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하이디

  

  

  “2학기부터는 솔내초등학교로 등교하자.”
  이모 말에 눈치 없는 곰이 거들었다.
  “솔내초등학교 엄청 좋거든. 작년에 도서관이랑 놀이터도 다 리모델링하고. 교육청에서 예산 받아서 말이야.”
  내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여기서 학교 안 다녀요. 엄마도 방학 끝나는 날 다 알아서, 토요일엔 데리러 올 걸요.”
  잠시 사이를 두던 이모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엄마가 그러래. 전입신고도 인터넷으로 다 했더라. 지수 너, 솔내초등학교 6학년으로 이미 전학 와있다고.”
  이모의 눈은 벌써 책에 가 있었다. 이모 옆으로 주섬주섬 커피잔을 치우며 일어나다 의자를 쓰러뜨리는 곰이 보였다. 콰당, 하는 소리가 벼락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찬찬히 일어나서 책방 바깥으로 나오는데, 슬리퍼로 눈물이 투두둑 떨어졌다. 소리를 안 내려고 마당 의자까지 걸어가는 동안 나는 숨을 참았다.
  엄마가 나를 버렸다!
  “그러니까 아빠한테 가 있으라고 했잖아. 그런데 네가 싫다며?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니? 너도 클 만큼 컸고, 나도 할 만큼 했어. 엄마랑 스위스는 안 가겠다면서 솔내도 네가 먼저 간다고 한 거잖아.”
  세 번 만에 연결된 전화였다. 솔내에서는 죽어도 학교 안 다닌다고, 서울 우리 집에서 나 혼자 살 거라는 말에, 엄마가 빽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혼잣말을 했다.
  ‘그래도 아빠한테는 안 가!’
  아빠와 아줌마와 쌍둥이 사이에 끼어서 살기도 싫지만, 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거기엔 내 자리가 없다는 걸, 엄마도 알면서……. 입술을 꼭 깨무는데 다시 눈물이 터졌다.
  ‘아, 진짜! 기어이 스위스로 간다고? 하인츠인지 뭔지 하는 그 아저씨랑 결혼하려고? 내가 그렇게 싫다는데도! 무슨 엄마가 이래.’
  내가 여섯 살 때 이혼한 엄마는 2년 전부터 회사에서 만난 스위스 아저씨랑 사귀었다. 나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사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결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머리에 털만 수북하고 말도 안 통하는 새아빠라니! 내가 끝까지 우기면 엄마도 포기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방학 동안 이모네서 버티면 나를 데리러 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금 엄마에게 나보다 엄마가 더 중요하다는 게, 속상하다. 클 만큼 컸다니, 나는 아직도 커야 한다. 할 만큼 했다니, 엄마는 나한테 좀 더 해야 한다. 엄마라면 그래야 하지 않나? 엄마가 너무 미워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6학년 2반은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이모네 책방에서 한두 번 마주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원영 초등학교에서 전학 온 이지수라고 해.”
  나로서는 더 붙일 말도 뺄 말도 없는 자기소개였다. 그런데도 나를 빤히 바라보는 애들을 보고 있으려니, 내 눈이 뾰족해졌다. 담임선생님이 마무리했다.
  “클라라 책방! 클라라 이모네 조카야. 너희도 벌써 아는 친구들 많지?”
  그제야 어색한 박수가 터졌다.
  내 자리는 비어 있던 맨 뒷자리 창가였다. 선생님 눈에 잘 안 띄는 자리라, 나는 수업 시간에도 드로잉 북에 낙서를 했다. 짜증 도치를 네 마리쯤 그렸을 때,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이지수! 너 그림 잘 그리는구나!”
  쉬는 시간에 말을 건 아이는 영은이라고 했다.
  “내가 우리 학교 미술 동아리 회장이거든. 12월에 작품전을 열 건데, 작품 수가 너무 적어서 걱정이야. 혹시 너도 참여하고 싶으면……”
  드로잉 북을 접어 서랍에 넣으며 내가 물었다. 영은이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나 그림 싫어해. 아주 싫어해. 혹시 이 동네 잘하는 미장원 알아?”
  눈썹을 살짝 찌그리던 영은이가 일러줬다.
  “사거리 소희네 머리방. 경찰서 지나 있어.”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는데, 영은이가 쪽지를 주었다. 손으로 그린 지도였다.
  “소희네 머리방 가는 길. 아깝다! 오늘 학원만 안 가면 내가 같이 가줬을 걸. 머리 잘해!”
  앞머리를 자르고 싶긴 했어도, 미장원을 물어본 건 즉흥적이었다. 그런데 지도까지 그려주며 함께 가주려고 했다니, 영은이란 애도 완전 오바다.
  쪽지를 들고 소희네 미장원을 찾아가는데, 등에서 땀이 났다. 아직 한낮 볕이 뜨겁기도 했지만, 낯선 길이 불안해서였다. 미장원을 혼자 가보기도 처음이었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런데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소희네 머리방 앞에는 하얀 쪽지가 붙어 있었다.
  금. 일. 휴. 업.
  한숨이 나왔다. 역시 솔내는 나랑 잘 안 맞는다. 터벅터벅 길을 되짚어 걷는데 작은 골목 안쪽으로 ‘ㅉㅗ헤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도망간 글자들 때문에 이름도 알 수 없는 미용실이었다. 망설이다 2층 미용실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데 역한 냄새가 났다.
  “어서 오세요!”
  역한 냄새의 정체는 염색약 같았다. 미용사가 머리칼에 허연 염색약을 덕지덕지 바를 때마다, 손님이 기침을 했다. 손님의 친구일지도 모르는 여자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여자는 곰이랑 비슷한 교복을 입고 있었다. 역시나 노란 머리였다.
  “우리 아가씨는 어떻게 해줄까?”
  미용사가 내게 묻는데, 가슴이 벌렁벌렁하더니 느닷없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빨간색도 염색되나요?”
  고개를 갸웃대던 미용사가 물었다.
  “돈은 있고?”
  비상금을 전부 털었다. 빨강 머리라니! 가슴이 뛰다 못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이제 두세 시간 후면 빨강 머리 내가 저 거울 속에 앉아 있을 걸.
  드디어─.
  짠!
  거울 속 나에 입이 벌어졌다. 한껏 삐뚤어지라고 응원하는 빨강이 내 머리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야! 너…….”
  책방 마당에서 마주친 곰은 나를 보자마자 뒷걸음질 치다 책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내내 울렁거리던 후회가 야릇한 통쾌함으로 변했다. 짜릿한 기분으로 책방 문을 여는데, 빵 냄새가 코를 찔렀다. ‘책빵’ 모임인가 보다. 책이랑 빵을 함께 넣어 선물 꾸러미를 만들려고 빵을 굽는 중이었을 거다. 그런데 내가 들어서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 침묵이 너무 마음에 들어 나는 턱을 치켜들었다.
  “아따, 빨간 머리 하이디도 아니고!”
  나지막한 할아버지 음성이었다. 갑자기 참견이 쏟아졌다.
  “빨간 머리는 앤이죠.”
  “맞아, 빨간 머리 앤이요.”
  “그런데 하이디도 괜찮지 않아요? 클라라면 하이디죠.”
  “클라라 책방에 빨간 머리 하이디!”
  다들 웃는데, 나를 보고 있던 이모만 웃지 않고 말했다.
  “너무 늦게 다니지 마, 하이디!”
  하!
  기가 막혀서 한숨이 나왔다. 고개가 떨어졌다. 자존심이 상했다.
  두 시간이 넘게 그 따가운 걸 참아가며 염색한 이 머리, 냄새는 또 어떻고! 이 불타는 빨강 머리를 두고, 뭐? 하이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짜증이 폭발할 것만 같다. 그럼 내 머리에서 빨간 용암이 흘러내리겠지. 아, 진짜 싫다! 이 사람들. 머리가 저게 뭐냐면서 흉도 보고 욕도 해야지. 하이디니 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고, 정말이지 딱 질색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이모는 내 빨간 머리를 걱정하며 엄마한테 전화도 안 할 거다. 내가 왜 머리를 빨갛게 했는데…….
  더 싫은 건 선물이었다. 곰의 선물. 책과 빵을 함께 담은 봉투를 내밀며 곰이 말했다.
  “왜 곰이냐고 물었지? 내가 왜 곰인지 이 책을 읽어보면 안다.”

  학교도 비슷했다. 애들도 선생님도 똥그래진 눈으로 나를 봐놓고,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나마 영은이 반응이 솔직했다.
  “헐! 너 머리에 뭔 짓을 한 거냐? 소희네 머리방에서 이런 거야?”
  대답도 않는 내 옆에서 영은이는 계속 쫑알거렸다.
  “빨간색이 너랑 안 어울리진 않지만, 그래도 좀, 이 색깔이 엄청 예쁜 빨강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어쨌든 뭐, 쎄보이긴 하지. 사실 우리 미술 동아리에도 걸크러쉬가 있으면 좋겠거든. 네 고슴도치 그림처럼 말이야. 이건 분노하는 고슴도치 시리즈니?”
  탁 소리가 나게 드로잉 북을 접어 책가방에 넣는 나를 보고도 영은이는 미소를 지었다. 오바도 오바지만, 오지랖도 넓은 애가 틀림없다.
  수업을 마치고 가는 길에 깜짝 놀라서 넘어질 뻔했다. 맞은편 은행 앞으로 익숙한 차가 보였다. 엄마 차랑 똑같은 차! 엄마 차 같다.
  엄마가 온 건가?
  나를 데리러 온 건가?
  신호등도 무시하고 뛰어가고 싶은 걸 겨우 참는데, 심장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런데 은행에서 나온 어떤 아저씨가 그 차에 올라타더니 쌩하니 가 버렸다. 내 심장은 확 쪼그라들었다. 부릅떴던 눈이 감기며 아팠다. 뾰족한 배신감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아, 진짜!
  엉망진창인 기분으로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책방 반대쪽으로 걸었더니 작은 버스 정류장이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던 내 앞으로 버스가 천천히 멈추는 게 보였다. 나는 스르르 일어나 버스에 올랐다.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학생! 학생은 왜 안 내리고 있어? 여기가 종점인데.”
  운전사 아저씨가 나한테 소리쳤다. 한 시간도 안 된 것 같은데, 버스는 벌써 멈춰 있었다. 버스의 종점이 터미널이었다. 이렇게 가까이 버스터미널이 있는지 몰랐다. 표를 사면 아마 서울 집으로도 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잔뜩 긴장해서 서울 가는 버스를 찾아봤다. 매표소 앞의 표지판을 보니 서울 가는 마지막 버스가 35분 후에 출발한다는 것 같다.
  나는 일단 의자에 앉아서 지갑을 열어봤다. 차표를 사기에는 돈이 부족했다.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돈이 있었다면, 정말 가출할 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학생! 어디 가는데?”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물었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아저씨가 다시 물었다.
  “돈이 부족하면 도와주려고 그러지. 혼자 가는 거야? 서울?”
  아저씨는 점점 작은 소리로 말하며 몸을 기울였다.
  “오늘 잘 데는 있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고 싶은데 발이 안 떨어졌다. 핸드폰을 쥔 손이 달달 떨렸다. 심장이 쿵 떨어지며 소름이 돋았다. 억지로 침을 삼키며 막 일어서려는데, 누군가 내 등을 툭 치며 물었다.
  “니 어디 가는데?”
  반가운 이 목소리가 누군지 생각도 안 나지만 나는 발딱 일어나 그쪽으로 붙어 섰다. 떨어졌던 심장이 물컹거리며 올라오는 것 같았다.
  “뭔 마실을 여까지 오나? 인자 집에 가야 되지 않나?”
  할머니가 말하는 사이, 옆에 앉았던 아저씨가 쏜살같이 사라졌다.
  “가자! 저기 데리러 왔네.”
  터미널 입구에서 솔내 방앗간 할아버지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그제야 ‘최봉순 치과’의 최봉순 할머니가 기억났다. 어금니 치료 때문에 수요일마다 치과에 갔더랬는데…….
  방앗간 할아버지의 차를 타고 솔내로 가는데 계속 가슴이 뛰었다. 위험에 빠졌던 나도, 도망가지 못했던 나도, 너무 바보 같았다.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을 하다 퍼뜩 다른 생각도 들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 할머니 할아버지도 위험한 것 아닐까? 동네 사람이라고 함부로 막 차에 타고 그러면 안 되잖아!’
  그제야 나는 앞에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살폈다. 아까부터 내 생각만 하느라 앞자리의 대화를 흘려듣고 있었다.
  “우리가 옆에 딱 지키고 있다는 걸 알아도 그랄까?”
  “아이고, 그래도 빼먹을 것 있다 그러면 어떻게든 연락할 인물이구만!”
  “그럼 어쩐대? 날짜가 언제랬지? 종료, 그거 날짜?”
  “보호 종료 날짜가, 가만, 곰이가 11월생인가 그렇지?”
  “아니, 뭔 아부지새끼가 그렇노? 아는 안 키우고, 아한테 나오는 돈은 와 달라카는데? 그거이 부모가 할 소리가? 곰이가 그거를 안 삣기게 우리가 딱 단도리를 해야지 않겠나?”
  “당연하지!”
  다른 건 몰라도, 곰 이야기를 하는 건 알겠다. 곰한테 아빠가 있고, 그 아빠는 곰을 안 키웠고, 11월엔 보호 종료가 된다는 말 같다.
  “곰이 커피 타는 거 안 배웠나? 고등핵교에서 빠리쓰타, 그거! 빵 굽는 것도 시험 봐서 딱 붙었다 하고. 클라라 옆댕이로 커피, 거기 맡아서 하게 하고, 봉달이가 후견인인가 그거 한다 안 카나.”
  “복지사가 아파트 얻어준다는 건 내가 벌써 확인했고…….”
  갑자기 최봉순 할머니가 물었다.
  “넌 어디서 내려주까? 클라라까지는 못 올라가고, 슈퍼서부터 걸어가지 싶은데…….”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슈퍼 앞에서 내렸다.
  “감사합니다.”
  운전석에 있던 방앗간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내 인사를 받았다.
  “그래, 클라라한테 내일 내 그림책 사러 간다 캐라. 완전 인기 아이가! 벌써 여섯 권이나 팔아삣다, 내가. 허허허!”

  클라라 책방은 벌써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내 전화기가 계속 반짝거렸다. 어둠이 내린 마당 긴 의자에 앉아 이모가 내게 전화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모 옆으로 살짝 곰도 보였다 사라졌다. 그제야 곰이 선물했던 그림책 『베어』가 생각났다. 엄마가 사라진 아기곰이 숲에서 혼자 살아가는 이야기. 거기 나온 곰처럼, 곰도 곰이 되겠다는 생각에, 곰이 되었나 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무섭다. 곰처럼 용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용감하지는 못해도 이제 어리광은 그만하고 싶다. (곰은 못 되어도 까칠 도치 역시 숲에서 살아가니까.) 솔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터미널에서 나를 알아본 최봉순 할머니랑 방앗간 할아버지가 곰을 걱정하는 솔내, 용감한 곰이 커피를 내리는 솔내, 오지랖이 넓은 영은이가 자꾸 참견하는 솔내, 묵묵히 나를 받아주기만 하는 클라라 이모가 책방을 하는 솔내. 어쩌면! 여기 솔내에서 빨강 머리 하이디는 점점 용감해질지도 모른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가 고프다. 집에 들어가면 저녁밥을 두 그릇은 먹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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