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월 시집』 노트 해제: 범속의 운명에 떨어진 나비와 같이

 

자료 공개의 의의

    소월 최승구素月崔承九의 시집 필사본 자료를 공개한다.
    최승구는 1910년대, 그중에서도 1914년에 게이오대학에 적을 두고, 재일본 학우회가 발간했던 『학지광』의 편집위원이자 시인으로 2년 정도 활약했다가 1916년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그의 죽음 이후 『학지광』 8호(1916년 8월)에서는 「뜻 있는 두 청년 지사를 애도함」에서 민천식閔天植, 최승구 “두 사람의 손을 기다리던 조선 문명 사업은 장차 어찌하란 말이냐”1라고 탄식하였고, 황석우는 1933년 1월 『삼천리』에 실은 「동경 유학생과 그 활약」에서 김여제와 최승구를 1910년대 최고의 시인으로 꼽은 바 있다. 그러나 최승구에 대한 평가와 연구는 지금까지 그리 활발하지 못했다.

    이 자료가 처음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김학동의 책 『최소월 작품집』(형설출판사, 1982)에 한 번 공개가 되었고, 이후 최승만의 책 『바르고 옳게 살자』(인하대학교출판부, 1983)에 한 번 더 공개되었다.2 최승만은 『바르고 옳게 살자』의 뒷부분에 「소월 최승구 유고」라는 제목을 달고 「소월 최승구 유고에 부쳐」와 『학지광』 13호(1917년 7월)에 발표한 자신의 시 「소월을 생각함」을 실은 후, 노트 전문과 함께 소월 생전 『학지광』에 실었던 글 「불만과 요구」, 「감정적 생활의 요구」, 「남조선의 신부」, 「너를 혁명하라」를 더하여 작은 선집을 만들었다.3 2015년에는 나혜석학회에서 일부를 현대식 표기법으로 수정한 후 「소월 최승구 시선」(『나혜석 연구』 제7집, 2015. 12.)으로 편집하여 다시 한번 공개하였다. 나혜석학회는 김학동의 책을 표준으로 삼았다. 이후, 소월 최승구의 시를 논하는 데 있어 많은 이들이 김학동의 책을 기본 자료로 연구하였다.
    김학동이 소개한 자료 중 대부분인 미발표 유고작 시편은 “그의 종제 최승만 씨에 의해서 보관되어 있는 유고 시집 노트에 수록되어 있”4다는 기록으로 유추해보건대, 최승만으로부터 제공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최승만은 이에 대해 어떤 기록을 남겼는가.

    소월의 수필과 희곡 등 적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나도 도쿄에 수십 년 있다가 귀국하여 집에 가보니 많던 원고가 다 없어지고 오직 남은 것이 시를 쓴 노트 한 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라도 기회 있는 대로 출판함으로써 소월을 추억코자 원고지에 옮기도록 한 것이다.5

    김학동은 자신의 책에 소개한 최승구의 시 대부분이 최승만이 보관한 유고 시집에서 가져왔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다음 해 6월에 최승만은 별도로 자신의 책에 노트를 중심으로 최승구 작품을 수록한 것이다. 수록된 작품들을 대조한 결과, 어느 정도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는 띄어쓰기 외에 한자 해석, 정리한 원칙 등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 차이에 유의하여 두 자료를 옆에 두고, 인하대학교 정석학술정보관에 보관되어 있는 복사 자료인 『(친필 원본 복사본) 최소월 시집』6과 대조하였다.
    정석학술정보관의 자료 정보에서는 이 복사본의 등록 시기를 1982년으로 써놓았다. 아마도 복사하여 정석학술정보관에 자료로 등록한 해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김학동의 책이 출판된 것으로 보아, 최승만이 김학동에게 자료를 제공하는 동시에 후학들을 위해 복사 자료를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세 가지 자료를 대조한 결과 다시 한번 필사본 자료를 공개하는 의의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김학동의 『최소월 작품집』 출판 이후, 같은 자료가 실린 『바르고 옳게 살자』의 시편의 몇몇 부분에서 한자어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거나, 오탈자 등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최승만의 책 『바르고 옳게 살자』와 자서전 『나의 회고록』의 소월 최승구 관련 기록을 살펴본 결과, 최승구의 생애에 대해서도 『작가들』에서 소개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였다. 마지막으로, 정우택이 발굴하여 발표했던 최승구의 유작 「긴─ 숙시熟視」도 원문을 찾아 함께 수록하여,7 최승구의 시편 중 『학지광』에 실린 것 외에 학계에서 찾은 모든 시편을 담았다.
 

아나키스트 성향의 유미주의자

    먼저, 국내의 연구자들이 기준으로 삼은 김학동의 책에 실린 최승구의 연보를 간단히 살펴보자. 편의상 간결한 형태로 정리하였다.

    1892년 경기도 시흥에서 최대현崔大鉉의 4남 1녀 중 막내로 출생.
    서양식 학교 입학 전 서당에서 한학 수학. 13세 때 사서삼경을 읽었고, 『삼국지』와 『수호지』를 원문으로 읽을 수 있을 정도였음.
    1910년을 전후하여 보성전문학교에서 상학 전공.
    졸업 후 일본 게이오대학 예과慶應大學豫科 입학. 경제 사정과 폐결핵으로 예과만 이수하고 귀국.
    1914~1915년 『학지광』의 편집인 겸 인쇄인으로 활약. 소월素月을 필명으로 사용. 소월 이전의 필명은 이당彛堂.
    유학 당시 나혜석羅蕙錫과 연애. 충북 충주 출신의 처가 있어 나혜석과 결혼할 수 없었음.
    전남 고흥군수였던 둘째 형 최승칠崔承七의 집에서 요양하던 중 1917년 26세를 일기로 사망.

    최승만의 자료 중 가장 간략한 형태로 기술한 「소월 최승구 유고에 부쳐」를 참고하여 몇 가지 덧붙이거나 수정할 정보는 다음과 같다. 한학 수학한 내용은 같고, 보성중학과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했다. 보성중학 제1회 졸업자였고, 성적은 매우 우수하였다. 변영로, 이상협 등과 동문이다. 『학지광』의 책임편집자였고 육당 최남선도 최승구의 문장을 칭찬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대학을 중도 포기했고 고흥에서 요양했다. 고흥군수 사택에서 요양할 때 최승만을 불러 며칠간 함께 지냈다. 사망한 시기는 1916년 2월이었다.
    최승만의 자서전 『나의 회고록』에서는 최승구에 관해 더 자세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8 내용을 서술하면서 설명할 내용을 덧붙이겠다.

    최승구의 아버지는 최대현으로, 해주 최씨 가문이다. 그들 형제는 안산군 수암면 고잔리安山郡秀岩面古棧里 당골로 이사하였다. 이 지역은 1914년 부령에 따라 시흥군 수암면 고잔리로 바뀌었다. 따라서 최승구의 연보에서 출생지가 경기도 시흥으로 표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은 1986년 경기도 안산시 중앙동으로 바뀌었다가 1988년 고잔2동이 되었다.9 그중 당골은 고잔2동에 속한다.10 최승구의 출생지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2동이고, 당시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안산군 수암면 고잔리이다. 최승구는 경기도 안산의 지주 집안 출신이다.
    최승만의 회고록에는 소년 시절, 최승만 자신의 집은 서울시 수송동에 있었고 최승구가 속한 큰집은 노량진에 있었다고 쓰여 있다. 동네 이름은 가칠목으로 수원지 인근이었던 것으로 최승만은 추정하고 있다. 1945년까지는 경기도에 속하였으나 이후 서울에 편입되어 동작구 본동이 된 지역이다.11 6세 때부터 최승만은 이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큰집 식구들과 살게 된다. 집에서 40~50미터 바깥에 강변이 있었다고 한다.
    1902년 무렵, 큰아버지(최대현)가 이미 돌아가신 상태에서 큰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집안의 형제는 막내딸 영희를 제외하면 4형제(승오, 승칠, 승팔, 승구)가 있었고, 형제 중에서는 최승구가 막내였다고 한다. 대청마루에 큰아버지 큰어머니의 궤연几筵이 있었고, 제사를 자주 지냈다고 한다.
    1903년 무렵 두 가족은 서울로 이사한다. 최승만이 속한 작은집은 종로구 사직동에 자리 잡고 큰집의 최승팔 내외가 함께 살았고, 정작 큰집은 인근의 내자동에 두고 최승오, 최승칠 내외와 승구, 영희가 함께 살았다. 큰집의 어른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작은아버지 최문현崔文鉉이 가까운 거리에서 보살피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맏아들 최승오 역시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둘째였던 최승칠이 시골 군수가 되었다. 차후 최승구가 일본에서 병들어 돌아왔을 때 요양했던 고흥군수 사택이 최승칠의 집이었다.
    1903년까지는 집에 선생님을 두고 한학을 배웠으나, 이사한 이후에는 도정궁의 왕족 이해창李海昌에게 가서 그 집의 작은아들과 최씨 형제들이 함께 배웠다. 7, 8개월 후에는 다시 사직동 집에 선생님을 두고 가르침을 받았다. 이때 최승구가 사서삼경을 떼어 집안에서 가장 촉망받는 인재로 여겨졌다고 한다. 1906년 9월 5일 박동礴洞에 보성중학교가 창설되자 첫 신입생으로 입학하였다. 중학교 졸업 후에는12 충주 출신의 부인을 맞았으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후 보성전문학교까지 졸업하고 일본 도쿄의 게이오대학에 입학하였다. 게이오대학에서 나혜석과 약혼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13
    최승구는 게이오대학 재학 중 여름방학에 책을 많이 가지고 왔다고 한다. 최승만은 최승구가 가져왔던 책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다. “대개가 문학에 관한 책이었다. 서양 문호들의 걸작·소설·희곡 등으로부터 사회주의·무정부주의 글도 읽게 되었다. 일본 사회주의자 사카이 도시히코堺利彦와 오스기 사카에大杉榮 등의 저서 및 잡지도 보게 되었다.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의 기독 말살론基督抹殺論까지도 내 눈을 거치게 되었다. 셰익스피어·괴테·루소·톨스토이·입센·니체 등의 저서도 읽어보게 된 모양이다.” (최승만, 『나의 회고록』, 앞의 책, 37~38쪽)
    1916년 1월 중순경 최승구는 폐병으로 최승칠이 군수로 있던 고흥 관사로 돌아왔다. 2월 중순경 24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최승만은 최승구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에 나혜석이 왔다 갔다고 전하고 있다. 최승구가 이혼하고 나혜석과 결혼하려 했을 때, 이를 말린 집안 어른은 최승만의 아버지 최문현이었다. 최승만은 졸업을 앞두고 최승구의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진술하고 있고 최승만 연보에서 경성 중앙YMCA 영어과 졸업은 1916년 3월이다. 같은 해 10월에 도쿄 유학을 떠났기 때문에 이런 시기의 기억이 잘못되기는 어려운 듯하다. 앞서 소개한 『학지광』의 애도문 역시 1916년 8월에 실렸으므로, 1916년 2월에 세상을 떠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최승구의 생애 중 『학지광』과 관련된 부분은 회고록에 서술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번에 살펴본 자료로 확인한 사항 중 중요한 것을 꼽자면 서양 문호들의 작품을 많이 읽었으며, 사상가로서는 일본의 아나키스트-사회주의자와 루소, 니체의 저작까지 폭넓게 읽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중 사카이 도시히코(1870~1933), 고토쿠 슈스이(1871~1911), 오스기 사카에(1885~1923)는 1903년 헤이민샤平民社라는 아나키스트-사회주의적 경향의 단체를 결성하는 데 함께했던 인물이며, 한국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14 고토쿠 슈스이는 1910년 메이지 천황 암살 혐의로 체포되었고 이듬해 처형당했으며, 오스기 사카에는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헌병에 잡혀 살해당했다.15 최승구가 그의 글에서 직접 언급한 오스카 와일드, 표도르 솔로굽과 함께 이들의 영향에 대해 좀 더 깊이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16
    최승구는 일본 유학 시절, 나경석(나혜석의 오빠), 김억, 황석우 등과 친하게 지냈고, 이들은 모두 무정부주의적 성향을 보였다. 이 중 나경석은 아나코생디칼리스트로 오스기 사카에, 헨미 나오조逸見直造와 교류했던 기록이 있다.17 『학지광』 4호(1915. 2.)에는 한국 최초로 무정부주의를 선전한 「저급의 생존욕」이라는 글도 썼으며, 1920년대 초에는 조선노동공제회 설립을 주도했다. 김억은 비록 자퇴했지만 최승구와 함께 게이오대학을 다녔으며, 재일본 학우회 활동도 열심히 하였다. 이후 『해파리의 노래』의 한 부part를 최승구에게 바쳤다. 황석우는 와세다대학 정치경제과 출신으로 흑도회와 북성회 결성에 참여하는 등 열성적인 무정부주의자였다.
    『학지광』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자료는 최승구가 직접 쓴 글 이외에 제3호와 4호에 그가 인쇄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편집 겸 발행인은 신익희였다. 이에 대해 김윤식은 편집부장이 신익희, 편집부원 중 수석이 최승구였다고 해석하고 있다.18 『학지광』에서 그의 위치는 탄탄했던 것이다.
    최승구는 어린 시절 수학한 한학적 소양 위에 일본의 사회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였던 사상가들의 저작을 소화했으며 톨스토이, 루소 등의 서양의 문호를 거쳐 오스카 와일드 등의 유미주의까지 섭렵했다.19 이를 단순히 문화의 상하관계적 영향으로 읽는 것은 조심해야 하나,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의 사상적 체험이 생각보다 폭넓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들의 문학적 표현을 고구해야 할 것이다.
 

교정 원칙

    이 시집은 필사본으로, 최승구가 정서했음에도 완벽하게 고증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한글과 알파벳, 일본의 약식 한자가 병기되었으며, 알파벳과 한자는 필기체로 씌었다. 저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띄어쓰기도 어려웠지만 점이 찍혀 있는 경우에도 필기 습관 때문인지 의도적인지 인지하기 어려웠다. 제목 옆이나 시구詩句 중간에 같은 의미의 영어를 병기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 영어 표기 옆에 “Wilde관”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었으며 때로는 노트 지면의 빈 부분에 지명을 써놓기도 했다. 이로 인해 김학동본과 최승만본의 『최소월 시집』에 차이가 생겼는데,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정리하였다. 원칙은 다음과 같다.

– 원문에 한자, 알파벳, 한글이 섞이어 독자들이 읽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였으나, 자료로서의 가치가 우선한다고 생각하여 원문을 그대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예를 들어 한자를 일본식 약자로 쓰는 경우 또는 옛 한자를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또한 원문을 따랐다. 필기체의 특성상 명확하지 않은 것은 두 판본의 한자 해석을 따르고 진서眞書로 표기하였다.

– 한자의 해석이 엇갈리는 경우, 최승구와 가까운 사이였고 함께 한문을 수학하기도 했던 최승만의 해석을 우선으로 하되, 원문을 확인했을 때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김학동을 따르기도 했다.

– 알파벳 필기체는 대문자와 소문자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김학동본과 최승만본의 의견도 엇갈린다. 필기체의 모양을 기준으로 판단하되 같은 부분에서는 일관된 원칙을 적용하였다.

– 기타 알파벳을 사용하였으나 제목의 병기라든지, 지명을 썼다든지 하여 김학동본과 최승만본에서 누락된 문자는 모두 원문대로 살렸다.

– 최승구는 원문을 수정할 경우, 원문의 단어 위에 점을 찍고 노트의 빈칸에 수정할 글자를 써놓는 방식을 택했다. 김학동본은 이를 다수 반영하였고, 최승만본은 놓친 부분이 많다. 수정한 부분을 써놓되, 수정 이전의 내용은 각주로 달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주에는 공란에 씌어 있던 영어 표기 중 의미가 같은 단어도 포함되어 있다.

– 노트에는 시를 쓴 날짜, 지명 등의 위치가 자유롭다. 이에 대해 일관된 편집원칙을 적용하기보다는 원래의 위치에 최대한 가깝게 놓았다. ‘가깝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시를 쓴 곳 외의 공란에 써놓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 끝에 “magazine”이라고 쓰거나, “(完)”, “完” 등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기 힘든 경우에도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적용하였다.

– 제목 옆에 ■, □, △ 등을 표기한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그대로 살렸다. 또한 연과 연 사이의 도형도 그대로 표기하였다.

– 세로로 쓴 글자 옆에 작게 쓴 동그라미 표시는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첨자로 표기하였다.

– 마침표와 쉼표. 최승구의 시 원본에서 마침표는 확실하게 “。”로 표기하였다. 따라서 “。”는 현대 한국어의 마침표 “.”로 표기하였다. 점을 찍거나 삐친 점을 찍었을 때에는 쉼표로 보았다. 습관적으로 찍었을 수도 있지만, 『학지광』과 『근대사조』에 발표한 시를 보았을 때 쉼표를 많이 썼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문제가 되는 표기 중 하나는 긴 줄표(─)였다. 한일 자와 구분이 어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긴 줄표는 앞뒤로 띄어쓰기를 하거나 긴 줄표가 맨 앞에 나와 있을 때에는 뒤에 띄어쓰기를 하여 한일 자와 구분하였다.
 

자료를 공개하며

    이상으로 최승만의 회고록에서 유의해 보아야 할 사건을 중심으로 최승구의 생애를 정리하고 시집 표기 원칙을 정리하였다.
    최승구는 1914~1916년 1월까지 시를 짓고 발표하였다. 세계사적 맥락에서 보았을 때,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전개와 함께했으며 러시아혁명을 1년 남짓 앞둔 시기까지 작품을 발표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각각 150만 명을, 영국은 거의 100만 명을 잃었던 거대한 폐허 속에서20 그는 평화와 자유, 아름다움과 파멸을 노래했다.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등이 주창했던 사회진화론의 우승열패 세계관에 단호하게 반대하면서,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사회주의와 인간의 영혼」 편에 선 시인이었다. 한글과 영어, 한문과 일어를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어학적 소양을 습득한 그는 한국인으로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시적 실험을 시도했다. 단조로운 율격을 벗어났지만 운율을 살린 자유시부터 율격으로부터 해방된 산문시까지, 다른 한편 한시풍의 「밤 어둠이 자라다夜色長」 등 율격이 두드러진 시까지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진행되었다. 한자어 “저”를 음독하여 양가적 의미로 읽을 수 있는 방식을 탐구했고, 작품 공란에 영어로 그 시의 감정을 써넣어 악상기호처럼 활용하기도 했다. 자유롭지 못했던 사랑을 노래했고, 추억과 현실 사이에서 바스러지는 예술혼을 표상했으며,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 역시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가을 바다를 옛 봄의 묵은 꿈으로 착각하고 죽음의 자리로 질주하는 나비를 동시대의 예술가들로 보았다. “Destruction of Art”라는 부제를 붙인 「밀물에 나비」에서 “무궁한 존재의 너른 바다”에서 “범속의 운명”에 떨어진 나비와 자신을 분리해서 보았던 시적 화자가, 동시에 그 나비 속에서 자신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이러니한 해석으로 이 글의 제목을 붙여보았다. 이제 작품을 직접 읽어볼 시간이다. 최대한 원문 그대로 소개하겠다는 원칙 때문에 가독성은 떨어지지만, 몇몇 시편이라도 독자의 밝은 눈에 든다면 애쓴 보람이 있을 듯하다. 작품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후일을 기약하기로 하겠다.
 


 
 

〈발굴 자료〉

(親筆原本 複寫本)
최소월 詩集
 
 

  鐘

Hibiya Park. 1915. 10. 2.

  깨끗하고 바람従容한 가을날에
    나홀노 七葉樹 그늘에서 逍遙하노라,
  主日 告함의 敎堂鐘 소래 멀니울니매
    幸福의 音波는 입새에 依支한 단꿈을
  지나서, 따듯한 나의가슴에 가만히 숨이도다.

  잉잉, 너르게 널니 大氣에둘네 저서
    半이나 마른 잔듸위에 恩惠로운 呼吸
  주어가며, 한마리솔개는 그榮光에 思慕하여
    소슨塔을 依戀不捨, 半空中에 빙빙도라
  烟花의都會는 永遠의平和에 잠기도다.
 
 

  ▲ 사랑의 보금자리

七月 十二日

  這갈대로 다러나는 气車의窓에서,
    나는 눈물노 這古城의松林을 바라볼뿐이라.

  這松林은 나의님의 깃듸린 곳─Nest of Love,
    나의님의 그리움이여, 나의님아!

  籠中에든 나의몸 自由로 나르지못하노라,
    這구름─Wings of Kiss으로 키쓰나보낼게나.


 
 

  博士 王仁의 무덤

大阪北河內郡
菅原大字藤阪
Osaka

  발 자최 멀니 건네매
    더운 바람 쏠님이여
      봄山이 香氣로운듯.

        王國의 거륵한 德이
          그대로서 빗남21이여
            어둔밤에 달도든듯.

              큰使命은 傳한 곳에
                恩惠의 비 뿌림이여
                  讚頌노래 들녓노라.

  뒤엣 사람 차저 옴에
    “고사리 업다” 이山에,
      헛된 疑心 두지마라.

        灵은 나의 故鄕으로,
          肉을버서 더저둠이
            놉흔賜物 낏침이라.

              떨기무덤 검은 碑돌
                줄기 띄가 말넛스나,
                  巡禮者의 바램이라.

  하날 빗과 가을 물이
    갓치 길게 푸름이여
      찻는 사람 그뉘던가.

        利한 쟁기 것친 밧과
          마른 논에 일함이여
            조흔 收穫 이22뤘스나,

              멱서리 바굼이 들고
                덜에서 이삭 줍는者
                  그대 子孫 멧치던가.

  記録과 香花 갓추고
    이곳에서 절하는者
      그얼골이 엇더턴가.

        金바람이 蕭瑟함에
          누른 葉 떠러짐이여
            客의 꿈이 가늘도다.

              먼邨에 烟氣 오르매
                성긘 白樺의 그림뿐
                  夕陽빗에 누엇노라.

(完)
Oct, 1915.
 
 

  나의 故里            My old country

八月二十七日

  老炎이 더욱 뜨거운데, 더위에 지친몸에
    비지땀을흘니며, 빨니向하는곳 엇읜가.

  우리故鄕이라, 우리父母가나를誕生하신 ─ Birth Place.
    우리兄님 나를爲하야 흙파는곳이라.

  각시노름 ─ Plays of Dolls하던 竹林속23, 白楊목 드러슨 우리兄弟의 집,
    옛날동무 ─ 純实한百姓의 모뒴이그리워서.


magazine
 
 

  不如歸

濟州嶋

  먼南國 깁흔 골에
    남모르는 喬木 나서,
  미끗한 柯枝와
    盛한 葉 버렷네.

  따의 침 비의 기름
    큰創造에 나 한 生命,
  부러움 자랑 업시
    웃둑히 서잇더니,

  三五更 半밤 달에
    萧瑟한 바람과
  찬이슬에 沐浴하며
    슯히우던 不如歸여.

  네 무삼 懷抱로서
    쉬임업시 울엇스며,
  故鄕 두고 멀니와서
    내게 앵김 웬일인가.

  네 사랑 잇서 나를 차저
    내어이 薄情하리,
  네 처음 올때붓허
    내 반가히 마젓노라.

  凄涼한 너의울음
    구비구비 넹길 ᄯᅢ에
  맑은 시내 그윽 ─ 히
    雲霄까지 사모치네.

  哀嗟로운 感傷曲이
    서리서리 銀絲로서
  간은 나의 枝節까지
    지릿지릿 제리엿네.

  이 구석에서 긴歎息
    這언덕이 울니여
  寂寞한 밤山에는
    오즉 너의 소래뿐.

  압邨에 늙은父老
    燈도드고 담베 푸이며,
  뒤 洞內 절믄处女
    바눌 노코 눈물지네.

  너의 소리 가는곳에
    깁흔同情 솟거니와
  검은沈默 ᄭᅢ치는外에
    또무엇이 생기는가.

  굵은 種子 뿌린 밧에
    떠러저 다시 뭇치고,
  큰 소래 만든터에
    다시 와서 사러지노.

  行走하던 鷄犬도
    죽은듯 声息업거니와,
  紛雜하던 萬籟도
    烟霞에 깁히 잠겻노라.

  때가 닷고 일이 갈님
    제힘것 따러가려
  萬物의 根本 뜻임
    자리도 变하여보려.

  옴과 갓치 가는것이
    네가 가게 됨이더냐,
  또다시 뭇노라니
    두고감이 무엇인가.

  南과 北이 난호이니
    다시 안기 難期로다,
  未久에 嚴冬오면
    白雪 뿐 뿌릴게라.

  脉 업는 구름 뜨고
    調 일흔 물 흐름에
  나홀노 朔風마저
    휘파람 부러볼가.

(完)
Aug, 1915.
 
 

  ■ 漢江上에서

八月十六日

  ‘三山은 半落靑天外 二水는中分白鷺洲’
    唐나라 李太白의 얼프던 詩가24
    漢江邊 玄石里의 挹淸楼에서외로히
    逗留하는 나를慰勞함인줄 뉘알엇스리.

  天廣地闊 가는곳마다 내집인가. 朱欄畵楹
    舊營에서 잠을자니 鼓角소래 ᄭᅮᆷ속에서.

  靑山淡水내것이라. 아츰에 漢江上에나의얼골
    씨스니, 水中影 나의얼골 곱다할가.
    薔薇花故鄕의 라인河邊處处女心이라.


magazine
 
 

  ▲ 步月            Lamentation

Kammakura

  하날은 검 푸른 구름이
    情업는 저녁 소낵비에,
  두듸려 마저 脉업시 된
    여름 입새의 느러짐 갓치
  여긔저긔 흿터젓노라.

  너울너울 으슴푸레
    희이수름 불그레,
  바래고 낡은 花辨갓흔
    둥근 달무리속에,
  자즈러진 꼿술보램으로

  누르 수름한 這달은
    우는낫으로 엿보는도다.

  나를 생각하는 나의님
    這구름에 나를 생각
  차츰차츰 건일며,
    這달에 나를 빗최려
  微笑로 울어러 봄에,
    검음으로 애를 태우고
  누름으로 나를 울니라.

  빽빽한 運命의 줄에
    에워싸인 나를 우는 나의님
  따듯한 품속에 나를 감추려
    그 깁흔 솔밧으로 오르리라.

  崎嶇한 山路의 돌부리에
    부듸친 나를 우는 나의님
  단 입술노 나를 싯츠려
    그맑은 시내로 내리라.

  忠实에 疲勞한나의님
    軟弱한 몸에 땀흘니며
  내가에 펄석 주저안저
    눈물에 울고 울다가
  바위를 그러안고 大地에업데리라.

  검은 面紗로 덥흔 이곳바다,
    느진 波濤가 주절거림에
  밤 바람은 眛情하여
    모르는 곳에서 새이25는 歎息은
  隱隱히 멀니 건네도다.

  朦朧한안개에 뭇친 언덕위
    村집에는 弱한 燈이 오즉한빗,
  보이지 안는 수풀속의 古鐘소래26
    저녁 呼吸에 떨니여 울닐뿐.

  것치러진 너른 덜에
    胡笳소래 哀닯허
  𨖂方 戰馬 길이울고,
    이슬에 저진 天幕에
  故鄕꿈이 깁헛든勇士는
  굿은 벼개가 둥굴니라.

(完)
Feb, 1915.
 
 

  花羞            Fairy of Blossom

四月十五日

  椿의꼿─Tsubaki no Hana 아즉지지안하였는데, 櫻의꼿 ─ Shakura no Hana는발서 봉오리봉오리웃는도다.

  꼿마지하러, 비둘기차저보려 鶴岡의八幡에는 ─ Tsuruoka no Hatjimanmiya에 元氣조흔士女의떼는 떠들석하는도다.

  그中에도아리따운뉘집令孃 紛雜한것ᄯᅥ러저, 乳母를따러松林밋椿의ᄭᅩᆺ섭섭히섯는빗탈길노건일다가, 갓흔香이貪나던지, 花花枝擧欲折하려다가, 꺽지도못하고, 錦繍香囊만떠러틔린다.

  집어주니 “아리아도⋯⋯”하는小女의雙頰 桃花27色이羞즙도다.
  한가지꺽어傳하니 “⋯⋯” 無言의小女 蓮唇이方欲綻이라.


 
 

  痴笑─歎息─涕泣

  普信閣 街頭에서 彷徨하는 淺薄한 放蕩児
  髙聳한 靑樓에서 珠簾裡 流盻하는
    才子佳人의 秋波
  軒敝한 朱肆에서 蛾眉下 움직이는28
    藥山 東坮 不老艸의 檀板一声에,
  眼花肉蕩 耳音身29飄하여
  所關事를 沒却 行路難을 岡知,
    歪唇에 黃齒를 露하고 一痴笑한다.

  廣通槗 石欄干에 佇立한 魁偉의梁山泊 好漢,
  半潰 半折한 水柱의 黑苔에 뭇친 依稀한 記号
    枯索籠中에서 未來의 運命에 지저귀는
  三數百頭의 犧牲的 嬰鷄무리,
    下南村 一帶에 平伏한 草盖瓦우에
  暗浮하는 廢墟의 灰色 저녁 烟氣
  殘沙에서 波蘭되는 細流─萬戶陋醜의汁
    眼昏肉冷에 耳聾身戰하여
  所關事를 沒却 行路難에 惘然
    蓬髮에 雙手를 加하고 一歎息한다.

  數間 茅屋 寒窓下에 片脚 冷榻을 対한 ‘瘦瘠한 改良家’
 
 

  △ 別            Lovely

  藤交椅에 悠然히 안진 這의님의姿態 高貴도하지, ‘나는 바다가 조와요’ ⋯⋯
  ‘가고십지안어오’ 欄干에 두손을언지며, 微笑로.
  ‘가지마지⋯⋯’ 크게도 못하고.

  ‘가야하지오?’ 얼마잇다가, 어두어감을보고.
  ‘녜⋯⋯’ 마지못한対答이라. 두사람의눈은저녁빗과갓치 희렷도다.
  普信閣이큰鐘이 뎅뎅子正을告한뒤의漢陽밤 空氣갓치 만낫다가 헤여진後는 寂寞한것이라.

  두 사람은 그것을 알엇스나, 헤여짐이라. 길에가다가,
  ‘인제는這바다가안이보이지’ 얼골이엇더한지 보이는듯.
  ‘인제는안이보이지오 ─ Fare thee well이라’ 슯흠으로.


 
 

  夜色長

一九一五. 十. 十八

  月朙하니 夜色長이라.
    漁火는 點點燈이오
      星宿은 斑斑珠로다.

  月朙하니 夜色長이라
    遠山은 蒼海浮하고
      近社엔 古鐘聞이로다.

  天靜하니 秋声高로다.

Kamakura.
(完)
 
 

  □ 秋夜靜

Dokyo.
一九一五. 十. 十五

  雨後晴한 하날에 느진달이 소슨 가을밤이 従容하도다.
  四五同伴 故鄕親舊의 談論이 익은끗30 各𦋼帰한뒤
    連床하던 동무마저 手巾들고 浴間에 간뒤의 房空氣도 従容하도다.
  﨎窓開하고 이러케 冊床을対하여 這달을 仰觀하는
    나의 心神도從容하도다.
  밤품에 앵긴 따리아의 花園에 面한 나의 님의 寢室에
    외로운 灯下 繍球에 빗최는 나의 님의 어엽분 두 눈도 또한従容하리라.
  생각건대, 従容한 이밤에 우리의게는 平和의 꿈이 잇스리라.

(完)
 
 

  喇叭

  白銀의月弓은 森嚴한鋼營에 걸녓도다.
 
 

  □ 潮에 蝶            Destruction of Art

  南國의 바다 가을 날은
  아즉도 따듯한 볏을 沙汀에 흘니도다.
  저젓다 말넛다 하는 물입술의 자최에,
  납흘납흘 아득이는 흰나뷔
  봄아지31렝이에 게으른 꿈을 보는듯.

  黃金公子 꾀꼬리노래에,
  梨花紛紛 這의 춤을 자랑하던
  三𣈤의 行樂이 잇치지못하여,
  묵은 꿈을 이어보려
  깁흔 수풀 너른 덜노 헤매다가,
  지난밤 一陣의 모진 바람과,
  맵고 찬 쓰린 이슬에 것치러진
  옛봄의 머무럿든 터만 記憶하고,
  이바다로 내림이라.

  珊瑚珠 시골에 들너오는
  먼 潮水의 香내에 酔하여,
  金바람의 압수레에 부듸처
  허엿케 이러나는 적은 물결을
  前에 놀던 ᄭᅩᆺ으로만 역여,
  납흘납흘춤추며
  天涯먼곳 無限한 波濤로.

  “아아! 나뷔여, 나의 적은 나뷔여,
  너홀노 어대로 가는가.
  너 가는곳은 滅亡이라,
  바다32는 하날과 갓치 길메
  暴悪한 波濤는
  너의 藝術을 파뭇으려 할지라.
  무섭지안이한가, 나뷔여,
  검은海藻에 숨은고래는
  너를 덤석 삼키려,
  기다렷다 벌컥 이러나는 큰물결은
  너를 散散바쉬려.”

  아츰이슬과 저녁안개에
  軟하게된적은날개와,
  山과덜에서疲勞한
  這의몸으로 险한바다어이가리.
  뉘웃침을업수히
  過去를崇拜치안이하던 적은나뷔,
  不祥할게나, 凡俗의 運命에 떠러짐.

  刹那의 快樂 瞬間의破滅!
  哀닯고 압흐도다, 큰事实의 보임이.
  無窮한 存在의 너른 바다는
  永劫의 波濤를 이리킬뿐이라.

  아아 나뷔는 발서 보이지 안는도다.
  “이러케 나만 陸33에 내리랴,
  나의 울음 너의게 들닐길 업스나,
  나홀노 너의 길을 슯허 하노라.”


 
 

  秋成熟            Rail way

十月十日

  天은髙하고 野는黃하야 秋色이 正히半熟이라.
  長空을劈하고 一道34靑堤 兩條線에 戞戞然駛走하는
  ─ 火車, 其声이 殷殷 夜雷轉과如할뿐,
  浩茫한 武藏野의平原의 禾田과豆畝에는農夫
  ─ 農婦의 刈鋤影이 稀少하여,
  竹林裏村家나, 竹杖芒鞋의行人이나, 曳荷車
  ─ 하는走馬나, 찍찍…… 鳴秋声하는靑蛩이나,
  都市 秋成熟을传하는 氣色이라.
  待全熟하는 秋之野는 若是히 無事로다.
  鄕關에作客 無定处漂迫하는 唯獨我35의게만
  ─ 秋成熟기다림이 업슬가.


 
 

  海의 夕照

  夕照가 떠러지려하는 가을 하날에
    나는 従容히 이쪽浦邊에 서서
  한幅 平穩한 바다를 隔하여
    這便 어덕의 景色을 바라본즉,
  慣性에36 움직이는 萬頃의 적은물결
    銀箔의 섬돌을 까러노은듯한 水色,
  西川 薄絹에 갓물듸린듯한
    부드럽게 둘년친 橙紅色의 漫山帳,
  그사이에 紫水晶의 밤呼吸을 吐하는
    紺靑의 連山이 굿건히 섯노라.
  ─ 斑黃豹 赤色驄毛로 繡노은듯한
    五彩 日𠍘 밋헤.

  우흐로 무엇을 밧을듯이 崇嚴히 거러암진山은
    大雄殿上 牟尼佛의 蓮花寶座갓치,
  光輝가 燦爛한 祥瑞로운 彩雲은
    勤政殿上 承運帝의 龍床위 天井갓치.

  覇氣가 牛斗를 찌름은 가을의支配者
    赤帝將軍 万䏻의 権威를 떨치는듯,
  平和가 宇宙에 充滿함은 慈悲만흔 觀音菩薩
    觀音菩薩 淨甁에柳葉들고西天極樂 向하는듯.

  万朝百官이 丹37階에서 朝會하듯이
    億兆 众生이 佛花坮下에 聽講하듯이
  모든 生物은 恭遜히 西便으로 머리를조으면서
    넘어가는 日光에 빗최면서
  生活力에 充動되여 歓乐의 우음을보이는도다.

  웬구름이 袞龍袍의 紫葡萄빗으로变하엿다가
      ᄯᅩ 月宮 姮娥의 얼골에 가리우는 薄灰의
    姸姸한 面紗로 变하였다가,
  아아 嬌態千万 大自然의 美妙.

  金가루를 ᄲᅮ린듯한 潺潺한 물결은
    부드러운 바람과 갓치 白沙의 뺌을
  짝짝, 할틀때에, 丹楓의態를마즈랴하는
    나무입의 酔함에 맛부븨는 소래 부슬부슬
  아아, 謌調玲瓏 大自然의合奏.

  이, 나의 眼前에 展開된 夕景
    神出鬼沒하는 率居의붓으로 그䏻할가.
  逼眞한 丹靑, 巧技한 모사익으로 그䏻할가
    이게 偉大한 自然의 큰創造로다.


 
 

  美            Beauty            Wilde觀

  這의 어엽붐이여
    這는 美의 모뒴이다
  薔薇와 갓치 窈窕하고
    妖艶의 香氣를 퓌임이라
  寶石과 갓치 燦爛하고
    眼花의 Charm38을 내임이라.

  美는 天才라
    高貴하고 崇厳하도다
  实은 天才보다도
    더 깁흔 価値가잇는것이라
  ─ 이것은 講演을 不要하고
    ᄯᅩ說明키 不ㅇ䏻함과갓치.

  美는 大事实이라
    ─ 溫和한 日光
  多情한 𣈤色
    우리가 “달”이라 부르난
  海底에 빗최는銀殼과갓치,
    宇宙에 充滿하도다.

  美는 非皮相이라
    적어도 理想과갓치
  그러한 化殼ᄲᅮᆫ은안이다.
    粧飾의 德義와
  自慢의 面皮39보다는
    記錄이 잇고 功䏻도 잇슴으로.

  這의 어엽붐이여
    美는 大権威라,
  天宮의 神과 갓치
    우리를 支配함이로다.
  這는 엇더한 人民의게던지
    Lord40의 待遇를밧는도다.

  美는 참으로 珍奇한 것이라
    音乐으로 말하고
  詩와 散文으로 쓰고
    德으로써 行함이로다.
  ─ 世界의 가는곳 마다.
    万人이 騶従하는도다.

  美는 大神祕라
    謎語와갓치난難解로다
  外觀뿐 表題로하는者
    公平한 解決업스나,
    神祕는 实現이오
    非实41現이 안이라.

  這의 어엽붐이여
    這는 神의 寵兒라
  神이 주실때에
    幸福ᄭᅡ지 두터히.
  허나, 神의 賜物은
    容易히還收하시느니라.

  ─ 짤은 靑春의 恐怖라,
    灵肉 頹廢의 滅亡이라.

May, 1915

 
 

  幾重의 世界

  眼前에 展開된 世界에 眩惑하는 人生이여,
  이世界는 複雜이라 함보다 单純하고
    珍奇라함보다 平凡치 안이한가.
  이世界의外에 더複雜하고 더珍奇한世界가
    一重 二重 乃至幾重重으로 展開되엿슬것이라
  이것을 超越하여 追究思索하는者라야,
    实노 世界의 生活者 ─ 智識家라할지로다.

  僻邨에서오는遊覽客이 南台嶺을올나서
    巍巍縹眇한 三角 牧丹의半開한듯한白岳
    百練長江의 ─ 駿馬長嘶하는 ─ 圍繞
    靑沙一帶의龍野를俯瞰하고
  今日ᄭᅡ지生長하던故鄕보다는
  別世界오 新奇한天地인것을 驚歎할것이라.

  跚蹒蹒 崇禮의 虹霓門 드러스니
    大廈가櫛比 街路가縦橫
    店鋪가四開에 万貨가輻湊
    人畜은雜踏에 車馬의馳驟하는것이
  窮巷眼目의 藥令이나 三日市 四日市보다도
    宏大한 無定期의大市場이라,
  善物사서旧婦村稚의게 買喜하겟다 心算하며,
    帝都의繁榮에醒莫酔할것이라.

  鐘路와서普信閣巨鐘보고 黃土峴에 와서
    火駞의対立한것을보고 한번더놀난後에,
  그래도不滿足하야, 쌈지42속에裏又裏하엿던
    重한그돈을ᄭᅳ내어 入場券사가지고 光化門드러서서
    勤政殿交泰殿 ─ 의屋根업는것까지 ─
    慶會樓 乾淸宮 春塘䑓까지다보고서야 말것이라.
  南台嶺에서 崇禮門 光化門 그속 그속의
    勝景과 盛跡을探訪하겟다하는 우리村客의게
    ─ 現地에서는 不滿足 ─ 그러한勇氣와進步가
    잇는것을 우리는嘆賞치안이치못할바라.


 
 

  文章의 賛43

    먼저, 우리先祖 文憲公 冲 의 노래를쓰노라.
  淸儉으로 銘諸巳, 文章으로繍一身.

  文章에는敷衍이있고 諷刺가잇고 激勵가잇고,
    褒獎이잇고 唾罵가잇고 急이잇고 緩이잇스나,
    조금도 虛僞는업는것이니라,
    崇嚴을主張할것이오, 賤弄함이안이라.

  文章은記錄이나 ‘記錄은他人을읽힌다’하는것보다
    ‘自身이읽는다’하는것이 더重한意味라.
  自己가읽음으로써 自己의批評을求할것이오,
    因循하여解釋함에不過하면 文章의價値가 안이라.

  詩는吟咏하는데서 興味가津津하고
    論文은朗读하는데서眞理를透徹할수잇는 것이라,
  自國語의巧妙한筆法으44로 綜合된文章은
    吟读함으로 形喩치못할 超越한趣味가
    汗肉에滲入하며, 非凡한氣勢가心魂을 飄蕩케하나니,
    여긔서, 自國語에 対한 愛情도 흐를것이라.

  翠竹軒의 ‘吊伯夷叔齊’ 詩를읽을ᄯᅢ에 漢字로만썻던것을恨하며,
  루소의 에밀 ─ Emil 을읽을때에 自國語의翻訳이업는것을恨하노라.


 
 

  偉人의 빗            Light of Greatness

  雨後晴한 하날에는 東洋畵家의 大毛筆노
  淡墨을만히뭇45처 너른幅에묵갠듯이,
  얼숭덜숭 검은구름이덥혓노라.
  때下午여섯時가 채못된듯 不知中夕照는넘어갓나보다.
  夜幕이 내리기 始作하여 太陽은이世界에旗를 감추엇스나, 남은威厳의빗은伊豆 ─ Isu의連山 江之島 ─ Yenosima의우헤火鏡과 갓치 한장구름이 걸녓도다.
  夕飯을 적어도五分동안은보내여먹고나와서보니
  발서매우어두엇도다, 허나,
  남은빗은 그저잇서 琥珀色46을 보이노라.
  漁村에서 대려노은 三四奌燈불外에는 이世界에
  오즉 這남은빗이크도다.

  얼는보면月夜갓치 銀蛇가번듹이는듯한
  한줄기 빗최는海面에 한集漁船은길을어긤업시 느47진布帆에 村으로向하노라.

  남은빗은 희린날에 眞珠얼골갓치보이노라.
  太陽은 거륵하도다, 남은빗의生命이這와갓치길고, ᄯᅩ빗나도다.
  這빗을思慕하는者가 나홀노이안일게라.

  너른生活의 바다를 건너48는大偉人의빗이ᄯᅩ한 저러할것이라.
  검은運命의가림에 世上사람이 그빗을울어러보지못하였스나, 그의末路에오히려빗나는 그빗을 ᄯᅡ르리라.

一九一五. 十. 卄三

 
 

  乞食兒49

  連日비온끗 매우쌀쌀한날 저녁때에,
  나홀노 旅館二層欄干에依支하여
  楼下 海邉으로빗긴길을 내려다보려니,
  這便으로붓허, 적은兒孩 ─ 처음에는 사람이
  안인가하엿다, 가늘기 枯木갓흠으로 ─
  맨발에 검은홋옷 ─ 夏衣가그러케검게 ─
  한벌에색기로 허리를 동이고, 新聞紙에무
  엇을 싸서든채로, 배틀배틀 진창에 그냥
  거러온다.
  “거지50 ─ 乞食”다, 楼下門밧게모혓던兒孩들
  의소래,
  “응, 저것보아라 거지가온다” 다른 兒孩.
  “참 거지로구나 불상도하지 맨발에, 바르를떠는
  구나” 人情만흔 主娘 ─ 하나상 ─ Hanasan의
  소래.
  “하나상 하나상, 그 兒孩 이리 ─ 門압흐로데리고오라고”
  나도乞食兒孩로보고, 主娘의게이말을付
  託하며, 아래層大門으로내려가다.

  主娘은果然그兒孩를데리고왓도다.
  거지는果然거지오. 파리한얼골은파럿케맷처서
  바르를 ᄯᅥᆫ다.
  “이애, 너 거지냐” 처음으로偶然히뭇는말이 내가생
  각할지라도 넘우薄情하였거니와,
  “응, 나는 거지야” 対答하는어린兒孩의 말도 넘우
  昧情스럽게들니도다.
  “너 멧 살이냐”
  “여섯살”
  “여섯51살, 이러켄치운데 엇의갓다가 오늬”
  “村에”
  “村에는 왜” 意味는알엇스나, 일부러무름이라.
  “비러먹으러” 엽헤섯든다른兒孩들이 우스면서
  嘲弄함이라.
  “응, 먹을것엇으러” 거지는 보기시른우음으로.
  “그래, 만히 읏엇늬”
  “안이, 아무것도⋯⋯” 솜털이 빳주 ─ 하게이러난뺌에
  쥐눈갓흔瞳子를반짝반짝굴니면서, 뭇는사람을
  異常스럽게 처다본다.
  “그러면, 지금ᄭᅡ지 엇의가 잇섯늬”
  “절52에서 안젓섯지”
  “안젓스면 엇더케하자고”
  “그러면 치운걸엇더케해!” 암상이나서.
  “아버지어머니잇늬”
  “응, 窟속에”
  “무엇하고”
  “누엇지”
  “왜,”
  “것지못하니깐⋯⋯”
  “新聞紙에싸든것은무에냐”
  “⋯⋯” 부등부등웅케쥐며, 고개를숙인다.
  “구구마 ─ Yakiimo 껍질!” 다른兒孩의비웃는소래.
  “그러냐 이야”
  “응, ⋯⋯” ᄯᅩ, 그보기시른뽄으로방긋우스며.
  “그것은엇의서읏엇늬”
  “⋯⋯”
  “아까씨레기桶에서집던데오. 불상도하게,” 지금까지
  등뒤에 우둑하니섯든 하나상은 남모를 만치 한숨을
  을쉬이며 말을끼인다.
  “응, 엇의좀보자”
  “⋯⋯나는, 갈테야” 뭇는말은対答도안이하고, 新聞
  紙에싼것을如前히부등퀴인다
  “왜⋯⋯”
  “어머니가 기다리니깐”
  할동안에新聞紙에쌋던것이坮돌에떠러져펼처
  지며 “아하⋯⋯” 웃는소래가난다. 지꾸진兒孩들의
  작53란이라.
  “그게 무슨짓들이냐!” 하나상의소래. 보니, 먹지도못
  할 군구구마껍질이라.
  아무말도안이하고, 従容히주서모은는여섯살먹은
  兒孩의貌樣이더욱 마음에不快하다.
  “이애이애 고만두어라. 내돈줄게”이소리에兒孩는주
  츰하며, 또나의얼골은반짝반짝처다본다.
  아아, 마치 사흘굴믄 하로개아지 主人의턱살치어다보듯.
  卑劣하고무섭고可憐하고可憎한!
  ‘여섯살’이라는極히짜른人生의時間! 그동안에這와
  갓흔無邪氣無意識한적은兒孩가 발서저러
  틋卑劣하고무서운탈을쓰게되엿나! 오오, 悪魔
  의社會!
  포켓트 ─ pochet속에서, 銅貨멧닙손에쥐여주고,
  “자, 어서가거라 어머니가기다리지”
  아무対答업시, 新聞紙도내버리고도라슨다.
  “‘고맙슴니다’ 인사하여지” 하나상의소래.
  “고맙슴54니다 ─ Arigado ─ ” 鸚鵡흉내내듯, 배틀배틀
  간다.
  坮돌에떠러진 구구마껍질을無心히보다가, 도라55
  서門으로발을듸려노으며,
  “하나상, 자드러가지”
  “준돈이 얼마” 語尾를美妙56스럽게ᄭᅳ얼며優雅
  한목소래로 하나상은뭇는다.
  “무얼, 겨우十錢”
  “그러케 만히, 銅錢두어分이면될걸”
  “만키는 무엇이, 구구마나사먹어야지”
  “사이상은親切도하지 Shaisan wa shishesuna hito ne”
  하나상은蛾眉를사르르내리깔며 마루로오른다.
  “무얼, 이世上은親切이니57무엇이니잇는게안이라, 거
  지가 거지의게同情을表할뿐이라” 나는脉업시対
  答하였다.
  “‘거지라고하니’ 누가”
  “나도 거지라. Pocku mo Yahari Kojiki sa!”
  “아, 當치안이한말도!” 하나상은 아츰안개를
  먹음은듯한눈으로 微笑를보여가면서.
  “Aha! Pocku wa matto iyana Kojikisha!” 내버리
  는말처럼쏫아버리고, 통통… 二層으로올너오다.
  倚子 ─ 海面에対하야노힌 ─ 에 펄석주저안지며,
  “나는더못된거지다!” 無意識的으로 겁허말을
  내일사록, 아아薄情도하다.
  “아아, 나의게는 나라업고 집업고 계집업고 所有物
  업고 名譽업고 快乐업고 All of the Fortune of Life ─
  人生의잇슬만한幸福은 모두나의게업도다!”
  “아아, 적은나의거지兄弟오! 너의게는窟이잇고, 父母잇고,
  父母의게듸릴우슴잇고, 우름잇고, 父母의게서밧을
  우슴과 우름이잇도다!”
  “너는 나보다幸運兒로다!”
  “거지가 거지가同情을表한다” 내가말하였던바이나,
  实노儧濫하지안이한가. 눈물의同情 ─ Sympathy
  of Tear라함이잇는것인가, 잇스면 神聖한것이다, 髙
  貴한 것이다. 하나, 輕蔑의同情 ─ Sympathy of Contempt
  와갓치悪種의形式은업는것이다. 그것으로해서, 社會
  가醜하야지고, 人生이滅亡하는것이다.
  나의게偶然히十錢銅貨가잇섯던것이라, 이러케偶然
  히旅館에서 上等밥먹고, 毛皮만도에싸여안젓는것과
  갓치.
  “구구마나 먹어야지” 생각할사록 무서운말이안인가,
  十錢안이면 구구마살것이업겟던가. 구구마먹지못하
  면三食口가죽나, 죽으면엇지해. 살어서所用업스
  면, 죽는것이 ‘이世界에서乞食三人이줄엇다’하는
  우수운事实이생기고말뿐이라, 惑都会의사람
  의게対하여서는 그事实을歓迎할넌지도모르는
  것이라.
  十錢의구구마를가지고 세乞食의깁븜을삼인가,
  세사람의하로運命을翻弄함인가. 안이라 乞食보
  다 썩偉大한물건이사람의運命치못함과갓
  치, 한乞食이ᄯᅩ한한乞食人의運命을翻
  弄치못하는것이라.
  다만 偶然한乞食의게偶然한十錢銅貨가잇서서
  偶然한乞食의게주엇던偶然한事实에지나지
  못함이라.

  저녁 潮水는 築坮에부듸처 白泡를이르키며 물
  러갓다가는 다시 물너가⋯⋯
  夜幕이 飯島 ─ Yiishima의森林에먼저
  내려여 검우수름하게,
  月姬는 언제만흔구름을다掃除하엿던지
  말─건 하날에, 번적번적하는銀捧을海面58에 빗긴듯이
  搖亂된머리에 한손으로턱괴인 이乞食은茫然
  히안젓다.
  ‘“Anano Ohitori?” 언의틈에 하나상이올너와서
  ‘藤’交倚뒤에 섯다.
  “오, 하나상, 인제는나혼자안인가” 不知中우슴으
  로도라다보면서 “하나상이와주지안이하면, 언⋯⋯
  제던獨夫⋯⋯”
  하나상은손을부븨며, 얼골이밝애지며 무치무치
  하다가,
  “하니깐, 내가 왓지” 勇氣를짓는듯이 일부러
  시럽슨말처럼対答함이라.
  “오오, 그래야59 착한 우리 하나상이지” 말을 긋치자
  손으로 뒤에사람을잡으려하였더니,
  “Ara! Yiyadawa” 处女의氣分을드러내며, 這便
  으로다러난다.
  “무엇이 실타⋯⋯” 껄껄우섯다.
  하나상은 다시 차츰차츰압흐로오며
 
 

  海已醒

  拂60曉의 波濤声에 나의木枕이不安하도다.
  推窓起하니 海已醒矣로다.
  海神이擎旭日海東天에 海色이已拱乳白之懷로다.
  曲尺列一群의寒鴉이 ‘呵惡呵惡’ 自光明寺61後麓으로
    堂鶴岡林長飛에 萬物이無不驚眼이로다.
  天空의大眼白玉開에 富士난載整雪白之冠하고,
  紺靑의伊豆連山은捲印度藍之眼蓋하며,
  深綠의茅村崎巨森은 轉軟豆之蛾眉하며
  蓊菘의 江之島漁村은 動卵黃之﨎瞳이로다.

  遠浮한葉舟는 揚金62之布帆하고,
  近礁의激波는 挽皓白之怒髯이라.

  人唯晩矣라

  懶夫는洗瘦黃之顔於小波하고,
  庸婦는炊靑忝之飯於窮厨로다.

  下女는催我盥漱라, 我下庭하다.
 
 

  旡巢의 鳥

  中秋의下旬쯤,
  이즈음에는 언제던지 風不吹 波不飛인
    怒하기 잘하는 사람의 이마전갓치
    보기실코, 보기에도厭症나는天氣라.

  희리텁텁운 찌뿌두두 平平凡凡한
    가마구라 ─ Kamakura의海色이라.

  그래도, 冊床에서 厭症나면 이곳으로,
    海色에서 厭症나면 ᄯᅩ冊床으로갈지라도.

  富士 ─ Fuji Fuji 짜판이쓰Japanese는말하나,
    이곳에서 富士보기 참으로하날에 별ᄯᅡ기보다도 더 어렵도다.

  千萬에 오늘은63 富士가보인다. 天空도깨끗한 그꼴에.
    하나, 이것도 나의慰安이라.

  名不知 검은새 ─ 검은것도推測이라, 볏업슴으로, ─ 한마리 海面에 날어든다.
    가마구라海面 ─ 飯島岬에서 由井ケ濱64
    茅村崎까지 半月形의 沙汀, 그 압헤 안긴
    바다로 떳다 잠겼다 멧번이나 빙빙돌다가,
    ᄯᅩ長谷 ─ Hashe 富士見橋 ─ Fujimibashi
    의 松林으로 놉헛다 나젓다, 무엇을 찾는듯이
    안즈랴도 안질곳업는듯이 施飛한다.

  ‘月明星稀 烏鵲南飛 繞椅三匝無枝可依’
    一代英雄曹孟德의 詩어니와, 月明星稀도
    안인이黃昏에 名不知鳥 저것웨 도는가.

  海에서이러나는 水蒸氣 村에서이러나는灰烟
    ─ 그것運命의毒한火焰 너를 듸리지안임인가.

  머므를곳업는 너도 可憐하도다. 世界가이러케좁던가.


 
 

  山邨의 滅亡

  獰悪하고 廣闊한大殿額에 千万의㱀波를暗帶한
  雨将來風欲吹하랴는 山村 仲夏의初夕天.

  菀蒸하고沈重한 大氣는旧底로붓허 四圍에
  古塚中의 腐爛한 灰色臭氣와갓치 掩來襲.

  漆匠이新塗한棺色갓치 海墨着의黑雲은
  一奌虧업시天空을 鐵釘으로固着鎖한듯이深深閉.

  頽沙에曝露된無慘한骸骨을巨手로猛摑碎하려는듯
  前後의髙山峻嶺은 可憐한小餌의게로一步前一步前.

  蒼褪白 死屍의面相이라 莫忍視할月皇娥
  殘忍에 戰慓慓 秋声楼갓치 雲間으로掩面哭.

  爾噓
  我唏

  糞尿臭襁褓裏에 重重裏한無知的阿只氏
  病母胸의皮乳房에縋付하야, 乳不湧이라. 嚶嚶肝膓絶.

  士床下에匍伏한 三時未得糟糠粥한沒覺的黃狗児
  明日午伏宴會에 莣蒜湯肢裂도不知라, 嗅嗅矜難得.

    이 悲鳴土窟之中에 是不祥之前兆오
  秋蛩이哀呌 靑艸之裡에 是殘廢呻吟이라.

  人莫疑何处地獄하라, 此处가正是로다,
  沒烟霞万籟의寂寂은 是殞命之表現이오.
  黑森嚴千枝의囈語는 是幽靈之出陣이라.

  “Press! Press as Iron!”
  ‘What shall I do’ is not their question, but ‘what where shall I go?’
  “Where shall I go, I live in Free?, for what reason,
  You press my breath, kill my soul?”
  They cries from far beneath the Dark ─ Silence ─.

  風怒号 兩乱打에 屋根이揚, 巨樹가折
  飛砂走石에 山動海溢, 土家가崩에 人畜이斃.
  電擊電鳴65에 轟轟然 大地는鳴 天空의嘯.

  原始的의天然, 詩調打令 ─ 古藝術의自慢도滅亡
  祖先的의土豪, 禮義66 吝嗇 ─ 旧道德의権威도滅亡.

  全村이亡에 難聞 ‘伏宴會是何日延期’로다.


 
 

  果实            Great Fruits of Nature            Autumn

  가을 ─ 秋 ─ 이라하는 큰果实이 임의全熟이로다.
  凉堦에는黃菊의芳香이 新孃釀을促하고, 碧洲의 蘆花는 雁侶를招함에, 머므를곳이따듯한듯.

  山腹에는丹楓이爛熳, 溪谷에는白沙의細67流가 淸又澄하고,
  壟間에亂開한 小野菊도亦一香이라
  野에서는 畓에粳米糯米, 田에 靑黍黃栗真荏麻荏이束立荷臥라.
  男負 女戴 児携─曲經에奔走하도다.

  婆群은紫門前에서搖穗 娘隊는蔓靑田에서採根함에,
  斑雀68는亂喧會를邨籬邊으로옴기고, 黃鷄는堆積밋헤서
 
 

  긴 ─ 熟視

  這난這의故鄕을恒常생각한다. 這와這의故鄕과ᄂᆞᆫ. 거진一躰가되엿다. 這업시는這의故鄕을볼수업고, 這의故鄕업시는這를認識치못하게되엿다.
  這는얼마나這의故鄕을그리워할가, 사랑할가얼마큼이나這의情이懇切할가, 모르면모르거니와, 這난這의外에這의哀心을, ᄯᅩ알사람은업슬것이라한다.
  這는이와갓치부르짓는다 「아卿69이여, 卿은무엇이길내내가이처럼卿을생각하는가, 사랑하는가. 나는卿을다만地塊라고만은생각지아니한다. 나는卿을나의生命이라생각한다. 나는이와갓치卿을사랑한다.
  卿은나의生命모든것이다. 卿이잇음으로비롯, 내가이世界에誕生되엿고, 卿의게抱擭되엿고, 卿의게感化를밧엇고, 卿의게서解放되엇슴이다. 卿은나의生命의根源이다.」라고.
  這는這의지금故卿을바라본다. 照耀ᄒᆞᆫ白晝에도, 陰沈ᄒᆞᆫ黑夜에도, 這는瞳子도움직이지아니하고, 這의故鄕을恒常바라본다.
  這는沙漠을본다. 暗雲으로가린夕陽의하날에, 冷情ᄒᆞᆫ바람에거치러지는, 眇茫한沙漠이빗겨노엿슴을보다. 棕櫚도, 椰子도업고, 灌木도 莎草도업는沙漠이다 甘泉이나, 細流도업는 ─ 荒涼하고, 寂漠한 沙漠이다. 그곳에는主로붓허일허바리고, 길우에어득이는적은羊의무리가悲哀에ᄯᅥᆯ니여, 하날을우러어噓睎하며, 彷徨ᄒᆞᆫ다. 這들의게는安息이나, 慰勞나, 모든幸福이업서젓슴으로.
  這는含淚하며, ᄯᅩ부르짓는다 『오, 卿이여, 엇더케하여이境遇에ᄭᅡ지이르게하엿는가. 죽어가는癩病者의게淨甁의水가잇지안이한가. 말너가는葡萄根에生命의泉이잇지안이한가.
  這들의게는恐怖의黑闇이包圍한다. 戰慄할苦痛이侵齒한다. 卿이여, 그暗雲을헷치고, 그毒沙를잿치고, 卿의前日의光 ─ 永遠한卿의光을빗최여라.』라고.
  沙漠의前日은樂園이엿섯다. 붉은薔薇, 흰白合도퓌여섯고, 無窮花도微笑를가지고自矜하엿섯다.
  金色의沙灘에는淸泉도흘럿섯고. 綠葉의槐下에는甘蜜도퓌엿섯다.
  퓌이면지고, 지면ᄯᅩ퓌이고, 흐르면피이고, 피이면ᄯᅩ넘쳐서, ᄭᅩᆺ다운香이樂園에가득하엿섯고, 그香이遠地에ᄭᅡ지들니엿섯다.
  貴여운羊들은, 淸泉을마시고白蝶의뒤를조차ᄯᅱ여단이기도헷섯고, 甘蜜에배불니여樹蔭밋, 푸른天鵞絨에서午眠도하엿섯다.
  香氣에ᄭᅳᆯ녀오는遠方의旅客은, 그香氣에醉하여熟睡하든者도젹지안엇섯다.
  這의보는바, 지금沙漠은前의沙漠이안이다. 前에는沃土엿셧다. 光明이燦爛하든붉은土地엿섯다. 지금의沙漠은本來의沃土엿셧다.
  한것이러니, 猛烈한狂風에當하야, 지금에보이는毒沙로덥히엿다. 北으로붓혀서는, 고-비의모래가朔風에몰니여, 南으로붓허서는, 사하라의모래가싸이여왓슴이다. 하나, 그深度는一丈에不過한다. 그밋은東來의沃土이다.
  沃土는依然히展開하엿다. 永遠한沃土가. 花根과香源도그대로蟠蜒되여잇고, 蜜池와滌水도그대로潜流한다 一丈의沙만파서헷치면, 그리워하는 ─ 永遠한沃土가거긔서露現될것이다.
  這는ᄯᅩ부르짓는다 『너희들이여, 파거라, 그毒沙를파거라. 헷치거라, 그毒沙를헷치거라. 너희들의熱淚와苦汗과, 寶血을ᄶᅡ내여서, 그毒沙를적시여라. 파거라 헷치거라.
  하면, 너희들의主 ─ 永遠히沃土가뵈일것이다. 너희들의嗜好하든新牙가나올것이다. 淸泉이소슬것이다. 오 ─ 卿이여, 這들의게能力을주거라, 執念을굿게하여라』

*            *            *            *            *

  時間은쉬임업시經過된다. 夕陽도지나갓다. 黑幕이四圍에서내려진다. 沙漠은暗夜이다. 冷情한바람은더욱劇烈하다.
  這는黑闇의사이로如前히바라본다. ─ 雙頰으로流淚가縱橫한다.
  羊의무리는口頭로써毒沙를파며, 四足으로써헷친다. 毒沙가吹入한兩眼에서는 눈물, 鬆毛의瘦軀에서는ᄯᅡᆷ이, 부프러터진口頭와, ᄶᅵᆯ니여裂開된四足에서는피가沙上에섹기여ᄯᅥ러지며, 淋漓한다.
  ᄯᅥ러저서는滲入하고, 滲入하여서는沃土에서흐르며染色한다.

*            *            *            *            *

  長長한밤이다. 這는繼續하여. 熟視한다 ─ 鳴咽하며涕泣한다. 羊의무리는疲困하여痛哭한다. 하나, 긋침업시, 파며, 헷친다. 파며, 헷친다.

*            *            *            *            *

  長長한밤이다. ⋯⋯ 時間은만히만히經過된模樣이다.
  東便하날 ─ 地平線우흐로서, 멀즉이曙色이낫하나난다. 灰霧의帳은徐徐히것처진다. 그朦朧한中으로서這는, 羊의무리가如前히움직이는것과, 露氣잇는薄赤의地面이드러남을본다.
  這는인제, 涕泣더하지안이한다.

(一九一五, 四, 十五)
『근대사조』, 1916년 1월호, 16~18쪽.
  
  

이재용

1972년 서울 출생. 평론 「황순원 문학에 내포된 타자의 세 고리」 「포스트휴먼 시대의 별유천지비인간」 「강경애 문학의 대상a와 인천」 등이 있음.

  
  

〈주석〉

  1. 「有爲한 二靑年志士를 哭함」, 『학지광』 8호, 49쪽. 이하 모든 제목과 인용문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어로 윤문하고, 제목의 경우 원문을 각주로 밝히거나 괄호 안에 병기하였다. 한문을 한글로 바꾸기만 하면 읽기 어렵지 않은 경우 한글로 바꾸기만 했다. 다만, 이 글 다음에 첨부한 최소월의 시는 자료의 가치를 고려하여 최대한 원문 그대로 작성하였다.
  2. 소월 최승구의 시를 원문 그대로 수록한 이 작업은, 최소월 시집 필사본의 소재와 최승만의 책 『바르고 옳게 살자』, 『나의 회고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신 최원식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선생님께서는 몇몇 부분 검토가 소홀했던 정보에 관해서도 조언을 주셨다.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류가 있다면 모두 필자의 잘못임을 밝혀둔다.
  3. 최승만은 『학지광』에 실렸던 최승구의 글 중에서 시편은 싣지 않고 사상적 경향성을 보여주는 산문을 중심으로 선정했다. 이는 최승만이 당시 다른 어떤 글보다 최승구의 산문에서 어느 정도 자극을 받았음을 암시한다. 회고록에서 밝히지는 않았지만, 최승만은 1919년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가 주도한 여명회에 1919년 3월 가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총독부경무국 도쿄출장원, 「도쿄의 조선인 상황(在京朝鮮人狀況, 1924년 5월)」. ; 이호룡, 『한국의 아나키즘─사상편─』, 지식산업사, 2001, 123쪽에서 확인함.
  4. 김학동, 「소월 최승구의 시세계」, 『최소월 작품집』, 형설출판사, 1982, 89쪽.
  5. 최승만, 「소월 최승구 유고에 부쳐」, 『바르고 옳게 살자』, 인하대학교출판부, 1983, 705쪽.
  6. 『(친필 원본 복사본) 최소월 시집』, 1982.
  7. 소월, 「긴─숙시」, 『근대사조』 창간호, 1916년 1월, 16~18쪽. 정우택은 이 작품을 그의 책 『한국 근대시인의 영혼과 형식』(깊은샘, 2004)에서 전문을 현대어의 띄어쓰기를 적용하여 실었고, 「『근대사조』의 매체적 성격과 문예사상적 의의」(『국제어문』 34집, 국제어문학회, 2005년 8월)에서는 논문 뒤에 『근대사조』의 사본 전체를 첨부하는 등 자료 공개에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디지털로 접근할 수 있다. 여기에 실린 것과 작품 내용에 큰 차이는 없지만, 몇 군데 한자에 견해 차이가 있었다.
  8. 이하 내용은 최승만, 『나의 회고록』, 인하대학교출판부, 1985, 5~38쪽에 걸친 내용 중 필요한 부분을 뽑아 정리하였다.
  9. Naver지식백과/두산백과/고잔동. 이하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는 주소 전체를 병기하는 것보다 검색어를 위주로 범주화한 표기를 활용하였다. “대표페이지명/하위범주 또는 검색어”의 순서로 썼다.
  10. 디지털안산문화대전/중앙동. ; 안산타임스/고잔동의 유래[민덕기]. 《안산타임스》의 민덕기는 당골이 해주 최씨와 파평 윤씨의 세거였다며, 최승만의 출생지라고 쓰고 있다. 이는 해주 최씨와 파평 윤씨가 그 지역에 많이 살았다는 회고록의 기록과 일치한다.
  11. 동작뉴스닷컴/노량진의 원마을이었던 본동.
  12. 위의 책 25쪽에서 보성중학교 제1회 졸업식이 서궐(西闕)이라고 불렀던 경희궁(慶熙宮)에서 거행되었고, 졸업식 후 흥화문 방향으로 행진을 했다고 씌어 있다. 《대한매일신보》 1910년 4월 2일. 1면에서도 졸업식이 서궐에서 열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3. 최승구와 나혜석은 혼고(本鄕)에서 거주했고, 가마쿠라(鎌倉) 여행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정우택, 「첫사랑의 영원한 연인, 최승구」, 『나혜석연구』 제7집, 나혜석학회, 2015년 12월. 이때의 사정을 그나마 개략적으로라도 소개하고 있는 글은 염상섭, 「추도」, 『신천지』, 1954년 1월, 252~253쪽.
  14. 대표적인 예로 스토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번역한 사카이 도시히코의 번역본 『인자박애 이야기』(1904)는 이광수의 『검둥의 설움』(1913) 번역에 영향을 미쳤다. 최주한, 「『검둥의 설움』과 번역의 윤리-정치학」, 『대동문화연구』 84권,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3. 12. 또한, 오스기 사카에는 러시아의 자금을 받은 이동휘파가 일본의 공산주의운동 출범을 위해 접촉한 인물이다. 로버스 스칼라피노·이정식,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한홍구 옮김, 돌베개, 2015, 104쪽. 이들은 크로포트킨을 번역하기도 하여 홍명희, 이광수 등이 그 책을 읽기도 했다.
  15. 고재석 편저, 『일본문학·사상 명저 사전』, 깊은샘, 1993, 155, 357쪽 참조.
  16. 황석우가 발행한 『근대사조』를 살펴보면 고토쿠 슈스이와 오스카 와일드 등이 당시의 일본 유학생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음을, 특히 황석우와 김억 등이 그 사상에 공감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승구의 시 「미(美)」도 그와 관련하여 논의될 필요가 있다. 맹문재는 그의 논문 「최소월의 시에 나타난 근대 인식 고찰」에서 오스카 와일드와 관련하여 최승구의 궁극적 인식은 오스카 와일드의 예술지상주의에서 벗어난다고 보았는데, 이와 관련하여서도 다양한 논의가 필요할 듯하다. 맹문재, 「최소월 시에 나타난 근대 인식 고찰」, 『비평문학』 제54호, 한국비평문학회, 2014년 12월, 178~179쪽 참조. 그러나 이외에 「조(潮)에 접(蝶)」이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에 미친 영향이라든지, 최초로 “님”이라는 단어를 시적으로 활용한 부분에 대해 논의했다. 『근대사조』에 관한 논의는 정우택, 「『근대사조』의 매체적 성격과 문예사상적 의의」, 앞의 글 참조. 최승구의 시적 지향이 오스카 와일드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은 정우택도 다른 글에서 밝힌 바 있다. 정우택, 「소월 최승구의 시 세계」, 『한국 근대시인의 영혼과 형식』, 앞의 책 참조.
  17. 이호룡, 앞의 책, 71쪽.
  18. 김윤식, 『염상섭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87, 44쪽.
  19. 최인숙은 염상섭의 보성중학 인맥으로 최승구를 들고 이들과 나경석, 김우영 등을 요시노 사쿠조, 고토쿠 슈스이, 사카이 도시히코, 오스기 사카에와 연결 지었다. 최인숙은 최승구를 개인주의 아나키스트로 보고 있다. 최인숙, 「염상섭 문학의 개인주의」, 인하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60~63쪽 참조.
  20. A. J. P. 테일러,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1차세계대전』, 유영수 옮김, 페이퍼로드, 2020, 347쪽.
  21. 傳함
  22. ‘글월이’
  23. 묵은 절鐘
  24. 雲霄中 瞭亮하는
  25. 하날
  26. 萬頃의
  27. 理想
  28. 貴人
  29. 香囊
  30. 노래
  31. “ ᄫᅵ“ 위에 점을 찍어 놓았음. 바로 뒤의 “는”과 유사한 사례로, 이 시에서는 윗점을 찍었을 때 삭제 표시라고 판단함.
  32. ”느” 앞에 “는”이 있고, “는” 위에 점을 찍어 놓았음. 삭제 표시로 판단함.
  33. 원문은 ‘너건’. 위에 점을 찍어 놓았다. 수정할 포인트였던 듯하다.
  34. 「걸식아」는 산문적 형식을 띄고 있어, 행갈이와 행의 연속을 가늠하기 어렵다. 여기서는 원문에서 한 행갈이에 따른다. 때로 원문의 행갈이는 노트의 공간이 부족해서 일어난 것이기도 한 듯하지만, 그대로 옮겼다.
  35. Koziki
  36. ‘슬’ 삭제. 위에 방점만 찍어놓았음.
  37. “절”에 점을 찍고 노트 상단에 “Tera”라고 썼음. 일본어를 알파뱃 음독으로 쓴 듯함. てら는 절을 의미함.
  38. “랑” 삭제. 글자 위에 두 줄을 그어 삭제하였음.
  39. “인사도” 삭제. 글자 위에 두 줄로 삭제 표시함.
  40. 알아보기 힘든 글자가 삭제되었음. 두 줄 삭제 표시.
  41. 異常
  42. -인지
  43. “棒” 한자가 분명치 않음.
  44. “하니ㄲ” 두 줄 표시로 삭제.
  45. “自” 뒤에 한자 둘 삭제. 두 줄 그었으며, 삭제된 글자는 분명치 않음.
  46. -에
  47. Youigaya Hama
  48. 淸儉
  49. 참새
  50. 鄕의 오자인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이 글자가 상당히 많은 부분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해석보다는 원문을 그대로 쓴다는 원칙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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