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시대를 열며―2023년 봄호

  

      1998년 12월 11일, 인천작가회의가 문을 열었다. 울산·부산·광주전남·전북·제주에 뒤이은 창립이긴 했지만, 노동운동·빈민운동·교육운동·문화운동의 역량이 결집된 의지는 탄탄했다. 1993년에 이미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라는 슬로건이 제시되었고, 1998년 9월의 제안서에는 “중앙에 의해 가려진 주변부적 문제의식”이 필요한 시점임이 표명되었다. 98년의 인천작가회의 창립은 중앙이라는 하나의 눈에 다른 하나의 눈을 더하여 평면적 기획에 입체적 실감을 더하는 새로운 사건이 되었다.
      『작가들』은 이듬해 겨울에 첫선을 보였다. 인천작가회의의 참여로 진행된 민족문학제와 생태문학기행의 성과를 담고 창작란을 꽉꽉 채웠다. 다음 호는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는 우려도 잠시, 2000년 6월과 12월에 연속 발간하면서 반년간지의 입지를 굳혔다. 2004년 12월에 계간지 발간의 결심이 섰다. 이후 2022년 겨울 83호를 발간하기까지, 『작가들』은 시·소설·비평 등 전통적인 문학의 갈래뿐만 아니라 아동문학·기록문학 등 오랫동안 문학의 주변부에 속해왔던 종요로운 가치들을 옹호해왔다. 중앙과 지역의 눈을 넓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이주민문학·제3세계문학·번역 등을 살폈고, 소수자를 향한 시선에 애정을 담으려 노력했다.
      2023년 봄, 『작가들』을 웹진으로 전환하면서 새롭게 도약한다. 지역과 삶에 가까운 아날로그적 감성은 간직하되, 독자들에게 더욱 가깝고 활용도 편리한 영역으로 들어선다. 한 해 동안 논의하며 노력을 기울였던 이 결실이 과연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두렵지만, 먼저 내미는 우리의 손에 따뜻함을 담는다면 그 온기가 전해지리라는 믿음으로 기대를 가져본다. 희망을 찾기 힘든 시대에도 마음껏 붙잡을 수 있는 든든한 나뭇가지가 되기 위해, 그동안 가꾸어온 굳건한 뿌리를 새로운 토양 속에서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리라, 다짐해본다.
    

    페미니즘과 대중/독자

      2023년 봄호에 『작가들』이 독자에게 내보이는 〈특집〉의 주제는 페미니즘이다. 2010년대에 ‘리부트’에서 ‘백래시’에 이르면서, 페미니즘은 대중을 만났고 페미니즘 문학은 독자를 만났다. 운동 성격을 띤 사상이 그러하듯이, 페미니즘의 대중, 페미니즘 문학의 독자는 긍정과 부정으로 단순하게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반응으로 여러 갈래를 이루고 있다. 『작가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청탁하자, 세 명의 필자 모두가 독자와 대중이라는 열쇳말로 답변한 이유인 듯하다. 자기 자신이자 타자인 독자 앞에서 삶을 걸고 고투하는/했던 페미니스트들의 열정이 뜨겁다.
      최가은은 2010년대 페미니즘 문학의 독자로서 자신이 겪었던 주체적 변화와 기존 체제의 단순 재생산에서 벗어나는 서술 담론의 또 다른 주체인 독자 사이의 간극을 의식하면서 존재론적 차원에서 미래를 여는 다층적인 정체성에 대해 상세하게 논의한다. 김미정의 논의에서는 그에 이어 독자의 사회학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이 더 부각된다.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의 일본어 번역 이후에 벌어진 논의 속에서 여성이라는 정체성만으로는 모두 해소할 수 없는 대중/독자의 문제가 제기되었다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자로서 캔슬 컬처cancle culture를 실천하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오늘’이라는 장소에서 대중을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 깊이 있는 검토가 이어진다.
      소설가이자 번역가, 문학연구자인 박정애는 페미니즘 문학이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던 또 다른 시대인 1990년대로 안내한다. 당시의 남아 선호와 여성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시작한 경험담은, 페미니즘 문학과 이론의 출발점에서 동년배 여성들과 공유했던 깊은 고민의 지점에서 오늘의 페미니스트들을 향한 애정과 당부를 담은 인사를 전한다.

      〈비평〉의 김요섭은 가부장적 사회의 관습적 제도인 제사에 얽힌 여성 서사를 박완서의 여러 작품과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 2020), 황정은의 『연년세세』(창비, 2020)를 통해 살핀다. 이들의 작품 속에서 제사가 치러지는 시공간은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또는 말하기 힘든 억압된 기억이 발화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니는데, 여성의 제사를 다룬 정세랑과 황정은 작품에서는 그 기억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고통의 이해라는 연대의 계보가 돋보인다.
      앎이란 무엇인가? 〈기획연재〉의 서영채는 모든 학문의 기반이 되는 앎의 계보와 그 앎을 둘러싼 위계에 대해 논한다. 개인적 앎의 구조적 한계와 그 너머의 무한, 그리고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위계 속에서 세워진 앎의 사회-역사적 한계가 ‘인문학 개념 정원’의 뜰 안에서 미래의 앎을 향해 반짝인다.
    

    잊지 말아야 할

      평론가이자 ‘인천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모임’ 대표인 이희환은 〈우현재〉에서 애관극장 매각을 막으려는 시민사회의 활동을, 애관극장의 의의와 역사에 대한 서술을 곁들여 소개한다. 1895년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개관하여 인천의 근현대사 전반을 인천시민의 품 안에서 살아온 애관극장을 공공복합문화공간으로 활성화하자는 의견에 인천시가 적극적인 노력으로 화답할 때이다.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가 꾸려졌던 초기부터 경영자의 편에 서서 노조를 적대시했다. 2022년 여름부터 겨울에 걸쳐 정부와 대치하다 파업을 종료했던 화물연대의 현재가 궁금했다. 기록문학 작가 연정에게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르포를 부탁했다. 다단계 하청으로 돌아가 노동 현실을 퇴보시킨 화물노동자들의 가혹한 현실을 꼼꼼하게 기록한 원고에 가슴이 먹먹했다.
      잊을 수 없는 역사, 4·3이 75주년을 맞았다. 제주4·3평화재단의 조정희는 제주시 남서쪽 한라산 자락에서 4·3의 비극을 겪은 현상지 어르신의 증언을 수록한 원고를 보내왔다. 일가족 여덟의 죽음과 한라산 일대에서의 피신 생활을 담은 이 증언은 토벌대의 총칼 아래 무력하게 학살당했던 제주도민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2023년 봄, 『작가들』의 창작란은 다채로운 색을 담은 굴곡진 온기로 채워졌다. 고광식 유정임 이종복 김림 이소연 이훤 임지은 신이인의 시와, 황경란 김현진의 소설, 신민규 임희진의 동시와 안미란의 동화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서평〉의 양순모는 정우신 시인의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도서출판 아시아, 2022), 강수환은 송수연 평론가의 『우리에게 우주가 필요한 이유』(문학동네, 2022), 이소영은 『5·18 다시 쓰기』(오월의봄, 2022)를 소개했다.

      추위를 이긴 봄의 활기가 역사 앞에서 다시 얼룩지는 3월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llest month”,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 같은 문구가 다시 마음속에 깃들 것 같다. 오늘 고립된 이들의 고난 곁에 서고자 웹을 펼치고 귀를 기울여본다. 저 거대한 악령의 호통 아래 미래의 싹이 움트는 소리가 크게 울리도록.
  
  

* 인천작가회의의 창립, 『작가들』의 창간과 걸어온 길에 관해서는 인천작가회의 20년사 편찬위원회, 『인천작가회의 20년사: 1998-2018』, 도서출판 다인아트, 2018. ; 이설야, 「계간 『작가들』 스무 해를 돌아보다」, 『작가들』, 도서출판 다인아트, 2019년 겨울호를 참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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