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외 1편

 
 
  그 집
 

  뱀의 혀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면
  곤충 눈알 가로등이 푸르게 빛나
  기린의 목뼈로 된 계단을 오르면
  한 가닥 거미줄로 된 다리가 출렁이고
  어둠을 훔쳐보는 창문이 철컹대
  그 방으로 들어가 창밖을 보면
  마당가 호수가 핑그르르
  호수는 반듯하게 누운
  누군가의 투명한 눈알
  눈알과 눈싸움을 해서 이긴 뒤
  그 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면
  몸에서 수북이 털이 돋고
  송곳니가 고드름처럼 자란대
  어린이는 공짜라는데
  어떻게 지나칠 수 있겠어!
 
 
  소리 채집가
 

  엄마,
  이번 생일엔 소리 채집통을 선물로 받고 싶어
  난 채집통에 소리를 모을 거야
  지빠귀 소리, 달팽이 기어가는 소리, 청어의 방귀 소리
  엄마가 몰래 우는 소리, 다락방의 달그락 소리
  길고양이가 날아가는 소리, 기린의 노랫소리
  기린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내가 듣지 못한다고 없는 건 아니야
  기린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마도 사냥꾼 때문일 거야
  기린은 분명 키만큼 길고 또렷한
  소리를 간직하고 있을 거야
  소리를 따라가면
  어떤 것이 사라지고 태어나
  배고픈 길고양이 소리를 따라가면
  슬프고도 기쁜
  말 안 해도 알지?
  그러니까 엄마
  엄마도 큰 소리로 울어도 돼
  엄마의 무엇이 사라지고 태어나는 동안
  내가 거기 있을 거니까
  (내가 처음 울던 날 엄마도 그랬잖아)
  
  

장세정

2006년 『어린이와문학』으로 등단. 동시집 『모든 순간이 별』 『여덟 살입니다』 『핫-도그 팔아요』 『튀고 싶은 날』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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