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는 어떤 것

  

  태종대 몽돌해변은 귀여운 이름과 달리 내게 우울한 곳이다. 
  매끈매끈한 돌들이 많은 이곳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삐용이와 산책했다. 삐용이는 돌 틈에 코를 박고 관찰하기를 좋아했는데, 그곳엔 종종 꽁지가 없어도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작은 게들이 있었다. 내가 뉴진스와 아이브 사이에서 선곡을 고민하는 동안 삐용이는 축축한 코를 들이밀고, 얇은 분홍색 혀를 날름거리며 제 세상의 바다를 누볐다. 그러다 자기 앞발만 한 게가 코를 콱 물어버리면 간식을 뺏긴 것처럼 크게 울어대면서 엄살을 부렸다.
  둥글둥글한 몽돌을 닮아 정수리가 매끈한 그 강아지를 나는 정말로 사랑했다.
  “너 5반 맞지.”
  “응.”
  “나 본 적 없어?”
  오늘도 익숙한 그리움에 다이빙을 해보려던 참이었다.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이마가 삐용이의 정수리만큼 둥그런 남자아이가 말을 걸었다. 
  나는 눈앞의 얼굴을 모르지 않았다.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지만 복도를 오다가다 자주 마주쳤으니깐. 반이 다르니 인사를 나눌 필요도, 알은체할 필요도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얼굴만큼은 같은 반의 친하지 않은 아이보다도 더 눈에 익었다.
  그림자가 화려한 아이들은 벚꽃이 시들기도 전에 이미 1반부터 5반까지를 자신의 이야기로 꽉 채웠다. 누가 아이돌을 닮았대, 누구 집이 잘산대, 누구네 아빠가 경찰이래. 놀라운 말부터 그럭저럭인 말까지. 소문에도 서열이 있기에 차례대로 아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다가 단물을 상실하고는 최후가 되면 흐릿해졌다. 마치 처음부터 재미없었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그러고 나면, 한 번도 아이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없던 이야기들만 비밀스럽게 남아 복도를 서성였다. 그들 중에 일부는, 관심을 끌 만큼 달콤한 향이 없는 주제에 이상하게 나를 잡아당겼다. 그래서 네 얼굴을 기억하는지도 몰랐다.
  지난주에는 없던 뾰루지가 턱 끝에 났구나, 나는 제법 선명한 기억의 교차를 감춘 채로 시치미를 뗐다.
  “너 본 적 없는데.”
  “거짓말. 난 네가 지난주에도 여기 온 거 아는데.” 
  “그래서?”
  남자아이는 자신의 예상을 빗나가는 퉁명함에 당황했는지 바다를 보며 딴청을 피웠다. 일요일 이른 오전의 태종대는 관광객이 없어 한산했다. 요즘 사람들은 작은 바다를 좋아하지 않으니 해운대나 광안리처럼 넓은 해변이 아니면 관심을 주지 않았다. 쓸쓸하게 남은 바다는 외로운 줄도 모르는지 바람을 따라 고양이 앞발 같은 둥근 파도를 들어 올렸다. 하늘과 바다는 모두 푸르러서, 경계가 모호해질 때까지 뒤섞이길 좋아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남자아이의 한숨 소리를 신경 쓰지 못했다. 그저 커다란 파도 소리만 귓가에 닿았다. 바닷바람은 조금 차가웠고, 나쁘지 않은 소금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햇살만큼은 따뜻해서 끈적한 피부를 바싹 데웠다.
  남자아이는 오기가 생겼는지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축축한 돌 하나를 쥐었는데, 까맣고 작은 게 꼭 삐용이의 코처럼 생겼다.
  “그 돌 줘봐.”
  “왜?”
  “그냥 줘봐.”
  나는 삐용이의 코를 물수제비로 희생시키기 싫어서 멋대로 뺏어버렸다. 남자아이는 당황했는지 웃지도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를 타이밍을 놓친 옆머리가 제법 길었다. 바람의 움직임을 따라 선선히 흔들리는 검은 곡선들이 보기 좋았다.
  인사를 거절한 주제에 돌을 뺏어가는 여자아이를 예뻐할 리 없는 남자아이는 퍽 불쾌한 척을 했다. 하지만 그 안에 어둑한 감정이 차오르진 않았기에 얼굴을 바라보아도 싫지 않았다. 눈을 맞추고 있자, 남자아이가 다시 말을 걸었다.
  “너 되게 버릇없다.”
  “내가?”
  “그래. 너.”
  “버릇없다는 말은 어른들이 하는 말인데 네가 나한테 왜 하니?”
  “너 나 모른다며. 내가 너보다 나이 많을 수도 있잖아.”
  “뭐래. 중3인 거 다 알거든.”
  남자아이의 피식거리는 웃음이 파도 소리 밑에 깔렸다.
  “거봐. 너도 나를 알고 있네.”
  나는 모른 척이 들킨 게 부끄러워 삐용이의 코를 그냥 바다에 휙 던져버렸다. 삐용이의 코는 하얀 탑처럼 물결을 세로로 세우고선 이내 사라져버렸다.
  집에 가져가려 했는데.
  “그냥 복도 지나가다 본 게 다야. 난 네가 누군지 몰라.”
  “나도 너 몰라. 근데 네 옆을 지나가면 항상 아이돌 노래 들리는 거 알아? 너 소리 진짜 크게 듣더라. 그러면 귀 나빠진대.”
  나는 그제야 귀에 에어팟을 꽂고 있음을 자각하고는 예의상 빼주었다.
  남자아이는 이름을 묻지 않았다. 친해질 이유가 없는 우리 둘 사이에 어색한 자기소개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대화 없이 머쓱한 시간이 지났다. 알은척이 목적이었다면, 완수했으니 떠나도 될 텐데 남자아이는 계속 옆에 앉아 있었다. 혼자였다면 느끼지 않았을 적막이 어색함으로 변신하는 중이었다.
  마음이 불편해질 때쯤 그 아이가 침묵 사이로 불쑥 끼어들었다.
  “나 오늘 아침에 달걀 토스트 먹었다.”
  네가 아침에 뭘 먹었는지가 나랑 무슨 상관일까. 나는 아까처럼 ‘그래서?’라고 냉랭히 받아치려다가 더 어색해질 것 같아 별말을 남기지 않았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알아서 떠나겠지 싶었다.
  “너는 뭐 먹었어?”
  하지만 이렇게 질문을 해버리면 곤란해진단 말이지. 나는 남이 물어본 말을 무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질문과 대답 사이에 흘려보내야 하는 고요함을 견디기 힘들어하곤 했다. 나는 응하고 싶지 않은 대화에 너무 많이 응하며 살았다.
  “안 먹었어.”
  “다이어트?”
  “아니. 여기 오는 날에는 입맛이 없어서.”
  “너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보네.”
  그 말과 함께 남자아이는 나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먼바다 끝으로 시선을 돌렸다. 태종대와 영영 이별하려는 바다가 다른 세계까지 무한히 펼쳐지는 중이었다.
  한마디의 말이 많은 말을 대신할 때가 있다. 1반에서 5반까지 통과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 하나 정도는 통과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가 먼발치서 바람을 타고 불어왔다. 모두가 다 아는 말보다 나만 들을 수 있는 말들. 언제나 내게는 그런 말들이 더 재미있었다. 턱 밑에 뾰루지를 달고도 고개 숙이지 않는 너는 내게 그런 말이 되려 했다.
  하지만 나의 것이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때로는 응하고 싶지 않은 대화에 응하는 것이라 피곤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네 말은 궁금하지 않노라 생각하려 했다. 다짐을 위해 바라본 남자아이의 옆모습이 낯설었다. 복도에서 마주쳤을 땐 못 봤는데 원래는 안경을 쓰고 다니는지 눈 앞꼬리와 콧대 사이에 동그랗게 짓눌린 자국이 있었다.
  “눈 나쁜가봐?”
  “아닌데. 오른쪽 1.5, 왼쪽 1.2인데.”
  “눈 앞꼬리에 안경 자국 아니야?”
  “맞아. 근데 눈 나빠서 쓰는 건 아니고 그냥 나한테 잘 어울려서. 오늘은 깜빡했는데 쓰고 올걸.”
  어울리지 않게 외모에 자신 있어 하는 모습이 황당하여 나는 웃는 척만 하고 말았다.
  “근데 너 아직 대답 안 해줬네.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말이야.”
  파도가 부서질 때마다 마음에 개 발자국이 쌓였다. 삐용이가 죽은 후로 이 발자국은 늘 혼자서만 간직했다. 친구들에게 공유하면 행여나 친구들의 발자국이 삐용이의 발자국을 가릴까봐 보여줄 수가 없었다. 눈 위에 흔적을 남기듯 심장이 작은 개의 발로 푹푹 파이면, 그날은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바다에라도 와서 털이 복슬복슬한 동물을 떠올렸다. 
  삐용이가 떠난 후에야 나는 혼자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보고 싶은 사람 아니고 강아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같은 반조차 아닌 아이에게는 내가 추억하는 발자국을 보여줘도 상관이 없으려나. 어차피 듣고 나면 집에 놔둔 안경처럼 까먹어버릴 테니까.
  상대가 내 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서는, 마치 물음을 기다린 사람처럼 얼떨결에 입을 열고 말았다.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는데 몇 달 전에 죽었어.”
  “이 바다에서 죽었어?”
  “아니. 여기는 주말마다 산책했던 곳이야.”
  “왜 죽었어?”
  “그냥⋯⋯.”
  “그냥?”
  이다음에 내가 해야 할 말이 있다. 하지만 그건 영원히 혼자서만 간직하자 꾹 참아온 말이었다. 그 말을 꺼내면 나는 남 탓을 하는 나쁜 사람이 되고, 선생님에게도, 다른 어른들에게도 착한 아이라 보호받지 못할 거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가슴에 묻었다. 그 말이 형태가 돼 자꾸만 개 발자국을 만드는데도 평생 모른 척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참아왔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정말로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일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나를 모르고, 나의 사람들도 모르는 너라면, 내 세상의 단 한 조각도 모르는 너 같은 아이라면 말해버려도 되지 않을까. 무심결에 툭, 돌을 걷어차듯이.
  “⋯⋯아빠 때문에.”
  부연 설명은 하지 않았다. 남자아이는 내가 선택한 침묵을 방해하지 않았다. 햇살이 조금 강해져서 나는 한 손을 이마에 딱 붙였다. 남자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는 내 쪽으로 바싹 붙었다. 그러고는 허리를 조금 세워 불편한 자세로 쪼그려 앉았다. 나보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높이 솟은 머리 덕에 뜨거운 볕이 가려졌다. 
  “내가 너희 아빠 쓰레기라고 말해줄까?”
  이 당돌한 무례함에 나는 실소가 터져나왔다.
  “네가 뭔데.” 
  “아빠 때문에 강아지가 죽었다고 했으니까.”
  “우리 아빠, 나쁜 사람은 아니야.”
  아빠는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다. 내게 필요한 건 무엇이든 지원해줬고 오늘도 집에 가면 나를 위해 사주신 아이스크림이 냉장고에 있을 거다. 아빠는 내가 바르고 착하게 크길 바라는 어른, 그냥 어느 집에나 있는 평범한 아저씨였다.
  다만 아빠는, 한 번 더 말해두지만 똑똑한 사람이다. 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당신의 기준에 착하게 굴지 않을 때, 어떡해야 겁을 먹을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보다 약한 생명을 지키기에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내 잘못도 있지 뭐.”
  “무슨 잘못을 했는데?”
  “학원 숙제 자꾸 빼먹어서 원장 선생님이 부모님한테 전화하게 만든 거, 아빠가 말할 때 자꾸 말대꾸한 거, 매일 늦잠 잔 거, 그리고⋯⋯.”
  나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한 삐용이를 지켜주지 못한 거.
  말끝을 또렷하게 끊을 수가 없어서 목에 사레가 들린 척 헛기침을 했다. 삐용이와의 이별 후에 나는 외로운 약속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두 번 다시 개를 키우지 말아야지. 더 나아가서, 나보다 약한 동물을 집에 데려오지 말아야지.
  절대로.
  “너네 아빠 쓰레기 맞구먼.”
  남자아이는 삐용이 코 같은 돌을 또다시 찾고서는 손으로 꼭 쥐었다. 이번에는 던지지 않고 내게 먼저 주었다.
  정작 딸인 나는 한 번도 아빠를 쓰레기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 말을 하면 마른하늘에서도 날벼락이 떨어져 벌을 받지 않나. 가까스로 80점을 받아놓은 수학 성적이 부모님을 욕보인 죄를 받아 40점으로 폭락한다거나,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다거나. 그런 무시무시한 벌을 받지는 않을까 겁이 났었다.
  근데 내 곁의 아이는 황갈색의 눈을 반짝거리며, 바보 같은 얼굴로 남의 아버지를 욕했다. 내가 받아야 할 천벌을 네가 대신 받을 거다. 멍청이.
  또 내 몫을 다른 존재에게 넘겨버렸다. 마음이 울적하여 숨이 탁 막혔다.
  “욕해도 돼.”
  “아냐. 욕하면 안 돼.”
  “해도 돼. 나 엄청 많이 했거든? 근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
  “그래도 하면 안 된대.”
  “누가 그래?”
  “우리 할머니가.”
  “할머니한테는 아빠가 아들이라서 그렇지. 너네 할머니도 알고 보면 살면서 한 번쯤은 자기 아빠 욕했을걸? 아빠를 쓰레기라고 말하면 속이 얼마나 시원해지는지 너 모르지?”
  “자주 하나봐?”
  “이 바다를 보면서 매주 욕해. 무책임한 사람이었어.”
  나 역시 남자아이가 내게 해준 것처럼, 상대가 선택한 침묵을 수락했다. 대화의 공백 사이로 들어왔다 빠지기를 반복하는 파도는 춤을 멈추지 않았다. 희고 푸른 물결 위로 해가 점점 더 강해졌다. 이마에 열기가 닿았지만, 남자아이가 허리를 더 펴면 아플 것 같아 참았다.
  이마가 뜨겁게 달궈져도 견딜 수가 있었다.
  “나는 아빠한테 더한 말도 할 수 있어. 이제 볼 수 없으니까.”
  수평선 오른쪽 끝에서 컨테이너 화물을 잔뜩 실은 배가 보였다. 기어가는 듯이 느린 속도로 움직였으나 실제로 다가가면 무척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눈팔면 금방 왼쪽 끝에 닿았던 적이 많았다.
  느려 보여도 부단히 움직이는 것들. 나는 배의 속도가 내게도 있기를 바랐다. 이왕이면 내 곁에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이 남자아이에게도 있다면 좋겠다. 어디로 항해할지는 알 수 없겠지만.
  “그래서 여기 자주 왔나보네.”
  “응. 여기에 도착하는 어떤 파도에는 아빠가 섞여 있을지도 몰라.”
  “으악! 그건 좀 기괴한데.”
  “내 딴에는 감성적인 멘트였는데.”
  슬슬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남자아이를 위해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해변을 따라 걷기로 했다. 한눈에 담길 정도로 작은 곳이기에 고민이 많은 비둘기처럼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몇 번이고 왕복한다면 그리운 아침이 모두 소진될 터였다.
  동그랗다 해도 돌은 돌. 발로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우리는 자주 휘청이며 서로의 손에 의지해 균형을 잡았다. 의도하지 않은 맞닿음에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햇살로 데워진 서로의 팔이 따뜻했다.
  남자아이의 목소리는 한층 편해졌다.
  “죽은 개를 바다에 뿌렸어?”
  “개를 바다에 왜 뿌려. 그거 불법이야.”
  “어디에 묻어뒀는데?”
  “아빠가 뒷산에 묻었대.”
  “그럼 산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나 등산 싫어해.”
  “근데 산에 묻는 것도 불법인데?”
  우리는 서로가 우습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둘 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고, 그 지점을 밉지 않게 여기는 마음이 느슨하게 닿았다.
  나는 크로스백에 담아온 텀블러를 꺼냈다. 어제 편의점에서 산 자몽 주스를 담아놨는데 냉기가 아침 열기에 달궈져 미지근했다. 그럼에도 붉은 자몽은 푸른 바다에 지지 않는 향으로 입안을 채웠다. 코끝을 스치는 주스의 단향과 바다의 짠 내가 만드는 불협화음이 좋았다.
  “이거 CU에서만 파는 맛이래.”
  “오. 신상?”
  “응. 궁금해서 나오자마자 샀지.”
  “편의점 자주 가나봐?”
  집에는 삐용이만 없을 뿐, 밥을 챙겨줄 엄마도, 그 밥을 먹으라 잔소리할 아빠도 있다. 나는 굳이 편의점을 들를 필요가 없으면서도 돈이 생기면 꼭 편의점에서 밥을 먹었다.
  냉장 보관된 도시락은 전자레인지에 30초를 데워도 엄마가 방금 막 퍼준 밥만큼 따뜻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는 그 음식들이 맛있다고 생각하며, 어쩌면 스스로 주문을 걸며 먹었다. 편의점 벤치에서 눅눅한 달걀말이를 씹으며 일면식 없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저녁 시간을 맞춰 가면 끼니를 해결하는 배달 기사들의 자잘한 말다툼도 구경할 수 있었다. 완전한 타인들 틈에서 맛이 어정쩡한 쌀알을 씹으며 찬바람을 맞았다.
  내 마음은 그럴 때 가장 편했다.
  남자아이는 자몽 주스에 섞어놓은 사연은 전혀 모르는 채로 달게 받아 마셨다. 나는 그 아이의 목젖이 얇은 살가죽 아래에서 움직이는 걸 구경했다.
  남자아이들은 대개 칠칠찮았다. 내가 본 우리 반 아이들은 그랬다. 하지만 음료 속의 자몽 조각을 삼켜내는 아이는 입가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 사소한 차이점이 배 안에서 나비처럼 날갯짓을 하기에, 부끄러워진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근데 있잖아.”
  “응.”
  “우리 아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안 물어봐?”
  “안 물어볼래.”
  “관심이 없다는 뜻이야?”
  “그냥 말 그대로 묻지 않겠다는 것뿐이야.”
  방향을 틀어 바다에 가까이 다가갔다. 신코가 물에 젖어 색이 짙어졌고, 파도의 볼륨은 더 커졌다. 멀리서 하얗게 파쇄되는 물들의 싸움이야말로 나를 이런저런 생각에서 해방시켜주는 좋은 친구였다. 나는 언제나 날 대신해서 치열하게 싸워주는 것들이 좋았다.
  “내가 말하고 싶어 하면?”
  “그러면 말해도 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두 손을 활짝 펼쳐서 눈썹뼈 위에 올렸다. 손등 위로 나를 두드리는 한낮이 빠르게 손목까지 데웠다. 따뜻함을 넘어 뜨겁다는 감각. 달력 속이 아닌 온 세상에 녹아 있는 이 계절이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한테 선택할 기회를 준 건 네가 처음이네.”
  남자아이는 물을 잔뜩 머금은 몽돌 하나를 쥐었다. 바다를 향해 힘껏 던지니 물수제비 없이 돌은 파도가 돼 가라앉았다. 힘차게 싸우는 물결 사이를 돌고 돌아 돌은 이전보다 훨씬 더 동그랗게 변하겠지.
  나는 에어팟을 꺼내 남자아이의 왼쪽 귀에 꽂았고, 남은 한쪽은 나의 오른쪽 귀에 꽂았다. 무엇을 틀지 고민하다가 아무 노래나 틀어버렸다. 뉴진스도 아이브도 아닌 그룹의 노래였지만 남자아이는 뉴진스의 노래냐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아이브의 노래냐 다시 물었다. 바보 같은 아는 척에 나는 얌전히 고개만 저어주었다. 모두 틀리고 난 뒤에야 자기는 잘 모른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 아이의 아빠는 어떻게 돌아가신 걸까.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마 바다와 관련이 있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궁금했다. 서로 친하지 않아 할 말이 없는 우리 사이에, 분위기가 명확한 대화가 오간다면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사연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그저 ‘그렇구나, 안됐구나’ 등의 껍데기 같은 말을 반복하면 그만이었다. 나와 삐용이가 친구들의 대화에 이용당했던 것처럼.
  하지만 나의 아빠더러 쓰레기라고 말해주는 내 인생 첫 악당에게 그런 대우를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남자아이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가끔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특이한 사람 같아.”
  “좋은 쪽으로? 아니면 안 좋은 쪽으로?”
  “안 좋은 쪽으로.”
  “뭔지 알 것 같네.”
  우리는 뒷짐을 지고서 수평선을 가로질러 가는 배를 따라 걸었다. 주말 오전부터 태종대까지 와서 이런 맹맹한 대화를 나누는 건 너랑 나밖에 없겠지.
  삐용이가 사라진 후에 내 마음에는 삐용이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아직 이름을 붙여줄 수 없는 정원이 생겼다. 그 정원에 알록달록하고, 때로는 검붉은 꽃들이 피어나고 시들었다. 그동안 나는 아빠를 미워했다가, 엄마를 미워했다가, 다시 사랑했다가, 그래서 괴롭기를 반복했다. 
  어떤 꽃은 능소화처럼 다 함께 피어났다가 또 어떤 건 해바라기처럼 혼자 우뚝 피기도 했다. 나는 어렴풋이 알게 됐다. 정원을 갖고 있으면, 어떻게든 꽃은 피어나는구나! 하는. 별 볼 일 없지만 내가 오늘을 참아내게 하는 비료 같은 깨달음을.
  남자아이도 어느새 이마에 나처럼 손을 갖다 댔다. 해는 계속 강해지는 중이었다.
  “너는 네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 때 어떻게 해?”
  “그냥 가만히 있었어.”
  “그래서 아빠가 나쁜 사람이란 건 생각도 안 하고 지냈구나.”
  “그러는 너는?”
  “나는 친구들한테 말해보고, 게임도 해보고, 형들이랑 같이 놀러도 다니고 다 해봤지.”
  “그러면 나아졌고?”
  “밤에 혼자 침대에 누우면 똑같아졌어. 그래서 이상했어.”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어른들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니까 나랑 이 아이는 그러면 안 됐다. 왜 안 되지? 몸에 나쁜 거라 그렇다면 어른들은 몸이 나빠지지 않는 헐크들인 걸까. 헐크가 아닌 나는 친구에게 하소연해보고 익명 사이트에 글도 올려봤다. 그래도 마음이 풀리질 않아서 메신저 프로필에 의미심장한 문구를 적었고, 인스타 스토리에 울적한 사진도 올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를 오랫동안 봐온 친구들이 무슨 일이 있냐 물어주면 대화가 시작됐다. 하지만 어떤 대화들은, 나를 잘 아는 그 아이들에 의해 가십거리가 됐다. 해원이네 아빠가 아픈 강아지 병원에 안 보내줬대, 헐 그 아저씨 사이코다, 해원이가 불쌍해, 근데 해원이도 평소에⋯⋯. 1반부터 5반까지, 나를 걱정하는 고마운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런데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말하고 싶은 것을 더욱 말할 수 없어졌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로 해소하지 못할 한계를 느꼈다. 내가 정원에 초대할 수 있는 손님은 아마도 내 곁에 없었던 사람이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눈앞의 이방인처럼.
  아무튼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었다. 내게 허락된 자유란 아침 식사를 거르는 일까지였다. 학원 숙제가 밀려 있고, 점심은 엄마 아빠와 얼굴을 마주 보고 먹어야만 했다. 싫어도 그걸 수행해내는 게 나의 정원을 지키는, 지겹지만 꼭 해내야 하는 중간고사 같은 일이었다.
  먼저 떠난다는 말 대신에 나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마음이 이상해질 때, 다음부턴 나한테 말을 해도 돼. 네가 말하고 싶을 때만.”
  남자아이는 휴대전화를 받아 들고는 피식 웃으며 번호를 꾹꾹 찍었다.
  “집에 가면 바로 카톡할게.”
  “안 돼.”
  “왜?”
  “적당히 친해지자.”
  “먼저 번호 따는 거면서 도도하게 굴기는.”
  휴대전화를 돌려줄 때 우리의 손끝이 닿았다. 모난 말을 하면서도 함박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는지 남자아이는 히죽이며 내 뒤를 따라 걸었다. 
  “다음 주에도 여기 올 거야? 그럼 나 안경 쓰고 오고.”
  아마 나는 삐용이를 잊기 전까지 몽돌해변을 찾을 테지만 어깨만 으쓱거리며 확답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뭔가를 약속하는 일은 아직 무서웠다. 남자아이는 확정 짓지 않는 모호함에서 오히려 확신을 얻었는지 자기는 꼭 오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근데 나는 〈애프터 라이크〉보다 〈러브 다이브〉가 더 좋은 것 같아. 지금 나오는 노래 〈러브 다이브〉 맞지?”
  “아이브 노래 아닌데.”
  “그런가.”
  밑창에 밟히는 동그란 돌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남자아이는 열심히 아는 척을 했다. 영양가 없는 대화가 오가는 동안 웃음소리는 조금 더 커졌다. 가슴을 비단처럼 스치는 바닷바람에 숨을 훅, 하고 들이마셨다. 삐용이의 정수리를 쓰다듬었을 때나 느꼈던 평온이 여기에 있었다.
  아무래도 부서지는 것은 파도뿐만이 아닌 것 같다.
  
  

청예

「웬즈데이 유스리치 클럽」으로 2021년 교보문고스토리공모전 단편 우수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글로벌콘텐츠문학상 최우수상, K스토리공모전 최우수상,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수상. 청소년소설 『초능력이 생긴다면 아빠부터 없애볼까』 『사탕비』 『남의 썸 관찰기』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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