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평범함

  

이상실, 『죽음의 시』, 삶창, 2023

    이상실 소설집 『죽음의 시』는 사회의 아웃사이더, 주변인들의 이야기다.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편편이 팔인팔색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집의 서두에 있는 「사진 밖으로 뜬 가족」에는 애잔한 가족사를 지니고 있는 승규가 등장하고, 이어진 「죽음의 시」에서는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힘든 노동을 견디는 청년 종기, 「같은 시간 속의 사람들」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직장인 준, 「시인과 소녀」에서는 노동으로 생을 이어가는 송 시인 등이 화자이자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팔인팔색의 인물들이 담담하게 토로하듯이 전하는 일상의 이야기는 절대로 평범하지만은 않다. 일상은 비극이라 하지 않던가. 이들의 일상은 비애로 가득한 삶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소소한 삶의 이야기들이 조각조각 깨져 날이 선 유리 파편처럼 비범하게 들린다. 『죽음의 시』를 관통하는 평범한 일상과 소소한 삶의 날카로운 파편들이 이 소설집 밑바닥에 흐르는 비극적 정서를 이룬다. 독자들은 『죽음의 시』를 읽다 보면 바로 평범함과 소소한 삶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극을 목도하게 된다. 누군가는 악의 평범함을 이야기했는데 작가 이상실은 비극의 평범함을 소설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소설의 독자이자 서평을 쓰고 있는 필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비극의 평범함이다.
    먼저 「사진 밖으로 뜬 가족」은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예술가 가장을 둔 가족의 평범하지만 비애의 씨앗이 싹트고 있는 삶을 재현하고 있다. 이 가족의 비애란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참을 수 없는 극단적인 고통이 아니다. 그저 가족 구성원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던 이야기일 뿐이다. 주인공 승규는 결혼식 날짜를 잡아 청첩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일찍이 집을 나간 어머니의 이름을 청첩장에 넣을 것인지를 두고 아버지와 할머니가 갈등을 겪는다. 아버지는 청첩장에 어머니 이름을 넣어야 한다고 우기지만 할머니는 정색하고 반대한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해체가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부재’는 특별한 이야깃거리는 아니지만, 이 일상의 부재가 나오기까지 그 원인과 모순을 작가는 주머니 속에서 동전을 꺼내듯이 던져놓는다. 주인공 승규가 중학생 시절 삼촌이 승규에게 준 사진을 다시 발견하면서 그 부재의 빈 곳, 빈 곳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처연함을 인식하게 된다. 사진에는 초라한 집, 눈, 연탄재, 눈길, 전봇대가 찍혀 있다. 사진 속 그날은 어머니가 승규를 버리고 떠난 날이었다. 사진 속에는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사물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 작가 이상실이 단편에서 우리 눈앞에 불쑥 내민 사진 속 풍경이야말로 가족이라는 전통적 의미가 퇴색해진 오늘날 우리 자화상이 아닐까.
    앞선 「사진 밖으로 뜬 가족」이 평범한 비애를 담고 있다면 「죽음의 시」는 평범한 비극(죽음)을 그리고 있다. ‘평범한 비극 또는 죽음’이라니. 평범과 비극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비극 또는 죽음이란 인간사에서 참을 수 없는 전율을 일으키는 가장 극단적인 장면 아니던가. 「죽음의 시」는 취업 준비생 박종기가 물류센터에 일용직으로 일을 나가면서 겪는 이야기인데, ″시를 가슴에 품은 날부터 박종기는 ‘마우스 오’가 있는 물류센터의 셔틀버스를 타지 않았다.”라는 흥미로운 문장부터 소설의 전개를 짐작하게 한다. 짧은 단편으로 물류센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 종기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 이 평범해 보이는 물류센터는 SF영화나 소설에 나올 듯한 생경한 공간이자 디스토피아임을 곧 깨닫게 된다. 보안요원이 등장하고, 검색대를 통과하여야 하며, 피디에이 단말기를 통해 작업지시를 받으며, 바코드 리더기를 통해 이동할 수 있으며, 관리사원은 쉴새 없이 작업지시를 한다. 관리사원이 상층 관리직이 아니라는 걸 독자는 곧 깨닫게 되는데, 어쩌면 그런 이유로 관리사원이 더 괴기스러운 존재로 느껴진다. 관리사원은 “사원님, 유피에이치(시간당 피킹)가 꼴찌네요. 일곱 시 오십 분에서 여덟 시 사이에 뭘 하셨습니까?”라며 끊임없이 재촉하고 추궁한다. 작업자에 대한 교육, 지시, 주의, 각종 현장 수칙, 지적 등등. 귀가 먹먹하고 혼이 쏙 빠진다. 물론 작가는 이 공간을 차분한 어조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공간과 대동소이한 곳에서 극심한 육체노동을 하며 트라우마를 겪은 필자는 왠지 지옥도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볼 수 없는 이 지옥도를 지극히 평범하게 치장한다. 주인공 종기가 만난 일용직 노동자 구윤재는 어느 일용직이 쓴 시 ‘짐승이 된 노동자여! 기계에 예속된 일용직이여!’로 시작하는 시를 보여주는데, 다분히 선언적이며 절규 어린 이 시는 비극의 평범함이라는 외피를 벗겨내고 삶의 비극을 드러낸다. 결국 소설집 『죽음의 시』의 표제작 「죽음의 시」를 통해 작가는 ‘비극의 평범함’에 정면으로 마주 서게 된다. 구윤재는 말한다. “다른 사원이 혜택을 누리도록 희생한 사원은 벌을 받는 불공평. 집품이 상승한 자는 더 상승하고 하강한 자는 상대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을 치죠. 그런데도 누구 하나 그런 현상을 말하지 않아요. 모두 입을 다물고 있지. 지금 주위를 보세요.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잖아요. 부당한 것을 지적해서 얻을 게 없다는 심리가 작용한 탓이겠죠. 작업장에 발을 딛는 순간 일용직은 신체 포기 각서에 서명한 거나 다름없어요. 사물함 자물쇠가 인간의 존엄까지 넣고 잠가버린 거죠.”라고.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비극의 평범함은 「시인과 소녀」에서도 이어진다. 「시인과 소녀」에는 송 시인, 소녀 루리, 르포작가 오 작가, 노래패 카운터 어택 멤버 손 씨와 조 씨, 자동차공장 해고 노동자인 루리의 아빠 동규가 등장한다. 송 시인은 재개발 지구 노숙 텐트에서 농성하는데 루리는 송 시인에게 가오리연을 날리는 장면을 그린 그림을 준다. 송 시인은 자신의 시집에 수록된 동규에 관한 시를 보며 오 작가에게 동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동규와 송 시인은 건설 현장에서 만난 인연이 있다. 노동자계급 중에서 가장 불안정한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 노동자 쉼터 ‘하우스 휴’에 자주 간다. 동규는 지방 대기업 자동차 회사에 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했으나 해고당한 후 건설 현장을 전전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동규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건설 현장을 다시 전전하게 되고 뉴셀 건전지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하나 다시 해고를 당한다. 동규는 뉴셀에서 복직투쟁과 농성을 벌이나 투쟁과 농성은 출구 없이 길게 이어진다. 결국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게 되고 농성 텐트에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송 시인이 농성장에 합류하게 된다. 동규는 뉴셀 굴뚝 꼭대기에 올라가 농성을 계속하나 동료 한 명이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들 해고 노동자들이 굴뚝에 오를 수밖에 없는 절망에 내몰리는 동안 이들은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잊힌 존재가 된다.
    동규의 짧은 일대기와 해고 노동자의 자살 등은 절망이자 비극이나 역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평범함으로 보일 뿐이다. 송 시인과 오 작가는 희망버스를 타고 농성장 및 추모제를 찾게 되고 경찰은 물대포로 송 시인 일행을 진압한다. 송 시인은 경찰 폭력에 쓰러지게 되는데 동규의 딸 루리가 촛불과 가오리연을 그린 그림을 들고 다가온다. 소녀는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농성하고 있는 굴뚝 난간까지 가오리연을 날린다. 연 꼬리에 “아빠 빨리 내려오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송 시인이 동규에게 외친다. “동규 씨, 루리에게 했던 말 기억하죠? 가오리연에 소원을 적어 날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
    앞선 「죽음의 시」가 비극의 평범함을 마주하는 작품이라면, 「시인과 소녀」는 비극의 평범함을 그저 응시하는 것을 넘어 이 비극의 평범함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한다. 평범함이라는 외피를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비극의 본성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마지막 동창회」와 「같은 시간 속의 사람들」, 「퇴근길」, 「계양산기」, 「환각의 도시 그리고 섬」은 앞선 두 작품 「죽음의 시」와 「시인과 소녀」에서 다루고 있는 ‘비극의 평범함’ 같은 주제를 담고 있지는 않다. 책 앞에 나오는 「사진 밖으로 뜬 가족」에서처럼 어느 한 개인의 평범한 비애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개인의 하찮고 평범한 비애에 공감하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평범함이라는 단단한 껍질에 감춰진 삶의 비극을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카프파 문인으로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시인 임화가 「다시 네거리에서」라는 시에서 “오늘밤에도 예전같이 네 섬돌 위엔 인생의 비극이 잠자겠지!”라고 절규한 것처럼 비극은 일상의 평범함에 잠들어 있는 것이리라.

  
  

조혁신

1968년 경기도 의정부 출생. 인천에서 성장. 2000년 『작가들』, 2001년 이원규 소설가 추천으로 『소설시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뒤집기 한 판』 『삼류가 간다』, 장편 『배달부 군 망명기』 『장미와 플라톤』, 음악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음악다방』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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