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보존을 위한 몇 가지 방법들: 1990년대 베스트셀러에 대해

  
  

1. 1990년대와 베스트셀러

    이 글은 1990년대 베스트셀러에 대한 분석을 통해 90년대라는 시대상과 시대적 무의식이 어떠했는가를 알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두 가지 궁금증이 따라온다. 왜 하필 90년대이며, 왜 하필 베스트셀러인가? 우선 ‘왜 90년대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겠다. 우선은 이 특집 지면이 1990년대-2000년대-2010년대의 베스트셀러를 살펴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대답이 부족하다. 그것은 기획에 대한 대답일 수는 있을지언정, 이 글에 대한 대답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90년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90년대가 여러 방면에 걸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을 구획한 결정적인 시기라는 것, 그것이 ‘왜 90년대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궁극적인 답일 것이다.
    그렇다면 90년대라는 시기는 어떠한 방식으로 ‘지금-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구획했는가. 그에 대해선 아주 세밀하고 정밀한 논의가 필요할 테지만, 90년대에 대한 여러 논의를 토대로 거칠게 살피자면 크게 ‘문민정부’의 출현이라는 정치적 민주화의 측면, 소비문화와 IMF라는 경제적인 측면,1대중문화의 약진이라는 문화의 측면,2 이렇게 세 가지 측면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세 가지 측면은 독립된 변수들이 아니라 상호 간에 영향을 미치며 한국 사회의 90년대를 구획했다. 가령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검열의 약화는 민중가요의 대중화를 낳았으며,3 아이돌 문화의 약진은 팬클럽 문화와 응원 상품이라는 새로운 소비문화를 탄생시켰다. 이처럼 세 가지 측면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당시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을 구성해나갔다. 이 글에서 베스트셀러를 살피고자 하는 건, 베스트셀러가 바로 이러한 지점들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효한 지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는 일반적으로 특정 시기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통상적으로는 “많이 팔렸어도 읽은 사람은 드문 책”, “단지 유명하다는 사실이 유명한 책”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이러한 베스트셀러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들은 대개 약간의 선입견이 가미된, 그리고 개별 출판물에 대한 가치판단이 개입된 해석인 경우가 많다. 물론 베스트셀러로 소비된 출판물을 독자가 읽지 않았을 수도 있고, 혹은 출판물의 내용이 다소 부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은 그러한 시각을 견지하지 않는다. 이 글은 대중 독자 다수의 선택을 받은 “베스트셀러는 대중의 집단적 욕망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거울이며 시대의 민감한 중추를 건드려 변화를 이끄”4는 것이며, 거기에는 사회를 대변하는 대중적 무의식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90년대의 베스트셀러를 살피는 일은, ‘문학’의 상위 범주라 할 수 있는 출판을 통해 당대의 무의식과 욕망을 읽어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세 가지 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어떠한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소비되었는가. 둘째, 그것들을 유형화하고 범주화할 수 있는가. 셋째, 그것이 한국 사회의 90년대라는 맥락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 있다면, 90년대를 관통하는 마스터 서사는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2. 인문 교양서적과 역사성

    1990년대의 베스트셀러에 대한 자료는 주로 대형출판사들이 제공하는데,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1990년대의 베스트셀러 1~10순위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이레, 1996.
    2. 김정현, 『아버지』, 문이당, 1996.
    3. 유홍준,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1, 창작과비평사, 1993.
    4.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김영사, 1994.
    5. 발타자르 그라시안, 『세상을 보는 지혜』 전편, 1992.
    6. 한호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디자인하우스, 1993.
    7. 위기철, 『반갑다 논리야』, 사계절, 1992.
    8. 파크리크 쥐스킨트, 『좀머 씨 이야기』, 열린책들, 1992.
    9. 박영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6.
    10. 법정, 『무소유』, 범우사, 1976.

    베스트셀러 10권을 분야별로 분류하면 인문 서적이 3권(『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반갑다 논리야』), 소설이 2권(『아버지』, 『좀머 씨 이야기』), 에세이 3권(『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세상을 보는 지혜』, 『무소유』), 자기계발서 1권(『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실용 서적 1권(『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이다. 모든 책을 꼼꼼히 검토하고 살펴보면 좋겠지만, 이 글에서는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자기계발서만 살펴보고자 한다. 인문 교양서적을 살피는 일은 “사회과학의 시대였던 80년대를 거친 독자군의 관심 영역이 문화 부분으로 바뀌었음을 말해”5주는 사건으로서, 출판문화, 정치 검열, 독자층 등을 토대 삼아 1980년대라는 시대가 어떻게 1990년대로 넘어갔는가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이 필요한 일이다.6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는 1990년대에 한국 사회에 통용된 ‘세계화’의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할 문제라 판단되어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것은 별도의 분석이 필요한 테마이며, 이 글이 당장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때문에 이 글의 분석 대상에서는 제외했다. 다만 1990년대의 인문 교양서적들이 단순히 문화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1980년대의 사회과학처럼 시대에 대한 진단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는 사실만은 언급하고 싶다.

    사람들은 생래적으로 흔한 것은 귀하게 여기지 않는 습성이 있다. 가식의 화려함에는 곧잘 현혹되면서도 평범하고 소박한 가운데 진실과 아름다움이 있음은 쉽게 놓쳐버린다. 게다가 세상의 관심이 아직도 남의 문화에 대한 대책 없는 선망과 모방에 쏠리다 보니 저 국토박물관의 유물이 말해주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7

    가령 위와 같은 대목에는 외국 문화에만 주목하고 한국의 문화유산은 소홀히 대하는 당대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깃들어 있다. “남의 문화에 대한 대책 없는 선망과 모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을 문화유산이라는 실체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 그 자체가 당대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이라 할 수 있다. 문화유산에 대한 글쓰기 자체가 일종의 진단이라면, 문화유산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 전달되는 여러 역사적 맥락들은 한국 사회에 어떻게 흘러왔고 그것을 참조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베스트셀러의 특징 중 하나는 이러한 역사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조선 사회에 대해 매우 잘못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실은 조선이 “우리가 쉽게 단정하듯이 지극히 폐쇄적이고 고리타분한 그런 사회가 아니라 대단한 정열과 무게가 내재되어 있는 깊이 있는 세계”8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쓰인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위에 제시한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창비, 1990), 이재운의 『소설 토정비결』(해냄, 1991),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삼진기획, 1992),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세계사, 1993) 같은 역사소설들은 그러한 방향성과 독자들의 요구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 『아버지』, ‘자기연민’의 서사

    역사소설들이 상당한 강세를 보였지만 그 소설들의 판매량은 김정현의 『아버지』를 뛰어넘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버지 신드롬’9을 불러올 정도로 당시 상당한 파급력을 보인 소설인데, 그 파급력과는 달리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오십 대 남성 한정수다. 그는 친구이자 의사인 남신우에게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는다. 췌장암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정수는,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 버틴다. 한정수의 아내, 대학생 딸, 고교생 아들은 그렇게 매일매일 취해서 늦게 귀가하는 한정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고통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한정수의 ‘자기연민’과 한정수의 달라진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의 충돌과 그것이 해결되는 과정이 소설 『아버지』의 줄거리다. 그러나 그 해결이 어디까지나 죽음을 앞에 둔 한정수의 고고한 자기연민을 중심에 두고 이뤄진다는 점이 문제적이다. 한정수의 자기연민 앞에서 다른 가족들의 감정은 삭제되고 아내는 한정수의 불륜마저 포용하는데, 이는 한 비평가가 지적했듯 『아버지』의 서사 안에서는 “중년남성들의 자기연민은 충족되지만, 진실은 희생되며, 페미니즘은 강제구인 당해 마녀재판”10을 받는 이야기로 읽힌다.

    “내 무엇이 그렇게 당신에게 비난받고 경멸당할 거리였지? 내가 아무리 초라하고 무능하다 해도 당신의 남편이고 자식들의 아버지야. 그런데 왜 날 무시하고 경원해? 나의 삶이 성공적이지 못해서 그토록 부끄럽고 싫었나? 그래, 솔직히 나도 이런 내가 싫고 화났어. 하지만 비굴하고 추하기보다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 그것만으로도 난 행복했어. 자리보다는 사람이 좋았고 계산적인 교제보다는 편안한 만남이 좋았어. 친구, 술, 그게 왜? 그렇게라도 기대지 않으면 내가 어디에서 삶을 느끼고 숨 쉬라고. 가족? 당신이, 아이들이 날 가족으로 생각하기나 하는 거냐고?”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정수의 울분이 영신에겐 너무나 낯설었다. 마치 그녀에게 모든 잘못이 있다는 듯한 남편의 격렬한 비난이 그녀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그럼, 이 모든 게 제 책임이란 말인가요?”
    “책임? 그럼 그게 내 잘못만인가? 언제 내게 진정 가족으로 따스한 웃음 한 번 보여 준 적이 있었나? 어느 날부턴가 날 맞은 건 무관심과 형식뿐이었어. 당신도 아이들도 모두 그랬어. 생각해 봐, 진정으로 기다리고 반가워서 정겨운 인사 한번 건네준 적이 있었는지. 어쩔 수 없이 기다리다 의무처럼 고개 한 번 끄덕이고는 등을 돌려 버리는 남이었어. 그게 얼마나 날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었는지 당신은 아마 모를 거야. 난 그런 무관심의 경멸 속에서도 내 사랑을⋯⋯ 내 의무를 다해 왔어⋯⋯”11

    한정수는 “무관심과 경멸 속에서도” 사랑을 다해왔다고 열변한다. 그러나 한정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표현해본 적이 없다. 딸 지원이 35명만을 뽑는 서울대 영문학과를 목표한다고 했을 때 한정수가 취한 행동이 대표적이다. 한정수는 딸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네거나 용돈을 주는 방식으로 애정을 표하지 않는다. 한정수는 “전체 승객의 서른다섯 번째 안에” 자신이 들기 위해 서둘러 버스를 타고, “36번 이후의 버스는 이용하지 않”으며, “동료들의 승용차에 편승할 때도 번호판의 끝 두 자리가 35 내의 숫자가 아니면 절대 타지 않”는 등 35라는 숫자에 혼자 강박을 느끼는 방식으로 딸 지원을 응원했다. 그런데 이러한 응원과 애정은 한정수의 의도와 생각과는 달리, ‘내가 이 정도로 지원이를 사랑한다’는 자기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 그리고 그러한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을 때 ‘내가 이 정도로 사랑했는데 왜 무관심하지’라는 자기연민을 위한 지렛대로 작용할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연민’의 약점과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1990년대의 대중들에게 이러한 ‘자기연민’이 공감을 얻었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소설이 발표된 1996년의 경기 불황으로 인한 명예퇴직, 감원 같은 사회적 분위기다. 1998년에 나온 ‘한스밴드’의 〈오락실〉이란 노래를 보면 당대의 분위기를 조금 더 잘 짐작할 수 있다. 〈오락실〉이 그려내는 당대의 풍경은 시험을 망치고 오락실에 들어간 ‘나’와 회사에 가지 않고 오락실에 있는 아빠의 조우로 그려진다. 노래는 ‘나’의 시점에서 아빠가 회사에 가고 싶지 않아서 오락실에 간 것이 아닐까,라고 묘사되지만, “대낮부터 오락실엔 이 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엄마는 그 뉴스를 보며 “혀끝을 쯧쯧 내차”시고, 아빠가 내 “눈치를 살”핀다는 가사를 보면 아마도 아빠는 해고당했을 것이다. 〈오락실〉은 경쾌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당대의 풍경을 그려내는데, 일터를 잃은 ‘가장’들의 마음은 전혀 경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고당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우울함은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는 한정수의 자기연민과 공명하여, ‘아버지 신드롬’을 낳았던 것이 아닐까.
    그러한 측면에서 당대의 ‘가장’들은 전통적인 가부장 질서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아버지』를 통해 명예퇴직이나 해고 같은 ‘사회적 사형선고’ 앞에서 자신들의 위치와 존재에 대해 재고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핵심 소재인 췌장암은 ‘사회적 사형선고’ 넘어서는 ‘실제적 사형선고’로서, ‘가장’들의 존재론적 고민을 한층 더 심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철저하게 한정수의 입장으로 『아버지』를 읽으면, 이 소설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야기로 읽힌다. ‘나’는 과연 자식들에게 어떠한 아버지인지, 아내에게 어떠한 남편인지, 진정한 ‘나’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물음. 이러한 물음들이 소설 내내 한정수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그리고 한정수와 이소령의 불륜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된다.

    갈 곳이 없었다. 어딘가에 몸을 눕히고 쉬고 싶었지만 아무데도 자신을 반겨 줄 곳은 없었다. 자신이 세상을 잘못 살아온 것인지 세상이 잘못된 것인지, 이토록 처참히 버려져야 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서글픈 미소가 절로 새어 나왔다. 소리내어 통곡이라도 해야 될 것 같건만 통곡 대신 웃음이 나오는 건 또 무슨 까닭인가. 마음 편히 그 작은 몸뚱이 하나 눕힐 곳 없고, 따스한 품속에서 훈훈한 사람의 냄새를 맡으며 환한 아침 한 번 맞을 수 없는 서글픈 인생이 가여워서인가.
    문득 소령이 떠올랐다. 그녀라면, 그 따뜻한 여인이라면 서늘한 저 푸른 달빛을 가려 주지 않을까.12

    한정수의 이러한 행동은, 여성을 통해 남성 주체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한국문학의 오래된 구도이다. 『아버지』는 이러한 구도 속에서 중년남성의 시각을 대변하는 서술들을 통해 당대 ‘가장’들의 ‘죽음’과 정체성에 대해 말했고, 독자들은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처지와 위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4. 자기책임과 ‘제한된 자유’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의 뒤에 버티고 서 있는 건 정체성의 구현에 대한 갈망이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성공’에 관한 욕망으로 귀결된다. 성공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의 성공은 물질적인 충족과 사회적인 지위와 연결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마스터 서사 중 하나가 자수성가 이야기로서의 ‘성공 서사’임을 상기13한다면, 1990년대의 서사가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러한 욕망이 서사적 차원으로서 형상화되는 것과,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그 결이 조금 다르다 할 수 있다. 성공을 서사라는 차원에서 형상화하는 것은 서사라는 여과망을 통해 그러한 욕망을 최소한 한 번 이상 거를 수 있는 반면, 서사라는 여과망 없이 그것을 솔직하게 내세우는 일은 그것을 솔직하게 욕망하는 일이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 사실을 증명한다. 이는 성공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하게 욕망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그러한 맥락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베스트셀러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개인이나 조직을 대단히 성공적으로 만드는 습관들을 배양하는” 방법에 대한 책으로,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8가지 습관』(2005)과 25주년 뉴 에디션(2020)까지 출간될 정도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 책은 ‘주도성’, ‘목표’, ‘시간 관리’, ‘상호이익’, ‘대화’, ‘시너지’, ‘쇄신’이라는 일곱 가지 키워드를 통해 개인과 조직을 발전시키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삶의 중심을 올바른 원칙에 두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계발 담론은 일차적으로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계발을 통해 사회에 적합한 인간이 되는 것을 지향한다. 푸코가 제시한 ‘호모 에코노미쿠스’ 개념을 적용한다면 이러한 자기계발 담론을 사회와의 연관성 속에서 조금 더 풍성하게 읽을 여지가 있다. 푸코가 제시한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으로 취급하고 합리성을 가지고 경영하는 존재”로서 “근본적으로 모든 순간, 모든 사회적 층위의 각 지점에서 경쟁 메커니즘이 조절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를 스스로 규칙화하는 존재다.14 이러한 자기계발 담론은 자기 자신의 내적 규칙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적합한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법칙에 의거한 ‘자기통제’라고도 할 수 있다.15 ‘자기통제’로서의 자기계발 담론은 사회적 법칙에 알맞은 주체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는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는 담론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러한 ‘희생’을 통해 형성된 주체에게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을 마음껏 욕망해도 된다는 정당성을 제공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성공’은 구조나 제도 차원에서 마련된 그러한 정당성과 생존과 성장이라는 대중들의 수요가 맞물린 결과가 아닐까.16
    그런데 이 책을 천천히 읽다 보면 ‘통치’나 생존과 성장이라는 키워드로는 접근할 수 없는 대목들이 눈에 띈다. 아래와 같은 대목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제도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가 유능한 사람들을 나쁜 제도 아래서 일하게 한다면, 우리는 나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유능한 인재의 꽃을 얻고 싶으면, 그 꽃나무에 좋은 제도의 물을 주어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승/승의 사고를 배우게 만들려면, 이것의 활성화 방법을 창조할 수 있고, 강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불필요한 경쟁적 상황을 협력적 상황으로 변혁시킬 수 있고, 나아가 생산과 생산능력을 모두 구축함으로써 그들의 효과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17

    인용한 대목을 보면 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이고, 모두가 승리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기는 제도를 변혁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경쟁을 내면화하는 제도로부터 벗어나자는 것, 그것은 ‘호모 에코노미쿠스’에서 탈피하여 사회적 통치로부터 벗어나자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러한 메시지는 책의 첫 번째 습관으로 제시된 주도성과 겹쳐 읽으면 일종의 가면처럼 보인다.

    주도성proactivity이란 단어를 요즈음 경영학 문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사전에서는 찾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솔선해서 사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이 말의 의미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하는 의사결정에 의한 것이지, 결코 우리를 둘러싼 여건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감정보다 가치를 우위에 놓을 수 있다. 또 우리는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 주도적으로 하고 그 책임도 질 수 있다.18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것, 그것은 매우 매력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책임은 주체에게 자유를 보장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19 하지만 자기계발의 맥락에서 책임은 주체에게 자유를 보장하는 행위이기보다는, 사회를 구성하는 제도를 바꾸지 못한 것 또한 개인의 책임이라는 책임 전가의 맥락으로 읽힌다. 좋은 제도를 만들고 올바른 습관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키자는 것, 그것은 자기계발을 통한 해방의 가능성에 대해 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통제를 할 수 없는 문제에 관해서는 얼굴에 주름살이 안 생기게 하는 책임”을 통해 “싫더라도 기꺼이 인정해 가며”20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자기책임은 일정 부분 개인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계기로 작용하여, 개인으로 하여금 일종의 ‘제한된 자유’를 부여하기도 한다.21 자기책임은 개인의 실패를 환경에 의한 것이라 생각지 않게 만들고, 지금 당장은 성공에 실패했을지라도 조금 더 능력을 키운다면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영향력 안에 개인을 예속화시키는 것이지만, 그러한 예속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한 독자들의 의식 속에는 ‘제한된 자유’라도 누리고 싶은 욕망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비록 예속된 것일지라도 자기책임을 통해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것,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성공은 당시 독자들의 삶에 이러한 욕망이 깊이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힌다.
  

5. 위안, 환각, 자기보존

    지금까지 『아버지』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살펴보았다. 두 텍스트를 이루고 있는 핵심 정서는 각각 실직과 명예퇴직 앞에 힘을 잃은 중년남성들의 자기연민,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가시화된 사회에서의 ‘제한된 자유’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연민과 ‘제한된 자유’는 사회·경제적인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주체들의 ‘자기보존’으로 읽힌다. 이러한 ‘자기보존’이 가지는 의미는 본격적인 소비사회로의 진입과 그로 인한 부작용들이 속출했던 1990년대라는 시대적 맥락을 고려하면 보다 분명해진다. 신세대들은 소비사회가 만들어낸 상품의 소비를 통해 ‘나’라는 개별 주체는 발견했지만 ‘우리’라는 연대를 만드는 데 실패했고, 기성세대 또한 회의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져 연대를 이루는 데 실패하고 만다.22 ‘나’는 발견했지만 ‘우리’를 잃은 셈인데, ‘나’를 보호하고 방향성을 제시해줄 ‘우리’를 잃은 상황에서 ‘나’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것뿐이다.
    『무소유』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또한 그러한 자기보존에 충실한 텍스트로 보인다. 먼저 법정이 쓴 『무소유』를 살펴보자. 『무소유』는 소유욕을 버려야 진정한 행복이 찾아온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는 수필집이다. 책의 곳곳에 자본주의의 기본 토대라 할 수 있는 생산과 발전을 거부하는 태도가 나타나는데,23 때로는 그것을 인류의 역사와 연결 짓기도 한다.

    소유욕은 이해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맹방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그 방향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24

    엄밀하게 따지면 법정의 주장은 사실 쉽게 반박이 가능하다.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 중 하나가 국민의 재산, 즉 소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소유로 만들어진 국가관계란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그런데 법정의 글이 오랜 시간 동안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의 글에서 논리적인 완벽함이나 무오류를 찾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닌 듯하다. 중요한 건 그의 어떠한 측면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는가를 찾는 일인데, 그중 하나는 인식의 전환을 통한 위안을 제공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는 경쟁을 통해 쟁취하는 것이다. 불법을 통한 것이 아니라면 경쟁은 합법적인 것이고, 경쟁을 통해 쟁취한 부와 명예는 당당히 누려야 할 전리품이다. 그런데 모든 경쟁이 그렇듯 패자가 존재한다. 이기지 못한 자는 쟁취하지 못하고, 쟁취하지 못한 자는 경쟁에 승리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채찍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법정은 승리하지 못한 사람에게 다가가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경쟁에서 패배한 당신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사실 행복한 사람이며, 정말로 불행한 사람은 경쟁에서 승리하여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 이러한 전환은 ‘나’를 보호해줄 ‘우리’가 없는 ‘나’들에게 위안과 자기보존의 방향성을 제공해줬던 것은 아닐까.25
    『무소유』가 인식의 전환을 통해 자기보존의 방향성을 제시해줬다면,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는 세상은 사실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주체의 자기보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이 여러 에세이를 모아 편집한 이 책은 사랑, 아이들, 죽음이라는 세 가지 테마에 관한 일화들을 나열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요즘 통용되는 용어로 이 책을 설명하면 ‘힐링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일상에서 겪은 일들을 통해 사실 우리 삶은 아름다운 것이며 살아갈 만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연에서 경쟁, 불평, 불만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찾아볼 수 없다. 설령 그런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잠깐일 뿐이며 이내 그 감정들은 강력한 유대감과 사랑으로 바뀐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자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어쩌면 살아갈 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인식을 줌과 동시에, 경쟁이나 생존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마음의 환각’을 제공해줬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환각’은 ‘제한된 자유’나 위안이 현실에 대한 다른 인식을 통해 삶을 견뎌내고자 했던 것과는 달리 현실 그 자체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방식을 통해 삶을 견디게 한다. 그러나 이 또한 큰 맥락에서는 주체의 자기보존을 위한 것으로써, 1990년대 독자들을 움직인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마스터 서사가 자기보존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이 글의 이러한 결론은 추후 보충과 반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아무리 베스트셀러를 가지고 분석을 진행했다고는 하나 고작 10권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고, 그마저도 몇몇 도서는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추후 분석 대상을 넓히고, 1990년대 사회·문화·정치에 대한 보다 다양한 맥락을 통해 베스트셀러에 접근함으로써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주석〉

  1. 1990년대에 형성된 소비사회와 그것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주은우, 「자유와 소비의 시대, 그리고 냉소주의의 시작: 대한민국, 1990년대 일상생활의 조건」(『사회와역사』 제88집, 한국사회사학회, 2010.)이 있다.
  2. 1990년대의 대중문화와 그 특성에 대해선 『1990년대 문화 키워드 20』(김정남 외, 문화다북스, 2017.)이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3. 주은우, 앞의 글, 314~316쪽.
  4. 표정훈, 『대한민국이 읽은 책: 시대와 베스트셀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18, 21쪽.
  5. 위의 책, 27쪽.
  6.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는 1990년대에 한국 사회에 통용된 ‘세계화’의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할 문제라 판단되어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7.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창작과비평사, 1993, 6쪽.
  8. 박영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6, 4쪽.
  9. 안정미, 「아버지 신드롬 메이커 김정현」, 『대한치과의사협회지』 제35권 제7호, 대한치과의사협회, 1997.
  10. 한만수, 「90년대 베스트셀러 소설, 그 세계관과 오락성─『소설 동의보감』, 『천년의 사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영원한 제국』,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국문학연구』 제20집,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1998, 205쪽.
  11. 김정현, 『아버지』, 문이당, 1996, 176~177쪽.
  12. 위의 책, 189~190쪽.
  13. 서영채, 「제9장 1990년대의 마음: 신경숙의 『외딴방』의 의미」, 『죄의식과 부끄러움: 현대소설 백년, 한국인의 마음을 본다』, 나무나무출판사, 2017 참조.
  14.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개념과 사회학적 적용에 대해선 김아란, 「1990-2010년대 문학비평담론과 자기계발담론의 친화성 분석─〈문학동네〉를 중심으로」(부산대학교 석사, 2019.)를 참고했다. 본문의 인용은 해당 논문 5쪽에서 재인용. 푸코의 원저작의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미셸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심세광·전혜리·조성은 옮김, 동녘, 2012, 219, 376쪽.
  15. ‘자기통제’의 개념에 대해선, 오찬호, 「〈자기계발〉에 대한 세대사회학적 접근─세대별 자기계발 유형에 대한 연구─」(『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한국사회사학회, 2009. 6.), 1219~1220쪽을 참조했다.
  16. 강준만, 「자기계발의 문화정치학: 자기계발 담론의 커뮤니케이션 유형을 중심으로」, 『스피치와 커뮤니케이션』 제15권 제3호, 한국소통학회, 2016, 140쪽.
  17.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박재호·김경섭·김원석 옮김, 김영사, 1994, 321~322쪽.
  18. 위의 책, 96쪽.
  19. 책임과 자유의 관계에 대해선 칸트의 텍스트를 경유해 “현실적으로 자유가 아니더라도 자유였던 것처럼 간주하고 행위의 결과를 자신의 것처럼 책임지는 것”만이 주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 말한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이신철 옮김, 도서출판b, 2013.)을 참고할 수 있다.
  20. 스티븐 코비, 앞의 책, 115쪽.
  21. 전상진, 「자기계발의 사회학: 대체 우리는 자기계발 이외에 어떤 대안을 권유할 수 있는가?」, 『문화와사회』 5권, 한국문화사회학회, 2008, 113~128쪽. 이 글에 실린 여러 인터뷰는 당대의 독자들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어떠한 마음으로 읽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22. 주은우, 앞의 글, 331쪽.
  23. 그런 점에서 1976년에 출간된 이 수필집이 1990년대의 베스트셀러라는 점은 하나의 징후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선 『무소유』가 각 시기별로 어떻게 읽혔는가에 대한 별도의 고찰이 필요할 듯하다.
  24. 법정, 『무소유』, 범우사, 2000, 26~27쪽.
  25. 배학수는 『무소유』에 나타나는 이러한 위안의 면모를 ‘기만’과 ‘위선’이라고 비판한다. 텍스트의 차원에서는 그러한 비판이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텍스트 차원에 드리워진 ‘기만’과 ‘위선’ 또한 당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을까. 배학수, 「법정의 수필에 숨은 자기-기만, 모순, 그리고 위선」, 『존재론 연구』 제23집, 한국하이데거학회, 2010.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