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

  

  그해 여름 나와 어머니는 함께 다닐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같이 다녔다. 대개는 집 근처의 가게들이나 관공서 같은 곳이었지만 때로는 버스를 타고 멀리까지 나갔다. 나는 그걸 어머니가 나를 좀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라고 믿었다. 때는 여름방학이었고 아홉 살짜리를 종일 집에 혼자 두는 게 어머니로서는 얼마나 마음 쓰이는 일이었을지 그때는 짐작할 수 없었다.
  우리가 바깥으로 다니기 시작한 건 사실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어머니가 직장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그 무렵에는 집 근처의 종합상가 당구장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었다. 나와 단둘이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하면서 아버지와 연결된 모든 다리를 불태워버린 참이었다.
  우리가 정착한 집은 아버지의 집에서 북쪽으로 40킬로미터나 떨어진 동네, 오래된 구 전력공사 건물 사거리 옆 가파른 언덕길 꼭대기에 있었다. 집들이 드문드문 모여 있는 아래쪽 구역과 달리 그 집은 높은 곳에 외따로 있어 좁은 골목길 끝까지 걸어와서 수풀 우거진 공터를 몇 개나 지나야 했다. 어머니는 일이 끝나면 저녁거리가 담긴 봉투를 들고 가로등조차 없는 그 어두운 공터를 가로질러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종종 당구장에 들러 일하는 어머니를 훔쳐보았다. 한낮의 당구장은 한가로웠다. 짙은 선팅지를 바른 창문은 활짝 열려 있고, 부연 먼지가 떠다니는 공기 속에서 가끔 딱딱 공이 부딪히는 간결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 미묘하게 조금씩 빛깔이 다른 낡은 당구공들을 한 알 한 알 닦거나 큐대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다. 먼지 한 톨 없이 꼼꼼하게 바닥을 쓸기도 했다. 어떤 날은 아무도 없는 가게에서 누군가 잊고 갔을 담배를 꺼내 물고 연기를 피워 올리며 혼자 당구를 쳤다.
  그럴 때 어머니는 멋있어 보였다.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여러모로 사람 좋았던 그 늙은 여주인이 몸져눕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가게를 물려받은 그 아들이 홀 관리를 자기 아내에게 맡기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는 좀 더 오래 그곳에서 잘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쫓겨났고 이에 대해서는 딱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게임에 공이 몇 개 필요한지도 모르는 여자야. 그 가게는 오래 못 갈 거다.
  언제나 그랬듯이 어머니는 원망 대신 할 일을 찾았다. 다음 날부터 버스정류장에 쌓인 무가지들을 들고 와 구인 광고를 살펴 연락처들을 수첩에 적은 다음 가파른 언덕길을 다시 내려갔다. 집에는 전화를 놓지 않은 탓에 연락을 돌리려면 공중전화부스까지 가야 했다.
  공중전화부스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땀을 흘리며 수화기를 붙들고 있는 동안 도로변의 작은 물고기 가게 앞에서 물고기들을 구경했다. 시장 안에 있는 횟집 하나를 제외하면 이 동네에서 살아 있는 물고기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가게 안은 깨끗하고 고요했으며 정성 들여 닦아놓은 쇼윈도 너머 수조들에는 차갑고 깨끗한 물이 담겨 있었다. 수조마다 견출지에는 네온테트라, 제브라피시, 플래티 같은 어렵고 긴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내가 유일하게 아는 금붕어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어 놀랐고, 두 번째는 그 물고기들이 각각 눈알과 대가리, 지느러미를 가졌다는 것 외엔 거의 닮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중에는 물고기들도 때로 서로를 죽일 듯이 군다는 데 또 한 번 놀랐다. 때로는 못 볼 것도 보았다.
  어느 날 레이스처럼 길고 아름다운 꼬리를 가진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들의 연합 공격으로 가늘고 빛나는 뼈를 드러내며 뜯어 먹혔다. 젊은 주인 남자는 뜰채를 가져와 대가리만 남은 물고기를 건져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뜰채를 휘둘러 탁 털어버리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들어와도 좋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입구 쪽을 가리켰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한번은 그가 얼린 요구르트를 가지고 밖으로 나와 내게 건넨 적도 있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요구르트는 받았지만 더우면 안에 들어와 있으라는 말에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끝나지 않는 싸움 중인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어머니는 손바닥에 동전들을 올려놓고 아버지와 긴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집을 나오면서 아버지에게 했던 말을 나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전화기 같은 건 집에 두지 않을 거야. 세상도, 당신도 우리 소식을 영영 들을 수 없을 거고. 이제부터 당신 인생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게 될 거야.
  내 기억으로 어머니는 자신이 했던 말을 도로 거두는 법이 없었다. 무더위가 지날 때까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그 전화는 두 사람 모두에게 예기치 못한 사고와 같았을 텐데, 어머니가 부스 문을 평소보다 더 굳게 닫으면 나는 어머니의 입술을 읽으려 애썼다. 내 이름이 종종 등장한다는 건 알았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는 늘 나직해서 무슨 말을 나누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아버지를 그림자 취급했던 지난날들과 달리, 어머니는 이번에는 뭔가를 얻어내겠다는 일종의 전투 태세를 선포한 것 같았다. 고함을 치거나 주먹으로 부스 벽을 내리치지는 않았지만 부스 너머 어머니의 얼굴은 분노로 하얗게 불타고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려 든다면 반드시 그 일을 소리 없이 해치우고 말, 어머니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 천부적이고 파괴적인 재능을 자기 삶에서 함부로 쓰지 않았을 뿐이다. 그걸 늘 아버지만 몰랐다.

  갖고 싶어? 어머니가 통화를 끝낸 뒤 다가왔을 때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했다. 어머니는 허리를 구부려 내가 눈길을 두었던 수조를 들여다보았다.
  예쁘네. 어머니가 손가락을 들어 주황색 물고기 한 마리를 가리키자 블라우스 겨드랑이가 둥글게 젖어 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에게서는 짙은 땀 냄새가 났다. 쟨 플래티예요. 내가 대답했다. 어머니가 잠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들어가보자. 구경 좀 한다고 돈 내는 건 아니니까. 어머니가 손을 뻗어 유리문을 밀자 낯설고 차고 비린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른 보도블록 위로 쏟아졌다.
  잔뜩 땀을 흘리며 안으로 들어서는 우리를 본 주인 남자는 조금 놀라는 얼굴로, 서둘러 물 묻은 손을 수건에 닦으며 우리에게 다가오려 했다. 어머니는 곧바로 손을 저었다. 구경만 할 거예요. 남자는 주춤대더니 그러셔도 됩니다, 하고는 다시 수조 청소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까 봤던 플래티 앞에 섰다. 손톱 끝으로 수조 유리를 톡톡 건드리자 밝은 주황색 물고기들이 꼬리를 흔들며 도망쳤다.
  네가 아기였을 때 우리도 저런 걸 키운 적이 있었어. 내 기억에는 없는 이야기였다. 그럼 그 물고기들은 다 어디로 갔어요? 내 물음에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네. 다 어디로 갔는지. 어머니는 물고기를 처음 본다는 듯이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수조를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가 아무것도 사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금방 초조해졌다. 어서 가게 문을 열고 뜨겁게 달궈진 바깥 공기 속으로 다시 나가고 싶었다.
  어머니가 나를 부른 건 가게 중앙 벽에 붙어 있는 아쿠아리움 개장 포스터 앞에서였다. 온통 푸른색으로 꽉 채운 포스터에는 익살스럽게 과장된 상어 그림과 ‘국내 최초!’라는 글자가 크게 박혀 있었다. 상어는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난 입을 쩍 벌린 채 지느러미 엄지를 번쩍 치켜든 모습이었다. 동굴처럼 보이는 그 입 안에는 빨갛고 파란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아쿠아리움보다는 건강한 생선 통조림을 광고하는 듯한 포스터였다. 뉴스에서 이곳의 시끌벅적한 개장 풍경을 본 기억이 났다.
  재밌을 거 같네. 우리도 가볼까?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포스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어머니가 통장과 고지서를 넣어 다니는 작은 손가방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내 포스터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기 시작했다.
  주인 남자가 젖은 손을 닦고 가게 구석에 있는 작은 책상으로 다가갔다. 서랍을 열고 뭔가를 찾았다. 이윽고 남자가 다가와 건넨 건 아쿠아리움 입장료 할인쿠폰 두 장이었다. 남자는 쿠폰은 어머니에게 건네면서도 눈길은 나를 향한 채 말했다. 여기 가면 엄청나게 큰 상어를 볼 수 있대. 어머니는 고맙다고 인사한 뒤 그걸 받아서 내 손에 건네주었다.

  나는 한동안 그 쿠폰을 베개 밑에 넣고 잤다. 그건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오랫동안 버리지 못한 습관이었다. 더 아이였을 때는 더 많은 것을 넣어두었다. 반쯤 먹고 남겨둔 초코 쿠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지폐 몇 장, 단내를 풍기며 물러지기 시작한 딸기 몇 알, 귀퉁이가 찢어지고 닳은 매직 홀로그램 카드들.
  한번은 어머니가 내 베개 밑에서 줄무늬 잠자리를 발견한 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그걸 쓰레기통에 버리는 대신 전시하듯 내 책상 위에 가지런히 펼쳐두었다. 어머니의 의도가 무엇이었건 간에 아침에 깨어나 그걸 본 나는 일종의 경고라고 느꼈다. 나는 잠자리를 손바닥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은 다음 화장실로 가서 변기 속에 떨어뜨렸다. 물을 내리자 잠자리의 얇고 반짝이는 날개가 어두운 소용돌이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그 무렵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살기 시작했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주변을 흐르는 모든 공기 속에서 나는 그 사실을 알았다. 우리의 길고 길었던 외출도 끝이 난 것처럼 보였는데, 방학이 끝나가고 있었고 어머니도 다시 일자리를 구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어머니는 구청 직업교육센터에서 컴퓨터 수업을 들으며 중고 컴퓨터를 살 계획을 세웠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처음 여기 와서 일했던 24시간 식당, 어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한치의 자비 없는 일터로 돌아갔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일주일 내내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일한다는 조건이었다.
  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옷도 갈아입지 않고 한동안 누워 있곤 했다. 나는 혼자 집에 있는 것이 싫어 학교가 끝나면 식당 근처에서 어머니를 기다리거나 책가방을 멘 채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가끔씩 베개 밑에서 아쿠아리움 쿠폰을 꺼내 기한이 얼마나 남았나 살펴보았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그즈음 내가 느꼈던 뚜렷하고도 이상한 감정이다. 나는 어머니가 약속대로 나를 아쿠아리움에 데려가주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어머니가 나를 어디로도 데려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중전화 앞에서 땀을 흘리며 온몸으로 받아냈던 그해 여름이 내 안에서 뭔가를 앗아가버린 것 같았다.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밤이었다. 우리는 나란히 누워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쏟아붓는 장맛비에 슬레이트 지붕 위 시끄러운 파열음이 타닥타닥 귓전에 울렸다. 눈 깜짝할 새 지상으로 던져진 갈 곳 없는 빗방울이 뛰어다니는 소리 같았다. 어머니는 한 시간째 누운 채로 꼼짝하지 않았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생각은 다른 곳을 떠도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이번 싸움에서는 철저히 패배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어머니가 집을 떠나던 날부터 예견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현관을 나서서 문을 닫을 때까지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조용히 흐느끼기만 했다. 큰소리 한 번 없고 물건 깨질 일도 없는 너무 조용한 이별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결정을 너무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러니 어머니로서도 더는 할 게 없었으리라. 아버지는 함께 살면서도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늘 몰랐고, 그래서 어머니의 파괴적인 힘을 무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져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는 내 아버지이기도 하므로, 아버지도 행복을 찾기 바란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어머니를 얼마나 철저히 무너뜨릴 수 있는지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머니를 깊고 깊은 생각의 우물에서 흔들어 깨우는 것뿐이었다.
  엄마, 얘기해주세요, 내가 태어나던 날 이야기. 내가 속삭이자 어머니는 지상으로 건져진 물고기처럼 갑자기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희미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리더니 나를 꽉 껴안았다.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채 귀를 기울였다. 수십 번도 더 들은 이야기였지만 여전히 숨을 죽였다.
  네가 내 몸에서 빠져나왔을 때 내 심장은 멈췄어. 갓 태어난 너를 바라보면서 나는 한 번 죽었었어. 그거 아니? 심장이 멈추면 모든 게 끝나는 거야. 아주 자유로워지고, 이내 슬퍼진다. 몸이 가볍게 떠올라 천장에서 그 수술실을 내려다볼 수 있었어. 문득 누워 있는 내 얼굴을 봤는데 너무 낯설고 편안한 기분이라 어쩐지 무서워졌어. 어떤 목소리가 나를 불렀고, 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
  이 대목에 이르면 나는 늘 슬퍼지고 동시에 기뻤다.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그때 네가 울기 시작했어. 너는 시끄럽고 빨갛고 부드러운 열매 같았다. 입을 봉오리처럼 활짝 벌린 채 울었지. 그 모습을 보자 너를 만지고 싶어서 나도 울기 시작했어. 잠시 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단다. 너를 만지려고.
  훗날 개명을 위한 내 출생증명서와 함께 받은 의료기록지에서, 나는 심장이 멈췄다는 어머니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았다. 서고 가장 높은 곳에서 누렇게 바스러져 가는 서류 뭉치를 찾아낸 수녀는, 그걸 갓난아이 다루듯 조심스레 내게 건네주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한때 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거야,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아무리 나쁘고, 아무리 쓸모없는 인간이라도 작은 신화쯤은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우리가 아쿠아리움에 가게 된 건 그 여름도 지나, 개천절 연휴가 시작되던 날이었다. 공교롭게 그날도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할인쿠폰은 오래전에 기한이 지나버렸다. 그래도 우리는 집을 나서기로 했다. 어머니는 이날을 위해 미리 식당 주인에게 양해를 구했고, 비록 저녁이 되면 다시 출근해야 하지만 그래도 한나절의 휴가를 얻을 수 있었다. 언제 다시 이런 시간을 얻을 수 있을지 몰랐다.
  아쿠아리움까지는 2시간 가까이 걸렸기 때문에 어머니는 새벽부터 김밥을 쌌다. 작은 배낭에 삶은 달걀과 전날 사 온 과자와 음료수도 담았다. 어깨와 손목이 좀 아프니 배낭은 내가 멜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 우리는 비가 그치기를 부질없이 기다리다가 결국 각자 우산을 썼다. 비탈길을 내려가 여름내 드나들었던 그 공중전화부스 옆 정류장 앞에 섰다. 어머니는 더 이상 공중전화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물고기 가게의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았다. 쇼윈도에 걸어놓았던 반짝이는 전구들을 포함해 불이 다 꺼진 가게는 컴컴했다. 수조들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하고 푸른 빛만이 가게를 채우고 있었다. 입구의 유리문에는 ‘매매’라고 매직으로 써둔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아주 공들여 쓴 듯한 반듯한 글씨였다.
  나는 잠시 보고 오겠다고 어머니에게 말하고 가게로 달려갔다. 코를 바짝 붙이고 유리창 너머를 살폈다. 주인 남자는 없었고, 수조들 안에서 일정하게 보글대는 공기 방울만 고요하게 떠다녔다. 어두워서인지 물고기들은 작은 수초들과 돌 밑에 몸을 숨기고 아주 느릿느릿 움직였다. 그제야 나는 여름 내내 이곳을 지켜보는 동안 가게로 들어가는 손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딱 한 번 방문했던 우리 외에는.
  가게 벽에는 아쿠아리움 포스터가 귀퉁이 한쪽이 떨어진 채 여전히 붙어 있었다. 곧이어 버스가 도착했고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

  그 물고기 가게를 떠올릴 때면 생각한다. 인간들의 실패는 조금씩 닮아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서둘러 뿌리를 내리고 싶어 때로는 잘못된 곳에 안착한다. 당연히 그곳에서도 쫓겨난다. 하지만 보행 동물에게 애초에 뿌리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렇게 된 이상 다시 걸어야 한다. 물고기 가게 남자도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어딘가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날 버스를 네 번이나 갈아타고 아쿠아리움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시기를 아주 잘못 골랐다는 걸 깨달았다.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그나마 견딜 만했다. 문제는 연휴 첫날임을 선포하듯이 몰려드는 인파였다. 건물 옆 광활한 주차장은 이미 자동차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꾸역꾸역 걸어서 도착하는 사람들까지 가세해 사방은 북새통이었다.
  아쿠아리움은 파란색 외부 도장과 시끌벅적한 네온사인으로 치장한 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건 최첨단 시설이라기보다는 혼란에 빠진 광대 같았다. 나는 건물의 외관에 조금 실망했지만 누구도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개장 시간까지는 30분이나 남아 있었지만 이미 건물 매표소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우산 밖으로 나온 어깨와 발등에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줄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칭얼대는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우리는 몇 시간 뒤면 다시 이곳을 나서야 했고 주어진 한나절의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갔다. 잠시 후 매표소가 열렸지만, 그 앞에 길게 이어진 줄은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선 채로 한 시간이 흘러갔다. 안으로 들어설 수조차 없을 것 같아 불안했다. 어머니는 나를 내려다보며 안심하라는 듯 눈을 마주쳤지만 쏟아지는 비에 온몸이 젖어 있었다. 주변을 한참 유심히 둘러보던 어머니가 이윽고 말했다.
  방법을 찾아볼게. 여기서 기다려. 나는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한 사람은 줄을 지켜야지. 겁을 먹은 내가 손을 꽉 잡자 어머니는 팔목이 아픈지 작게 비명을 지르며 내 손을 털어냈다.
  잠시 후 어머니가 촘촘하게 들어선 인파를 뚫고 멀리 매표소 앞까지 가는 동안 나는 그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언젠가 동물도감에서 본 이야기가 생각났다. 펭귄도 물범도 새끼가 태어나면 그 어미와 새끼만 아는 목소리를 나눈다. 어미는 먹이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 소리에 기대어 설원과 바위틈을 빽빽하게 채운 동족들 사이에서 자신의 새끼를 찾아낸다.
  어머니는 금방 돌아왔다. 건물 끝 쪽의 다소 비밀스러워 보이는 출입구로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곳은 조용했고, 단정하게 제복을 차려입은 여자들이 손님들이 지나갈 때마다 깊숙이 허리를 구부려 인사했다. 우리가 지나가자 무전기를 들고 입구를 지키던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누군가가 가벼운 눈짓으로 인사했다. 어머니도 짧게 고개를 숙여 답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곳은 예약 손님을 받는 별도의 입구였다. 그때 어머니가 그 복잡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곳을 발견했는지, 그 통로로 들어가기 위해 정확히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어머니와 나는 이후 그날의 일에 대해서는 끝내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돈을 더 지불하는 방식의 것은 아니었으리라 짐작한다. 이후로 어머니는 조금씩 편법에 능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갔지만 그때만큼 자연스럽고 능숙한 적은 없었다.

  아쿠아리움 내부는 서늘한 비 냄새로 가득했다. 나직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커지는 웅성거림에 그 소리는 금방 파묻혀버렸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물결에 휩쓸리듯이 전시장을 지나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우리는 인파에 휩쓸리며 열대어들이 가득한 수족관을 지났다. 문득 이곳에 오면서 봤던 물고기 가게가 떠올랐다. 그 주인 남자는 이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물고기들이 가득하다는 걸 알았을까, 왜 무심한 발걸음만 가득한 그 시장 도로에 가게를 열었을까.
  이곳의 물고기들은 너무 화려해서 수조들마다 색색의 폭죽을 터뜨려놓은 것 같았다. 시간은 11시를 막 지나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한참 남았지만 내가 감각하는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갔다.
  돌이켜보면 나는 일종의 마취 상태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눈앞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물고기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피는 바람에 뒷사람들의 불평을 샀다. 그러면서도 어머니 쪽은 보지 않았다. 어머니는 숨길 수 없는 피로로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고 사람들이 밀칠 때마다 휘청거리며 내 손을 더 꽉 쥐었다. 그 손은 축축한 에어컨 공기 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저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고, 나도 그걸 잘 알았다. 그러니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며 한껏 즐거워했어야 했다. 하지만 어떤 이상한 감각, 돌이켜보건대 수치심이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뭔가를 일깨운 것 같았다. 그 아쿠아리움은 다채로운 물고기들만큼이나 즐겁고 평범해 보이는 가족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도 마음만 먹었다면 저런 걸 내게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무자비한 손이 어머니를 그 평범했던 생활로부터 낚아채 낯선 곳에 내동댕이쳤는지는 어린 내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눈으로는 물고기를 쫓으면서도 머리로는 생각했다. 어머니가 버티지 못하면 나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거나, 아니면 평생 길거리를 떠돌며 살아가게 될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자 울고 싶어졌다.
  그 상어를 발견한 건 전시장의 심장부로 들어섰을 때였다. 미로처럼 길게 이어진 좁은 전시장을 한참 지나자 어느 순간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그제야 사람들도 깊은 한숨을 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도 봤던, 아쿠아리움의 핵심부인 대형 수족관이었다. 사방 유리 벽을 통해 새어 나오는 푸른빛이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어서 물고기들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물속을 떠도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내 눈길은 유난히 붐비는 한쪽 유리 벽에 가닿았다. 그곳에 뭐가 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닥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은 높이로 물속에 조용히 떠 있었다. 고작 꼬리 부분을 볼 수 있었지만 얼마나 큰 개체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꼬리가 조금이라도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려 들면 사람들 사이로 비명과 놀란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나는 전시장 안으로 들어선 뒤 처음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니도 여전히 내 손을 꽉 잡은 채 상어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상어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 전에 가까이 가서 보고 싶었다. 우리도 보러 가요. 내가 말하자 어머니는 꽉 잡고 있던 손을 풀고는 내 머리를 쓸어주었다. 보고 올래? 여기서 기다릴게.
  어머니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나는 작은 흥분과 죄책감을 느끼며 쫓기듯이 어머니로부터 멀어졌다. 사람들의 몸이 내뿜는 축축하고도 따스한 열기 속으로 힘껏 비집고 들어갔다. 앞으로, 더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잠시 후 상어는 유리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 눈앞에 있었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상 가까이에서 본 상어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그저 아파 보였다. 상어의 몸을 덮은 회백색 피부는 흉터투성이였다. 베이거나 찔린 상처 위로 새살이 돋아 묵은 상처를 덮고 있었다. 상어는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건 자신의 의무가 아니라는 듯 그저 떠 있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가끔 꼬리를 움직여 균형을 맞출 뿐 수초처럼 조용히 있었다. 어둡고 작은 구멍에 불과한 그 희끄무레한 눈이 잠시 내게 향했을 때 나는 그 눈에서 짙은 피로를 읽었다.
  상어는 짧은 면회를 마친 죄수처럼 천천히 몸을 돌려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헤엄쳤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세상에, 어디 아픈 것 같아. 상어는 앞으로 잘 나아가지 못했다. 세차게 두어 번 꼬리를 움직였지만 잠시 후에는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천천히 뒤집히며 흰 배를 드러냈다. 아가미에서 희미한 핏줄기가 흘러나와 투명한 물속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심장이 세차게 뛰는 걸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놀란 사람들이 앞쪽으로 밀려들자 이리저리 짓눌리고 떠밀렸다. 어머니가 기다리는 뒤쪽을 돌아보려고 애썼다. 어서 어머니에게 이곳에서 벗어나자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소리쳐 어머니를 불렀지만 그 목소리는 어수선한 공기 속에 파묻혀버렸다.
  간신히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시 바깥쪽으로 나왔을 때,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건 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분명한 느낌으로 먼저 다가왔다. 그해 여름을 지나며 애써 외면했던 모든 징후와 조짐들이 내 곁에 도착해 있었다.
어머니가 서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살아가면서 나는 자신의 서너 살 때조차 정확히 기억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만나면 밤새 이야기를 해도 할 말이 끊이지 않았다. 각자의 머릿속에 있는 작고 어두운 극장과 그곳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필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몇몇 기억들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언제든지 머릿속에서 재생시킬 수 있었다. 너무 오래 반복해 돌려본 탓에 어떤 기억들은 더 선명해지고, 반대로 누락되거나 사라진 기억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이상한 세계에서는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그렇지 않았는지, 누가 버렸고 누가 버림받았는지 같은 건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무도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견뎌낸 시절도 그 세계에는 있었다.
  아쿠아리움에 다녀온 이후 어머니와 나는 1년 정도 더 같이 살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24시간 식당에서 하루 9시간씩 일했고, 일이 끝나면 비탈길과 어두운 공터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나도 여전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그 식당 앞을 서성였다.
  창 너머로 지켜본 어머니는 무거운 뚝배기들을 예전보다 요령 있게 쟁반 위에 쌓고 있었다. 가끔은 함께 일하는 여자들과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웃기도 했다. 당구장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이제 그곳에서도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내가 외할머니의 집으로 가던 날에는 눈이 내렸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어묵을 팔았다. 어머니와 나는 어묵 꼬치를 하나씩 쥐고 후후 불어 먹었다. 어머니가 플라스틱 그릇에 뜨거운 국물을 새로 떠서 내 앞에 놓아주었다. 저만치 할머니가 탄 택시가 깜빡이를 켠 채 우리 쪽으로 달려오자 어머니는 꼼꼼하게 싼 내 짐 가방을 내 손에 들려주었다.
  나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물고기 가게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 들어선 주방용품 가게를 바라보았다. 그 가게는 어쩔 수 없이 그날의 아쿠아리움을 떠올리게 했다.
  한동안 그 아쿠아리움은 종종 뉴스 한 면을 장식했다. 개장 이후 입장 인원에 제한을 두지 않아 안전 규칙을 어긴 것, 온도 유지와 산소 공급 장치 관리 부실로 대형 수족관의 상어들이 집단으로 폐사한 것.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한 건 나에 대한 기사였다.
  나는 배전실 구석에서 잠든 채로 발견됐다. 자정이 다 된 시간 긴급 점검을 하러 들어왔다가 나를 발견한 배전기사는 소스라치게 놀라 뛰쳐나갔다가 곧바로 사태를 깨닫고 다시 돌아왔다. 나를 흔들어 깨우고는 이름을 물었다. 야간 근무를 하던 경비 요원들이 무전으로 소식을 전해 듣고 다급하게 달려왔다.
  한 남자가 나를 번쩍 안아 들었고, 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 반쯤 졸면서 배전실 밖으로 나갔다. 한밤중의 전시실은 조용했다. 북적대던 인파는 사라졌다. 수족관들만 여전히 차가운 푸른빛을 뿜고 있었다. 중앙 통로를 지날 때는 낮에 사람들이 몰려 있던 상어 수족관을 볼 수 있었다. 그 상어가 아직도 아플까 궁금했지만 이상하게도 수족관은 텅 비어 있는 듯 고요했다.
  밤이니까⋯⋯ 나는 졸면서 생각했다. 밤이니까 상어도 수초 밑에 몸을 숨기고 자고 있을 거야.
  

*

  지금도 한밤중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날 때면 뭔가를 영영 잃어버린 듯한 느낌에 베개 밑에 손을 넣어보곤 한다. 그곳은 깊고 깊은 허방 같아서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런 밤에는 다시 잠드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어머니가 사라진 걸 깨닫고,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화장실에 간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3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초조해졌다. 어머니를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나는 왔던 길을 되짚으며, 또는 가보지 않았던 통로를 훑으며 어머니를 찾아다녔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곳은 너무 넓었고, 사방에 어머니 또래의 여자들이 가득했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만치 유니폼을 입은 안내원이 보였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머니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여자는 깜짝 놀라서 나를 방송실로 데려갔다. 곧이어 전시실 전체에 맑고 청량한 마이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자는 내 이름을 말하고 ‘지금 어머니를 애타게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몇 번 더 방송을 내보냈다.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요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경찰서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 바빴기 때문에 얼마 안 가 내가 거기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나는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와 전시실로 돌아왔다. 푸드코트 쪽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가 전시실 안에 희미하게 떠돌고 있었다. 나는 배가 고팠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김밥을 펼쳐놓고 먹을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지쳤고, 편안하게 먹고 싶었다. 그때 전시실 구석에 벽과 똑같은 색의 페인트칠을 해놓아 눈에 잘 띄지 않는 문 하나가 보였다.
  나는 그 문으로 다가갔다. 손잡이를 돌리자 문은 매끄럽게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온갖 시커먼 전선들이 거대한 동물의 내장처럼 뒤엉켜 있었다. 모든 가짜들의 뒤에 존재하는 궁여지책의 총합 같았다. 우우웅 희미한 발전기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먼지 냄새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따뜻했다. 배낭을 열고 김밥을 꺼냈다. 밥알은 딱딱했고 약간 시큼한 맛이 났지만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배낭을 껴안은 채 깜빡 잠이 들었다.

  어머니가 돌아온 건 새벽이었다. 어머니가 경찰서 유리문을 열어젖히자 경찰들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 피곤한 얼굴로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나는 경찰서에 도착한 뒤부터 시종일관 입을 꾹 다물어 모두를 곤란에 빠뜨렸다. 한마디라도 하면 모든 게 기정사실이 될 것 같았고, 그것이 나는 두려웠다.
  나는 어머니를 보고도 선뜻 달려가지 못했다. 그저 울먹이기 시작했다. 온몸이 물로 꽉 찬 것처럼 나는 출렁거렸다. 먼저 다가온 것은 어머니였다. 무덤 속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하지만 어느 때보다 다정한 얼굴로 어머니는 다가와서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어머니가 내 눈에서 애써 들여다보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른다.

  그 아쿠아리움 기억하니. 택시를 타기 직전 어머니가 잠시 나를 붙잡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혹시라도 어머니가 그날 일에 대해 사과를 할까 겁이 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어머니가 손을 들어 내 머리칼을 정리해주었다. 나중에 다시 가보자. 그때는 정말 재미있게 노는 거야.
  아쿠아리움에는 다시 가보지 못했다. 그곳은 개장 이후 1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도산했다. 그 일련의 사태에는 수많은 불분명하고도 음험한 소문들이 따라붙었지만,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물고기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해 나는 대학에 합격했다. 할머니는 내 입학식을 보기 위해 4시간이나 버스를 타야 했고, 그것이 마지막 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얼마 뒤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끝내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다. 문상객들은 많지 않았다. 나는 모두가 돌아간 텅 빈 접객실에서 탁자에 육개장과 밥을 차렸다. 텔레비전을 켰다.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다가 그 아쿠아리움에 갇혀 있었다는 고래상어 한 마리를 보았다. 그 늙은 상어는 잠시 제주도의 가두리 방사장에 머물다가 바다로 돌려보내질 예정이었다. 사람들은 상어의 살갗을 물에 적신 그물 천으로 덮고 거중기로 끌어올렸다. 상어는 몸을 떨며 푸우푸우 밭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나는 육개장에 밥을 말았다. 그 상어가 곧 마주하게 될 바다를 그려보았다. 너무 깊고 푸른. 더는 그를 알아보는 누구도 없을.
  훗날 어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어머니의 정신이 잠시 반짝 돌아왔을 때, 나는 아쿠아리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다만 그 물고기 가게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웅얼댔다. 네가 말했어. 쟨 플래티예요.

  그 동네를 떠나기 얼마 전이었다. 초저녁잠이 든 나는 잠결에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스럭거리며 옷을 입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는 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그날 밤 나는 어머니를 몰래 따라갔다. 어머니가 야간 대타를 뛴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어머니가 내가 모르는 곳으로 영영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식당으로 들어가서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하며 돌아섰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물고기 가게에 환하게 불이 켜진 것을 보았다. 주인 남자가 안에 있었다. 그는 자기 가게에 도둑처럼 들어와서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먹이를 흩뿌리는 손끝마다 물고기들이 간절하게 매달렸다. 너무 반가웠지만 인사를 건넬 수는 없었다. 남자는 언제나 단정했던 머리칼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고 술을 마셨는지 조금 휘청댔다. 나로서는 알지 못할 엄청난 환란이 그를 덮쳤다는 것을 그 실루엣만 보고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뒤 어머니와 나는 그 동네를 떠났다. 짐을 싸고 나서 어머니가 동네를 한번 둘러보자고 했다. 한참 뒤 우리의 발걸음은 어머니가 오래 일했던 당구장 앞에 다다랐다. 당구장은 망해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건물 창에 커다랗게 붙은 매매 전단지를 올려다보았다. 어머니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어머니는 거보라는 듯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당구장 앞에서 언제까지나 내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주영하

서울 출생. 2022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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