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삶-들 앞에서―2023년 여름호

  
  

    베스트셀러는 문학장이 포함된 출판시장의 파르마콘Pharmakon이다. 오랫동안 치료약으로 번역되었지만 독약이라는 의미를 은밀히 품어왔던 파르마콘처럼, 베스트셀러는 대중을 위안하고 그들의 불안과 우울함을 치유하는 반면 불합리한 현실의 기반을 유지하면서도 현실 초월적 욕망에 불타오른다. 그것은 시장을 독식하며 다양성을 침식하기도 하지만, 입 없는 대중의 언어가 되어 역사적 관심을 이동시킨다. 문학 연구자들에게는 흔히 훌륭한 문학작품이 탄생하는 배경으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기존의 시대 이해를 거슬러 읽을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베스트셀러의 교차 읽기와 주체

    2023년 여름 『작가들』 〈특집〉은 지난 시대의 베스트셀러를 각기 다른 세대의 평론가들이 교차해서 읽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신자유주의 시대인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베스트셀러를 10년 단위로 끊어 진기환, 노태훈, 양윤의 평론가가 각각 맡았다.
    진기환은 1990년대를 맡아 성공을 향한 제한된 자유의 욕망 속에서 축소된 개인의 문제를 성실하게 읽었다. 『아버지』에서 『무소유』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속한 책의 행렬에서 그는 주체의 자기보존이라는 열쇳말을 건져낸다. 노태훈은 2000년대 다양한 출판시장의 스펙트럼에서 빛나는 서사적 활력을 보여준 한국문학 작품에 주목했다. 방송을 통한 독서 열풍과 인터넷소설 시장의 형성이라는 배경 속에서 그는 천명관, 황석영, 김훈, 신경숙 등이 쓴 작품들을 거론한다. 양윤의가 2010년대의 대표로 뽑은 작품은 역시 『82년생 김지영』과 『채식주의자』이다. 양윤의는 매끄러운 재현 방식을 택하지 않았던 이 두 작품이 독자와의 교감을 이루어낸 이유로 독자들을 주체로 만드는 네트워크 짓기를 제시한다.
    〈기획연재〉의 서영채는 ‘주체’라는 단어를 대상으로, 번역어의 쓰임새와 한국어에서의 어감에서 시작하여 홉스, 알튀세르, 라캉의 주체 개념을 소개한다. 신민, 호명과 응답, 무의식이라는 개념과 함께 재해석되면서 비판을 위한 외부 거점이었던 주체는 흔들리고 쪼그라든다. 서영채는 ‘비판적 잠재력을 견인해낼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데리다의 해체 개념을 제안한다.
  

강화 작가 유지영, 여성국극, 십시일반 밥묵차 유희 대표까지

    〈우현재〉에서 윤진현은 1901년에서 1981년까지 강화에서 살며 작품 활동을 했던 지역작가 오성 유지영梧城劉智榮의 생애와 문학작품을 발굴하였다. 강화 합일학교 출신으로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강화지국 기자로 언론계에서 활동한 유지영은 신인사의 사원으로, 신간회 강화지회 회원을 역임하여 작품 활동을 하였다. 발굴 작품이 많아 이번 호에는 ‘소녀소설’이라고 이름 붙인 동화 1편과 합일학교와 관련하여 『신동아』에 게재한 기사 1편을 싣고, 다음 호에 발굴자료 및 해제를 이어서 담으려 한다.
    〈르포〉에서 김신현경은 여성국극의 세계로 안내한다. 195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가 60년대 이후 ‘국극보존회’로 명맥을 이었던 여성국극이 최근 젠더적 실험의 일환으로 대중의 호응을 받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민중구술〉에서 김연식이 찾은 인물은 ‘십시일반 밥묵차’의 유희 대표이다. 20여 년 사회적 약자의 투쟁 현장에 밥차를 몰고 나섰던 유희 대표를 인터뷰하여 그의 이력과 투병하고 있는 근황을 알린다. ‘밥이 하늘이다’라는 말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 얼얼하게 전해진다.
  

비판적 시선으로

    이번 호부터 창작란과 비평란의 지면을 대폭 늘렸다. 새로 시작한 아동청소년문학비평(〈노마네〉)에서 유영진은 『오백 년째 열다섯』을 다뤘다. 한국형 판타지의 계보를 이으며 많은 청소년 독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걱정과 우려할 점을 ‘공적 가치의 부재’라는 개념에 담았다. 이현식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흔히 식민지 현실과 도시 공간에 대한 고현학적 형상화로 평가받는 이 소설을 다시 살펴보면서 직업적 소설가로서 산 박태원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 다음으로, 비평 꼭지에서는 이례적으로 두 비평가의 출간 대담회를 담았다. 평론가 오세란의 사회로 근대문학관에서 열린 이 대담회에서는 최근 첫 평론집을 낸 두 비평가, 송수연과 선우은실이 첫 평론집을 낸 소감과 함께 평론 활동을 둘러싼 이야기를 풍성하게 나눈다.

    창작란은 마음이 뿌듯할 정도로 짱짱하다. 신현수, 이경림, 박일환, 조정인, 김형식, 김현, 김하늘, 이지아, 장혜령, 박시현 무려 10명의 시인이 자리했고, 소설은 백민석, 이상실, 유재영의 작품이 선을 보였다. 〈노마네〉에서는 동시를 쓴 이상교, 최휘 외에 동화의 윤해연, 아동청소년소설의 배미주가 골고루, 튼튼하고 든든하게 자리를 잡았다. 〈서평〉에서는 문계봉, 송수연, 이경재가 각각 『그럼에도 불구하고』(달아실, 2023) 『극복하고 싶지 않아』(마음이음, 2022) 『〈철도원 삼대〉와 인천 걷기』(다인아트, 2023)를 다루었다. 짧은 지면이라 이들의 노고에 값하지 못하는 간단한 호명이 아쉽다. 독자의 관심 어린 눈길이 고루 호응하길 바랄 뿐이다.

    어수선한 봄이 지났다. 세계적으로는 기술적 진보가 눈부실 정도로 황황한데, 국내에서는 내용 없는 진영 논리가 나라의 살을 가른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팩트’로 둔갑하는 언론의 지면 아래에는 공감 없는 냉소가 지배적인 정서인 양 댓글을 수놓는다. 장애인과 집 없는 서민, 모욕당한 노동자가 숨 쉴 곳을 찾지 못하는 세상에 낙망하다가 1959년 이범선의 단편소설 「오발탄」이 생각났다. 이미 출발했으나 목적지를 정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을 안고 이동하는 택시 안을 보여주면서 작품은 끝난다. 살아 있음이 ‘오발탄’이 되는 시대를 넘어 여기, 오늘의 자리에 우리는 와 있다. 그 ‘살아 있음’을 끌어안고서. 살아서 싸운 역사를 끌어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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