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특선 영화 외 1편

 
 

새해 특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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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이 돌아갔다
  정화는 지루한 얼굴로
  리모컨 다음 채널 버튼만 누른다

  그러지 말걸
  정화는 생각했다
  처음으로 혼자 보내는 새해라 기대를 잔뜩 했던 건데
  이럴 줄 알았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정화는 긴 소파에 털썩 몸을 뉘여본다
  괜한 심술에 팔을 이리저리 흔든다
  담요가 스르르
  바닥으로 떨어진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예인들의 으리으리한 집을 구경하고 있다
  걸어도 걸어도 거실이 끝나지 않는 집

  정화는 거실도 방도 없이
  그렇게 지내고 있다

  정화는 춤추는 선인장 인형한테 괜히 시비를 건다
  말을 하면 그대로 따라 하는 인형이라는데
  말을 걸어봐도 따라 하지 않는다

  정화는 또 이유 없이 샐쭉해져서는
  선인장 인형을 딴 데 치워버리려다
  마땅히 둘 데도 없어 그냥 그대로 냅둔다

  정화는 텔레비전을 보며
  연예인들이 웃으면 따라 웃고
  연예인들이 탄식하면 따라서 탄식한다

  그러고 나면 송구영신을 마친 가족들이 돌아온다
  식탁 앞에 앉아 늦은 식사를 한다

  집 안에는 오로지 조용히 밥 먹는 소리
  그럼 정화도 텔레비전을 끈다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다시 집어 소파 위에 올려놓는다
  정화는 방으로 돌아간다
 
 

나와 kim이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되기까지

 

  눈이 소복이 쌓인 날이면
  kim은 얇은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눈밭을 걷는 그런 사람이다
  하루는 kim에게
  왜 눈 오는 날 굳이 그런 얇은 운동화를 신느냐 물었다
  kim은 신발이 젖어 발이 축축해지는 게 좋다고 했다

  여름철
  소파가 편안한 카페에서 우리는 눕듯이 앉아 차가운 커피를 마셨다
  시답잖은 이야기 뒤에 있는 건 시답잖음
  웃음이라는 게 말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뭐 별거 없습니다

  하하하 호호호
  웃다 보면
  칼국숫집에 도착해 있다
  이 집 칼국수가 묵직하면서도 깔끔하니 시원해
  kim의 말

  kim은 비 맞는 것도 좋아했다
  창문을 열어 비가 오는 걸 확인할 때면 그는 얼굴색부터 바뀌었다
  그것도 너무 많이 맞으면 힘들어했지만

  나와 kim은 만나서 자주 걸었다
  불편한 신발을 신고 만나는 날에는 발이 정말 깨질 것 같았다
  kim은 불편한 기색도 없이 팔랑팔랑 잘도 다닌다

  어떤 날에는 kim과 길게 연락이 되지 않기도 한다
  그렇게 며칠, 몇 달을 보지 않고 지낸다
  그러다 kim과 다시 만날 때면 우리는 방금 전까지도 같이 있었던 사람들처럼 편하다
  밖에 눈 오나봐
  나 오늘 어그 신고 왔는데 어떡하지?

  그래서 우리는 지금 눈밭을 걸으려고 컨버스 운동화를 사러 가는 길이다
  그날도 나와 kim은 엄청 많이 걸었고 눈밭에 발이 푹푹 빠졌다
  
  

김누누

1991년 부천 출생. 2019년 『베개』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착각물』 『일요일은 쉽니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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