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문학이 서 있는 좁은 문

    

1. 어린이와 여러 개의 좁은 세계들

    탈근대와 아동청소년문학에 대해서 말한다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린이는 여러 개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코레타 스콧 킹 상을 세 번, 뉴베리상을 네 번이나 수상했으며 2018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청소년소설가 재클린 우드슨은 좋은 아동문학 작품들이 다루어온 시대를 초월한 주제로 다음을 꼽았다. 하나는 ‘소속감’에 관련된 문제이고 또 하나는 늘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의 ‘이동’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연결되어 있다. 새로운 곳으로 이동한 어린이에게는 늘 소속감에 관한 고민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미국 안에서 여러 차례 이주하며 어린이와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 퀴어이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던 여성 청소년 재클린 우드슨에게 그 당시의 아동청소년문학 작품은 말을 잘 걸어주지 않았다. 어떤 작품을 읽어도 그 안에 자신의 세계는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결핍의 감정은 재클린 우드슨이 아동청소년문학 작가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 경험은 왜 내가 읽은 책들의 책장을 넘겨봐도 결코 나오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내가 확실하게 그 빈 곳을 메우고 싶었다.”고 작가가 된 계기를 말한다. 그는 소수자의 삶을 사실적으로 다룬다. 재클린 우드슨의 독자들은 “저는 작가님은 모르고 우리의 삶은 매우 다르지만 작가님은 이 책에서 제 이야기의 ‘일부’를 들려주고 있군요.”라고 적극적 소감을 표시해온다고 한다.1
    이 일화는 어린이가 더 여러 개의 문학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준다. 오직 자신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수백만, 수억 개의 좁은 이야기, 1인용 아동문학을 기다린다. 이것은 지금 세계가 주목하지 않았던, 주류의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는 틈새 구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까지 문학이 더 넓게 조망해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1928년 판까지만 해도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가치’를 복수형으로 쓰지 않았다. 그런데 1992년 판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가치를 정의하면서 “가치란 개인의 표준, 인생에서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이라고 보고 주관적인 특성을 부여한 다음 ‘가치들’이라는 복수형으로 적었다.
    우리 아동청소년문학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좁은 공간과 다양한 시선에서, 비가시적이었던 폭넓은 구역을 조망해달라는 요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으나 구체적 담론으로서 다룰 작품들이 등장한 것은 2010년대 이후다. 이경혜의 『마지막 박쥐 공주 미가야』(문학과지성사, 2000),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 2000)은 ‘다양성’이라는 개념이 우리 아동문학에 본격적으로 도달하기 이전부터 소수자에 대한 혐오, 젠더, 비혈연 가족 공동체 등의 틈새 구역을 적극적으로 비춘 작품들이다. 임정자의 『무지무지 힘이 세고, 대단히 똑똑하고, 아주아주 용감한 당글공주』(문학동네, 초판 우리교육, 2002)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뒤집었다. 고정욱의 『안내견 탄실이』(대교출판, 2002)가 장애인과 아동문학이라는 고민을 시작하게 만들었다면 공진하의 『왔다갔다 우산아저씨』(청년사, 2004)는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 당사자 안의 다양성을 본격적으로 면밀히 다룬다. 이주 배경을 지닌 어린이의 삶과 인종 차별의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에 참여한 앤솔러지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창비, 2004), 김송순의 『모캄과 메오』(문학동네, 2006), 용산참사를 계기로 결성된 더작가의 앤솔러지 『박순미 미용실』(한겨레아이들, 2010)의 단편들, 이현의 『오늘의 날씨는』(창비, 2010), 윤재인·오승민의 그림책 『찬다 삼촌』(느림보, 2012)을 거쳤다.
    201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다양성의 서사는 문학적인 성숙의 측면에서 새로운 단계를 지난다. 박영란의 『서울역』(자음과모음, 2014)은 여행의 출발점이 아닌 아동과 청소년의 거주 공간으로서 서울역과 그 안에서 노숙하는 어린이의 삶을 조망한다. 김중미의 『모두 깜언』(창비, 2015)에서 주인공 유정이의 주 양육자는 할머니와 작은아빠, 베트남에서 온 작은엄마다. 인물의 가족 다양성, 이주 배경, 장애 여부는 작품 장면과 주인공의 고민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작품의 소재로 앞세워진다거나 서사 전개의 수단으로서 재현되지 않는다. 김혜온의 『바람을 가르다』(샘터사, 2017)는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의 당사자성을 밀도 높게 다룬 작품이다.
    2020년대로 건너오면서 다양성은 아동청소년문학의 기본 키워드이자 예술적 근거지가 되었다. 김중미는 『느티나무 수호대』(돌베개, 2023)에서 이주 배경을 지닌 도훈이 가족과 여러 나라에서 온 그의 이웃들의 삶을 풍성한 서정성으로 재현한다. 이 작품 안에서 ‘이주’는 사회적 사건이 아니라 삶의 진폭을 다르게 구성하는 미학적 요건이다. 김해원의 『나는 무늬』(낮은산, 2021)와 진형민의 『곰의 부탁』(문학동네, 2020)에서 청소년 노동자의 일상은 날것의 현실과 강력하게 충돌하고 있어 엷은 감상이 끼어들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백온유의 『페퍼민트』(창비, 2022)는 조금 더 건조하고 강경하게 당사자 청소년의 목소리에 다가가 있다. 이것은 작가가 청소년 당사자 세대와 더 가까이 있다는 물리적 조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연령이라든가 소속된 세대가 반드시 작품의 현실성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너를 위한 B컷』(문학동네, 2023)은 198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해마다 당대 청소년의 목소리에 조금씩 더 근접한 지점으로 다가가며 작품을 써나가고 있는 이금이 작가의 작품으로 1인 미디어 시대 청소년의 관계 문제와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청소년의 현재적 고민들이 가감 없이 생생히 담겨 있다. 작가가 소수자의 감수성에 대해 얼마나 첨예한 태도로 임하는가가 작품의 ‘좁음’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더 비좁은 이야기로 파고들어가 여러 개의 세계들을 보여주는 경향은 우리 아동청소년문학 안에서 탈근대를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흐름이다. 문학 작품의 다양성은 어린이가 공동체에 갖는 소속감을 높이고 생명력 있는 역할 모델을 제공한다.2 어린이를 더 여러 개의 세계에 개방적으로 들여보낼수록 세계는 여러 겹의 안전망을 갖게 되고 풍부한 돌봄의 장면과 마주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디스 버틀러의 견해를 빌리자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탈종속’의 가능성을 갖게 된다.3 왜 억압적인 현실에 맞서 성장하는 자의 자유를 추구하는 아동청소년문학이 지속적으로 ‘당사자성’과 ‘좁음’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돌봄은 내가 아닌 너, 즉 이질성에 응답하는 것이고 이질성과 연결되는 것이다.4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더 좁은 곳으로 들어가 이야기 속에서 더 많은 이질성을, 더 많은 세계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껏 인류가 마주쳤던 어느 순간보다 고도로 위험이 복잡하게 얽힌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구조structure가 우리를 이 위험으로부터 구조하거나rescue 최소한 살아남을 수 있게 우리가 선 발밑을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은 희미해져가고 있다. 이 아득한 위험의 릴레이 안에서 살아가게 될 우리 아동청소년에게는 다양성의 실뜨기를 통한 안전함의 획득, 비록 장력이 약하더라도 나를 떨어뜨려버리지 않을 섬세한 연결망의 구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탈근대의 아동청소년문학이 좁고 친밀하고 안전한 서사를 원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그들에게 생존의 문제다.
    

2.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해 또 질문하는 문학

    아동청소년문학과 탈근대에 대해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금서’가 될 줄은 2019년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왜 2019년인가 하면 그해가 ‘나다움어린이책 논쟁’이 일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나다움어린이책’은 행정부서인 여성가족부와 민간이 합동으로 진행한 성평등 어린이책 문화사업이다. 이 사업은 2018년 12월 정부와 민간기업, 아동복지재단의 ‘성평등 아동도서 및 문화확산 사업’에 대한 양해각서 체결로부터 시작되었다. 자기 긍정, 다양성, 공존을 기반으로 몸의 이해, 사회적 약자, 안전, 연대 등을 다룬 어린이책에 대한 전시, 공모, 토론,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의 사업을 벌이고 남자다움, 여자다움이라는 근대적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나 ‘나다움’을 찾아가자는 취지로 진행하던 공공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오늘의 어린이책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급속히 달라지는 인권 감수성과 성인지 감수성을 자신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면서 성장하고 있는데 책이 그 안에서 슬기로운 동행자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질문한 것이다. 이 사업의 핵심은 어린이책을 향한 스물여섯 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질문은 ‘비인간 등장인물이 성별 고정관념에 의해 의인화되지는 않나요?’ ‘사회적 약자는 보조적 인물로만 등장하지는 않나요?’ ‘모든 가족 구성원의 의사결정권이 존중되나요?’ ‘여성 인물의 노동을 본인, 가족, 동료, 사회가 존중하나요?’ 등 우리가 문학 작품의 전근대성을 말할 때 짚어볼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 사업은 도서선정위원회가 추천한 일부 어린이책이 ‘금서’로 명명되면서 2020년 말에 전격 중단되고 만다. 2020년 8월 25일 국회 교육상임위원회에서 당시 국민의힘 소속 한 국회의원이 선정 도서 가운데 7종에 대하여 ‘동성애를 조장’하고 ‘조기성애화의 우려’가 있다고 말하며 여성가족부를 향해 문제를 제기했다. 차별주의자들의 반대 여론을 의식한 정부의 성급한 철회 결정으로 사업은 중단되었으나 이 사업은 한국 아동청소년문학계에 성인지 감수성과 성폭력,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키고 세계 아동청소년문학의 탈근대적 흐름에 동참하도록 이끈 계기가 되었다. 사업의 시행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독자 북펀드를 열고 『오늘의 어린이책 1』(다움북클럽, 오늘나다움, 2021)과 『오늘의 어린이책 2』(다움북클럽, 오늘나다움, 2023)를 발간하며 어린이책에 담긴 차별적 세계관과 편견이 깃든 고정관념에 대해, 오늘 이 순간 속에서 질문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탈근대에 대한 논의는 전통적인 의미의 ‘해석’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프레드릭 제임슨에 따르면 탈근대적으로 글을 읽는 행위는 다양한 것에 몰두하는 행위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가 벌어지고 있음을,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음을, 그리고 아직 명확하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대상들이 우리의 목전에서 변화하기 시작했음을”5 깨닫는 일이다. 근대적 리얼리즘이 모든 원재료들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방향과 관련이 있었다면 탈근대적 리얼리즘은 사회적 정보를 징후로써 산출한다. 질문은 다음의 질문으로 이어지며 지속적인 탐색을 이어간다. 이 질문 릴레이의 끝맺음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으며 질문의 중단이야말로 무의미의 근대적 해석 범위 안에서 가장 무의미한 행위이다.
    역사적으로 ‘금서’는 질문을 금지하는 일과 관련이 있었다. 계몽주의 시대인 1731년에 나온 책 『계몽사상가 테레즈』는 프랑스 혁명 직전까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금서였으며 그 안의 그림은 별도로 판매되기도 했다. 해당 일러스트레이션은 성인 남녀가 생식기를 노출하고 성행위를 하는 모습을 나이 어린 청소년이 커다란 창구멍으로 보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 별지 그림이 크게 인기를 모으면서 철학적 내용을 담은 본래의 책이 화제가 되었고 계몽의 시대를 앞당겼다. 『계몽사상가 테레즈』가 금서가 된 이유는 종교와 절대왕정에 대해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금서의 비밀시장이 활황을 누렸던 것은 억눌린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욕구와 관련이 있다. 서양의 금서를 연구해온 주명철은 금서와 관련해 두 가지 중요한 지점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금서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시대에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권력자가 만든다는 것. 둘째, 근거 없는 인신공격과 모함이 포함된 금서는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금서에 실린 내용을 곧이곧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없음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책은 무엇을 이끈다기보다는 무엇이 존재한 후에 나오는 것임을 명심하라는 것이다.6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에서 ‘금서’ 관련 가장 뜨거운 사건이었던 나다움어린이책 논쟁은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제기될 조짐이 보였다. 가족과 사회 안에 뿌리내린 고정관념에 대한 여성주의적 질문을 담은 최나미의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사계절)이 2012년에 출간되었고 어린이가 느끼는 첫사랑의 감각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한 김민령의 「견우하고 나하고」와 「첫첫눈이 오면」이 담긴 단편집 『나의 사촌 세라』(창비)가 출간된 것도 2012년이다. 2013년 창비어린이 세미나에서 김지은은 아동문학에서 감정, 사랑, 성의 표현에 대해 다루면서 “너도 느끼고 있니?”라고 묻는 아동문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성은 아동문학의 금기가 아니며 작가들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어떤 느낌을 풍요롭게 누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발견해나갈 것인지 발견하고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내야 한다고 제안한다.7 2016년 황진미는 어린이들이 현실에서 빠지기 쉬운 확신의 오류를 짚어주면서 더 넓은 의미의 젠더의식과 정의로움을 사유하게 하는 작품으로 동화가 원작인 드라마 〈플루토 비밀결사대〉를 예시로 든다. 이 작품이 아동성폭력 피해자인 여성 어린이의 현실적 상황과 목소리를 은폐나 왜곡 없이 전달하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성차에 대해 전복적인 질문을 던지는 애니메이션 〈라인타운〉도 언급하면서 어린이들에게 “대중문화는 무조건 금지하거나 허용해야 하는 오락의 일환이 아니며 토론을 통해 비판적 읽기를 수행해야 하는 중요한 교육자료”라고 말한다.8
    책에 대해서 더 적극적인 질문을 던지자는 움직임은 이후 가속화된다. 공진하는 “작가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차별과 편견에 사로잡혀 아동문학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고 있는 소수자는 없는지 늘 두리번거려”달라고 당부한다.9 이러한 시도가 자칫 검열로 여겨질까 걱정하면서 이것은 가진 자의 억압이나 회유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표현한다. 금서는 권력자의 것이며 이러한 ‘두리번거림’의 시도는 사회적 소수자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므로 금서의 맥락으로 작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혐오의 말을 줄이는 일은 검열이 아니라 작가의 자세를 가다듬는 일이라고 말한다.
    질문하고 또 질문하는 일은 탈근대의 독자들에게 익숙한 일이다. 그 질문들은 시대를 바꾸고 책이 놓인 자리를 바꾼다. 그 과정에서 어떤 책은 벽장 안에 갇혀버리기도 한다. 어린이 독자는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탈근대 독자의 삶을 경험했다. 나다움어린이책 선정목록 중 일부 도서가 금서로 지정되었던 2019년의 상황은 2023년에 전국의 도서관이 겪은 금서를 요구하는 악성 민원 사태로 이어졌다. 불과 4년 만에 성교육, 성평등, 성적 지향과 관련된 아동·청소년 도서의 열람 제한, 폐기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전면적으로 도서관 행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정 도서에 관한 접근을 제한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도서관과 사서에게 자기 검열을 강요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금서를 어린이와 분리시키려는 시도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근대적이라고도 볼 수 없는 아동청소년문학 작가와 출판인을 위축시키는 전근대적인 움직임이다.
    

3. 탈근대 시대의 아동청소년문학,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2023년 현재 아동청소년문학의 금서 논의는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니다. 국내외에서 기이한 이들이 문학 앞에서 고함을 질렀고 통탄할 만큼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은 2023년에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읽어줘요, 스텔라』 금서 지정 사건이다. 이 책을 쓴 작가는 마리 루이스 게이인데 그의 이름에 게이Gay라는 3음절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금서 민원을 받고 도서관에서 열람 제한이 걸리게 되었다. 사건이 벌어진 해리스 카운티 공공도서관의 관장 신디 휴이트는 클린 업 앨라배마라는 단체의 압력을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혐오주의자들은 이처럼 부지런하며 적극적이다. 물론 이에 맞서는 시민들의 움직임도 뒤따랐다. 2023년 미국의 금서 읽기 주간에는 ‘금지된 책의 여행’이라는 자발적인 시민들의 책 버스 여행이 열렸다. 금서를 가득 실은 버스가 금서로 고생하는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응원하는 이 시민운동은 관심 속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조금 다른 맥락에서 금서 논의가 문학 창작자에게 표현의 고민을 안겨주는 경우도 나타났다. 1964년에 출간된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에 등장하는 식탐 많은 욕심쟁이 어린이 아우구스투스 글룹Augustus Gloop은 초판본 원작에서 ‘어마어마하게 뚱뚱한enormously fat’ 몸집의 인물로 묘사되었다. 2023년의 어린이들은 ‘뚱뚱한fat’이라는 표현이 삭제된 채 ‘어마어마한enormous’이라고만 적힌 문장을 읽는다. 이 인물의 이름은 황제 아우구스투스에서 따왔으며, 성씨인 Gloop은 ‘꿀꺽’ 혹은 ‘꿀꺽꿀꺽 먹어치우다’라는 뜻의 Gulp와 발음이 비슷하다. 로알드 달이 이 동화를 집필할 당시와 달리 현대의 독자들은 ‘뚱뚱함’을 부도덕함과 연결시키는 이와 같은 서술에 대해 비판적이다. 몸의 다양성에 대한 어린이의 태도를 획일적으로 만들어 심할 경우 섭식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 『마녀들The Witches』에서 마녀들은 대머리이고 긴 가발을 쓴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이 묘사도 수정되었다. 어떤 여성이 가발을 쓰게 되는 상황에는 질병 치료를 포함해 많은 이유가 있으며 이 묘사가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를 내포할 수도 있다고 비판받는 것이다.
    로알드 달의 책을 출간하고 있는 퍼핀 출판사는 현대 어린이 독자들의 신체, 정신 건강, 인종, 성별 등에 대한 감수성을 고려해 이 대목을 비롯해서 원문의 표현 몇 군데를 수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넷플릭스는 2020년 로알드 달 컴퍼니를 인수하고 그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상물 제작을 준비하면서 원문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다. 로알드 달은 1990년 일흔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책은 68개 언어로 번역되어 이미 3억 부 이상 판매되었다. 그의 작품에 대한 사후의 개정 움직임과 관련해서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로알드 달만의 개성적인 표현을 평범하고 매력 없는 언어로 바꾸어버리는 행위이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검열이라는 의견이다. 반면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는 포용성이 높은 문학을 제공하기 위해서 부분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모자를 쓴 고양이는 검은색인가?: 아동문학에 숨겨진 인종주의와 다양한 책의 필요성Was the Cat in the Hat Black?: The Hidden Racism of Children’s Literature, and the Need for Diverse Books』이라는 책을 집필했던 필립 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린이에게 단순히 차별적인 내용이 담긴 책을 읽어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 책을 어린이에게 읽어주지 않겠다고 판단한 양육자들의 결정을 지지하지만 책에 담긴 차별적인 내용을 외면하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문제가 있는 책을 읽고 무엇이 문제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린이가 책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는 책을 가지고 논쟁을 벌여도 괜찮고 심지어 책을 보고 화를 내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책 안에서 여러 가치들을 스스로 탐색해보는 것을 권한다. 문제적인 책을 회피하지 말고 더욱더 다양한 책들을 정면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의 자유와 토론의 개방성이라고 보았다. 『아메리칸 인디언 아동문학American Indians in Children’s Literature』을 펴낸 출판인이며 남베 푸에블로Nambé Pueblo 부족의 등록된 일원이기도 한 데비 리스도 비슷한 의견이다. 차별적인 내용이 담긴 책을 일부러 찾아가면서 읽어줄 필요는 없겠지만 어린이가 그러한 책을 접했을 경우 충분한 토론을 벌이면서 어린이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질문하고 가치들을 탐색할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10
    과거(라고 쓰고 근대라고 읽는다.) 어린이에게는 ‘가치’ 있는 고전을 읽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학에서 배포한 동서양 고전 목록을 읽히던 시절이 있었다. 독서 감상문을 쓸 때면 책이 바뀌더라도 유사한 종류의 느낀 점을 도출해내도록 지도했기 때문에 독후감 공책은 줄거리와 느낀 점을 쓰는 칸의 숫자까지 양식이 단일했다. 책을 읽고 나면 반드시 보편적 선의 자리에 올려놓을 한 명의 인물을 작품 속에서 찾게 하고 독서록에는 그 인물로부터 ‘본받을 점’을 기록하도록 했다. 어린이에게 전달할 선악은 선명했고 소감의 방향은 통일되어 있었다.
    그러나 2023년의 어린이는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는 책을 읽으며 ‘세계들’을 탐험하고 그 책을 둘러싼 ‘가치들’ 속에서 이동하는 시선을 경험한다. 근대를 상징하는 ‘고전’의 개념은 속속 도전을 받는 중이다. 영국의 아동 독서 후원단체 북트러스트Booktrust의 상임의장 다이애나 제럴드Diana Gerald는 책이란 언제쯤 ‘고전’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11 출간되고 나서 시간이 많이 흐르면 고전이 되는 것인지, 꾸준히 팔려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이거나 둘 다가 아닌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어린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자신이 공감하는 언어로 이야기할 따름이며 ‘가장 정통의’ 또는 ‘가장 보편적인’ 세계를 다루는 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고전이 책 속에서 확신하는 바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힘이 고전 자체를 읽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탈근대의 어린이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더 다채로운 이야기를 듣기를 원한다. 국내외의 많은 독서 전문가들은 근대 아동문학이 지녔던 표준적 이상과 고전 읽기의 강조가 도리어 어린이의 책 읽기 열정을 위축시킨다고 말한다. 다양한 책을 열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듣지 못했던 관점, 신선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동화나 청소년소설 안에서 자신과 닮은 인물을 본 적이 없을 때 책은 자신과 멀다고 여기게 된다. 유색인종 어린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들이 더 많이 책 속의 인물로 나타나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탈근대적인 아동청소년문학 서사는 가치들 속의 좁은 문을 향해서 들어서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가치’를 ‘가치들’이 대체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수행하게 되는 현재적 작업이다.
    아동청소년문학이 누군가가 닫아버렸거나 강제로 닫혀버린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례는 최근 들어서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오세란은 청소년의 몸과 일상이 권력의 전쟁터에 놓여 있는 현실에서 청소년소설 속 인물은 그들의 일상을 더욱 미시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청소년의 일상 자체에 내재해 있는 문제를 구체화하여 사건으로 확대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의 미메시스적 재현은 단지 모사가 아닌 사건을 태어나게 하는 바로 그 인큐베이터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2 이것은 탈근대 아동청소년문학이 들어가야 하는 좁은 문에 대한 가장 가까운 정의로 보인다.
    여러 작품들이 시대를 증빙하며 지난 10여 년에 걸쳐 그 좁은 문으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다. 반려동물을 위탁 양육자에게 맡기고 해외로 이주하는 어린이의 갈등을 다룬 이금이의 「사료를 드립니다」(『사료를 드립니다』, 푸른책들, 2012)는 어린이들이 나눔 거래로 받아온 열대어를 놓고 고민하는 윤슬의 「작별인사」(『오늘의 햇살』, 문학과지성사, 2022)로 연결되어 동물에 관한 더 좁은 고민의 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최나미의 「장대비」(『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 한겨레아이들, 2012)에서 목사보다 목사 가족으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하며 어른의 위선에 질문을 던지고 재혼가정 재희의 삶을 관찰하던 두규는 신현이의 「바다 깊은 곳 파랑」(『저절로 알게 되는 파랑』, 문학동네, 2021)에서 버릇이 없는 애들은 다 엄마 아빠가 없어야 하지 않느냐고 어른의 위선을 향해 외칠 줄 아는 재혼가정의 당사자 온유로 자랐다. 김태호의 「나목이」(『제후의 선택』, 문학동네, 2016)에서 아파트 문에 매달려 동생을 붙잡고 살아남으려면 잠들면 안 된다고 하던 나목이는 윤슬의 「잠이 오지 않는 밤」(『갈림길』, 웅진주니어, 2023)에서 동생 소라를 재우기 위해 한때 새아빠였던 이의 딸 소라에게 밥을 먹이는 언니로 자랐다.
    어린이들은 류재향의 『기타 등등 동아리를 신청합니다』(시공주니어, 2023)에 등장하는 솔이와 친구들처럼 더 좁은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고 거기서부터 뿌리를 내리며 성장 중이다.
    무엇이 어린이를 더 성장시킬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보다는 무엇 속에서 어린이가 자라고 있는지를 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동문학이 좁은 곳을 찾아 나서는 까닭이다. 탈근대의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은 과거로부터 차근차근 달려와 오늘의 어린이 곁에 몇 미터, 더 근접한 골목 앞에 서 있다. 비평은 여기에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하면서 성실하게 동행해야 할 것이다.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문예창작전공 교수. 평론집 『어린이, 세 번째 사람』 『거짓말하는 어른』이 있음.

    
    

〈주석〉

  1. Hephzibah Anderson, “The greatest children’s books of the 21st Century”, BBC Culture, 2023. 5. 23.
  2. 한국아동청소년문학회, 『100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아동청소년문학』, 창비, 2023, 314쪽.
  3. 주디스 버틀러, 『윤리적 폭력 비판』, 양효실 옮김, 인간사랑, 2013, 34쪽.
  4. 이현재, 「도나 해러웨이의 포스트휴먼 페미니즘과 난잡한 돌봄 공동체」, 『한국여성철학』 제37권, 한국여성철학회, 2022. 5., 53쪽.
  5. 프레드릭 제임슨,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 문화 논리』, 임경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2, 281쪽.
  6. 주명철, 「금서, 절대로 가둘 수 없는 불사조」, 『출판문화』 통권 693호, 2023. 10., 24~25쪽.
  7. 김지은, 「어린이의 새 얼굴을 바라보다」, 『창비어린이』 통권41호, 2013년 여름호, 27쪽.
  8. 황진미, 「알파고에서 세월호까지, 어린 시민이 되기 위해」, 『창비어린이』 통권53호, 2016년 여름호, 56쪽.
  9. 공진하, 「혐오 표현은 대항 표현과 함께」, 『창비어린이』 통권 64호, 2019년 봄호, 60쪽.
  10. Kate Lewis, “Many classic childern’s books have troubling or languag. Should we read them anyway?”, Washington Post, 2018. 10. 29.
  11. Samantha Shannon, “Stop pushing the same ‘classic’ books on children and trust modern writing”, The Guardian, 2016. 7. 13.
  12. 오세란, 「청소년소설 속 아이들은 자기 서사의 주인공이고 싶다」, 『기묘하고 아름다운 청소년문학의 세계』, 사계절, 2021,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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