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봉산─아기장수 우투리 편 외 1편

 
 

  수봉산1
  ─아기장수 우투리 편

 

  풀씨의 부고가 떴다
  집집마다 달항아리 조등이 켜졌다

  전깃줄은 어벤져스의 전설을 실어 나르기 바쁘고
  학교 축대 쪽 개나리 실종 소식이 대자보에 실릴 즈음
  마당에 오동나무를 심어놓고 입을 다문 빈집들이 생겼다

  볶은 콩알 튀듯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잔별만 석 되
  달빛만 석 되
  바람만 석 되
  가파른 달동네는 새로 점지된 별자리

  골목이 골목을 낳고
  전신주와 전신주가 문패를 잇고
  때 지난 성탄절 트리에 집들이 켜졌다

  날개 달린 아기장수의 현신을 쉬쉬하는 골목
  작골연립 쪽에서 큰 대로로 이어지는 계단을 경계로
  가오가오 날개 달린 소문이 난립해도 비밀은 새어 나가지 않는다

  연두의 힘 초록의 연대 풀씨의 잠행은
  휘잉 휘이잉 골목을 타고
  날렵하게 휘돌아 구석구석 달린다

  빽빽하게 적힌 구전들이 불어나던 골목이
  목청껏 외치기 시작했다

  씨앗은 날개다 불이다
  불씨 하나가 당신을 피우는 날이 오고 있다
 
 

  감잎을 쓸다가

 

  지는 일들이 저녁으로 몰려왔다

  하지 못했던 말들이 저물고
  가지 못한 곳을 기억하는 발소리들이
  서성대는 저녁

  감나무는 마당을 나와 어디 멀리 가고 싶어
  감잎을 지우고 감을 내려놓는다

  눈물이 이렇게 붉을 수도 있다니
  진해서 너를 먹여 살리고 싶다는 유언 같다

  쏟아지는 골목으로
  잎사귀를 피우는 일은 신발 한 켤레 짓는 일

  몇 차례 새가 다녀갔다

  한 해 걸러 한 해 뒷걸음질로
  두 해 걸러 서너 해 앞서는 걸음으로

  며칠 더 불을 켜두기로 한다

  밤이 뒤꿈치를 들었다
  감잎 끌리는 소리가 났다
  
  

금희

강원도 영월 출생. 2015년 『예술가』로 등단. 시집 『미안하다 산세베리아』 『고양이시금치라고 불러』, 공저 『너는 의문부호다』 등이 있음.

  
  

〈주석〉

  1. 아기장수 우투리 설화를 모티브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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