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무도 없는

  

  잠 너머로 TV 소리가 아득하게 넘어온다.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평균 실종 신고는 2만여 건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90퍼센트 정도는 다시 찾는다고 하고, 나머지 10퍼센트 정도가 미제 사건이나 사건 사고로 연결된다고 하는데요. 그중에서도 생사를 알 수 없는 미제 사건이 0.04퍼센트, 그러니까 연간 2천 명의 실제 실종자 중에 생사가 확인 안 되는 사람이 10명 정도라는 말인데요. 그렇다면 박사님,

  더 들을 수가 없다. 머리맡을 더듬어 TV를 껐다. 0.04퍼센트. 솔미가 사라진 지 737일이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 어디에 함부로 버려져 썩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구석지고 야트막한 골짜기에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 넝쿨 아래, 솔미의 살을 파먹어가는 구더기와 집게벌레의 집게, 단단하게 꺾여지며 도미노처럼 밀려오는 지네의 관절이 머릿속을 기어간다.
  강호는 서둘러 눈을 떴다. 후덥지근한 불쾌가 집 안에 가득 찼다. 베란다 쪽을 쳐다보니 흐릿하게 어둑하다. 소나기가 지나갔는지 피어오른 먼지 냄새와 습도가 베란다를 넘어 들어온다. 침대와 이불도 눅눅하다. 미미는 눈을 감고 있지만 숨소리가 불규칙하게 떨린다. 자세히 보니 눈자위가 젖었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0.04퍼센트를 그리고 있다. 상상과 절망, 희망과 텅 빈 위장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출렁거려야 할까.
  미미가 팔을 뻗어 목을 감는다. 언젠가부터 출렁이는 눈동자에 실핏줄이 자글자글 깔리면, 누구랄 것 없이 서로를 더듬었다. 절망과 상상이 공포로 바뀌기 전에 서로의 입술과 몸을 정성 들여 쓰다듬었다. 습도와 온도가 만들어내는 땀방울이 촉각으로 부풀어 오르면, 강호는 미미의 몸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잘 먹지 않아 부스럭거리는 서로의 몸을 잇고 흩어진 영혼을 온몸으로 끌어당기면, 아득하게 공포가 무뎌졌다. 강호는 치골에 무게를 실어 미미의 둔부를 문질렀다. 미미의 공포와 상상을 짓눌러 압살시켜야겠다고, 그게 미미를 살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미미도 강호의 푸석거리는 허리를 부여잡고 끌어당겼다. 강호의 허기와 공포를 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서로의 심장을 확인하는 짧은 시간 동안 평화가 왔다. 하지만 그 평화는 아주 잠깐이어서, 금방 지네의 가늘고 수많은 다리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이런 식의 자잘한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열기와, 다시 기어 나올 절망 따위는 둘 다 알고 있다. 그런 조건적 허무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단 한 번이라도 솔미를 다시 보는 것, 그게 안 되면 어디에 있는지라도 아는 것, 그것도 욕심이라면 어디서 어떻게 썩어가고 있는지만이라도 아는 것, 그때까지 어떻게든 견뎌내는 것. 그것만이 멸망보다 간절했다.

  강호는,

  인생의 행이 바뀌거나 문단이 바뀔 때마다 아파트를 생각했다. 열아홉이 되어 보육원을 나왔을 때와, 미미와 살기로 마음먹었을 때가 그랬고, 솔미가 태어나자 그 생각은 더 간절해졌다. 택배를 받아주는 경비가 있고 미미와 솔미와 함께 있을 때 안전할 것 같은, 흔해 빠졌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솔미가 백일이 되었을 때, 강호는 대학 강사를 때려치웠다. 그동안 준비한 게 아깝다며 미미가 말렸지만, 더 이상 얄팍한 이상과 기약 없는 자리 욕심에 식구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그 후로 매일 달렸다. 새벽 4시 반, 알람이 울리면 그때부터 오른편 왼편 팔을 흔들며 달렸다. 처음은 수산시장이다. 먹보수산에 도착해 매대에 물건을 내놓고 5시 손님들 주문에 맞게 식재료를 포장한다. 박스에 상호와 차 번호를 적어 주차장에 세워진 차 트렁크에 싣는다. 손수레를 끌고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금방 6시 손님이 닥친다. 다시 포장하고 주차장으로 왔다 갔다 하면 7시 반, 먹보 사장이 백반을 시켜놨다. 사장은 먼저 시작했다.
  박 기사, 어서 들어.
  고등어구이 한 토막을 따로 덜어놨다. 입에 넣고 씹고 삼키며 매대를 기웃거리는 손님을 신경 쓴다. 눌러 담은 밥그릇을 서둘러 비우고 숭늉으로 우물우물 비린내를 씻어 삼킨다. 사장이 건네는 인스턴트커피를 원샷하고, 다시 식재료를 포장한다. 이번에는 주변 술집과 식당 주방이다. 이리 쌓고 저리 쌓아 오토바이는 앉을 자리 빼고는 박스만 보인다. 부다다다 또 달린다. 뒷문으로 들어가고 숨겨둔 열쇠를 꺼내 들어간다. 이 주방 저 주방 문을 열고 냉장고를 열어 재고를 확인한다. 정리되지 않아 재고 파악이 안 되면 냉장고 정리도 한다. 짜증 낼 틈은 없다. 손이 머리보다 먼저 움직인다. 한 바퀴 돌고 오면 9시 30분. 뜯어진 박스를 정리하고 매대의 빈 물건을 채우면 10시, 사장에게 인사를 하고 퇴근한다.
  집으로 돌아와 세탁기를 돌려놓고 한숨 돌리며 이른 점심을 먹는다. 옷을 갈아입고 빨래를 널고 12시까지 학원으로 출근한다. 시간표를 확인하고 오후 1시부터 유·초등반 수업을 시작한다. 5시에 퇴근을 하고 버스 세 정류장을 걸어 6시까지 중등 단과 학원에 출근한다. 출근길에 단골 분식집에서 김밥 두 줄을 먹는다. 그리고 11시까지 수업을 한다. 주말에는 고3 과외를 두 팀을 돌리고 짬짬이 학원 보충 수업을 한다.
  그래도 강호는 괴롭지 않았다. 세 식구가 아파트에 입주하는 날을 위해 다 참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른팔 왼팔을 힘차게 흔들며 5년을 달려서, 마침내 미미와 솔미와 택배를 지켜주는 아파트로 들어갔다. 미미와 솔미는 집 안을 뱅뱅 돌아다니며 꺅꺅거렸다. 강호는 거실과 세 개의 방을 지켜주는 이중 창호가 두꺼워 안심이 되었다. 그때부터 새벽 시장에는 나가지 않았다.

  미미는,

  아파트 청약금을 완납했을 때, 엄마가 가지지 못했던 행복을 거의 손에 쥐었다고 생각했다. 바지런한 강호와 앞니 빠진 솔미가 있고, 이제 든든한 집도 있으니, 앞으로는 인생이 더 다정하게 흘러갈 것 같았다. 이제 새벽 4시 반의 알람이 강호를 새벽 시장으로 내몰지 않아도 되고, 잘만 하면 다시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도 있을 거다. 솔미는 단지 내 유치원에 다닌다. 솔미를 태워 30분 거리의 어린이집에 내려놓고 러시아워를 뚫고 출근을 하면 하루치 에너지가 다 소진된 기분이었다. 이제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유치원에 데려가면 선생님들이 문 앞에 마중을 나와 있다. 느긋하게 출근한 사무실은 여유롭기까지 했다. 코딱지만 한 출판사의 좁고 지저분한 탕비실에서도 기분 좋게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마감을 지키지 않는 시답잖은 작가들도, 주기적으로 꽥꽥 소리를 지르는 편집장의 히스테리도 귀엽게 넘길 수 있었다.

  자잘한 멸망이 지나간 후에,

  미미는 늘어진 티셔츠를 꿰고 베란다에 섰다. 탁하게 검은 음영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눈동자는 또 멀리서 날아온 상상을 따라가 아득한 기억의 장소들을 훑고 있다.
  불 켜?
  아니. 이게 편해.
  뭐 좀 먹을래?
  난 괜찮아. 당신이나 먹어.
  그럼 좀 있다 같이 먹자.
  그래.
  담배?
  응. 근데 아랫집에서 또 뭐라 할 텐데?
  뭐 어쩌겠어. 위층 없는 게 어디야.
  예전의 강호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이 아니다. 그래, 뭐 어쩌겠는가. 뭐 어쩌면 또 어떤가. 그따위 것. 어차피 아파트는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다. 다정한 유치원 선생님도 근엄한 경비도, 솔미를 지켜주지 못했다. 이제 막 한글을 깨우치기 시작한 솔미가 놀이터 시소에 초록색 크레파스로 써놓은 ‘박강호’와 ‘박미미’만 튼튼히 박제해두고, 아무것도 지키지 않았다. CCTV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하얀 강아지를 몰고 가는 여자와 그 여자를 쫓아 아파트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가는 솔미의 뒷모습만 남았다.
  강호가 담배 두 개에 불을 붙여 하나를 건넸다. 흐린 하늘이 저녁이 되어 더 퀴퀴해졌다. 더위는 좀 누그러졌지만 대기에 습도가 가득하다. 길게 빨아 댕기는 담뱃불 너머로 불빛들이 점점이 켜지기 시작한다. 미미가 난간을 잡고 쪼그려 않는다.
  괜찮아?
  어, 그냥 좀 어지럽네.
  한숨 같은 연기가 푸스스 흩어진다.
  솔미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
  살아 있어. 난 믿어.
  그래. 미안.
  미미가 다시 길게 연기를 들이쉬고 내뱉는다.
  가마귀신이란 게 있어.
  응? 뭐라고?
  가마귀신. 들어본 적 있어?
  아니. 없는데.
  그래, 아마 없겠지. 나도 어릴 때 외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니까. 웬만해서는 들을 수가 없지. 나 어릴 때 외할머니한테 맡겨져서 몇 년 시골에서 자랐다고 했잖아.
  그랬지.
  그때 들었어. 가마귀신 이야기는 순진하고 동시에 잔혹해. 왜냐면, 가마귀신을 만나려면 나 스스로 그 순진하고 잔혹한 이야기 속에 들어가야 하거든. 어려운 일이잖아? 근데 할머니 말로는 그때는 그 어려운 일이 종종 일어났대.
  미미가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손끝에 매달린 담배가 가늘게 떨린다.
  요즘 너무 많이 피우는데?
  응, 다시 피우기 시작한 후로 좀 그렇네. 이거라도 피워야 마음이 좀 나아. 어쨌든, 다시 가마귀신으로 돌아가서?
  그래, 다시.
  내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인가였는데, 그러고 보니 딱 솔미만 할 때였네. 할머니 따라 옆 마을 잔칫집에 갔어. 근데 그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초상집이더라고. 나는 어릴 때 마당에 불 지피고 가마솥에 뭐 끓이면 다 잔치라고 생각했나봐. 좀 자세히 생각해보면 상주들이 내던 곡소리도 들었던 것 같고, 할머니가 담배 말아 물다가 훌쩍인 것 같기도 해. 아마 할머니 친구 상이었나봐.
  이런 거 생각하면 내가 참 철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릴 때부터 세상을 내 좋을 대로 편하게 생각하고 산 것 같아. 세상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항상 얹혀 있었는데, 나만 다르다고 착각하고 산 거지. 은근히 남들한테 다르다고 자랑도 하면서 말이야. 생각해보니 울 엄마도 그랬던 것 같아. 자기 인생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해서 늘 외로웠어. 그림만 그리다가 아빠하고 이혼했어. 아빠는 끝까지 자기만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해보면 어린애 같기도 하고. 자기 딸한테 말 붙이는 것도 어색해했거든. 엄마는 이혼하고 좀 있다 자살했어. 한겨울에 철원 들판에서 수면제랑 같이 발견했는데, 머리하고 큰 뼈 몇 개만 찾았어. 경찰 말 듣고 난 바로 알았지. 엄마는 대머리독수리에게 자기를 줬어. 그게 자기에게 어울리는 죽음이라고 생각한 거야. 대머리독수리를 좋아했거든. 그 후로 다시 외할머니하고 살았어. 어차피 중학 때부터 기숙학교에 있었으니까 방학 때만 몇 달 같이 산 거지. 외할머니는 나 대학 입학하고 풍을 맞았어. 몸을 못 움직이게 됐다는 걸 알고 난 후로는 아무것도 안 먹었어. 영양주사, 뭐 이런 것도 고래고래 고함까지 질러가며 끝까지 안 맞았어. 곡기 끊기 전에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미미야,
  응?
  우리 강새이. 할미 걱정은 하지 마래이. 죽는 거는 소쩍새 우는 밤중에, 산으로 혼자 걸어 드가는 거하고 비슷해. 쪼매 외로바도 무서불 건 없어. 거도 뭐등가 있을 거니까. 없으마 없는 대로 또 개안코. 인제 우째 살꼬 막막하제? 걱정 마라. 우째 다 살아진다. 착한 남자 만내고, 우쨌든동 사는 동안 재밌을라고 노력해야 되는 기라. 그냥 되는 건 없더라꼬. 할미 제사는 지내지 말고.

  그러고 보름 만에 돌아가셨어. 결국, 할머니도 자살한 거지. 그 엄마의 그 딸이지. 좀 이상한 집안이지? 나도 자살하게 될까?
  한 집 건너 사연 하나씩 있어. 외할머니가 쿨했구만. 억지로 이상하게 만들지 마. 그것보다 가마귀신은?
  아, 미안. 또 샜네.
  할머니 친구 상까지 했어.
  그래, 어쨌든 그때 난 할머니 옆에 앉아서 고기도 먹고 부침개도 먹고 좋았어. 그러다가 뭐가 매워서
  할매, 물.
  이러면, 할머니가 한번 휙 둘러보고는
  아나.
  이러면서 마시던 막걸리 줘. 바쁜 손에 손주 물심부름까지 시키기 뭣했겠지. 어쨌든 난 납죽납죽 한 모금씩 받아 마셨어. 그러고는 해가 기울 때쯤 술 취한 손녀와 할머니가 손잡고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와. 지금 생각하니 좀 웃기네. 어쨌든, 오는 길에 얼근한 할머니가 웅얼웅얼 노래를 불렀어.

  둥글 둥글 둥글레야 그믐사리 꽃 닫아라 가마구신 댕기간다
  둥글 둥글 둥글레야 가마구신 부르면은 조롱조롱 대답 마라
  둥글 둥글 둥글레야 깔딱깔딱 대답하면 가마소에 끌리간다

  그래서 내가 물었지.
  할매, 가마구신이 뭐야?
  뭐? 가마구신? 아이고 우리 강새이, 무서불 낀데. 개안겠나?
  그러고는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해.
  우리 동네 또랑, 저 백천白川 따라 5리쯤 내려가면 가마소가 안 있나. 기염돌이라고 바우 베름빡 따라 물 돌아가는 자린데, 가마솥매로 둥그마니 깊어서 맨날 물빛이 시커매. 물이 대구빡 가마매로 휘휘 돌기도 하고, 그래서 가마소라 캐. 여름에 큰물 나서 사람이 잘못 쓸리 가마, 고마 물 빠질 때까지 찾을 수가 없거등. 물 빠지고 물길 따라 이래저래 찾아 내리가마, 열에 아홉은 가마소 바닥에 안 있나. 큰물 져도 가마소 바닥에 까라앉으마, 물이 이래~ 돌아서 더는 안 떠내리가. 그 가마소 속에 구신이 안 사나. 그기 가마구신이라.
  요새는 그런 일이 잘 없지만도, 할미 어릴 때는 동네에 사람이 없어질 때가 있었거등. 큰물에 쓸리 가뿌거나 산태가 나서 묻히거나, 재 너머 학교 댕기오던 아가 늑대에 물리 가거나. 우쨌든, 그래 동네에서 누가 없어질 때가 있어. 그럴 때는 동네 사람이 전부 나서서 찾는데 당최 못 찾을 때가 있어. 찾다 찾다 못 찾으마 사람들이 슬거머이 손을 놓거등. 그라마 식구들만 애가 달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라. 그라마 딱 마지막 방법을 써보는 기지. 그기 바로 가마구신한테 물어보는 기야. 근대 이 구신을 만낼라마, 꼭 지키야 되는 법이 있거등. 깜깜한 그믐밤, 그라고 시(세) 번. 그기 법이야. 그라고 구신한테 홀리가 밤새 같이 놀아주야 돼. 놀다가 쪼매 친해지고 나마 다 알리주는 기라. 이 난리가 어데서부터 잘못돼서 일어난 긴지. 그래도 절대 정답은 바로 안 알리주는 기라. 그래야 홀린 사람이 더 듣고 싶어 안달하거등.
  우쨌든, 가마구신을 만낼라마 달도 없는 그믐밤 자시子時에, 가마소에 가서 가마구신을 불러야 돼.
  할매, 자시가 뭐야?
  머? 자시? 아이고 우리 강새이 알고 잡은 거도 많네. 자시는 한밤중이지. 시계로 치마 밤 12시. 니 코~ 하고 자는 때. 알겠나?
  어.
  아이고야, 야그(이야기)를 오데까지 했노?
  가마구신 부르는데.
  아, 그래. 그래가 구신아 놀자, 가마구신아 놀자. 가마구신아 놀자. 요래 세 번 부르고 기다리마, 고마 물소리가 잠잠하이 멈추고, 컴컴한 물속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기라. 근데 이 가마구신은 누가 지를 왜 불렀는지 다 아는 기라. 그라이 지를 부른 사람 이름도 다 알아. 우리 강새이 같으마 ‘미미야’ 요래 부르겠지. 그런데 요때 한 번에 대답을 해삐리마 안 돼. 꼭 이름을 세 번 부를 때까지 기다리야 돼. 그라니까 ‘미미야 미미야 미미야’ 요래 세 번을 부르고 나면 대답하는 거야. 안 그라마 고마 싹 홀리가 물속으로 끌고 드가뿌는 기라. 우쨌든 세 번을 기다린 다음에 ‘어 내다’ 대답하마, 고마 물소리가 다시 들리고 부른 사람 몸으로 가마구신이 쑥 들어오는 기라. 그라고는 찾고 있는 사람한테 델꼬가. 근데 그냥 가는 기 아인 기라. 이 구신은 오랜만에 얻은 사람 몸이 반가바서 장난감매로 이리저리 가주 놀아. 그래 놀며 가며 구신이 모타(모두) 이야기해주는 기라. 이 난리는 어데서 시작됐고 우짜다 요지경까지 왔는지, 싹 다 말해주. 그라마 구신 씌인 사람은 후회도 되고 설바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기라. 그런데도 계속 실실 웃어. 미친 것매로 울다가 웃다가 하는 기지. 그래가 밤새 산으로 들로 놀이 삼아 끌고 댕기다가, 새벽이 이래~ 밝아 오마 그제사 찾고 있던 사람 있는 데를 알리주. 그라고 지는 쏙 빠져나가삐는 기라. 그라마 그리로 찾아가가 찾던 사람이나 유품 될 만한 거를 발견하는 기야.
  아이고 숨이야, 후~
  할매 숨차?
  그래, 숨차네. 그래도 할미 개안타. 걱정 마라. 근데, 니 안 무십나?
  하나도 안 무십다.
  아이고 우리 강새이 장군감이네. 그래도, 가마구신한테 홀맀던 사람은 까딱하마 정신이 반은 나가. 잘못하마 죽기도 하고 그래. 그라이까네 절대 가마구신을 만내면 안 돼. 죽은 사람은 보내주고 산 사람은 산 사람끼리 살아야지. 죽은 사람한테 그리 애쓰고 매달리면 안 돼. 하긴, 그기 그래 마음대로 되마 그런 일이 생기겠냐마는. 우쨌든, 동네 아들이 멱 감으로 가마소 가자 하마 절대 따라가면 안 돼, 알겠나?
  어. 할매.
  아따 우리 강새이 착하네. 그래, 어여 집에 가자.
  그러고는 할머니는 다시 노래를 흥얼흥얼 불러.
  둥글 둥글 둥글레야⋯⋯.

  그러니까,

  가마귀신을 만난다는 건 목숨을 걸고 사람을 찾는 방법인 거지. 이상하고 어려운 일이잖아? 근데 그 어려운 일이 그때는 종종 일어났다잖아. 왜 그랬을까? 사람이 점점 많아진 탓일까? 왜냐면, 귀신은 인간에게만 속한 비극이잖아. 생각해보면 산이며 바다며 귀신들이 그득그득하잖아? 온 세계가 비극인데, 그 비극을 확인하기 위해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내는 일을 반복하는 건 어떤 심사지? 사실, 사람들은 비극이 자기 앞에 서기 전까지는 모두 모른 척하고 살잖아. 그런데 가마귀신을 찾는 건, 최악을 떠올리고 그리로 엉금엉금 기어가서, 기어이 비극을 완성 시키는 꼴이잖아. 비극 다음에는 행복 비슷한 게 올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야. 믿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장 비극적인데, 그렇잖아? 이쯤 되면, 비극은 인간 그 자체인 걸까? 근데, 우리도 그런 믿음에 빠지면 솔미를 찾을 수 있을까? 가마귀신을 만나볼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진심이야?
  응. 만약 진짜라면? 어떤 거라도 알 수 있다면 어떡해? 우리 해볼까? 난 솔미도 찾아야 하지만, 우리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가 더 궁금해. 처음에는 솔미만 찾으면 뭐든 상관없었는데, 이제 알아야겠어. 왜 우리가 이렇게 당해야 하는지. 뭔가 이유가 있다면, 납득이 된다면 다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아. 당신이랑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이 아파트 사려고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당신은 납득이 돼?
  미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진정해, 그 이야기는 누가 봐도 동네 아이들 겁주려고 만든 이야기잖아. 아냐?
  맞아, 맞는데⋯⋯ 혹시 진짜면? 그러면 어떡해?
  떨리는 ‘혹시’라는 단어가 미미의 입에서 나왔다. 더 이상 이해는 필요 없다. 이해의 범위를 벗어난 방법만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
  하― 난 모르겠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일단 뭐 좀 마실래?
  당신 마셔. 난 이따가.
  그러지 말고 뭐 좀 먹어.
  그래, 당신 먹는 거 한 잔 줘.
  미미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눈은 다시 먼 곳을 향한다.

  나 사실,

  요즘 꿈에 솔미가 보여. 무거운 물속에 누워 있어. 살은 없고 뼈만 남았는데, 난 그게 솔미인 줄 금방 알아.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아. 바닷속인지 강 속인지 연못 속인지 모르지만 난 알아. 그게 가마귀신의 장난이란 걸. 그러면 나는 캄캄한 그믐밤의 들판으로 나가 뛰어. 뛰면서 귀신을 불러.
  귀신아 놀자. 귀신아, 가마귀신아 놀자.
  그러면 가마귀신이 솔미 모습으로 나타나.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날 세 번 불러.
  미미야 미미야 미미야.
  그래, 솔미야 왔어? 어디 아픈 데는 없어? 배는 안 고파? 이것 좀 먹어.
하고 내 주머니에 든 젤리를 꺼내서 건네. 그 왜, 솔미가 좋아하던 왕꿈틀이. 그러면 귀신이 그걸 받아들고 이렇게 물어.
  너 나 좋아해?
  몰라.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더라고. 내가 이 귀신을 좋아하는 건지. 필요해서 내가 이용하려는 건 분명한데,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눈앞에 솔미같이 생긴 귀신을 이용해서 솔미를 찾아야 하니까 이 귀신과 놀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진짜 좋아해야 할 것도 같고 그랬어. 아니, 벌써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어. 그래서 우물쭈물하고 있었거든. 근데 귀신이 꽤 쿨하더라고.
  그냥 같이 놀자.
  그래 같이 놀자.
  그러고 나니까 불빛 보고 날아드는 곤충처럼 다른 귀신들이 날아들어 어깨를 툭툭 쳐.
  미미야 너는 뭐 좋아해?
  몰라, 모르겠어. 솔미야, 아니, 귀신아, 그냥 솔미만 좀 찾아줘.
  대답하고 캄캄한 그믐의 밤 속을 계속 봐. 보고 있으면 어둠과 복잡하게 날아드는 곤충 사이를 뚫고 당신이 슥 나타나. 그리고 귀신에게 물어. 온갖 욕을 다 해대면서 물어.
  근데, 씨발, 도대체 우리 솔미는 어디 있냐고? 어? 야 이 개새끼야. 좆같은 새끼야. 빨리 대답 안 해? 죽고 싶어? 아, 아니지 귀신 새끼가 또 뒤질 리는 없고, 암튼 야 이 새끼야. 빨리 말해! 빨리!
  난 당신 욕하는 거 처음 보는데, 이상하게 전혀 놀랍지 않아. 그런 내가 더 놀라워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당신이 털썩 무릎을 꿇어. 그러고는 싹싹 빌어.
  미안, 내가 잘못했어. 제발 알려줘. 내가 이렇게 빌게. 아니 빌게요. 말해주면 평생 모실게요. 날마다 제사도 지내주고 다시는 욕하지 않을게요. 제발 알려줘요. 우리를 봐요. 우리는 살을 맞대고 썩어가고 있어요. 제발 우리를 여기에서 꺼내줘요. 알려주면 당신은 좋은 솔미, 아니, 귀신이 될 수 있어요.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이제 아무도 당신을 나쁘다고 말 못하게 될 거야. 내가 당신을 지킬게. 나를 믿어요. 내가 죽을 때까지 기념할게요. 제발 알려줘요. 솔미가 어디 있는지.
  그러면 나도 당신 옆에 털썩 꿇어앉아 같이 빌어.
  제발 알려주세요. 이 사람 나쁜 사람 아닙니다. 약속도 꼭 지킵니다. 그러니까 좀 알려주세요. 이 사람이 못 지키면 저라도 꼭 지킬게요. 제발요. 도대체 왜 우리가 이런 꼴을 겪어야 해요?
  그러면 솔미인지 귀신인지가 실실 웃어. 이렇게 어깨까지 들썩거리면서 키들키들 웃어. 그걸 보다가 잠이 깨. 이렇게 두 손을 싹싹 빌면서.
  미미가 두 손을 비비는 시늉을 한다. 담뱃재가 툭 떨어진다.

  자,

  어?
  홍차, 꿀 좀 탔어.
  응.
  일단 좀 마셔. 담배 좀 놓고.
  그래.
  미미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홍차를 후르릅 마신다. 달콤하고 떫은 액체가 까끌한 목구멍을 어루만지며 넘어가자 웅크린 어깨가 스르르 풀린다.
  맛있다.
  해보자.
  응?
  가마귀신 불러보자고.
  정말?
  그래. 그게 뭐라고. 이제까지 한 일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그믐에 거기 가서 부르면 되잖아. 일단 해보는 거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해보면 알겠지.
  정말? 당신 괜찮겠어?
  괜찮아. 꿈에까지 나올 정도면 어떻게든 확인을 해야지. 안 그럼 너 계속 신경 쓰이잖아. 안 그래?
  맞아.
  그럼 해. 뭐 어찌 됐든 저번에 그 무당보다는 낫겠지.

  아, 그 무당.

  저물녘 시작한 징 소리가 달이 중천에 오도록 계속됐다. 무당은 징 소리에 맞춰 방울을 흔들며 한참을 뛰었다. 그러고는 흰 천에 낫을 매달아 바다로 던졌다 당기기를 반복했다. 뭐가 잘 안 되는지 수십 번을 던졌다. 그러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눈을 살짝 뒤집는 듯하더니 멈춰 섰다. 징잡이가 오셨다고, 손 모으고 빌라고 했다. 미미와 강호는 배운 대로 손을 비비며 머리를 굽신거렸다.
  불러보소. 딸 이름.
  징잡이가 다시 말했다.
  솔미야? 엄마야, 아빠야. 솔미야?
  계속 굽신거리며 불러도 무당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달빛 아래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뒤집힌 눈동자가 돌아왔다.
  오긴 왔는데 아무 말도 안 해. 어둡고 축축한데 아무 말을 안 해. 말을 못하는 상황이거나 말하기 싫은 거야. 이러면 오늘은 안 돼. 손 없고 따신 날 잡아서 다시 해야 해.
  다시요?
  어, 영이 따뜻해야 말을 한대. 이러면 어쩔 수가 없어.
  그럼 비용은요?
  이번에 5백 냈으니, 다음에는 3백만 내. 준비는 똑같아도 사정이 이러니 나도 다는 안 받아.
  뺨이라도 한 대 후리고 싶은 걸 꾹 참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있대!

  뭐가?
  가마소.
  미미가 휴대전화로 가마소를 검색했다.
  백악기에 형성되었다는 백천구곡은 거대한 화강암 암반대로 수만 년 동안 침식을 거듭하며 수려한 풍경이 되었다. 예부터 지나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벽계수가 돌아 나가는 곳마다 정자가 지어지고, 자연을 즐기는 양반들의 풍류도 같이 흘렀다고 한다. 하지만 불과 수년 만에 백천구곡의 수려함은, 낡고 쪼그라든 양반 탕건같이 체면만 남게 되었다. 계곡을 따라 도로가 나고 여기저기 펜션에 캠핑장, 무인 모텔도 지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산을 뚫고 나와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편 산으로 들어가는, 높고 거대한 고속철도 교량도 지나간다. 이제는 물길이 틀어져서 그 많던 소도, 너럭바위들도 모래나 자갈에 묻혀버렸고 유량도 백천구곡이라 부르기 민망하다. 그나마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소는 운 좋게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가마소밖에 없다.
  가마소는 아직 있대.
  그래, 다행이네.
  우리 딱 이번까지만 해보자.
  그래.

  마른장마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대체로 고온 다습하고 국지적으로 소나기 내리는 곳이 있겠습니다. 자외선 지수도 높습니다. 될 수 있으면 낮 시간 야외 활동은 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기상 캐스터의 말을 들으며 시동을 켰다. 차 안은 아침부터 뜨겁게 데워져 있다. 창을 내리고 내비게이션에 백천구곡을 쳤다. 강호가 모자와 물을 챙겨 들고 조수석에 앉는다.
  내가 할까?
  아냐, 괜찮아. 가다가 교대해.
  그래.
  에어컨을 켜니 엔진음에 웅~ 이 덧붙는다. 시내를 벗어나니 짙은 초록색 산 위로 적란운이 뭉글뭉글 올라간다. 간간이 매미 소리도 올라탄다.
  소나기가 올 수도 있겠다.
  그렇겠네.
  서늘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이글거리는 고속도로를 두 시간 달리다가 휴게소에 들렀다. 강호가 운전대를 받았다. 고속도로를 내려와 국도를 달리니 금방 큰 댐이 나왔다. 길은 댐 구비를 따라 상류로 이어지다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예전에 없던 길이다. 재를 넘어와 외따로 길을 따라와서 국도의 종점인 동네였는데, 이제 아래에서도 길이 뚫린 모양이다. 조금 더 달리니 ‘80리 백천구곡’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좀 천천히 가봐. 너무 오랜만이라 잘 모르겠어.
  응, 알았어.
  속도를 늦추니 뒤차에서 금방 경적을 울렸다. 깜빡이를 켜고 뒤차를 먼저 보내고 다시 백천을 끼고 거슬러 올라갔다. 산등성이 따라 잘린 하늘 모양과 무너져 내릴 듯 서 있는 바위산이 눈에 익었다. 길은 계곡과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달려도 가마소는 나오지 않았다. 익숙한 이름의 마을 표지석을 확인한 다음에야 지나친 것을 알았다. 다시 차를 돌렸다. 크게 돌아가는 도로 너머로 조잡하게 세워진 장승들을 보니 장승배기 자리다. 그렇다면 조금 더 내려가면 기염돌 절벽이 보일 것이다. 천천히 차를 몰아가니 멀리 바위 절벽이 보인다. 도로가 계곡을 멀리 벗어난 탓에 물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 웅장하던 절벽도 작은 돌벽처럼 보인다.
  세워봐.
  여기야?
  강호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이 근처 같아. 저기 바위 절벽 보이지? 저기가 기염돌 같아.
  생각보다 작네? 이야기 들을 때는 굉장한 절벽같이 들렸는데.
  그러게.
  일단 가보자.
  국도를 벗어나 차가 겨우 지날 정도의 농로를 5분 남짓 달리니 길이 끝났다.
  걷자.
  그래.
  차 문을 여니 농익은 더위가 온몸을 휘감는다. 계곡 쪽으로 향하니 농로가 끝난 곳에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다. 자갈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발 딛기가 불편해 눈이 땅으로만 갔다. 자갈들 사이 작은 모래톱에 앙증맞은 개미지옥이 옴폭 옴폭 파여 있다. 땀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지옥 끝에서 나온 갈퀴가 재빠르게 땀방울을 낚아챘다가 도로 뱉어낸다. 눈을 들어보니 어느새 기염돌이 눈앞에 들어왔다.
  가까이 오니 웅장하네.
  그래, 저기야 가마소.
  미미가 가리킨 곳을 보니 커다란 바위 절벽 아래 물이 돌아가고 있다. 물이 돌아가는 너럭바위 사이에 모래가 그득 쌓였다. 깊이가 허벅지 남짓 닿을 것 같다. 소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너무 얕네.
  미미는 대답하지 않는다.
  너럭바위 보니 예전에는 대단했겠는데?
  미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이래도 있을까? 가마귀신.
  글쎄.
  이건 너무하잖아. 어떻게 이래?
  진정해, 아직 몰라. 밤에 다시 와보자. 그믐밤 자시라며. 그때 불러야 한다며.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건데? 도대체 왜 우리한테만 이러는 건데? 어?
  기어코 주저앉은 울음이 터진다. 강호는 기염돌 절벽을 올려다보며 어딘가에서 내려다보며 키들거리고 있을 것 같은 가마귀신을 찾는다. 초라한 백천의 물소리와 직박구리의 가늘고 긴 울음에 미미의 울음이 겹쳐 절벽에 부딪는다. 부딪는 절벽 기슭에 소복하게 피어 있는 찔레꽃 무더기가 눈에 들어온다. 지네 다리 같은 상상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어디에 있을까 솔미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강호는 자갈을 하나 주워 들었다. 한낮의 햇볕에 달궈진 온도가 손바닥에 뜨겁게 들러붙는다. 강호는 더 세게 돌을 움켜쥐었다. 네까짓 게 뜨거우면 얼마나 뜨겁겠어. 더 세게 쥐어주마. 이제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갑자기 미미가 벌떡 일어나서 눈가를 훔친다.
  그래, 아직 몰라. 불러봐야 알지. 밤에 다시 오자.
  괜찮아?
  응 괜찮아. 여기까지 왔는데 끝까지 해봐야지.
  강호는 찔레꽃 무더기로 자갈을 힘껏 던지고 휘청이는 미미를 잡았다.
  그래, 밥 먹고 좀 쉬다가 밤에 다시 오자. 그러면 알게 되겠지. 그게 뭐든. 일단 가자.
  응, 가.
  온 길을 다시 거슬러 차로 향했다. 한낮의 태양이 온몸으로 내리꽂힌다. 휘청휘청 앞서가던 미미가 휙 돌아서며 묻는다.
  근데, 내가 부르는 게 나을까 당신이 부르는 게 나을까?
  강호는 온몸이 따끔따끔 뜨겁다.
  글쎄, 누가 좋을까?
  후드득, 땀방울이 자갈을 적신다.
  
  

임성용

1975년 경북 김천 출생.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맹순이 바당」으로 등단. 소설집 『기록자들』, 공저 『잽』, 『유린 이야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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