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보려는 용기

    

강수환, 『다르게 보는 용기』, 창비, 2023.


    
1. 우리 손에 쥐어진 문학이라는 청동 방패

    강수환의 『다르게 보는 용기』는 저자의 첫 평론집이다. 2017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수상작인 「콤플렉스는 나의 힘」으로부터 출발하여 6년 남짓한 기간에 발표한 아동청소년문학 평론들이 3부에 나뉘어 실려 있다. 특히 제1부에는 ‘생성형 AI 시대의 읽고 쓰기, 정치적 올바름과 청소년문학, 시리즈 아동문학의 반복과 대중성,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동시의 소통 가능성, 전환기에 제기되는 새로운 어린이관, 아동청소년문학 비평의 지형도’ 등 최근 아동청소년문학계에서 주요 이슈를 다룬 묵직한 평문 일곱 편이 묶였다. 이 글들은 모두 2020년 이후 최근 3년에 쓰인 것들이다. 당대의 쟁점을 포착하여 제때에 응답해온 저자의 부지런함에 감탄하고, 난해한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찬찬히 들여다본 정직함에 미더운 마음을 갖게 된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 제목의 의미를 빠뜨릴 수 없다. 저자가 밝힌 것처럼 ‘다르게 보는 용기’라는 표현은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이 그의 저서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레베카, 2017)에서 가져온 것으로서, 이 책에서 그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청동 방패에 비추어봄으로써 물리친 사건을, 홀로코스트 상황처럼 정면에서 보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차마 잔혹하고 공포스러워서 볼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순간에 ‘어떻게든 바라보는 용기’를 낸 일에 빗대었다. 문학에서 ‘다르게 본다’는 것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미학적 노력과 통하며, ‘보는 용기’는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든’ 맞서려는 윤리적 태도와 연결될 것이다. 강수환 평론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다르게 본다’는 것에 대한 끈질긴 탐구에 기인한다.
  

2. 강조하건대 ‘어떻게’가 중요하다

    전체적으로 강수환의 비평은 창보다는 방패에 가까워 보인다. 그에게 방패의 비유는 문학이 현실을 거울처럼 비춘다는 고전적인 의미에서만 아니라, 메두사의 머리는 반드시 방패-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다. 이처럼 무엇인가에 매개되지 않으면 볼 수 없다는 조건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 시시각각 변하는 음험한 현실을 비출 방패-거울로서 문학이 자신이 처한 미디어 상황에 기반하여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생산해내는 일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따라서 ‘어떻게’가 중요하다는 말은 그의 글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다만 계속해서 강조하는 지점은 바로 ‘어떻게’에 있다.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특정한 정체성, 외모, 문화 등을 부정적 기호인 양 생산하는 부조리한 틀을 손대기보다는 대체로 언어를 조정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그런 점에서 용어에 어울리지 않게 정치적 올바름은 역설적으로 충분히 정치적이지 않다. 문학이 정치성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표현을 고르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재현의 언어를 청소년에게」, 37쪽.)

    결국 시리즈 아동문학에서 반복과 대중성은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정확히는 어떻게 반복하는가, 어떻게 대중적으로 소구되는가를 물어야 할 때다. (「반복과 대중성, 시리즈 아동문학의 출발점」, 71쪽)

    여전히 원격-시각 공동체는 강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2010년대를 기점으로 이 역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중이다. (중략)
    원격-행위의 시대에 동시는 어떻게 동요로 표현되고 있을까? (「시가 다시 노래가 되었을 때」, 84~85쪽.)

    강수환은 정치적 올바름의 사안에서도 단순히 몇몇 부정적 표현을 빼는 것 또는 있어야 할 희망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미학적 효과 전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며, 현재 주류적 출판 유형이 된 시리즈 아동물에서 대중 코드의 활용과 반복을 대중성이라는 말로 수렴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동 독자에게 어떠한 경험을 주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고, 현재의 스마트폰과 디지털 미디어 조건에서 어떠한 문학 소통 방법이 새롭게 창안되어야 하는지 고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대 상황과 미디어 변화의 거시적 맥락에서 문학적 소통 방식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그가 든 방패의 폭은 크고 안정적이며, 각 텍스트가 독자에게 어떠한 경험을 주는가를 세심하게 살피고자 한다는 점에서 방패의 무늬는 꼼꼼하고 섬세하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강수환 평론의 중요한 미덕은 ‘어떻게’ 볼 것인가를 중시하는 한편 ‘어떻게든’ 보려고 애쓰는 용기를 잊지 않고 강조한다는 점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 ‘어떻게’ 보는가가 미학적인 측면을 가리킨다면, 잘 보이지 않고 너무나 끔찍해서 대면하기 불편한 현실을 ‘어떻게든’ 보고/보여줌으로써 현실의 자리로 이끄는 태도는 윤리적이며 정치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어떻게’와 ‘어떻게든’은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다. 눈감지 않고, 피하지 않고, 겁내지 말고 어떻게든 보려는 용기를 낼 때 어떻게 볼 수 있는 방법도 가까스로 찾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수 있게 될 때 무언가 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저자는 최근 몇 년 동안의 사회적재난과 집단적 감염증으로 인해 “기존의 관점과 언어로는 해명되지 않는 사태”를 겪은 후에 겹겹이 쌓인 재현 불가능의 허무와 냉소를 넘어서는 것이 얼마나 큰 단절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가를 사려 깊게 간파하고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문장이라도 우리는 페이지를 찢고 달아나는 대신 어떻게든 마침표를 그려 넣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다음 문장을 써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재현의 언어를 청소년에게」, 53쪽.)

    그러나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현실을 보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결국 강수환이 시종 강조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의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어떻게든’ 보려고 하는 용기를 잃지 않을 때 문학이라는 흐릿한 거울-방패도 괴물 같은 현실을 되비추어 맞설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며, 그때 비로소 세계를 새롭게 읽고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조은숙

1969년 서울 출생. 저서 『한국 아동문학의 형성』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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