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외 1편

 
 

  맨홀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맨홀이 있대
  구멍이 있는 것과 없는 것
  하지만 탈출하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래
  그런데 빠지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 미래는 예측하지 않는 편이 좋으니까
  그 무시무시한 구멍을 잘 막아둔 도시 덕에
  우리는 이렇게 잘 걸어 다니지
  아무 생각 없이도
  발밑에 무엇이 있나
  바닥과 바닥 사이를 가로지르는
  수평선
  견고하고 탄탄하지
  누나 그런데 여기는 홀 같아요
  너무 어두컴컴
  해 이런 암흑은
  아래에만 있는 거라고 선생님이 그랬는데
  아니야 여기는 숨겨진 도시의 미로야
  도시의 사냥꾼들이 우리를 두고 장난을 치는 거야
  빠져나올지 말지 두고 보는 거야
  우린 똑똑하잖아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
  행운아들이니까
  아무것도 안 보여요 누나 누나
  누나
  내 목소리랑 언제 같아졌어요
  누나 누나 누나
  목소리를 따라와 괜찮을 거야
  오다 보면 내 발이 있을 거야
  잡으면 우리는
  올라갈 수 있어 내가 올라가
  내 발목이 보이지
  잡아 꼭 잡아 목소리를 내 목을
  보이지 않더래도
  소용돌이가 치면 우리는
  올라갈 수 있을 거야
  빗물에 터져버리는 맨홀 뚜껑처럼

  모든 구멍은 빠뜨리기 위해 존재한다
  놀랍다
 
 

  선의

 

  ─생각을 좀 그만할 필요가 있어요.

  나는 늘 글 속에서 나쁜 사람이었다. 너무 불친절했고 너무 나밖에 몰랐으며 나만 아는 문장으로 점철시켰다. 그게 너무 싫었다. 삶 속에서 그러지 못한다면 여기서라도. 착하고 다정하고 유감스러우며 결 있고 곁 내어주는 사람 되고 싶었다. 전부 내가 못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만들어낸 나는 쓴 나와 또 다른 것이니까.

  그런데 너무 착하기만 하대. 생각이 너무 많고 너무 못 믿는대. 읽어주는 당신들을 말이야. 덜 말해도 덜 써도 이해할 거라고,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그만해도 된다고. 생각을 말이야. 그런데 왜

  어떻게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아요

  계산하는 사람들 걱정하는 사람들 어떻게든 해보려 이리저리 고민하는 사람들 아군들 선생님들 내 친구들 그리고 또 나의

  그런 게 다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나에게는 나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런 것 중요하지 않고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힘든 짐 든 사람들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제
  생각하면 안 되니까

  올라오는 것을 참느라 목젖이 따갑다
  생각에는 울음도 포함이다
  
  

박참새

2023년 제42회 김수영문학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정신머리』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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