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개념정원 〈16회〉: 자연사와 윤리

  
  

  자연사라는 말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단어가 아니다. 자연사라는 발음에서 연상되는 일차적인 뜻은 ‘사고사’의 반의어로서 ‘자연사自然死’이다. 새로운 뜻을 가진 자연사라는 말은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구절 속에 들어가 있을 때 좀 더 분명해진다.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용어에서 공룡 화석이나 아주 오래전 지구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는 장소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박물관에 가본 경험이 있거나 그 개념을 아는 사람이겠다. 요컨대 자연사란 지구를 중심으로 한 자연의 역사를 뜻하는 것일 터인데, 그런데 자연사라는 말 옆에 어떻게 윤리가 놓일 수 있을까. 먼저 자연사라는 개념 자체를 살펴보자.
  
  

자연사

  

  자연사라는 말은 natural history의 번역어이다. 이런 뜻으로 자연사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그 이전까지 이 말은 ‘박물학’이라는 유서 깊은 번역어를 지니고 있었다. ‘박물博物’이라는 한자어 단어는 온갖 사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전통 사회에서부터 사용된 말이었으며, 한중일 삼국에서 natural history의 번역어로 채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이다. 한국에서는 19세기 말에 시작된 근대식 교육 제도와 함께 교과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근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용된 natural history의 개념 역시 박물학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자연의 역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학과 식물학 및 지질학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자연에 대한 지식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정교한 계산이나 실험을 위주로 하는 물리나 화학은 자연철학이라 불렸고, 자연에 대한 관찰을 통해 원리를 추론하고 법칙을 도출해내는 학문을 지칭하는 말이 자연사였던 셈이다. 이를테면 17세기의 뉴턴은 자기 자신을 자연철학자라고 불렀고, 19세기의 다윈은 스스로를 박물학자naturalist(이 단어는 자연학사자가 아니라 여전히 박물학자로 번역된다)라고 지칭했다. 『프린키피아』(1687)로 약칭되는 뉴턴의 기념비적 저서의 전체 제목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이고, 『종의 기원』(1859) 「서론」의 첫 문장은 “박물학자 자격으로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던 중 나는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동물의 분포 그리고 과거에 살았던 동물들과 현재 살고 있는 동물들의 지질학적 관계에 대한 일부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라고 시작된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수행한 것이 곧 자연사(혹은 박물학)natural history의 일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박물학을 대신하여 자연사라는 새로운 번역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한국에서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과 함께 각급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등에서 자연사 박물관 건립이 추진되면서부터이다(이보다 조금 앞서 1987년에 출간된 푸코의 『말과 사물』 번역본에는 여전히 박물학이라는 단어가 쓰이기도 했다). natural history museum의 번역어로는 ‘자연사 박물관’이 ‘박물학 박물관’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환경 및 생태와 함께 자연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커진 때문이기도 하겠다.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말이 확산되는 과정을 통해 자연사라는 단어도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했던 셈인데, 이 과정에서 자연사라는 개념은 말 그대로 자연의 역사라는 어감을 지니게 된다. 자연에 대한 관찰 연구나 중등교육의 교과목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인간의 역사 반대편에 놓여 있는 또 하나의 역사로서의 위상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자연사의 시선이 문제적일 수 있다. 역사는 역사이되 사람들이 보통 생각했던 역사와는 매우 다른 느낌과 감각으로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근대성

  

  자연사라는 프레임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특이한 방식으로 포착해낸다. 자연사 속에서 자연은 관찰과 연구의 대상이며 그 시선의 주체는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또한 자연의 일부로서 대상 안에 포함되어 있다. 요컨대 자연사의 프레임 속에서 인간은 시선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인 셈이다.
  물론 인간이 시선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 되는 것은 그렇게 특별하달 것이 없다. 인문사회과학이 모두 그런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정작 특별하다고 해야 할 것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대상화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방식에 있다. 자연사라는 프레임 속에서 대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연이 무한히 확장 가능한 것이라서 문제가 된다. 자연이 지닌 거대함이 관찰 주체인 인간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자연사의 시선이 포착하고자 하는 자연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의 생태라는 작은 범위에서부터 시작하여 고생물학과 지질학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흐름은 종국적으로 45억 년이라는 지구의 역사 전체로 확장될 수밖에 없으며, 그 끝에는 지구라는 행성을 만들어낸 우주 전체의 역사가 버티고 있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물질적 환경 세계 전체가 자연인 한에서, 자연의 개념은 결국 현재의 물리·천문학이 규정하는 138억 년 규모의 우주 자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시선의 주체인 인간이 동시에 대상의 일부로서, 그것도 무시해도 좋을 매우 작은 부분으로 들러붙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사라는 프레임 속에서 시선의 주체인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확인하게 되는 것은, 우주의 거대한 역사 속에 한점 티끌만도 못한 존재로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사의 시선 안에 있는 한, 그 어떤 자연도 우주적 거대함과 집적된 시간의 힘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을 하잘것없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자연 속에서 시선의 주체로서 누리던 자신의 특권적 지위가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물론 인류의 역사 전체가 먼지가 되는 이러한 사태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 사태의 기본 골격은 16세기 유럽에서 과학혁명과 함께 시작된 일이기 때문이다. 과학혁명의 가장 큰 위력은 사람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착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점에 있다고 해야 한다. 17세기 초반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하고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는 순간, 학설 속에만 존재하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경험적으로도 확증 가능한 진리가 된다. 천동설이 깨지는 바로 그 순간 인간을 둘러싼 세계는 담장이 무너지고 천정이 꺼져 버려 잠재적 무한이라는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런 사태를 논리화해낸 것이 18세기의 철학자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도식화한 순수이성의 이율배반이다. 네 개의 이율배반 중 앞의 둘이 세계에 관한 것이다. 첫째, 세계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 둘째, 세상은 쪼갤 수 없는 원자로 이뤄지는데 그 원자도 또한 쪼개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둘을 종합하면 사람이 사는 세상이 되는데, 그런데 그곳은 어떤 곳인지 그 실체를 알 수 없고 시작도 끝도 규정할 수 없는 불가지의 영역이 된다. 논리적으로 세계는 무한공간이어서 큰 쪽으로는 무한대의 암흑이, 작은 쪽으로는 무한소의 함정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성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이런 사태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근본 질문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17세기의 수학자 파스칼은 갈릴레이가 열어젖힌 무한공간 앞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비유를 썼다. 사람은 갈대처럼 하잘것없고 연약하기 때문에 으스러뜨리고자 한다면 우주가 무장할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대단한 것은 우주와 달리 인간은 자신의 하잘것없음을 알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강력한 우주보다 더 고귀한 존재라 함이 『팡세』에서 파스칼이 한 말이다.
  우주가 인간을 짓이기기 위해 무장할 일은 없을 것이니, 이런 생각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지는 우주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겠다. 그럼에도 이러한 반응은 무한공간의 거대함에 질려버린 사람이 자기 존재의 정신적 근거와 의미를 확보하기 위해 발휘하는 안간힘 같은 것이라 한다면, 사실과는 무관하게 그 절박함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
  
  

자연 법칙과 도덕 법칙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세계로서의 자연은 다양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생존을 지탱해주는 거대한 자원의 저장고, 함께 생명을 유지해야 할 친구이자 사람들에게 삶의 교훈을 일깨워주는 스승이며,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품어주는 위대한 모성 같은 것이라 함이 대표적인 예이겠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힘을 행사하는 타자가 자연이기에, 자연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탐구와 성찰이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두루 존재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보이는 매우 일반적인 틀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유비 관계 혹은 상사 관계를 설정하는 일이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세계로서의 자연은 거대한 실체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배워야 할 지혜의 원천이기도 하다. 인위적인 억지를 가하지 않은 채로 세계 운행의 본성에 순응함으로써 ‘무위자연’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했던 노장 사상이나, 자연의 이법理法을 투철하게 통찰하여 거기에 순응하는 것을 도덕적 이상으로 삼았던 스토아학파가 그 대표적인 모습이다.
  이런 생각에서 현저한 것은 자연과 인간을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계로 설정하는 것이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대자연이라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인간의 본성이 작은 자연의 모습으로 깃들어 있다. 하늘과 땅에서 드러나는 자연의 이치가 인간의 몸과 마음, 그리고 운명에서 구현되는 원리와 서로 조응한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있다. “하늘에는 일곱 개의 행성이 있고 사람의 얼굴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고 했던 르네상스 시대 유럽 지식인의 말이 그런 생각을 대표한다. 여기에서 일곱 행성이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다섯 개의 행성에 해와 달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틀은 무엇보다도, 음양오행의 형이상학으로 인간의 성격을 분류하고 운명을 예견하는 사주명리학의 세계상과 일치한다. 동서양 사이에서 이런 유사함이 생겨나는 까닭을 헤아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늘과 땅(혹은 해와 달) 그리고 5행성으로 구성되는 음양오행, 즉 일곱 요소라는 틀이, 동서양이 함께 지니고 있던 근대 이전(즉, 망원경으로 천체 관측을 시작하기 이전)의 천문학적 지식 및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역법曆法에 근거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런 전통적인 틀 속에서 자연은 최고의 지혜를 보존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취급되었으며, 자연의 위상이 가장 높이 올라간 것은 유럽 중세 스콜라 철학의 경우라고 해야 하겠다. 기독교 신학을 통해 세상을 보았던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자연은 절대자와 동등한 위치로까지 격상된다. 자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치를 통해서도, 그러니까 기적이나 계시 없이도 절대자의 뜻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이 그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연 세계는 절대자 창조주의 작품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절대자의 의지가 구현되어 있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이라 함이 자연신학의 바탕에 놓인 생각이었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있던 이 같은 유비 관계의 연결선은 과학혁명과 근대성의 출현으로 인해 명백하게 단절된다. 사람이 사는 땅이 우주의 중심일 수 없게 되고, 인간 역시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자연신학은 자연철학으로 격하되고, 자연 현상에서 도출된 법칙과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법칙이 구분되기 시작한다. 이를 가장 선명하게 논리화한 것이 칸트의 철학 체계이다. 사실(자연)의 세계를 규정하는 순수이성의 질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도덕)를 규정하는 실천이성의 질서 사이에는 건너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함이 곧 그것이다. 자연법칙은 사실의 세계에 속하며, 거기에 진위 판단은 있어도 선악 판단은 있기 어렵다. 반대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도덕 법칙은 당위의 세계에 속하며, 거기에 선악 판단은 있어도 진위 판단은 설 자리가 없다. 뉴턴의 물리학이나 다윈의 진화론이 논리적으로 맞거나 틀릴 수는 있어도 도덕적으로 선하거나 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왕왕 자연법칙을 끌고 들어와 인간의 삶에 적용하려 한다. 때로는 준엄한 법칙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때로는 처세의 지혜나 윤리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기도 한다. 물리학 책을 쓴 17세기의 뉴턴은 절대시간과 절대공간 같은 용어를 썼다는 이유로 현실 권력을 지닌 기독교 교조주의자들의 위협을 받았고, 자기가 무신론자가 아님을 구구절절이 밝혀야 했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이런 현실은 우스꽝스러운 것이지만, 때로 자연법칙과 도덕법칙이 뒤엉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19세기에 나온 진화에 관한 다윈의 학설이 우생학으로 변질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진화론과 우생학

  

  진화론이라는 단어는 다위니즘Darwinism의 번역어이며 현재는 다윈주의라는 번역어가 함께 쓰이고 있다. 현재의 진화 생물학evolutionary biology을 위시한 다양한 진화 이론의 영역이 만들어지는 데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82)의 이론적 기여가 압도적이었음은 크게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그의 저서 『종의 기원』이 기원점에 해당한다.
  진화론은 출현했을 때부터 기독교 신학과의 충돌로 논란이 되었지만, 진화의 개념 자체가 적지 않은 오해의 소지를 지니고 있어 문제가 된다. 진화라는 개념이 자칫하면 진보나 발전이라는 뜻과 유사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윈의 논리 속에서 진화란 오랜 시간에 걸쳐 생물 집단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변화의 흐름을 뜻할 뿐이다. 여기에서 변화 자체는 상향이나 하향 같은 방향성이나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게다가 다윈주의 속에서 이런 변화를 만들어낸 힘은 자연이 지니고 있다. 그것을 다윈은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이라 했거니와, 선택의 주체로서 자연은 특정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자연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말은 저절로 이루어졌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단세포 생물에서 시작하여 현생 인류 같은 고등한 유기체로 발전했다는 식의 생각은 진화라는 개념과는 매우 거리가 먼, 인간 중심적인 오해에 불과한 것이다. 진화 과정에서 오래된 종은 열등하고 최신 종은 우등하다는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환경에서건 생존에 유리한 것이 진화의 좋은 방향이라고 한다면, 복잡한 구조의 유기체가 되는 것은 오히려 퇴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진화에 관한 이런 오해가 생겨난 것은 아무래도 시대 탓을 해야 하겠다. 진보라는 시간 개념과 발전이라는 서사의 틀은 근대화의 흐름이 본격화된 19세기 유럽을 감싸고 있던 시대적 조건에 해당한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비약적으로 산업 생산력이 성장하고, 국가적으로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경쟁적으로 제국주의 영토 확장을 꾀하던 때가 곧 유럽의 19세기이다. 게다가 그 시기 동아시아에서 evolution의 번역어로 채택된 진화進化라는 한자어는 내용적으로는 진보進步라는 한자어와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 그런 탓에 진화라는 단어가 향상이나 발전이나 진보와 유사한 뜻으로 읽혀도 그리 이상하지 않는 수준이 된다.

〈그림1〉 에른스트 헤켈, ‘생명의 나무’ CC BY-SA 3.0 (출처: Wikimedia Commons)

  진화의 개념에 대한 오해나 오용을 대표하는 것으로는, 다윈의 학설을 매우 뜨겁게 지지했던 독일의 자연사학자 헤켈Ernst Haeckel(1834~1919)의 『인간의 진화』(1879)에 등장하는 ‘생명나무’ 도판 같은 것을 들어야 하겠다. 여기에서는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명체들이 하나의 나무로 표현되는 가운데 그 정점에 놓여 있는 것이 인간이다. 헤켈의 생명나무는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제시한 생명나무 모형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추상적인 형태를 지닌 다윈의 생명나무는 현재 생존해 있는 종의 다양성을 저 높은 곳에 수평으로 펼쳐놓고 있다. 진화 사슬의 가장 높은 한 자리를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헤켈의 그림과는 사뭇 다른 것이 아닐 수 없다. 종의 보존이 자연선택의 결과이고 그것이 승리라면, 다윈의 그림에서 현재 생존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종들은 같은 레벨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자연 법칙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단순한 오해를 넘어 매우 위험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생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다윈주의에 대한 오해와 오용이 낳은 우생학eugenics의 경우가 그러하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되어 20세기 중반까지 주로 선진 산업국가를 중심으로 널리 퍼졌던 사이비 과학으로서의 우생학은 인종의 인위적 개선을 목표로 삼는다. 범죄자나 부랑자, 장애인들의 결혼과 출산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가 20세기 초반 다인종 국가 미국으로 넘어가면 너무나 쉽게 인종주의적 우생학으로 나아가며, 강제불임술을 법제화하는 행위는 한발만 더 나아가면 나치 독일에서 행해진 인종 청소나 인종 위생racial hygiene 같은 반인류적 범죄로 이어진다. 인간 중심주의와 인종주의에 바탕을 둔 헤켈의 논리가 우생학의 논리적 기반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겠다.
〈그림2〉 찰스 다윈, ‘생명의 나무'(1859) (출처: Wikimedia Commons)

자연사와 윤리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진화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기 위해 들었던 이론적 바탕은 육종학과 원예학, 지질학 등이었다. 사람이 가축과 식물의 품종을 개량할 수 있는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과 시간을 가지고 있는 자연이 그와 같은 일을 못하겠느냐는 논리를 위해서였다. 그런 논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자연 선택’의 원리였으나, 앞에서 지적한 대로 이 말은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 원리를 뒤집어서, 인간이 자신의 종을 스스로 개량하겠다고 나서는 우생학의 논리는, 백보를 양보해서 비록 범죄적 논리라 하더라도 매우 특별한 도덕법칙일 수는 있겠으나 최소한 자연법칙의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음은 명백하다.
  다윈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헉슬리Thoma Henry Huxley(1825~1895)가 만년에 강조했던 것도 자연법칙과 도덕법칙을 혼동해서는 안 되다는 것이었다. 진화의 학설을 지지하는 공개 토론으로 유명한 인물로서 다윈주의라는 말을 만들기도 했던 헉슬리는 다윈주의의 논리가 사회 윤리의 차원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 극도의 경계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자연선택이나 적자생존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친 결과적 사실을 지칭하는 것이지, 그것이 현실적인 윤리의 차원으로 적용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진화와 윤리』(1893)에서 그는 자연법칙의 영역과 도덕법칙의 영역을 우주 과정과 윤리 과정으로 구별하면서, “사회 진보는 매 단계마다 존재하는 우주 과정을 억제하여 이른바 윤리 과정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윤리적 실천은 검투사적인 생존이론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사람이 존중하는 도덕법칙은 자연법칙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거기에 맞섬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 된다.
  자연사의 질서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배경으로 한다. 그 흐름이 만들어내는 반응은 세 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거대한 시간이 만들어낸 것에 대한 호기심이고, 그다음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자기 자신의 처지에 대한 감정이 된다. 거기에 깔려 있는 기본 감정은 비애이다. 그리고 그 문을 열고 입장하는 것이 인간됨의 윤리가 된다. 그것은 헉슬리의 말처럼 자연의 질서에 맞서는 것일 수도, 혹은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의 근거를 확보하고 실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건 자연법칙을 그대로 도덕법칙으로 전화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자연사의 영역에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인간됨의 윤리이다. 당위로서의 윤리는 사실의 세계를 넘어서는 힘이기 때문이다.

후주
박물학이라는 말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허재영, 「근대의 ‘박물’ 개념 형성과 박물학 교과서」(『우리말연구』 66집, 2021.7.)에 있다. 『팡세』의 정확한 문면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에서 가장 연약한 한 개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부러뜨리기 위해서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방울의 수증기, 한 방울의 물로도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부러뜨릴 경우라 할지라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우주보다 훨씬 더 고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파스칼, 『팡세』,(김형길 옮김, 서울대출판부, 1999) 158쪽, 다윈의 인용은 『종의 기원』(김관선 옮김, 한길사, 2017), 39쪽, 헉슬리의 인용은 『진화와 윤리』(이종민 옮김, 산지니, 2021), 99~100쪽, 대우주와 소우주의 상사 관계에 관한 인용은, 푸코 『말과 사물』(이광래 옮김, 민음사, 1987, 번역 일부를 수정했다), 47쪽에 의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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