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 가는 등대에 다시 불을 밝힐 수 있을까?

  

방준호, 『실직도시』, 부키, 2021.

  지방이 소멸하고 있다는 얘기야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지방의 개념을 더 좁히면 농촌이나 어촌이 될 텐데, 지금껏 소멸 위기의 대상으로 우려의 시선을 받은 건 대개 1차 산업의 생산기지인 농어촌이었다. 지방 도시 역시 쇠락의 대상으로 꼽히긴 했어도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게 사실이다. 그러는 사이 무릎 꺾인 소처럼 주저앉는 지방 도시들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미 지방 균형발전을 정책의 중점 과제로 내세우고 추진했지만 실효성과 성과에 대한 점검이 얼마나 이루어졌고, 제대로 된 보완책을 강구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여기저기에 혁신도시를 만들고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지방 이전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있다. 그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수도권 집중 현상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을 나란히 놓고 보면 쉽게 해소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군산이라는 도시가 있다. ‘군산’하면 무엇부터 떠올릴까? 젊은이들 사이에서 근대문화유산 거리가 알려지면서 관광도시가 되었다거나, 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군산항이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의 주 무대였다는 사실을 거론할 수도 있겠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옛날 “역전의 명수”라는 말을 낳게 한 군산상고 야구팀을 떠올릴 수도 있겠고, 술과 시를 좋아하는 낭만파라면 시인들의 시에 종종 등장하는 ‘째보선창’의 선술집을 기억할 수도 있겠고. 사실 지금 얘기한 것들은 내가 두어 차례 군산을 방문했을 때 관심을 가졌던 것들이다. 군산상고에 초대받아 학생들과 시 수업을 한 적이 있고, 일부러 째보선창을 찾아가 술을 마셨으며, 근대문화유산 거리에 있는 숙소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채만식문학관을 방문한 적도 있으니까. 덧붙인다면 군산제일고등학교에 재직 중 오송회 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렀던 이광웅 시인의 시비 앞에 가서 술 한잔 부어준 적도 있다. 참, 내가 좋아하는 장률 감독이 만든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인상 깊게 보았구나.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2018년 5월에 한국지엠 군산 공장이 문을 닫았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많은 사람이 그 기사를 봤을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과 관계된 이가 아닌 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없이 쏟아지는 기사 중의 하나로 여겼을 뿐 따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당장 내 삶과 직접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니 잠시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짓다 이내 다른 문제로 관심을 돌리고 말았겠지. 정부나 그 지역에서 고민할 문제라고 밀쳐두면서 군산은 그렇게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건 한 해 앞서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가 문을 닫았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 군산 사람 외에 몰락해가는 군산의 처지를 걱정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몇 년째 코로나19 팬데믹이 위세를 부리고 있는 상황은 그런 외면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했을 테고.
  세상이 처한 상황과 구조를 이해하는 데 각종 통계가 유효하긴 하지만, 통계로 나타난 수치는 말 그대로 숫자일 뿐이어서 전체를 구성하는 개별 인간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통계를 바탕으로 한 분석과 전망 같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기자가 기사를 쓸 때 중요하게 참고하는 자료일 수는 있어도 구체와 실감을 전해 주기는 힘든 것들이다. “기사는 많지만 충격이 한 도시에 떨어지고, 그 여파가 미치는 결들을 세밀하게 보여 주는 건 없었던 것 같다.”(37쪽)는 《한겨레21》 편집장의 말이 기자 신분의 저자를 군산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두 달 동안 군산에 머물면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말을 받아 적었다. 군산 시내와 외곽을 일주하는 버스를 타고 다니며 마주친 풍경들도 기록했다. 충격의 ‘여파가 미치는 결들’을 탐색하는 일은 저자 말대로 ‘최소한의 윤리에 닿기 위한 개인적인 작업’(41쪽)이었다. 저자가 말한 최소한의 윤리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윤리일 테고, 당신들과 내가 커다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의식의 소산일 터다.
  공장이 사라지면 공장 안에 있던 사람들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 그게 핵심일 테지만 거기까지는 사람들의 관심이 미치지 못한다. 공장이 문을 닫은 뒤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 누가 어디로 떠났는지 묻지 않는다. 실직의 고통과 불안은 오로지 당사자와 가족들의 몫으로만 남을 뿐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한때 광고 카피로 유명했던 말이다. 하지만 저 말이 비수처럼 가슴 한복판에 와서 꽂히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한국지엠 군산 공장과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가 문을 닫은 건 노동자들 때문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그저 열심히 일했을 따름이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도 이제 그만 떠나라는 통보를 받아야 했던 노동자들.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말이 목울대를 치밀고 올라왔을 법하다. 하지만 누구도 항변하거나 맞서 싸우지 않았다. 반발 움직임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시청 앞으로 가서 피켓을 들기도 하고, 비정규직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미국 디트로이트까지 항의 방문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호소에 머문 정도에 그쳤을 뿐 격렬한 투쟁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책 안에서는 짧게 언급되고 말았지만 나는 군산 공장 노동자들의 내면에 새겨진 두려움을 읽었다. 평택 쌍용자동차 사태처럼 가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런 비극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학습된 공포는 무력함을 낳았고, 패자의 자리는 언제나 그랬듯 노동자들 몫이었다.
  군산의 대우자동차가 최종 부도 처리되고 이어서 다국적기업 지엠이 인수자로 들어섰을 때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있었다. 최고 의사 결정 기구는 저 멀리 아메리카에 있고 생산기지인 공장만 달랑 군산에 있는 형태는 어쩐지 불안했다. 멀리 있는 경영진 눈에는 노동자라는 존재도 수많은 부품 중의 하나로 취급되기 마련일 거였다. 오로지 투입과 생산에 따른 계산기만 두드리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 공장을 접을 수 있을 거라는 우려가 실제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그래도 설마 했던 마음을 자책하며 후회해본들 현실로 닥쳐온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각자 살길을 찾아야 했다. 정규직 중 일부는 부평의 지엠 공장과 울산의 조선소로 전환 배치를 받아 떠났으나 군산을 떠나기 힘든 이들은 재취업을 위한 교육기관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몇 개씩 자격증을 따긴 했지만 마땅히 들어갈 만한 곳은 없었다. 사십 대 후반에서 오십 대 초중반의 나이에 해당하는 중장년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비정규직들은 변화에 대한 적응이 빨랐다. 살아온 삶 자체가 이전과 이동에 적합하게 훈련되어 있었던 데다 희망 퇴직금도 없어 절박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노동자들만 힘든 게 아니었다. 공장 주변에 노동자들의 숙소로 밀집해 있던 원룸촌은 하루아침에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원룸에 투자하거나 소유한 이들은 빈집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고, 그런 점에서는 공장 주변의 상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가 하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도시를 떠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폐원 위기에 몰린 어린이집들도 생겨났다. 위기는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다가왔다.
  “군산이 꺼져 가는 등대 같아요. 우리 애들한테 이 도시가 이렇게 기억되겠죠.”(22쪽).
  한국지엠 군산 공장 실직자 김성우가 했던 말이다.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 어떻게든 꺼져 가는 등대에 다시 불을 밝히려 애쓰는 이들도 있었다. 한국지엠 협력업체인 창원금속공업 이정권 이사는 1차 협력사 지위를 버리고 현대·기아차 2차 협력사로 등록했다. 그러면서 자동차 대체 부품 시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정비사에서 본사의 순정 부품만 쓰도록 하고 있는데, 이런 대기업의 독점체제에 맞서 가격이 싼 대체 부품 생산을 통해 균열 지점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다른 협력사들에게 같이 가자고 했으나 대부분 절망감에 손을 놓았고, 그런 가운데서도 일부 협력사들을 모아 ‘대체 부품 협의회’를 만들었다. 궁극적으로는 국내 자동차뿐만 아니라 외국 자동차 대체 부품 시장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고 아직 뚜렷한 성과가 보이는 건 아니지만 꿈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인 번영중공업 김광중 대표는 인원 감축을 하면서도 최소한의 기술자는 남겨놓았다. 언젠가는 다시 조선소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회복 가능성을 기대하며 숙련된 기술력을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해양 기술을 활용해 풍력 발전기 부문으로 눈을 돌렸다.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를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하는 김광중 대표에게도 희망의 봄은 찾아올 것인가?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정부도 아주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군산을 ‘고용 위기 지역’이자 ‘산업 위기 대응 특별 지역’으로 선포하고 이런저런 지원책을 내놓았다. 실직자를 위해 구직 급여 수급 기간을 늘려주고 생활 안정 자금을 대출해주는가 하면 사업주에게 주는 고용 유지 지원금도 확대했다. 하지만 이 모든 지원이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리란 건 분명했다.

  군산형 일자리 협약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클러스터 내 공동 교섭이다. 부분적인 지역 공동 교섭을 시도했다. 새로운 지역-노동-산업 모델이다. 클러스터로 묶인 기업이라면 서로 다른 기업 노동자라도 시 정부, 지역 주민과 함께 회사와 협상해 같이 노동 조건을 결정한다. (중략) 결과적으로 기업 경영에 노동자, 지역 사회 전반(시민)이 관여한다. 기업을 더는 미국의 본사, 주주만의 것으로 둘 수 없다는 문제 인식을 반영했다. (270~271쪽)

  지금 군산에는 명신이라는 이름의 작은 전기차 공장이 들어와 있다. 새로운 산업으로의 전환을 모토로 군산형 일자리를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그 과정에서 한국지엠의 실패를 복기하며 지역 거버넌스 구축을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삼았다.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생산과 철수를 결정하는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는 한 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 등 노동 조건의 후퇴와 지역 공동체가 무언가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본 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허술함, 여전히 노동자의 경영 참여에 미온적인 기업의 태도 등으로 인해 미래를 낙관하기는 이르다. 무엇보다 전기 자동차를 생산하는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 가장 큰 우려로 다가온다. 실제로 명신은 이제 겨우 시범차 몇 대를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고용 규모도 200명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제조업 도시를 꿈꿨던 군산. 2008년 무렵 절정을 맞은 성장기에는 땅값 상승률이 전국 최고에 이르고 아파트 거래량도 급증했다. 그때 한국지엠에 다니던 정규직들은 너도나도 아파트 한 채씩 마련할 수 있었다. 한창 꿈에 부풀 때는 30만이 채 안 되는 인구를 50만으로 늘릴 수도 있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책 제목처럼 군산은 지금 ‘실직도시’가 되어버린 상태다.
  이게 군산만의 문제일까? 내가 사는 지역은 이대로 죽 괜찮은 걸까? 서울을 제외하면 산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언제든 도시의 운명이 갈릴 수도 있다는 것, 위기는 지금의 감염병이 그랬듯 불시에 닥칠 수 있고 자본에게는 자비심이 없다는 것, 그게 실직도시가 된 군산이 전하는 메시지다. 부평의 한국지엠 공장도 군산처럼 철수하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거니와, 실제로 툭하면 그런 말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는 위기는 재앙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인천은 과연 한국지엠 부평 공장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어떤 대비책을 갖고 있는가. 조만간 도래할 아니 도래하고 있는 새로운 산업체제에 대응할 만한 역량은 갖추고 있는가. 질문지는 이미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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