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삼킨 목소리를 위하여

  

  2022년 여름의 『작가들』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과 동북아시아의 긴장 관계에 주목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문학적 재현을 〈특집〉으로 정했다. 희생자의 재현, 특히 여성 희생자의 재현은 일종의동역학계 이론의 끌개attractor처럼 작동했다.

  

전쟁과 문학

  최정호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최은영의 『밝은 밤』을 ‘누락된 사람들’의 ‘목소리’로 바라보았다. 승리와 패배를 가르는 남성들의 역사-기록 바깥으로 밀려난 희생자의 탄식과 비명은 그것을 전달하는 매개자인 ‘작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류신은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구원의 비원으로 승화시켰던 게오르크 트라클의 「그라덱」을 상세히 나누어 독해했다. 1914년 트라클이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썼던 이 작품은 도살장이 되어버린 ‘침묵하는 숲’을 지나가는 ‘누이의 그림자’에서 발퀴레와 성모의 이미지를 겹쳐놓으며 희생자를 위한 레퀴엠과 미래 세대를 위한 당부를 함께 표출한다. 일본문학 전공자인 오성숙은 전쟁 수행기 일본의 미디어 전략 구도에 주목했다. 일상을 전쟁에 대한 참여로 만들고, 후방에서도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고 역설하던 일본의 복수 찬미와 미망인 재혼부정론이 어떻게 후방을 조직하여 여성과 문학을 전쟁 협력의 도구로 활용했는지 차분하게 보고한다.
  〈특집〉의 기획은 〈기획연재Ⅱ〉와 〈우현재〉로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한국현대시와 만주」의 연재 마지막 회 분에서 윤영천은 동남아전선을 진주만으로 확장하는 일본제국군의 기세에 맞서 중국 동북 만주지역에서 출현한 ‘현지파 문학’을 대표작 분석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정착 이민기에 접어든 조선인의 역사와 현실을 다룬 윤해영과 김조규의 시가 당대를 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절절히 울린다. 〈우현재〉의 손민환은 오랫동안 ‘검정사택’으로 알려져 있다가 철거된 도쿄제강 사택의 역사를 다루었다. 도쿄제강에서 건설한 사택에서도 내지인과 식민지인을 가르는 차별의 구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 시대의 현장과 주체의 윤리적 책무

  〈기획연재Ⅰ〉은 욕망의 그래프 완성태를 다루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던 지난호에 이어 주체의 자기동일성이 깨지는 순간, 타자의 질서를 거부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환상, 절대자를 향한 항변, 향락과 거세, 충동의 고투를 그린다. 마지막에는 타자의 결여를 자기 몸에 새긴 주체에게 부여되는 윤리적 책무가 또렷하게 부각된다.
  〈르포〉에서 송수연은 진도의 국민해양안전관을 찾았다. 국민해양안전관의 모호한 구성, 오류투성이 타임라인, ‘기억의 벽’ 타일 무단 도용 등의 문제점을 짚었다. 국민을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다스림의 대상으로 보는 관행은 여전했다. 연정은 또 다른 싸움의 현장을 찾았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맞아 위축된 사업장에서 보호받지 못한 공항·항공 노동자, 학습지 교사, 세종호텔 노동자의 사례를 기록했다. 이들의 목소리가 각별히 기억되길 바란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선물을 마련하고 싶었다. 천도교 측에서 보내온 방정환 관련 사진을 모아 〈시선〉을 마련했다. 창작란은 『작가들』 편집위원들의 숨은 노고가 깃드는 곳이다. 임선기 정민나 김종옥 김네잎 백인경 고명재 김선오 차도하의 시, 홍인기 이재은의 소설이 지면을 빛낸다. 〈노마네〉에는 조정인 김춘남의 동시와 김우주의 동화가 어린이의 마음을 담았다. 『작가들』이 주목하고 서평을 마련한 책은 이병국의 시집 『내일은 어디쯤인가요』와 마영신의 만화 『남동공단』, 한순미의 『다초점 렌즈로서의 재난인문학』이다. 김안 서찬휘 김요섭이 각각 소개하였다.

  19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나는, 강대국들 간의 냉전만 끝나면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재자의 지배가 끝나면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0년대에 한국의 군부는 권좌에서 물러났고 동서의 진영은 해체되었다. 그러나 2020년대의 우리는 군부가 지배하는 미얀마 앞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앞에서, 현 세계체제의 무력함을 새삼 느끼고 있다. 평화를 향한 순진한 꿈과 그 꿈을 향한 현실적인 운동이 자국 이기주의의 갈림길 앞에서 멈추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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