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섬에 사는 염소들

  

  오래전, 아마도라는 섬이 있었어.
  아마도의 푸른 숲에는 하양 염소가 살고 있었지.
  유난히 햇살이 반짝이던 어느 날, 솜털이 눈처럼 하얀 아기 염소가 물었어.
  “이 숲을 지나 저 높은 바위에는 무엇이 있어요?”
  “아마도, 검은 괴물이 빨간 눈을 부릅뜨고 살고 있겠지.”
  어른 염소의 하얀 털은 햇빛에 반짝였어.
  “저 바위에 살고 있다는 검은 괴물이요?”
  어른 염소가 고개를 끄덕였어.
  높은 산은 바위산이야. 울퉁불퉁 뾰족뾰족 검은 바위들은 아마도 섬에 우뚝 서서 숲을 내려다보고 있어.
  하양 염소는 저곳에 사는 검은 괴물이 이상했어. 맛있는 풀도 햇빛을 가려줄 그늘도 없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지.
  하양 염소는 숲속에 있는 아름드리나무가 좋아. 머리를 콩콩 박으면 대단한 어른 염소가 된 것 같았거든.
  하양 염소는 숲속 촉촉한 풀들이 너무 좋아. 풀 냄새가 폴폴 풍기는 숲속은 엄마 냄새처럼 달콤하거든.
  하양 염소는 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졸곤 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니까.
  하지만 저 높은 바위는 괴물의 뿔처럼 뾰족할 거야. 머리를 콩콩 박을 나무도 자라지 않아. 새까만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없을 테니까. 새까만 나라의 새까만 괴물들은 언제나 불안하게 살고 있을지도 몰라.
  하양 염소는 어른 염소가 한 말을 생각했어.
  “우리와 다른 것은 위험해. 쓸데없는 관심은 불행을 가져온단다.”
  그런데 하양 염소는 자꾸만 궁금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쁜 걸까? 무서운 걸까? 하양 염소는 검은 괴물을 상상해. 아마도, 뿔이 세 개고 불을 뿜는 빨간 눈을 가졌을지도 몰라.
  

  햇볕이 쨍하던 어느 날, 바위산 절벽을 타던 검정 아기 염소가 잠시 쉬고 있었어.
  바위산 아래는 짙고 짙은 초록이 가득한 울창한 숲이야.
  “저 아래 숲속에는 무엇이 있어요?”
  “아마도, 하얗고 투명하고 눈만 새빨간 괴물들이 살고 있겠지.”
  어른 염소의 검고 단단한 털이 햇살에 반짝였어.
  “숲속에 사는 하얀 괴물이요?”
  “그래. 그런 색은 난생처음이었지. 빨갛고 파랗고 초록인 세상에 그런 색을 가지고 있다니 깜짝 놀랐지 뭐냐?”
  “어떤 색인데요?”
  검정 염소의 눈이 동그래졌어.
  “하늘에서 내린 눈과 닮았지.”
  “좋은 거네요!”
  “아니 아니야. 누구도 그런 색으로 태어나지 않아. 저 새를 보렴. 하늘을 나는 것들은 하늘색을 가질 수 있지만 땅에서 사는 것들은 땅의 색을 가지고 태어나. 그런데 땅에 사는 것이 하늘색이라니 괴물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 없지. 아무렴!”
  어른 염소는 고개를 흔들었어.
  초록 숲은 울창한 숲이야. 빨갛고 노랗고 연두를 품은 숲은 그 모습을 전부 다 보여주지 않아. 나무와 나무가 손을 맞잡아 지붕을 만들고 그 안에 모든 것을 꼭꼭 숨기고 있지.
  검정 염소는 저곳에 사는 하얀 괴물들이 이상했어. 하늘색을 가지고 있다는 하얀 괴물은 숲속에 숨어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검정 염소는 바위산 아래를 힐끔 보고는 절벽을 걸었어. 네 개의 발톱으로 비탈진 절벽을 딛고 있어.
  아슬아슬, 조마조마, 가파른 절벽은 조심해야 해. 하지만 검정 염소는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듯 잽싸게 절벽을 딛고 뛰어올라. 단단한 종아리와 날렵한 몸은 빗방울보다 더 가벼워. 검정 염소는 절벽이 이제는 무섭지 않아. 어른 염소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가 있어.
  뾰족한 바위에 서서 검정 염소는 바다를 바라보았어.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끝이 보이지 않았지. 파도가 바람을 타고 아마도 섬으로 달려와. 바다 냄새를 품은 바람이 푸른 숲을 흔들어.
  촤르륵 촤르륵, 나무가 울고 있어.
  검정 염소는 푸른 숲을 바라보며 생각했어.
  하얀 괴물은 하늘만큼 넓은 푸른 바다를 볼 수 있을까? 바다 냄새를 품은 바람을 알고 있을까?
  아마도, 하얀 괴물은 아마도 섬이 얼마나 멋진지 모르고 있을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섬에 비가 세차게 내렸어. 비는 3일 밤, 3일 낮 계속 내렸지.
  우르릉 쾅!
  우르릉 쾅!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고 세찬 바람이 불어왔어. 성난 파도가 아마도 섬을 집어삼킬 것 같았지.
  푸른 숲이 마구마구 흔들렸어.
  번쩍!
  우지직!
  쿵!
  번개가 내리치며 나무가 쓰러졌어. 풀이 자빠지고 꽃이 떨어지고 잎이 찢어졌어.
  “세상에 이런 일은 처음이군!”
  어른 염소의 빨간 눈이 흔들렸어.
  “얘들아, 저쪽으로 피해!”
  “나무가 또 쓰러진다!”
  어른 염소들이 소리쳤어.
  하양 아기 염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녀. 어른 염소들도 허둥대긴 마찬가지야.
  “나무가 없는 곳으로 가요.”
  그때 하얗고 아직은 어린 염소가 소리쳤어.
  “맞아요. 숲을 벗어나면 넓은 들판이 나와요.”
  “바위산 아래에 있는 들을 말하는 거냐?”
  어른 염소가 물었어.
  “네. 그곳은 쓰러질 나무가 없어요.”
  “하지만 검은 바위산 바로 아래인걸?”
  어른 염소는 걱정이 되었지.
  “바위산은 아니잖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기 염소의 말이 맞았어. 바위산도 아닌데 괴물이 있을 턱이 없잖아? 하얀 염소들은 숲을 벗어나 들로 나가기로 했어.
  

  한편, 검은 바위산에도 천둥이 치고 번개가 쳤어. 세찬 바람과 빗물에 바위가 흔들리기 시작했지.
  쿠쿠쿠쿠쿵!
  지지지지찍!
  바위가 갈라지고 있어. 바위에서 떨어진 가루가 절벽을 타고 굴러가.
  “절벽이 미끄러워요!”
  검정 염소가 소리쳤어.
  “단단히 딛고 있어라! 안 그러면 굴러떨어져!”
  어른 염소의 빨간 눈이 마구마구 흔들려.
  “바위산이 무너질 것 같아요.”
  어린 검정 염소는 너무도 무서웠어.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바위산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해.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거란다.”
  “바람이 너무 세서 절벽에 붙어 있기가 힘이 들어요.”
  어린 염소는 절벽에 딱 붙어서 고개를 잔뜩 숙이고 다리에 힘을 꽉 주고 말했어.
  “조금만 견디렴. 태풍은 지나갈 거야.”
  하지만 어른 염소는 알고 있었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바위가 부르르 떨고 있었으니까. 이런 날은 난생처음이었어.
  그때, 검정 아기 염소가 소리쳤어.
  “저 밑에 들로 가요. 거기는 쓰러질 바위도 굴러다니는 자갈도 없어요.”
  “하얀 괴물이 사는 푸른 숲 앞에 있는 들을 말하는 거냐?”
  “푸른 숲은 아니니까 하얀 괴물은 없을 거예요.”
  어른 염소는 잠시 고민했어. 푸른 숲이 아니니까 하얀 괴물 따위는 없을 거라고 믿고 싶었어. 어른 염소는 어린 염소들을 데리고 절벽을 내려갔어.
  조심조심,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내디뎠지. 단단한 종아리와 날렵한 몸이 아니었다면 벌써 절벽 아래로 떨어졌을 거야.
  

  아마도 섬에는 검은 바위산과 푸른 숲 중간에 너른 들판이 있었어. 하얀 염소들은 검은 괴물이 무서워 바위산 아래, 들에는 가지 않았지. 검정 염소들은 하얀 괴물이 무서워 푸른 숲 앞, 들에는 들어가본 적이 없어.
  하지만 이런 태풍은 처음이니까 검은 염소도 하얀 염소도 들로 가야 했어.
  들에는 키 작은 풀이 자라고 키 작은 꽃이 피고 작은 돌멩이들이 누워 있어. 그러니까 세찬 바람에 굴러다니는 것은 없었지. 다만 작은 풀이 작은 꽃이 이리저리 일렁이며 비와 바람을 맞고 있었어.
  숲에서 나온 하얀 염소들이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어.
  바위산에서 내려온 검은 염소들이 저만치서 걸어왔어.
  아직은 어린 하양 염소가 소리쳤어.
  “검은 괴물이에요!”
  아직은 어린 검정 염소가 소리쳤어.
  “하얀 괴물이에요!”
  하얀 염소들과 검은 염소들은 그 자리에서 딱, 얼어붙고 말았어.
  하얀 염소들도 검은 염소들도 괴물을 처음 보았거든.
  그때였어.
  너른 들판에서 염소 한 마리가 고개를 쑥 내밀었어.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염소는 하얗지도 검지도 않은 노랑 염소였어. 노랑 염소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자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노랑 염소의 머리가 하나둘씩 고개를 쭉쭉 빼 들었어.
  쑥!
  쑥!
  쑥!
  키 작은 풀 사이로 키 작은 꽃 사이로 노랑 염소의 머리가 수도 없이 보였어.
  잠시 후, 바람이 잦아들고 시커먼 구름이 물러갔어.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자 투명한 햇살이 너른 들판을 비췄어.
  “검은 괴물은 무섭지 않아요.”
  하얗고 어린 염소가 말했어.
  “하얀 괴물은 전혀 무섭지 않은데요?”
  까맣고 어린 염소도 말했지.
  노랑 염소들은 하얀 염소와 검은 염소들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나봐. 자박자박 걸어서 하얀 염소들 사이로 가더니 풀을 뜯기 시작했어. 뚜벅뚜벅 걸어서 검은 염소들 사이에서 풀을 뜯기 시작했어.
  생각해보니 하얀 염소들도 배가 고팠어. 태풍 때문에 오랜 시간 풀을 먹지 못했거든. 검은 염소들도 이제야 배가 고팠어. 절벽을 내려오느라 많은 힘을 써버렸거든.
  하얀 염소, 검은 염소 그리고 노랑 염소들은 정신없이 풀을 먹기 시작했어. 이쪽으로 가서 먹다가 저쪽으로 가서 먹었어. 그러다 보니 염소들이 마구마구 섞여버렸지 뭐야.
  검은 염소 옆에 하얀 염소가, 노란 염소 옆에 검은 염소가, 하얗고 노랗고 검은 염소들이 나란히 서서 풀을 먹었어.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고 파도는 일렁일렁이며 아마도 섬으로 왔다가 멀어져 가길 반복했어.
  아마도, 아마도 섬에는 더는 괴물이 살고 있지 않나봐.
  아마도, 아마도 섬에 사는 염소들은 더한 태풍도 잘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몰라.
  왜냐고?
  혼자가 아니고 함께잖아.
  왜냐고?
  숲이나 바위 말고 너른 들판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왜냐고?
  하얗고 까맣고 노랗다는 건 다른 거지 틀리거나 무서운 게 아니라는 걸 알았거든.
  그런데 그거 알아?
  하얗고 까맣고 노란 염소들 눈이 다 빨갛다는걸.
  빨간 눈이 꼭 닮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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