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탕을 끓이며 외 1편

 
 

  대구탕을 끓이며

 

  이별을 위해 물은 아까부터 끓고 있다
  청양고추는 일부러 넣지 않았는데
  있지도 않은 연기에
  반쪽짜리 무가 매운 건지

  순서가 엉클어진 우리의 만남
  아가미 속에 칼을 집어넣고서야 안다
  지느러미부터 자르고
  비늘도 벗겨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국물을 위해
  중멸치를 고르다가
  디포리와 다시마 등등
  모르고 선택한 어느 하나가 만족스러울 수도

  입속 깊이 박힌 낚싯바늘은
  손톱만 한 크기로도 팔뚝만 한 너를 이끌어
  좁은 도마 위를
  입 하나로 가득 채운다

  웅크린 말들로 가득한
  상처 난 식도와 내장의 항변
  네가 바다를 떠난 건지
  세상이 바다인 건지

  레시피에도 없는 미나리와 깻잎을
  한 주먹 물에 담그다 말고
  창밖에는 흐르는 비
  몽글몽글 거품은 흘러넘치고
 
 

  육십

 

  이제 가족보다 보호자가 필요할 때
  병원 수속을 밟을 때
  외국 여행을 할 때
  혹시나 해서
  휴대폰 패턴을 풀었다 잠갔다 하며
  언제일지 모를 나의 장례식이
  별과 별 사이처럼 멀지
  징검다리처럼 가까울지
  고속도로를 달려가며
  말 못한 못난 기억들이
  길 저편에서 홀로 물드는 것을 보며
  허리가 터질 듯한 바지를 버리고
  불룩한 배 위의 재킷도 버리고
  날짜가 지난 약들을 쏟아버리며
  편지 아닌 일기를 쓴다
  익숙하지 않은 길의 끝에서
  더 이상 익숙함을 사려 하지 않고
  연필을 깎아 유서를 쓰고
  피를 모아 연서를 쓴다
  이제 새로운 질문이 필요한 때
  허리가 갑자기 삐끗하니
  두어 주 더 쉬어야 할 듯
  
  

오석균

1996년 『문학21』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기억하는 손금』 『기린을 만나는 법』 『수인을 위하여』 『우리에겐 시간이 충분했던 적이 없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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