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플랫폼 ─하이퍼스페이스 점프

  

  “얼른 주무셔야 한다니까요.”
  시중드는 아이가 쉬지 않고 보챘어.
  “알았어.”
  대답하고도 다비는 창밖만 내다봤지. 어슴푸레하게 우물이 보이고 그 앞에 꾸며진 제단이 보였어. 다비는 비단옷에 맛난 음식에 좋은 방에서 지내는 게 아직도 꿈만 같았어.
  “이러다 저만 혼난다구요. 아침 일찍 기원제가 시작될 텐데 늦잠 주무시면 어쩌시려고요.”
  시동은 입술을 삐죽이며 못마땅한 티를 냈어.
  “이제 잘게.”
  잠자리에 들면서도 다비의 눈은 창문에서 떨어질 줄 몰랐어. 하늘엔 초승달이 떠 있었어. 그 애를 처음 만난 날처럼.
  
  1년 전 그날 밤, 다비는 부엌을 나와 우물로 갔어. 그리곤 바닥에서 돌멩이를 주워 치맛자락으로 깨끗이 닦았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다비는 돌멩이 하나를 우물에 던져 넣었어.
  “이건 아빠 거”
  톡-톡-톡—–퐁!
  돌멩이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나머지 돌도 냉큼 던졌어.
  “이건 엄마 거.”
  툭-투둑-탁-타닥—–퐁!
  다비는 재빨리 손을 모으고 기도했지.
  “아빠랑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행복할 수 있게 해주세요.”
  다비의 아빠와 엄마는 난리통에 목숨을 잃었어. 온조왕은 백성들에게 한산 아래로 옮겨 살라 하고 위례성에 우물을 만들라고 했지. 사람들이 말하길 새로 만든 우물이 백제의 앞날을 밝힐 거라고 했어. 그만큼 신성한 우물이 될 거라는 거야. 다비는 그 말을 믿었어. 그래서 우물에 소원을 빌면 이뤄질 거로 생각했지. 기도를 마친 다비는 다시 돌멩이를 주워 깨끗이 닦았어. 그리고 우물에다 힘껏 던져 넣었지.
  “요건 내 거.”
  탁-타닥-툭——-
  한참을 기다려도 돌멩이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물을 들여다봤어. 새까맣게 탄 숯보다 검은 구멍만 보였지. 깊고 어두워서 바닥에 고인 물은 보이지도 않았어. 다비는 까치발을 하고 우물에 몸을 들이밀었어. 바로 그때 우물 안에서 바람이 솟구쳤어. 다비의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치켜든 발이 허공에서 달랑거렸지.
  콸콸콸콸콸
  “어? 물소리?”
  다음 순간 우물에서 물기둥이 솟구쳤어. 그 바람에 다비는 우물 밖으로 발라당 넘어졌어. 물에 흠뻑 젖은 다비는 넋이 나간 얼굴로 우물을 쳐다봤어. 한 달 넘게 바닥에만 물이 고여 있던 우물이 날벼락, 아니 물벼락을 맞았나 싶었지. 다비는 몸을 일으켜 우물로 갔어. 다시 들여다봐도 여전히 컴컴했지. 다비는 조심스럽게 우물 안으로 손을 뻗었어. 물은 만져지지 않았어. 그때 등 뒤에서 소리가 났어.
  “날 찾니?”
  다비는 화들짝 놀라 돌아봤어.
  낯선 아이가 빙긋이 웃고 있었지. 하지만 아이의 옷차림이 더 낯설었어. 아이는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주색 옷을 입었는데 비단보다도 반지르르했어. 잘하면 얼굴도 비칠 거 같았지. 아이가 다비에게 다가왔어. 다비는 얼떨결에 뒷걸음질을 쳤지.
  “누, 누, 누구?”
  아이가 한쪽 손을 내밀었어.
  “난 오즈라고 해.”
  다비는 오즈가 내민 손을 한 번 보고, 고개를 들어 오즈의 얼굴을 봤어. 오즈의 얼굴은 아주 깨끗했어. 다비처럼 땟물이 묻어 있지도 않았지. 오즈가 멋쩍은 표정으로 내밀었던 손을 내렸어.
  “뭐, 이해해. 나도 네가 이상하긴 마찬가지야. 뭐랄까, 아주 낯설다고나 할까.”
  자신감 넘치는 오즈의 말투에 다비는 주눅이 들었어. 귀족 아이라고 생각한 거야. 다비는 공손한 투로 말했어.
  “지체 높으신 분이 혼자 다니면 위험해요.”
  오즈가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어.
  “그 말투는 뭐야? 그리고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다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어. 예의를 차린 것이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상했지.
  “난 초공간여행자야.”
  “그게 뭔데?”
  “쉽게 말하면 다른 우주를 여행하는 거야. 우리 행성에서는 열두 살이 되면 초공간 여행을 할 수 있어. 여기가 내 첫 번째 여행지야. 정확히 7일 동안 이곳 생활을 체험하는 게 여행의 목적이고.”
  다비가 말똥말똥 쳐다보자 오즈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어.
  “그러니까 내가 저기서 왔다는 얘기야. 여기선 절대 보이지 않는 곳. 아, 네 생각엔 저 구멍에서 나왔다고도 할 수 있겠네.”
  다비가 우물을 보자 오즈가 다비 얼굴 앞에 대고 손바닥을 흔들었어.
  “뭐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우선 너한테 신세 좀 지자.”
  다비의 눈이 동그래졌어.
  “나한테? 왜?”
  오즈가 어깨를 으쓱였어.
  “난 여기가 처음이고, 여기서 만난 사람은 너밖에 없고, 그러니까 너 말고는 부탁할 사람이 없잖아. 그러니까 네가, 나의 조력자가 되어줘야지.”
  다비는 입술을 깨물었어. 난처한 일을 당할 때 하는 버릇이었지.
  “난 집도 없고, 엄마 아빠도 없는걸.”
  오즈가 눈을 끔뻑였어.
  “그러니까, 네가 보호자도 없고 가족도 없는 어린애라는 거야?”
  다비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즈가 한숨을 내쉬었어.
  “뭐, 할 수 없지. 이것도 내 운이지 뭐. 그래서 넌 어디에서 지내는데?”
  다비는 손가락을 뻗어 움막을 가리켰어. 임시로 만든 움막은 부엌으로 쓰였어. 그곳에서 우물 공사를 하는 인부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었지. 다비는 부엌에서 먹고 자며 허드렛일을 했어. 오즈가 심란한 눈으로 움막을 노려봤어. 다비가 작은 소리로 말했지.
  “낮에는 일하는 아줌마들이 들락거리지만 밤에는 혼자야. 그러니까 괜찮다면 같이 지내도 돼.”
  한참 만에 오즈가 입을 열었어.
  “그러자. 어차피 다른 선택도 없네 뭐.”
  
  함께 지낸 지 하루가 지나기 전에 오즈의 입에서 푸념이 터져나왔어.
  “못 해 먹겠네. 너는 아직 어린아이인데 너무하는 거 아니야. 이런 일은 힘센 사람이 해야지.”
  다비와 오즈 앞에는 우물에서 나온 돌멩이가 담긴 광주리가 놓여 있었어. 그걸 우물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갖다 버리는 일을 하던 참이었지. 다비와 오즈가 꾸무럭거리는 걸 보고 지나가던 어른이 한마디 했어.
  “그렇게 해서 밥이나 얻어먹겠어? 부지런히 움직이거라.”
  골이 난 오즈가 광주리에서 돌멩이를 하나 집어 바닥에 던지자 다비가 냉큼 주워서 제 광주리에 담았어.
  “얼른 가자. 이러다 진짜 혼나겠다.”
  다비의 허름한 옷을 얻어 입은 오즈는 그럭저럭 이곳 아이처럼 보였어. 다비는 오즈를 궁금해하는 어른들한테 길 잃은 아이라고 설명했지. 다비도 오즈가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어. 오즈가 말한 초공간이니 행성이니 우주니 하는 말을 했다간 의심만 받을 거 같았지. 어쨌거  나 어른들은 다비의 말을 믿는 눈치였어. 난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많았거든.
  다비의 하루는 눈 깜짝할 새 없이 지나갔어. 아침 일찍부터 우물 공사장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밥때가 되면 주먹밥 만드는 일을 도왔지. 인부들에게 밥을 나눠주는 것도 다비의 일이었어. 그릇을 치우고 부엌을 쓸고 닦고 다시 밥을 짓고 치워야 하는 일이 끝도 없이 반복됐어. 그러고도 틈이 나면 우물 공사까지 도와야 했지. 손과 발이 하나씩 더 있어도 모자랄 만큼 하루가 빠듯했어. 해가 저물자 일을 마친 사람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어. 부엌 아궁이에 잔가지를 넣는 다비를 보고 오즈가 입을 열었어.
  “안 힘들어?”
  다비는 불쏘시개로 아궁이를 휘저으며 대답했어.
  “이젠 괜찮아.”
  오즈가 따뜻한 아궁이 벽에 몸을 기대며 말했어.
  “넌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어.”
  다비가 고개를 들어 오즈를 봤어.
  “어쩔 수 없잖아. 먹고살려면.”
  오즈가 한숨을 내쉬었어.
  “이 행성은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하네.”
  다비가 변명하듯 말했어.
  “아니야, 신분이 높은 집 아이들은 달라.”
  “어떻게 다른데?”
  다비는 자신 없는 투로 말했어.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 먹고, 좋은 말을 듣고 좋은 것만 보고 살겠지.”
  “너도 그러면 되잖아.”
  오즈의 대꾸에 다비는 한숨을 내쉬었어.
  “그래, 나중에 다시 태어나서 그렇게 살면 되겠네.”
  다비의 체념 섞인 웃음을 보며 오즈는 입을 다물었어. 다비의 형편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오즈가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어.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일에 개입해서 다른 우주의 힘을 쓰면 10년 동안 우주여행이 금지됐어. 그건 우주여행을 포기해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지. 막대기로 아궁이를 뒤적이던 다비가 물었어.
  “그런데 왜 여기로 여행 온 거야?”
  그 말에 오즈는 행성을 고르던 때가 생각났어. 파란 구슬처럼 생긴 지구는 오즈의 마음을 확 사로잡았지. 하지만 행성의 지역을 선택하는 건 오즈 마음대로 할 수 없었어. 목적지에 우주여행이 가능한 포털이 생기면 그게 어디든 즉시 떠나야 했기 때문이지. 마침 신호가 잡힌 포털이 다비를 만난 우물이었던 거야. 그러니까 우주여행 할 때 행성은 고를 수 있지만 구체적인 장소까지 고를 수는 없었어. 오즈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어.
  “그러게. 왜 하필 그 우물이었을까?”
  오즈를 빤히 바라보던 다비가 중얼거렸어.
  “여기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았을걸.”
  “왜 그런 생각을 해?”
  오즈의 물음에 다비가 고개를 들었어.
  “나를 만나서 네가 힘든 거 같아서.”
  힘든 건 사실이었어. 그래서 오즈는 다비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어. 하지만 그게 다비 탓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하필 그 시간에 포털이 열렸고, 그 장소에 다비가 있었을 뿐이니까. 오즈는 그게 엄청난 운명이나 뭐 그런 거로 생각하지도 않았어.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했지. 수많은 우주에서 벌어지는 수만 가지 우연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우주여행은 만만치 않다고 했어. 오즈는 그 말을 다섯 살 때부터 들었지. 그래도 우주여행을 포기할 수 없는 건 가짜가 아니라 진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어. 오즈가 사는 우주에선 여행 경험담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기가 높았어. 오즈는 다음엔 여기보다 더 멋진 곳으로 여행을 가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아궁이를 들여다보다 까무룩 잠이 들었지. 다비를 따라 고된 일을 했더니 잠이 쏟아졌던 거야.
  
  오즈와 다비가 함께 지낸 것도 벌써 나흘째야. 그사이 오즈도 힘든 일에 적응이 되었지. 처음엔 몸이 부서지는 것처럼 아팠지만 차츰 익숙해졌어. 차라리 몸을 움직여야 아픈 걸 잊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지. 인부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줄 때였어. 다비와 오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
  “이렇게 파도 물줄기가 시원찮은 걸 보면 자리를 잘못 잡은 거 아녀?”
  옆에 앉은 사람이 주위를 줬어.
  “예끼 이 사람, 말조심하라고. 이게 어떤 우물인데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아니면 부정을 탔나? 차오르던 물이 도로 말라버렸으니 말이야.”
  “어허 이 사람이 그래도…….”
  그런데 이 말을 들은 게 다비와 오즈만은 아니었어. 공사를 감독하던 관리자도 이들이 하는 말을 들었지.
  
  다음 날 아침, 군사들이 움막으로 떼 지어 들어섰어. 그중 한 명이 큰 소리로 호통을 쳤지.
  “다비가 누구냐?”
  겁을 먹은 다비는 오즈와 눈을 맞췄어. 오즈 역시 휘둥그레진 눈으로 다비를 보았지. 군인들 뒤에 선 아낙이 다비를 손짓했어.
  “저 아이가 다빕니다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군사가 소리쳤어.
  “당장 끌어내.”
  오즈는 발딱 일어나서 군사를 가로막았어.
  “이유를 알려줘야죠.”
  하지만 답을 듣기도 전에 오즈는 바닥에 엎어졌어. 군사가 오즈를 거칠게 떠밀었던 거야.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다비는 군사들에게 끌려갔어. 다비의 겁먹은 울음소리가 오즈의 귓가에 쟁쟁했어.
  다비의 죄는 우물에 불경한 짓을 했다는 거야. 다비가 우물에 돌을 던지는 걸 봤다는 사람도 서넛이나 됐어. 다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조사받았지. 공사 관리자가 다비에게 호통을 쳤어.
  “네가 우물에 돌을 던진 것이 사실이냐?”
  겁에 질린 다비는 입이 달라붙어 대답할 수도 없었어. 몸은 사시나무 가지처럼 바들바들 떨었지. 관리자는 다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물었어.
  “저 아이가 우물에 돌을 던지는 걸 본 것이 사실이렷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서너 명이 앞다퉈 고개를 끄덕였어.
  “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요.”
  “맞습니다. 한밤중에 오줌을 누러 나왔다가 봤는데, 저 아이가 틀림없습니다.”
  “제 눈으로 본 것만도 세 번입니다요.”
  관리자가 다비에게 물었어.
  “저들의 말이 사실이냐?”
  다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어. 눈에는 금세 눈물이 차올랐지. 그런 다비를 보는 오즈의 마음은 답답했어. 어떻게든 다비를 돕고 싶었는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던 거야. 관리자가 말했어.
  “네가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신성한 우물에 돌을 던지다니. 너 때문에 물길이 트였던 우물이 도로 말라버린 것이다. 그러니 감히 살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관리자는 군사들을 향해 말했어.
  “저 아이를 당장 옥에 가두거라.”
  결국 다비는 한마디 변명도 하지 못하고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 혼자가 된 오즈는 몰래 공사장을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갔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 돌멩이를 던진 것 때문에 물길이 막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어. 말 같지도 않은 누명을 쓰고 다비가 벌을 받는 걸 막고 싶었지. 똑같이 힘든데도 자기를 걱정해주던 다비의 얼굴이 떠올랐어. 오즈는 머리칼을 움켜쥐고 고민했어.
  “몰래 탈출시킬까?”
  하지만 밤낮으로 지키는 군사를 따돌릴 일이 걱정이었지.
  “우물에 물이 차게 할까?”
  역시 오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 막힌 물길을 무슨 수로 뚫어야 할지 몰랐거든.
  “내가 가진 힘을 써야 하나?”
  오즈는 망설여졌어. 여기서 다른 우주의 힘을 썼다간 앞으로 10년 동안 우주여행을 할 수 없게 될 게 뻔했어. 그거야말로 오즈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대 원칙이었지. 게다가 어떤 힘을 어떻게 써야 다비가 안전할 수 있는지 혼란스러웠지. 그때 어디선가 두런대는 소리가 들렸어. 오즈는 몸을 낮추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어. 거기에는 다비를 추궁하던 관리자와 처음 보는 장수가 있었어. 그들은 다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어. 갑옷을 입은 장수가 말했어.
  “우물이 마른 건 일시적인 겁니다. 그런 일로 어린아이를 벌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관리자가 반박했어.
  “장군은 이 우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그럽니까? 이제 곧 왕이 행차하실 겁니다. 우물이 마른 걸 알면 책임을 물으실 겁니다. 그때는 나나 장군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해요.”
  장수가 목소리를 높였어.
  “지금 죄도 없는 어린아이에게 책임을 지울 셈이십니까? 그저 우물에 돌멩이를 던졌다는 이유로요?”
  관리자가 장수를 나무랐어.
  “그게 바로 잘못입니다. 신성한 우물에 함부로 돌을 던져 넣다니요. 그러니 우물이 마를 수밖에요.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왕도 납득하실 겁니다.”
  장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
  “얼마 전에 뒷산에서 큰 돌이 굴렀습니다. 그 돌이 물길을 막았을 수도 있어요. 시간을 주시면 제가 물길을 뚫어보겠습니다.”
  관리자가 얼굴을 찡그렸어.
  “어허, 이제 곧 왕이 도착하신다니까요. 그 돌을 치우든 말든 당장 책임질 사람은 필요합니다. 더 이상 제게 이래라저래라하지 마십시오.”
  관리자가 돌아서며 장수에게 물었어.
  “그런데 장군은 그 아이와 무슨 관계라도 있습니까?”
  장수는 대답하지 않았어. 실제로 다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관리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어.
  “어차피 부모도 없는 고아입니다. 그러니 이 일에 딱 맞춤인 아이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관리자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어. 관리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장군도 곧 자리를 떴지.
  오즈는 화가 났어. 정신을 차려 보니 땅에 박힌 풀을 양손으로 움켜쥔 탓에 손등에 긁힌 자국이 가득했어. 다비에게 잘못이 없어도 사람들은 벌을 받게 할 작정이었어. 다비가 한 것이 진짜 잘못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그저 죄를 뒤집어쓸 희생양이 필요했던 거지. 우물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죄를 뒤집어쓸 희생양 말이야. 게다가 다비를 위해 나서줄 가족도 없으니 핑계도 좋았지. 오즈는 그 자리에서 밤을 꼴딱 새웠어. 그러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지구를 떠올리고, 그 지구에서 다비를 만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결과는 같았어. 해가 막 뜨기 시작할 때 오즈는 마음먹었어. 다비를 구하기로 말이야.
  
  왕의 행차는 요란했어.
  수십 명이나 되는 신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난 왕은 태양처럼 빛났어. 온몸을 금빛 비단으로 걸쳤으니 그럴 만도 했지. 관리자에게 우물 얘기를 들은 왕은 얼굴이 잔득 굳어 있었어. 관리자가 병사들에게 말했어.
  “아이를 끌고 와라.”
  끌려 온 다비는 바닥에 꿇어앉았어. 우물 주위로는 사람들이 빼곡했어. 모두 왕과 다비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지. 오즈도 그중에 섞여 있었어. 하지만 원래 모습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있었지. 누군가 오즈를 알아보고 다비의 일을 캐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변장했던 거야. 오즈는 허리가 굽은 노파의 모습을 하고 다비를 지켜봤어. 온조왕이 다비에게 물었어.
  “네가 정말 우물에 돌을 던져 넣었느냐?”
  다비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어.
  “네.”
  온조가 숨을 깊이 내쉬며 물었어.
  “저 우물은 신점을 받고 만들어졌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
  “자, 잘 모르옵니다.”
  온조가 허리를 세우며 말했어.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어. 그런데도 다비를 위해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모두 다비가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했어. 그래야 우물에 물이 찰 거라고 믿고 있는 눈치였고. 다비도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했는지 체념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 온조가 관리자에게 말했어.
  “저 아이를 처형하도록 하게.”
  그때 오즈가 앞으로 나섰어. 정확히는 노파의 모습을 한 오즈였지.
  “당장 멈춰요.”
  모두의 눈동자가 오즈를 향했어. 왕도 그랬지. 당황한 관리자가 외쳤어.
  “당장 노파를 쫓아내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사들이 오즈를 향해 달려들었어. 병사들에게 막 잡히려는 순간 오즈는 다시 한번 변신했어. “펑” 소리와 함께 오즈 주위로 연기가 피어올랐지. 연기가 걷히자 노파였던 오즈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어. 사람들의 눈은 튀어나올 듯 커졌지. 다비는 오즈를 올려다봤어.
  “오즈야.”
  다비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굴러떨어졌지. 오즈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외쳤어.
  “누구도 다비를 헤칠 수 없어요.”
  그와 동시에 동물이 포효하는 소리가 울렸지.
  “어흥.”
  “어흐흥”
  소리의 주인공은 호랑이였어. 어디선가 나타난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오즈와 다비를 향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지. 호랑이의 등장에 사람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어. 바로 옆으로 집채만 한 호랑이가 지나가니 그럴 만도 했지. 호랑이들은 오즈와 다비를 호위하듯 둘러쌌어. 다비는 언젠가 오즈에게 호랑이에 대해 얘기해줬어. 사람들은 호랑이를 무서워하면서도 신령스러운 존재로 믿는다고 말이야. 오즈는 동물을 신령한 존재라고 믿는 것이 이상했지만 다비를 구하기 위해서는 제격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호랑이의 힘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물론 오즈가 불러낸 호랑이는 진짜 호랑이는 아니었어. 그건 잠깐만 존재하는 실물 영상이었지. 오즈가 밤새도록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랬어.
  ‘신령한 존재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다비를 그렇게 만들어주겠어.’
  오즈는 무릎을 꿇고 다비에게 속삭이듯 말했어.
  “그동안 고마웠어. 이건 고마움에 대한 답례야.”
  이날은 오즈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기도 했어. 오즈는 날듯이 뛰어 우물 담에 올라섰어. 그리고 왕을 향해 말했지.
  “이 아이는 신령한 존재이니 함부로 하지 마시오.”
  이곳 말투를 살짝 흉내 냈는데 꽤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사람들이 웅성거렸어.
  오즈는 마지막으로 다비를 향해 눈을 찡긋하고 그대로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어. 사람들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오고 얼마 있다 우물에서 엄청난 물기둥이 솟구쳤어. 그 물줄기는 모여 있던 사람들을 흠뻑 적시고도 남았어. 그 사이 호랑이 다섯 마리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지. 정신이 든 사람들의 눈은 다비에게 쏠렸어. 다비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지. 그때 온조왕이 천천히 다비에게 다가왔어. 가만히 다비를 내려다보던 온조왕이 무릎을 꿇었어. 그리고 손을 머리 앞으로 모아 다비에게 절을 했지. 놀란 사람들은 하나둘 왕을 따라 했어. 관리자도 마찬가지였고, 병사들도 그랬어. 왕의 시중을 들던 신하들도 그랬고, 구경하던 아이들도 그랬어. 모두로부터 절을 받은 다비는 얼떨떨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봤어. 그 순간 하늘을 가로지르는 엄청 빠른 빛을 보았지. 다비가 들릴 들 말 듯 중얼거렸어.
  “오즈…….”
  
  그날 이후로 다비는 우물을 지키는 신녀가 되었어. 그리고 내일은 우물이 완성되고 맞는 첫 번째 기원제였지. 그 자리에서 다비는 오즈를 기릴 생각이었어. 어느 날 우연히 찾아와 다비에게 엄청난 행운을 안겨준 바로 그 여행자를 말이야. 다비는 오즈를 다시 만나길 바라는 마음을 빌 생각이었어.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후주
  『삼국사기』 〈백제 본기〉 「시조 온조왕」 편에는, BC 6년 온조왕은 나라를 세운 지 13년이 되던 해에 “백성들을 한산 아래로 옮겨 살게 하고 하남위례성을 쌓았다”라는 기록과, “위례성에서 늙은 여인이 남자로 변하였고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성 안으로 들어왔다”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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