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외 1편

 
 

  복제

 

  죽은 개를 너무 사랑했던 사람이 복제견을 데리고 왔다

  은행나무 열매는 여름이 끝나자마자 미리 수거되었다

  모두의 밑창이 깨끗하다

  나는
  벼락이 치면
  거품 없이 맥주 따르는 일을 반복해서 연습한다

  노랗게 채워진

  공원

  정갈하게 두 동강 난 은행나무를 보면서
  유리컵을 기울인다

  익숙한 풍경을 한 번에 들이켠다

  익숙한 개를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이제부터 오래 다툴 것이다
  오래 다투다 긴 시간 참은 오줌을 함께 눌 것이다
 
 

  무릎

 

  종료된 여름 속에
  당신 아직 살아 있습니다. 까만 호수에서 오리가 알을 낳던 오후. 빛을 집어삼키던 호수. 우리 두 발을 나란히 붙이고 서서 그걸 지켜보던 날. 당신이 물속에 빨려들어갈까 나는 무서웠습니다. 하얀 오리알이 입 벌린 호수 아래로 풍덩 잠겨들어가는 걸 보면서. 당신 웃었습니까? 오리들이 꿈속의 나를 찾아와 발목을 깨뭅니다. 발목이 서걱서걱 잘려 나갈 때까지 나는 잠에서 깨지 않아요. 아주 예전부터 그러고 싶었으니까요.

  여름과 오리, 그리고 검정 그러나 빛에 대해 포기할 수 없지만. 당신에게 진짜 겨울을 주고 싶어 발이 없는 내가 무릎으로 기어서 당신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집은 이곳에서 저곳이 되고 평평하게 있다가 반으로 접히며 높은 산에서 굴러떨어져 심해로 처박히는 집. 당신 아직도 그런 곳에 사세요?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나는 내 몫의 마음만 아프려고 합니다. 당신 이사를 가세요. 당신 정착하세요. 당신은 정착하라는 말을 들으면 풀이 죽습니다. 이해합니다. 나는 갈린 무릎을 호호 불어가며 계속 갑니다.

  십 년 동안 택시를 타고 함께 떠돌아다니던 날들 기억나요?

  우리 십 년 치의 택시비를 낼 수 없어서 뒷좌석에 앉아 손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이제 정말 내려야 하는데 저 미터기를 멈춰야 하는데. 우리가 지나쳐 온 십 년의 풍경들 빈 차들 말끔해진 비포장도로들. 그 빚더미들 전부 눈에 새겨놓았어요. 택시 기사가 백미러로 우리를 훔쳐봤었죠. 그냥 지금처럼 셋이서 살면 안 될까요. 그렇게 청했지만. 트렁크에는 우리가 연체한 계절들이 쌓여 있었어요. 당신에겐 항상 얼어버린 발가락 냄새가 났습니다. 나에게도 그 냄새 옮았을까요.

  이제 당신은 쌓인 눈을 수영장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름의 종착지에서 일한다 믿고 있어요. 내가 도착하면 당신은 십 년을 다 잊은 얼굴로 반길 거예요. 당신은 나를 내려다보지 않기 위해 파란 수영장 바닥에 무릎을 꿇습니다. 바닥이 차갑지 않나요⋯⋯ 내가 말하면 물이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튜브처럼 우리 무릎이 떠올라요.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당신이 발장구를 칩니다. 지금이에요. 오리 떼가 당신 발을 낚아채 멀리 하수구 구멍으로 도망갑니다. 어때요 하나도 아프지 않죠? 너무 차가워서.
  
  

이실비

1995년 강원 속초 출생. 202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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