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준비한 것들

  

  나는 그날 많은 것을 준비했다. 대형 마트에 들러 즉석 카레와 물티슈, 햇반을 카트에 넣었고 건너편 이집트 식품점에서는 양의 뒷다리살과 연어 살라미에 얹을 콩을 구해 넣었다. 일본 식료품점에 들러서는 생와사비와 절인 매실을 찾았으나, 불닭볶음면과 짜파게티 같은 한국 식재료가 절반 이상이었다. ‘도쿄에 있는 한국 슈퍼에서도 일본 식재료를 많이 파니까요.’ 묻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하던 주인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온 후 맞은편 꽈배기 트럭 앞에서 내가 잠시 서성인 모양이었다. 그사이 유진은 건너편 처마에서 우리를 구경하듯 바라보는 할머니들에게 인사를 하거나, 누구에게도 공격성이 전혀 없는 강아지들이 터그 놀이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강아지들은 모두 유치가 아직 빠지지 않아 이가 조금 간지러운 듯 위협성 없이 유진이 던져준 인형을 깨물고 뒹굴었다. 그런 강아지 몸통의 털이 군데군데 밀려 있었다. 나쁜 생각을 좀 한다면⋯⋯ 마치 누군가 일부러 불에 그을린 듯 피부가 벗겨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강아지를 누가 그런단 말인가. 혹시 강아지가 아픈가요? 내 말에 한 할머니가 답했다. “그 강아지는 내가 키우는 게 아니야. 내가 키울 수 없는 거지.” 그래도 항상 여기에 있는 것 같은데요. 내 말에 다른 할머니가 거드는 기색 전혀 없이 중얼거렸다.
  “미군이 키우다 버리고 갔지. 이제 여기서 살 수 없으니까. 그전엔 일본군들이 이곳에서 개를 키웠을 거야. 전쟁 말미에 거꾸로 매달아 잡아먹다가 버리고 갔어, 여자들이랑 아이들이랑 그리고 개를 말이야.”
  뭐, 한국 놈들은 안 버렸고? 북한 놈들은? 또 다른 할머니가 중얼거렸지만 내 말에 답을 해주었던 할머니는 자꾸만 이렇게 되새김질하듯 혼잣말을 했다. “여자들과 노인과 아이들과 개를 말이야, 일본 놈들이 또 미국 놈들이.” 내가 지나치게 오랜 시간 그 앞을 서성이자 유진은 할머니들과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유진에게 이 말을 그대로 할 자신은 없어서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유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뒷머리를 조그맣게 매만졌는데, 사실 매만지는 것과 조그마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그럼에도 유진의 그 모습에는 그런 단어들이 어울린다고 느껴졌다. 3년 전 나와 결혼한 유진은 한국계 미국인이었고 일본인인 어머니를 뵐 일이 아니라면 이제 일본에조차 갈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본 국적도 가지고 있는 유진은 누군가 과거 제국 일본에 대해 말하거나 명동의 거리를 걷는 일본인 관광객을 한국인들이 빤히 바라보면 무언가 초조하고 두려운 기색을 보이곤 했다. 그러니 아마도 유진은 나와 할머니들의 대화를 이미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지금 몇 시죠? 아직 늦지 않았나?’ ‘네, 괜찮아요. 늦지 않았을 거예요.’ 잠시간의 침묵 후 유진과 나는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골고루 산 물건들을 추슬렀다. 문득 앞서가던 유진이, 이거, 하며 카메라를 내밀었다. 그가 내민 카메라의 화면엔 내 뒷모습이 가끔 섞여 있었다. 병아리콩이 든 유리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리고 그 병에 투영된 내가 있었다. 그렇게 투영된 나를 찍는 유진도 있었다. 사진은 넘길수록 과거의 내가 바로 곁에 서 있는 듯 생생하게 등장했다. 무수한 과거의 나는 다양한 모습으로 온갖 군데에 서 있었다. 땀을 식히기 위해 건물 그늘에 서 있는 내가, 꽈배기 가게 앞에서 할머니들께 웃음을 지어 보이려 애쓰는 내가, 무언가 초조한 듯 아이스크림 봉지를 접어 든 내가 있었다.
  “과거가 다 있어, 이 사진 속에서.”
  내가 말하자 유진은 과거 봉인이라니 좀 두려운 걸요, 하면서도 사진은 좋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진은 나를 만나기 전부터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원래는 종군기자가 되어보려고 했다는 그에게 나는 차마 실제 전쟁을 알고 있는지 물을 수 없었다. 미국인들에게 9·11이 두려운 건 자국에서 일어난 유일한 공격이었기 때문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전쟁을 많이 하는 나라가 미국이지만 본토에선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다는 걸. 하지만 그 대화도 벌써 오래전이었다. 나와 유진은 그사이 결혼을 했고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을 하기보다는 당장 내야 할 관리비와 아파트 시세와 아이는 낳지 않냐는 주변의 질문을 슬기롭게 피하는 방법을 함께 골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 또한 전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식료품이 담긴 병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신경 쓰이면서도 다시 한번 봉지를 추슬러 잡았다. 그렇다면 낭독은 좋은 걸까? 이번엔 내가 되물었다.
  “거기에도 있군.”
  “뭐가요?”
  “과거 말이에요, 낭독할 책 속에. 거기에도 과거가 있고.”
  나는 유진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답을 하기에는 너무 아는 것이 없었고 또 지나치게 아는 것이 많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낭독에 대해서도, 그리고 과거에 대해서도.
  그래, 그렇지만 확실히 그날 우리는, 아니, 나는 낭독회에 가는 길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부탁받은 식료품과 물품들을 잔뜩 챙겨 들고 책 없이 낭독회에 가는 길이었다.

  낭독회가 공지된 장소는 이태원역에서 녹사평역 사이의 언덕길이었다. 후커힐이라고 해, 내 말에 유진이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IT 회사에 취직하게 되면서 유진이 처음 한국에 온 것이 5년 전이었다. 당연히 한국어를 곧잘 하지만 그래도 유진에게 가장 쉬운 언어는 영어였다. 아니, 세상의 모든 인간에게 가장 강박의 언어, 그것은 영어였다. 그것을 모르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어요. 누군가 영어의 뒷면에 서서 그렇게 외치는 듯했고, 그것은 일정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이태원과 녹사평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보다 ‘후커’힐이 들어간 단어가 유진에게는 더욱 빠르게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꼭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이렇게 시작되는 말은 항상 어느 정도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대체로 이 말을 서두에 붙이는 것 같다. 이번에도 그랬다.
  “미군이 머물던 시절 이곳에 다양한 바가 많았어, 그래 바, Bar. 게이 바도 있었고 트랜스젠더 바도 많았고 여성들을 판매대에 세우는 곳도 많았다고 해. 다 미군과 관련한 이야기지.”
  당연하게도 유진은 한국인들이 미군을 꽤나 싫어한다는 사실에도 민감한 편이었다. 듣는지 안 듣는지 모를 이야기들을 계속하자니 조금 어지러운 기분이었고 나는 이름은 그만두고 전망을 보자며 그를 이끌었다. 그렇게 유진은 어느새 후커힐 한가운데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여전히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그러면, 여기에 한국인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나요?
  그렇게 묻는 유진의 얼굴은 그 누구도 칼로 가르지 않은 생크림 케이크의 가장 반듯한 면 같았다. 유진의 전공은 컴퓨터 공학. 유진 또한 한국과 일본 사이의 일을 알지만 크게 개의치 않은 세대의 사람이었다. 이른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일본인 어머니와 재미교포 3세인 아버지에게서 나고 자란 그에게 그것을 잘 알려주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없었다. 유진에게 한국은 한때 식민지였지만 지금은 일본보다 월등히 앞선 IT 기술과 K팝을 선두로 한 문화산업을 가진 나라였다. 특히 IT업계에서 일하는 유진의 입장에서 과거는 더욱 아득한 것이었다. 이제 한국은 일본에 뒤질 것 없는 나라였고 한편으로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나라이기도 했다. 유진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가끔, 자주, 유진의 그 말간 얼굴을 보면 알 수 없는 두려운 기분에 휩싸이는 것만 같았다.
  그러게, 하지만 이야기를 지운 건 한국인들이 아닐 텐데. 식민지였으니까 말이야.
  나는 꿀꺽 소리가 날 정도로 그 말을 삼키며 다시 한번 식료품이 든 봉지를 감아 들었다. 온갖 나라의 온갖 음식들이 내가 든 봉지 속에서 뒤섞이고 있었다. 유진은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었던 것 같다. ‘그럼 저는 저 앞까지만⋯⋯.’ 유진은 한국어책뿐 아니라 영어나 일본어로 된 책도 거의 읽지 않았다. 지식의 대부분은 유튜브와 챗봇을 통해 얻는 듯했고 그게 크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기에 나는 유진에게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렵기만 했다. 부부가 되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역사 문제를 제외하면 불만이랄까 불안이랄까 그런 것을 가질 만한 것이 없었다. 낭독이 끝나고 전화를 주면 데리러 오겠다는 유진에게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었다. 그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손을 흔들고 뒤돌아 걷던 유진이 문득 나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오늘 낭독회는 후커힐 어느 곳에서요? 이번엔 내가 유진을 내려보았다. 그러게, 그러니까 낭독이 열리는 장소를 말하자면⋯⋯.
  사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실은 나도 가본 적이 없는 낭독회가 예정된 장소를 처음으로 찾아가며, 아마 그것은 둔덕 같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그즈음에 닿을 무렵 나는 그곳이 오래된 사찰을 조금 비껴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저기에 사찰이 있었던가, 이런 생각을 더듬으며 네이버를 켜고 검색을 했을 때, 나는 그것이 일제시대 때부터 있었던 비구니 절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비구니 절이라니 기묘한 마음이었으나, 시간을 확인한 나는 검색 대신 오늘 낭독회의 주최자이자 내게 도움을 요청했던 일본인 연구자 요시미에게 카톡을 보냈다. 요시미는 내가 아직 문학 연구를 하던 대학원 시절 알게 된 친구⋯⋯ 그래, 친구이자 연인이자 동료였다. 요시미는 여전히 문학 연구를 하고 나는 이제 연구도, 소설도 쓰지 않는다. 요시미는 여전히 혼자 살고 나는 이제 유진과 결혼했다. 이 부분들만 달라진 것처럼, 카톡 내용도 별다를 건 없었고, 그저 여기 맞아? 이 정도였다. 내가 가게 앞에서 머뭇거리자 맞은편 닭을 파는 상점의 할머니가 빈 유모차를 끌고 다가왔다. 허리를 못 펴겠어서 말이야, 할머니는 그런 혼잣말을 하며 나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잠시 후 허공을 가로지르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끝엔 건물들이 가득했는데, 할머니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저곳이 일제 때 일본군들이 열차를 깔던 곳이라고 했다. 우리 오빠도 저기서 일을 했지. 어디론가 더 멀리 보내버리려던 거야. 그런데 말이야.
  네? 내가 무어라 답을 하기도 전에 할머니는 빈 유모차 대신 이번엔 내 팔을 붙잡았다.
  “모두들 아들을, 딸을 군대에 보내자고 했어. 라디오만 켜면 잘 배운 사람들이 나와 그런 말을 했지. 그거 알아? 책을 쓴 사람들도 그런 말을 했어. 글자를 아는 사람들이 말이야. 거기가 어떤 곳인지 이미 다들 알았을 텐데, 독한 약품에 피부가 다 발겨지고, 지진이라도 나면 조선인들의 소행이라고 외치며 우물에 산 채로 던져 죽이는, 그런 곳인걸!”
  요시미에게 마침 카톡이 오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조금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아직은 응어리가 가시지 않아 내뱉을 수밖에 없는 말. 상점의 천장에 매달아둔 고기에서 핏물이 조금씩 떨어지고 죽음의 냄새를 맡은 파리들이 그곳에 몰려들고 있었다. 그사이 요시미에게 온 카톡은 오늘의 낭독회가 서점에서 열리는 것이 맞는다고, 다만 그 서점은 이전에 책이 아닌 다른 것들을 팔았던 것 같다는 말이 덧붙여진 채였다. 다른 것을 팔아? 내 물음에 다시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도착한 카톡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것이었다. 시간. 뭐라고?
  그러니까 시간.
  이 역시 최고의 확률로 아무리 한국에 오래 살았던들 타국의 언어를 헷갈린 요시미의 오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왜냐면 나와 사귈 때도 요시미는 종종 한국어를 헷갈려서 나에게 여러 차례 논문이든 일기든 감수를 부탁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가게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것은 확실히 서점이 아니었다. 또한⋯⋯ 손목시계와 주인이 읽다 지쳤다는 책들을 파는 곳이었다. 손목시계만 있었는데 얼추 몇십 개가 있었다. 이거 다 어떻게 모으셨어요? 온갖 식료품이 든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주인으로 보이는 자에게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처럼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슬그머니, 내가 그의 옆에 봉지를 놓자 그제야 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글쎄요, 한 명씩 버리고 가던걸요.”
  “시계를요?”
  내 말을 못 들은 것인지, 아니면 대답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던 건지 그는 말없이 읽던 책을 내려놓더니 이윽고 카운터 옆문으로 잠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가 가지고 나온 것은 책이었다. 에드몽 자베스, 이보 안드리치, 루이 페르디낭 셀린, 에리카 종, 윌라 캐더, 케르테스 임레, 페르난도 데 로하스, 보토 슈트라우스, 알라 알아스와니, 다와다 요코, 배수아, 로베르토 볼라뇨⋯⋯.
  그는 아무 말이 없이 그 책들을 옮겼지만 나는 그가 무척 신이 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이 요즘엔 그래도 좀 있나요? 나는 이런 말 대신 과거의 한순간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내가 소설을 썼던 언젠가의 이야기다. 이것이야말로 문학 연구를 했던 그 시절보다도 아득한 일이다. 그렇지만 과거답게 그것은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아득하기만 해진 어떤 시절의 일이기도 하다. 한때 나는 소설가라고 불리는 사람이었고, 그것도 역사적 사건들을 헤집고 다니며 소설을 쓰려고 했던 소설가라고 불렸던 사람이었다. 한번은 내가 평소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름을 소설에 나열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적 허세를 참지 못하는 욕구 불만의 소설가라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해서 그 평을 읽었을 때 조금 재밌는 기분이 들었다. 그 평을 했던 사람은 내가 분명 화를 낼 거라고 예상했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하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한 번쯤은 그 이름들을 소리 내어 불러줘야 한다, 작가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것은 소리 내어 말해주는 건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3년 만에 연락해서 낭독회 준비를 도와달라는 요시미의 부탁 이전에, 문학 연구도 소설도 이제는 쓰지 않는 내가, 이제는 요시미가 아닌 다른 남자와 살을 섞고 밥을 먹고 미래를 계획하는 내가 그 낭독회에 간 것은 그런 이유일 확률이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을, 좋아하는 무언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보는 걸 좋아한다,라는 이유. 나는 내 앞에서 아무 말 없이 좋아하는 책을, 서점 주인 입장에서는 잘 안 팔리는 책을 꺼내놓는 주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 그래도 내가 할 말은 또 있었다. 모두가 시계를 버리고 갔다는 곳, 나마저도 시계를 버릴 순 없으니까.
  “하지만 저⋯⋯ 오늘은 여기서 낭독회를 한다고 했는데요, 주제는 최정희라고. 어, 그. 요즘 작가는 아니고 일제 시기부터 활동했던 작가예요. 들으신 거죠?”
  주인으로 보이는 그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낭독회 오신 분? 그의 눈빛이 그러했고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낭독회 시간이 비어 있다면 그 외에 다른 모임이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의 어깨가 어쩐지 조금 처진 것 같았지만 나는 그저 식료품이 든 봉지를 그에게 들어 보였다. 그는 작게 입 모양으로 아, 하는 소리를 내었고 이윽고는 그건 저기에 둬도 돼요. 어차피 손님들은 잘 없으니까, 이런 말을 건네왔다. 나는 그의 눈빛에 따라 카운터 밑에 봉지를 두기 위해 조심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며 그곳으로 다가섰고 그다음에는 뭐랄까⋯⋯ 황당하달까, 아니 의외랄까 이런 기분이 되었다. 그가 가리킨 카운터 밑에는 샐러드를 해먹을 분량의 채소와 입가심이 가능한 과일 같은 식재료가 담긴 바구니가 있었다. 멈춰 선 나를 잠시 비껴두고 그냥 두라던 그가 먼저 허리를 굽혀 내가 가져온 재료들을 정리해 넣기 시작했고 나도 곧 그의 곁에 주저앉았다.
  밥을 잘 해드시나봐요? 온통 식재료네요.
  사 먹으면 비싸니까요. 그런데 왜요?
  아. 왠지 책 이야기하시다가 식재료 보니까 뭐랄까요, 좀.
  책 읽는 사람도 밥은 먹고 살지 않을까요.
  아, 그게⋯⋯ 여러 일을 한 번에 하기는 어렵잖아요. 책을 읽고 요리를 같이하는 거, 그런 거 말이에요.
  그건 그렇죠. 어떤 사람들은 살림을 노동으로 보지 않지만⋯⋯ 그러고 보니 살림과 노동은 퍽 오래된 주제인 것 같네요. 그래서 일본 제국 시절에는⋯⋯.
  일제요?
  갑자기?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사실 해도 해도 영 늘지 않는 나의 살림에 대한 어려움 때문이었다. 살림만 해도 어려운 것이 살림, 어릴 땐 엄마의 나이가 되면 자연스레 하는 줄 알았던, 그래서 살림 못하는 엄마라는 이미지는 누구의 머릿속에서도 없었던. 하지만 내가 최정희 이야기를 꺼내서였을까. 아니면 정말 그는 일제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너무나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3년 전만 해도 일상어처럼 쓰던 단어가 이렇게 멀어지다니, 살림의 속도는 느릿하기만 한데 지식이 줄어드는 속도는 또 빠르기만 하다. 배우는 것과 잊는 것은 이렇게나 다르다. 내가 좀 빤하게 그를 쳐다봤는지 그는 멈췄던 말을 이어나갔다.
  “네, 일제 때는 오히려 내지, 일본인 여성에게는 살림하는 모성을 강조하고 조선인 여성들에게는 가정을 벗어날 것을 강조했다고 하더군요.”
  “아. 저도 들었어요. 아마 그런 건 요시미가 전문일 텐데⋯⋯ 그런데, 공부하시는 분이세요? 그러니까. 요시미 아니, 요시미 상과 함께요.”
  “아뇨, 보다시피 이곳 주인일 뿐이죠. 대관을 해주는 이곳. 나는. 어떤 소설에서 그런 걸 읽었을 뿐이에요. 뭐, 요시미 상이라는 사람이 버리고 간 책일 수는 있겠어요.”
  사실 요시미의 친구라면 내가 모를 리 없었다. 한국에서 요시미의 유일한 친구는 나였으니까. 그의 말에 나는 입을 조금 벌린 채 고개만 끄덕였다. 나 또한 누군가가 버리고 간 책을 읽었다. 가령 선배들이 버리고 간 『천개의 고원』이나 『자서전의 규약』 같은 책, 『오래된 미래』 같은 책. 그런 버림은 돈 없던 석사논문 준비생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논문이 끝났을 때 나 또한 그 책에 내 책을 얹어 버렸다. 아마 누군가가 또 행복했을까, 책을 통해 그런 것이 가능한 경험이란 어떤 거였을까. 하지만 그 대화를 끝으로 얼마간, 나와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묵묵히 식재료를 정리했다. 어쩌면 정리할 식재료와 꽂아 넣을 책이 많아서일지도 모를 일. 한 묶음의 식재료가 정리되자 그는 책 하나를 빼내 잠깐 읽는가 싶더니 이집트 식료품점에서 산 병에 든 콩은 무슨 맛이냐고 물어왔다. 나는 마개를 뜯어내며 그에게 좀 먹어보겠냐는 시늉을 했고 그는 물끄러미 나와 콩을 번갈아보다 이내 몇 개를 받아 우물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햇반을 들고 간이 주방으로 사라졌다. 옆구리에 책을 끼고 콩이 든 병과 햇반을 각각 한 손에 든 뒷모습을 오래 봤다.
  낭독회가 예정된 시간이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시계 진열대를 넘겨보는 인적조차 드물었다. 요시미는, 요시미는 어떻게 된 걸까. 최정희를 전공한 요시미, 몇 안 되는 친일 여성 작가 최정희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까지 온 요시미. 대학원 페미니즘 수업에서 요시미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나는 일본 여성에게는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어딘가 조심스럽고, 아무리 여성이지만 자국의 일이니 어중간하게 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윤리니 정의니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며 ‘적당히 타협’하는 나와는 좀 다른 구석이 있었다. “여자가 글을 읽는 것은 드물었으니까 친일이든 뭐든 몇 안 되는 거죠. 남성 작가랑 그게 달라요. 그래서 남성 작가의 친일보다 크게 보이는 것일지도요.” 요시미와 처음 술을 마신 날, 대체 왜 최정희를 연구하냐는 내 질문에 그는 그런 대답을 했었다. 그러면서 요시미는, “최정희는 어차피 시대에 따라 달라졌는걸요. 일본이 끝장나고도 남편의 영향인지 사회주의에 헌신하기도 했고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이기도 했고요. 사실 저는 일본인들도 사과를 안 하는 마당에 최정희가 그렇게 호되게 욕을 먹는 게⋯⋯ 조금 안타깝기도 해요. 아, 이건 비밀이에요.” 요시미가 그런 말을 한 날 왜인지 나는 대꾸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조선 여성에게는 가정이 아닌 국가에 헌신하자며 신여성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일본에 대해 말해보면서 요시미의 공감을 사보는 쪽이 좋을까. 아니면 최정희가 그래도 친일을 선택한 건 사실이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해서 차라리 끝장 토론을 하는 편이 좋을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관심사를 나누기엔 좋을 테고 그러니 어떤 말이든 하고는 싶었지만 요시미는 나보다 그것을 훨씬 잘 알겠지, 다시금 그런 생각을 했었고⋯⋯ 요시미에게 왠지 바보 같은 모습은 보이기 싫어 술을 들이부었고 우리는 그날 소주 다섯 병을 나눠 마시고 모텔로 갔다. 그 뒤로 3년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술을 마셨고, 자주 영화를 보러 다녔고 나는 그런 내용을 소설에 썼고 요시미는 논문에 썼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맨정신으로 토론을 위한 토론이 가능할까, 글쎄. 그런 문제가 아니었겠지. 그래서 나는 혹 시간이 되면 낭독회를 꾸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냐고,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 뜬금없는 연락을 한 요시미에게, 나는 이미 오래전에 다 그만두었다는 대꾸만을 반복했다. “이미 오래전이잖아, 문학에 대해 생각한 것은. 낭독회라는 것도.” 그리고 너와 함께하던 것도, 그럴 수 있다고 믿었던 것도, 모두 내가 너를 떠나 결혼을 해버렸기 때문에. 이 말은 잘 삼켜두었는데 요시미는 그런 내게, “그래. 그냥 책 이야기일 뿐이야. 그리고 준비해주었으면 하는 것은, 책도 감상도 아닌 그저 아주 약간의 음식이야.’ 이렇게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했었다. 그래서 내가 준비한 것은⋯⋯.
  비구니 절의 기도 시간이네요, 우리의 낭독회 시간이기도 하고요.
  나와 책을 꽂던 그가 어느새 양치를 하고 나왔는지 칫솔을 가지고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였다. 바람이 세찼나 싶어 돌아본 곳에는 요시미가 서 있었다. 3년 만에 본 요시미는 예전처럼 커다란 노트북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담아서 어깨가 흘러내리도록 가지고 온 채였다. 시간을 뛰어넘은 사람들처럼 그곳엔 그 옛날의 요시미 상과 이제는 달라진(졌을) 내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요시미를 향해 일어섰고 어쩐지 흘러내린 요시미의 가방을 예전처럼 조심스럽게 올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사이 칫솔을 든 그가 여전히 바닥에 놓여 있는 책을 집어 들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오늘 읽는 것은 어떤 최정희인가요?” 그제야 요시미는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고 그와 함께 책을 집어 들었다. 글쎄요, 어떤 최정희를 읽는다고 해야 할까요, 아시다시피 최정희는 워낙 광범위해서. 일제부터 미군정기 그 이후까지요. 그런데 이 시계들은 다 어디서 난 거예요? 그렇게 칫솔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그와 노트북 가방에 노트북은 없고 최정희만 잔뜩 든 요시미 사이에서 내가 다시 주춤대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두고 간 것들일 뿐이에요. 요시미가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자 그는 다시 한숨을 머금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시계를 두고 갔어, 책을 사 가고 말이에요.”
  그의 말에 나는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렸나 싶은 기운에 바깥을 돌아보았고, 그러나 그것은 비구니 사찰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요시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초면인데 시간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이렇게 말하며. 그럼 나는 요시미? 나는 이 말을 만지작거리다 음식을 준비하겠다며 딸린 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네가 왜 나에게 연락했는지 궁금했다고, 시간을 가둔 이곳으로 나를 부른 것이. 이 말을 할 순 없었으니 말이다.

  정각이 되어서야 어디선가 사람들이 들어와 앉았다. 숨어 있다가 나타났나봐요. 나는 들어오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리며 식료품들을 하나씩 꺼내었다. 가벼운 핑거푸드면 된다던 요시미 상은 막상 과자 같은 것보다는 성의가 있는 음식이면 좋겠다고 했었다. 학회에서 하는 낭독회보다 조금 의미를 두고 싶어서 기획한 것이라고도, 부담은 전혀 안 가지면 좋겠다던 요시미는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모르는 업체에 돈을 주는 것보다 아는 사람에게 주는 게 낫잖아, 어쨌거나 지원금이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요시미를 보면서, 나는 내가 돈 이야기를 꺼냈던가, 나는 이제 돈이 없어서 계약이란 계약은 다 끌어 맡던 그 시절의 나는 아닌데. 그렇게 쫓기듯 글을 쓰는 게 지겨워서 유진과 결혼했고 신기하게도 유진과 결혼하여 너를 떠나면서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는데⋯⋯ 나는 요시미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때만 꺼내는 비기라는 걸 금세 눈치챘다. 그러니까 외국인이라 한국인보다 직설적이고 일본어로는 상상 못할 말들을 하고 싶을 때 한국어가 서툰 척하는 요시미. 그렇게 낭독회는 시작될 예정이었고 나는 준비한 식재료를 꺼내보았다. 사실 나는 이제 대학원뿐 아니라 회사도 다니지 않고 회사뿐 아니라 외출 자체를 잘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잘 가꿔진 서울 한가운데의 커다란 아파트 단지에서 유진과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적절하게 시작하고 끝나는 드라마를 보고 오후 늦게 저녁 메뉴를 꾸려 매일 새로운 음식을 해내는 삶. 유진은 회사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지만, 결론적으론 외국인이라는 신분을 뛰어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럴 때만 미국식 가족주의를 내세워 대부분의 저녁을 집에서 먹었기 때문에 나는 지난 3년 동안 저녁 외출을 거의 하지 못했다. 물론 유진은 그러라고 한 적이 없었고, 처음엔 몇 번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도 했지만 그러기 위해선 미리 저녁을 차려두어야 했다. 삶은 아파트 단지만큼 축소되었는데, 어쩐지 나는 조금씩 더 고단해졌고 자주 낮잠을 잤다. 그래서, 요즘 바쁘니? 요시미가 물었을 때 나는 빠르게 답하지 못했다. 몹시 피로한데 무언가를 했다고 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요시미는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다음 말을 이어가주었다. “네가 와줬으면 해, 이 낭독회에.” 나는 슬쩍 입구 쪽에서 사람들에게 준비해놓은 프린트물을 나누고 있는 요시미를 바라보았다. 요시미 곁에는 요시미를 도와 이번 연구를 함께한다는 우재와 선재가 있었다. 우재와 선재는 어색하게 서 있다가 선배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고 긴장한 것인지 좀처럼 어깨가 펴지지 않아 마치 한 사람인 듯 보이기도 했다. 내가 오렌지 주스를 종이컵에 따라 우재와 선재에게 주었지만 우재와 선재는 서로 먼저,라는 듯 권하다 아이고,라는 말과 함께 주스를 조금 쏟기도 했다. 우재와 선재 뭔가 미묘하게 라임이 맞네요, 문득 나는 그런 말을 하며 나와 같이 식료품을 꺼내는 공간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그는 내 말에 별거 아니라는 듯, “대학원생들은 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던데요?” 대꾸했고, 나는 ‘그건 편견 아닐까요’ 하고 말하는 대신 그저 조그맣게 웃어 보였다.
  “가만 보자. 그럼 이 음식은, 낭독회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로군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가 퍼뜩 다시 맞는다는 의미로 끄덕였다. 왜 고개를 저었을까, 낭독회에 준비한 게 책이 아니라 음식이라서였을까. 아직 대학원 시절, 나는 학회 간사 같은 걸 하면서 자주 학회의 과자 같은 것을 준비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못 집어가도록 낱개 포장된 걸로 해. 초코하임, 엄마손파이 이런 거. 많이는 못 먹는 거 말이야.’ ‘거지들이야, 뭐야. 대체 왜 과자를 그렇게씩 먹어대는지.’ 선배의 말에 난 정말 그런 ‘많이 못 가져가는’ 과자들을 잔뜩 샀었다. 하지만 남은 건 선배들이 가져갔는데, 그렇다고 선배들이 거지 같다는 건 아니었는데. 그러나저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논하는 자리에 음식을 준비하는 것, 그건 요즘의 내가 시간이 비어서도, 오랫동안 공부를 하지 않아서도 아니라는 거. 난 이미 그때부터 책 대신 음식을 준비했구나⋯⋯라는 거.
  “네, 이건 우리가 준비한 것들이에요. 낭독회를 위해서 말이죠, 낭독회를 위해서 음식을요.”
  힘이 들어간 내 대답에 그는 그저 그렇군,이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런 낭독회 행사를 하는 게 처음이라 몰라서 그렇다고 덧붙이더니 곧 우재와 선재에게 다가가 긴장된 그들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 이집트 콩을 권하기도 했다.
  “저도 몰라요, 낭독회는요. 그저 항상 음식 같은 걸 준비하는 사람일 뿐이었거든요.”
  나의 작은 목소리는 아마 그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다 채워지지도 않았고,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도 요시미가 자기 분량의 프린트물을 집어 들고 소리 내어 낭독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소개도 인사도 없는 작품의 시작이었다.
  “「지맥」이라는 작품입니다. 최정희의 연작 시리즈 중에 하나예요. 일본 제국 시기 조선 여성의 삶과 사랑. 가부장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조선 여성들에게도 감정과 욕망이 있다는 걸 솔직히 다룬 최정희 삼부작이죠.”
  요시미가 중간중간 설명을 끼얹었고 나는 끼얹었다는 표현을 생각하는 내가 웃겨서 혼자 좀 웃었다. 웃음이 터지는 입을 막은 채 나는 이번엔 공간을 빌려준 주인을 조금 넘겨봤고 그는 내 표정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연어 살라미를 조금씩 우물거리며 졸리다는 표정이었다.
  「지맥」을 시작으로, 오늘 읽을 제목을 다시 정리하자면 「지맥」 「천맥」 「인맥」이에요.
  요시미의 말을 듣던 누군가 프린트물로 입을 가린 채, “그런데 오늘 좀 덥네요, 그렇지 않나요?” 하고 옆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게 보였다. 요시미 상은 작품 소개를 끝낸 후엔 프린트물에 얼굴을 묻을 기세였으므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람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게요, 학회장이 아니어서 특이한 분위기가 좋긴 한데 조금 덥네요, 여기. 아. 그리고 사실 오늘 제 생일이에요, 그런데 낭독회를 왔지 뭐예요.” 건너편의 또 다른 누군가 그렇게 답을 했고, 애당초 더위를 직감한 누군가가 다시 말을 받았다. “어라, 생일이라니. 이따 요 앞에서 한잔하고 가요. 코로나 끝나서 뒤풀이하지 않겠어요? 그나저나 말이에요, 요시미 상 최정희 오래 연구했잖아요, 대단해요. 그래도 일본인인데.” 누군가 또 프린트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이런 말을 했다. 뭔가 갑자기 엄청나게 대단해진 요시미와⋯⋯ 나는 우재와 선재의 꼿꼿한 등에 조금씩 번지는 땀자국을 바라보며 비구니 사찰의 꼭대기에 걸린 해를 한번 넘겨보았다. 그런데 정말 저기가 여전히 비구니 사찰이긴 할까? 나는 졸리기도 하고 덥기도 한 김에 아까 찾다 말았던 네이버 페이지를 다시 열어보았다. 비구니의 역사는 초라하다 할 정도로 짧게 정리되어 있어서 시간을 끌며 자세히 볼 것도 없었다. 비구니의 수는 적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런데 왜 최정희만큼이나 다른 여자 작가들만큼이나 짧게 정리된 걸까. 이런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그런데 우재와 선재는 무엇을 연구할까. 요시미의 조교라고 했으니 비슷한 연구를 할까, 아니면 내가 떠난 사이 대학원도 달라져서 반드시 선배나 선생의 연구와 유사한 걸 할 필욘 없을까, 이런 생각을 이어나갔고 그사이 누군가 「지맥」의 일부를 낭독했다. 프린트물을 가린 채 이야기를 이어가던 사람들은 조금도 늦지 않게 손뼉을 치며 화답했다. 요시미가 다시 마이크를 넘겨받으며, 감사합니다. 이제 「지맥」 다음에 「천맥」을 읽어볼게요, 하며 마이크를 넘기려는 찰나였다. 그런데 발표 시기로 하면 「지맥」 다음에 「인맥」 아닌가요? 누군가의 질문에 우재와 선재는 동시에 침을 꿀꺽 삼켰고 요시미 상은 별일 아니라는 듯 순서는 괜찮아요, 하며 다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다른 남성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가부장제 아래 오래 살아온 사람은 정해진 규율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표면적으론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여성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작품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여성을 통해 오히려 조선의 가부장제의 여러 면에 대해 생각해보게 돼요.” 요시미는 자리에 앉아서 그런 말을 조금 덧붙였을 뿐이었다. 요시미, 너는 최정희의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 여성 인물들이 나와 비슷하다는 말을 하곤 했지. 그건 내가 결국 제도로 들어갈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였을까. 나는 이런 말을 삼키며 요시미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그사이 다시 시작한 낭독에서 이번엔 또 어떤 누군가가 ‘근데 요즘도 뭐 똑같지 않나. 이혼 말이 쉽지.’ 중얼거렸고 그런 것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또 다른 누군가는 “담배는 밖에서 피워야 하죠?” 공간의 주인과 나에게 물어오기도 했다. 담배라는 말에 멈칫대는 우재와 선재 옆에서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제야 요시미가 프린트물에서 절대 눈을 떼지 않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말이에요, 요시미 상 질문은 끝난 뒤 받나요?” 어디선가 그렇게 말했을 때 요시미는, 기본적으로 낭독회는 질문은 받지 않지만⋯⋯ 하고 말을 흐렸다. 요시미는 쉽게 다음 말을 잇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낭독 때문도 아니었고, 질문 때문도 아니었고 그에 대한 답 때문도 아니었다. 방문자. 방문자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가게의 문이 열렸다가 닫혔고, 담배를 피우러 간 그 문학 박사일까 생각하며 본 그곳엔⋯⋯.
  그곳엔 아주 다른 이가 서 있었다. 반쯤 센 머리가 선캡 안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방문자. 나는 우재와 선재를 돌아보았다. 우재와 선재는 요시미를 돌아보았다.
  “오늘, 여기서 최정희 작가라는 사람의 낭독회를 한다고 들었네요.”
  하이고, 더버라. 이렇게 좁아터진 데 사람을 모아놓으니 더 덥지. 선캡의 주인공은 끝없이 손부채질 중이었다. 그의 모습에 모든 사람이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선캡에 백팩을 짧게 멘 나이 불명의 여성은 지하철역 입구에서 자주 보았던 차림새로, 등산복 위에 팔 토시를 겹쳐 끼고 있었다. 태양은 절대 그녀의 피부에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요시미는 잠시 그녀를 봤고 건너편의 해를 봤고 그다음엔 가게 안의 무수한 시계들을 잠시 돌아보았다.
  “네, 맞아요. 낭독회를 합니다. 책을 읽는 거요. 최정희, 최정희 맞습니다.”
  나는 당연히 요시미가 그의 입장을 막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선재와 우재는 무언가 안도의 큰 숨을 내쉬기도 했다. 요시미의 말에 여성은, 내가 옳게 찾아왔네요, 그런 말을 하며 가게 문 앞 정도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나는 주춤대는 우재와 선재와 무수한 문학 박사들을 지나쳐 그녀의 앞에도 오렌지 주스와 크림치즈에 완두콩을 조금 얹은 핑거푸드를 가져다주었다. 우재와 선재와 문학 박사들은 프린트물을 보는 듯 그녀를 힐끗거렸다. 누군가 입 모양으로, “그러게, 그냥 학교서 하지. 이런 데서 하면 누가 들어오는 걸 못 막잖아.” 이런 말을 했고 또 다른 누군가가, “무슨 소리야. 맨날 오는 아저씨들 있잖아. 기억 안 나? 학회만 하면 와서 공짜 밥 먹고 가는 사람들. 뭐가 달라, 아저씨는 되고 아줌마는 안 돼? 빌런도 급이 있냐? 그냥 있어.” 이런 대꾸를 했던 것도 같지만 확실치 않았다. 요시미는, 요시미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그러면 이제 오늘 마지막 작품을 낭독하겠습니다. 「인맥」이고요, 하고 말을 다시 이어나갔다.
  “아시다시피 최정희는 한국문학사에서 여성 작가로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의 활동은 카프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도 있겠죠. 카프의 일원으로 활동할 당시, 귀하게도 해방 후 미 군정기 때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말을 마친 요시미가 무언가 이야기해줄 사람 있나요? 하고 물었지만 그 누구도 쉽게 손을 들진 않았다. 다만 누군가 목소리를 낮춰 “그런데 최정희 말이야, 친일에 대해서 사과했나, 결국 남자 만나서 사상도 바꾼 거 아니야?” 그렇게 우재와 선재 뒤편에 앉은 누군가가 다시 프린트물을 가면 삼아 옆 사람에게 중얼거렸고, “아니. 안 했지. 두 딸도 아무 말 안 했을걸. 뭐 이유도 있겠지, 카프 활동하고 또 잡혀들어가고 거기서 남편이 죽었던가 했잖아. 남편 죽고 기자 생활하고 그러면서 여자 혼자 살기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러다 여성 인권에 더 관심 많아졌겠지, 아닌가?” 그 옆 사람은 분란은 싫다는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한껏 목소리를 낮췄으나 아무도,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 공간에서 모두에게 그런 말은 아주 잘 들렸고 그건 그들도 알 거였다. 시계의 초침 소리조차 그들의 말에 묻힐 정도였다.
  “그래도 최정희 작가는 가장 오랫동안 일선에서 작품 활동을 하신 분이니까요. 그녀의 작품까지 모두 매도할 순 없습니다. 1940년대 일부 작품에 대해 그 행적을 따져볼 수 있지만요. 그것 또한 그녀의 삶의 배경을 찾아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희 일본은 아직 사과조차 하지 않았으니까요. 또 남성 작가들의 친일은 어떤가요? 그들은 사과를 했나요?”
  요시미는 무언가 작정한 듯 그들을 보지 않고 건너의 책장에 눈빛을 두고는 그런 말을 했다. 요시미의 말에 그들은 마치 서로를 처음 본다는 듯 서로에게서 멀어지며 몸을 꼿꼿하게 했다. 그사이 모두가 침묵하자 주춤대는 듯 우재가 손을 들어 최정희의 작품 세계에 대한 설명을 조금만 해달라고 요시미에게 요청했고 그런 우재의 모습을 보는 선재가 지나치게 땀을 흘리는 것을 보던 나는 그제야 그것이 결국 그들이 준비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해진 답과 질문, 그리고 진땀을 흘리는 것.
  그러면⋯⋯ 내가 준비한 것은⋯⋯?
  내가 생각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요시미는 최정희의 작품 세계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1940년대에 발표한 친일 작품인 「장미의 집」 「야국초」에 대해 이야기할 땐 목소리가 조금 수그러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나, 1960년대에 발표한 「인간사」에 대한 설명을 할 땐 무언가 웅장한 느낌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긴, 여성 작가가 그런 대작 발표하기 쉽진 않지.’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인간사」는 일제 말기에서 8·15광복, 남북분단, 6·25전쟁을 거쳐 4·19혁명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와 역사를 그린 작품이었다. 최정희의 역사가 장황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의 시대사가 굴곡이 많아서였을까. 어차피 한 개인이란 역사 앞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어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을까. 설명이 이어지는 사이, 내가 준비한 식재료들은 일회용 접시 위에서 조금씩 흐물거리며 무너지고 있었다.
  “저, 그런데. 나도 말해도 됩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선캡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향했다. 눈이 부시다며 고개를 돌린 사람도 있었고 애써 보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여성의 눈이 선캡 안에서 낮게 빛났고 태양은 어느새 비구니 사찰의 뒤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요시미는 잠시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재와 선재는 무언가 말하려 그녀에게 향하려다 요시미의 대답에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여성은 팔 토시를 한 겹 벗어 가방 안에 넣었다. 피부가 드러나리라 예상되었던 그 자리엔 한 겹의 팔 토시가 더 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낳고 내가 세 살이 안 돼서 무슨 방송인가 듣고 친구랑 히로시마로 공장으로 넘어간다고 집을 나섰다고 합니다. 돈을 그렇게 벌 수 있다고 해가지고. 그리고 죽었어요. 거기서. 알죠? 어마어마한 폭탄이 터졌으니까. 뭐 그 옆 나가사키로 간 우리 이모도 아직도 시신 한 조각 못 찾았답디다.”
  요시미의 얼굴보다 우재와 선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가운데 갑자기 사람들은 잡담마저 멈추고 저마다 핸드폰을 보든 무엇을 보든 심각하거나 다른 급한 일이 있는 듯한 표정을 유지하였다. 누군가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는 제스처를 해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책 대신 시간을 버리고 갔다고 한탄하던 이곳의 주인인 그는 도리어 오늘 처음으로 눈을 빛내는 가운데 갑자기 서가에서 무언가 책을 꺼내오기도 했다. 가장 긴 선은, 최초에, 가장 짧은 선이었다. 책날개의 먼지와 함께 도착한 저 문장, 시작은 에드몽 자베스. 『예상 밖의 전복의 서』. 그는 선캡을 쓴 여성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척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들으려 하는 사람 같았다.
  “시골 촌구석에서 어머니가 어떻게 히로시마를 듣고 공장을 듣고 일본으로 가려고 했으까요. 뭐, 딸내미인 나도 몰라요. 나 사실 그런 거 생각도 못 해보고 아둥바둥 밥 먹고 사느라 힘들었네요. 나는 여기서 평생 살았어요. 엄마도 죽고 우리 아부지 전쟁통에 죽었다고 하고. 나는 창신동에서 시다로 있다가 여기 이태원에서 양공주 년들 수발들며 살았네요.”
  고생이 많으셨네요, 그 여인을 향해 말하는 요시미의 진심 어린 눈빛. 저것은 거짓이 아니다, 나는 요시미가 얼마나 진심 어린 인간인지 안다. 게다가 여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척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듣는 이 공간의 주인인 그의 눈빛도 거짓이 아니다. 긴장으로 녹아내릴 것 같은 우재와 선재도 거짓이 아니다.
  “그런데 몇 해 전에 이제 여기서 미군 다 나가고. 뭐 하고 살지, 하는데 다큐멘터린가 뭔가 만든다고 사람들이 왔거든. 뭐라더라, 대학원에서 뭘 연구한다더라. 여기 양공주를 연구하면서 소설을 쓴다든가. 거기 여자애 중 한 명이 그럽디다. ‘어머니, 일제 말에 방송을 했어요.’ 방송을 했다고. 일제 말에 일본으로 아들들을 보냅시다, 딸들을 보냅시다. 이런 방송들을 했다고. 작가고 정치인이고 나와가지고. 그때야 기억이 납디다. 우리 할머니가 했던 말이요. 니네 어매가 라듸온가 뭔가를 듣고 친구들이랑 돈 번다고 인간답게 산다고 일본 간다고 했다. 여자도 거기서는 글을 배운대요, 하면서 오빠도 일본 제국에 보내세요, 조선에서보다 사람답게 산대요, 하면서. 사람? 하이고, 사람도 먹는 일본 군대에 갔지, 그래서.”
  요시미는 이제 아무 말 없이 최정희의 다음 소설을 손에 쥐고 있다. 생각해봐, 최정희도 피해자야, 그건 인정하잖아요? 당시 조선 여성들에게 선택권이란 게 있었을까? 그리고 남성 문인들의 친일은 이광수 하나로 다 덮을 기세면서 어째서 최정희는 이렇게 모든 걸 다 버려야 할 정도로 욕을 먹는 건데? 너라면? 너라면 달랐다고 말할 수 있어? 요시미는 나에게 항상 그 말을 해줬었는데. 그래, 적어도 나에 비하면 최정희는 확실히 선택권이 있었을 리 없고 방법이라는 것을 찾으려 했을 것이고 일본이 아니면 미국에라도 협조해야만 했을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여성들의 인권이 너무나 바닥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아니, 결국 함께 도쿄로 가자는 요시미를 저버리고 결혼이란 제도로 들어간 나에게도 여전히 선택권은 협소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비혼인 여성들을 무언가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이기적인 여자들로 만드는 이런 사회에서 말이다. 동성 간의 결혼은 꿈도 꿀 수 없고 자발적 한부모가정도 허락되지 않는 이런 곳에서. 하지만 요시미, 그래도 여전히 너 그 말을 나에게 아닌, 문학 박사들에게가 아닌 저 사람에게도 할 수 있을까? 그 언젠가, 아마도 내가 소설을 그만 쓴다고 하고, 문학 연구를 안 하겠다고, 나는 그런 괴리 속에 나는 반듯하고 윤리적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어,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였던 것 같다. 요시미가 그랬지, “최정희는 그래도 소설을 계속 썼어.” 요시미는 나에게 왜 도망치냐는 말을 했던 거다. 그래, 요시미가 나에게는 여전히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저 여인이나 저 여인의 어머니에게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우리는 각자의 일을 했을 뿐이라는 그 말을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고 수많은 문학 박사들도 이 말을 묻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싶은 듯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낭독과 음식과 질문과 답은 준비했으나 그런 것은 준비하지 않은 듯했다.
  “그냥, 그랬다고요. 그래가지고 내가 그 여대생, 그 여자애한테 죽자고 물었어요. 그 작가가 누구냐고. 우리 어머니가 대체 무슨 책을 쓴 사람의 무슨 말을 듣고 그랬을까 궁금해서, 나는 책 같은 건 안 읽으니까. 내가 무식해서 작가 양반의 뜻을 모를 수도 있지. 봐도 들어도 난 여전히 모르겠습디다. 그런데 다른 거는 모르겠는데, 갑자기 저 마음속에서 깊은 불덩이가 올라옵디다. 왜, 그 사람은 되게 오래 살았더라고. 우리 어머니는 이십 대를 못 넘기고 죽었는데. 우리 아버지도 그랬지. 남동생은 어떻고, 전쟁통에 죽었으니까.”
  여성은 그러더니 팔에 토시를 다시 끼었다. “여기가, 아주 상처가 독해요. 일하다가 미군인가 일본인인가가 나한테 데운 술을 던졌는데 화상 자국이 안 없어져요. 나는 이제 가서 저녁거리 좀 사봐야겠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손을 대지 않은 음식이 든 접시를 내게 다시 가져다주며 고맙습니다, 하고는 자리를 정리했고 그렇게 다시 이곳의 문은 열렸다 닫혔다. 내 앞에 그녀 앞에 놓였었던 우리가 준비한 것들, 그러니까 국적 불명의 핑거푸드를 보며 나는 진열대 위에 놓인 시계들을 잠깐 바라봤다. 가게 밖 건너에서 비구니 사찰의 기도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기도하는 비구니들을 떠올렸다. 일제 시대엔 재가한 여인들을 노려 사찰에 끌어들였다고 한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었던 거다. 그런가 하면 일본 제국은 가장 호국운동에 소극적이었던 불교계를 노렸다고 하고. 일제는 어떤 먹이사슬을 만들어놓았던 걸까. 그사이 비구니들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내가 멀리 빛처럼 번지는 비구니 사찰의 실루엣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누군가 다시 낭독을 시작했고 이제는 완전히 허물어진 핑거푸드를 보던 내가 사람들을 조금 부산스럽게 헤치며 여인이 걸어간 길을 따라나섰다. 그렇게 이 공간이 저 건너의 공간으로 확장됨을 느끼며, 어느새 사라져버린 여성이 걸어간 길을 내가 내려다보고 있었을 때였다. 따라 나온 공간의 주인인 그는 여전히 『예상 밖의 전복의 서』를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오래, 불에 덴 듯한 강아지와, 강아지와 여자와 아이들을 버리고 갔다며 이를 갈던 할머니와, 그냥 궁금해서 와봤다는 그 여인이 사라져간 길을 내려보았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 아직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불편하다던 유진이 데리러 오겠다며 내게 말하던 그 길. 그 길 끝만큼이나 아득한 시간 전에 나는 일본군과 기지촌의 성노예 여성들을 연구했고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했었고 그러나 소설을 썼었다. 그때 나는 한 여성을 만났고, 또 여성을 사랑했고 아니 무수한 여성을 만났었다. 나아지는 건 없는 듯했고 나는 낙관하려 했지만 모두가 낙관하려고 했지만, 내 소설과 연구가 그 낙관을 연장시켜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일정 사실이었을 것이라고, 이제는 쓰지 않지만 쓰지 않아도 그 낙관은 유효할 것이라고 그때도 지금도 요시미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이나 믿고 있지만.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은 낭독회이고 나는 그저 국적 불명의 음식을 조금 준비했을 뿐인데. 한참을 서 있던 나는 “신은 신 안에서 인간을 소모한다. 또다시 예상 밖의 전복의 서,”라고 공간의 주인이 중얼거리는 걸 들으며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작가님. 소설, 항상 잘 읽었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보았고,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고맙습니다. 나의 말에 그는 들어갈까요,라는 듯 문을 가리켰고 나는 그제야 다시 낭독회가 열리는 그곳의 문을 열었다.
  저는, 이제 이달 말이면 도쿄로 돌아갑니다. 제자리로 가는 거죠.
  요시미의 말에 나는 문 앞에서 잠시 요시미를 바라봤다. 요시미는 그런 나를 잠깐 바라보았으나 이내 다시 최정희 소설 원고로 고개를 묻었다.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요시미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비구니 사찰의 기도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오는 걸 보았다. 제자리,라고 하면 어디로일까. 요시미가 준비한 작품 낭독은 이제 곧 끝이 날 것이고, 누군가의 말처럼 코로나19가 끝났으니 우리는 모두 모여 맥주를 한 잔씩 할지도 모르겠다. 요시미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이곳에 불렀을까. 나에게 제자리가 어딘지도 요시미는 알려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조금씩 거리로 흩어지고 있는지 건너편은 어느새 조금 소란스러워져 있었다. 작품을 읽읍시다, 불쑥 『예상 밖의 전복의 서』를 던진 그가 사람들에게 말을 걸면서, 콩도 좀 드시고,라고 했고 역시 배가 고프군요,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누군가 다시 낭독을 시작했다. 마지막이라고 했다. “무사히 끝났군요.” 이렇게 중얼거리는 요시미의 말을 시작으로, 팔 토시를 두 겹 끼고 다니던 여인이 앉아 있던 자리엔 앞서보다 긴장이 풀린 듯 조그맣게 입을 벌려 숨을 내쉬는 우재와 선재가 등을 대고 앉아 있었다. 우재인지 선재인지 둘 중 누구인지는 조금씩 고개를 떨구고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네가 소설을 다시 쓸 거라 믿어.” 요시미가 내 몫이라며 건넨 낭독 원고의 첫 장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근처에 와 있다는 유진의 카톡이 울렸지만 나는 오래 그 메모만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요시미의 어깨 위에서 흘러내리는 가방끈에 손을 뻗었다. 그렇게,
  우리가 준비한 모든 것들이 끝나가고 있었다.
  
  

한정현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 중편소설 『마고』,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등이 있음. 오늘의작가상, 젊은작가상, 퀴어문학상, 부마항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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