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아닌 문화로서 AI를 진단하다

박태웅, 『박태웅의 AI 강의』, 한빛미디어, 2023.

    선가禪家에 전하는 말 가운데 지월指月에 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더니, 정작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더라는 이야기다. 감관으로 파악되는 사물 이면의 이치를 꿰뚫어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비유다. 이 비유는 비단 선가의 수행자들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삶의 화두를 뚜렷하게 던진다. 예컨대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는 매개지만 동시에 달을 인지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밤하늘을 가리킨 손가락은 곧 달빛을 통해 보이는 것이며, 그 양상은 곧 달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이 좀처럼 손가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자, 우리의 삶이 늘 본질을 비켜나면서 그저 그 주변을 힐끔거리며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대상이 품고 있는 그러나 그 이면에 자리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이치를 직시하기란 늘 어려운 법이다. 아무리 단순한 대상이라 하더라도 대상을 둘러싼 현상은 늘 간단치 않기 때문에, 복잡다기한 현상에 시선이 휘둘리다 보면 대상의 본 면목을 놓치기 일쑤다. 구체적 대상을 탐구하는 학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관련해서 1972년 튜링상을 수상한 네덜란드의 컴퓨터과학자 에츠허르 데이크스트라Edsger Dijkstra는 “천문학이 망원경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것처럼 컴퓨터과학은 컴퓨터를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Computer science is no more about computers than astronomy is about telescopes)”라는 말을 했다. 대상(목적)에 가닿는 과정이 그 자체로 대상(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컴퓨터computers와 컴퓨팅computing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태웅의 AI 강의』는 가시적 차원의 기술로서만 인공지능을 파악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자리한 비가시적 생태environment를 통찰하고 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실질적 노력이 인공지능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지는 길임을 역설한다. 예컨대 1강과 2강에서는 챗GPT로 대표되는 거대언어모델LLM의 구현 원리와 현실적 양태를 정리하는 가운데, 인공지능에 관한 오해를 여러 방면으로 환기하고 있다. 소위 현 단계에서 ‘견고하지 않은’ 인공지능이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로서 ‘할루시네이션’과 ‘프롬프트 인젝션’과 같은 요소를 거론하면서도, 인간지능과는 확연히 다른 인공지능의 존재 양식을 인정하되, 그 연장선상에서 소위 ‘파운데이션 모델’로서 인공지능의 산업적 활용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가 필연적 흐름임을 강조한다.

    3강과 4강에서는 인류가 수용해야 할 필연으로서 인공지능이 이미 초래하고 있으며 앞으로 초래할 가능성이 큰 여러 부정적 징후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구글 등 여러 대규모 IT 기업을 중심으로 한 거대언어모델의 급격한 발달과 그에 따른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우려 그리고 원본의 실종, 자연 독과점, 지적재산권 침해, 데이터의 오염과 오염된 데이터 학습에 따른 차별의 재생산 등 인공지능과 관련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다채로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아래는 그러한 상황에서 저자가 던지는 핵심적인 메시지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마음을 향한 실험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건드립니다. (중략) 거대한 인공지능을 다룰 조직과 전문가의 수는 점점 더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에 끼칠 영향, 해서 될 일과 안 될 일, 그리고 장기적 파급효과에 대한 제도적 변화의 방향 등을 그 한 줌의 전문가들이 모두 헤아릴 순 없지요. (중략) 그러므로 이 일을 소수의 인공지능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두어선 안 됩니다. (176~177쪽)

    ‘인공지능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두어선 안 된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인공지능 전문가들을 무시하는 말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인공지능은 소위 ‘그간 유례가 없었던 인간의 마음에 대한 실험’이기에 단순히 그것을 개발・구현하는 기술적 차원에서만 파악・수용할 대상이 아니라, 사회-산업-경제-정치-법률 등의 종합적 차원에서 검토・대응해야 할 무언가라는 이야기에 가깝다. 5강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내용은 대체로 그러한 맥락에 입각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5년 사이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인공지능 윤리에 관한 공론화, 인공지능 활용 가이드라인 제작, 인공지능 법률 제정 등에 관한 사안은 인공지능을 단순히 기술technology로만 파악해서는 안 되고, 일종의 문화culture로 수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5강 마지막 부분에 거론된 한국의 상황은 그러한 저자의 인공지능에 관한 문제의식을 더욱 여실하게 드러낸다. 한국은 인공지능 강국을 아젠다로 하면서도 공공데이터 활용의 필요성 및 그것을 위한 데이터 표준에 관한 문제의식이 빵점에 가깝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기술 발달에 따른 유행 키워드의 남발을 매개로 자격증을 만들고 관련 학과를 설립하는 시도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임을 강조한다. 알맹이가 아니라 껍데기에 치중하는 불필요한 행태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비판적 활용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 두 가지로 기초학문 육성과 연구개발 예산의 장기적 지원을 강조한다. 기초학문에 관한 깊은 이해와 통찰 없이 인공지능을 개발・활용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연구개발 방향과 정책이 바뀌고 그에 따라 지원 예산의 성격과 규모가 달라지는 것 또한 문제다. 그 연장선상에서 연구 예산의 대부분이 단기적 성과를 요구하는 것도 개선되어야 한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인공지능을 있게끔 한 유관 생태에 관한 기초적 접근과 인공지능 활용을 도모・모색하기 위한 장기적 방향의 수립이야말로 인공지능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지는 길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인공지능의 발달이 불러올 미래가 어떨지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최근의 발달 속도를 보면 ‘경이적’이라는 표현을 넘어서 ‘무섭다’는 말이 더 적절할 정도로 그 효용utilization과 기능function의 측면이 극대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발달한 컴퓨터 알고리즘의 차원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20여 년간 웹을 통해 인류가 꾸준히 축적해온 거대한 규모의 데이터가 인공지능의 학습 자원으로 활용된 탓도 있다. 책 말미에서 저자가 제시한 ‘인류로서 함께 대처’해야 한다는 제안은 바로 그러한 맥락을 담은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제는 모두가 합심해서 연대하지 않으면, 그 규모와 성능이 진일보한 인공지능에 대한 온전한 대응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하부구조로서 기술-산업-경제체제가 상부구조로서 문화-사회-정치체제를 추동한다는 사회구성체에 관한 전통적 시각은 현시점에서 더 이상 유효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소위 기술 혁신에 따른 디지털 중심 사회체제로의 전환은 기술과 문화 사이의 일방적 통행이 아니라 둘 사이에 쌍방향으로 교차하고 갈마드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기술이 문화로 자리하고, 문화가 기술이 되는 역동적interactive 환경이 보편적인 시대에 우리는 이미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지목하고 향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의 현상적 양태가 아니라 현상 이면에 자리한 인공지능의 본질적 의미여야 한다. 예컨대 손가락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인공지능이 내포한 다면적 이해와 입체적 생태를 일깨우는 알뜰한 강의로서, 이 책이 그 역할이 있기를 바란다.
  
  

류인태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정보학 박사. 디지털 인문학 전공. 저서 『디지털로 읽고 데이터로 쓰다』(공저), 논문 「디지털 인문학은 인문학이다」, 「인문학술 데이터 프로세싱에 관한 시론」, 「쓰기 테크놀로지의 진화, 디지털 인문학」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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