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의 시

양수덕, 『자전거 바퀴』, 상상인, 2023.

    회귀回歸는 한 바퀴 돌아서 본디의 자리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뜻한다. 풀어 쓰면 ‘돌아옴’이다. 우리는 돌아갈 곳을 잃고 헤매는 세대들이 아닌가? 끝없이 잃어버린 삶의 원형을 갈구하는 여행을 하며 방황하거나 방랑을 하는 것도 돌아갈 곳을 모르기 때문일지 모른다. 원형에 대한 회귀 본능이 낳은 태생적 그리움을 외면하고 다른 이름들로 포장하고 대체한 결과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잠들지 못하는 시끌벅적한 밤만 계속되고 있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중 한 명인 기시미 이치로는 자신의 저서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박진희 옮김, 인플루엔셜, 2017)에서 “늙고 병든 부모님에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한다. 피해 갈 수 없는 질문 앞에서 양수덕 시인은 풍요와 범람의 시대의 동어반복인지도 모를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삶의 원형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시집 『자전거 바퀴』를 통해 세상에 맞서 자전거 앞바퀴로 구르던 엄마를 따라 뒷바퀴로 살아온 날들이 시의 뿌리가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시인의 삶의 균형은 엄마의 당당하고 꼿꼿한 삶의 중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시집 한 권으로는 다 담을 수 없었던 사모곡이 『자전거 바퀴』를 통해 다시 시집 한 채로 지어져 우리에게 왔다.
 

유품들

    돌아가신 엄마를 향한 시인의 사무치는 그리움은 엄마의 손길이 닿았던 유품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무신으로 한복으로 가짜 골동품들로 장신구들과 은 숟가락, 침대와 경대 그리고 꽃화분들, 삼층장, 갈색 스웨터와 휴지들, 재봉틀과 마침내 애창곡들로 살아서 오는 것이다
    “신발장 안에서 긴 시간 손꼽던 엄마의 새 고무신들”(「유품 1─고무신」)을 꺼내던 시인은 손에도 슬픈 눈망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엄마를 아주 보내지 못하는 마음은 유품들이 손에 닿을 때마다 엄마의 부재를 확인시키며 그리움을 증폭시킨다.
    “엄마의 한복을 매만지고 들여다보다가 어떡하든 살려보려 머리를 짜냈다// 풀려 있는 옷고름을 헤치고 그 안에 내 어깨와 다리를 집어넣었다/ 잡아보려 해도 새는 물처럼 빠져나가는 엄마의 육신”(「유품 2─한복」) “아끼던 부장품을 품고 옛집이 들먹거린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먼 길을 걸어야 하는 엄마//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허공으로 덩그렇게⋯”(「유품 3─가짜 골동품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잊힌다는 말을 건너야 하는/ 저녁이 철렁”(「유품 5─은 숟가락」) “묻힐 수 없는 기억에 물을 주고 햇빛과 바람 쐬어 준다// 꽃받침이 살아나면 엄마 꽃도 살아날 것 같아”(「유품 6─침대」). 곳곳에 유품이 있고 엄마의 흔적을 어떡해서든 살리고 싶은 시인이 있다.
    새것이라고는 없는 엄마. 엄마의 곁을 지킨 것들은 하나같이 낡고 헐고 볼품이 없다. 그 헌것들이 마치 자신을 헐어 엄마를 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도 어쩌면 당신의 헌 곳으로 그들을 들여 윤을 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도 남을 엄마의 분신들, 손때들.
 

천 개의 손

    밥때가 되면 허전한 은 숟가락으로 시인은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의 일상을 지켜왔던 모든 것들을 불러 엄마를 모셔온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잊힌다는 말을 건너야 하는 시인은 철렁’ 한다. 엄마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 실감하고 싶지 않다. 시인에게 엄마는 꽃이었고 엄마가 몸을 뉘었던 침대는 꽃받침이다. 꽃받침이 살아나면 엄마도 살아올 것이다.
    시인에게 살아생전 엄마는 “태생의 하늘 올려다보며/ 틈새도 구부러질 수 없는”(「대나무는 어떻게 사나」) “노을을 귤껍질처럼 까던 엄마”(「유품 2─한복」)는 “당당했다 속이 깊었다”(「유품9─삼층장」), “먼지 하얗게 내린 대청마루,”(「유품 3─가짜 골동품들」) “깨끗하게 곱게 늙어간 경대”(「유품8-경대」)였다.

    (상략)
    경대 앞에서 나의 오늘을 바라본다
    무엇이 털리나 숨을 고른다

    엄마가 내 그늘을 읽을까 봐 입꼬리를 올려본다
    어제의 어두운 내가 오늘 겨우 추스른 나를 밀어낼까 봐 거울을 닦아본다
    잘하면 백 년 묵은 동굴을 꺼내 빛 쪼일 수 있겠다

    엄마처럼 꼿꼿해서
    거짓 없이 내 모습이 드러나서
    경대를 엄마라고 불러본다

─「유품 8─경대」 중에서

    엄마에게 시인은 든든한 맏딸이었을 것이다. 그늘을 보이고 싶지 않은 시인은 어제의 어두운 내 모습이 비칠까 거울을 닦는다. 꼿꼿하게 거짓 없이 살아낸 엄마의 모습을 한 경대를 앞에 두고 자세를 바로 고쳐본다.
    자주 손을 잡으며 안타까워하던 딸에게 안아주고 품어주는 스킨십 감추고 따뜻한 손만으로 녹여주던 어머니(「거리 두기」), 겨울 배추밭처럼 “묵직하게 허리 내려앉은 엄마/ 하얀 서리를 꽃방석처럼 깔고서/ 해진 걸레처럼 다 닳아진 엄마// 남겨진 것은 고단했던 늙은 엄마의 무게/ 생애가 금빛 입상이다// 겨울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천 개의 손들이 활짝 펴진 것도 마침 그때다”. 천 개의 손들이 활짝 펴졌다. 엄마가 하늘로 가신 날 시인은 낮달이 손을 감추었다고 말하고 있다. 시인에게 엄마는 따뜻하고 포근한 천 개의 손을 가진 금동여래상이었다.
 

올 테면 와라, 고난 찌질이들

    바람이 된 아버지, 어디에 있고 어디에도 없는 아버지. 그 가장의 빈자리가 컸다. 바람이 씽씽 부는 한겨울 19공탄의 불호령에 잠의 입구를 서성거리던 엄마, 여름마다 출몰하는 물귀신에도 봉숭아꽃 황홀한 손톱을 물들일 줄 알았던 엄마, 도라지꽃색 저고리를 입었던 엄마. 그 허름한 엄마의 젊은 날들에 불을 켜주고 싶었던 시인은 보라색 물약과 헤픈 노랑들로 무채색에 든 엄마를 불러내 고운 옷을 지어 입혀 드리고 싶었다.

    거센 비바람이 두 쪽 열 쪽을 내도 꺾이지 않았다
    마디마디 꼬장꼬장하다

    몰아친 비바람 흔적 위에
    또 철없는 바람이 한 수 아래 지문을 찍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빈방이 가슴에서 생겨난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지는 물결에 쓸려
    음악의 표정을 이은 그리움 속을 울린다

    보이는 것은 다
    만져지는 것은 다
    자신 아닌 헛것

    별빛으로 속을 채우면 하루치 숙제가 끝나는 거야
    가만히 귀 대면 그런 엄마의 혼잣말이 쓸려 나온다

    태생의 하늘 올려다보며
    틈새도 구부러질 수 없는 엄마

─「대나무는 어떻게 사나」 전문

    엄마는 헛것투성이로 생긴 빈방을 별빛으로 채우며 거센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꼬장꼬장한 대나무로 살았다.
 

유니콘

    시인의 종교는 엄마였음에 틀림없다. 엄마가 계신 곳이 천국임을 굳게 믿고 있다. 외롭고 고된 생에 대해 가볍게 훨훨 날아가기를 원했던 시인의 마음이 곳곳에서 푸드덕거린다.

    엄마의 호주머니 지갑 가방 서랍의 안 가슴마다
    침묵으로 순하게 자리 잡은 휴지들

    휴지들을 들치니 하얀 날개가 파닥거린다
    때를 기다렸던 나비들
    아직도 빛 가루를 뿜으며 살아있었구나

    (중략)
    나비의 침묵은 죽을 때까지 자신과의 약속
    다 버리고 한없이 가벼워진 엄마 싣고 날아오른다

─「유품 11─휴지들」 중에서

    한낮 휴지들이, 엄마의 콧물, 눈물을 챙겨준 그 가볍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나비가 되어 엄마를 싣고 날아오른다. 하늘로 올라간 엄마는 마침내 시인의 꿈으로 온다. 유니콘으로 오고 산소 줄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시집을 낸 일이 묵묵히 살아내신 엄마의 인생에 누가 될까 염려하는 딸의 마음을 쓰다듬어준다.

    하얀 함박꽃 계절 벌어진 원피스를 입고 머리단장을 곱게 한 중년의 엄마가 놀러 왔다

    산소 줄을 안 한 건강한 엄마가 꽃술의 감성으로 향기를 밀어 올렸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늘 말끔히 지워진 엄마의 얼굴이 나비들을 초대했고 나는 노랑나비 한 마리를 따라 죽음의 줄넘기를 할 것도 같았다

    평생 속내를 감추고 산 엄마를 욕되게 했을까 봐 야단맞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쓰다듬어 주려고 꿈에 나타났나

    엄마라는 시집을 출간해서 받은 날 밤이었다

─「엄마가 왔다」 전문
 

위대한 유산

    시인의 엄마의 먼 길을 배웅하는 시집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전 시집 제목은 대놓고 『엄마』(시산맥사, 2020)였다. 또다시 『자전거 바퀴』를 내어놓았다. 시인은 엄마를 보내고 가장 큰 방을 내어 엄마를 모셨다. 엄마는 자주 그 방으로 돌아와 딸을 바라보고 쓸고 닦아놓고 가실 것이다.
    이 비루하고 고달프고 휘황찬란한 헛것들의 세상에 ‘엄마’라는 시가 있다.

    한 사람이 가고
    남은 한 사람 저녁의 흰 가지에 걸려 있다

    피보다 진한 영혼으로 맺은 관계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달빛 충만하다.
    둘의 영혼이 자전거의 바퀴라면⋯⋯

    벗은 영혼에게 옷을 입혀주려니
    시가 부스럭거렸다.

    덩달아
    지난날의 덜 떨어진 한 사람 숨을 곳이 없다.

─「시인의 말」 중에서

    우리는 양수덕의 시들을 통해, 시인의 뿌리가 남긴 유품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복원해야 할 삶의 원형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잘려 나간 통나무처럼 정처 없이 떠내려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금희

영월 출생. 2015년 계간 『예술가』로 등단. 시집 『미안하다 산세베리아』 『고양이시금치라고 불러』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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