없이 펼쳐진다. 차별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문화적 환경에서 추구되는 정치적 올바름으로 인해 종종 윤리적 올바름 자체가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광장시장 빈대떡집 목로에 앉아 서툰 젓가락질을 정성껏 하고 있는 유럽 출신의 색목인(色目人, 영어권에서는 ‘백인/유색인’을 구분한다. 유색의 반대는 백색이 아니라 무색투명이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쓰는 것까지는 우습지만 우리가 깊이 개입할 일은 아니겠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그런 우스운 용어를 쓰는 것은 이제 지양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과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식당 주인의 쌍이 있고, 그 장면을 바라보는 제3의 시선이 있다고 하자.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식당 주인의 시선이다. 젓가락질을 하는 한 이방인의 노력을, 인가된 무지를 넘어서려는 행동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시선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색목인의 노력을 딱한 눈으로 보거나 포크를 내준다면 족한 일이다. 그 사람의 서툰 젓가락질은, 그것을 자기 문화에 대한 과분한 존중으로 여겨 흡족해하는 시선이 개입하는 순간 윤리성이라는 덤까지 얻는다. 당연한 일을 하면서 윤리성까지 챙기는 것을 부당하게 느끼는 제3의 시선은, 인가된 무지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문화정치적 함축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토착 정보원의 폐제foreclosure of native informant, 서발턴subaltern

    스피박의 저서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에서 ‘포스트식민’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땅과 주권을 침탈당했던 시대 이후를 뜻한다. 식민 시대를 벗어나 독립국이 되었음에도 경제 문화적 예속과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다.
    포스트식민 이론가들이 적발해내는 것은 서구에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는 오리엔탈리즘, 유럽이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비-유럽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제멋대로 타자화했던 흔적들이다. 하나의 문화권이 지닌 외부에 대한 편견과 혐오 같은 것들은, 물론 윤리적으로 지탄받아야 마땅한 것이지만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편견과 혐오는 그것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저급하게 만들 뿐이므로, 외부의 비판 이전에 내부의 자성과 자정 노력으로 제거되어야 할 비윤리성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현실적 위력과 결합하여 폭력적이 된다면, 그것도 국가 간의 관계에서 구조적으로 작동한다면 문제적이 아닐 수 없겠다. 포스트식민 상황에 대한 비판은 그런 점에서 합당한 윤리적 지위를 확보한다.
    스피박이 구사한 ‘토착 정보원의 폐제’라는 용어는 영어 제국주의 학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토착 정보원이란 현지 조사에 임하는 인류학자나 민속학자에게 현지의 실정에 대한 지식과 언어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토착 정보원’이라고 직역된 말은 현지 안내원 정도의 뜻이겠다. ‘히말라야’를 ‘정복’하고자 했던 유럽인들에게 짐을 날라주고 길을 안내했던 셰르파족과 같은 역할을, 학문의 영역에서 담당하는 존재인 셈이다. 그들의 일은 현지의 데이터와 정보를 수집하고 제공하는 것이고, 그것을 제국주의 언어를 사용하여 학문적인 틀로 담아내는 일은 색목인 학자, 즉 비-토착 정보원의 일이다.
    여기에서 인상적인 것은 스피박이, 학문의 영역에서 토착 정보원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행위를 지목하여 폐제라는 정신분석학 용어를 썼다는 점이다. 라캉의 용법에 따르면 폐제는 정신증을 발생시키는 기전으로서, 신경증을 낳는 ‘억압’ 및 도착증을 낳는 ‘부인’과 나란히 정신이상을 초래하는 3대 기전의 위상을 지닌다. 세 개의 기전은 모두 상징적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각각의 방식이 초래하는 결과는 매우 다르다. 그중에서도 폐제는 상징계의 질서 자체를 도려내듯 치워버림으로써 중증의 망상이나 조현병 같은 심각한 증상을 초래하는 기전을 뜻한다.
    인도 출신 여성 학자로서, 인도에서 배우고 미국으로 건너가 학자가 된 스피박의 이력을 고려한다면, 토착 정보원의 폐제라는 말이 지닌 실존적 무게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비-영어권 출신 여성 인문학자 스피박이 미국의 학계로부터 인도에 대한 토착 정보원 취급을 당했던 것은 아닐까. 혹은 자기 안에서 작동하는, 토착 정보원 되기에 대한 욕망과 유혹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너희들은 정보를 제공해라, 이론과 체계를 만드는 일은 우리가 하겠다. 미국으로 건너간 스피박의 귀에 들렸던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어온 이런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단순 제조업은 남아시아로 넘기고 자기들은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하는 서구 자본주의의 흐름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세계 자본주의의 풍경이 겹쳐졌을 수도 있겠다. 거기에 폐제라는 단어를 덧붙이는 순간 스피박은 그 목소리를 향해 이렇게 답하고 있는 셈이 된다. 토착 정보원을 폐제하면서 당신들이 쌓아온 논리의 탑은 모두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서발턴subaltern이라는 단어는 스피박의 논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이후로 널리 사용되어온 말이다. 포스트식민 상황이 규정하는 하층민을 뜻하는 것으로 하위주체로 번역되기도 한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여성이 그 대표적인 존재이다. 본래는 하급 장교를 뜻하는 단어이며, 투옥되어 있던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 그람시의 『옥중 수고』에 나오는 것을, 남아시아 연구자들이 전용하여 쓰기 시작한 단어이다. 헤게모니 집단으로부터 배제된 존재들은 모두 서발턴으로 분류된다. 그람시의 틀에서는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남부 이탈리아의 빈민들이 서발턴들이다. 산업 선진국 영국에서라면 단결한 프롤레타리아가 있어야 할 자리이다. 식민 시대 남아시아로 무대가 바뀌면, 식민지 인도의 낮은 카스트에 속하는 여성처럼 이중 삼중으로 핍박받던 사람들이 서발턴의 자리를 채운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서발턴을 가면 쓴 프롤레타리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가면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밖에 있는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서발턴도 그러할까.
  

후주

플라톤의 인식 체계는 『국가』 제6권에 나온다(박종현 옮김, 서광사, 1997, 446쪽).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 체계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6권에 나온다(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13, 224쪽). sophia는 철학적 지혜, phronesis는 실천적 지혜로 번역되어 있다. 스피노자의 세 가지 앎은 『에티카』 2부 정리40의 주해2에 나온다. 앎의 참과 거짓을 나누는 방식은 2부 정리40과 41에 있다(추영현 옮김, 동서문화사, 2013, 91~92쪽). 번역자들에 따라 3종의 인식 혹은 3종지 등의 형태로 번역된다. 쿠사누스의 ‘무지의 지’에 대해서는 김형수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의 ‘아는 무지’: 대립과 합치의 통일성에 대한 추구」(『신학전망』 174, 2011)이 상세하다. 앎에 대한 장자의 말은 『장자』 ‘양생주’에, 공자의 말은 『논어』 ‘위정편’에 나온다. 스피박의 개념들은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태혜숙·박미선 옮김, 갈무리, 2005)에서 폭넓게 구사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가된 무지’는 26쪽과 506쪽, ‘토착 정보원의 폐제’는 42쪽을 참조할 수 있겠다. 폐제의 개념에 대해서는 졸저 『인문학개념정원』(문학동네, 2012) 8장에 약술해두었다. 그람시의 서발턴 개념에 대해서는 강옥초 「그람시와 ‘서발턴’ 개념」(『역사교육』 82, 2002)이 상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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