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문학의 새 구상을 위하여─최원식, 『기억의 연금술』, 창비, 2021.

최원식, 『기억의 연금술』, 창비, 2021.

  문학사를 서술하는 일은 문학연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일이다. 문제는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지만 쉽사리 도전할 엄두는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텍스트를 심도 있게 분석하는 일만도 만만치 않은 내공과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한국 근대문학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통사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단면적인 텍스트 분석을 넘어, “과거 문학 텍스트들에 대한 충분한 섭렵과 비평적 통찰, 연구사적 감각과 독자적 방법론은 물론 자기 당대의 역사철학적 과제와 그 해결방안에 대한 독자적 입장까지 다 아우러져야 하는 총체적 작업”1이다.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이 그것을 필생의 연구과제로 상정할 뿐 쉽게 도전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여기, “황혼”을 맞은 학자가 한국 근대문학의 새 구상을 위한 펼쳐 보이고 있다. 최원식의 『기억의 연금술』이 바로 그것이다.
  일찍이 최원식은 한국 근대문학에 관해 여러 가지 독자적인 의견들을 제시해왔다. 대표적인 제안은 근대문학 기점에 관한 것이다. 최원식은 김윤식‧김현이 제기한 ‘근대’와 근대 기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그들의 저서 『한국문학사』의 성취를 인정하면서도 “근대문학의 기점을 자꾸 끌어올리려는 이 부질없는 시도들을 그만두기를 제안”2했다. 그에 따르면 조선 후기 문학에서 “체제 개량적인 태도”가 감지되지 않기 때문에, “중세적인 것과 반중세적인 것이 갈등하고 투쟁하는 단계이지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여 마침내 중세의 탯줄로부터 해방된 단계의 문학, 즉 근대문학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최원식의 눈으로 보았을 때, “구소설을 모태로 새로운 정신의 방향을 모색했던”3 작가는 이해조를 위시한 신소설 작가들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신소설 작가들은 “대한제국이 멸망함으로써 애국계몽운동이 좌절되었기 때문에”4 더 높은 성취는 이룩하지 못한다. 다만 이전 세대 소설의 계승과 이후 세대 소설의 연결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설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는데, 최원식은 이 지점에서 최초의 근대소설이라 일컬어지는 『무정』의 연애와 개화사상을 신소설의 연장선상으로 파악한다. 그는 “『무정』은 신소설의 아이디얼리즘을 고스란히 계승한 소설”5로 평가하며 춘향전, 『혈의루』, 『장한몽』의 서사구조가 『무정』에 어떤 방식으로 투영되었는지를 분석했다. 즉 그의 눈으로 본 한국 근대문학의 기점은 신소설부터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근대의 기점을 무리하게 올리는 것보다 그것이 육화된 작품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보다 실증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가 이인직의 『혈의루』에서 이광수의 『무정』으로 이어지는 문학사 모델을 채택한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그는 기존 모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인직-이광수 모델에서 탈피해 이해조-염상섭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이인직과 이해조 모두 신소설 작가라는 점에서 어떠한 차이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두 작가 중 누구를 으뜸으로 세우느냐는 큰 차이를 가진다. 이인직과 이광수는 앞의 분석처럼 작품 내적으로도 유사성을 가지고 있지만 작가적 차원에서도 ‘친일’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대한제국의 멸망을 막후에서 조종한 직업적 친일분자”6라는 평가에서 알 수 있듯, 최원식은 이인직을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그러한 인물들을 우리 근대문학의 몸통으로 세울 경우 자칫, 우리 근대문학은 일제에 의해 이식되기만 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렇기에 이인직에서 이해조로 우리 문학의 몸통을 바꾸는 일은 ‘친일’과 이식으로 점철된 근대 초기 문학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우리 문학 내부적 발전을 긍정하는 전환을 요하는 일이다.
  『기억의 연금술』에서 그러한 시선으로 쓰인 글이 한 편 눈에 띄는데 그것은 바로 「이해조의 『산천초목』」이다. 이 글은 이해조의 『산천초목』을 한국 근대 중편의 ‘길목’이라 평하고 있는 글인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인직과 이해조의 생애에 대한 비교도 눈에 띄지만, 소설적인 성취를 비교하고 있는 대목 또한 인상적이다.

  더욱이 그 소설의 모형이 다르다. 『혈의루』(1906)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듯 일본식 표제를 도입한 국초(이인직의 호─인용자)와 『자유종』식의 한자 표제를 선호한 동농(이해조의 호─인용자)은 그 제목 달기부터 달랐거니와, 구원자도 그렇다. 단적으로 『혈의루』에는 고난에 빠진 조선인을 구원하는 일본인이 등장한다. 독자로 하여금 저절로 일본에 우호적인 감정을 지니게끔 설계된 이 화소는 기실 우리 통속 구소설의 상투형인데, 동농 소설에는 구원자가 없다. 구원자의 소멸이 근대소설의 길임을 감안컨대, 구소설을 변형한 이념형의 이야기틀을 구성한 국초에 대해서 시대의 정직한 거울을 지향한, 그래서 소설적 육체성의 골자로 되는 시정성市井性이 풍부한 동농의 소설은 문학성으로도 윗길이다. (최원식, 『기억의 연금술』, 53쪽. 이하 이 책의 인용은 쪽수만 표기함.)

  이해조의 소설이 이인직의 소설보다 문학성으로 확실히 윗길이라는 선언이 인상적인데,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인용한 대목 이후에 이해조를 염상섭과 박태원이 계승했다고 평가한 점도 흥미롭다. 기존의 문학사처럼 이인직-이광수 모델을 채택할 경우 염상섭과 박태원을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광수와는 다른 소설적 성취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해외 문예사조의 영향으로 그들을 설명하곤 했는데, 그러한 접근은 자칫 우리 근대문학의 이식의 틀 아래에만 둘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이해조의 영향 아래 둘 경우 내재적 발전의 틀을 확립할 수 있으며, 그 이후로 나타난 작가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러운 설명이 가능하다. 때문에 이 대목은 내재적 틀에서 우리 문학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눈여겨볼 것은 동아시아적 시각이다. 최원식은 1993년에 발표한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이라는 글에서 동아시아적 담론을 주창한 바 있다. 이 글은 당시 지식인들과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는데, 『기억의 연금술』에서 이러한 시각이 잘 드러난 글은 「식민지문학의 존재론」이다. 이 글은 ‘일제강점기’라는 용어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식민의 시절을 극복한 기본적 이유를 내부에 있다고 분석한 글인데, 이러한 분석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거부하면서도 식민지 시기의 다양한 굴절 지점을 분석하는 데 합당한 틀을 제공한다. 식민지 시기의 “다양한 접촉을 통한 변이 양상들에 대한 곡진한 검토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탈식민을 더욱 촉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어와 일본어 이중어 글쓰기와 그것을 구현한 대표적 작가인 김사량에 대한 언급에도 주목할 만하다. 우선 최원식은 이중어 글쓰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서로 길항하기조차 하던 조선문학의 중국 통로와 일본 통로가 일제의 대륙침략이 강화되던 일제 말에 이르러 연결되는 점이야말로 통렬한 반어다. 코꾸민분가꾸國民文學의 이름으로 대두한 국책문학의 동원령 속에서 언어의 경계 속에 격리되었던 한‧중‧일 문학은 코꾸고國民, 실은 일본어를 매개로 각국 문학의 바깥과 접촉하기에 이른 것이다. 비록 일본제국의 확전에 종속된 틀 안에서일망정 동아시아의 내적 교류가 활발해짐으로써 각국 문학 바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열리기는 열린 터다.(19쪽)

  식민지 문학의 가능성과 일제의 대륙 침략 강화를 검토하면서 동아시아적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그의 동아시아적 사유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접근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저항점으로서, 일제에 의해 이식된 근대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우리 나름대로의 역사 인식과 문학적 사유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김사량, 김태준, 김학철에 대해 언급하며 이들의 글을 “한‧중‧일 세 나라 민중의 생활적 연대를 선취한 동아시아문학의 단서”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그러한 사유를 더욱 짙게 엿볼 수 있다. 최원식의 눈으로 보았을 때 동아시아 문학은 식민지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의 단초이며, 그 단초를 제대로 검토할 때 우리는 이식된 근대 너머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프로문학과 심훈에 대한 검토 또한 일독을 요한다.

  한국 프로문학의 국제적 동시성은 이처럼 수용주체의 과잉한 자발성에 기초한 이식성의 결과였다. 이 점에서 임화가 제출한 이식문학론이라는 명제는 일본 프로문학과의 동반성이 우심했던 카프 시기 프로문학자들의 집단적 경험을 한국 근대문학 전체로 일반화한 과잉수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 근대문학은 일본을 매개로 한 서구 근대문학의 압도적 영향 아래 놓여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토 적응과정에서 일정한 독자성을 보여왔다. (109쪽)

  근대에 직면한 양반 가문의 해체와 그 폐허에서 솟아난 새로운 생명력을 기리는 『직녀성』은 서구주의 또는 근대주의에 함몰된 1930년대 문학의 일반적 경향을 거슬러 구소설과 신소설과 신파소설의 이야기 전통에 기반하되 그 경향과도 독특하게 싸우면서 일궈낸 심훈 서사의 핵심이다. 중세와 근대와 탈근대가 비동시적 동시성으로 병존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착종된 근대성으로 파악해간 심훈을 또 하나의 축으로 삼아 한국 근대소설사의 새로운 계보를 들어올릴 때에야 한국 근대문학사를 서구주의 번역의 계보와 그에 대항해 서사의 귀환을 모색한 계보의 상호침투적 대립 속에 입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가능할 터이니, 근대주의와 탈근대주의의 내적 긴장을 견디며 동아시아서사학의 길을 모색하는 복안의 시각이 관건이다. (208쪽)

  위에 인용한 대목들은 프로문학과 심훈에 대한 최원식 사유의 핵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생각해 인용한 것이다. 서구와 일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조건과 조선이라는 문화적 풍토 안에서 나름의 적응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이 우리 문학이라는 것. 그러니 연구자 또한 그 섬세한 결을 어루만져야 하는 것이 한국 문학 연구의 본령이라는 것이 바로 최원식 연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해조-염상섭을 중심으로 한 문학사도 동아시아적 시각을 앞세운 문학사 서술도 그러한 것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실제 우리 문학에 적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시각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 시각을 지탱하고 있는 기본 정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원식은 임화적 정신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연구자로 보인다. 임화는 우리의 근대문학에 대해 “재래의 여항 소설을 개조한 것이나 결정적으론 외국문학의 수입과 모방의 산물”7이라 평하며 이식성을 강조한 것으로 읽혀왔다. 그러나 기실 그는 그러한 이식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소설에 대해 구소설을 답습한 것이라 평가했다.

  역사적으로 보는 방법만이 정말 현실적이고 사실적일 수 있다.
  여기에서 신소설은 새로운 배경과 새로운 인물군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천편일률로 선인·악인의 유형을 대치하는 구소설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권선징악이란 구소설의 운용법을 별로히 개조하지 않고 사용한 것이다.8

  임화에게 중요한 것은 이식만이 우리 문학의 전부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이식성의 진위를 밝혀 그것에 해당되지 않는 것, 그러니까 “이식성을 탈피하여 진정한 근대문학을 수립하는 것을 당대 문학의 과제”9로 삼는 것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이식된 것과 우리 자생적인 것의 경계를 명확히 나누고 후자에 더 가까운 것을 우리 문학의 몸통 삼아 식민지라는 기이한 형국 속에서도 우리 문학의 자생성을 파악하고자 하며, 더 나아가 식민지의 굴절 지점을 파악하여 동아시아적 문학까지 우리 문학의 외연을 넓히려는 최원식의 것과 닮아 있다. 실제로 최원식은 임화에 대해 “근본적으로는 반전통론자에 속한다”며 비판한 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화가 “신문학의 출현을 해명하는 데 있어서 이식적인 것에 못지않게 전통적인 것의 자장을 예리하게 간파”10하고 있었다고 임화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 논문집에 실린 글들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으로 보아 최원식은 진정한 의미의 ‘임화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임화가 자기 시대의 고민을 안고 문학사를 썼던 것처럼, 최원식이 우리 시대의 고민을 안고 문학사를 써내려 갈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문학사 작업을 위한 예비적 점검”을 마친 후 그 문학사를 읽을 수 있을 터인데,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주석

  1. 김명인, 「문학사 서술은 불가능한가」, 『문학적 근대의 자의식』, 소명출판, 2016, 79쪽.
  2. 최원식, 「한국 문학의 근대성을 다시 생각한다」, 『민족문학과 근대성』, 문학과지성사, 1995, 43쪽.
  3. 최원식, 「이해조 연구」, 『한국근대소설사론』, 창비, 1986, 15쪽.
  4. 위의 책, 10쪽.
  5. 최원식, 「20년대 리얼리즘」, 『민족문학의 논리』, 창작과비평, 1982, 124쪽.
  6. 최원식, 「애국계몽기의 친일문학」, 『한국근대소설사론』, 창비, 1986, 286쪽
  7. 임화, 「개설 신문학사」, 『임화문학예술 전집2 문학사』, 소명출판, 2009, 177쪽.
  8. 위의 책, 175쪽.
  9. 신승엽, 「이식과 창조의 변증법」, 『창작과비평』, 1991년 가을호.
  10. 최원식, 「이식론과 내재적 발전론을 넘어서」, 『한국근대문학을 찾아서』, 인하대학교출반부, 1999, 3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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