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에 하마가 있습니다

  

  “어디 보자, 구구단 9단까지 외워볼 사람?”
  선생님이 묻자 태랑이가 손을 번쩍 들었어요.
  “태랑이 빼고는 구구단 다 외운 사람 없는 거야? 태랑이 일어나서 2단부터 외워볼까? 다른 친구들도 잘 들어봐요.”
  사실 손 든 사람은 한 명 더 있었어요. 상이가 책상 서랍 속에서 집게손가락을 몰래 세워 들었거든요.
  상이가 화장실에 줄 서 있을 때였어요. 상이 차례에 까불이 준영이가 뛰어와 빈칸으로 후다닥 들어갔어요. 상이는 준영이에게 “너 차례를 안 지키면 어떡해!” 하고 단단히 따지지⋯⋯ 못하고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봤어요.
  ‘내가 안 보이나?’
  교실에 돌아온 상이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떠들썩한 태랑이 뒤에 앉았어요. 상이의 자리죠. 태랑이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어요.
  “와, 너 트리케라톱스 티셔츠 입었네?”
  세 개의 뿔을 가진 트리케라톱스 공룡이 그려진 붉은 티셔츠는 상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에요. 태랑이와 같이 있던 친구들까지 상이에게 눈길을 보내자, 상이 얼굴은 붉은 티셔츠만큼 붉어졌어요.
  “너, 공룡 종이접기도 엄청 잘한다며?”
  태랑이가 물었죠.
  “응. 우리 집에 많아.”
  상이 목소리는 작았지만 반짝였어요. 상이가 관절 하나, 뿔 하나, 콧구멍까지 조심조심 종이로 접은 공룡들은 상이의 보물이랍니다.
  “보고 싶다. 오늘 너네 집 놀러 가도 돼?”
  “맞아, 상이네 집 한 번도 못 가봤잖아.”
  태랑이와 친구들이 “좋아, 가자!” 외치며 방방 뛰었어요.
  상이 얼굴이 컴컴해졌어요. 상이는 침을 꼴깍 삼키는 동안 거짓말을 생각해냈어요.
  “오늘 엄마가 춤춘다고 친구들 절대 데려오지 말랬어.”
  “추움?”
  친구들은 놀란 나머지 ‘춤’의 ‘움’ 발음을 한 그대로 입술을 내밀고 있었어요. 오리들처럼.
  “그럼 내일 학교에서 구경하자. 가져올 수 있지?”
  태랑이가 오리 입술을 넣으며 말했어요.
  집으로 가는 길은 빨간 단풍잎으로 가득했어요. 붉은색 셔츠를 입고 통통 달리는 상이도 빨간 단풍잎 같네요. 내일 공룡들 자랑할 생각으로 신이 난 빨간 단풍잎이 초록 지붕 앞에서 우뚝 멈췄어요. 상이네 집이지요.
  초록 지붕 담벼락 위로 엄마가 솟았다가 하마가 솟았다가 했어요. 공중에서 휘청하는 엄마 몸이 춤추는 것 같긴 했어요.
  ‘으이구, 저놈의 시소.’
  상이는 속으로 생각했지요.
  담벼락 위로 떠오를 때마다 좋아서 꾸엑거리는 저 하마가 상이의 동생이에요. 정말이에요. ‘하마 같은’ 녀석이 아니라 ‘하마’가 바로 상이의 동생이라고요.
  아빠와 놀이터에 처음 갔을 때, 하마 동생은 시소에 반했답니다. 하마 동생이 시소에 쿵 앉으면 놀이터 아이들이
  “우리 다 날아가겠다!”
하고 소리 지르며 집으로 달려갔어요.
  아빠는 마당에 시소를 만들었지요. 하마 동생 맞은편 자리에는 모래주머니 백 개를 달아 같이 타는 사람이 날아가지 않게요. 엄마, 아빠, 상이 말고는 아무도 같이 타주진 않았지만요.
  여섯 살 하마 동생은 말을 할 줄 몰라요. 똥은 어마어마하게 쌌지요. 똥 쌀 때 꼬리를 빠르게 흔들어서 똥을 집 안 여기저기로 날려버렸어요.
  하루는 엄마가 벽에 묻은 똥을 치우다가 우앙 하고 울었어요.
  “내 속에서 어쩌다가 하마가 나왔을까?”
  상이는 엄마를 울게 하는 하마 동생이 미웠어요. 밤이면 엄마는 철퍼덕 엎드려 잠을 자는 동생의 귀를 만지며 말했어요.
  “어쩜 귀가 이렇게 작고 귀여울까? 잘 떠낸 수제비 같구나. 상이야, 우리 수 좀 봐라. 초원에서 온 천사 같지 않니?”
  수는 하마 동생의 이름이에요. 수, 수, 수. 엄마는 하루 종일 수만 부르고 수만 바라보고 수만 만져줘요. 물론 상이의 이름도 부르긴 해요.
  “상이야, 동생 좀 보고 있어. 엄마가 저녁 맛있게 만들어줄게.”
  “상이야, 동생한테 장난감 좀 빌려줘. 넌 형이잖아.”
  “상이야, 세상 사람들이 다 우리 수를 하마라고 안 놀아줘도 우리만은 수랑 놀아주자. 우리는 수의 엄마, 아빠, 형이니까. 이리와 내 새끼들.”
  엄마는 상이랑 하마 동생을 양팔로 꽉 안아주곤 했어요. 하마 동생은 다리 한 짝을 안을 수 있었지만요.
  상이가 대문을 열자 하마 동생이 시소에서 뛰어내려 뱃살을 쿵쿵 흔들며 달려왔어요. 그 바람에 엄마가 바닥에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아이고 허리야. 갑자기 뛰어내리면 안 된다고 했지⋯⋯ 상이야, 엄마 슈퍼 잠깐 갔다 올게. 상추가 다 떨어져서. 수랑 시소 타면서 놀고 있어.”
  상추는 하마 동생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에요. 앉은 자리에서 오백 장도 넘게 먹는답니다.
  상이는 먼저 부엌으로 갔어요. 하마 동생도 따라왔지요. 상이가 냉장고에서 포도 주스를 꺼내 유리컵에 따르자 하마 동생도 자신의 물통을 코로 밀었어요. 상이는 세숫대야만큼 큰 하마 동생의 물통에 포도 주스를 부었어요.
  하마 동생은 형 따라쟁이예요. 하마 동생 목 뒤에 앙증맞게 매달린 파란 배낭도 상이 책가방과 똑같은 거랍니다. 하마 동생이 하도 형의 파란 배낭을 뺏어서, 엄마가 하나 더 사 목에 맬 수 있게 고쳐줬어요.
  하마 동생이 포도 주스를 깔딱깔딱 먹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상이는 쪼르르 자기 방으로 가 문을 쾅 닫았는데⋯⋯ 문이 안 닫히네요. 문 사이로 상이 주먹보다 큰, 때 묻은 발톱 하나가 껴 있었어요. 하마 동생의 새끼발톱이었죠.
  “야, 발가락 빼.”
  하마 동생의 발톱은 꼼짝도 안 했어요.
  “안 빼면 그냥 닫아버릴 거야. 다쳐도 몰라.”
  상이는 엉덩이로 있는 힘껏 문을 밀었어요. 문이 조금씩 닫히는가 싶다가 하마 동생 발톱 네 개가 훅하고 들어와 문이 펑 하고 열려버렸답니다. 상이가 들고 있던 포도 주스 잔이 책상에 떨어졌지 뭐예요. 상이는 얼음처럼 얼어버렸어요. 눈도 깜박이지 않고, 팔도 유리잔을 들던 그대로. 심장이 스스로 움직이는 장기가 아니었다면 상이의 심장도 멈췄을 거예요.
  “내⋯⋯ 공룡⋯⋯.”
  책상 위에 늠름하게 서 있던, 종이로 접은 공룡들이 포도 주스를 흠뻑 뒤집어썼으니까요. 신문지 여러 장을 붙여서 접은, 상이 다리만 한 크기의 브라키오사우루스도, 등에 난 골판을 하나하나 접느라 상이 목이 빠질 뻔했던 스테고사우루스도, 뿔이 세 개 난 멋진 트리케라톱스, 귀여운 프로토케라톱스도 모두 피를 뚝뚝 흘리는 것 같았어요. 상이는 가장 사랑하는 트리케라톱스를 손에 들고 하마 동생을 향해 소리를 질렀어요.
  “야! 이 괴물아!”
  하마 동생이 코를 벌름거리며 뒷걸음질 쳤어요.
  “내가 좋아하는 건 다 네가 망쳤어. 지난번에 내 축구공도 송곳니로 뚫어버렸잖아.”
  아빠가 상이 생일선물로 사다준 축구공이었죠.
  “엄마도 하루 종일 네가 차지하고.”
  트리케라톱스에 물방울이 떨어졌어요. 상이의 눈물방울이.
  “네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흐흑, 너만 우리 집에 없으면 엄마랑 아빠도 안 힘들고, 우리 셋이서 매일 하하하 재밌게 살 수 있단 말이야. 친구들도 데려오고 말이야.”
  상이는 문을 쾅 닫아버렸어요. 울다가 잠이 들었지요. 상이가 눈을 떴을 때 집 안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엄마는 항상 말했었죠.
  “시끄러울 때보다 조용할 때 더 신경 써야 해.”
  엄마는 하마 동생이 보이지 않고 조용하면 벌떡 일어나 외쳤어요.
  “안 돼!”
  하마 동생이 어딘가에서 사고를 치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상이는 하마 동생이 또 사고나 친 건 아닌가 걱정됐어요.
  “엄마가 아직 안 왔네?”
  현관에 엄마의 주황색 슬리퍼가 없었어요.
  상이는 부엌이랑 엄마, 아빠 방이랑, 화장실이랑 빼꼼 들여다봤어요. 하마 동생은 자기 방에서 낮잠을 자는 걸까요?
  상이는 하마 동생 방문 앞에서 침을 꼴깍 삼킬 동안 망설였어요. 동생한테 못되게 말했으니까요.
  “수야, 자니? 아까는 형이 미안해.”
  상이가 하마 동생의 방문을 열었을 때, 상이는 눈을 찡그렸어요. 눈이 부셔서요. 모든 게 초록이었는데⋯⋯ 초원이었어요. 끝도 없이요. 상이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봤어요. 지평선에 기린들이 줄지어 걸었어요.
  “크아앙.”
  어딘가에 사자도 있나봐요. 상이는 너무 무서워 얼른 문을 닫으려다가, 닫지 못했어요. 상이는 보았지요. 작고 말라비틀어진 어린 바오바브나무와 그 나뭇가지에 걸린 파란색을요. 상이는 바오바브나무까지 뛰어가 나뭇가지에서 파란색을 끌어 내렸어요. 하마 동생이 항상 목에 메고 다니는 파란 배낭을.
  동생의 파란 배낭을 든 상이의 손이 떨렸어요. 엄마는 하마 동생이 초원에서 온 천사라고 했는데 초원으로 돌아간 걸까요? 하마 동생은 한 번도 혼자서 어디를 가본 적이 없는데 어쩌죠? 상이는 파란 배낭을 꼭 안았어요.
  ‘내가 없어지라고 해서⋯⋯.’
  상이는 엄마처럼 우앙 하고 울어버렸어요.
  그때 익숙한 냄새가 났어요. 세상에서 제일 구린 냄새. 너무나 반가운 냄새. 동생의 똥 냄새였지요. 킁킁, 상이는 동생처럼 코를 벌름거렸어요. 꼬리를 흔들어 여기저기 흩뿌려놓은 동생의 똥 냄새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지요.
  똥 냄새가 희미해질 쯤, 우산아카시아나무 아래 떡 하니 누워 있는 바위만 한 등짝을 발견했어요. 저 등짝은⋯⋯.
  “수야? 수야!”
  상이는 바위만 한 등짝을 향해 한걸음에 달렸어요. 앞에서 보니 기다란 코가 덜렁거렸어요. 코끼리였지요. 상이는 크게 실망했지만 어쩌면 코끼리가 알지도 모르잖아요?
  “코끼리 아저씨, 꼬마 하마 못 보셨어요?”
  코끼리가 누운 채 다리를 흔들며 말했어요.
  “안 들려, 안 들려. 아파서 안 들려. 발바닥에 가시가 박혀서 안 들려.”
  코끼리의 진흙투성이 발바닥에는 우산아카시아나무 가시들이 수십 개나 박혀 있었어요. 상이는 손톱으로 가시들을 쏙쏙 뽑아줬어요. 손톱을 안 자르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요.
  “끄어억, 까아악.”
  코끼리 비명이 초원에 울려 퍼졌어요. 우산아카시아나무 그림자가 껑충 자리를 옮겼을 때쯤 상이가 허리를 펴며 말했어요.
  “아휴! 이게 마지막 가시예요.”
  코끼리는 벌떡 일어나 네 발을 꽝꽝, 꼬리를 휙휙, 코를 꿀렁, 기쁨의 춤을 췄어요.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엄마, 할머니가 기다릴 텐데. 고마워.”
하며 달려갔어요.
  상이는 멀어져가는 코끼리 엉덩이를 향해 소리쳤어요.
  “꼬마 하마 본 적 있는지 말해줘야죠!⋯⋯ 가시만 뽑고 가네.”
  상이는 힘없이 주저앉았어요.
  그때였어요.
  “아, 그 하마?”
  코끼리가 누웠던 자리에 구덩이가 하나 있었어요. 그 구덩이에서 미어캣이 새싹처럼 뽁 하고 솟아 나오며 물었답니다.
  상이는 일어나서 손짓 발짓으로 동생의 모습을 설명했어요.
  “봤어요? 동생이에요. 턱이 이이이이만하고, 입이 이이이이만하고, 귀는 수제비 같고⋯⋯.”
  미어캣의 눈은 사방을 살폈고 입은 빠르게 움직였어요.
  “하마의 형.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 바로 너와 나의 연결고리!”
  “너와 나의 연결고리?”
  미어캣은 구부러진 발톱으로 땅을 파더니 잽싸게 뭔가를 낚아챘죠. 전갈이에요. 전갈의 집게발을 씹어 먹으며 미어캣이 말했어요.
  “이 전갈을 내가 먹고, 아 끔찍하지만, 나를 언젠가 하이에나가 먹고, 하이에나는 죽으면 썩어서 풀을 자라게 하고, 그 풀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를 전갈이 먹고, 그 전갈을 나의 후손인 미어캣이 먹지. 이게 바로 연결고리야. 모든 것은 연결돼 있지. 초원의 법칙이니까.”
  “그럼 날 먹는다는 거예요?”
  “넌 너무 맛없게 생겼어. 대신 뭔가를 나에게 줘. 그래야 나도 네 동생에 대한 답을 주지.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생긴 거니까.”
  “난 아무것도 없는데⋯⋯.”
  미어캣은 상이의 몸을 타고 올라와 등에 있는 파란 가방에 매달려 말했어요.
  “너 등에 혹이 났구나. 낙타처럼 말이야. 뭐야, 혹이 텅 비었네?”
  “가방인데.”
  “이 안에 숨어서 망을 보면 딱이겠어. 텅 빈 혹을 줘. 연결고리로.”
  상이는 침을 꼴깍 삼키는 동안 고민했어요. 동생이 아끼는 파란 가방이니까요.
  “자요. 이제 말해줘요. 내 동생이 어디로 갔는지?”
  미어캣은 파란 가방을 뒤로 감추더니 하늘을 보며 말했어요.
  “나도 몰라.”
  “뭐? 안다고 했잖아요.”
  “언제? 난 그냥 ‘하마’라는 동물을 안다고 했지. 하지만 하마가 어딨는지 알 만한 자를 알고 있어. 싫으면 말고.”
  “누구죠?”
  “하마는 풀을 좋아하지. 그러니까 풀을 먹는 자 중 ‘가장 용감한 뿔’을 찾아가. 그자는 분명히 알고 있을 거야.”
  상이는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미어캣이 알려준 대로, 낮은 언덕을 오르자, 거대한 바오바브나무가 나타났어요. 상이는 그 바오바브나무 뒤에서 쉬고 있는 누 한 마리를 발견했어요. 세상에, 그 누는 상이가 매달리기를 해도 될 만큼 크고 멋진 뿔을 가지고 있었어요. 두 개나!
  “당신이 ‘가장 용감한 뿔’인가요?”
  “쉿! 내 이름 부르지 마. 숨어 있는 거 안 보여?”
  “숨어 있어요? 가장 용감한 뿔이?”
  “헉, 들판의 누들이 들으면 어떡해.”
  가장 용감한 뿔은 뿔 하나로 상이의 붉은 셔츠를 꿰어 바오바브나무 뒤로 끌어당겼어요. 그러고 보니 들판엔 수백 마리의 누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었어요.
  “왜? 도대체 나는 왜 찾아?”
  “하마 동생을 찾고 있어요. 턱이 이이이이만하고, 입이 이이이이만하고, 귀는 수제비 같고⋯⋯.”
  “동생이 어딨는지 모르지만, 하마라면 탕탕호수에 있을 거야. 이 초원의 모든 하마들은 탕탕호수에서 하루 종일 물장난을 치거든.”
  누는 뿔로 남쪽을 가리켰어요. 상이는 남쪽으로 깡충깡충 몇 발자국 뛰어가다 돌아왔어요.
  “참, 초원의 법칙을 깜빡했어요. 너와 나의 연결고리! 동생이 있는 곳을 알려줬으니 나도 무언가를 줄게요. 나한테 갖고 싶은 거 있어요?”
  가장 용감한 뿔은 상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으로 훑었어요.
  “초원에 그런 법칙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갖고 싶은 건 있어. 나에게 너의 용기를 줘.”
  “나의 용기? 난 용기가 없는데요?”
  “거짓말. 주기 싫어서 그런 거지? 넌 동생을 찾으려고 혼자서 초원을 건너는 용감한 아이잖아.”
  가장 용감한 뿔은 들판의 누들을 내려다봤어요.
  “여긴 풀과 잎과 꽃들이 점점 말라비틀어지고 있어.”
  뿔이 아주 먼 하늘을 가리켰죠.
  “머지않아 저쪽 하늘에서 빛이 번쩍할 거야. 그러면 그곳에 비가 내리고 새 풀들이 자라지. 나는 수만 마리의 누를 이끌고 새 풀을 찾아 떠난단다. 사실 너무 무서워. 도망가고 싶을 만큼. 악어들이 입을 쩍쩍 벌리고 우릴 기다리는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하거든. 맨 앞에서 말이야.”
  상이는 침을 꼴깍 삼킬 동안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가장 용감한 뿔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까요? 상이는 자신의 붉은 셔츠를 벗어 내밀었어요.
  “나의 용기예요. 여기 세 개의 뿔 보이죠? 트리케라톱스라는 공룡인데요. 풀을 먹는 동물 중에 가장 용감해요.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사나운 육식 공룡을 이 뿔로 받아버린다니까요.”
  가장 용감한 뿔의 눈이 빛났어요.
  “그래? 정말? 어서 그 용기를 내 오른쪽 뿔에 묶어줘.”
  상이가 누의 뿔에 붉은 셔츠를 묶었어요. 바람이 불자 가장 용감한 뿔의 용기가 휘날렸어요.
  상이는 뜨거운 초원을 걷고 또 걸었지요. 동생을 만나면 따끔하게 귀를 백 번 잡아당길 거라고 결심할 무렵, 탕탕호수가 나타났어요.
  호수 가장자리에 물상추가 잔뜩 자라고, 한가운데에는 수백 마리의 하마들이 친구의 등에 턱을 베고 줄줄이 낮잠을 자고 있네요.
  이럴 수가! 모두 비슷하게 생겼어요. 다 턱이 이이이이만하고, 입이 이이이이만하고, 귀는 수제비 같고요.
  “수야!”
  상이가 동생의 이름을 불렀어요. 하마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어요. 동생이 없는 걸까요? 단단히 삐쳐서 형이 꼴도 보기 싫은 걸까요?
  상이는 온 뱃심을 모아 외쳤지요.
  “수야, 시소 타러 가자.”
  하마 한 마리가 눈을 번쩍 떴어요. 발로 물을 잽싸게 저어 상이에게 다가왔답니다.
  “수야, 너 헤엄 진짜 잘 친다!”
  상이는 동생의 귀를 백 번 잡아당기는 대신, 동생을 꼭 안아줬어요. 물론 다리 한 짝을요.
  “미안해. 내가 못되게 말해서.”
  동생이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휘저어 물을 튕겼어요. 상이도 손으로 물을 튕겼어요. 다른 하마들도 형제에게 물을 튕겼어요. 모두 흠뻑 젖도록 물장난을 했지요. 그때 먼 하늘에서 번쩍하고 번개가 쳤답니다.
  “이제 집에 가자. 엄마가 걱정해.”
  상이가 하마 동생의 젖은 꼬리를 잡고 말했어요. 하지만 상이는 알지 못했죠. 집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 말이에요.
  두두두두 두두두두. 땅이 울리기 시작했어요.
  흙먼지가 구름처럼 일더니 수만 마리의 누 떼들이 달려갑니다. 새로운 풀을 찾아 먼 곳으로 가는 거예요.
  동생이 엎드려 상이를 큰 턱으로 당겼어요.
  “네 등에?”
  상이가 하마 동생의 등에 올라탔어요. 하마 동생이 누 떼를 따라 달렸어요.
  “수야, 너 엄청 빠르다!”
  상이는 떨어지지 않게 동생의 귀를 꽉 잡았어요.
  강기슭에 도착하자 누들이 움직이질 않았어요. 아래를 내려보던 상이는 숨이 멎는 줄 알았지요. 악어들이 어찌나 많은지 강물이 안 보일 정도였다니까요.
  겁에 질린 누들은 점점 뒤로 물러났어요. 여기저기 우는 소리가 시끄러웠어요. 빨리 도망가려고 뿔끼리 밀치고 싸우기도 했죠.
  두두두두.
  누 한 마리가 기슭을 달려 내려갑니다. 조금도 망설임 없이 강물에 풍덩 뛰어들었죠. 그 누의 뿔에서 붉은 깃발이 펄럭였어요. 가장 용감한 뿔은 쩍 벌어진 악어 입보다 더 높이 뛰어올랐어요. 굳센 발굽으로 악어 입을 밟으며 달렸지요. 마침내 강 건너 기슭 위로 올라갔답니다.
  용기를 얻은 누들이 하나, 둘 강물로 뛰어들었어요. 가장 용감한 뿔처럼 악어 입을 밟으며, 두려움보다 더 빨리 달렸어요. 마침내 모든 누들이 무사히 건너편 기슭에 도착했지요. 아기 누들과 상이와 하마 동생만 빼고요.
  아기 누들이 다리를 떨며 누우, 누우 하고 울었어요. 상이는 침을 꼴깍 삼키고, 더 삼키고, 또 삼키며 생각했어요. 아기 누들이 무사히 강을 건널 방법을요. 건너편에 있는 엄마 누들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어요.
  “우리 아기가 새라면 여기까지 날아 올 텐데⋯⋯ 저 강을 어찌 건너나.”
  상이 눈이 커졌어요.
  “새? 그렇지, 새야!”
  상이는 하마 동생에게 바오바브나무를 쓰러뜨려달라고 부탁했어요.
  “수야, 여기 이 바위 위에 바오바브나무를 쓰러뜨려야 해. 반드시 이 바위 위에.”
  하마 동생은 바오바브나무를 쿵 하고 머리로 받았어요. 쿵. 쿵. 쿵. 열 번쯤 하자 거대한 바오바브나무가 우지끈 무너졌어요. 상이가 말한 바위 위로 털썩.
  “수야, 아까 형이 시소 타자고 했지? 지금이야, 시소 한번 신나게 타볼까?”
  바위 위에 누운 바오바브나무는 영락없는 시소가 됐거든요. 한쪽에 아기 누 수십 마리가 앉자 반대쪽에 하마 동생이 쿵 하고 앉았어요. 아기 누들은 강 위를 훨훨 날아 건너편에 내려앉았지요.
  하마 동생은 시소를 타고 또 탔어요. 아기 누들도 날고 또 날았죠. 마지막 아기 누까지 저쪽 기슭에 도착하자 가장 용감한 뿔이 외쳤어요.
  “내가 내려가서 악어들의 관심을 끌 테니 그때 하마 동생이랑 이쪽으로 넘어와.”
  “안 돼요. 위험해요.”
  그러다 가장 용감한 뿔이 악어에게 먹히면 어떡해요? 상이는 침을 꼴깍, 꼴깍 삼켰어요. 아, 이번엔 정말 방법이 떠오르질 않네요.
  그때였어요.
  “찾았다, 찾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죠? 저기 코끼리가 달려오고 있었답니다. 엄마, 할머니, 동생들과 함께요. 코끼리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어요.
  “탕탕호수의 하마들이⋯⋯ 헉헉⋯⋯ 네가 누 떼를 따라갔다고 알려줬어. 헉헉⋯⋯ 못 만날까봐 쉬지도 않고 달려왔다고. 헉헉.”
  “무슨 일이에요?”
  상이가 물었죠.
  “집에 갔더니 할머니한테 혼났어. 생명을 살려준 은인한테 은혜도 갚지 않고 왔다고 말이야. 우리 가족의 가훈이 ‘은혜를 갚지 않으면 삼대가 재수 없다’거든. 그래서 삼대가 같이 왔어.”
  코끼리가 말하자, 뒤에 있던 삼대 가족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제발 소원을 말해줘. 은혜를 갚아야 하니까.”
  코끼리가 사정했어요.
  자, 이렇게 해서 코끼리 삼대는 시소를 타게 됐지요. 한쪽에는 상이와 동생이 앉고요, 다른 쪽엔 코끼리 가족이 쿠우우웅 하고 앉았어요.
  상이와 동생은 슈우우우웅 날아올랐어요. 날아도 너무 높이 날아올랐죠. 상이와 동생이 도착한 곳은 동생의 침대였어요. 상이와 하마 동생은 침대 위를 방방 뛰었지요.
  “우리가 해낸 거야!”
  동생이 꾸엑꾸엑 웃었어요. 어? 동생의 웃는 이이이이입이 이렇게 귀여웠었나? 하고 상이는 생각했답니다.
  “상추 사 왔다. 내 새끼들, 어딨니?”
  엄마 소리가 났어요. 상이와 하마 동생이 방문을 벌컥 열었어요.
  “엄마, 상추 사러 갔다가 이제 온 거예요?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무슨 소리야. 발이 안 보이게 뛰어갔다 왔는데? 수가 좋아하는 상추랑, 상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 왔지.”
  그날 밤, 상이는 가장 아끼는 반짝이 초대형 색종이를 꺼내 접었어요. 턱이 이이이이만하고, 입이 이이이이만하고, 귀는 수제비 같은 하마를요.
  
  

차영아

2016년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우수상 수상. 동화 『쿵푸 아니고 똥푸』 『까부는 수염과 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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