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사라지고 있다─2024년 봄호

    

    2024년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전원 구조’라는 사실과 무관한 희망을 발신했던 행정당국과 언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국민의 현실과 이격되어 있다. 말뿐인 ‘민생’은 소비자 물가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고, 출생률의 충격은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合久必分의 동향에 주목하는 정치 뉴스로 흐트러진다. 입학생 없는 초등학교가 157곳(전체 초등학교의 2.5퍼센트)인 현재 상황이 가리키는 미래는 암담하다. 어리고 젊은 생명을 우선순위에 두지 못했던 한국 사회의 발밑에서 미래가 사라지고 있다. 2024년 봄에 『작가들』이 세월호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이유는 단지 10년이 지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과 그 역사를 돌아보는 태도가 미래를 향한 동력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행복의 토대는 오늘의 어린이, 오늘의 젊은이를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아픔을 함께한 사람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작가들』은 〈특집〉에서 세월호와 함께했던 인물들의 원고를 실었다. 304낭독회 일꾼으로 활동했던 문학평론가 김태선은 이영주 안현미 진은영 이영광 김현의 세월호 시편과 황정은의 소설을 읽으며 “남은 전 생애로 그 바다를 견디”며 어둠을 나누는 ‘깊은 일’을 이어가자는 염원을 담아왔다. 어린이청소년책 작가 오시은은 ‘세월호 기억의 벽을 지키는 어린이문학인들’의 활동을 서명운동, 릴레이 단식, 한 뼘 그림책, 기억의 벽 등으로 정리하여 보내주었다. 젊은 세대로 4·16연대에서 활동했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별조사위원회’는 ‘특조위’로 축약) 조사관으로 일하기도 했던 은하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원 활동에서부터 세월호 참사 대학생 연대체, 사회적참사특조위 활동까지 이어진 시간을 요령을 세워 회상했다.
    〈특집〉과 함께 읽었으면 하는 글은 ‘4·16재단 나눔사업1팀’의 팀장인 박성현의 〈르포〉이다. 자신의 아픔에 매몰되지 않고 타인의 아픔과 함께하기 위해 결성한 재난참사피해자연대가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로 이어지는 과정을 간결하게 그려주었다. 삼풍백화점, 씨랜드, 인천 인현동, 대구지하철, 가습기살균제, 공주사대부고, 세월호, 스텔라데이지호, 이태원에 이르는 아픈 고유 명사들을 기억하고 보살피기 위한 단체의 결성은 우리 사회를 보듬는 따뜻한 손길이 될 것이다.
  

문학과 역사 속에서

    『작가들』의 봄은 문학과 역사의 향기로 그득하다. 자랑스럽게 앞세우고 싶은 글은 새롭게 발을 디디는 〈기획연재〉이다. 한국문학계의 수장이자 영원한 현역 비평가인 최원식의 ‘한국현대문학사 연습’은 이인직-최남선-이광수로 정통을 삼는 기존 문학사의 구도를 비판하면서 연재를 시작한다. 반성 없이 받아들인 통념을 날카롭게 분리하고 유유히 회통하는 치밀한 분석의 회로가 어떠한 ‘연금술’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비평〉에서 이재용은 소월 최승구의 노트를 새로 교정·교열하여 지면을 채웠다. 나혜석과의 스캔들과 후대로 계승된 호로 유명한 최승구의 진면목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바람과 그의 시편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인천개항장연구소 연구원인 안정헌은 〈우현재〉에서 ‘민통선’에 위치한 교동도를 다룬 문학 작품들을 소개하였다. 더불어 분단의 현실이 앞서 그 뒤에 가려진 교동도의 문화역사유적과 섬 주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더 적극적으로 탐사되어야 한다고 전하였다.
    ‘인천여성 생애구술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인천여성가족재단은 그 작업을 웹에 옮기고 싶다는 『작가들』의 요청에 호응했다. 『작가들』은 식민지 시대 월미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임인자 할머니의 구술을 〈민중구술〉에 2회로 나누어 분재하기로 했다. 이번 호에는 월미도에서 피난길에 올랐고, 영종도로 돌아왔던 할머니의 전쟁 체험을 실었다.

    ‘창작’의 목소리는 각각의 개성으로 또렷하다. 문계봉 고철 손병걸 금희 김누누 김민지 박참새 이실비의 〈시〉와 유채림 최지애의 〈소설〉을 실었고, 〈노마네〉의 동시란에는 장세정과 임복순이, 동화에는 임정자가 공들인 작품을 내어주었다. 〈서평〉에서는 민구 시집 『세모 네모 청설모』와 이상실 소설집 『죽음의 시』, 강수환 평론집 『다르게 보는 용기』를 정우신 조혁신 조은숙이 각각 소개해주었다.

    1980년대 ‘가왕歌王’의 명칭을 얻었던 조용필은 언론통폐합의 희생양이었던 TBC의 마지막 드라마 〈축복〉(1980)의 주제가를 불렀다. 제목과는 달리 조기 종영으로 동반 죽음이라는 아이러니한 결말(정범준, 『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 알렙, 2014, 260쪽.)을 맞았던 〈축복〉에서 수많은 촛불이 어둠을 밝히는 장면을 배경으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고 한다(유성호,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작가, 2021, 88쪽.). 암으로 투병하는 한 여인의 구원을 기원하는 이 노래는 쿠데타 군부의 폭압 속에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던 현실의 역사로부터 비약하여 오늘날의 시민들에게 비장한 목소리로 첫 소절을 던진다.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이희우 작사, 조용필 작곡,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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