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재판으로 보는 학교폭력

  

    2023년처럼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었던 해가 없었던 것 같다. 신년 초,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로 대중은 학교폭력 피해자가 성인이 되어서도 트라우마를 겪을 만큼 심각한 피해를 남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위공직 후보자 자녀의 과거 학교폭력 사건이 보도되면서 공부 잘하는 모범생도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 될 수 있으며, 가해 학생이 강제 전학이라는 중징계를 받았음에도 별다른 불이익 없이 서울대에 진학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였다. 또 가해 학생과 그 부모인 고위공직자 후보가 강제 전학 처분에 불복하여 징계를 지연시켰다는 사실에 반성하지 않고 피해 학생에게 계속해서 피해를 줬다는 점에서 비난받았다.
    이 고위공직자 후보 아들의 과거 학교폭력 사건은 피해 학생 보호 강화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2023년 4월, 정부의 학교폭력종합근절대책이 발표되었다. 학교폭력 제도에 큰 변화를 불러오며 변화된 제도는 2024년 3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학교폭력은 크게 두 가지 절차로 진행된다. 하나는 학교에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여 학교에서 사실관계 확인 후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보통 학생들과 부모님들은 줄여서 ‘학폭위’라고 부른다.)에서 가해 학생 징계 및 피해 학생 보호조치를 내리는 ‘교육 행정적 절차’이다. 다른 하나는 경찰에 신고·고소하는 ‘형사 사법적 절차’이다.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은 촉법소년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없어 경찰의 수사 후 모두 소년재판으로 사건이 송치된다. 만 14세 이상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범죄소년이라고 부른다. 경찰이 수사 후 범죄가 인정되면 검찰에 송치하고, 범죄가 인정되지 않으면 불송치 결정이라고 해서 사건이 종결된다. 경찰에서 사건을 받은 검사는 범죄소년에 대해 수사기록을 검토 후 소년재판으로 송치할지, 일반 성인 사건과 마찬가지로 형사재판으로 회부하여 징역 등 형사처벌을 받게 할지 결정한다.
    간혹 미성년자라고 하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오해하곤 한다. 이는 촉법소년에 한정된 이야기이고 범죄소년이 중대한 폭력, 피해가 심각한 사건 등을 저질러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아무리 미성년자라고 하더라도 성인과 같은 형사처벌을 받고 전과도 남게 된다. 다만 미성년자의 학교폭력 사건, 비행 사건의 95퍼센트 이상 검사가 범죄 혐의가 인정된 미성년자 사건 중 형사재판으로 회부하는 비율은 매년 7~11퍼센트 정도 차지한다. 그리고 형사재판으로 회부했더라도 재판부에서 소년재판을 받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다시 소년재판으로 송치하는 결정을 내리는데 그 비율이 매년 50~60퍼센트에 달한다. 형사재판으로 회부된 사건 중 절반이 넘는 사건이 다시 소년부로 송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형사재판을 받는 사건은 5퍼센트 이하에 불과하다.
    이 소년재판으로 송치되고, 교육 행정적 절차가 약 2~3개월 소요된다면 형사 사법적 절차는 약 10개월~1년 정도 소요되니 학교폭력의 최종적 절차는 사실상 소년재판이라 하겠다.

    ‘소년재판’은 드라마나 학교폭력 관련 언론 보도, 청소년의 범죄가 뉴스에 보도될 때 접하는 정도일 뿐, 소년재판이 실제 어떻게 열리는지 아는 대중들은 소수이다. 왜냐하면 소년재판은 ‘비공개 원칙’이기 때문이다. 일반 형사재판의 경우 재판이 공개되어 피해자와 일반 대중들도 방청석에 앉아 재판의 진행 상황, 그리고 결과도 얼마든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소년재판은 일반 형사재판과 달리 비공개로 진행되므로 대중들은 물론 가해 학생의 지인들, 친인척도 들어갈 수 없고 오로지 보호자와 소년 당사자만이 재판 출석이 가능하다. 필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년재판의 풍경을 통해 단편적인 사건의 내용이 아닌 학교폭력의 뒷모습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소년재판 법정 앞

    “○○○ 학생 왔나요? 앞으로 오세요!”
    법정 경위의 외침은 법정 밖 복도에서 수시로 들려온다. 자신의 재판을 기다리는 학생과 보호자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호명이 되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재판받을 준비를 한다. 소년재판 법정 앞은 재판을 받으러 온 어린 학생들과 함께 온 보호자들로 늘 북적인다. 이렇게 법정 앞이 북적이는 이유는 하루에 수십여 건의 재판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법정 앞에 붙은 오늘의 재판 진행표를 보면 하루 종일 10분 단위로 같은 시간에 3~4건의 소년재판이 잡혀 있다. 그래서 법조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소년재판을 ‘3분 재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을 괴롭히면, 잘못을 저지르면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치고 선도와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소년재판이 고작 3분 남짓으로 끝나므로 소년들에게는 얼마만큼의 무게감을 줄지 애석하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어린 학생들은 자신이 여기를 왜 온 건지도 잘 모른다는 듯, 놀러 온 것인 양 장난을 치거나 스마트폰 게임을 하며 재판을 기다리고, 중·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반면 아주 느긋해 보이는 학생들도 있다. 한두 번 법원을 와본 모습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이 경미한 처분으로 끝이 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재판에 대한 걱정보다는 빨리 자신의 차례가 오지 않는 것에 몹시 지루한 표정이다. 그들에게는 그저 의례적으로 치는 절차인 셈이다.
    옷차림도 각양각색이다. 재판의 엄중함을 아는 학생들이나 부모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은 교복 등 단정한 차림이지만, 슬리퍼를 신고 오거나 트레이닝복, 양팔에 화려한 문신을 버젓이 드러낸 채 반팔 차림으로 오는 학생들도 있다.
    소년재판은 부모님이나 부모님을 대신해 보호자 역할을 하는 어른이 학생과 함께 출석한다. 대부분은 부모님과 함께 오지만 부모님 없이 삼촌 등 친척, 형제와 함께 오는 학생도 있고 그마저도 없어 혼자 오는 학생들도 있다. 어른들도 낯설고 생소한 이 법원에서 어떤 처분이 내려질지 모르는데 부모님이 함께하지 못하는 학생이라니, 부모님 등 보살핌을 받지 못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측은함이 앞선다.

    재판정을 나오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어떤 학생은 부모님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나오고,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눈물을 닦으며 재판정을 나서는 학생들도 있다. 판사님께 꽤 혼이 난 모양이다. 안타까운 순간은 부모님과 학생이 함께 법정에 들어갔다가 부모님만 나오는 경우이다. 이는 후술하는 소년분류심사원, 의료보호시설 등 감호위탁시설에 보내지게 되었거나 소년원 보호처분을 받게 돼서이다.
    어느 한쪽은 시끌벅적하다. 소위 일진 무리가 법원 앞을 점령한 것이다. 일진 무리 중 한 명이 누군가를 괴롭혔거나, 범죄에 연루되어 소년재판을 받게 되면 이들은 친구를 응원하러 법원까지 동행한다. 마치 수능 시험장 앞에서 시험을 보러 가는 선배들을 응원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떠오른달까. 그들 나름의 의리이다.
    그러나 일진 무리가 나타나면 위화감이 조성되기에 이들을 법원 멀리 흩어지게 하려는 법정 경위들이 분주해진다. 법정 경위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의리는 끈질기다. 흩어진 척하면서 삼삼오오 모여 서성인다. 주인공인 재판 받을 학생이 법정에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끼리 어떤 처분이 내려질까를 예측한다. 아주 전문가가 따로 없다.
    법정에 들어갔던 학생은 잠시 후 울면서 나온다. 자기 잘못을 깨닫고 반성해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라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을 가지 않고 다시 사회로 나왔다는 안도와 기쁨의 눈물이다. ‘까짓것 심사원 가지 뭐’라며 친구들 앞에서는 센 척했지만 내심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밖에서 기다리던 일진 친구들은 사회로 다시 나온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축하고 어딘가에 전화하기 바쁘다. 미처 법원까지 오지 못한 무리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며 축하를 위한 자리에 나오라는 연락이다. 그들에게는 이제 자유를 만끽할 시간만이 남았다.
  

보호처분, 소년분류심사원, 소년원

    일진 친구들이 피했다며 자축한 소년분류심사원, 소년원은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나 당사자가 안도와 기쁨의 눈물을 흘릴 정도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소년재판에서 학생에게 내려지는 처분을 알 필요가 있다. 소년재판에서 학생에게 내려지는 보호처분은 1호 보호자감호위탁, 2호 수강명령, 3호 사회봉사, 4호 단기(1년) 보호관찰, 5호 장기(2년) 보호관찰, 6호 아동복지시설이나 그 밖의 소년 보호시설에 감호위탁, 7호 병원, 요양소 또는 소년의료보호시설에 위탁, 8호 1개월 이내의 소년원 송치, 9호 단기(6개월) 소년원 송치, 10호 장기(2년) 소년원 송치로 총 열 가지가 있다.

    소년재판은 선도와 교화가 목적이기 때문에 형사재판처럼 벌금, 징역과 같이 전과가 남는 형사처벌이 아닌 전과가 남지 않는 보호처분이 내려진다. 이 중에서 1호 내지 5호는 재판을 마치고 소년이 다시 사회로 돌아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행할 수 있는 처분이라고 하여 ‘사회 내 처분’이라고 부른다.
    1호는 보호자가 한 달에 한 번씩 자녀가 어떻게 생활하였는지, 어떻게 지도하였는지 간단한 보고서 양식을 작성해 법원에 제출하는 것으로 사실상 학생에게는 별다른 제재가 없다. 최근 경기도 어느 소년법원은 형식상 처분으로 그치지 않도록 공책 정도 두께의 책자를 주며 각 페이지당 주제별로 한 면은 학생이, 옆면은 보호자가 글로 작성한 후, 책자를 모두 채우면 법원에 제출하는 식으로 이행하도록 한다. 학생이나 부모님이 글을 작성할 기회도 적고, 서로의 글을 볼 기회는 더더욱 적은데 같은 주제에 대해 자녀가 부모님의 글을, 부모님이 자녀의 글을 읽어보면서 소통과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니 참 긍정적인 선도 방법이지 않은가.
    2호 수강명령은 쉽게 말해 교육을 듣는 처분이고, 3호는 봉사활동을 통해 선도를 꾀하는 처분이다. 4호, 5호 보호관찰은 비행 성향, 폭력 성향을 보이는 학생에 대해 일정 기간 보호관찰관이 생활을 관리, 감독하도록 하는 처분이다. 보호관찰 처분과 함께 각 가해 학생별로 지켜야 할 조건이 내려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밤늦게까지 불량 학생들과 몰려다녀 비행의 우려가 있는 학생이라면 몇 시 이전까지 반드시 귀가하도록 한다던가, 사이버폭력으로 피해 학생을 괴롭혔거나, 불법 촬영 등 사이버 성폭력을 저지른 가해 학생이라면 보호관찰관이 정기적으로 핸드폰을 검사하여 SNS 활동 등을 살피고 가해 학생이 재발 방지 교육 등을 받도록 한다.

    반면 6호 내지 10호 처분은 사회와 분리되어 시설로 간다고 해서 ‘시설 내 처분’이라 부른다. 6호 아동복지시설이나 그 밖의 소년보호시설에 감호위탁의 경우 비행의 경중보다도 학생의 주변 환경이 학생을 충분히 보호할 수 없고, 이러한 환경 탓에 재발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가가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호시설에 위탁하는 처분이다. 7호 ‘병원, 요양소 또는 소년의료보호시설에 위탁’은 가해 학생에게 반사회적 성향,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의심되어 사회와 분리하여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 약물중독, 마약중독 등으로 의료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 내려진다.
    8, 9, 10호 소년원 송치는 심각한 폭력을 저지른 경우, 비행이 반복되어 여러 번 소년재판을 받은 전력이 있는 가해 학생에게 내려진다. 짧게는 한 개 미만에서 가장 길게는 2년까지 소년원 송치를 받을 수 있다. 이는 곧 소년재판밖에 받지 않는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의 경우 아무리 살인을 저지르더라도 가장 중하게 내릴 수 있는 처분은 2년 소년원 송치라는 뜻이기도 하다.
    소년원은 많이 들어본 단어이지만 비행 청소년들이 가는 곳이라는 정도로 알려져 있을 뿐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소년원’이라는 명칭의 시설은 없다. 소년원은 대외적으로 ‘~학교’라는 명칭이 붙으며 교도소와 달리 ‘특수교육기관’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 소년원에 들어오면 소년원 생활 동안 학교 출석으로 인정되고, 정식 학교 교육을 받은 것으로 인정된다. 소년원에서는 단체 생활을 하며 외부와 단절되기 때문에 평소에 누리던 자유를 누릴 수 없다. 핸드폰 등 전자기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음은 물론이다. 소년원에서 생활할 동안은 범죄 예방 교육과 인성교육,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정규교육 또는 직업교육 등을 받도록 한다.
    ‘소년분류심사원’은 더 생소하다. 그래서 자녀가 소년재판을 받는 부모님들조차도 모른 채 왔다가 자녀가 소년분류심사원 심사 결정이 내려지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년분류심사원 심사 결정이 내려지면 학생은 법정에서 경위와 함께 법정 안 다른 문으로 들어가 분리되고, 부모님은 들어왔던 법정 문밖으로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법정 앞 벽면에는 재판받는 소년들에게 법정에 들어가기 전 가지고 있는 핸드폰, 소지품 모두를 보호자에게 맡기라고 안내되어 있다. 재판 결과를 알 수 없기에 시설 내 처분을 받을 때를 대비해서이다.
    학생과 부모님은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법정에서 헤어지고 순식간에 절차는 끝이 난다. 영문을 모르는 부모님 중에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부모 동의도 없이 미성년자를 데려가느냐!’라며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자녀의 인생이 끝났다는 듯 통곡하는 부모님도 있다. 소년분류심사원이란 소년원 등 시설 내 처분으로 바로 결정하기 전, 시설 내 처분이 정말로 필요한 학생인지 아니면 다시 사회로 복귀시켜 사회 내에서도 교화가 가능할 학생인지를 말 그대로 ‘분류심사’ 하기 위한 곳이다. 달리 말하면 소년원 등 시설로 갈 뻔했지만, 가해자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잠깐의 면담 등으로 제대로 학생을 파악할 수 없기에 3~5주가량 기간을 정해 소년분류심사원에서 가해 학생의 가해 원인과 문제행동을 진단하고 아울러 보호, 교육하여 선도를 유도하고, 판사는 그 결과를 참고하여 가장 적절한 보호처분을 내리기 위함이다.
  

교화가 되는 학생, 훈장으로 여기는 학생

    필자가 그동안 경험한 바로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 및 비행 청소년에게 가장 효과적인 선도 방법은 ‘소년분류심사원’이었다. 물론 소년재판 경험이 있는 가해 학생들은 소년분류심사원을 알고 있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 학생과 보호자들은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모른다. 전과도 남지 않고 교육 몇 시간 정도 들으면 끝날 것으로 생각한 학생들은 갑작스레 법정에서 부모님과 헤어진 후 포승줄에 묶여 법무부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향한다. 이때가 학생들에게는 가장 충격으로 다가온다.
    소년분류심사원에 입소한 가해 학생들은 사회에서 입고 있던 옷 대신 심사원에서 제공한 단체복으로 갈아입은 후 단체 생활을 시작한다. 학교도 가지 못한 채 SNS로 친구들과 소통할 수도 없고 엄격한 규칙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 3~5주가량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부모님과 사회와 단절된 적이 없던 가해 학생들은 소년분류심사원에 온 순간 비로소 ‘내가 이렇게 큰 잘못을 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자유를 잃을 정도의 잘못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생각하게 되고 교육 프로그램을 들으며 ‘여기까지이다, 절대 소년원은 가지 말아야지.’라는 다짐도 한다. 또 일상에서 누리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부모님과 가족들의 소중함도 아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심사원 내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은 학생들은 선도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심사원을 가도 선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가해 학생들도 있다. 그들을 면담해보면 피해 학생의 피해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다. 적어도 필자의 경험으로는 단 한 명도 피해 학생의 안부를 묻는 가해 학생은 없었다. 피해 학생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원망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들은 온통 어떻게 하면 소년원을 면하고 사회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자신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심사원 생활을 하며 자기들끼리 친분이 쌓이면 소년재판 경험이 많은 이른바 ‘선배’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듣는다. ‘너는 몇 호 처분이 나올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어디 소년법원 몇 부 판사님은 처분을 세게 준다, 각오해라.’ ‘법정에 들어가면 판사님의 눈을 마주치지 말고 판사님 책상 가운데 부분에 눈을 두어라.’ ‘반성문은 이렇게 써라.’라는 등 대단한 선배들 납셨다.
    대부분의 선도가 이루어진 학생들은 자신이 소년분류심사원 내지 소년재판을 받게 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본인에게 창피하고 결코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선도와 반성이 없는 학생들은 소년분류심사원이란 그저 마음대로 잠을 잘 수 없고, 규칙을 지켜야 하는 불편한 곳일 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므로 왔다는 깨달음이 없다. 그래서 주변 또래들에게 자신의 소년분류심사원 경험을 무용담처럼 떠들며 과시한다. 그들에게 소년분류심사원 경험은 훈장과도 같은 셈이다.
  

가해 학생만 있고 피해 학생은 없는 소년재판

    소년재판은 ‘소년법’을 근거로 한다. 서두에서 소년재판이 비공개 원칙이라고 언급하였는데 왜 소년재판을 비공개 원칙으로 정한 것일까? 소년법은 비행 소년이 아직 미성숙한 나이에 폭력 내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전과가 남아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방지하고, 사회로 복귀하여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말 그대로 ‘소년을 위한’ 법이다.
    문제는 이 소년법의 ‘소년’에 가해 학생만 있을 뿐 피해 학생은 부재한다는 것이다. 가해 학생을 위한 비공개 원칙 때문에 피해 학생은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재판 결과 가해 학생이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가해 학생이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피해 학생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법정에서 가해 학생이 반성했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피해 학생에게 사과하는 등 반성을 실천하였는지 반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피해 학생 측은 법정에서 어떠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니, 그럼 이들은 어디에 목소리를 내야 한단 말인가.
    필자는 소년법이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모두를 위한 법이기를 바란다. 비공개 원칙이라 할지라도 사건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피해 학생에게는 적어도 재판 진행 절차와 재판에서 의견 진술의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내려진 징계에 대해 가해 학생 측에서 행정심판, 행정소송 불복 절차를 청구했을 경우 공개된 심판, 재판임에도 피해 학생 측이 청구 여부를 알지 못해 가해 학생 측에 유리한 결과가 내려지거나 피해 학생이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이를 방지하고자 교육부는 앞서 언급한 정부의 학교폭력근절대책을 근거로 2023년 9월부터 가해 학생 측에서 행정심판, 행정소송을 청구한 경우 교육청 등에서 의무적으로 피해 학생 측에 이를 통지하고 소송에 참가할 수 있음을 안내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국회는 이를 학교폭력예방법에 규정으로 마련하여 2024년 3월 1일부터는 단순히 행정 내부적 의무가 아닌 법적 의무로 신설하였다. 그만큼 피해 학생의 진술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가 법에 명시된 셈이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간의 힘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힘이 세거나, 친구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거나, 인기가 많다거나 하는 이유로 발현되는 힘의 불균형이다. 학교폭력은 가해 학생에게 징계 및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 여기서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힘이 약한 피해 학생에게 힘을 주어 가해 학생에게 똑같이 폭력을 행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가해 학생으로 하여금 피해 학생이 얼마나 힘들었고 자신이 어떠한 피해를 줬는지 이야기를 듣게 하는 것, 그래서 피해 학생의 피해와 아픔에 공감하고 이해하며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법으로 피해 학생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이를 법정 심리학 용어로 ‘회복적 정의’라 부른다.
    소년재판에 피해 학생이 참여한다면 가해 학생의 반성은 둘째치고라도 자신의 처분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피해 학생의 눈치라도 보지 않을까. 행정심판, 행정소송의 사례를 본받아 소년재판도 이제는 피해 학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필자는 소년재판에서 회복적 정의가 실현되고 궁극적으로는 가해·피해 학생 모두를 위하는 소년재판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노윤호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 법률사무소 사월의 대표 변호사. 2016년 서울·인천 소재 학교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음. 저서 『우리를 지키는 법─폭력으로 멍든 10대를 위해』 『엄마 아빠가 꼭 알아야 할 학교폭력의 모든 것』 『학교폭력, 그 이후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제는 나부터 챙기기로 했다─자아존중감을 높이고 나만의 경계를 찾는 법』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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