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합된 분열

 

  아득한 옛날에는 거북의 등 껍데기를 태워 균열의 형태를 보고 미래를 점쳤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러한 점술 방식에 자연(거북)과 문명(불꽃)의 조합을, 다른 이는 잠재된 것(껍데기의 부분별 강도)에서 현실화된 것(균열)으로의 이행을 읽기도 했으리라. 난 어리석게도 개표 방송을 보다가 균열로 가득한 거북의 등 껍데기를 상상해버리고 말았다.
  나라를 반분한 박빙의 승부. 하루 20만 명을 훌쩍 넘어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국토의 동부가 거멓게 그을린 거대한 재난의 와중에도 투표율은 77퍼센트를 넘었고, 거대 양당의 대표자들이 득표한 비율은 양쪽 다 45퍼센트 이상이었다. 승부가 결정 난 다음 날에는 선거 결과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다. 반으로 그어진 거대한 간극을 중심으로 상처와 그을음이 꽉 들어찬 상상 속 거북의 껍데기는 날이 갈수록 선명해졌다.
    『작가들』은 선거 기간이 한창이었던 균열의 시기에 새로운 목소리로 무장한 젊은 편집위원들을 영입했고 올해 봄으로 여든 번째의 계절을 맞았다.

 

문학적 위계를 흔드는 사람들

  2022년 봄을 맞이하는 『작가들』의 〈특집〉은 ‘문학적 위계의 해체와 재구성’이다. 문학적 위계의 주춧돌은 ‘등단’이라는 제도다. 한국문학의 ‘중앙’으로부터 지역문학의 자율성 획득을 고민하고 있는 김필남이 자료를 중심으로 등단 작가들을 검토하였고, 독립문예지 『베개』를 운영하는 조원규는 등단 바깥의 활로를 개척하면서 얻게 된 고충과 새로운 마음가짐을 “위계와 억압 없는 밝은 교환의 문법이 확산되는 방향”으로 가늠하며 서술하였다. 한편, 백인경은 ‘비등단 작가’로서 등단에 대한 자신의 감회를 밝히며 ‘좋은 시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등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되묻는 글을 보내왔다.
  서영채의 「인문학 개념정원」은 라캉 이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욕망의 그래프’를 다루었다. 사회적이면서 언어적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언어적 분열을 겪고 상상적 동일시에서 (부분적으로) 벗어나 사회적 정체성을 획득해가며 “자기 가슴을 절단하고 있는 빗금의 존재”임을 알게 되는지 서술했다. 윤영천의 「일제강점기 한국 현대시와 만주」는 청마 유치환의 시 「수」를 통해 만주 시절에 한발 더 깊이 들어선다. 만주 벌판의 비적에 대한 역사-정치적 논의의 넓이와 깊이를 더하여 풍부해지다가 백석의 시로 끝맺는다. 마지막 연재분을 기대하는 마음이 넉넉해지는 듯하다.

 

우리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우현재〉는 강화도의 항일운동을 다루었다. 1880년대 제국주의의 침략 속에서 근대를 맞이했던 강화도민들이 의병투쟁으로 시작하여 3·1만세운동으로 이어졌다가 지속적인 사회운동으로 저변을 넓혀갔던 시대의 흐름이 울울하게 펼쳐진다. 〈민중구술〉은 특별히 2편을 담았다. 송기역은 ‘일하는’ 장애인 두 사람의 생애를 담은 구술을 전한다. 여전한 편견과 차별적인 시선 속에서 일자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떳떳하게 살고자 하는 남녀 장애인의 모습을 보며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올해 1월 『절박한 삶』이라는 책으로 5명의 탈북 여성의 목소리를 담았던 전주람·곽상인은 ‘젊은’ 탈북 여성을 찾았다. 현재 대학생인 인터뷰이는 탈북 청소년으로 보냈던 남한 학교생활과 북한의 추억을 편안하게 전한다.
  〈시선〉에서는 금강 하구의 가창오리 떼가 우리를 반긴다. 김환영 화가가 유리판에 커피 가루를 이용하여 빛과 버무린 영상은 역동적인 에너지 가득한 신화의 하늘로 우리를 인도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넓어진 세상의 겨울과 봄의 내밀한 숨결이 스민 시와 소설, 〈노마네〉는 언제나 『작가들』의 자랑이다. 시인 양수덕 심명수 이성혜 김시언 김복희 류휘석 여한솔 박규현, 그리고 소설가 김경은 최정나가 각자의 호흡으로 지면을 빛내주었고, 유하정과 김성진의 동시, 김미애의 동화가 어린이의 마음으로 창작란을 마무리했다. 〈서평〉에서는 임선기의 시집 『피아노로 가는 눈밭』(창비, 2021), 최원식의 『기억의 연금술』(창비, 2022), 방준호의 『실직도시』(부키, 2021)를 김수이, 진기환, 박일환이 각각 소개했다.

1963년 8월 국제정신분석협회IPA는 자크 라캉을 훈련 분석가 명단에서 제명했다. 1964년 1월 열한 번째 〈세미나〉의 첫 시간에 라캉은 자격을 부여하는 단체(IPA)의 자격과 자격을 부여받는 대상이 된 주체(그 자신)의 우스꽝스러움, 정신분석학의 학문적 자격(과학성)을 묻고, 마지막으로 분석가의 욕망과 프로이트의 권위를 궁극적 의문 앞에 세웠다. 두 번째 시간에는 무의식이 연 신경증이라는 간극을 서둘러 봉합하여 단순한 심리학으로 만들었던 기존의 심리학자들을 비판하며 자신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그 간극을 다시 열어 보이리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이 단언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인용으로 이어진다. “천상의 힘들을 꺾을 수 없다면 저승을 움직이련다.” 상처로 가득한 거북의 껍데기를 서둘러 지울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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