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의 몸을 해방하면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난다

    

    1. 아동의 몸이라는 오래된 기표

    우리 아동문학의 탄생과 아동의 발견은 동시적 사건이었다. ‘어린이’의 창안은 아동을 개별 인격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선구적인 움직임이었으며, 아동문학은 새로이 발견된 ‘어린이’를 위한 문학으로서의 당위를 선언하면서 출발했다. 아동문학은 전개 과정 속에서 무엇보다 ‘어린이’의 정체를 세상에 알리는 데 공을 들여야만 했다. ‘어린이’는 작은 어른에 불과했던 전대의 아동과 구별되는 자이면서, 아동문학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린이’는 당위로서 존재하는 인물이었기에 마땅히 그 인물상을 알리고 대중에게 유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방정환은 ‘어린이’의 창안자로서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방정환이 『어린이』의 창간사에 해당하는 「처음에」에서 ‘어린이’를 새·꽃·앵두·비둘기·토끼로 비유한 것은 새로운 아동상을 분명히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1 이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어린이’는 이제 아동문학의 주인공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될 터였다. ‘어린이’의 문학적 형상화와 더불어 ‘어린이’라는 인물을 가시화할 수 있는 지면이 필요했으니 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표지이다. 『어린이』 표지에는 다양한 ‘어린이’ 이미지들이 게시되었으며 이때 아동의 몸은 어린이다움을 상징하는 기표로 작용했다.
    아동의 몸이 어린이를 상징하는 기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천진난만함과 순진무구함을 가시화하는 적절한 신체적 표현이 중요했다. 아동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일체의 것들, 가령 생김새, 표정, 몸짓, 자세, 행동뿐만 아니라 착용한 의복이나 장신구 등은 어린이다움이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기표 역할을 했다. 유년 아동의 부드러운 살결, 오동통한 팔과 다리, 귀여운 얼굴, 깜찍한 웃음, 익살스러운 표정, 장난꾸러기 같은 행동 등은 『어린이』 표지 이미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는데, 이는 어린이다운 신체성을 보여줌으로써 천진난만한 ‘어린이’라는 기의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벌거벗은 아기 천사와 유아의 이미지들은 낮은 노출 빈도에도 불구하고 그 강렬함으로 인해 죄 없고, 순진무구한 ‘어린이’를 강화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어린이』 표지에서 발견되는 위와 같은 특징들은 공교롭게도 서양의 회화사에서 발견되는 낭만적 아동 이미지와 유사했다. 18세기 후반 서양화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낭만적 아동기에 대한 묘사는 점차 확산되며 관습적 이미지로 자리 잡게 된다. 19세기 서양의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아동을 주제로 한 이미지가 ‘특별한 복장을 한 아이들, 애완동물과 함께 있는 아이들, 천사/요정, 케루빔, 마돈나와 아기, 작은 어른’으로 표현된 것은 이러한 서양의 회화사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2 20세기에도 이러한 관습은 그대로 계승되었고, 그것들은 엽서나 카드 형태로 한국에도 상륙하게 된다. 『어린이』 표지로 사용된 서양의 낭만적 아동 이미지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던 엽서·카드에서 얻은 사진과 그림으로 추정되고 있다.3 그렇다고 이것을 방정환을 비롯한 『어린이』 주체들의 적극적인 선택이라 보기는 조금 어렵다. 당시에는 아직 새로운 아동상인 ‘어린이’를 형상화할 만한 회화나 사진 기술이 유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으면서도 ‘어린이다움’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미지, 그것이 바로 낭만적 서양 아동의 이미지와 상통했다 볼 수 있다.
    아동의 몸이 기표로 작용할 때 어떠한 신체성이 강조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리 해석되기도 한다. 귀엽고 깜찍한 외모와 개구쟁이 같은 행동 등, 어린이다운 신체성은 천진난만하고 순진한 ‘어린이’를 의미하는 기표였다. 그런가 하면 아동의 건강한 신체는 근대성 또는 애국심을 상징했다. 서양 의학의 도입과 함께 전파된 생리학적 지식은 위생학과 연결되면서 깨끗하고 건강한 신체는 곧 근대성의 지표로 인식되었다. 또 건강한 신체는 애국심을 상징하기도 했는데 이는 식민 지배를 겪는 민족의 고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계몽기를 전후로 강조된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표어에서 아동의 몸은 건전한 정신 즉 근대성과 애국심을 담아내야 하는 그릇처럼 인식되었다.
    아동의 몸이라는 주제를 앞에 두고 먼저 과거를 상기한 이유는 현재를 올바로 보고자 함에 있다. 근대 아동문학에서 아동의 몸은 ‘어린이다움’을 유포하고, 근대성과 애국심을 가시화하는 기표로서 시대를 반영했다. 그렇다면 아동문학 성립 이후 100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우리 아동문학은 아동의 몸을 통해 과연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일찍이 우리 아동문학은 유영진의 비평 「몸의 상상력과 동화」(『몸의 상상력과 동화』, 문학동네, 2008)가 제기한 아동의 몸에 대한 근대적 인식과 빈곤한 상상력이라는 문제의식을 안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아동문학의 아동의 몸에 대한 상상력은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 글은 현재 우리에게 걸맞은 몸의 서사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2. 아동의 몸 사용법

    아동문학에서 아동의 몸은 상징체계 안에서 활용되고 있다. 가장 빈번하고 익숙한 방식은 신체성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과 특징을 변별하는 사용법이다. 뚱뚱한 몸에 게으르고 미련한 캐릭터성을 부여하는 방식처럼 말이다. 신체성을 통한 캐릭터 구축이 가능한 이유는 몸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용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몸 활용법은 ‘뚱뚱한 몸’이라는 기표가 ‘게으르고 미련하다’는 기의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맞섬으로써, 통념으로 자리 잡은 선입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신체성을 활용한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 그 용이함은 취하되, 몸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사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글쓰기 전략을 시도해볼 일이다.
    천효정의 『첫사랑 쟁탈기』(문학동네, 2015. 이하 인용은 쪽수만 표기)는 신체성을 활용한 캐릭터 변별을 가장 현란하게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이야기는 주인공 세라가 막 전학 온 사립 학전초등학교의 담임 선생님을 묘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9센티미터쯤 되어 보이는 굽으로 씰룩대며” 걷는 뒷모습, “가늘고 높은 목소리” “메이크업 솜씨가 제법 괜찮긴 하지만 뿔테 안경 눈가에 주름이 서너 줄 잡히는”(7쪽)과 같은 묘사는 선생님의 성별과 외형, 성격, 나이 정보를 단숨에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때 작가가 던진 신체적 기표는 ‘경박하고 신경질적인 삼십 대 여자 선생님’이라는 의미로 독자에게 수신될 확률이 높다.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선생님다운 몸짓이나 여성의 신체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판단의 준거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세라가 신체적 기표를 누구보다 훤히 꿰뚫어보는 인물이라는 사실에는 이 작품의 재미와 의미가 담보되어 있다. 세라가 스스로를 가장하는 능력만큼, 기표가 닿지 않는 사실을 알아볼 가능성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세라는 전학 첫날 『소공녀』의 주인공 ‘쎄라’ 스타일로 자신을 꾸민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결 고운 생머리, 앞머리를 부드럽게 한쪽으로 넘겨 고정한 작은 머리핀, 낙낙한 하늘빛 블라우스와 무릎 위로 살짝 올라오는 진청색 스커트, 날씬한 종아리 아래로 흰 레이스 양말과 귀여운 리본이 달린 젤리 실내화” “갸름하고 하얀 얼굴” “눈꼬리를 살포시 접으면서 입술 끝을 가볍게 들어 올”(8쪽)리는 샤라랑 스마일 등. 세라는 신체적 기표들을 활용해 자신을 수줍음 많고 청순한 전학생으로 연출한다. 세라가 사용하는 신체적 기표들은 철저하게 통념에 기댄 만큼 효과적이다. 세라는 남학생들로부터 관심을 받으면서도 여학생들에게는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는 소기의 목적을 쉽게 달성한다. 작품은 세라의 편에 서서 오로지 신체적 기표로만 아이들을 판단하고 가늠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명 브랜드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치장한 예린이는 과시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에 ‘여우같이 생긴 여자애’로, 머리에 왁스를 발라 뾰족하게 세우고 껄렁거리며 다니는 대호는 무식하게 힘만 센 ‘삼돌이’로 판정한다. 통념은 이토록 거침이 없다.
    한층 뻔해 보이는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사건은 바로 명구의 등장이다. 명구의 신체적 기표는 “전혀 손질을 안 한 것처럼 부스스한 머리와 낡아 빠진 교복”(20쪽)과 멍하니 창밖을 보는 자세이다. 앞선 캐릭터 설정 방식에 따른다면 명구가 지적장애를 가진 고아라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그런데 명구에게 “아주 맑으면서도 찌르는 것처럼 날카로운 눈동자”(21쪽)라는 신체성이 부여되자 이야기에는 묘한 긴장이 생겨난다. 과연 명구의 진실은 무엇인가. 엇갈리는 신체적 기표를 만난 독자들은 이제 사실을 찾아내려는 탐문자가 되어 세라와 동조하게 된다. 이때 세라가 통념에 기댄 매우 통속적인 인물이라는 점은 오히려 그가 찾아낸 사실의 가치를 더욱 신뢰하게 한다. 이토록 영리한 서사에 이끌려 독자는 지적장애인이 아닌 ‘모든 걸 다 꿰뚫어보는 깊은 눈동자’를 가진 소년의 모습으로 명구를 기억하게 된다. 통념적인 신체적 기표들이 남발되는 현란함 속에서도 이 작품이 의미 있다 생각한 이유이다.
    몸은 정상과 비정상을 판별하는 준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이 경우 비정상으로 구분된 이들의 몸은 소수자성을 인증하는 표식으로 활용되곤 한다. 몸과 소수자성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박지리의 『합체』(사계절, 2010. 이하 인용은 쪽수만 표기)였다. 이 작품은 두 소년의 성장 서사로뿐만 아니라 소수자의 생존기로서도 의의를 가진다. 피터 브룩스에 의하면 몸은 이야기가 각인되는 장소로서 그 자체로 하나의 기표가 된다.4 마치 상이군인의 잘려나간 다리가 애국심을 상징하는 것처럼 말이다. 『합체』에서 쌍둥이 형제 합과 체가 앓고 있는 왜소증은 그들이 소수자임을 상징하는 기표이다. 이야기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수시로 접속하며 그 사실을 독자에게도 상기시킨다. 체 게바라로 연상 작용이 일어나는 ‘체’라는 이름자 또한 예사롭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합과 체한테 있어서 혁명이란 정상인들의 세상에서 살아남기라 할 수 있다.
    비정상성의 표식인 합과 체의 몸은 어떤 경우 강렬한 저항의 기표로 변모하기도 한다. 반 대항 레크리에이션 시간, 반에서 가장 작은 남학생과 가장 큰 여학생이 함께 춤을 춰야 하는 미션이 떨어진다. 반 아이들이 합과 체를 연호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한껏 위축된 합을 대신해 체가 무대로 올라간다. 무대 위에 오른 체는 자신의 비정상성이 전시되는 모욕을 견디기보다는 스스로 그것을 과시하기를 선택한다. 체는 일부러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관객들에게 제 몸을 보여준다. 이때 체가 마음속으로 외치는 “재밌냐. 더 재미있게 해 줄까”(59쪽)에서 느껴지는 것은 짙은 페이소스뿐만은 아니다. 일명 기형 인간 쇼로 알려진 프릭쇼freak show나 성소수자들의 퀴어 축제는 그들 스스로 자신의 비정상성을 과시하는 것으로 혐오에 대항한다. 이는 “그래, 네 말이 맞아. 나 불구야. 나 퀴어야. 그래서 뭐?”라고 말하는 행위로 자기혐오를 자긍심으로 바꾸는 근본적인 저항의 표출이기 때문이다.5 따라서 체의 몸짓은 그들의 이야기가 자기혐오를 이겨낸 자긍심의 서사가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동문학에서 아동의 몸은 상징체계 안에서 기표화되어 이야기와 의미를 생성하는 일차적 요소로 활용된다. 『첫사랑 쟁탈기』와 『합체』는 그 사용법을 보여주는 적절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동의 몸 사용법이 대체로 이런 가운데 살아 움직이는 아동의 몸 이야기가 귀해진 것도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3. 성장 지향과 몸의 자리

    우리 아동문학은 왜 몸 이야기에 소홀한가. 여러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 문제가 특히 아동이 성장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점과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동청소년을 독자 대상으로 하는 아동문학은 태생적으로 아동의 성장에 밀접하게 관여하고 있다. 아동문학의 여타 주제들은 사실 아동의 성장이라는 대주제로부터 파생되었다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아동의 성장이라 함은 심신心身 그러니까 정신(마음)과 신체의 균형적인 성장을 의미한다. 아동문학이 생겨난 근대 시기 아동의 성장은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구호에 집약되어 있다. 건강한 신체는 국력의 척도였으며 신체에 담길 건전한 정신은 애국심으로 응축되었다. 모든 가치가 국가로 수렴되던 그 당시 신체와 정신은 동등한 위상을 가지고 강조되었다. 그에 비해 오늘날 아동의 성장은 신체보다는 정신에 더 치우친 경향을 보인다. 인격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또 세계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들로 아동문학의 주제가 빼곡하게 채워지는 사이 아동의 몸은 등한시되어왔다. 물론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위생 관념이 낮고 영양 상태가 나빠 ‘건강’ 그 자체가 목표였던 과거와 달리 현시대의 아동에게 건강한 몸은 기본값으로 여겨진다. 특히 아동에게 있어서 몸의 성장은 그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일 뿐 애써 노력해서 성취할 필요가 없는 일인 것이다. 때문에 아동문학에서 아동의 몸이 주목받을 때는 부자연스럽다고 생각되는 상태 즉 질병이나 장애 상태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실들은 아동의 성장에 있어서 몸의 위상이 점차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음을 알려준다. 아동의 성장담에서 의도치 않게 몸이 소외되는 현상 속에서 아동의 몸을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온 작품은 그래서 귀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살펴볼 세 작품 『불량한 자전거 여행』(김남중, 창비, 2009) 『5번 레인』(은소홀, 문학동네, 2020) 『열세 살의 걷기 클럽』(김혜정, 사계절, 2023)은 그렇게 눈에 띈 작품들이다.
    『불량한 자전거 여행』은 어쩌다가 몸으로 세상과 맞서게 된 호진이의 이야기이다. 부모의 불화로 깊은 상실감을 느낀 호진이는 가출을 감행한다. 가출은 익숙한 모든 것들로부터 신체를 분리할 때 가능해진다. 부모로부터의 신체적 분리는 집·학교·학원과 같은 일상 공간으로부터의 분리로 이어진다. 이때 분리된 신체가 의미하는 것은 불완전성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이 가진 여행이라는 서사구조 안에서 그것은 어떻게든 회복과 귀환의 과정을 밟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자전거 여행인가. 분리된 신체에서 표출되는 불완전성은 실존적 위기에서 기인한다. 아동에게 있어서 부모의 이혼은 존재를 부정당하는 위기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에 빠진 호진에게 자전거 타기는 몸을 통해 자신의 실존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흘러내리는 땀방울, 숨 가쁜 호흡, 터질 것만 같은 심장 등 몸으로 느끼는 고통은 그대로 실존의 시그널이다. 분리된 신체라는 불완전성과 관계없이 호진이의 몸은 그가 한 사람으로 온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자전거 타기는 몸을 통해 자신에 대한 긍정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서사의 한몫을 담당한다. 서사의 나머지 몫은 여행기로, 자전거 여행기는 인생에 대한 은유로서 성장 서사에 합류한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듯 극악한 고통의 한 귀퉁이에선 이미 기쁨이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과 그 길을 동행해주는 이들의 소중함은 호진이가 자전거 여행에서 찾은 소박한 삶의 가치들이었다. 호진이의 자전거 여행기는 그렇게 몸으로 인생을 배우는 이야기로 성장 서사를 완성한다.
    『5번 레인』(이하 인용은 쪽수만 표기)은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수영선수라는 아동문학의 새로운 주인공을 만나는 반가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동문학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공부하는 몸으로 살아간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강인한 신체는 아동의 몫으로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현실의 아동은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갈진대 학업 스트레스에만 몰두하는 아동문학의 주제들이 때론 갑갑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주인공인 나루의 단련된 몸, 수영하는 몸은 그 자체로 새로운 이야기를 생성하는 매력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수영하는 나루의 몸으로부터 생성된 이야기의 테마는 다름 아닌 경쟁과 성장이다. 경쟁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당연히 승리이겠지만, 그것만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라고 이 작품은 말한다. 승리에 집착하는 나루에게 코치 선생님은 “평생 이기는 시합만 하는 선수는 없다”거나 “어떻게 지느냐가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48쪽)하다는 말을 건넨다. 어딘가 아리송한 이 말은 나루의 언니인 버들이가 보여주는 자기 긍정으로 설명된다. 다이빙 대회에서 4위를 한 버들이가 하는 말인 “그래도 오늘, 결국 해냈어”(67쪽)는 결과보다는 지금, 여기에 열중하고 있는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삶의 태도로서 아동의 바람직한 성장 방향과도 일치한다. 수영하는 나루보다 갈등하는 나루의 서사가 많아지면서 강인한 신체가 더 이상 매력적인 이야기 요소로 활약하지 않는다는 점은 내내 아쉽다. 아마도 수영을 잘하는 몸보다 올바른 삶의 태도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큰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나루의 독백 ‘더 빨라져야지. 더 강해져야지’(226쪽)로 강조되는 강인한 신체가 정신의 영역에서 성장을 이룬 후에야 더 가치 있게 다가온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열세 살의 걷기 클럽』에는 제 스스로 걷는 아이들이 나온다. 걷는 아이들이라니, 그 아이들은 왜 걸을까.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자의 반 타의 반 목요일 5교시 운동클럽으로 만나게 된 윤서와 3명의 아이들은 여름방학이 되어서도 걷기 클럽을 자발적으로 이어간다. 걷기 클럽의 규칙은 좀 느슨한 편이다. 호수 입구에서 오후 5시에 만나 걷기 시작, 각자 자기 속도대로 걷다가 7시에 다시 호수 입구에서 만나서 인사하고 헤어진다. 걷는 동안 같은 속도로 걷는다면 서로 만날 테고 못 만난다고 해도 아이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공동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개별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아이들만의 방식이 속 깊게 다가온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 걷기를 반복하며 아이들은 서로의 속도뿐만 아니라 언제든 속도를 맞춰 나란히 손잡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함께 걷는 몸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의 거리는 가까워질지니, 어느새 아이들은 서로의 상처에 공감하고 그 회복에 동참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느슨했던 몸의 연대는 마음의 연대로 이어지고, 아이들은 그 마음을 나란히 손잡고 걷는 몸의 언어로 표현한다.
    이 작품에서 걷기 클럽은 이야기가 생성되는 일차적 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아이들과 함께 걷기 클럽으로 모여든 그들의 이야기는 다시 아이들과 함께 외부로 확장된다. 걷기 클럽은 너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몸의 공간으로 서사 확장의 중심역할을 한다. 이러한 구조는 아동의 몸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서사를 이끌어나가겠다는 의지의 반영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이 특히 아동의 몸에 주의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희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걷기 클럽 멤버인 재희는 뚱뚱한 몸에 새겨진 사회적 통념에 맞서는 인물이다. 재희는 뚱뚱하지만 게으르지도 미련하지도 않으며 식탐도 없다. 원래도 그렇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 재희는 더욱 애를 쓴다. 재희는 뚱뚱한 사람에 대한 통념들로 인해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기를 거부한다. 재희의 성실하고 다정한 면모들이 드러나는 작품 속 인물 묘사는 그래서 더 인상 깊게 다가온다.
    『불량한 자전거 여행』 『5번 레인』 『열세 살의 걷기 클럽』은 몸을 주요 테마로 삼아 성장 서사를 완성한다. 서사의 지향은 아동의 정신적 성장에 치우쳐 있지만, 아동의 몸을 서사의 중심에 세우고 있다는 점은 의미 있는 변화라 생각한다. 덕분에 아이들은 학교가 아닌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아동의 몸을 학교와 학원에만 가두어두는 것이 누구의 욕망인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적어도 아동의 욕망이 아님은 분명할 테니 말이다.
    

    4. 몸의 해방과 상상력

    일종의 강박처럼 작용하고 있는 성장 지향에서 한발 비켜선다면, 그냥 몸 이야기만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여타의 부연 서사 없이 자전거 타는 몸, 수영하는 몸, 걷는 몸, 그냥 그렇게 온전히 아동의 몸과 몸의 활동에 주목하는 이야기는 아동문학으로서 의미가 없을까. 몸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때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나의 산에서』(진 C. 조지, 김원구 옮김, 비룡소, 1995)가 떠올랐다.
    『나의 산에서』는 숲에서 혼자 살기를 선택한 샘의 이야기이다. 뉴욕 소년 샘은 주머니칼, 노끈 뭉치, 도끼, 부싯돌과 쇳조각 그리고 40달러를 들고 집을 나온다. 그의 목적지는 증조부의 농장이 있는 숲으로 버려진 지 100년도 넘는 야생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샘이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 살아남기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샘은 그곳에서 혼자 1년을 산다. 그리고 이 작품은 샘이 숲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나는 동안 먹을 것, 입을 것을 구하고 잘 곳을 마련하는 이야기가 서사의 전부이다. 그것으로 충분할까 싶지만 놀랍게도 이야기는 꽤나 흥미진진하다. 숲에 도착한 첫날, 샘은 낚싯바늘과 낚싯대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고, 나뭇가지를 이용해 잠자리를 만들었다. 이 한 끼의 식사, 하룻밤의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샘은 무언가를 깎고, 묶고, 매고, 덮치고, 자르고, 꽂고, 모으고, 불고, 감싸고, 올려놓고, 부딪치고, 깔아야 했다. 안타깝게도 부싯돌로 불 피우기에는 실패했기 때문에 샘은 엉성한 나무집으로 기어들어 가 웅크리고 잠을 청해야만 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독자는 뉴욕 소년인 샘의 생존을 위한 원초적 몸짓에 집중하게 된다. 생의 에너지로 가득 찬 그 간절한 몸짓을 응원하면서 말이다. 숲에 정착하면서 샘의 행동은 더욱 과감해진다. 그는 나무를 타고 절벽을 기어오르고 냇물을 펄쩍 뛰어넘기도 하며 숲을 휘젓고 다닌다. 커다란 솔송나무의 속을 파내 집을 만들고, 사슴 가죽을 벗겨 무두질해 겨울옷과 침구를 마련한다. 가래나무 가지를 끓여서 소금을 만들고, 사슴 고기를 말려 육포로 만들기도 한다. 또 겨울을 나기 위해 도토리를 모아 저장도 해놓는다. 하루하루를 몸으로 살아가는 샘의 이야기는 낯설고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아동의 몸 이야기는 정신 중심의 성장 서사 못지않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 작품은 출판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저항을 겪었다. 문제가 된 것은 샘의 가출이었다. 발행인은 이 작품이 아이들에게 집을 나가라고 부추기는 내용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우려해 출판을 거절했다고 한다. 아동문학의 실질적 구매자인 부모에게 선택받지 못할 확률이 높으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작가는 그래도 아이들이 ‘도시보다는 숲으로 도망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 뜻이 전달되었는지 발행인은 마음을 바꿔 책을 출간한다.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이 작품은 독자의 선택뿐만 아니라 뉴베리상·안데르센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아동의 성장에 있어서 기성세대의 보수적 지향은 가정과 학교를 통해 실현된다. 가정과 학교는 아동의 몸이 거처해야 할 공간으로서 그 지위를 승인받은 장소라 할 수 있다. 가정과 학교에서 분리된 몸은 문제적 대상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정작 아동의 욕망은 가정과 학교로부터 분리된 몸이 거하는 곳에서 발현되곤 한다. 생각해보면 아동의 몸에 대한 상상력은 아동의 몸과 욕망이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아동의 몸이 해방될 때 비로소 싹을 틔운다. 샘이 집을 떠나 숲으로 들어간 사건으로 인해 전혀 새로운 몸의 서사가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샘의 가출이 문제가 되었듯 저항이 따를 터. 아동의 자리와 몫으로 구획된 가정과 학교에서 또 공부하는 몸으로부터 아동의 몸을 해방시키려는 시도에 용기를 보태주고 싶다. 결국 우리 아동문학에서 아동의 몸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며, 또 그것이 누구의 욕망을 대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아야 비로소 새로운 이야기가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김윤

1971년 파주 출생. 2013년 『창비어린이』에 평론으로 등단. 인하대학교 아동문학 박사.

    
    

〈주석〉

  1. 『어린이』 창간호, 1923. 3.
  2. Anne Higonnet, Pictures of Innocence: The History and Crisis of Ideal Childhood, Thames and Hudson, 1998, 7~30, 76쪽 참조.
  3. 서유리, 『시대의 얼굴』, 소명출판, 2016, 201~205쪽.
  4. 피터 브룩스, 『육체와 예술』, 이봉지·한애경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0, 30쪽.
  5. 일라이 클레어, 『망명과 자긍심』, 전혜은·제이 옮김, 현실문화, 2020,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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