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대왕 털보

  

1

  어느 날 아침, 털보가 외쳤어.
  “나는 도둑 대왕이 되고 말 테야.”
  담장 위를 지나가던 고양이가 그 소리를 들었어. 사뿐사뿐 걷던 걸음을 멈췄지.
  “한심해.”
  털보가 고양이에게 손을 흔들었어. 자기 결심을 들어줬으니 반가웠지.
  고양이는 훌쩍 뛰어 털보네 마당으로 내려왔어.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 사이로 흙이 보이고 잡풀마저 자란 마당이야.
  “야옹, 뭐가 되겠다고?”
  “도둑 대왕!”
  방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털보가 답했어. 털보 앞에는 쌀바가지가 놓여 있었지.
  고양이는 쌀은 안 먹고 싶어. 털보가 나눠줄 리도 없지만.
  “그런 건 두목이라고 하는 거야. 당신은 두목이 될 수 없어. 부하가 아무도 없으니까.”
  털보는 들은 척 만 척했어. 대왕이든 두목이든 혼자서 해버리면 그만이잖아.
  고양이는 궁금했어.
  “갑자기 왜 도둑이 되겠다는 거야?”
  털보는 밥그릇을 가리켰어.
  “달걀이 필요해. 간장 넣어서 쓱쓱 비벼 먹을 달걀.”
  털보에겐 쌀 한 포대가 있어. 노란 봉사대 조끼를 입은 사람이 놔두고 간 거야. 하지만 쌀에서 묵은내가 났어. 석 달이나 지나서 그런 건지, 장마가 길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어.
  “좋은 쌀 나쁜 쌀, 그런 거는 안 따져.”
  털보가 말했지.
  그렇지만 달랑 흰쌀밥 하나로 끼니를 때우긴 싫었어. 김치는 떨어진 지 오래야. 냉장고는 텅 비었지.
  “왕창 쓸어 담아 올 거야.”
  털보가 벌떡 일어섰어. 그 바람에 쌀바가지가 엎어졌어. 털보는 흩어진 쌀을 대충 주워 담았어.
  “으, 귀찮아.”
  털보 손은 크고 쌀알은 작았어. 한 알 한 알 집으려니 짜증이 났어.
  그때 비둘기가 날아왔지. 털보네 창틀이며 지붕이며 여기저기 똥을 갈겨놓은 비둘기야. 비둘기는 꺼떡꺼떡 고개를 주억거리며 쌀을 쪼아먹었어.
  “내가 처리할게.”
  털보는 약이 올랐어.
  “난 달걀을 쓸어 담아 올 거야. 대형 마트에서!”
  “꾸국, 무시무시한 소리야. 나는 알을 낳는 족속이라 더 그래.”
  하지만 비둘기는 말만 그렇게 했지, 속으로는 털보 말이 우습다고 생각했어.
  “대형 마트? 거긴 날개 달린 우리도 어쩌지 못하는 데야.”
  “사람은 그냥 들어가.”
  “엉? 돈이 없잖아.”
  비둘기는 괜히 말했다 싶었어. 사람은 돈이 없으면 굶은 사람처럼 힘이 없거든. 털보한테 미안해졌지.
  비둘기는 쌀알에만 집중하기로 했어. 한 톨 한 톨 정확하게 보려면 먼저 머리를 앞으로 내밀어서 고정해야 해. 몸통을 머리 쪽으로 잡아당기면서 한 걸음, 또다시 머리를 앞으로 밀고 나서 몸통을 잡아당기고⋯⋯. 한마디로 바빴어.
  고양이는 딴청을 피웠어.
  “그런데 박새 둥지가 비었네. 빈집 가득한 골목에 빈 둥지 하나 더 추가야.”
  고양이는 못내 아쉬워 입맛을 다셨어. 박새 둥지에는 뽀얀 알이 있었거든. 그리고 거기서 나왔을 어린 새! 고양이는 언젠가는 털보에게 보여주리라 마음먹었어. 자기가 끝내주는 새 사냥꾼이라는 걸 말이야.
  털보는 새 둥지 같은 건 관심 없어. 자기 머리털이 새 둥지 같든 말든 그냥 내버려두는 것만 봐도 그래. 대체 머리를 언제 감았는지 알 수 없어.
  털보는 녹슨 철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어. 문은 쇳소리 같은 비명을 지르더니 원래대로 닫히질 않아. 녹이 슬었으니까 당연해. 털보는 그런 건 상관도 안 하고 그냥 골목을 따라 내려갔어.
  고양이가 졸졸 따라오나 싶었는데 어느새 털보를 앞질러 가네. 털보가 말했지.
  “너, 내 부하 안 할래? 도둑고양이 어때?”
  고양이는 아주 잠깐 고개를 돌려 털보를 봤어. 꼬리를 바짝 세운 채로 말이야.
  “요새도 도둑고양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다니, 세상에나 불쌍해라.”
  “나 안 불쌍하거든!”
  털보랑 고양이는 더는 말을 주고받지 않았어. 그럴 수밖에 없었지. 하필 서로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해버렸잖아.
  털보는 비둘기에게 물었어. 비둘기는 여전히 꺼떡꺼떡, 바쁠 대로 바빠 보였어.
  “너는 어때?”
  부하가 되라는 말은 안 했어. 그건 조금 있다가 해도 되니까 말이야.
  비둘기는 털보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쭉 쳐들었어. 노란 눈자위에 까만 눈동자가 더 동그랗게 보였어.
  “됐거든. 우리는 부자라서 부하가 될 필요 없어. 벌레나 풀로 배불리 먹고 가끔 별미로 시장에 가서 곡식을 먹기도 하고.”
  털보가 씩씩댔어.
  “거봐, 도둑 맞네. 곡식을 털잖아.”
  비둘기는 어이가 없었지.
  “거기 있길래 먹은 게 우리 탓이야?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내가 뭐 하러 부하 노릇을 할까? 나는 한 번에 한 알씩 집을 수 있어. 덩치 큰 털보 씨랑 콩을 나누려면 어떡해야 할까? 백번 천번 만번이나 고개를 꺼떡꺼떡하면서 콩알을 모아야 할걸. 나는 나대로, 아니지! 우리 비둘기끼리, 우리끼리만 논다고.”
  털보는 귀를 막았어.
  “우리, 우리, 우리. 알았어, 알았다고.”
  털보는 의류 수거함을 지나, 전봇대를 지나 아랫동네로 향했어.
  털보는 중얼중얼 쉴 새 없이 투덜거렸어.
  “난 대왕도 두목도 안 된단 말이지. 부하가 없으니까. 혼자니까.”
  털보는 쓸쓸했어. 처음 머릿속에 도둑 대왕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는 가슴이 벅찼는데 말이야. 뭔가 대단하고 중요하고 강해질 거 같았거든.
  비탈진 골목길을 터덜터덜, 털보는 혼자 걸어갔어.
  투덜이 털보, 외톨이 털보.
  

2

  마트 안은 아주 환했어. 천장이며 벽이며 환한 불빛이 안 닿는 데가 없었지.
  털보는 어깨를 펴려고 했지만 잘 되질 않았어. 삐질삐질 땀도 났지.
  ‘아무래도 내일은 얇은 옷을 훔쳐야겠어.’
  사실은 의류 수거함을 뒤져보겠다는 생각이야. 하지만 털보네 골목 의류 수거함은 텅텅 비어 있을 때가 많아. 한때는 사람들이 잔뜩 옷을 넣어두고 갔어. 그들은 동네를 떠났고, 지금은 옷을 넣는 사람이 없어.
  ‘먼 동네까지 가면 되지 뭐.’
  털보는 달걀이 진열된 곳으로 가려다가 시식 코너부터 한 바퀴 돌았어. 지글지글 고소하고 매콤한 냄새가 여기저기서 털보를 불렀어. 털보는 하나둘 맛을 봤어. 하나만 먹어서는 제대로 맛을 보기 어려우니까 두 개 세 개 마구 집어 먹었어. 만두를 먹고, 떡갈비를 먹고, 돈가스를 먹고⋯⋯. 그것들은 자꾸만 털보를 불러 세웠지.
  “끄억.”
  기분 좋은 트림을 뱉었을 때였어.
  “놓칠 수 없는 촨스!”
  마침 달걀 코너에서 판촉 행사가 열리나 봐. 자기네 회사에서 가져온 달걀이 훨씬 좋으니 얼른 사가라는 거지.
  빨간 앞치마를 두른 아저씨가 부지런히 달걀부침을 만들었어.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조그맣게 잘린 달걀부침을 이쑤시개에 꽂아서 나눠주는 거야.
  “황금농장 임금님표 달걀을 특별한 가격에 만나보실 수 있어요. 오늘 한 판을 사시면 한 판 더. 덤으로 한 판이나 더 가져가실 수 있는 절호의 촨스!”
  아주머니는 길고 멋들어지게 “촨스”라고 외쳤지. 무선 마이크를 달아서 더 멋지게 보여.
  “황금농장 임금님표 달걀은 완전 무공해 유기농, 맛도 영양도 보장하는 유정란입니다. 다시는 이 가격에 만나볼 수 없는 촨스.”
  사람들이 너도나도 달걀부침을 맛봤어.
  털보는 침을 꿀꺽 삼켰지. 하지만 눈길은 일부러 냉장고로 돌렸어. 달걀판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멋지게 진열해 놓은 곳 말이야. 마치 어떤 걸 사야 좋으려나 고민하는 사람처럼 굴었어.
  그런데, 남들 눈에는 그렇게 안 보였나 봐.
  “큼큼, 이게 무슨 냄새죠?”
  어떤 손님이 이랬더니.
  “여기 담당 직원이 누구시죠?”
  누가 이렇게 말했고,
  “허 참.”
  또 다른 누구는 헛기침을 했어.
  다들 힐끔힐끔 털보를 봤어.
  털보는 외투 깃을 여몄어. 지난 계절부터 입던 거라 좀 두텁기는 해.
  그때 마트 직원이 털보 쪽으로 왔어. 까만 양복을 위아래로 쫙 빼입은 사람이야. 가슴엔 반짝이는 명찰도 달고 있었어.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어. 경호원이나 경찰이 무전기로 대화를 나눌 때 쓰는 그런 거.
  털보는 툴툴댔어.
  “이러면 안 되는 거지. 아직 뭔가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붙잡히면 웃기잖아.”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도망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어. 당황해서 홱 뒤로 돌아섰거든. 그런데 하필이면 촨스 아주머니가 새 달걀 포장을 뜯고 있었던 거야. 그 바람에 달걀이 팍삭, 떨어져 깨졌어.
  “에그머니나, 이를 어째!”
  아주머니는 소리부터 질렀어. 깨진 달걀을 미처 치우기도 전에 까만 양복쟁이가 그만 미끄덩, 넘어져버렸어.
  “뭔 난리래!”
  빨간 앞치마 아저씨가 이러면서 양복쟁이를 일으켜 세우려는데, 다그르르 달걀이 더 쏟아져버렸어.
  대부분은 깨져버렸지만 어떤 달걀은 용케도 멈췄어. 반짝반짝 말끔하게 청소된 마트 바닥 위에 말이야.
  털보는 잽싸게 그 달걀을 낚아챘어. 그러고는 호주머니 안에 쏙 넣었지.
  털보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어.
  계산대를 지나지 않고 출입구로 그냥 당당하게 나왔지. 원래 계산 안 한 물건을 가지고 나오면 전자 출입구에서 “삑!” 하고 소리쳐. ‘되돌아가서 계산대의 기계로 바코드를 정확히 찍으시오.’ 하는 소리지.
  그렇지만, 달걀 한 알에는 계산을 돕는 바코드가 없어. 달걀을 포장한 종이 상자나 플라스틱 상자에 스티커가 붙어 있을 뿐이야. 그래서 털보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마트 밖으로 나왔어.
  털보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달걀을 살그머니 그러쥐었어.
  ‘무사해.’
  한참을 걸었어. 아무도 털보를 쳐다보지 않아. 그렇다면 안심이야.
  ‘흐흐, 도둑이 아니라 비밀 요원이 된 기분인걸.’
  이제부터는 비탈진 골목을 요리조리, 올라가기만 하면 돼. 털보는 호주머니의 달걀을 꺼내 두 손으로 감쌌어. 한 번씩 눈으로 확인하면서 가는 게 힘이 더 났거든.
  그런데 언제부터 뒤따라왔는지 고양이 녀석이 한마디 하지 뭐야.
  “야옹, 다 쓸어 담겠다더니 꼴랑 한 알이야?”
  그러더니 앞질러 가버리는 거야.
  털보가 말했어.
  “한 알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라고. 이건 금딱지가 붙은 임금님표 유정란이야. 완전 최고급 달걀. 제일 비싸고 제일 귀하고 제일⋯⋯.”
  “작은 거!”
  이번엔 비둘기였어.
  “트럭에 있는 달걀보다 작은데?”
  비둘기는 동네방네 다니는 달걀 장수의 트럭 이야기를 했어.
  “우리가 말이지, 하늘을 나는 우리는 눈이 밝거든. 우리는 모르는 게 없어. 그 달걀은 너무 작아.”
  털보는 비둘기가 그러거나 말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
  녹슨 대문은 여전히 열린 채 털보를 기다리고 있었어. 털보는 곧장 주방으로 가다가 멈칫했어.
  “못 참을 만큼 배고프진 않아.”
  시식 코너에서 배부르게 먹었으니까 그랬어. 그렇다면 지금이 아닌 내일 아침에 밥을 지어도 돼.
  털보는 냉장고 문을 열었어. 달걀을 잘 넣어둘 참이야.
  냉장고를 열자 김치 냄새가 확 덮쳤어. 군내가 심하다 못해 썩은 냄새 같았어.
  그렇다고 김치가 들어 있는 건 아니야. 김치는 진즉에 다 떨어진걸. 단지 김칫국물이 잔뜩 흘렀는데 그걸 닦지 않고 그대로 뒀기 때문이야.
  “행주로 닦을 걸 그랬나.”
  털보가 중얼거렸어. 사실 털보한테는 행주도 없어. 행주인지 걸레인지 수건인지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헝겊 쪼가리들이 있기는 해.
  털보는 냉장고 문을 탁 소리 나게 닫았어. 기분이 좋았지.
  “이건 대단한 달걀이야.”
  당연해. 대단한 도둑 대왕이 털어온 거잖아.
  털보는 그날 밤, 모로 누워 잠을 청했어. 옆으로 누워 팔짱을 끼면 왠지 누군가 곁에 있는 기분이 들거든.
  털보는 눈을 감고 노른자를 생각했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 위에 놓인 황금빛 노른자를.
  

3

  순전히 라면과 빵 때문이었어. 냉장고 안에 넣어둔 달걀을 까맣게 잊어먹은 거 말이야.
  원래 털보는 다음 날 달걀을 먹어치울 생각이었어.
  그런데 노란 조끼 입은 사람이 온 거야. 털보는 그 사람의 발소리가 닿기도 전에 집 뒤로 숨어버렸어. 그 사람이랑 뭔가 이야기를 나눌 자신이 없었거든.
  그 사람은 한참 서성이더니 털보의 방문 앞에 보따리 하나를 두고 갔어. 털보는 그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숨죽였어.
  보따리 안에는 라면이랑 빵이 있었어. 털보는 잔뜩 긴장했던 탓인지 배가 고팠어. 허겁지겁 빵부터 먹어치웠지. 그러고는 까맣게 잊었어, 대단한 달걀 한 알을.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어.
  따륵.
  털보는 숨을 죽였어.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지.
  따륵.
  “설마⋯⋯.”
  열린 냉장고 문을 붙잡은 채 털보는 침을 꿀꺽 삼켰어. 달걀이 조금씩 움찔움찔하는 게 분명해. 털보는 달걀을 조심스레 집어 들었어. 마침 햇빛이 창을 넘어 들어왔어. 햇빛에 달걀을 비춰봤지. 그렇지만 달걀 껍데기는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질 않아. 하지만 알 수 있었어.
  “말도 안 돼.”
  달걀을 원래 자리에 두고 냉장고 코드부터 살폈어. 전기 코드는 멀쩡하게 잘 꽂혀 있어. 하지만 윙 소리가 아예 안 나. 찬 공기를 만들어내는 그 소리 말이야.
  털보는 방문을 열어젖혔어.
  “비둘기야 비둘기야!”
  어쨌거나 알에 대해서라면 비둘기가 잘 알 것 같았거든. 비둘기가 그 소리를 듣고 날아왔어.
  그런데 고양이까지 나타나서 참견을 하지 뭐야.
  고양이는 뻔뻔하게 집 안으로 들어왔어. 마치 원래 방 안으로 드나들었던 것처럼 거리낌이 없었어.
  고양이는 신중하게 냉장고 주변을 여기저기 살폈어.
  “고장이네. 하필 알까기 딱 좋은 온도가 되었고.”
  비둘기는 퍼드덕퍼드덕 호들갑을 떨었어.
  “어머나 어머나, 어쩜 이리 기특해. 따스한 가슴 깃털로 품지 않았는데도 저 혼자 이리 깰 준비를 다 하다니, 대단해. 대단하고말고.”
  그러면서 쉬지 않고 또 비둘기 무리의 자랑을 늘어놓아. 하지만 털보는 잠자코 들어줬어. 대단한 달걀이라는 걸 비둘기가 인정해줬으니까 괜찮았어.
  “나중에 뾰족한 부리로, 그러니까 우리처럼 이런 부리로 살짝 건드려주면 좋아. 깨기 직전에 말이야. 그러면 나머지는 얘가 다 알아서 할 거야. 날개 달린 우리 애들은 똑똑하거든. 우리는 알 속에서 우리가 해온 방식대로 양분을 먹고⋯⋯.”
  비둘기는 마치 자기 일처럼 들떠 있어. 하지만 털보는 마냥 기쁘지 않았어. 오히려 당황스러웠지.
  고양이의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을 차렸어. 고양이가 이랬거든.
  “튀겨 먹을 거야? 구워 먹을 거야?”
  털보가 화들짝 놀라 되물었어.
  “뭐를?”
  “병아리! 밥에 비빌 순 없을걸.”
  털보는 펄쩍 뛸 뻔했어.
  “난 못해!”
  고양이는 시치미를 뚝 떼고 수염을 매만졌어. 마치 뭔가 먹고 나서 입가를 씻는 것처럼 말이야.
  털보는 툴툴댔어.
  “마트에서 파는 달걀이 병아리가 될 리 없잖아? 안 그래?”
  털보는 달걀이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잘난척쟁이 비둘기가 잘못 안 것이길 바랐어.
  그런데 고양이는 자꾸 이러는 거야.
  “털보 씨 말대로 유정란이 맞네. 냉장고 안은 딱 부화 온도가 맞았고. 기막히고 멋진 행운이야.”
  비둘기는 비둘기대로 퍼드덕거려서 털보는 눈앞이 어찔어찔했어.
  “좀 조용히 하라고!”
  털보가 꽥 소리쳤어.
  “야옹.”
  “꾸국.”
  둘 다 입을 다물었어. 털보는 한숨을 푹 쉬었어. 이제야 조용해졌으니까. 그런데.
  톡.
  셋은 동시에 눈이 마주쳤어.
  톡, 톡.
  이제 분명해졌어, 소리의 정체가.
  톡, 톡, 뽀지직.
  병아리가 깨어났어!
  비둘기는 조심스레 요리조리 부리를 놀리며 병아리를 도왔어. 끈적한 깃털에 붙은 달걀 껍데기를 조심스레 떼주었어.
  털보의 방바닥은 더러웠어. 더럽고 시커먼 방바닥 한가운데 작고 빛나는 것이 삐악삐악했어. 갓 난 병아리!
  털보는 눈을 뗄 수가 없었어. 신비로웠지. 그 조그만 눈이 아주 빛났거든.
  병아리는 축축한 날개깃을 완전히 펴지 못하고 바르르 떨었어. 털보는 어찌할 바를 몰랐어.
  비둘기가 말했어.
  “따뜻하게 해줘야 해. 우리 비둘기는 안 그래도 되지만, 인간이 기르는 족속들은 추위에 약해.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털보는 비둘기가 떠들거나 말거나 벌떡 일어섰어. 그러고는 보일러를 살피려고 한 거야. 하지만 도로 주저앉았지. 가스든 기름이든 연료가 없는데 무슨 수로 보일러를 틀겠어.
  털보는 한숨을 쉬었어.
  “전구 같은 게 있으면 좋은데⋯⋯.”
  털보에겐 심하게 깜빡거리는 형광등 한 개뿐이야.
  고양이가 혀로 앞발을 다듬으며 말했어.
  “훔쳐.”
  “뭐?”
  고양이가 말했어.
  “어느 집에 있는지 알아. 안내할게.”
  고양이는 이 동네 빈집에 대해 샅샅이 알고 있었어. 들락날락 여기저기 쏘다닌 게 분명해. 그러니 깨지지 않은 전구가 남아 있는 곳도 알았지.
  털보는 전구에 전깃줄을 연결하고 빈 상자로 병아리가 쉴 만한 곳을 만들었어. 병아리 집을 척척 만드는 털보를 보고 고양이가 깜짝 놀라 물었어.
  “손이 그렇게 빨랐어?”
  털보는 씩 웃었어.
  병아리는 차츰차츰 깃털이 뽀송뽀송해졌어. 삐악삐악 소리에 힘이 들어가자 비둘기는 자기 무리에게 가버렸어.
  “난 어린애들 시끄러운 거 귀찮더라.”
  비둘기는 자기가 시끄러운 줄은 몰라.
  고양이도 가버렸어.
  “야옹, 난 새 사냥꾼이라고! 차라리 얘를 안 보는 게 속 편하지.”
  털보도 병아리를 어째야 할지 몰랐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마디로 곤란했어.
  그래서 전화를 걸었지.
  “여보세요? 제가 거기서 훔친 걸 돌려드리고 싶은데요.”
  마트 직원은 그게 무어냐고 물었어. 털보는 사실대로 말했지. 병아리라고.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친절하게 들렸어.
  “저희는 병아리는 취급하지 않아요.”
  “아니, 처음엔 달걀이었는데요⋯⋯.”
  “당연하죠. 병아리는 원래 달걀이었겠지요. 그런데 저희 매장에서 없어진 달걀은 없습니다. 저희는 재고 관리를 최첨단 시스템으로 철저하게 관리합니다. 매장에 들여놓은 달걀, 판매한 달걀과 남은 달걀의 수가 딱 맞아떨어진다고요.”
  “그게 아니라, 그날 바코드가 안 찍혔거든요.”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카랑카랑해.
  “자꾸 장난 전화하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끊어버리는 거야.
  털보는 저절로 한숨을 쉬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병아리만 삐악삐악. 푸른빛이 감도는 물찌똥을 쌌어. 태어나 처음 누는 똥이야.
  털보는 똥을 닦았어. 이왕이면 끝까지 하자 싶어서 걸레를 빨아왔지. 그러고는 방바닥을 싹싹 훔쳐냈어. 닦고 또 닦았지.
  그날 밤 털보는 깨끗해진 방에 벌렁 누웠어. 혼자인데 혼자 같지 않은 밤이었어.
  

4

  병아리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어.
  털보가 쌀을 곱게 부숴주기도 하고 벌레를 잡아 잘게 찢어주기도 했어. 마당의 풀은 자기가 알아서 쪼아먹었고.
  털보는 여전히 투덜투덜 구시렁댔어.
  “너는 입, 아니 부리 안 아프냐? 종일토록 삐악삐악.”
  “너는 전깃불하고 햇빛하고 구분이 안 되냐? 불빛만 있으면 잠을 안 자요, 잠을.”
  털보는 병아리를 위해 검은 천을 덮어줬어. 그러면 병아리는 금세 조용해졌지.
  “너는 내가⋯⋯, 좋니?”
  병아리가 고개를 갸웃했어. 그러고는 삐악삐악 총총, 털보를 따라다녔지. 이리 가면 이리 종종 따라오고 저리 가면 저리 종종 따라오고 했어.
  털보가 나직하게 말했어.
  “나는 네가 좋다.”
  털보는 작업복 조끼 주머니에 병아리를 넣었어. 병아리는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어. 노란 솜털은 어느새 빠지고 윤기가 흐르는 누런 깃털이 자랐어.
  털보는 벽에 달린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봤어.
  “우린 한패야. 멋지지?”
  “꼮꼬.”
  병아리는 달라진 목소리로 답했어.
  털보는 병아리를 내려놓고 거울을 한 번 더 봤어. 이제 밖으로 나갈 거야.
  털보는 대문을 단단히 잠갔어. 페인트칠은 아직 못했지만, 제대로 닫히게 손을 봤지.
  “일 다녀올게. 집 잘 지켜라.”
  털보는 성큼성큼 아랫동네 시장 골목으로 갔어. 이른 새벽이지만 잠이 싹 깼어. 아주 상쾌해.
  털보가 시장에 나타나자 도매상 주인이 손을 흔들어.
  “저기 오시네. 우리 두 몫의 일꾼.”
  털보는 채소 상자를 척척 옮겼어. 지게차로 옮기기에는 시장 골목이 좁거든. 그러니 털보처럼 힘세고 부지런한 사람이 옮기는 게 나아.
  시장 사람들은 털보더러 두 사람 몫의 일을 한다며 칭찬했어. 하지만 품삯은 한 사람 몫을 줬어. 대신 품삯에 얹어주는 선물이 있었지. 그건 바로 신선한 푸성귀였어.
  그날 골목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야. 털보네 집에서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흘러나오네. 배춧잎을 듬뿍 넣은 국이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배춧잎은 더 달아져.
  밥도 뜸이 다 들었어. 털보가 새로 사 온 쌀이야.
  “쌀자루는 훔치기엔 너무 크잖아, 안 그래?”
  털보는 너털웃음을 터뜨렸어.
  털보는 묵은쌀 봉투를 열었어. 벌레 먹은 쌀이야.
  털보는 안 먹지만 병아리는 아주 좋아하는 특식이지. 얼추 중닭으로 자란 병아리가 배춧잎을 연신 쪼고 있어. 날카로운 발로 배춧잎을 헤치며 찢는 품이 제법 사나워 보이기도 해.
  털보가 말했어.
  “암만 봐도 네가 두목 같다. 어이, 두목! 저녁 맛있게 먹자고.”
  털보는 한 숟가락 푹 밥을 떴어. 두 몫의 일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하는 법이잖아.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