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에 빠졌어!

  

  빗방울이 시끄럽게 지붕을 때렸어요. 빗물은 콸콸 흘러 땅을 뒤덮고 바람은 굵은 참나무를 흔들었지요. 폭풍이 온 지 벌써 7일 째예요. 그동안 아기 여우는 꼼짝없이 집에 있었어요.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아기 여우가 날짜를 꼽았어요. 친구들하고 소풍 가기로 한 날이 이틀 남았어요. 아기 여우는 밀가루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가, 꽃잎차를 담아놓은 항아리를 한 줄로 세웠다가 두 줄로 세웠다가……. 이렇게 집 안을 한참이나 들쑤시다가 깜깜해져서야 잠이 들었어요.
  다음 날 아침이에요. 숲이 조용했어요. 빗소리는커녕 바스락 소리도 나지 않았지요. 아기 여우가 문을 벌컥 열었어요. 쨍, 햇볕이 쏟아졌어요. 햇볕이 너무 눈에 부셔서 눈이 껌벅 감겼어요. 다음 날도 해가 떴어요. 아기 여우는 부리나케 부엌으로 뛰어갔어요. 과자를 굽고 꽃차를 유리병에 넣고 바구니에 담아 집을 나섰지요.
  “딱 좋은 날이네. 딱 좋은 날씨야.”
  아기 여우는 세 갈래 길에서 아기 토끼와 딱 만났어요. 둘은 똑같이 “안녕?” 하고 인사했어요. 그러고는 나란히 큰 자작나무가 있는 숲으로 걸어갔지요.
  “둘이 가니까 참 좋아. 돼지랑 곰이랑 만나면 더 좋을 거야.”
  “응. 더 빨리 가자.”
  아기 토끼가 까앙충, 멀리 뛰었어요. 순간 끼얏! 소리가 났어요. 그리고 아기 토끼가 사라졌어요.
  “토끼야!”
  아기 여우가 깜짝 놀라 거엉중, 멀리 뛰었어요. 순간 키잌! 소리가 났어요. 아기 여우도 사라졌어요. 잠시 후, 땅속에서 큰 고함 소리가 났어요.
  “구덩이에 빠졌어!”
  구덩이는 아기 여우 위에 아기 토끼가 서 있는 것만큼 깊었어요. 아주 깜깜했고요. 그래도 머리를 들면 파란 하늘이 보였어요. 어둠이 눈에 익자 구덩이 안이 보였어요.
  “안 돼. 내 바구니.”
  아기 토끼가 뒤집어진 바구니를 보며 울먹였어요.
  아기 여우도 퍼뜩 바구니가 생각나, 재빨리 둘레를 두리번댔어요. 이런. 바구니는 똑바로 서 있었지만 과자랑 차는 땅바닥에 처박혀 있었어요. “후.” 아기 여우는 한숨을 쉰 다음 옷매무새를 고치고 털을 가지런히 골랐어요. 그리고 말했지요.
  “곧 돼지가 올 거야. 큰 자작나무 숲으로 가려면 이 길을 지나가야 하니까.”
  “근데 돼지도 빠지면 어떡해?”
  “안 돼!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자. 구덩이가 있다는 것도.”
  “응!”
  아기 토기는 후웁, 숨을 들이마신 다음에 큰 목소리로 외쳤어요.
  “돼지야 돼지야, 어디 만큼 왔니? 세 갈래 길이 보이면 한 발짝 두 발짝 세 발짝. 그리고 멈춰! 구덩이야! 돼지야 돼지야, 어디 만큼 왔니? 세 갈래 길이…….”
  다섯 번째 반복했을 때에요.
  구덩이 아래로 아기 돼지가 얼굴을 쑥 들이밀었어요. 아기 토끼와 여우는 반가워 앞발을 흔들었어요.
  “우와, 구덩이를 크게 팠네. 벌써 노는 중이야?”
  아기 돼지가 바구니를 옆에 내려놓았어요. 그러고는 말릴 틈도 없이 “나도!” 하면서 구덩이로 뛰어내렸어요. 구덩이가 깊어 쿵,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금방 일어나 벌죽 웃었지요. 아기 여우가 놀라 눈을 끔벅끔벅했어요. 아기 토끼는 팔을 든 채 굳어버렸지요.
  “진짜 깊다. 언제 팠어? 둘이서 팠어?”
  아기 돼지가 물었어요.
  “아이, 참. 돼지야, 여길 들어오면 어떻게?”
  아기 토끼가 말했어요.
  “왜? 둘이서…… 노는 거야? 비밀이야?”
  “우리는 노는 게 아니야. 구덩이에 빠진 거야!”
  “아!”
  아기 돼지가 이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고는 킁킁, 소리를 내면서 코를 벌름댔지요.
  “좋은 냄새가 나. 음, 이건 여우가 만든 과자 냄새야. 그렇지? 과자는 어디에 있니?”
  “너는 지금 과자가 중요해?”
  “당연하지. 과자는 맛있잖아. 어디 있어?”
  “몰라!”
  아기 여우가 쏘듯이 말하고는 고개를 팩 돌려버렸어요.
  모양도 맛도 망가진 과자를 보고 싶지 않았어요. 하필 오늘따라 과자가 더 잘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만들 때도 딱 한 개만 맛보고 모두 싸 왔는데 몽땅 엉망이 돼 마음이 아팠어요.
  “저기.”
  대신 아기 토끼가 작게 말했어요.
  아기 돼지는 토끼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어요.
  “헉!”
  절로 비명이 튀어나왔어요.
  흙 속에 반만 박힌 자갈 같은 것이 과자라고? 아깝다. 쩝쩝, 아기 돼지가 입맛을 다셨어요.
  “구덩이에 몽땅 빠졌네. 내가 건져볼까?”
  군침을 꿀떡 삼키며 아기 돼지가 물었어요.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앞발을 냉큼 뻗었지요.
  “하지 마. 더러워.”
  아기 여우가 바락 외쳤어요.
  그 바람에 아기 돼지가 깜짝 놀라 몸을 바짝 세웠어요. 눈으로는 계속 과자를 흘끔대며 흙이 안 묻은 데를 골라냈지만 잡지는 않았지요. 아기 여우는 몹시 깔끔해서 화를 낼지도 몰라요.
  아기 돼지는 가만히 있었어요. 숨만 푸, 푸우 쉬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 너무 심심했어요.
  “진흙 놀이할래?”
  아기 돼지가 비 때문에 젖은 땅바닥을 뒷발로 쿡쿡 찍으며 물었어요.
  “안 돼. 우리는 구덩이에서 빠져나가야 해.”
  아기 여우가 딱 부러지게 대답했어요.
  “빠져나가기 놀이도 좋아. 근데 나는 너무 높아서 못 나가. 누가 당겨줘야 할 것 같아.”
  아기 돼지는 대뜸 말을 해 놓고 토끼를 보았어요. 아기 돼지와 여우와 토끼와 곰 중에 토끼가 가장 잘 뛰고 가장 빠르니까요. 그러자 아기 여우도 토끼를 보았어요. 아기 토끼의 입이 실룩실룩 했어요. 입술 사이에서 으으 소리가 나고, 입 옆에 난 털 여섯 개가 파르르 떨렸어요. 아기 토끼는 설사 똥을 참는 것처럼 끙끙대다 마침내 입을 열었어요.
  “나, 난 못 해. 높이 뛰는 거 싫어.”
  “정말? 너는 잘 뛰어서 위로 뛰는 것도 좋아하는 줄 알았어. 근데 조금도 못 뛰어?”
  “그만해. 너도 안 먹는 음식 있잖아.”
  “내가? 아니야. 나는 먹는 건 다 좋아.”
  아기 여우가 말려도 돼지는 꿋꿋하게 할 말을 다 했어요.
  아기 토끼는 둘의 대화가 조금 불편했어요. 웬일인지 조금 미안해져서 눈치를 보며 둘러댔지요.
  “고, 곰이 곧 올 거야.”
  “맞다. 곰! 어, 큰일 났다. 빨리 놀자.”
  “뭐?”
  “곰이 오면 우리를 꺼내 줄 거잖아. 그럼 구덩이에서 못 논다고. 나는 구덩이에 처음 와 보는걸.”
  그러고는 아기 돼지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어요. 진흙을 뭉쳐 앞발로 살살 문지르고 길쭉하게 만든 다음 구덩이 벽에 척 붙였지요.
  “뭐게?”
  “지렁이구나. 얇고 길고 구불하고.”
  아기 여우가 단박에 맞추었어요. 새초롬한 표정이 아주 의기양양했어요.
  아기 돼지는 움찔했지만, 금방 아닌 척 시침을 뗐어요. 지렁이 앞부분을 쿡, 눌러서 세모 모양으로 만든 다음,
  “코브라야. 도망쳐!”
하고 소리쳤지요.
  코브라? 내내 가만히 있던 아기 토끼가 깜짝 놀라서 코브라를 퍽 때렸어요. 그 바람에 코브라 머리가 날아가고 머리가 있던 자리가 움푹 패었어요.
  “어. 어. 그러니까 이건, 고, 고래야!”
  아기 토끼가 구불구불한 몸통 아래로 선을 슥, 그었어요.
  그랬더니 정말 몸통이 불룩 솟은 고래가 되었어요. 움푹 팬 자리는 파도가 되었고요. 순간 아기 돼지 눈이 쨍, 빛났어요. 뾰족한 나뭇가지를 고래 위에 냅다 꽂고 뽐을 냈지요. 아닌 게 아니라, 고래는 정말 물을 세차게 뿜는 것처럼 보였어요.
  아기 돼지와 토끼가 한참 노는 동안, 여우는 내내 가만히 있었어요. 둘이 여우를 보았어요. 아는 것이 많은 아기 여우가 무엇을 만들까 궁금했지요.
  “나는 안 해. 흙이 묻으면 더러워져서 싫어.”
  “물놀이 갔을 때는 했잖아.”
  “맙소사, 지금은 못 씻잖아. 깨끗한 물도 없고 수건도 없어. 휴우, 정말 아무것도 없네.”
  아기 여우가 말했어요.
  아기 돼지와 토끼는 여우한테서 조금 떨어져서 다시 변신 놀이를 했어요. 고래는 나비가 되었다가, 썰매가 되었다가, 과자가 되었어요. 갑자기 아기 돼지가 멈추었어요.
  “배고프다. 나는 배고픈 게 제일 싫어.”
  아기 돼지가 가져온 바구니를 찾았어요. 바구니에 가득 담아온 사과, 감, 개암을 떠올리자 혀에 침이 송송 솟았어요. 열매 생각에 꿀꺽, 군침이 넘어갔지요. 두리번두리번, 아기 돼지는 바구니를 찾았어요.
  “안 돼!”
  아기 돼지가 비명을 질렀어요.
  구덩이 옆에 바구니를 놓고 뛰어내린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에요. 아기 돼지는 목을 뒤로 한껏 젖히고 구덩이 입구를 쳐다봤어요. 바구니는 눈곱만큼도 안 보였어요. 큰비에 기울어진 버드나무 가지만 구덩이 아래로 늘어져 흔들렸지요.
  “치, 먹지도 못하는 나무뿐이잖아. 밤나무면 좋았을 텐데.”
  아기 돼지는 더 배가 고파졌어요.
  “곰은 언제 올까? 맛있는 걸 가져올 거야. 그렇지? 오늘은 소풍 가는 날이니까.”
  아기 돼지가 구덩이 입구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어요.
  그때예요. 쿵쿵 땅을 울리는 소리가 났어요.
  “곰이다!”
  “곰아!”
  “여기야!”
  셋이 한꺼번에 소리쳤어요. 곰의 얼굴이 구덩이에 나타났어요.
  “들어오지 마!”
  아기 여우가 외쳤어요.
  “거기서 뭐 해?”
  아기 곰이 물었어요.
  “구덩이에 빠졌어!”
  “셋이 몽땅? 그래서 안 왔구나. 아무도 안 와서 여우 집에 가는 길이었어. 내가 여길 지나가길 참 잘했네.”
  “얼른 꺼내줘.”
  “조금만 기다려. 나는 힘이 세니까 금방 꺼내줄 수 있어.”
  아기 곰은 구덩이 주변을 재빠르게 뛰면서 구석구석 훑었어요. 잠시 후, 상수리나무에 매달려 있는 기다란 넝쿨을 찾아냈지요. 줄은 굵고 길어서 구덩이 아래까지 너끈히 닿을 만했어요. 넝쿨의 한쪽 끝을 잡은 아기 곰이 반대쪽을 구덩이 안으로 던졌어요. 아기 여우와 돼지와 토끼가 달려들어 넝쿨을 잡았어요.
  “잡았니?”
  아기 곰이 묻자, 구덩이 안에서 잡았다는 대답이 들려왔어요.
  아기 곰은 넝쿨을 허리에 한 바퀴 감고 앞발로 세게 움켜쥐었어요.
  하나, 둘, 셋, 이얍!
  아기 곰이 넝쿨을 힘껏 당기자 넝쿨이 꿈틀 움직이더니 팽팽하게 당겨졌어요. 순간, 아기 여우가 깜짝 놀라 넝쿨을 잡은 앞발에 힘을 주었어요. 토끼와 돼지도 넝쿨을 잡은 앞발을 몸 쪽으로 바짝 당겼지요. 그 바람에 아기 곰의 몸이 아래로 꼬부랑, 기울었어요. 세 마리가 한꺼번에 힘을 주자 코끼리가 매달린 것처럼 무거웠어요.
  “어? 어! 어!”
  아기 곰이 버둥댔어요.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고꾸라져 구덩이에 쿵, 떨어지고 말았지요. 아기 돼지가 곰 밑에 깔렸어요. 아기 돼지가 꾸엑, 앓는 소리를 냈어요.
  “곰아, 비켜.”
  “아, 아깝다. 힘이 조금 모자랐어. 사과를 더 많이 먹을 걸.”
  아기 곰이 일어나며 말했어요.
  “큰일 났네. 큰일 났어. 몽땅 구덩이에 빠져버렸어. 이제 어떻게 나가지?”
  “뛰어서 나가면 돼. 나는 아주 발이 빠르니까 단숨에 올라갈 수 있어.”
  아기 여우가 안절부절못하자, 곰이 제자리 뜀을 일곱 번 하고는 구덩이 벽 위를 달려갔어요. 하지만 두 발자국째에 쿵! 하고 옆으로 쓰러졌지요.
  “사과를 너무 조금 먹었나 봐. 누구 사과 있니?”
  아기 곰이 일어나면서 물었어요.
  아기 여우는 입을 꽉 다물었어요. 안 그러면 ‘멍청이. 먹보’ 하고 나쁜 말이 툭, 튀어 나갈 것 같았거든요.
  그때였어요.
  “저, 저기…… 이러면 어때?”
  아기 토끼가 작게 입을 뗐어요.
  아기 여우와 돼지와 곰이 동시에 아기 토끼를 보았어요. 아기 토끼는 얼굴이 붉어졌지만 자기 생각을 조곤조곤 말했어요.
  “포도잼을 만들 때 국자로 냄비를 저으면 냄비 가운데에 구멍이 생겨. 근데 조금 있으면 구멍이 없어져.”
  “말도 안 돼.”
  “구멍이 어디 갔는데?”
  “정말?”
  아기 여우와 돼지와 곰이 물었어요.
  아기 토끼는 와락 달려들 듯 질문하는 친구들 때문에 하려던 말을 억지로 멈추었지만 오히려 조금 신났어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포도잼이 구멍을 메꿔 구멍이 없어진 거야. 구덩이도 없앨 수 있어.”
  “포도잼으로? 너 포도잼 되게 많구나.”
  아기 곰이 말했어요.
  “잠깐만. 구덩이를 메꾸기 전에 조금 먹어도 돼?”
  아기 돼지가 물었어요.
  아기 여우가 얼굴을 찌푸렸어요. 토끼가 말한 구덩이를 없애는 방법이 먹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잖아요. 아기 여우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를 집어 구덩이 벽을 쿡 찍었어요. 흙덩이가 후두둑 떨어졌어요.
  “여우야. 뭐 해? 구덩이를 부수면 안 돼.”
  “토끼 말대로 해 보는 거야. 구덩이를 없애는 거라고. 구덩이 안에 흙이 쌓이면 구덩이가 없어질 거야.”
  아기 여우가 말했어요.
  “아하! 나도! 나는 더 큰 거로 구덩이를 없앨래.”
  아기 돼지가 납작한 나무접시로 벽을 쿡 찍었어요. 곰도 따라 했어요. 넷은 구덩이 벽을 허물어 흙을 쌓기 시작했어요. 뜨거운 차를 두 잔 마실 만큼 시간이 흘렀어요. 그런데 흙이 쌓이는 속도보다 아기 여우의 걱정이 쌓이는 속도가 빨랐어요. 사실, 아기 여우는 알았어요. 아무리 구덩이 벽을 허물어도 구덩이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요.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똑같은 일을 하니까 조금 안심이 되었어요. 먹보 곰과 돼지도 조용해졌고요.
  퍽퍽퍽, 흙벽을 파다가 아기 돼지가 우뚝 멈추었어요. 그러고는 아기 곰에게 대뜸 물었어요.
  “곰아, 네 바구니는 어디에 있어? 네 바구니도 위에 놓고 왔니?”
  “나는 바구니 없어. 숲에 가서 열매를 따 먹을 거야. 열매가 어디에 많은지 알거든.”
  아기 곰이 우렁차게 대답했어요.
  아기 돼지가 숲을 떠올렸어요. 포도, 사과, 밤, 버섯…… 가을이 온 숲은 맛있는 열매로 가득했어요. 하지만 구덩이 안은 흙뿐이에요.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니. 아기 돼지는 배가 더 고파졌어요. 지금 당장 열매를 실컷 먹고 싶었어요. 그러자 조금도 더 참을 수가 없었어요.
  “구덩이에 빠졌어요. 꺼내주세요!”
  아기 돼지가 소리쳤어요.
  아기 여우와 토끼와 곰도 소리를 질렀어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어요.
  캑캑, 목에서 마른기침이 쏟아졌고요. 입안이 마르고 목이 따끔따끔했어요.
  “목 아파.”
  아기 곰이 말했어요.
  아기 곰은 바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입에 넣었어요. 다글다글 닥다글 사탕이 굴러가는 소리가 났어요. 단박에 아기 곰에게 시선이 몰렸어요.
  “사탕이구나. 나도 줘.”
  아기 돼지가 말했어요.
  아기 여우와 토끼도 앞발을 내밀었어요.
  “없어. 한 개뿐이었는걸.”
  “혼자 먹다니 나빠.”
  아기 여우가 말했어요.
  “목이 아파서 먹은 거야. 근데 내 사탕을 내가 먹었는데 왜 나빠?”
  “우리는 사탕이 없잖아. 우리도 목이 아파.”
  아기 곰이 고개를 갸웃했어요. 자기 사탕을 먹었는데 잘못한 것처럼 말하니까요. 아기 돼지는 곰 입을 뚫어지게 보았어요. 오물오물 움직이는 볼, 달각달각 굴러다니는 사탕 소리, 달콤한 냄새. 아기 돼지는 갑자기 화가 불쑥 났어요. 곰 때문인지 사탕을 못 먹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화가 나 어쩔 줄을 몰랐어요.
  그때 누군가 아기 돼지의 머리를 딱 때렸어요.
  “아얏! 누가 나 때렸어?”
  아기 돼지가 씩씩, 콧김을 뿜었어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까맣고 반짝거리고 둥근 것이 눈에 띄었어요. 아기 돼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어요. 구덩이 입구로 늘어진 버드나무 옆에 키 큰 밤나무가 보였어요. 그리고 입을 쩍 벌린 밤송이 한 개. 아기 돼지의 머리를 때린 건 바로 아람이었어요. 아기 돼지는 냉큼 밤을 주웠어요. 마음이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한입에 먹을까. 조금씩 깨물어 먹을까?’
  아기 돼지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모두 아기 돼지를 보고 있어요. 정확히는 아기 돼지가 아니라 밤을요.
  “내꺼야. 내 머리에 떨어졌고 내가 주웠어.”
  아기 돼지가 등 뒤로 밤을 감추었어요. 밤은 작아서 나누면 콩만큼 작아질 거예요. 게다가 곰도 사탕을 혼자 먹었고요. 아기 돼지는 밤을 꼭 쥐었어요.
  “나, 나도 좀 주면 안 돼?”
  아기 토끼가 물었어요.
  아기 돼지는 배가 고팠어요. 혼자서 다 먹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기 토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어요. 아기 돼지는 밤을 이빨로 깨물었어요. 오도독, 밤이 깨졌어요. 한 번 더 깨물었어요. 밤은 네 조각이 되었어요. 꿀꺽, 꿀꺽. 구덩이 안에 침 넘어가는 소리가 가득 찼어요.
  “내가 가장 큰 조각을 먹을 거야. 내가 주웠으니까.”
  돼지가 말하자 아기 토끼와 여우가 앞발을 내밀었어요. 곰도 앞발을 척, 내밀었지요.
  “너는 먹었잖아.”
  “지금은 없어. 봐봐. 아아!”
  아기 곰이 입을 쩍 벌렸어요. 달콤한 냄새가 났어요. 아기 돼지는 곰이 미웠어요.
  “안 돼.”
  “셋이 먹고 나만 빼 놓으려고?”
  “너는 혼자서 사탕을 다 먹었잖아.”
  “하, 하지만 이건 밤이잖아. ……미안해. 나 혼자 먹어서.”
  아기 곰이 고개를 떨구었어요.
  아기 돼지는 곰이 조금 불쌍해져서 가장 작은 조각을 곰에게 주었어요. 모두 밤 조각을 입에 넣었어요. 아기 곰은 밤이 더 먹고 싶어 땅바닥을 뒤졌어요. 아기 토끼는 구덩이 밖 밤나무를 보았지요.
  “밤이 또 떨어질까? 이번에는 내 머리에 떨어지면 좋겠다.”
  아기 토끼가 말했어요.
  그런데 정말로 아기 토끼 이마에 무언가 톡, 떨어졌어요.
  “나야. 나. 이번에는 내가 맞았어.”
  아기 토끼가 신나서 외쳤지만 금방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밤에 맞은 이마가 아프지 않았어요. 거기다 차가웠고요.
  “어, 이건…… 비야!”
  아기 토끼가 소리쳤어요.
  모두 한꺼번에 하늘을 보았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비가 후두둑 쏟아졌어요. 그러더니 쏴아, 큰비가 되었어요. 구덩이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어요.
  “어떡하지?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아기 여우가 발을 동동 굴렀어요.
  “빗물이 발가락까지 왔어.”
  아기 곰이 말했어요.
  “벌써 발목까지 왔어.”
  아기 토끼가 말했어요.
  “앗!”
  아기 여우가 발등을 꾸물꾸물 올라타는 갈색 물을 피해 자신이 가져온 바구니 속으로 들어갔어요. 순간 바구니가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구멍 사이로 물이 솟았어요. 여러 갈래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아기 여우를 맞추었어요.
  아기 여우는 고함을 치며 냉큼 바구니에서 뛰쳐나온 다음, 바구니를 거꾸로 뒤집고 위로 올라갔어요. 순식간에 키가 두 뼘이나 커졌어요. 그 바람에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귀를 간질였어요. 에잇, 귀찮아. 아기 여우가 나뭇가지를 잡아당겼어요. 그런데 나뭇가지가 쭉 늘어났다 쪼그라들면서 거꾸로 여우가 당겨졌어요. 여우의 몸이 둥실 뜨고 발이 들썩댔어요.
  순간 아기 돼지 눈이 반짝거렸어요.
  “여우야, 나도 해 볼래.”
  “뭘.”
  “둥실둥실. 들썩들썩. 재미있어 보여.”
  “무슨 말이야?”
  “싫어? 너 혼자 나뭇가지를 당기고 놀려는 거야? 나도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싶은데. 너는 혼자서도 잘 뛰지만 나는 잘 못 뛰니까. 한 번만 해 보면 안 돼? 기다릴까?”
  “…… 우와! 어떡해. 어떡해. 방금 방법을 찾은 것 같아. 나뭇가지가 우리를 밖으로 꺼내줄지도 몰라.”
  아기 여우는 돼지의 말을 듣고 멋진 계획 하나가 번뜩 떠올랐어요. 여우는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시험해보았어요. 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세게 당긴 거예요. 그러자 나뭇가지가 길게 늘어나는 만큼 더 쪼그라들면서 거꾸로 당겨지는 힘이 세졌어요. 아기 여우는 신이나 크게 외쳤어요.
  “얘들아, 내 말 좀 들어봐.”
  그러고는 큰 빗소리보다 더 크게 계획을 설명했지요. 아기 여우의 계획은 아주 그럴듯했어요.
  아기 곰은 몹시 재빨랐어요.
  “여우야, 바구니에서 내려와.”
  아기 곰이 여우에게 말했어요.
  아기 여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다음, 바구니 위에서 흙탕물이 고인 웅덩이로 뛰어내렸어요. 곰이 곧바로 바구니를 들어 뒤집었어요. 토끼와 돼지는 버드나무 가지로 바구니를 단단히 묶고 넝쿨로 한 번 더 묶었어요. 그러고는 서로 마주 보았어요.
  “이제 먼저 나갈 동물을 뽑자. 누가 가장 가볍지?”
  “나는 어때?”
  아기 여우의 말에 돼지가 냉큼 대답했어요. 바구니를 빨리 타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너는 아니야. 나는 척 보면 알아. 그건 토끼야.”
  아기 곰이 말했어요.
  “…….”
  아기 토끼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아기 토끼도 자신이 가장 작고 가볍다는 걸 알았어요. 처음 순서가 된 것은 좋았지만 바구니를 타는 것은 겁이 났어요. 어떡하지? 아기 토끼가 머뭇댔어요. 그래도 친구들은 기다려주었어요. 마침내 아기 토끼가 결심을 굳히고 바구니에 앉았어요. 후훕, 숨을 들이마시고 바구니를 꽉 잡았지요. 아기 여우와 돼지와 곰이 바구니를 뒤로 쭈욱, 당겼어요.
  하나, 둘, 셋!
  셋이 한꺼번에 바구니를 놓았어요. 슈욱! 바구니가 튕기듯 위로 뻗어나갔어요. 아기 여우와 돼지와 곰은 숨을 멈추었어요. 잠시 후, 나뭇가지와 바구니가 돌아왔어요. 아기 토끼는 없었어요.
  “토끼야, 잘 갔어?”
  아기 돼지가 소리쳤어요.
  아기 토끼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토끼야!”
  아기 여우의 목소리가 떨렸어요.
  “토끼다! 저기 있어. 내가 찾았어.”
  아기 곰이 버드나무를 가리켰어요. 빼곡한 나뭇잎 사이에 하얀 덩어리가 끼어 있었어요. 토끼예요. 아기 토기는 대답 대신 앞발을 까딱까딱했어요. 이번에는 아기 여우가 바구니에 들어갔어요. 아기 돼지와 곰이 바구니를 당겼다 놓았어요. 슉! 바구니가 날아가고 잠시 후, 아기 여우도 버들잎 사이에 콕 박혔어요. 나뭇가지와 바구니가 다시 돌아왔어요.
  “…….”
  “…….”
  아기 돼지와 곰이 바구니를 보았어요. 하나가 타면 하나는 남아야 해요.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 지났어요. 그러는 동안 비가 무릎까지 찼어요. 아기 돼지가 몸을 떨었어요. 물이 자꾸만 깊어져서 더럭 겁이 났어요. 아기 돼지가 망설이다가 물었어요.
  “곰아, 나는 깊은 물이 싫어. 나, 나는 헤엄을 못 치니까. 내가 먼저 나가도 돼?”
  “응. 너도 알지. 나는 물을 좋아해. 그리고 헤엄을 아주 잘 쳐.”
  아기 곰이 씩씩하게 대답했어요.
  사실, 아기 곰도 조금 무서웠어요. 하지만 아기 돼지가 깊은 물을 정말 싫어하는 걸 알기 때문에 꾹 참았어요. 아기 돼지도 바구니를 타고 구덩이에서 빠져나갔어요. 나뭇가지와 바구니가 다시 돌아왔어요. 하지만 아기 곰은 바구니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당겨줄 친구가 없었으니까요. 아기 곰은 생각했어요. 구덩이에 물이 가득 차면 헤엄을 쳐서 나갈 수 있을까? 하고요.
  그때였어요. 아기 토끼가 튼튼한 넝쿨을 찾아와 한쪽 끝을 잡고 반대쪽 끝을 구덩이 안으로 던졌지요. 아기 곰은 기뻐하며 넝쿨을 꽉 잡았어요. 버드나무에서 막 내려온 아기 여우와 돼지도 토끼 뒤에서 넝쿨을 잡았어요.
  “나는 힘이 세니까 금방 올라갈 거야.”
  아기 곰이 큰소리를 땅땅 쳤어요.
  그런데 구덩이 벽에 발을 디디자마자 주르륵 미끄러지고 말았어요. 아기 곰은 넝쿨을 꽉 잡고 다시 구덩이 벽을 디뎠어요. 한 발짝, 두 발짝. 하지만 다시 미끄러져 구덩이로 떨어졌어요.
  “올라갈 수가 없어. 어떡하지?”
  아기 곰이 울먹였어요. 내내 꾹 참고 있었는데, 혼자 남으니까 겁이 와락 났지요.
  “내가 사다리를 가져올게.”
  “돼지야 기다려. 집에 갔다 오면 너무 오래 걸려. 저거 어때?”
  아기 여우가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통나무가 있었어요.
  “딱 좋아. 통나무를 구덩이에 넣자.”
  “통나무 사다리구나! 나는 뒤쪽을 들게. 빨리빨리.”
  아기 토끼가 발을 굴렀어요.
  아기 여우와 돼지와 토끼는 거센 빗줄기를 뚫고 통나무를 옮겼어요. 통나무는 몹시 무거웠어요. 거친 나무껍질 때문에 살갗이 까지고 뾰족한 나뭇가지가 살을 파고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투덜대지 않았어요.
  “곰아, 구덩이에 통나무를 떨어트릴 거야. 벽에 딱 붙어 있어. 참, 바구니를 써. 맞으면 안 되니까.”
  아기 여우가 말했어요.
  아기 곰은 얼른 바구니를 뒤집어쓰고 벽에 딱 붙어 섰어요. 셋은 구덩이 안으로 조심조심 통나무를 밀어 넣었어요. 드디어 구덩이 안에 통나무가 비스듬하게 세워졌어요. 아기 곰은 넝쿨을 잡고 통나무를 밟으면서 구덩이 바깥으로 나왔어요.
  “빠져나왔다. 내가 마지막에 나오길 참 잘했어. 나는 나무를 잘 타고 용감하니까.”
  아기 곰이 으스댔어요.
  아기 곰과 토끼와 돼지는 가장 가까운 여우네 집으로 달려갔어요. 그리고 차례차례 따듯한 물로 씻은 다음, 아기 여우가 주는 과자와 차를 마셨어요.
  “정말 엉망인 날이야. 엉망인 날씨야.”
  아기 여우가 말했어요.
  “맞아. 엉망진창 소풍이었어. 하지만 같이 있어서 참 좋았어.”
  아기 토끼가 말했어요.
  “응. 그리고 그렇게 크고 멋진 구덩이는 처음 봤어. 다음에는 사다리를 가지고 가자.”
  아기 돼지가 말했어요.
  “그때는 사과를 많이 먹고 갈 거야. 또 빠지면 내가 꼭 구해줄게. 나는 힘이 세니까.”
  아기 곰이 말했어요.
  그러고는 이내 잠이 들었지요. 아기 돼지도 “응.” 하고는 잠이 들었어요. 아기 여우와 토끼도 잠이 들었어요. 밤사이 비가 그쳤어요. 숲속은 다시 조용해졌어요. 그리고 아기 여우의 집에서는 쿨쿨 잠자는 소리가 한참 동안 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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