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괴담

  

  네가 고통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말하라.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1

  “너, S반이지? 오늘 인진고 서우 봤어?”
  앞좌석 등받이 틈새로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김솔은 좁은 틈으로 바짝 들이민 희읍스레한 얼굴을 보면서 이어폰을 뺐다.
  “인진고 이서우, S반 맞지?”
  김솔은 고개를 내저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S반은 일곱이었고, 아니 여덟인가? 아무튼 S반에는 인진고 학생이 없었다.
  “이상해. 이서우 S반 맞는데…… 이서우를 다 몰라. 너도 진짜 몰라? 이서우 본 적 없어?”
  김솔은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미심쩍어하는 눈빛은 친친하게 김솔을 훑다가 뒤돌아 앉았다. 뭐래? 김솔은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았다.

  오늘날 어디서나 고통공포Algophobie, 즉 고통에 대한 전반적인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다. 고통에 대한 내성도 급속하게 약화되고 있다.2

  김솔은 오디오북을 멈추고는 문장을 재빠르게 휴대전화 메모장에 남겼다. 논술 숙제로 이 책을 요약해야 하는데 이 문장을 풀어쓰면 굳이 다 읽지 않아도 끝낼 수 있겠다 싶었다. 학원 버스는 3단지 앞을 빠르게 지나치고 있었다. 김솔은 가방을 챙겨 어깨에 둘러메고는 하차 벨을 누르면서 앞자리를 설핏 넘겨다봤다. 이서우를 찾던 아이는 언제 내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학원 버스가 1단지 앞에 정차했다. 김솔은 내리면서 습관처럼 뒤를 돌아봤다. 맨 뒤에 앉아 있던 박정민이 그제야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면서 일어섰다. 기사 아저씨는 백미러로 늘쩡거리는 승객들을 못마땅하게 보다가 승객들이 내리자마자 거칠게 문을 닫고 내뺐다.
  박정민은 도로 경계석에 아슬아슬하게 착지한 채 그대로 휴대전화를 봤다. 김솔은 몇 발짝 걷다가 멈춰 섰다.
  “너, 이서우라고 알아? 너네 학교 애라던데?”
  “모르지, 우리 학교 애들이 몇 명인데⋯⋯ 근데, 율이 괜찮아?”
  박정민이 고개를 들어 김솔을 봤다.
  “김율? 왜?”
  “아까 우리 엄마가 나한테 게임 아이템 돈 내고 사냐고 문자했던데? 김율이 게임 아이템 사려고 뭐 어쨌다고 하던데?”
  “율이 뭘 어쨌다는데?”
  “나도 정확히는 몰라. 요즘 애들 게임 아이템 사려고 온갖 뻘짓을 다 하니까. 그랬나보지 뭐.”
  “뻘짓이 뭔데? ”
  “요새는 게임 아이템 거래소도 있어서 눈으로 보면 더 사고 싶지 않겠어? 돈만 준다면 영혼도 팔 애들이 수두룩하지. 율이도 그랬나보지.”
  영혼을 팔다니, 너무 상투적인 거 아냐. 게다가 지랄 맞은 중2의 영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김솔은 어두컴컴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겹겹이 서 있는 단지 쪽을 바라봤다. 늘 그렇듯 늦은 밤 아파트 단지는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했다. 김솔은 우련히 보이는 108동 가장자리에 있는 불빛을 헤아렸다. 9층 902호 거실 불빛이 감실거렸다.
  박정민은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걸음을 뗐다. 김솔은 박정민 뒤를 따라 걸었다.
  “박정민, 날마다 뭘 그렇게 보냐? 요새도 먹방 보냐?”
  “응? 아니⋯⋯ 먹방도 보고, 숏폼도 보고⋯⋯ 근데 김솔, 이것 좀 봐. 얘 플루토 아냐?”
  박정민이 휙 돌아서면서 제 휴대전화를 김솔 눈앞에 들이밀었다. 김솔은 놀라 무르춤했다.
  “뭐래?”
  “아니, 얘 좀 보라고.”
  박정민 휴대전화에 뜬 영상에는 까만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무릎을 꿇은 채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의 가슴을 손으로 압박하며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그날이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깔려 죽은 그날 그곳에서 여자는 사람을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가느다란 두 팔의 규칙적인 움직임만 있는 영상은 음 소거 상태였지만, 여자의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긴 머리카락이 앞으로 쏠려 여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박정민은 영상을 멈추고는 여자의 위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문신, 플루토 맞지?”
  김솔은 여자의 어깨 바로 아래 있는 갈색 반점을 들여다봤다. 이게 문신일까?
  “이거 명왕성이야. 확실해. 너 기억 안 나? 플루토? 우리 중3 때 독서 과외 같이했잖아.”
  “알아!”
  김솔은 구릿빛 구에 흰 하트가 있는 명왕성을 새긴 이여진의 팔을 떠올렸다. 이여진은 수업 첫날 자기소개를 할 때 대뜸 소매를 어깨까지 접어 올리고는 위팔에 새긴 5백 원짜리 동전만 한 문신을 보여줬다. 이여진은 태양계 9번째 행성이었던 명왕성이 퇴출된 날 태어났다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퇴출’이니 ‘박탈’이니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게 된 명왕성에게 지구인으로서 사과하는 뜻으로 문신을 새겼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은 명왕성처럼 영원히 아웃사이더로 살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박정민은 이여진을 플루토라고 불렀고, 자주 플루토 얘기를 했다. 플루토는 두 달 만에 과외를 그만뒀다. 그 뒤로 박정민은 단 한 번도 플루토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것만 보고 이여진인지 알 수 없지. 그리고 수업 들을 때 우리 다 마스크 쓰고 있어서 얼굴도 정확히 모르고⋯⋯.”
  “그렇지. 하지만 이런 문신을 새긴 애는 없을 거 같아서⋯⋯.”
  “명왕성이 퇴출당한 걸 마음 아파하는 지구인이 플루토만은 아닐 거야. 가라.”
  김솔은 여전히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박정민을 남겨두고는 돌아섰다. 김솔은 영상 속의 여자가 이여진이 아닐 거라고 말하긴 했어도 자꾸 마음에 걸렸다. 만일 그 여자가 이여진이라면. 진짜 그 끔찍한 자리에 있었던 걸까? 심폐소생술을 하던 사람을 살렸을까? 그 사람은 살았을까? 김솔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박정민에게 영상을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김솔은 거실 바닥에 꿇어앉은 동생과 소파에 팔짱을 끼고 앉은 부모를 보고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김율은 김솔을 힐끗 보고는 아무런 기대 없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두둔하고 나설 일이 아니었다. 김율은 SNS에서 ‘대리 입금’으로 8만 원을 빌려 게임 아이템을 샀고, 원금에 연체료까지 30만 원이 넘는 돈을 갚아야 했다. 김솔은 동생이 영혼을 팔아먹는 게 나았겠다 싶었다.
  “저 자식 내일부터 학원이고 뭐고 다 끊어버려. 정신 상태가 썩어 빠진 놈을 돈 들여 가르쳐 뭐 해. 공부를 못하면 착하기라도 해야지. 학원 빼먹고 피시방에 간 것도 모자라서 게임하려고 돈을 빌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너 같은 새끼가 커서 집안 말아먹는 거야.”
  “여보, 말이 과하잖아. 자식한테 무슨 막말이야. 그리고 애만 잘못한 게 아니잖아. 순진한 애들한테 돈 빌려주고 말도 안 되는 이자를 뜯어낸 어른들이 잘못한 거지.”
  “과하긴 뭘 과해. 당신이 맨날 감싸고 도니까 이 새끼가 이 모양인 거야. 사내새끼가 울긴 또 왜 울어.”
  “욕 좀 하지 마!”
  “내가 언제 욕을 했다고 그래? 사내새끼가 욕이야? 사내새끼를 사내새끼라고 하지 계집애라고 해? 김율, 너 아빠가 뭐라고 했어. 사내놈은 더 잘해야 한다고 그랬지.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남자는 남자야. 너 이따위로 해서 처자식 제대로 먹여 살리는 가장 노릇 할 수 있겠어.”
  “당신, 말이 왜 그래. 남자가 뭘 더 잘해야 해. 남자든 여자든 다 잘해야지. 그리고 남자만 가장 노릇 하냐? 살림하는 것도 가장 노릇인 거야.”
  “뭐라는 거야? 지금 내가 하는 말의 요점이 그게 아니잖아!”
  “됐어. 이제 그만해. 내일 그 악덕 고리대금업자 놈들 신고할 거야. 대리 입금인지 뭔지 피해 본 애들이 한둘이 아니야.”
  “뭐? 동네 창피하게 무슨 신고를 해. 애가 등신인 거 광고할 일 있어? 집안 망신이지. 신고한다고 뭐가 달라져. 경찰서에서 부모들 오라 가라 할 텐데, 요새 연말이라 회사가 얼마나 바쁜지 알기나 해?”
  언제나 그렇듯이 훈육은 싸움으로 끝났다. 김솔은 김율이 제 방으로 발을 끌며 들어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는 소리와 화장실과 안방 문이 거칠게 여닫히는 소리를 듣고는 이어폰을 꽂았다. 김솔은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논술 공책을 펼쳤다.
  오직 살아 있는 관계만이, 진정한 공존만이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글귀를 듣다가 퍼뜩 박정민이 보여준 영상이 떠올랐다. 박정민은 문자 확인을 하지 않았다. 김솔은 직접 영상을 찾았다.
  웬일인지 그날 영상이 하나도 없었다. 심폐소생술을 해시태그로 단 영상은 대개 상반신만 있는 마네킹의 가슴을 압박하면서 심폐소생술을 배우는 장면이거나 길에서 느닷없이 쓰러진 사람을 시민이 심폐소생술로 살렸다는 뉴스 영상뿐이었다. 진짜 사경을 헤매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영상은 없었다. 그날 참사가 일어난 곳을 해시태그로 검색해도 찾을 수 없었다. 그곳은 내내 화려하고 행복했다. 색색의 조명과 맛깔나 보이는 음식과 환한 웃음들.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올린 사진이나 영상에는 어떤 고통도, 비극도 남아 있지 않았다. 김솔은 뜨거워진 휴대전화를 내려놓고는 중얼거렸다. 뭐냐?
  이튿날 오전에 박정민은 학원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목을 웅크리고 있던 박정민은 학원 버스에서 내리는 김솔을 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왔다.
  “김솔, 나 좀 잠깐 봐.”
  “뭘 봐? 수업 안 들어가?”
  “아니, 잠깐이면 돼.”
  박정민은 학원 건물과 옆 건물 사이 좁은 틈으로 들어갔다. 밑바닥부터 지상까지 에어컨 실외기가 점령한 틈새를 학원 애들은 ‘구멍’이라고 불렀다. 한낮에도 빛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구멍은 담배 피우는 애들의 은신처였다. 김솔은 구멍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가 담배꽁초와 온갖 쓰레기와 침으로 뒤덮인 걸 보고는 기겁해서 발을 뺐다. 구멍이 아니라 거대한 쓰레기통이었다.
  “박정민 왜 하필 거기로 기어들어 가? 담배 피우려는 것도 아니면서. 할 말 있으면 나와서 해.”
  “그게 아니라,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서 다른 사람이 들으면 좀 그래.”
  “뭐래? 그냥 빨리 말하면 안 될까? 왜?”
  김솔은 구멍에서 풍기는 악취에 마스크를 콧잔등 위로 바짝 끌어 올렸다. 구멍에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박정민은 자꾸 위를 올려다보며 웅얼거렸다. 당황하거나 말하기 곤란하면 나오는 버릇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그랬다. 김솔은 박정민이 그것 때문에 제 엄마한테 혼나는 걸 여러 번 봤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하늘에서 아무것도 안 떨어져. 빨리 말해.”
  “응. 그게⋯⋯ 없어. 그러니까 내 말은 어제 너한테 보여준 영상을 다시 찾아보니까 없어. 그것만 없는 게 아니라 다 없어. 그러니까⋯⋯.”
  박정민은 말을 끊고는 고개를 젖히고 또 위를 올려다봤다. 김솔은 박정민의 시선을 따라 위를 쳐다봤다. 구멍 위로는 벽에 매달려 있는 실외기들만 보였다. 김솔은 그것들이 아슬아슬해 보여 뒤로 주춤 물러섰다.
  “박정민! 그날 그 일이 감쪽같이 지워졌다고? 찾아도 없다고?”
  박정민이 놀란 눈으로 김솔을 봤다.
  “너도 알아? 그럼 플루토가 사라졌다는 것도 알아?”
  “플루토가 사라지다니 그건 또 뭔 소리야?”
  “플루토하고 같은 학교 다니는 애한테 플루토 연락처를 알아봐달라고 했더니 모른다는 거야. 걔 분명히 플루토하고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 나하고 플루토 얘기를 한 적도 있거든. 그런데 난생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거야. 걔가 졸업식 날 교실에서 찍은 단체 사진을 보내줬는데, 정말 없어.”
  박정민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찾아 김솔 쪽으로 내밀었다. 김솔은 구멍으로 들어가 사진을 봤다. 칠판 앞에 마스크를 쓴 아이들이 뭉쳐 서 있는 사진은 얼굴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누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늬 친구 남자애라 여자애들은 잘 모르는 거 아냐?”
  “아냐. 걔가 사진 속 여자 애들 이름을 다 불러줬는데, 없어. 혹시 졸업식 날 결석한 건 아니냐고 했더니 아니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내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지금 현실과 판타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거야?”
  “나는? 게임도 안 하는 나는 뭐냐?”
  김솔은 구멍 밖 세상을 바라봤다. 그곳은 환하고 평온했다. 세상은 어제도 오늘도 같아 보였다. 김솔은 마치 자신과 박정민만 더럽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구멍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김솔은 중얼거렸다.
  “우리가 직접 가보자. 거기, 거기 말이야. 세상에서 지워진 곳에 가보자.”
  둘은 구멍에서 나와 지하철을 탔다. 그곳까지 가는 동안 둘은 휴대전화로 그날을 다시 찾아봤다. 친구들한테 문자를 보내 그날을 모르냐고 묻기도 했다. 그들의 답장은 표현만 다를 뿐 똑같았다. 뭐래?
  박정민은 자기 친구들은 세상에 관심이 없어서 모를 수도 있다고 하면서 김솔이 친구들한테 받은 문자를 들여다봤다.
  “우리 동네 애들이 세상 물정을 좀 모르긴 해. 애들이 동네에서만 놀잖아. 애들은 모르는 거고, 인터넷은 검은 세력들이 삭제했을 수도 있어.”
  “뭐 악의 무리 같은 거냐?”
  “그렇지. 게임할 때 트롤 같은 거지. 세상을 망치려는 존재들? 인터넷이나 언론을 장악하는 건 일도 아닌 엄청난 세력들일 수 있지. 그래도 그들이 현실 세상까지 깔끔하게 처리하기는 어려울 거야. 거기 가면 단서가 분명히 있겠지.”
  박정민은 호언장담했지만, 그곳에는 어떤 단서도 없었다. 둘은 그날 긴박한 순간들이 담긴 영상을 본 기억을 되살려 그 장소를 찾으려 했지만, 도무지 어디가 어디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은 아예 없었다. 비탈진 길도 없었다. 박정민은 플루토가 심폐소생술을 하던 그 자리의 식당 간판이 어렴풋이 기억난다면서 찾아다니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그때 사람들이 애도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여놓은 곳도 있었잖아. 너 기억하지? 지하철역 주변이었는데⋯⋯.”
  김솔은 테이프 자국이라도 남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하철역 가까이 있는 건물들의 벽을 샅샅이 훑었다. 그런 흔적은 없었다. 둘은 편의점과 문을 연 식당에 들어가 물어보기도 했는데, 모두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박정민이 어쩌면 지하철역을 잘못 내린 걸 수도 있다고 해서 지하철을 다시 타고 두 곳을 더 가봤다. 한 곳은 지하철역이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있었고, 또 한 곳은 오래된 시장에 낡은 건물만 늘어서 있었다. 사고가 일어날 곳들이 아니었다.
  둘은 시장 앞 포장마차에서 붕어빵을 사 먹었다. 박정민은 붕어빵 다섯 개를 순식간에 먹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 틀린 거 같아. 나는 점점 우리 둘이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우리 같은 영화를 본 건 아닐까.”
  “내가 진짜 안 보는 영화가 재난 영화야. 내 머릿속에 있는 기억은 영화가 아니야. 우리 같이 어제 그 영상도 봤잖아. 플루토!”
  “그러니까 내가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우리는 기억하는데, 세상에는 없잖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세상 사람들을 믿지 마. 세상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원하는 것만 기억하니까.”
  박정민 말에 끼어든 사람은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였다. 둘은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털모자를 쓴 아주머니는 연신 붕어빵틀을 갈고리로 뒤집었다.
  “아줌마 무슨 말씀이세요?”
  김솔이 놀라 묻자, 아주머니는 고개를 들어 둘을 봤다.
  “학생들은 붕어빵 찍어내듯이 똑같은 사람을 찍어내는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고. 세상이 붕어빵도 아닌데, 터진다고 덜 익었다고 내팽개치잖아.”
  “아줌마, 저희가 뭘 찾는지 아세요? 아줌마도 그날 아시는 거예요.”
  박정민이 반색하면서 묻자 아주머니는 갈고리를 든 손을 내저었다.
  “나야 모르지. 나는 그냥 세상이 망가지거나 말거나 붕어빵만 구워내는 거야. 학생들은 나 같은 어른은 되지 말라고. 찾을 게 있으면 찾아. 찾아봐. 잊어버리지 않고 찾으면 있겠지.”
  아주머니는 말하면서도 구워진 붕어빵을 빠르게 끄집어냈다. 박정민이 김솔의 소매를 잡아끌면서 소곤댔다.
  “그래, 우리 플루토를 찾아보자. 플루토는 있을 거야.”
  “어디서 찾아?”
  “플루토 집이 어딘지 알아. 우리 독서 수업할 때 집에 대해 쓴 글이 있었잖아. 곧 재개발하는 아파트. 그 아파트 앞 상가에서 플루토 부모님이 제과점을 한다고 했잖아. 나 그 아파트 알아.”
  “너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해? 그러고 보니까 어제 그 영상, 우연히 본 게 아니지?”
  박정민은 대답하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알아들을 수 없게 웅얼댔다. 김솔은 박정민의 등을 세차게 때리고는 앞서 걸었다.
  이여진이 산다는 아파트는 연립 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곳에 불뚝 솟아 있었다. 두 동밖에 없는 아파트 입구에는 ‘재건축 안전진단 최종 통과 축하’라고 쓴 현수막이 높이 달려 있었다. 현수막은 꽤 오래되었는지 누렇게 변색되고 귀퉁이가 찢겨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 있는 경비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경비실을 기웃대고 나온 박정민의 표정이 밝았다.
  “봐, 진짜 있잖아. 플루토가 말한 아파트가. 경비실 아저씨도 잠깐 자리를 비운 건가봐.”
  “이사 갔을 수도 있잖아. 여기 재건축된다는데, 이사 간 집들이 많지 않겠어?”
  “제과점, 저기 제과점이 있잖아.”
  박정민은 도로 건너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건물은 3층짜리로 2층에는 태권도 학원이, 3층에는 교회가 있었다. 그리고 1층에 진짜 제과점이 있었다. 김솔은 가장자리가 녹슨 제과점의 간판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진짜 있네.”
  김솔은 아파트와 제과점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자 마음이 놓였다. 김솔도 ‘그날’을 찾으러 다니는 동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계속 의심했다. 자신이 서 있는 거리도, 만난 사람들도 자신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는 아닐까 싶어 불안했다. 그렇지만, 이여진이 실제로 존재하듯이 아파트와 제과점도 허구가 아니라 팩트다.
  “저거 맞는 거지?”
  “맞아. 이 동네 제과점이 저기 하나잖아. 나 이 동네 여러 번 와봤거든. 너도 와봤을걸. 아파트 뒤에 찜질방이 있었잖아.”
  “아, 거기구나.”
  김솔은 차도를 성큼성큼 건너가는 박정민을 따라가면서 주변을 둘레거렸다. 초등학교 때 이 동네에 있는 찜질방에 여러 번 왔었다. 그러고 보니 동네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찜질방은 오래전에 없어졌지만, 동네 풍경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그때도 제과점이 있었던 것 같았다.
  박정민은 ‘CLOSE’ 팻말이 안쪽에 매달려 있는 유리문에 바짝 붙어서 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김솔은 옆에 붙어 서서 진열대를 훑었다. 진열대는 텅 비어 있었고, 계산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 문 닫은 거 아냐?”
  “쉬는 날 아닐까?”
  “문을 닫았든 쉬는 날이든 플루토를 만나긴 어려운 거잖아.”
  둘의 입김으로 유리문에 뿌옇게 김이 서렸다. 박정민은 김 서린 자리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찾아야지. 아파트로 도로 가서 기다려야지.”
  “언제까지 기다려? 경비 아저씨도 없어서 물어볼 수도 없잖아.”
  “경비 아저씨 금방 오겠지. 작은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은 아파트 주민들을 다 꿰고 있을 테니까 제과점 하는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알 거야. 아니면 플루토가 지나가는 걸 볼 수도 있잖아. 아파트 입구가 하나라서 드나드는 사람을 볼 수 있겠어.”
  둘은 아파트로 돌아와 경비실 앞에 가방을 깔고 앉았다. 박정민 말처럼 경비 아저씨가 잠깐 자리를 비운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경비 아저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드나드는 사람이나 차는 다 볼 수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아파트에서 나간 사람은 한 명, 들어온 사람도 한 명, 차도 한 대뿐이었다. 일어나서 서성대던 박정민은 휴대전화를 켰다가 다시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휴대전화 켜기가 무서워. 다 조작된 것 같아서.”
  “내 말이. 그런데 너 어제 그 영상 우연히 본 게 아니지? 너 아까 대답 안 했잖아.”
  “응. 명왕성을 찾았는데 뜬 거야.”
  “왜? 너 천문학에 관심 있어?”
  “아니, 그냥. 사실은 내가 플루토 좋아했거든. 지금 말고 예전에. 그래서 가끔 플루토가 생각나면 명왕성을 찾아봐. 명왕성이 어떻게 퇴출됐는지 그런 과학 기사를 보거나, 사진 같은 거 봐. 어제 그 영상도 명왕성 해시태그로 본 거야.”
  “그럼 그렇지. 그런데 좋아했다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거 아냐? 짝사랑?”
  “아니. 그냥 지금은 잘 지내나 안부가 궁금한 정도. 아무튼 오늘 돌아다니면서 플루토가 예전에 한 말이 떠올랐어.”
  “오, 박정민! 플루토의 말을 잠언처럼 외운 거냐? 위대하신 플루토가 뭐라고 했는데?”
  “인간이 명왕성을 행성에서 퇴출했어도 우주에 명왕성은 있다고. 기억에서 지운다고 존재하는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플루토답네. 플루토가 멋진 구석이 있었지. 그러니 좋아하겠지.”
  박정민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노을이 멋지네, 어쩌네 중얼거렸다. 하늘은 다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김솔은 다홍빛 하늘 맞은편에 나타난 손톱만 한 달을 찾아냈다. 오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내일은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
  “박정민, 진짜 ‘그날’이 지워진 걸까? 내가 읽은 책에서 진실은 고통스러운데, 사람들은 그 고통을 지우기 위해 애쓴다고 했어. 고통 없는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는 거야. 정말 세상 사람들이 고통스러워서 ‘그날’을 지워버린 걸까? ‘진실’을 외면하는 걸까? 우리도 내일은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할까? 아니다, 박정민 너는 기억하겠네. 사랑은 고통도 감내할 테니까.”
  “뭔 소리야? 됐다. 너는 학원에나 가. 너 학원 빠진 거 들키면 집에서 야단날 거 아냐. 내가 플루토 만나면 연락할게.”
  “너 혼자 플루토 보려고? 그래, 내가 눈치 없이 둘의 극적인 상봉을 방해하면 안 되지. 사실 어제 일로 우리 집 발칵 뒤집어져서 나라도 멀쩡한 척해야 해.”
  “무슨 일?”
  “율이, 나중에 얘기하자.”
  “율?”
  김솔은 어쩐지 뜨악해하는 박정민을 놔두고 아파트에서 빠져나왔다. 김솔은 버스정류장에서 학원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어디냐고 묻는 엄마 문자를 보고는 전화를 걸었다.
  “김솔, 학원 자습실? 오늘 아빠가 같이 외식하자고 해서. 학원 앞으로 갈 테니 나와.”
  “외식? 아빠 괜찮아? 화 풀렸어?”
  “응? 아빠가 왜? 아빠가 왜 화가 나?”
  “김율 때문에⋯⋯.”
  “김율? 김율이 누구야?”
  “엄마 왜 그래? 아직 김율한테 화났구나.”
  “아니 얘가 왜 자꾸 화가 났냐고 그래? 그리고 김율은 누구야?”
  김솔은 휴대전화를 귀에서 뗐다. 김솔은 퍼뜩 지난밤 이서우를 찾던 아이가 생각났다.
  “이서우⋯⋯ 김율⋯⋯ 플루토⋯⋯.”
  김솔은 중얼대면서 박정민이 있는 아파트 쪽으로 달렸다. 발을 헛디뎌 넘어진 김솔은 땅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버려둔 채 다시 달렸다.
  
  

김해원

장편소설 『열일곱 살의 털』『나는 무늬』, 소설집 공저 『가족입니다』『바깥은 준비됐어』『그날 밤 우리는 비밀을』『하면 좀 어떤 사이』 등이 있음.

  
  

〈주석〉

  1. 한병철, 『고통 없는 사회』, 이재영 옮김, 김영사, 2021, 9쪽. 에른스트 융어의 문장을 재인용함. 원본은 고딕 폰트에 볼드체로 강조되어 있음.
  2. 위의 책, 같은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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