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쯤에서 끝낸 모루

  

  기억은 믿을 게 못 된다. 모든 게 불확실하다.
  중간고사 기간이었는지, 중간고사가 막 끝난 뒤였는지 그것부터 가물가물하다. 그게 1학기였는지 2학기였는지 그것도 아리송하다. 중간고사, 그 어름이었던 건 분명하다. 새벽 2시쯤이었을까, 모루는 읽던 책을 덮었다. 중간고사와 상관없는 대하소설이었다. 그걸 왜 하필 그때 읽게 됐는지 그 또한 기억에 없다. 생생히 남아 있는 건 뛰쳐나가고 싶다는 욕망뿐이었다.
  그 새벽 모루는 자취방 옥상에 올랐다. 단층의 옥상이었으나 그곳에선 밤의 모든 걸 볼 수 있었다. 동네로 들어오는 보안등도, 저 멀리 대학 본관과 연구동 쪽의 희미한 불빛도 볼 수 있었다. 그거면 밤의 풍경을 제대로 보는 거였다. 그러나 모루가 보려는 밤의 세계는 그보다 먼 데 있었다. 대학 건물 뒤로 보이는 산이었다. 야트막한 산은 밤을 견디고 있었다. 능선을 따라 달리는 사람들의 거친 발소리가 두두두두 들려오는 듯했다. 모루는 몸을 떨었다. 밤기운 탓이 아니었다. 방금 덮고 나온 책 때문이었다.
  오직 하나에 꽂혔기에 이튿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모루는 가벼운 배낭을 멘 채 자취방을 나섰다. 모루는 호남선 완행열차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오랫동안 느슨한 풍경들을 보냈다. 해는 천안을 지나면서 꺾였다. 서대전에 닿았을 때는 짙은 밤이 내려와 있었다. 승객들이 우르르 열차 밖으로 빠져나갔다. 모루는 그 꼴을 열차 안에서 지켜봤다. 플랫폼은 각기우동을 먹겠다는 자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그들은 뜨거운 김을 불어가며 불과 이삼 분 만에 우동 한 그릇을 비웠다. 기적 소리와 함께 열차는 다시 밤으로 들어갔다. 모루가 내린 곳은 남원이었다. 그냥 대합실에서 밤을 보냈는지, 근처에 있는 싸구려 독서실이라도 찾아들었는지 그 또한 기억에 없다. 그리고 어느새 지리산 뱀사골로 가는 초입이었다. 달궁에 닿은 거였다.
  달궁의 점방에서 모루는 웬만하면 하룻밤 묵어가라는 주인 여자의 근심을 들었다. 서둘러도 산장에 닿기가 쉽지 않다, 산중에 어둠 깔리면 조난당하기 십상이다, 그게 근심의 이유였다. 그녀가 모루의 배낭을 당겼으나 모루는 피가 끓었기에 그냥 점방을 나섰다.
  하지만 뱀사골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해 떨어지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골짜기는 어둑시근했다. 몇 걸음 못 가서 돌부리에 걸리고 낙엽에 미끄러지고는 했다. 오늘 중으로 노고단 산장에 닿기란 묘연했다. 이미 멀리 왔기에 도로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모루는 미끄러진 자리에서 아직 엄두를 내며 위를 올려다봤다. 애저녁의 어둑함이 거기 있을 뿐이었다. 골바람이 흔들어대는 막막한 숲과 뒹구는 낙엽 소리가 귓구멍 속으로 들어올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낙엽이었다. 그해 뱀사골은 진달래꽃이나 철쭉 대신 낙엽이었다. 그러니 가을이었다. 1학기가 아니라 2학기 중간고사 어름인 거였다.
  어둠이 물컹물컹 내려오고 있었다. 각오한 바였으나 결과는 점점 끔찍한 객기로 변하고 있었다. 후회나 절망은 별개였다. 모루는 간단없이 조여오는 어둠의 위력에 짓눌렸다. 밀려드는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그 끝에 낙엽 더미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사위는 칠흑이었다. 싸하고 서늘한 바람 소리만 밀려드는가 싶더니 오싹 소름이 돋았다. 빨치산 원혼들의 시뻘건 눈길이 사방에서 쏘아보고 있었다. 모루는 겁에 질렸다. 배낭에서 반쪽짜리 군용 모포를 꺼내 몸을 감쌌다. 그래 봤자였다. 공포는 등 뒤를 타고 거침없이 밀려들었다. 모루는 낙엽 속으로 기어들어가 반듯하게 누워 눈만 내놓았다. 그제야 공포가 좀 가라앉는가 싶더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빨치산의 원혼을 달랜답시고 달궁의 점방에선 막걸리 세 통을 샀다. 비트(비밀 아지트) 비슷한 거라도 발견하면 막걸리 뿌리고 제를 올릴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도대체 이게 뭔가? 덜덜 떠는 새가슴으로 박태영의 흔적을 좇기는커녕 숨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다고 보았다. 이병주의 일곱 권짜리 대하소설 『지리산』을 읽는 동안 얼마나 가슴 뛰었나? 토벌대에 쫓긴 빨치산들은 그때마다 모루의 가슴속으로 뛰어들었다. 모루는 가슴을 졸였고 심장이 터질 듯해 숨을 몰아쉬고는 했다. 주인공 박태영은 자수하면 모든 걸 불문에 붙이겠다는 중학 동창 주영중의 권유를 뿌리쳤다. 대신 자신이 이끌던 대원 여덟 명만 귀순시켰다. 그는 토벌대한테 사살당하는 길을 택했다.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려는 그 도저함이야말로 『지리산』의 백미였다. 모루는 『지리산』의 주인공 박태영을 역사적 인물로 끌어냈다. 그랬기에 그 뒤안길을 더듬어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낙엽 밖으로 반쯤 몸을 빼낸 모루는 배낭을 열고 막걸리 한 통을 꺼냈다. 그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조심스럽게 술을 뿌렸다. 그리고 남은 반 통을 천천히 마셨다.
  한 통을 더 꺼내 마신 건 언제였나? 술기운으로 두려움을 떨쳐내고 잠들 수는 있었나? 어쨌든 낙엽 속은 뜻밖에 푸근했다. 햇살이 비쳐 들고서야 잠에서 깬 모루는 주변을 살피면서 낙엽 밖으로 기어 나왔다. 지난밤에는 못 본 것들이 그 아침엔 잘도 보였다. 숲은 정신없이 붉었다. 뱀사골은 절정의 단풍철인 모양이었다. 모루는 계곡물을 찾아 낯을 씻고 붉디붉은 숲을 헤쳐가며 어제 멈춘 길을 이어나갔다. 무섭게 어둠이 내리던 지난밤이라면 모를까 오늘 아침은 급할 게 없었다. 모루는 쉬다 걷기를 반복했다. 그러니 장쾌한 평원이 펼쳐진 정상은 한낮이 되어서야 밟을 수 있었다. 세상에나! 산 정상에 이런 평원이! 세석평전이었다. 왜 노고단이 아니라 세석평전이란 말인가? 그런 의문은 그냥 즐거운 비명이었다.
  모루는 그곳에서 만난 두 명의 등산객과 어울려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하산을 준비했다. 빨치산의 비트를 기어이 찾아보겠다면 백무동 골짜기로 내려가는 게 제격이었다. 모루는 백무동 가는 길이 눈에 밟혔으나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산중에서 다시 두려움에 떠는 처참한 밤을 보낼 자신이 없었다. 그는 하산길로 피아골을 잡았다. 한 통 남은 막걸리를 뿌리고 제를 올린 곳도 피아골 중턱이었다.

  모루는 오늘 아침에도 봤다. 안 보고 싶었다. 추접스럽기 짝이 없는 것들, 안 보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도 봤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그걸 꼭 봐야 하는 게 고통스럽고 역겹다. 안 보고는 못 배긴다. 보고 나면 속이 끓어오른다.
  모루는 오늘 아침에도 속이 끓어올랐다. 삼천리순댓국집 문을 열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결국 그렇게 된다. 모루는 삼천리순댓국집 홀을 청소한다. 모루는 삼천리순댓국집 화장실을 청소한다. 모루는 삼천리순댓국집 주차장을 청소한다. 주차장은 승용차 두 대를 댈 수 있다. 오늘 주차장은 발길 하고 싶지 않다. 지린내가 등천하는 데다 역겨운 걸쭉한 토사물까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모루는 웩웩 구역질부터 했다. 모루는 구역질을 하면서 빗자루와 삽을 들었다. 걸쭉한 토사물을 먼저 치웠다. 모루는 화장실에서 물을 퍼 날랐다. 토악질한 곳, 여태 오줌 지도가 마르지 않은 곳을 향해 물을 퍼부었다. 청소를 끝낸 모루는 안 봐야 하지만 분함과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모루는 홀 계산대 옆에 있는 CCTV를 돌려봤다. 주차장 안쪽에 쌓아둔 감자 상자가 계속 사라지자 설치해둔 CCTV였다. 하지만 근래엔 주차장 방뇨범을 확인하는 게 다였다.
  오늘은 어떤 자지들인가. 술 취해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하는 놈의 자지인가, 길 가던 정신 멀쩡한 놈의 자지인가, 슬금슬금 주위를 살피면서 기어들어온 놈의 자지인가. 물론 거개가 술 취해 비틀거리는 놈들의 자지였다. 바지를 겨우 반쯤 내린 채 하염없이 주차장 담벼락을 적셔대는 자지, 서 있기조차 힘든지 쭈그려 앉은 채로 실개천을 내고 있는 자지, 방뇨한 지 10분은 지났는데도 아직도 탈탈 털고 있는 자지, 남산만 한 배 밑에 깔려 숨조차 제대로 쉬었을까 싶은 꽈리고추만 한 자지, 심지어 여성용 팬티로 감싸기엔 지나치게 덜렁거리는 여성용 팬티에서 막 꺼낸 자지,
  모루는 그런 자지들을 봤다. 모루는 다큐멘터리 감독을 해볼까, 잠깐 그런 생각을 해봤다. 제목은 〈방뇨하는 일백 자지〉, 일백 자지를 모아 자지당 1분씩 할애하면 러닝타임 100분짜리 영화는 떼놓은 당상이다. 10만 관객이 동원되면 주차장 한쪽에서 바지 내리는 자지들은 사라지지 않을까. 욕스럽고 쪽팔리고 홧홧거리고, 그럴 테니까. 모루는 입때껏 본 자지들만 해도 삼십 자지는 넘을 거라고 어림잡아보았다.
  하지만 실제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 건 근본 해결책도 아니었다. 모루가 한 일은 따로 있었다. 주차장 담벼락에 가위를 서너 개 그려놨다는 게 아니다. 방뇨범한테 복수하겠다는 어떤 문구를 써놨다는 것도 아니다. 두어 차례 지하 노래방 사장과 2층 와인바 사장을 만나 따진 게 모루가 한 일이었다. 주차장 같이 쓰지 않나, 더군다나 토악질하고 오줌 싸질러대는 인간들 거개가 노래방이나 와인바 손님들이다, 문 닫는 시간에 물이라도 좀 뿌리고 퇴근해준다면 그러구러 좋겠다, 그게 모루가 한 말이었다.
  미안하다고만 했어도 화가 좀 누그러질 텐데 노래방 사장과 와인바 사장은 그러지 않았다. 매달 관리비 내지 않나, 관리비 받는 건물주가 해결할 일이니 건물주한테 따지는 게 옳다, 두 번이나 그렇게 말했다.
  이런 젠장, 그걸 누가 모르나? 강약이 부동이니 그게 문제지. 밉보였다가 재계약 때 해코지라도 당하면 누구 손핸가? 그러니 아무도 건물주 목에 방울 달 엄두를 못 낸다는 것, 그게 문제였다. 덕분에 현관 앞과 주차장 청소는 결국 여전히 모루의 몫이었다.
  모루의 명언은 그래서 나왔다. 번뜩이는 감각으로 느닷없이 창작해냈다는 게 아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명언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다. 아니 여러가지연구소장의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뭐란 말인가’에 착안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일주일이 멀다 하고 물을 쏟아붓다 보면 그렇게 될 것은 그렇게 되는 법이었다. 모루는 오늘 아침에도 물을 쏟아부으면서 자신이 만든 명언을 중얼거렸다. ‘일찍 일어나지 말자.’ ‘일찍 일어나지 말자.’
  그런 처지인데도 모루는 삼천리순댓국집을 떠날 수 없었다. 떠나고 싶었으나 떠날 수 없었다. 떠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지만, 그 말은 새털처럼 가볍다.
  원래 모루는 순댓국집을 안 열고 싶었다. 모루가 하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그동안 모루는 몇 군데 홍보실을 전전했다. 이제 모루는 떠날 나이가 되었다. 지면 홍보에만 익숙했기에 디지털 세대를 감당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비정하게도 떠밀릴 때가 온 거였다. 모루는 떠밀리기 전에 떠나고 싶었다. 자신의 글을 쓰고 싶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것, 그게 모루의 마지막 꿈이었다. 결심이 섰기에 모루는 올해까지만 디룩전자 홍보실을 다닐 거라고 선언했다. 목단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되받아쳤다. 뭐 먹고 살 거냐는 말도 했다. 그런데도 모루는 쫓겨날 때가 임박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라고만 말했다. 그러니 된다 안 된다, 타협점이 안 보이는 지루한 싸움이 한동안 이어졌다.
  목단은, 등단, 등단, 그걸 누가 말했느냐고 희롱하듯 말을 비틀었다.
  열댓 번은 떨어졌을걸. 잡지도 안 돼, 신춘문예도 안 돼, 늘 안 되기만 했잖아?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었기에 모루는 가슴이 아렸다.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모든 걸 걸고 써보겠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걸 걸어? 제발 아무것도 걸지 마. 당신은 소설적 재능이 없는 거야.
  목단은 차갑게 웃었고 모루는 다시 가슴이 아렸다. 소설은 끈기라고, 재능은 둘째라고, 그렇게 되받아치고 싶었으나 모루는 참았다. 참지 않으면 뭘 어쩌겠는가?
  모루는 그동안 써온 단편만 해도 열 편이 넘었다. 번번이 응모했으나 번번이 낙선했다. 최종심까지 올랐다가 아쉽게 떨어진 적도 두 번 있었다. 어떤 심사평은 모루의 약을 한껏 올려놓았다. 주제를 다루는 노련한 솜씨에 손이 갈 뻔했다. 그러나 결국 패기 넘치는 작품을 뽑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신인은 원래 그래야 하니까.
  염병하네, 모루답지 않은 욕설이 절로 나왔다. 미흡한 주제 의식, 덜 여문 문장력, 그런 걸 문제 삼더니 이젠 또 원숙한 솜씨를 문제 삼는단 말인가? 어느 장단에 춤추란 말인가?
  모루는 쓰라렸다. 모루는 쓰라린 만큼 오기도 생겼다. 소설이 무슨 목숨값이라도 되는 양 날이 갈수록 소설에 모든 걸 걸고 싶었다.
  그 같은 모루의 결심과 상관없이, 아니 상관있었다. 목단은 싹수 노란 소설에 꽂힌 모루의 미래가 미덥지 않았다. 그러니 삶의 방편을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목단은 고양시 원당에 있는 순댓국집을 찾아갔다. 목단은 그곳 주방에서 6개월 넘도록 일을 배웠다.
  삼천리순댓국집은 그 결과물이다. 대출만 해도 6천만 원이었다. 가게 월세는 330만 원이고 일하는 사람은 셋을 두었다. 홀에서 일하는 사람 둘에 주방보조가 한 명이었다. 주방장 겸 전체 살림을 총괄하는 이는 목단이었다. 모루가 보기엔 매달 3천만 원, 그 이상 매출을 올린대도 운영이 쉽잖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 망하는 지름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삼천리순댓국집, 그게 곧 망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목단한테는 노후를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장편소설은 퇴직 전에 얼개를 잡아놓았다. 모루는 독하지 못했다. 모루는 독하게 마음먹었다. 정히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책상 앞에 앉았다. 생각 같아선 퇴직 기념으로 남해안이라도 돌다 오고 싶었다. 그건 염치없는 짓이었다. 순댓국집 주방에서 땀으로 범벅이 돼 있을 목단한테 보여줄 행동은 아니었다. 자신의 소설을 믿고 순댓국집 주방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모루가 생각하는 부부의 의리였다. 모루는 책상 앞에 앉는 걸 상책으로 여겼다.
  모루는 한동안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진도는커녕 자판 연습만 열나게 하는 꼴이었다.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탔다. 그걸 홀짝거린다고 해서 되는 게 안 될 리 없고 안 되는 게 될 리 없었다. 집 뒤로 연결된 공원을 산책하기도 했다. 메모할 수첩과 볼펜을 넣고 나서지만 그래 봤자였다. 말 그대로 바람이나 쐬고 돌아오는 게 다반사였다. 돌파구를 찾는답시고 소설을 집어 들고 그걸 읽느라 하루를 허비하고, 뭐 그런 식으로 시간을 죽였다. 자판 두드리느라 하루, 책 읽느라 하루, 한심하기 짝이 없는 하루, 그렇게 날을 죽이는 동안 모루는 야금야금 순댓국집에 발을 들여놓는 자가 되었다.
  모루가 이유 없이 순댓국집에 발을 들여놓은 건 아니었다. 모루는 순댓국집에 결코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야금야금 발을 들여놓았다. 목단이 이유 없이 모루를 불러낸 것도 아니었다. 목단 또한 모루를 불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야금야금 불러냈다. 이유는 가지가지였다. 홀 직원의 할머니가 별세하셨대, 사흘 동안 홀 서빙 부탁해, 그게 목단이 모루를 불러낸 이유였다. 금요일 오후 2시부터 위생교육이야, 대신 가도 된대, 그게 목단이 모루를 불러낸 이유였다. 주방보조가 기한이 차서 중국 들어간대, 보름 있다가 다시 나온대, 보름 동안만 주방보조 알지? 그게 목단이 모루를 불러낸 이유였다. 자신 말고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길로 들어선 자는 그렇게 시달리는 법이었다. 자신 말고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창작자는 그렇게 시달리는 법이었다.
  그래도 불려 나가지 말았어야 했나? 모질어야 했으나 모루는 모질지 못했다. 결과는 순댓국집 홀 붙박이였다. 그렇게 될 것은 결국 그렇게 되는 거였다.
  목단은 모루에게 순댓국집 대출금을 상기시켰다. 330만 원의 월세를 상기시켰다. 주방보조를 포함한 세 사람의 인건비를 상기시켰다. 소설 붙잡고 있어봐야 떡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기도 꺾어놓았다. 그런즉 다음 얘기는 들을 것도, 볼 것도 없었다. 홀 직원 한 명만 줄여도 숨통이 트이겠다. 진종일 매달리라는 건 아니다, 한꺼번에 손님 몰리는 점심시간만 반짝 도와주면 된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목단이 밝힌 저의였다. 모루는, 아니 되옵니다, 이러자고 홍보 일을 관둔 게 아니올시다, 단호히 고개를 저어야 했다. 그러나 모루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고개를 젓고 싶었으나 좌우로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얼떨결에, 하, 하지 뭐, 아래위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루는 삼천리순댓국집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으나 발을 들여놓았다. 모루는 홀 붙박이가 되었다. 아침 9시경 모루는 목단과 함께 순댓국집 문을 열었다. 목단이 주방으로 들어가면 모루는 홀에서 빗자루를 들었다. 모루는 빗자루질을 시작했다. 봉걸레로 바닥을 닦고 나면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10시에 출근하는 홀 담당 카는 삶은 숟가락을 정리하고 열다섯 개의 테이블을 닦았다. 카는 주방보조와 함께 밥을 푸고, 찬 통에 깍두기와 김치도 채웠다. 10시 45분, 애매한 시간에 밥을 먹고 나면 그때부터 손님을 받았다. 단내 나는 점심시간이었다. 대략 두 시간 동안 그랬다.
  1시 반이나 2시쯤 되면 드물게 손님이 드나들었다. 모루가 순댓국집을 나서는 건 그때쯤이었다. 집으로 가거나 멀리 어딘가로 갈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목단은 걱정 말고 집에 가라고 했으나 말만 그랬다. 하물며 경동시장에서 장 봐오는 일도, 종로세무서에서 부가세 신고하는 일도 모루의 몫이었다. 그런데다 종잡을 수 없는 게 저녁 시간이었다. 이러다가 폐업하겠네 싶다가도 어떤 날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동시다발로 곱창전골을 찾고, 라면 사리 추가에, 순대 한 접시를 찾았다. 빈대떡에 파전을 찾고, 소주에 맥주에 막걸리를 찾을 때면 등짝에서 불났다. 영업시간은 주방보조와 홀 담당 카가 퇴근하는 밤 10시까지였다. 말만 10시까지였다. 모루와 목단은 직원들이 퇴근한 순댓국집에서 버틸 때까지 버텼다. 술손님 비위 맞추다 보면 고무줄도 그런 고무줄이 없었다. 11시 넘어서 문 닫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러니 가기는 어딜 간단 말인가.
  밖으로 나온 모루는 저녁 시간 전에 돌아올 생각이었다. 모루는 삼천리순댓국집에서 가까운 조용한 곳을 찾아 전전했다. 카페도 가봤고 빵집 2층도 가봤다. 도서관 바스락실도 가봤고 도서관 컴퓨터실도 가봤다. 장편은 그렇게 물고 늘어졌다. 그러니 되기는 뭐가 되겠는가. 어떤 작가는 불과 6개월 만에 장편을 끝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떤 작가의 너스레를 모루는 조간신문에서 읽었다. 나는 정말 능력이 안 돼, 장편을 물고 늘어진다는 건 억지야, 진도가 안 나갈 때마다 모루는 6개월 만에 장편을 끝냈다는 어떤 작가의 너스레를 떠올렸다. 그런데도 모루는 쓰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늘 가다 서기를 반복했기에 작업은 만만디였다. 장편은 결국 1년 몇 개월 만에야 끝낼 수 있었다. 6개월 만에 장편을 끝냈다는 어떤 작가와는 비할 바 아니었다. 그러나 뭐 어쨌든 끝냈다는 것, 중요한 건 드디어 끝냈다는 거였다. 이제 희열을 만끽할 일만 남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모루는 그럴 수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모루는 예정된 길이 없었다. 작가의 경력을 우선하는 출판사는 원고를 들고 갈 곳이 못 되었다. 가봐야 등단도 못한 자의 작품을 거들떠나 보겠는가. 모루로선 장편 문학상에 응모하는 길 말고는 달리 생각할 게 없었다. 그건 희망 섞인 긴장과 무료를 감내해야 하는 길이었다. 두려운 길이었다. 당선작을 발표할 즈음이면 희망과 불안이 뒤섞였다. 하물며 두어 달 만에 끝낸 단편이 아니라 해를 한참 넘긴 장편 아닌가. 그 지난한 여정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낙선의 절망을 누군들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렇더라도 달리 방법이 없으니 뭐 어쩌겠는가.
  모루는 장편을 끝냈다는 말을 누구한테도 하지 않았다. 모루는 문학상에 응모했다는 말도 누구한테 하지 않았다. 침묵이 나았다. 결과적으로 늘 침묵이 나았다. 처음 몇 번은 목단도 기대에 차서 들뜬 적 있었다. 낙선이 반복되고 나자 목단은 기대를 접었다. 뿐만 아니라 목단은, 능력이 안 되면 접어, 그게 순리대로 사는 거야, 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힘내, 인생은 장편이야, 그런 말을 해줬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들어본 적 없으니 알 턱이 없었다. 여하튼 자신 말고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길이란 원래 그런 거였다. 모루는 그 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 어름이었다. 아직은 2월이었다. 당선작 발표까지는 한 달 보름 정도 남았다. 순댓국집에 매여 살다 보니 시간은 잘 갔다. 장편을 끝냈다는 심적 여유도 있긴 있었다. 점심 장사 끝나기 바쁘게 장을 봐오라고 해도, 저녁 술손님이 밤 11시까지 뭉그적거려도 모루는 조바심치지 않았다.
  체증이 없지는 않았다. 당선의 꿈을 부풀릴수록 불안은 가중되었다. 낙선하면 삼천리순댓국집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당선한들 쉽게 벗어나겠냐마는 낙선하면 삼천리순댓국집을 벗어날 길이 아주 없었다. 낙선하면 묵혀둔 소설들의 앞날도 기약할 수 없었다. 그게 불안의 원인이자 근심의 심연이었다. 그런데도 다음 소설을 준비하는 것, 모루는 그게 옳다고 보았다. 소설 말고는 순댓국집 붙박이를 벗어날 길이 없다고 보았다. 모루는 삶이 끝나는 데서 꽃피운 은유의 세계와 관련한 책들을 골라 읽었다. 한국인의 죽음 의식儀式, 그게 모루가 쓰려는 다음 소설의 주제였다. 하지만 앞에 있는 똥차를 치우기 전엔 전진하는 게 쉬울 턱이 없었다. 당선 여부, 지금 중요한 건 그거였다. 공교롭게도 감염병이 돌기 시작한 건 그 무렵부터였다.
  손님은 써레질한 듯 하루아침에 끊겼다. 점심 손님이 두 시간가량 드나들던 때가 언제였나 싶었다. 전에는 예닐곱 명씩 짝을 지어 드나드는 경우도 꽤 있었다. 시방은 짝이랄 것도 없이 한두 명씩 드나드는 게 고작이었다. 저녁 시간은 더했다. 술손님은 씨가 말랐다. 국밥 두 그릇 팔고 땡 치는 날도 드물지 않았다. 좀처럼 홀에 나와 있지 않던 목단도 홀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렸다. 주방보조와 홀 담당 카는 무료한 시간을 휴대전화로 때웠다. 그렇듯 손님이 끊겼는데도 모루는 저녁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돌아왔다. 당연히 책이나 보지 뭐 하러 왔느냐는 목단의 핀잔을 들었다. 모루는 한쪽 구석에 앉아 내일부터는 정말 오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도 어디 그럴 수 있나? 다음 날 저녁이면 혹시 몰라 또다시 순댓국집으로 돌아오는 자가 모루였다. 2월의 마지막 날까지 모루는 그랬다.
  3월은 더욱 가혹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주방보조였다. 민망해서 더는 못 있겠다고, 상황이 호전되면 그때 다시 불러달라고 말했다. 홀 담당 카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만 더 기다려보자고 만류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목단은 그러지 못했다. 목단은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이제 삼천리순댓국집은 모루와 목단뿐이었다. 넷이 하던 일을 둘이서 해내야 했다. 감염병이 돌기 전엔 오전 11시부터 손님이 왔으나 이제는 12시는 돼야 손님이 드나들었다. 그나마 대여섯 테이블만 받아도 모루와 목단은 혼이 빠졌다. 4인 테이블에 한둘씩 앉았을 뿐이니 사람 수로 치면 열댓 명에 불과했다. 예전 같으면 서너 테이블 받은 셈이었다. 그런데도 목단은 곱창전골 주문을 탕으로 내놓거나 아예 주문을 놓쳐 음식을 못 내놓기도 했다. 주방보조 난 자리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식 나올 때를 기다리다 지친 손님이 점심시간 다 지나도록 이게 뭐냐고 눈을 부라렸다. 모루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오직 그 말만 반복했다. 마침 그런 때에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고, 방금 식사를 마친 손님이 계산하겠다며 나서고, 저쪽 테이블에선 깍두기 더 달라고 불렀다. 진땀이 흘러내렸다. 물 달라는 손님한테 네네, 하면서 물병 들고 얼떨결에 주방으로 들어갔다. 3번 테이블 계산한다는 게 9번 테이블 계산을 해버렸다. 모루는 그렇게 헤맨 끝에 점심 장사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할 일은 여전했다. 모루는 쌓인 물컵을 닦고 목단은 밥공기를 닦았다. 모루는 무거운 뚝배기와 전골냄비를 닦고, 목단은 찬 접시와 앞 접시를 닦았다.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무를 씻었다. 그 무로 목단은 깍두기를 담갔다. 넷이 하던 일을 둘이서 하면 그래야 하는 법이었다.
  다음 날 점심은 한가했다. 다음 날 점심도 한가했다. 다음 날 점심도 한가했다. 나흘째 점심은 혼이 빠졌다. 혼이 빠진 다음 날 점심도 혼이 빠졌다. 다음 날 점심은 한가했다. 다음 날 점심도 한가했다.
  언제 손님이 몰려들지 몰라 긴장하고, 어떤 실수를 범할지 몰라 긴장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러다 암에 걸리지 말란 법도 없었다. 아니, 이게 사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도 장사를 접자는 말은 꺼낼 수 없었다. 발을 빼기에는 너무 깊이 들어와 있었다. 모루는 목단한테 오전만이라도 일하는 사람을 두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힘들어?
  손님 몰릴 땐 정신없잖아?
  그렇긴 해. 그래도 그런 날은 일주일에 한두 번이고 바빠봐야 한 시간인데, 오전만 파출부 써도 5만 원이야.
  감내해야지. 그래야 손님도 맘 편히 오지.
  손님도 맘 편히 온다는 말에 목단은 알았다고 말했다.
  목단은 파출 사무소를 놔두고 홀 담당이었던 카한테 전화를 걸었다. 오전만 일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카는 종일 일해야 할 처지였다. 대신 푸를 소개한다고 했다. 목단도 푸를 알았다. 카가 홀에서 일할 때 종종 찾아와 술을 마시던 카의 친구였다. 푸는 만학도였다. 서른 후반인데 4년제 대학에 편입했다. 왜 편입했는지 그건 말하지 않았다. 그런 푸의 모가지와 팔뚝엔 값싸 보이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모가지 문신은 우주선을 새기다 만 것 같았고 토성의 고리를 새기다 만 것도 같았다. 팔뚝 문신은 고양이를 새기다 만 것 같았고 큰 귀의 사막여우를 새기다 만 것도 같았다. 모루는 값싸 보이는 푸의 문신에 자꾸 눈길이 갔다. 왜 새기다 말았을까? 왜 저렇게 새기고 싶었을까? 모루는 눈길을 돌리려 했으나 푸의 모가지와 팔뚝에 자꾸 눈길이 갔다. 자꾸 눈길이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자꾸 눈길이 갔다. 모루는 간신히, 정말 간신히 눈길을 바닥에 두었다.
  모가지와 팔뚝에 문신이 있는 푸는 하루 세 시간만 일하면 안 되겠느냐고 어렵게 물었다. 온라인 수업과 겹치는 목요일엔 출근할 수 없다고도 했다. 목단은 세 시간만 일할 수 있다는 것, 무조건 그게 좋았다. 목단은 세 시간에 꽂혀 푸를 잡았다.
  푸의 시간은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1시 반까지였다. 나머지 시간은 변함없이 모루와 목단이 감당할 일이었다.
  모루는 푸의 모가지와 팔뚝 문신에 익숙해져갔다. 천박하고 값싸 보인들 뭐 어떠랴? 우주선이어도 상관없고 토성의 고리여도 상관없었다. 고양이여도 괜찮고 사막여우여도 괜찮았다. 모루는 날마다 푸가 거슬리지 않았다. 온라인 수업이 있는 매주 목요일은 파출부를 불러야 하는데도 푸가 거슬리지 않았다. 중간고사와 학기말 고사 때는 일주일을 빠질 수 있는데도 푸가 거슬리지 않았다. 비록 세 시간뿐이지만 일하면서 공부한다는 게 모루는 안쓰러울 뿐이었다.
  모루는 푸가 온 뒤로 주방에 있는 시간이 잦았다. 한가한 날 홀은 푸 혼자서도 충분해 보였다. 모루는 주방에서 목단을 거들었다. 국밥이 들어오면 뚝배기를 꺼내줬다. 전골이 들어오면 냄비를 꺼내 기본 재료를 담아줬다. 손님이 계산하고 나가면 홀로 나가 테이블을 치우고, 주방으로 돌아와 잽싸게 설거지하는 것, 그게 모루의 일이었다. 주방도 반쯤 걸치고 홀도 반쯤 걸치는 두루치기, 그게 모루의 일이었다.
  1시 반이 되면 푸는 갔다. 모루는 푸가 없는 홀로 나와 홀을 지켰다. 다음 소설의 주제가 되는 책을 꺼내 들고 모루는 홀을 지켰다. 그러나 책은 읽는 둥 마는 둥이었다. 좀처럼 안 읽혔다. 몰입이 쉽잖았다. 푹 빠져들 수 없었다. 띄엄띄엄 손님이 들고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당선작 발표날이 가까워지면서 모루의 머릿속은 뒤엉켰다. 그날이 임박할수록 모루는 일하는 중에도 가슴이 뛰었다. 극단의 희망은 쓰라린 절망을 그림자로 둔다. 삼천리순댓국집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에 압도될수록 불안은 가중되는 법이었다. 그런데도 모루는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 그 반대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발표일이 일주일 남았을 때 모루는 지금쯤 연락이 올 거라고 보았다. 연락은 없었다. 하루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발표일이 닷새 남았을 때 모루는 연락이 올 거라고 보았다. 연락은 없었다. 발표일이 사흘 남았을 때 모루는 연락이 올 거라고 보았다. 연락은 없었다. 마침내 발표일이었다. 모루는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낙선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모루는 요행을 바라듯 문학상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자폭테러를 감행한 꼴이었다.
  모루의 이름, 모루의 작품은 없었다. 무엇이 먼저 떠올랐는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쓴 소설인데? 어떤 기대가 담긴 소설인데? 모루는 심사위원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그놈들이 의심스러웠다. 눈이 삐었거나 뭔가 야료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게 아니라면 내 소설이 낙선될 리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원망 섞인 근거 없는 분노는 생명력이 짧다. 당선작을 읽어보기는커녕 구경도 못해본 터에 도대체 뭘 의심한단 말인가. 모루는 한심해서 웃고 서글퍼서 웃고 앞날이 캄캄해서 웃었다.
  모루는 초라해졌다. 모루는 초라해진 것을 인정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사위원이든 삼천리순댓국집이든 끝없이 원망하고 앉았을 성정도 아니었다. 모든 게 나의 능력 탓이다. 모루는 그걸 인정했기에 물거품을 실감했다. 포말에 무슨 위력이 있을까?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도 위력인가? 모루가 써온 소설들은 물거품이었고, 한순간에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러므로 물거품의 위력은 절망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동굴 속 소설들, 애면글면 써온 소설들, 모든 게 헛지랄이었다. 모든 게 헛지랄이었다. 모루는 이제 어떤 희망도 없었고 어떤 희망도 갖지 않기로 했다. 완전히 무너져내리는 것, 희망에 의존하는 삶을 가차 없이 내던지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게 모루의 오늘이고, 그게 모루의 내일이어야 했다. 그런데도 어떤 일탈조차 용납되는 게 아니다. 모루의 현실은 가혹했다. 어쨌든 월세 330만 원을 만들어내야 하고, 어쨌든 대출 이자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 그게 모루의 현실이었다. 희망이 아니라 연명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 삼천리순댓국집이었다.
  모루는 변함없이 오전 9시면 가게 문을 열고 빗자루를 들었다. 바닥을 쓸고 빨아온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테이블을 닦고 삶은 숟가락을 정리하면 그때쯤 푸가 출근했다. 푸는 밥을 펐다. 푸가 밥 푸는 동안 모루는 화장실을 청소했다. 지린내가 등천하면 주차장에 물도 퍼 날랐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면 11시 어름이었다. 첫 손님의 시간은 대중없었다. 11시에도 들어왔고 12시 넘어서도 들어왔다. 손님이 늦으면 목단은 주방에서 속을 끓였다. 모루는 신문을 읽었다. 푸는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푸는 여전히 세 시간만 일하는 대체 불가의 알바였다. 온라인 수업 시간과 맞물려 부득이 결근하는 목요일을 제외하면 거의 빠진 적도 없었다. 지난밤엔 카를 만나 꽐라가 되도록 술을 마셨다면서도 오늘은 어김없이 출근하는 게 푸였다. 목요일마다 새로운 파출부와 손발을 맞춘다는 건 피로감이 컸다. 테이블 번호를 헷갈려 하고 분할 계산을 못한다고 해서 모루는 수시로 홀과 주방을 드나들어야 했다. 홀과 주방을 넘나드는 두루치기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파출부 없이 해보자고 했다가 땀으로 뒤범벅이 된 적도 있었다. 그러니 푸의 자리는 컸다. 모루 못잖게 목단도 그랬다. 푸 덕에 하루에 2만 원, 한 달이면 60만 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감염병으로 세 집 건너 한 집씩 나가떨어지는 마당에 60만 원은 적잖은 돈이었다. 330만 원 월세가 그토록 무서운 탓이었다. 대출 이자가 그토록 무서운 탓이었다.
  염천이 찾아온 건 그 어름부터였다. 후덥지근하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하늘이 지글거리자 몸뚱이는 땀을 쏟았다. 모루는 모든 땀의 원천을 알았다. 방역 마스크만 벗어도 땀이 마를 거라고 보았다. 모루는 헝겊 마스크로 대체했다. 물에 빨아 쓸 수 있기에 수시로 물에 빨아 썼다. 긴팔이거나 짧아도 칠 부 정도를 입는 푸도 흐르는 땀을 어쩌지 못했다. 푸는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 양팔엔 값싸 보이는 문신이 더 있었다. 한동안 모루의 눈은 푸의 또 다른 문신에 끌렸다. 안 본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눈길이 또 다른 문신에 가 있었다. 푸와 얘기할 때는 애써 바닥을 내려다봐야 했다. 그래야 문신을 안 볼 수 있었다. 토성의 고리나 사막여우로는 부족했나? 우주선이나 고양이로는 부족했나? 피부가 처지면 더더욱 추할 텐데,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왜 그걸 걱정할까? 문신 때문에 덥지는 않나? 아마 더 더울 거야,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왜 그걸 걱정할까? 나는 꿈도 없지 않나? 꿈도 없는 내가 푸의 문신을 왜 걱정할까? 지금이라도 꿈이 있다면 푸의 문신을 걱정해도 되는 걸까? 모루는 푸의 문신을 걱정하지 않기 위해 되도록 푸의 문신을 안 보기로 했다. 그런데도 모루는 어느새 푸의 문신에 눈이 가 있었다. 푸의 문신을 볼 때마다 모루는 느끄름한 심정이 되었다, 느끄름한 심정이라는 건 아무래도 거슬린다는 얘기였다. 모루는 푸의 문신이 거슬린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신 말고 뭐가 또 거슬리는가? 모루는 모루한테 뭐가 또 거슬리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일하면서 거슬리는 건 안 좋은 일이었다. 모루는 드러내지 않고 눌러 참는 성격이었다. 참는 것, 그냥 넘어가는 것, 모루의 생은 원래 그래왔다. 그 무엇도 불화보다는 나았다. 그런데도 거슬리는 건 안 좋은 일이었다. 모루는 푸가 거슬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모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감염병은 질기게 계속되고 있었다. 손님 없는 날도 여전했다. 손님이 없으니 거슬릴 것도 없었다. 그건 다행일까? 관계의 문제로만 본다면 그럴 수 있었다. 손님이 없는 낮 동안 모루는 신문을 읽거나 책을 읽었다. 그것 말고 열두 시간 이상을 버틸 재간도 없었다. 푸도 책을 읽다가 1시 반이 되면 퇴근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삼천리순댓국집 문 닫지 않을까. 이러다 정말 삼천리순댓국집 문 닫지 않을까. 포기한 줄 알았던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건 그 암울한 지경에서였다. 포기한 게 아니라 가라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모루는 꿈틀거리는 욕망에 이끌리고 싶었다. 야생 들개처럼 살 게 아니라면 삶의 명분을 찾아야 한다. 매달 돌아오는 월세와 대출 이자에 피곤죽이 될 게 아니라면 어쨌든 삶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다시금 소설의 욕망에 압도되는 것, 그게 희망의 끈이었다. 그것 말고 모루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을 게 또 뭐란 말인가. 이미 실패했으나 유일한 희망, 모루에겐 그게 소설이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손을 놓았기 때문일까. 발동이 걸리기까지는 시간이 더디 흘렀다. 집중할 시간이 모자란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오에 겐자부로의 말마따나 문체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사요나라 갱들이여』를 쓴 다카하시와의 대담에서 오에는 말했다. “내 문체로 들어가는 문을 열기까지 머릿속을 튕겨주는 누군가의 작품이 늘 필요했다.”
  모루 역시 소설의 주제가 되는 책 말고도 머릿속을 튕겨주는 책들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자극을 준다면 뭐든 가릴 게 없었다. 푸에게도 지금 읽는 책에 대해서 물었다. 푸가 영미 소설 위주로 책을 읽는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모루는 그걸 왜 즐겨 읽는지, 어떤 자극을 받게 될지 그런 걸 기대하고 물었다. 푸는 밑도 끝도 없이 『기나긴 이별』 보셨어요, 하고 물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장편이요.
  모루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손님 없을 때마다 모루는 푸가 소개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을 읽기 시작했다. 모루와는 안 맞는 소설이었다. 사건에서 사건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이별』은 속도감은 있었다. 그러나 사물 묘사에 주력하는 데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탐정인 ‘내’가 가드너의 집에 잠입했을 때였다. 총성이 울렸다. 곧이어 범인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가드너의 집을 빠져나갔다. ‘나’는 창문을 깨고 총성이 울린 방으로 들어갔다. 가드너는 카펫 위에 쓰러져 있었다. 바닥은 피가 낭자했다. 끔찍하고 난감한 상황을 맞아 탐정인 ‘내’가 무엇을 어떻게 풀어갈지, 모루는 그걸 기대했다. 그런데 중국풍 가구가 왼쪽 벽에 놓여 있었다, 일본풍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다, 심지어 가드너의 시신만 아니라면 동양풍의 정갈한 방이었다는 사물 묘사에 이르러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득력 없는, 진 빼는 묘사가 분명했다. 그 뒤로도 모루는 『블랙 다알리아』처럼 푸가 소개한 몇 권의 소설을 더 읽었다. 하나같이 고만고만한 소설들이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약국」은 달랐다. 돈 없는 푸가 돈 없는 순댓국집 모루에게 뜬금없이 선물한 책이라는 것부터 달랐다. 모루는 왜 굳이 사준 거냐고,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푸는 웃기만 했다. 푸는 대꾸 없이 웃기만 했다.
  스트라우트의 「약국」을 받은 지 사흘쯤 지나서였을까? 푸가 읽어보셨어요, 하고 물었다. 모루는 아직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무슨 내용이냐고 되물었다.
  『스토너』 아세요?
  『스토너』?
  그런 소설이에요.
  『스토너』의 스토너는 파격도 돌파력도 없다. 번득이는 지혜도 없다. 오직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끈기만 있다. 그 끈기 하나로 영문학 교수가 됐으나 가정생활은 원만치 않았다. 허영심 강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딸 하나를 두었으되 기쁨보다는 고독하고 우울한 삶이었다. 언제부턴가 제자인 캐서린을 사랑하게 되지만 스토너는 그 사랑을 감내할 자신도 없었다. 타인의 시선을 걷어찰 파격과 돌파력이 없으니 그냥 조용히 기다리고 인내하는 쪽이었다. 스토너는 캐서린과의 사랑을 끝내 지켜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딸을 지켜냈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왜 하필 『스토너』 같은 책을 선물한단 말인가?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지 않은가?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그냥 읽어보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하필 『스토너』 같은 소설을 선물한단 말인가? 스트라우트의 「약국」이 어떻더냐고 소감은 또 왜 묻는단 말인가? 모루는 아직 「약국」을 펼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가슴이 일렁이는 걸 느꼈다.

  헨리는 약국을 운영했다. 점원이 약국을 그만두게 되자 새로운 점원을 구했다. 새로운 점원이 왔다. 데이지였다. 데이지는 갓 대학을 졸업했고, 신혼살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 그녀의 신혼집은 부동산이 아니라 동산이었다. 캠핑카였다.
  헨리는 데이지가 어쩐지 유약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헨리의 아내 올리브의 시선은 어땠을까? 올리브는 나이 어린 데이지가 그냥 괜히 맘에 안 들었다. 헨리의 눈에는 갸름한 얼굴의 데이지가 새침하고 지적으로 보이는 반면, 올리브의 눈에는 여우도 그런 여우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모름지기 헨리 곁에 그토록 젊은 여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올리브는 화가 치밀었다.
  별일 없이 헨리의 약국은 잘 돌아갔다. 꼼꼼한 성격의 데이지는 손님이 찾는 약을 실수 없이 내놓았다. 약이 떨어지기 전에 채워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말이 없는 편이지만 손님을 대하는 면도 나무랄 데 없었다. 그러니 데이지가 있기에 헨리의 마음은 편했다. 그러나 일이 터졌다. 하긴 일이 터지잖으면 소설이 아니지.
  데이지의 남편이 친구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 사냥터에 도착한 그들은 사냥감을 쫓아 이리저리 뛰었다. 오인사격은 그 와중에 일어났다. 친구가 데이지의 남편을 쏜 거였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데이지는 반쯤 넋이 나갔다. 등은 굽었고 고개는 꺾였다. 약이 떨어졌는데도 채워놓을 줄 몰랐다. 손님이 해열제를 찾는데 쌍화탕을 내놓을 때도 있었다. 헨리는 그런 데이지가 가여웠다. 심지어 데이지는 캠핑카를 운전할 줄 몰라 출퇴근도 버거워하지 않는가. 헨리는 아내인 올리브한테 말했다.
  데이지한테 운전을 가르쳐야겠어.
  운전? 면허가 없대? 도대체 입때껏 면허도 없이 어떻게 살았대?
  현재 면허가 없고 캠핑카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게 중요한 문제일 뿐이야.
  세상에나!
  꼭지까지 화가 치밀어오른 올리브는 남편의 운전 교습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원활한 약국 운영을 위해선 그 방법 외에 달리 길이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가봐! 당신 애인한테 가봐! 운전 열심히 가르쳐서 카레이서로 키워보라고~오!
  헨리는 다만 안쓰러운 마음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모든 정황이 그렇지 않으니까.
  헨리한테 저녁마다 운전을 배운 데이지는 드디어 캠핑카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잘된 일이었다. 반쯤 빠졌던 넋도 서서히 돌아왔다. 예전의 데이지로 돌아온 그녀는 이제 약국 일에 실수도 거의 하지 않았다. 헨리는 다시 마음이 놓였다.
  그 뒤 데이지는 약을 납품하는 젊은 남자와 눈이 맞아 결혼했다. 그녀는 정든 약국을 떠났다. 헨리는 새로운 점원을 구했고, 서서히 데이지를 잊었다. 올리브도 그랬다.
  이십몇 년이 흐른 뒤 바람을 타고 데이지의 소식이 흘러들었다. 몇 차례 이혼을 거듭했고, 지금 매우 불행하게 산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헨리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건 작가가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모루는 「약국」에 빠져들었다. 그토록 꽉 찬 설득력 있는 심리 묘사라면 꽤 오랜만에 읽었다. 모루는 헨리에게 이입된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되돌릴 수 없었다. 자석에 끌리듯 모루는 헨리 안으로 빠져들었다. 비록 소설에 실패했을지언정 모루는 헨리가 돼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를 입에 달고 사는 종속적 주체로서의 삶일지언정 모루는 헨리가 돼 있었다. 헨리가 돼버린 모루 안으로 푸가 밀고 들어오는 건 일도 아니었다. 푸의 목소리가 모루의 귓전에서 맴돌았다. 내가 데이지예요, 모루의 귓구멍 속으로 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남편 잃은 데이지예요, 모루의 귓구멍 속으로 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신하는 자와 동거하는 동안 내 몸은 그놈의 연습장이었어요. 조심스럽게 기획하고 정교하게 공들인 아티스트의 문신이 아니에요. 그놈은 내 몸을 낙서하듯 연습하듯 수놓았어요. 그놈한테 내 몸은 연습장이었어요. 내가 입 다물고 사는 건 입을 열 수 없기 때문이에요. 혐오, 혐오로 가득한 곳, 세상은 내게 그런 곳이에요.
  데이지를 향한 헨리의 연민처럼 모루는 푸를 향한 안쓰러운 마음을 감내하기 힘들었다. 자기 파멸의 지름길이 동정에서 비롯됨을 모르지 않았으나, 모루는 그 순간 헨리였고 푸는 데이지였다.
  그러나 그쯤에서 끝내는 게 옳았다. 돌파력도 없고 파격도 없는 모루의 생은 그냥 무던히 흘러가는 것, 낯선 두려움 대신 익숙한 길로 가는 것, 그게 최선일 수 있었다. 헨리의 동요가 그쯤에서 끝나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남겼듯 모루 역시 그쯤에서 끝내는 게 옳았다.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밤의 두려움을 피해 백무동 골짜기 대신 피아골로 내려왔듯 모루는 그쯤에서 끝내는 게 옳았다. 불화도 두려움도 못 견뎌 하기에 모루는 그쯤에서 끝내는 게 옳았다. 계속 가봐야 오직 스토너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긴 시방 모루는 자기 연민으로 살기에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유채림

1960년 인천 출생. 1989년 『녹두꽃』에 「핵보라」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금강산 최후의 환쟁이』 『서쪽은 어둡다』 외 여러 권의 장편이 있음. 단편소설 「박정희 찬양대」 「영희의 경우」 「리치몬드의 딸이 부뚜막에 왔을 때」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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