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뮤지엄으로서의 인천시립미술관을 기대하며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다 보면 미술전문잡지 기자나 편집진을 만날 기회가 가끔 있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미술전문잡지에서 지역 소식이 드문 이유를 물어보곤 한다. 그러면 “지역 소식을 많이 실으려고 노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지역 중에서도 ‘인천’을 꼭 집어서 물어보는 순간 그분들은 나지막하게 탄식하거나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대답이 길어지기도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인천에 주기적으로 전시 등의 동향을 체크해야 할 어떤 시설이 있는지 모른다는 것, 심지어 시립미술관이 없다는 사실조차 처음 듣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게 되어버린다. 되물을 정도로 공간 존재 자체가 낯설다, 다룰 여력이 없다, 관련 정보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챙기지 않아도 피드백이 없다⋯⋯. 어쩌면 다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내가 단편적으로 접해온 한국 미술계에서 ‘인천’이라는 지역의 존재감이란 희미하기 그지없다.

    서울은 일단 국공립미술관을 비롯한 미술 공간의 정량적 수치부터 압도적이다. 기자간담회가 자주 열리고, ‘프리즈’ 같은 굵직한 국제 행사가 많을뿐더러 여러 군데의 전시 공간을 하나의 동선으로 둘러보고,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다. 한정된 인력과 시간으로 잡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과 물리적, 시간적 제약을 감안하면 지역을 제대로 다루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미술잡지 종사자가 기회만 되면 가보려고 한다는 ‘지역’에 인천은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인천에 미술전문잡지 기자가 온다고 생각해보면, 나는 과연 몇 곳이나 안내할 수 있을까? 물론 최근 몇 년 사이 인천아트플랫폼 부근에 전시 공간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자신 있게 이곳을 보고 가야 인천에서 미술 신scene을 제대로 봤다고 할 만한 코스는 잘 생각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당장 인천을 벗어나면 접하게 되는 인천 미술 관련 이야기는 “어떤 전시가 괜찮더라.”가 아니라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폐지 논란’ 정도다.

    나 역시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인천시립미술관의 부재를 자각한 건 2007년 인천문화재단에 입사한 이후였다. 최소한 인천시립박물관은 학창 시절 형식적인 소풍 코스에나마 포함되어 있어서 가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30년 가까이 인천에 살면서도 존재 자체를 몰랐기에 부재를 느낄 틈도 없었던 공간이 인천시립미술관이었던 셈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이 개관한 2009년이 되어서야, 그것도 인천시가 뜬금없이 추진한 ‘일랑 이종상 미술관’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된 후에야1 미술관이 갑자기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5대 광역시에 속하는 인천에 시립미술관 하나가 없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 빨리 미술관을 지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했고, 이 속도대로라면 인천에 곧 미술관이 생길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인천아트플렛폼에서 열린 시립미술관 올바른 건립 방향 모색 토론회(2009). 출처: 《경인일보》

    그렇게 미술관 건립 관련 각종 토론회가 열리고 인천시 주도로 기본 구상 용역, 건립 후보지 검토, 건립추진고문단 발족, 시민설명회 등을 거쳐 도화동 67-8번지가 시립미술관 건립 부지로 2013년 확정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2015년 인천시 재정 상황의 악화로 건립 부지 토지 매입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서 해당 부지는 민간에게 매각되어버리고 만다. 당장이라도 생길 것 같던 미술관 논의는 멈췄지만, 2016년 용현·학익 1블록 상업·문화 용지를 활용해 인천뮤지엄파크를 건립하고 인천시립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된다. 미술관 부지는 남구 용현·학익 도시개발사업구역 내 OCI(옛 동양화학제철) 인천공장으로 1968년에 건립했고, 1950년대 근대건축물인 극동방송 옛 사옥과 사택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논의가 진행되는 사이 인천은 300만 인구를 돌파해 서울, 부산에 이어 3대 도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시립미술관은 생기지 않았고, 그사이 울산광역시마저 2022년에 미디어아트 중심의 ‘미래형 미술관’을 표방하는 시립미술관을 개관하면서 결국 인천은 특별시, 광역시 중 가장 늦게 시립미술관을 건립하는 도시가 되었다. 이후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설명회(2017)를 시작으로 인천시립미술관 콘텐츠 개발을 위한 학술용역(2019), 인천시립미술관 소장품 정책 연구용역(2022)을 비롯해 인천시립미술관 운영방안 연구와 국제설계공모 당선작 실시 설계가 진행 중이며, 인천시립미술관 소장품 구입도 진행되고 있다. 몇 달 전인 9월에는 ‘인천시립미술관의 미래가치를 위한 운영방안 모색’이라는 제목으로 전문가 세미나가 열리기도 했다. 2024년 건축공사 착수, 전시공사 및 개관 준비 등의 과정이 남아 있지만, 2027년 5월이라는 개관 시점이 제시된 것만으로도 인천시립미술관을 둘러싼 지난한 논의에 숨구멍이 트이는 듯하다. 1948년 인천시립예술관이 폐쇄된 이후 8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마침표를 찍게 되는 셈이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 인천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범시민 전문가 토론회(2016) 출처: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통신 3.0〉

    현실로 다가올 인천시립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그간의 활동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지역미술연구모임으로 시작해 미술전문지 『시각』을 발간하고 레지던시와 지역 리서치 프로그램 등을 꾸준히 진행해온 스페이스 빔, 〈인천시립미술관人千始美述觀〉 프로젝트를 비롯해 느린아카이브연구실 등 다양한 시도를 해온 임시공간, 인천문화재단의 인천아트아카이브(http://www.inartarchive.kr/main/) 등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특히 임시공간이 개항기부터 인천 미술과 연관된 자료, 문헌, 사진 등을 모아 인천지역 미술사를 정리한 지역 미술 연표 작업은 앞으로 인천시립미술관이 주도적으로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이기도 할 테다. 또 하나, 미술과 직접 관련 있는 건 아니지만 학익동지킴이(@hagik_archive) 계정의 활동을 주목하고 싶다. ‘유년 시절을 학익동에서 보낸 꼬마가 성인이 되어 사라지는 학익동을 기록’하는 이 계정은 학익동이라는 평범한 동네가 애정 어린 한 사람의 시선과 기록의 힘을 통해 얼마나 매력적인 동네로 바뀌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미술관을 운영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 사람이 어느 지역 출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인천시립미술관에서 일하게 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인천에 대한 애정, 애정하기 위한 지식과 공부, 애정과 지식으로 형성된 시선, 이 전부를 망라하는 진정한 의미의 ‘전문성’이 아닐까? 늦은 개관이 아쉬운 만큼, 인천시립미술관은 그동안 인천에서 활동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남긴 기록과 기억, 아카이브와 활동들을 잘 정리하고 확장시키는 한편 새롭게 조명해야 할 것이다. 인천시립미술관이 개관하기까지의 과정과 그간의 노력들을 정리하고 아카이브하는 섹션이나 기획전을 별도로 구성하는 것도 좋겠다. 미술관의 고전적인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개인과 동향 중심의 미술사를 작은 집단으로 새롭게 서술했다는 평가를 받은 경기도미술관의 〈시점, 시점〉전처럼, 선행 프로젝트와 아카이브에 대한 열린 접근과 해석은 지역 미술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하는 한편, 인천시립미술관이 제대로 자리 잡는 데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천을 인천답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토대 위에 ‘인천미술’이라는 어쩌면 낯선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것, 그동안 고민해온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일 것이다.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의 4개 국어 작품 안내문(2023) Ⓒ 정지은

    지난가을,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간 김에 도쿄에 있는 국립·도립·사립 미술관들을 최대한 많이 가보려고 애썼다. 도쿄에 있을 때 이 글 청탁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요즘 사람들이 열광하는 공간이 궁금하기도 했다. 유·무료 전시와 아트숍을 두루 둘러본 결과 트렌드 측면에서는 한국 미술관들이 훨씬 더 세련되고 힙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일본 미술관을 따라갈 수 없는 점도 있었다. 바로 접근성이다. 모든 작품의 캡션이 최소한 자국어와 영어로 표기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주요 내용은 4개 국어(일본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전시 안내문과 리플릿이 준비되어 있었다.

    2027년이라는 미술관의 개관 시점을 고려한다면, 다양한 신체적 특성을 가진 관람객들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고, 누구나 경계 없이 즐길 수 있는 관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은 필수다. 호암미술관은 재개관하면서 색맹·색약 등 색각 이상을 가진 관람객의 전시 관람을 돕는 보정 안경을 국내 미술관 최초로 비치하고 무료로 대여해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관람 환경 조성 사례를 제시하고 있으며, 영국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대학 부설 미술관은 학교 내부에 있는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커다란 휠체어 접근성 지도를 통해, 휠체어로 이동하기 편한 완만한 경로를 표시해두고 있다.2
    디지털 접근성 역시 새로운 미술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미국 시카고현대미술관 홈페이지(https://visit.mcachicago.org/visit/accessibility/)는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부분이 별도로 표시되어 있으며, 장애인 안내견을 포함한 보조 동물 입장 관련 안내도 상세하게 마련해두고 있다.

시카고현대미술관 홈페이지의 접근성 페이지 ⓒ 정지은

    그런 의미에서 인천시립미술관이 ‘디아스포라Diaspora’를 콘셉트로 잡은 것은 인천만이 내세울 수 있고, 인천에 어울리는 정체성이자 특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근현대사와 국내외 동시대 미술을 아우르면서 인천시립미술관이 물리적 공간을 넘어 데이터의 자유로운 순환과 효과적인 제어를 수행하는 미술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제안한 안소현 박사의 ‘오픈 포트’ 개념 역시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3 어떤 콘셉트가 정해질지 모르겠지만 인천시립미술관이 개관한다면 10년 넘게 “영화를 통해 공존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이 시대의 디아스포라들과 함께해온” 인천디아스포라영화제의 콜라보도 무엇보다 기대되는 지점이다. 개인적으로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열리는 5월, 인천아트플랫폼을 비롯한 인천의 전시 공간에서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국제 전시를 함께하는 기획을 꿈꿔왔었지만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인천시립미술관이 생기면 5월 문화다양성 주간에 영화제와 전시가 함께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본다.

    마침 국제박물관협의회ICOM가 15년 만에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강조한 새로운 뮤지엄 정의를 채택했다.4 디아스포라와 함께하는 인천시립미술관이라면 이 새로운 뮤지엄의 정의를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지 않을까?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기존 시설의 정의에 갇히지 않는 그야말로 새로운 ‘뮤지엄museum’으로서의 인천시립미술관을 기대해본다.
  
 

정지은

2012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겸임교수. 디아스포라영화제 자문위원. 공저 『확장도시 인천』 『공간의 공간』 등이 있음.

    
    

〈주석〉

  1. 2009년 인천시가 이종상의 작품 1,300여 점 등을 기증받고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여 연수구 옥련동 송도 석산에 미술관을 건립해 기증품을 전시·보존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자, 인천 출신도 아니고 인천에서 작품 활동을 해온 일이 없는 작가의 이름으로 된 미술관을 세운다는 점에 인천 문화예술계의 거센 반발과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이후 백지화되었다.
  2. 유지민, 「런던 버스, 지하철에 감동한 이유」, 《한겨레》 2023. 8. 9.
  3. 안소현, 「오픈 포트로서의 인천시립미술관」, 『인천시립미술관의 미래가치를 위한 운영방안 모색 세미나』, 인천광역시, 2023. 9. 7.
  4. 2022년 8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박물관대회에서 새로운 뮤지엄의 정의가 다음과 같이 채택되었다. “박물관·미술관은 유형 및 무형 유산을 연구, 수집, 보존, 해석 및 전시하는 비영리적이고 영구적인 사회 서비스 기관입니다. 대중에게 개방되고, 접근 가능하며, 포괄적인 박물관·미술관은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촉진합니다. 그들은 교육, 즐거움, 성찰, 지식 공유를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면서, 윤리적, 전문적, 지역사회의 참여와 함께, 운영하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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