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밖으로 뜬 가족

  

  승규가 결혼식 날짜를 잡은 이후로 승규 아빠의 귀가가 부쩍 늦어지기 시작했다. 귀가할 때마다 술에 절어 정신이 혼미했다. 번호 키를 여러 번 눌러대며 덮개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한 뒤에야 현관문을 여는가 하면 예술 나가는 날은 기타를 질질 끌고 비틀거리며 현관에 들어서기도 했다. 귀가가 늦어질 때마다 아빠는 승규 결혼식 준비 때문에 늦었다고 둘러댔다.
  그랬던 어느 날, 예술 나갔다가 술이 떡이 돼서 귀가한 승규 아빠는 소파에 앉아서 승규에게 결혼식에 관해 이것저것 묻다가 평소 입에 담지도 않았던 ‘엄마’를 입 밖으로 불쑥 꺼냈다.
  “네 엄마는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다음 날은 구순을 앞둔 승규 할머니 앞에서 엄마를 화제에 올렸다.
  “승규 결혼하는데 승규 엄마가 어떻게 알고 연락이라도 오면⋯⋯.”
  할머니는 듣기만 했다.
  하룻밤을 넘기자 아빠는 ‘엄마’를 또 쏟아냈다. 듣고 있던 할머니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여자하고 연락하냐? 그런 것 같구먼, 내 직감은 못 속인다.” 아빠는 입을 닫았다. 할머니가 아빠를 응시하며 욕을 했다. “그 썩을 년, 미친년!” 포문을 연 할머니는 목청을 높였다. “그게 사람이냐? 짐승도 그 짓은 못한다. 개보다 못한 그년하고는 아예 연락도 말아라. 결혼식장에 들이닥칠까봐 겁난다.” 할머니는 말을 멈추고 손등으로 눈을 닦았다. 아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이후 승규의 귀에는 ‘엄마’라는 단어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집안이 시끄럽지 않았다.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는데 아빠가 그 분위기를 깨버리고 말았다. 승규 방으로 들어온 아빠는 결혼식 초대장은 제작했는지 물었다. 승규는 종이 초대장도 곧 나올 거라고 했다. 모바일 초대장을 받은 아빠는 휴대전화에 뜬 초대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 입에서 ‘엄마’가 삐져나왔다. “할머니는 있는데 엄마는 없네. 이래도 될까? 네 엄만 안 죽고 살아 있는데, 싫든 어쨌든 엄마 이름이라도 들어가면 좋겠다.” 그러고는 곁눈질을 했다.
  안 죽고 살아 있다니. 엄마의 근황을 아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나쁜 사람이니까 입도 뻥긋 말라던 아빠였는데, 그래서 ‘우리 엄마’를 입 밖에 내밀지도 않았고, 승규의 기억 속에는 없는 존재였는데, 엄마는 기약도 없이 떠나버렸고 떠난 후에는 승규 앞에 얼굴을 내민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런 엄마인데, 그래서 그 엄마가 이젠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게 됐다는 부고를 누군가에게 듣는다고 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만 같은데. 단지 아빠의 아내였고 승규에게는 엄마였다는 여인. 그 여인의 배 속에서 빠져나온 아들이 ‘승규’로 불린다는 이유만으로 초대장에 ‘엄마’라는 보통 명사와 그 옆에 엄마가 버젓이 찍혀야 하는지, 그 엄마는 보통 엄마와 다를 바 없는 엄마인지.
  승규는 아빠의 꿍꿍이속을 알 수 없었다. 승규는 초대장에 엄마가 빠지면 안 되는 이유를 물었다. 아빠는 “초대장 내밀기가 부끄러워서⋯⋯”라고 대답했다. 대화가 길어졌다. 길어질수록 아빠는 말을 더 노골적으로 했다. 결혼식 전에 엄마를 찾아서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승규는 모처럼 정태 삼촌을 생맥줏집에서 만났다.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 삼촌이 창밖으로 팔을 길게 뻗었다. 여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승규야, 개모차 밀고 가는 저 여자⋯⋯.”
  승규가 목을 길게 빼며 창밖을 내다봤다. 젊은 여인이 강아지를 애완견 유모차에 태우고 지나갔다. 강아지는 머리를 쳐들고 여인을 쳐다보다 사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모차를 끈 여인은 횡단보도를 건넜다. 삼촌은 혼잣말을 했다.
  “결혼한 여잘까. 아이는 배 속에 있나? 낳았을까. 집에 둔 걸까. 그 아이를 두고 강아지와 함께 떠나나?”
  삼촌은 입술을 포개며 유모차를 끈 여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승규의 시선도 삼촌이 응시하는 곳을 향했다. 삼촌보다 더 오랫동안 창밖을 보았다. 유모차를 끈 여인은 횡단보도를 건넜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둘은 시선을 거두고 맥주잔을 만지작거렸다. 말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승규가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탁자에 올렸다. 눈 내린 어느 마을을 담아낸 사진이었다. 사진을 내려다보던 삼촌은 승규를 물끄러미 보았다. 맥주를 몇 모금 들이켠 승규가 사진에 대해 물었다.
  “동영상 제작하려고 앨범을 넘기다 이 사진을 봤어요. 중학교 때 삼촌이 이 사진을 제게 주면서 사연이 깃든 사진인데 네 거라며 사진첩에 끼워두라고 하셨어요. 그땐 아무 생각 없이 끼워뒀는데, 왠지 궁금해서⋯⋯.”
  삼촌은 머리를 끄덕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오늘 보자고 한 이유가 이 사진 때문이었어? 허허허, 한 잔 더하고.”
  승규는 사진을 탁자 모서리에 두었다.
  승규가 삼촌을 뵙자고 한 건 결혼식이 코앞에 닥쳐오자 아빠 입에서 느닷없이 불거져 나온 ‘엄마’ 때문이었다. 그동안 아빠가 엄마를 잊었다고 생각했고, ‘엄마’는 언제 어디서나 등장해서는 안 될 인물로 여겨도 된다는 여론에 떠밀려 승규도 그 여론을 존중했는데, 아빠는 변한 것 같았다. 아빠가 그렇게 나와도 되는지, 그러는 저의가 무엇인지 헤아릴 수 없었던 승규는 삼촌이라면 자신이 모르는 집안 내막을 알 것 같았다.
  승규 얼굴은 굳어 있었다.
  “삼촌, 엄마를 찾아야 할까요?”
  삼촌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승규가 또 물었다.
  “결혼 전에 엄마를 만나보면 좋겠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데 그래야 하는지⋯⋯.”
  삼촌은 잠시 시간을 흘려보냈다.
  “판단이 서질 않아 나한테 묻는 것 같은데, 글쎄다. 당장 이래라저래라 말을 못하겠구나.”
  승규는 아빠한테 들었던 엄마에 대한 행적을 삼촌에게 말하며 사실 여부를 물었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내게 “엄마가 바람피우다 들켜서 너를 버리고 도망갔으니 찾지도 말라”고 했다는 말을 근거로 대며, 엄마는 진짜 그 짓 하다가 집 나간 나쁜 사람이었냐고 묻기도 했다.
  삼촌이 말했다.
  “나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널 버리고 떠난 사람이다.”
  승규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삼촌은 탁자 모서리에 놓인 사진을 집어 들었다.
  “승규야, 이 사진에 무엇이 보이느냐?”
  승규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집, 눈, 연탄재, 눈길, 전봇대⋯⋯.”
  “사진 제목을 〈사진 밖으로 뜬 가족〉이라고 붙이고 싶구나. 내가 찍었는데, 사람은 없지만 흔적은 있어. 슬픈 흔적이지.”
  삼촌이 사진 속으로 들어갔다.
  “사진 속 그날은 그해 마지막 달 주말이었어. 그땐 눈이 많이 내렸지.”
  삼촌은 사진을 들고 그날을 더듬었다.
  박촌 마을에 눈이 내렸다. 이른 오후부터 내린 눈이 그치지 않았다. 방축안산 아랫자락 비닐집 ‘박촌하우스’에도 소복소복 쌓였다. 늦은 오후, 찬 바람이 불었다. 눈을 동반한 바람이었다. 정태는 박촌하우스를 향해 걸었다. 하우스로 가는 길에 신발 자국이 있었다. 밖으로 향한 자국, 집으로 가는 자국. 방금 이웃집 여인이 밟았을 자국은 먼저 나간 자의 자국보다 더 넓고 깊었다. 발자국 주변은 가느다란 실선 두 줄이 길게 나 있었다. 정태는 박촌하우스로 갔다. 방문이 열려 있었다.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 방에서 볼이 붉게 달아오른 아이가 울고 있었다. 승규였다. 승규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어 울었다. 울음소리를 내며 문턱을 넘으려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허리가 옷소매로 묶여 있었다. 주저앉은 승규는 울먹이며 엄마를 불렀다. 아빠도 불러대다 “소레야!”라고 소리쳤다. 정태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이 깔려 있었다. 바닥은 차가웠다. 승규는 몸을 떨며 울었다. 승규를 품에 안았다. 울음이 그쳤다. 손을 잡고 하우스 밖으로 나갔다. 승규는 먼저 밟은 자들의 발자국과 실선에 신발을 포개며 걸었다. 전봇대와 식은 연탄재 더미를 지났다. 박촌하우스가 시야에서 멀어졌다.
  삼촌이 사진을 내려놓았다. 승규가 사진을 집어 들고 눈앞으로 가져갔다. 삼촌이 말했다.
  “사진 속 그날은 엄마가 떠난 날이었고 네가 우리 집에 온 날이란다.”
  승규는 사진 밖으로 향하는 어린 승규의 발자국을 어루만지며 창밖을 보았다. 삼촌도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네가 우리 집에 온 지 서너 달쯤 됐을까. 네가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어. 삼촌도 내밀었지. 거리는 벚꽃이 눈처럼 날리고 있었는데, 어느 엄마가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벚꽃 떨어져 흩날리는 길을 지나가고 있었어. 너한테 물었지. 뭘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그랬더니 한참 동안 창밖만 바라보다 유모차를 미는 어느 엄마가 사라지자 이렇게 말했지. ‘내 맘 아무도 몰라. 삼촌도 몰라’라고.”
  그날이 언젠지 기억 속에 없다고 말한 승규는 각인된 사건 하나가 자신 안에 있다고 했다. 승규는 그 사건을 되짚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여름이었고 밤이었다. 잠자리에 든 승규는 천둥소리에 잠이 깼다. 비를 동반한 천둥이었다. 잠들기 전보다 더 굵고 요란한 작달비가 세차게 내렸다. 방 안은 어두웠지만 천둥보다 먼저 번개가 번쩍거렸다. 번개가 칠 때마다 빛이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몸을 뒤척였다. 아빠는 잠 속에서 이불을 끌어 올렸고, 할머니도 잠자리가 편해 보이지 않았다. 승규는 천둥소리가 울릴 때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빠 품을 파고들었다. 별안간 창문 쪽에서 빗물 넘치는 소리가 났다. 승규는 이불을 헤집고 몸을 일으켰다. 불을 켰다. 빗물이 방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모두 잠에서 깼다. 장판 밑으로 물이 스며들었다. 아빠는 이불을 끌어 장롱에 넣었고, 할머니는 걸레로 물을 훔쳤다. 플러그를 모두 뺐다. 빗물은 창문을 비집고 거세게 흘러내렸다. 방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걸레를 문밖으로 내던지고 주방에서 바가지와 양동이를 들고 왔다. 승규는 할머니를 도왔다. 아빠는 맨발로 밖으로 나가 창문을 살폈다. 빗물은 폭포처럼 방으로 떨어졌다. 비를 쫄딱 맞고 들어온 아빠는 장롱을 열었다. 겨울 이불을 꺼냈다. 승규도 아빠를 거들었다. 이불을 들고 계단을 올랐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시멘트 바닥에 빗물이 고였고 길을 잃은 빗물은 쏟아지는 빗줄기와 함께 안방 창문을 끊임없이 넘보거나 넘실댔다. 승규는 아빠와 함께 창문을 이불로 가리고 이불 위에 벽돌을 얹었다. 그런 후 방에 고인 물을 퍼 나르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양동이에 담은 빗물을 대문 밖에 버리다가 바로 옆 삼촌이 사는 궁전 같은 빌라를 올려다보곤 했다. 마지막 빗물이 담긴 양동이를 손에 든 승규는 바가지를 양동이에 엎고 집 밖으로 나갔다. 삼촌이 사는 빌라로 걸음을 옮겼다. 번개를 앞세운 천동소리에 몸을 움츠리고 비를 맞으며 어둠 속에서 고요히 잠든 빌라로 갔다. 승규는 창문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악물었다. 양동이에 든 빗물을 바가지에 담았다. 담은 물을 창문에 뿌렸다. 뿌리며 소리쳤다. “이 나쁜 사람. 잠이 와, 지금?” 또 한 바가지를 뿌렸다. “할머니 쫓아내고, 아빠까지 쫓아낸 진짜 나쁜 사람!” 양동이 물을 모두 쏟아부었다. “벼락이나 맞아라!” 승규의 발악 때문이었을까. 빗물 때문이었을까. 불이 켜졌고 창문이 열렸다. 승규는 몸을 숨기며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집으로 갔다.
  삼촌이 정색을 하며 한동안 승규만 쳐다보았다. 시선을 거둔 삼촌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는지는 몰랐구나. 안방에 빗물이 들었다는 말을 할머니한테 들은 적은 있는데⋯⋯ 그날 이후로 그날을 생각할 때마다 맘이 더 아렸다. 할머니를 쫓아낸 나쁜 자식이었지만, 네 아빠까지 쫓아냈다는 말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겠구나.”
  삼촌은 그득한 맥주잔을 단숨에 비우고 입을 열었다.
  “승규야, 아직도 삼촌이 아빠를 쫓아낸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승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삼촌은 이마를 짚거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에라도 아빠한테 물어보면 좋겠구나. 지금도 삼촌이 아빠를 쫓아낸 나쁜 사람이냐고. 아빠 대답부터 듣고 나서 삼촌하고 상의할 건 하고 궁금한 것도 묻는다면 좋겠다.”
  말을 끝낸 삼촌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머니가 즐겨 보는 드라마가 끝날 시간이 되자 승규는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껐다. 할머니 곁에 다가가 앉았다. 할머니는 예식장은 잘 잡았는지, 청첩장은 잘 돌리고 있는지, 뷔페 음식은 맛있는지도 물었다. 승규가 조목조목 대답하자 할머니는 ‘다른 일’은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할머니가 말한 다른 일은 할머니와 아빠가 따로 나가 살 집이었다. 할머니는 월세가 싸고 좋은 집이 나왔다고 말했다. 집주인은 할머니가 비닐하우스로 밭매러 다닐 때부터 아는 사람이고 심성도 고운 분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한 할머니는 색시 될 사람하고 틀어지면 큰일 난다며 오로지 승규 결혼을 걱정했다. 승규는 할머니와 아빠가 이사해서 조금만 살고 계시면 다시 모시겠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승규 손을 잡고 등을 토닥였다. 지금 사는 집은 승규가 직장을 다니면서 마련한 집이었다. 빌라를 분양받았는데 분양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원금을 넣고 나머지는 은행 대출로 해결했다. 월급으로 다달이 이자를 내고 해마다 원금을 막는 데 급급한 탓에 집안 생활비는 뒷전이었다. 집안일은 할머니가 도맡아 했지만 승규는 할머니에게 용돈을 제대로 드린 적이 없었다. 생신 때나 명절 때 몇 푼 쥐여드리는 용돈이 전부였다. 할머니가 엄마 대신 보살핀 덕에 결혼까지 하게 됐는데 할머니의 아량만 의지하는 것 같아 편치 않았다. 문득 정태 삼촌에게 쫓겨났던 할머니의 처량한 신세가 떠올랐다. 삼촌과 함께 빌라에 사시던 할머니가 삼촌 결혼 때문에 빌라 옆 주택 반지하로 쫓겨난 때도 이맘때였다. 승규도 할머니와 함께 반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갔었다. 아빠까지 셋이. 그때를 떠올린 승규가 삼촌에게 쫓겨났던 옛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이미 지난 일이라면서 “목련이 봄에 예쁘기는 했는데⋯⋯”라고 혼잣말을 했다. 어떤 말을 더 하려다 한숨을 내쉰 후 그만두었다. 승규는 할머니의 말문이 더 열릴 것 같지 않아 방을 나왔다. 문밖에 아빠가 서 있었다. 오늘은 어디서 술을 마셨는지 몸을 비틀거린 아빠는 승규를 부르며 거실 소파로 갔다. 아빠는 할머니와의 대화를 들었다고 했다. 눈을 게슴츠레 뜬 아빠는 다짜고짜 삼촌에게 쫓겨난 그때를 죽어야 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삼촌은 어미와 형을 이용만 해 먹고 쫓아낸 나쁜 놈이었다고 말하며 반성이 없거나 사과하지 않으면 먼저 다가가거나 손을 내밀지도 않을 거라고 했다. 승규 결혼식 때도 어찌어찌 알게 돼서 삼촌이 오는 건 상관하지 않겠지만 그 전에 일부러 만나서 쫓겨난 이야기를 끄집어내거나 물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승규가 정태 삼촌을 만났다고 말하자, 아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눈을 깜박거렸다. 삼촌한테 엄마를 만나야 하는지 의견도 묻고 삼촌이 왜 우리를 쫓아내고 살아야만 했는지 그 저의가 괘씸해서 만났다고 말했다. 아빠는 “어허, 어허!”를 연신 해대며 옆에 둔 기타를 들어 무르팍에 올리고 가슴에 품었다. 줄을 댕댕거리며 노래를 흥얼댔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부르다 말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가 흘러나올 것 같은 아빠 입에서 그런 노래가 입술 밖으로 삐져나오다니. 요즘 들어 아빠는 부쩍 이 노래를 자주 불렀다. 당신의 아내가 그리운 걸까. 아빠는 다른 노래를 또 부르다 말고 딴소리를 했다. “예술 없는 삶은 죽음이야. 예술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고 낙이지.” 아빠는 기타를 품은 채 소파에 몸을 기대며 입술을 닫고 눈도 감았다. 승규는 잠든 예술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승규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깊어가는 가을, 어느 금요일이었다. 할머니가 차린 저녁밥을 먹고 난 아빠가 출근 준비를 하면서 내일은 참고서를 사주고 다음 달부터 학원도 보내주겠다고 승규에게 말했다. 사달라거나 보내달라고 조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라며 학업에 무관심한 아빠였는데, 공부 잘하는 사람은 학교 선생님 설명 잘 듣고 집에서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해도 잘한다던 아빠였는데, 학원 수강은 사치에 불과하다던 그런 아빠였는데, 사주니 보내주니 말하면서 짓는 표정을 보니 복권 2등이라도 당첨된 걸까. 아니면 행사를 뛰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빠의 막연한 소망인지.
  아빠가 기타를 메고 집을 나섰다. 승규는 밖으로 나가 아빠의 출근길을 따라 걸었다. 아빠를 미행하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을 것만 같았다. 승규가 어릴 때부터 아빠는 예술 하러 나간다며 이른 저녁에 기타를 메고 출근을 했는데 어디서 예술을 하는지 적이 궁금하기도 했다. 아빠는 예술 하다가 여자도 만났고 결혼까지 해서 승규를 낳았다고 말했다. 아빠의 예술로 자란 승규는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는 음악예술가라고 자랑까지 했던 아빠의 예술. 그 예술이 보고 싶어 아빠를 따라나서곤 했지만 아빠는 동행을 한사코 거부하며 승규를 집으로 돌려보내곤 했다. 오늘은 아빠에게 들켜도 아빠는 승규 손을 잡고 예술 현장으로 향할 것만 같았다.
  집에서 멀어진 아빠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쳤다. 걸었다. 걷기만 했다. 횡단보도를 지그재그로 건너며 아랫동네로 간 아빠는 먹자골목으로 들어섰다.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 들고 나온 아빠를 보았다. 안쪽으로 더 걸어간 아빠는 네온사인이 현란한 나이트클럽을 향해 걸었다. 나이트로 가는 걸까. 아빠는 가다 말고 ‘7080’이 형형색색 반짝이는 간판을 향해 걸었다. 거길까. 다시 문화회관 쪽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문화회관 무대에 서는 걸까. 거기라면 우리 아빠가 수준 높은 음악예술가라고 어깨를 으쓱하며 학교 친구들에게 자랑해도 될 것 같았다. 문화회관으로 향하던 아빠는 길가 벤치에 기타를 내려놓고 앉아 맥주를 마셨다. 무대에 설 사람이 술을 마시다니. 무대공포증이라도 있는 걸까. 맥주를 마신 아빠는 더 이상 문화회관 쪽으로 발을 옮기지 않았다. 아빠는 벤치 반대편 길 가장자리에 기타 가방을 바닥에 펼치고 기타를 들었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가부좌를 틀 앉았다. 기타를 쳤다. 노랠 불렀다. 승규는 등 뒤에 숨어 아빠를 보았다. 연습하는 걸까. 연습하다 문화회관 무대에 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곳이 아빠의 공연장이라면 친구들에게 자랑은커녕 부끄러워서 피해 다닐 것만 같았다. 우리 아빠는 음악예술가라고 서슴없이 자랑했는데, 아빠의 무대는 길거리가 아니어야 하는데. 아빠가 노래를 부르자 행인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아빠를 바라보며 노래를 들었다. 힐끔 쳐다보며 가던 길을 더디 걷거나, 듣고 나서 가거나, 더러는 벤치에 앉아 노래를 감상했다. 따라 부르기도 했다. 아빠는 마이크도 없이 악보도 없이, 통기타의 현을 뜯으며 아빠만의 예술세계에 빠져들었다. 때로는 사방을 바라보며 신나게 부르거나 때로는 눈을 지그시 감거나 뜨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애절하게 불렀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박수를 보냈다. 일부는 음료수를 사거나 캔 맥주를 사서 바닥에 깔린 기타 가방에 올려놓거나 돈을 놓았다. 관객 중 술이 떡이 된 중년 남성은 비틀거리다 아빠 곁으로 다가와서 노래를 따라 하다 몸을 흔들었다. 노래가 끝나자 지갑에서 돈을 꺼내 기타 가방에 넣었다. 참고서 2권 값은 돼 보였다. 남성은 노래를 신청했다. 아빠가 신청곡을 불렀다. 신청곡 노래를 끝낸 아빠는 객이 두고 간 캔 맥주를 따서 마셨다. 다시 노래를 불렀다. 행인들은 멈추거니 서거니 앉거니 하며 노래를 감상했고 돈을 놓기도 했다. 아빠는 2시간 넘게 노래를 부른 뒤 기타를 내려놓았다. 길거리 공연이 끝났다. 아빠는 문화회관 쪽으로 가지 않았다. 모금액을 지갑에 넣고 집으로 가는 길을 걷다가 순댓국집으로 들어갔다. 아빠가 앉은 식탁에 소주가 놓였다. 승규는 집으로 왔다. 2시간쯤 지나자 아빠가 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빠는 음료수 두 캔을 방바닥에 놓았다. 하나씩 마시라고 했다. 길거리 공연에서 관객이 건넨 음료수 같았다. 아빠는 또 지갑에서 돈을 꺼내 승규에게 건넸다. 참고서 값이라고 했다. 승규의 눈에 비친 아빠는 거리의 악사였다. 그것도 백번 양보한 표현이었다.
  

  삼촌에게서 전화가 왔다. 알 건 알아야 하고 상의할 것이 있으면 하자며 만나자고 했다. 승규는 삼촌이 사는 빌라로 가겠다고 했다. 승규가 삼촌 집에 이르렀을 때 삼촌이 빌라 입구에 서 있었다. 삼촌은 승규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반지하 방을 잠깐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며 앞장섰다. 반지하로 갔다. 창문은 그대로였다. 삼촌의 저의는 알 수 없지만 삼촌은 안방 창문과 창문 바로 아래 시멘트 바닥을 밟고 섰다. 그러고는 “그런 비가 또 내리면 물이 들겠네. 나는 왜 뒷짐만 지고 있었을까”라며 혼잣말을 했다. 승규의 시선은 화단에 서 있는 목련으로 향했다. 있던 자리에 있었지만 목련은 더 넓고 높게 뻗었고 굵었다. 승규가 안방 창문을 열고 창밖을 내다볼 때마다 움이 트고 꽃이 피고 잎이 떨어지곤 했는데, 지금은 가지만 앙상하게 드러낸 채 꽃이 피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한 목련을 볼 때마다 활짝 웃곤 하다가 시야를 벗어나거나 겨울이 되면 종종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삼촌은 그 집을 말없이 둘러보다 나왔다. 인근의 플라자 2층 카페로 갔다. 마주 앉은 삼촌은 승규에게 물었다. 아빠가 아직도 예술 하러 나가는지. 승규는 주말에 나간다고 대답했다. 삼촌은 승규가 삼촌을 보는 눈이 여전한지도 물었다. 승규는 아빠가 하는 말을 듣고 자랐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삼촌이 머리를 끄덕이다 가로저었다.
  “승규야!”
불렀지만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삼촌은 네 아빠를 좋은 아빠로 만들고 싶었고 네가 그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이젠 너도 어른이 됐고 엄마를 찾는 문제도 있고 하니 이젠 사실대로 말해야겠구나. 네가 어릴 때 삼촌하고 함께 살았던 것만으로도 최소한 나쁜 삼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를 바랐는데⋯⋯.”
  삼촌이 박촌 마을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정태가 회사 워크숍을 마치고 빌라에 들어서자 어머니가 공동 현관 밖에 나와 있었다. 길을 막고 선 어머니는 곧장 승규한테 가야 한다고 했다. 빈집에서 승규가 몇 시간째 울고 있다는 이웃집 여자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정태는 승규가 살고 있는 박촌하우스로 갔다. 방문은 열려 있었다. 바람 탄 눈이 문지방에 쌓여 있었다. 방으로 들어갔다. 옷에 허리가 묶인 채 승규가 울고 있었다. 목을 젖히고 꺼이꺼이 울며 엄마를 불렀다. 아빠도 불러대다, 알 수 없는 ‘소레’라는 말을 반복하며 울음소리를 냈다. 결박을 풀고 승규를 안았다. 종잇장 하나가 방바닥에 있었다. 종이를 집어 들었다. 정태 이름과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승규 엄마 필체 같았다. 엄마는 부재중이라는 걸 누군가에게 알리려는 의도였을까. 어머니에게 상황을 전달하려고 전화기를 들었다. 고객의 사정으로 전화를 걸 수 없다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 전화기 옆에는 전기료 수도료 전화요금을 재촉하는 독촉장이 쌓여 있었다. 승규 아빠는 예술 나간 걸까. 승규를 데리고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승규 아빠 앞으로 몇 자 적어서 전화기 옆에 두었다. 문밖에서 유모차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눈 위로 유모차 구른 자국이 나 있었다. 누군가 끌고 나간 것 같았다. 승규를 데리고 박촌하우스를 나왔다. 집으로 왔다.
  다음 날은 승규 아빠가 승규 옷가지가 든 가방을 메고 왔다. 그다음 날은 통기타를 메고 두툼한 보따리를 껴안고 왔다. 안방에 이삿짐을 부리고 승규를 옆에 앉힌 승규 아빠는 어머니와 정태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뿐이었다. 그날부터 한집 식구가 되었다. 이후 승규 아빠는 일주일 넘게 집에만 머물렀다. 이사 온 지 두 번째 금요일 저녁이 되자 승규 아빠는 기타를 메고 나갔다. 예술 나간다고 했다. 어디서 등드르등등 해대며 예술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예술 나가서 돈벌이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승규 아빠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 왔다. 다음 날도 비슷한 시각에 나갔고 자정이 넘어 돌아왔다. 올 때마다 술 냄새를 팍팍 풍기고 비틀거리며 현관 문지방을 넘었다. 그것이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어머니는 한여름에도 매일 버스를 타고 열 정거장 넘게 오가며 남의 밭으로 일 다녔는데, 정태도 직장에 나갔는데, 승규 아빠는 한 달 중 스무날 이상은 낮이나 밤이나 어린 승규와 함께 방 안에서 세월을 보내며 저녁마다 술을 마셨다. 알코올중독자나 다름없었다. 술을 마신 채 기타를 메고 예술 나가는 건 다반사였고 돌아올 때는 술에 절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승규 아빠의 일상은 그랬다. 그런 삶이 낙이라고 했다. 빌붙어 살면서 월세는커녕 다달이 얼마씩이라도 생활비에 보태라며 돈을 내민 적도 없었다. 독립에 대한 의지조차 없었다. 오히려 눌러앉으려고 했다. 어머니는 가끔 꾸중을 했고 정태는 얼굴을 구겼다. 다투기도 했다. 그렇게 살았다. 승규는 유치원을 가지 않았다. 돈 때문이었다. 속셈학원에 다녔다. 그 학원에서 한글을 배우고 수학도 익히는 중이었는데 승규 아빠는 그마저도 끊고 말았다. 등록금을 몇 달째 미납했기 때문이었다. 승규는 아빠와 정태의 어깨너머로 한글을 깨우쳤다. 정태는 승규에게 구구단 암기를 지도했다. 승규는 구구단을 외웠다. 그런 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승규는 입을 다물고 창밖을 보았다. 삼촌도 창밖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정태는 승규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 승규와 따로 살았다. 결혼 때문이었다. 첫사랑을 잃고 방황하던 정태에게 두 번째 사랑도 떠나고 말았다. 세 번째도 실패였다. 결혼 못한 친구들이 드물 때쯤 네 번째 사랑이 다가와 움트기 시작했다. 마지막 연애여야 했다. 첫사랑을 제외한 나머지 사랑이 실패한 이유 중의 하나는 동거인 때문이었다. 잘나지 못한 자신 탓이었지만 사랑을 멀어지게 하는 이유 중 하나를 제거해야만 했다. 구조조정이었다. 집을 내놨다. 내놨지만 제값 받기가 힘들었다. 터무니없는 가격이어야 가능할 것 같았다. 매매를 포기하고 말았다. 승규 아빠는 승규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며 정태를 내보내고 눌러앉으려고 했다. 정태에게 반지하 단칸방 월세 보증금 정도는 마련해서 보태줄 수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저축한 돈이 있다고. 승규 아빠의 제안을 수용한다면 네 번째 사랑마저 움 만 트다 말 것 같았다. 어머니가 거처하도록 월세보증금이라도 마련할 만한 자식은 아무도 없었다. 아들만 넷이었지만 첫째는 영농자금 대출을 받아 포도 농사를 하다가 빚에 시달렸고, 둘째는 승규 아빠였다. 셋째는 작은 섬에 은거하는 자연인이 되고 말았다. 넷째가 정태였다. 정태는 돈 한 푼 쥐여주지 않은 채 어머니와 승규, 승규 아빠를 내몰고 말았다. 그러자 네 번째 사랑은 떠나지 않았다.
  삼촌이 긴 숨을 내쉬었다. 승규는 고개를 숙이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할머니와 아빠는 어제 이사를 했다. 오늘은 엄마를 만나러 간다. 승규는 할머니와 아빠가 이사한 집을 알지 못했다. 지근거리에 마침 좋은 집이 나와서 얼른 이사했다고 했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할머니가 식료품 골판지 박스 몇 개를 구해 오면서 다음 주말에 이사할 거라고 했지만, 승규가 출근한 틈에 야반도주하듯 떠나고 말았다. 이사하기 전에 집 구경도 할 계획이었고 다음 주말에는 이사를 도우려고 날짜까지 비워두었는데 무산되고 말았다. 아침 일찍 집에 와서 승규에게 아침을 차려준 할머니는 이삿짐이 정리되면 부르겠다고 말하며 닥친 일부터 잘 해결하라고 했다. 엄마가 화제에 오를 때마다 “썩을 년!”을 시작으로 시종일관 적개심을 품은 할머니인지라 오늘도 얼굴이 밝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당신이 버린 아들이오.’ 정도만 일러주거나 얼굴만 보고 오라는 표정 같았다. 승규는 사전에 답사한 약속 장소로 향했다. 버스를 탔다. 약속 장소보다 한 정거장 전에 내렸다. 장소는 승규가 정했다. 박촌하우스 아래 이디파스 커피 전문점이었다. 승규는 엄마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고, 문자도 받은 적 없었다. 아빠가 승규 대신 연락을 주고받았다. 신혼 때 찍은 사진만 자주 봤을 뿐 얼굴 한번 마주친 적 없는 엄마였지만 이디파스로 가는 고객 중의 한 사람이라면 엄마였던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승규는 이디파스를 향해 걸었다. 중학교 다닐 때 자주 걸었던 길이기도 했다. 같은 반 친구 중의 하나가 집이 박촌 마을이었고 아빠가 기억한 박촌하우스 인근에 살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윗집 아랫집에서 태어나 하나가 울면 하나가 따라 울고, 떼쓰면 떼쓰고, 눈길을 신나게 걸으면 그 발자국을 서로 포개고 놀았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친했고 다른 친구의 동네 길보다 더 자주 걸었다. 엄마가 뿌리치며 집을 나간 탓에 울며 걸어 나왔던 그 길이기도 했다. 친구와 만나고 헤어진 후 이 길을 홀로 걸을 때마다 승규의 눈동자는 더 바삐 구르곤 했다. 엄마 손을 잡고 걷는 꼬마 아이를 볼 때마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여인을 볼 때마다, 엄마 옆에서 걷는 또래 친구를 볼 때마다, 엄마 또래의 여인과 승규를 향해 다가오는 어느 여인을 볼 때마다. 시선은 그들에게 향하곤 했다. 나쁜 엄마일지라도 엄마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그랬던 길을 걸으며 이디파스로 갔다. 약속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커피 전문점 건물 밖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유모차를 미는 어느 여인이 보였다. 그 여인은 승규가 서 있는 곳으로 점점 다가왔다. 엄마 같았다. 유모차에는 손자가 탔을까. 빈 유모차일까. 승규를 버리고 떠난 날 엄마 손에 이끌려 이 길에 쌓인 눈 위를 구르다 사라진 유모차일까. 유모차를 민 여인은 승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인이 승규를 빤히 보았다. 승규도 여인이 보는 것처럼 보았다. “승규입니다.” “내가⋯⋯ 엄, 마, 다.” 신분을 확인하고도 승규와 엄마는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승규는 엄마가 밀고 온 유모차를 응시했다. 엄마가 유모차의 지퍼를 열고 천을 걷어 올렸다. 강아지가 타고 있었다. 승규가 강아지와 눈이 마주치자 컹컹거렸다. “소레!” 엄마가 소리쳤다. ‘소레’라니. 엄마가 승규를 두고 떠난 날 엄마를 불러대고 ‘소레’도 부르며 울었다고 했다. 할머니 집에 왔을 때도 한동안 소레를 찾았다는 그 강아지 이름이 소레였다. 강아지가 탄 유모차가 왔고 소레가 왔다. 승규는 박촌하우스가 있었던 오르막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엄마와 함께 이디파스로 들어갔다. 승규가 소레를 바라보자, 엄마는 얼마 전 입양한 유기견이라고 말하며 유모차도 그때 끌고 간 유모차는 아니라고 했다. 승규 아빠를 통해서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엄마는 먼저 말을 꺼냈다. 남편을 믿고 승규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고. 승규는 말없이 창밖을 보았다. 오랫동안 보았다. 엄마가 물었다. 왜 창밖을 그렇게 보느냐고. 승규가 말했다. “세 살 때였어요. 할머니와 함께 살 때 삼촌이 ‘승규야! 왜 창밖을 그렇게 보니, 엄마 생각하니?’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내 맘 아무도 몰라’라고.”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소레가 유모차에서 낑낑거렸다. 엄마는 소레를 쓰다듬었다. 승규는 또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색한 시간이 흐르다 멈췄다. 승규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이디파스를 나왔다. 20여 년 전 겨울,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떠난 길을 따라, 엄마의 발자국을 밟고 울면서 엄마를 하염없이 불렀던 그 길을 걸으며 박촌 마을을 벗어났다.
  집에 오자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이삿짐도 풀고 정리도 해야 해서 가야 한다고 했다. 승규가 돕겠다고 따라나서자 할머니는 몸을 떨더니 손사래를 쳤다. 결혼식 끝나고 천천히 와도 된다고 말한 후 화제를 돌렸다. 엄마 만난 소감을 물었다. 대답을 듣고 난 할머니는 잰걸음으로 빠져나갔다. 승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 뒤를 밟았다. 할머니가 버스를 탔다. 승규는 얼굴을 가리고 할머니가 탄 버스를 탔다. 할머니는 익숙한 동네 정류장에서 내렸다. 삼촌이 사는 빌라가 있는 동네이기도 했고 어릴 때 물난리를 겪었던 반지하가 있는 동네였다. 승규도 내렸다. 할머니는 삼촌 집으로 가는가 싶더니 삼촌 집을 지나치며 몇 걸음 더 걷다가 멈췄다. 걸음을 멈춘 곳은 물난리가 났던 반지하였다. 승규가 방문을 열었다. 아빠는 낮술을 마셨는지 벌건 얼굴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승규를 보았고, 할머니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승규를 향해 눈을 크게 떴다. 한참 동안 서로를 보았다. 승규는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창문을 열고 승규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승규가 다가갔다. 할머니가 창밖으로 손을 뻗었다.
  “승규야! 화단을 보거라. 봄이면 활짝 피는 저 목련이 좋아서 이사 왔단다. 올겨울 지나면 내년에도 피겠지?”
  “⋯⋯.”
  “승규야! 잘 살아야 한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승규는 머리를 숙였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