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오늘을 사유하는 문학의 자세

  

류수연, 『함께 내딛는 찬찬한 걸음』, 소명출판, 2023.

  

1. 우리가 함께한 10년

    류수연의 『함께 내딛는 찬찬한 걸음』은 2023년 여름의 끝자락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문학평론가 류수연이 오랜 시간 쌓아온 문학평론을 엮어낸 비평집이다. 여기에서 오랜 시간이라 함은 10년의 세월을 의미한다. 「책머리에」에서 작가가 밝혔듯 여기에 실린 평론은 류수연이 문학평론가로 데뷔한 2013년의 첫 작품부터 2022년 가을의 글 그리고 이 평론집을 내면서 새롭게 실은 미발표 원고까지이다. 이 10년의 시간 속에서 작가는 문학을 읽고 사유하며 꾸준히 글을 썼다. 오랜 기간에 이루어진 꾸준한 사유의 깊이만큼 이 평론집은 두껍다.
    이 두께는 10년의 무게다. 작가는 평론집 한 권을 내는데 10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 자신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에게 주어진 10년이라는 기간은 게으름의 시간이 아니라 꾸준함의 시간이었다. 작가는 한 해도 쉬지 않고 문학을 통해 한국 사회의 격동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과거 10년의 한국 사회를 함께 살아낸 책이다.
    2013년에서 2023년까지는 어떤 시대였는가. 출판사의 책 소개에서 나오듯 격동의 시대였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모든 문제와 그에 따른 모든 변화를 한 번에 통과한 시대였다. 사회적으로는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겪었으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셧다운되는 공포를 겪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무능하지만 오만한 정권에 대한 가장 민주적 심판이었던 촛불혁명을 통해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으며, 팬데믹 시대를 지나 새로운 일상을 재구축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미디어와 문학의 변화 양상도 급격했다. 2010년 전후로 확대되기 시작한 웹콘텐츠는 2018년에서 2019년을 지나면서 웹소설이라는 양식으로 문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으며, 2017년 알파고의 등장으로 시작된 AI는 2022년 말 생성형 AI로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문학 창작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며 문학의 존재론을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
    이 평론집은 그간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일상이, 혹은 절대 바뀌지 않으리라고 여겼던 사회가, 완전히 새롭게 변화해나간 시대를 문학의 시선을 통해 읽어내고 있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간 작가들이 우리의 시대를 어떤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을 어떤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지를 찬찬히 따라간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지난 10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 평론집의 힘은 여기에 있다. 너무나 강렬했지만 너무나 빨리 지나가서 사유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사건들을 다시 불러온다. 그리고 단편적인 사건으로 인지하고 있던 지난 10년의 문제들을 모두 연결해서 하나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과거의 기억을 길어 올려 사유의 시간을 마련해주는 일, 류수연의 『함께 내딛는 찬찬한 걸음』은 이 일을 가능하게 하였다.
  

2. 오늘의 문학에 관한 끈질긴 질문

    류수연의 평론집이 드러내는 문제 제기가 10년의 세월 동안 생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사회가 10년의 격동 속에서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서, 그럼에도 이 책이 현재까지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줄 수 있는 이유를 다시 묻는다면, 그것은 작가가 ‘오늘의 문학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꾸준히 끌고 나갔기 때문이다. 류수연의 평론은 언제나 시대에 대한 분석과 파악, 그리고 그에 따른 문학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거대한 악으로 공고히 되어버린 이 폭력적인 세상에서 오늘의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270쪽)라고 묻기도 하고, “이 광장의 역사 앞에서 문학은,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71쪽)라고 묻기도 한다.
    류수연의 평론 속에서 문학은 동시대의 현실과 언제나 하나가 된다. 류수연은 몇 차례 금융 위기를 겪으며 강화된 신자유주의의 질서 속에서 생존경쟁으로 인간의 존엄을 박탈당하거나 아예 사회에서 누락된 사람들이 겪는 폭력적 일상에 주목한다. 이런 평론가의 예민한 감각은 최정화, 김이설 등의 소설가가 그려내는 일상의 폭력을 적확하게 분석할 수 있게 한다. 또한 2016년 촛불 광장의 혁명 그리고 그 이후 대두되는 젠더폭력의 문제가 가진 핵심을 읽어내며, 이러한 사회 문제 속에서 문학이 어떠한 방향 설정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평론가의 실천적 노력을 통해 현실은 문학의 사유를 학습하고, 문학은 현실과 소통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오늘 문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끈질긴 질문의 끝에 작가는 이러한 답을 얻는다. 문학은 기억이다. 류수연의 평론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의 문학이 해온 작업의 핵심이 ‘기억하기’였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한다. 김형중은 「문학과 증언: 세월호 이후의 한국문학」(『감성연구』 제12집, 2016)에서 르포의 핵심은 기록이고 문학의 핵심은 기억이라고 하였다.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발생했을 때, 허구의 양식으로서 문학은 사태의 진실성을 왜곡할 수 있다. 이것이 문학의 한계다. 그렇지만 문학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해결되지 않는 과거를 다시 재현하여 현재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문학의 힘이다. 류수연 또한 이러한 문학의 힘을 믿는다. 류수연의 평론은 세월호, 젠더폭력과 같은 현재적 문제를 형상화한 작품뿐만 아니라, 광주, 노동운동의 무력화와 같은 사라져가는 문제를 형상화한 작품들도 포착한다. 왜 오늘의 시인과 소설가는 어제의 광주를 다시 형상화하는가. 그것은 국가 폭력으로 인한 희생의 상징인 광주, 그리고 그러한 광주에 대한 모독이 오늘날에도 공공연하게 반복되기 때문이다. 즉 과거는 오늘과 함께 살아간다. 여기에서 문학은 오늘을 사유하기 위해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류수연의 평론은 기억을 통해 과거에 이루어진 모든 비극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죽음에 대해 진정한 애도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3. 그 한 걸음의 시작

    문학은 기억이므로 류수연의 평론이 고찰하고 있는 오늘은 역시 과거다. 다시 말해 오늘이 과거라는 의미는 오늘에 대한 사유가 과거에 대한 기억과 고찰이라는 것이다. 「다시 접속으로, 언택트 시대의 한국문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문학의 치명적 한계는 속도이다. 문학의 속도는 느리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 속도는 빠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빠르게 판단하고 결정하며 쉽게 잊는다. 여기에서 느린 문학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류수연은 오히려 이런 문학의 느림이 문학의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오래되고 낡은 것으로 치부되었던 그 ‘곱씹음’의 가치가 힘을 발휘해야 할 때다.”(306쪽) 문학이 할 수 있는 ‘곱씹음’은 바로 사유하기이며, 사유하기는 현재의 일을 과거와 미래로 연결하여 생각하기이다. 즉 사유는 기억이다. 문학은 특유의 느린 속도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끌어올려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기억 속에서 문학은 어제의 문제를 오늘과 연결시키고, 오늘의 문제를 통해 내일을 전망한다.
    류수연에게 오늘은 역사이기도 하다. “동시에 오늘이라는 말에는 역사성이 내포된다. 어제와 단절된 오늘이 불가능하듯 내일로 나아가지 않는 오늘이란 공허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이라는 말은 공시성과 통시성을 함께 어우르는 의미로서 이해되어야 한다.”(307쪽) 여기에서 말하듯이 류수연이 천착하는 오늘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우리의 현재를 파악하는 일이며 앞으로의 미래를 전망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류수연의 평론집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오늘의 문제이기도 하면서 어제부터 축적된 문제이며, 내일의 우리가 살아가는 조건을 결정짓는 문제이기도 하다. 류수연의 평론집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구성되었다. 1부는 2020년 팬데믹의 시작 속에서 불가역적으로 변해버린 현재 우리의 일상을 그려낸 작품들에 대한 평론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2부에서부터는 촛불혁명, 세월호, 그리고 광주까지 계속 시간을 거슬러 내려가며 현재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주었던 사건에 대한 문학적 성찰을 보여준 작품들을 통해 오늘의 역사성을 탐구한다. 이러한 역사적 탐구는 3부에 이르면 신자유주의의 일상적 폭력 속에서 어떤 희망도 찾지 못하고 폐쇄되었던 2010년대 초반까지 흘러간다. 그리고 5부에 가면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미래의 문학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이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이 평론집이 가장 주목하는 문제는 바로 돌봄과 애도의 문제이다. 돌봄 노동에 대한 문제 인식은 결국 노동과 젠더에 대한 문제로 확장되기도 한다. 이렇게 돌봄, 애도, 노동, 젠더에 대한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의 첨예한 문제이기도 하면서 또한 주류 사회가 가장 표면화하지 않는 문제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방현석, 김애란, 김이설, 권여선 등과 같은 소설가 그리고 김승희, 문정희 등의 시인의 작품을 통해 사유한다. 이 작품들은 2000년대 초반의 작품까지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 작품들이 보여주는 문제의식은 1980년대까지도 거슬러 간다. 그래서 우리는 이 평론집을 통해 현재 한국의 문제적 상황이 지닌 역사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평론집 제목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압도적 국가 폭력이 현현했던 시대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적자생존을 유일한 윤리로 여기면서 우리의 존엄성은 얼마나 추락했는가. 나의 존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혐오는 얼마나 깊어졌는가. 류수연 평론가는 이러한 비관적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한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가 겪어낸 고통과 좌절을 직시하고 기억하는 것만이 우리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그래서 류수연의 평론은 세상의 밑바닥에 내팽개쳐진 존재들을 비참하게 그려내는 작품들 속에서도 작가가 전하고 있는 단 하나의 작은 메시지,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그것은 공감하고 소통하며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물론 “희망은 아직 가깝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절망은 조금 더 멀어진 것 같다.”(214쪽) 류수연 평론가가 10년의 시간 동안 단단하게 다져온 굳건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 함께 천천히 한 걸음만 내딛자. 그것이 시작이다. 이 평론집을 읽는 모두가 과거를 통해 오늘의 한 걸음을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문학의 힘을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주라

문화평론가.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저서 『식민지 근대의 시작과 대중문학의 전개』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가이드1-로맨스』, 공저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시리즈 1~5권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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