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바닥 외 1편

 
 

  내 발바닥
  ─맨발 걷기 1

 

  열풍이란다. 맨발 걷기가,
  암을 치료하고, 고혈압이 내려가고,
  뇌종양이 사라졌단다.
  세상에 이런 일이!
  집 근처 마땅한 장소를 물색해도 없다.
  신설 중학교는 개방하지 않고
  산으로 가기엔 너무 게으르고
  결국 호미 한 자루로 아파트 옆 긴 숲에
  맨발 걷기 위한 작은 길을 만들었다.

  지구의 껍데기를 벗기고
  하얀 속살이 드러났을 때
  꿈틀거리는 용처럼 길이 살아 움직였다.
  달빛 아래에선 강물처럼 굽이굽이 흘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드디어 이웃들이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가슴이 왜 울컥울컥했는지.
  아마도 이 작은 흙길은
  걷는 그들의 시간과 추억이 쌓여가는
  보물창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곰이 웅녀가 되는 백일 동안
  맨발 걷기를 하면 지구와 접지한
  내 발바닥은 무슨 말을 전할까.
 
 

  진실
  ─맨발 걷기 2

 

  신발을 벗었다.
  가죽과 고무에 가려진 진실이 드러났다.
  맨땅은 한 치도 평평한 곳이 없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굴곡진 삶인지
  이제 알았다.

  맨땅을 걸으면 부드럽고 촉촉한 땅보다는
  굵은 모래로 따갑고, 나무뿌리에 부딪히고
  숨어 있는 날카로운 돌부리에 발바닥이 뜨겁다.
  내 심장이 매 순간 저리고, 아프고, 슬펐는지
  이제 알았다.

  진실을 모르면 평안하다.
  무뇌아無腦兒처럼
  
  

최성민

1992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아나키를 꿈꾸며』 『도원동 연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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