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새로운 상품은 새로운 욕망을 낳는다. 21세기 스마트폰과 관련한 시장이 우리의 생활 세계를 얼마나 뒤흔들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출판 시장에도 새로운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북, 오디오북, 팝업북 등등 서점의 창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다양한 상품들 속에서 그래픽 노블에 주목해보았다. 소설 장르의 명칭을 달고 있는 이 상품은 어떠한 욕망 속에서 나왔으며 어떠한 욕망을 추동하고 있는가.

  

그래픽 노블의 중층적 세계

  〈특집〉에서 한상정은 그래픽 노블과 웹툰이라는 새로운 상품을 만화라는 더 넓은 영역에서 점검하였다. “만화에 쏟아지는 사회적 무시와 편견” 속에서 그래픽 노블과 웹툰은 예술성과 상업성 면에서 시장의 관심을 모으는 상품이다. 문종필은 작가 의식이라는 다른 측면에서 만화, 그래픽 노블, 웹툰의 대표작을 살펴본다. 정치성, 예술성, 동시대성 등 다양한 기준으로 자세히 살펴본 작품은 마영신의 『아티스트』 조성환의 『재생력』 데이비드 스몰의 『나 혼자』이다. 소설가이자 그래픽 노블 애독자인 이규락은 일반 독자에게 그래픽 노블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히어로물을 다루었다. 프랭크 밀러에서 시작하여 앨런 무어의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작품, 그랜트 모리슨의 실험적이고 포스트모던한 작품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소개하면서 히어로물이 흥미로운 사유의 실험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서영채의 〈인문학 개념정원〉은 작품과 텍스트를 구분하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텍스트에 나타나는 굴절과 변형, 왜곡을 ‘증상’으로 읽는 방식을 소개한다. 정신분석학적 용어인 증상은, 한 사람의 병리학에서 텍스트를 흥미롭게 읽는 방식으로, 더 나아가 사회적 증상과 증환으로 확장되어간다. 〈비평〉의 최선교는 이설야의 시를 읽었다. 고통에 공명하여 현재의 삶을 구성하는 주요 축으로 삼는 이설야의 작가적 태도에서 재현의 거리감에서는 찾기 힘든 ‘들림’을 발견해낸다.

  

인천에서 방정환의 흔적을 찾아

  지난 여름호 〈시선〉에서 방정환이 말년에 인천의 존스턴 별장에서 묵은 일이 있음을 밝혔다. 이번에는 〈우현재〉에서 장정희가 방정환과 인천의 인연을 상세히 소개했다. 존스턴 별장만이 아니라 방정환의 초기작 「그날 밤」 「동생을 찾으러」의 배경으로, 1922년의 인천 소풍에서 1925년의 신춘 소년소녀대회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답사했다. 존스턴 별장 대신 들어선 한미수교100주년기념탑 앞에서 방정환과 인천의 인연을 기리는 문화 사업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한다.
  〈르포〉에서는 파리바게뜨 노조 임종린 지회장을 찾았다. 불법 파견 문제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 노조끼리 갈등을 만들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SPC사와의 힘겨운 싸움이 인터뷰로 보고되었다. 〈민중구술〉의 주인공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주한 엘리트 여성 민선화(가명) 씨다. 1980년대에서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북한에서 엘리트로 살아온 한 가족의 삶이 여성 구술자의 시선에 담겨 정리되었다.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은 각별한데 훼손되는 자연에 대한 대책은 미미하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에 소속된 오동필에게 평소에 찍은 새만금의 새들 사진을 요청했다. 수라갯벌에서 찍힌 이 새들은 이제 새만금신공항이 건설되기 시작하면 제 터전을 잃고 어딘가로 사라질 것이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도요새의 모습이 애틋하게 아름답다. 그 모습에 이어 가을의 창작란이 화려하다. 이명희 박성한 박인자 손제섭 신미나 박시하 이설빈 차유오의 시, 조혁신 신상진의 소설, 김미혜 이묘신의 동시와 유영소의 동화가 『작가들』 가을호의 안방을 차지했다.

  신라 제48대 경문왕에게는 유독 말과 관련한 설화가 많다. 화랑 시절 임해전에서 열린 잔치에서 헌안왕의 물음에 답한 일로 왕이 되는 길이 열렸고, 왕이 된 후에는 혀를 내밀어 가슴을 덮고 뱀에 둘러싸여 잤다(정민, 『불국토를 꿈꾼 그들』, 문학의문학, 2012, 362쪽 참고).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당나귀 귀가 되었다는 것인데, 모자를 만드는 사람이 따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왕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 대한 은유가 아닌가 싶다. 문제는 이 모자를 만드는 사람이 도림사 대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외쳤고, 그 숲에서 계속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왕이 대숲을 없애고 산수유를 심자 말이 바뀌었다. “우리 임금님은 귀가 크다.” 왕관을 쓸 자격이 없는 사람에서 타인의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의미가 바뀐 것이다. 말길이 편파片破되어 사실과 거리가 먼 오늘에 곱씹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경문왕 시절에는 역모가 잦았다(『삼국사기』 참고). 믿음직한 말의 사회적 비용이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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