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시간의 순환성에 대한 사유

김림, 『미시령』, 푸른사상, 2023.

    2023년 여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많은 사람들이 산사태와 홍수 피해를 입었다. 이런 안타까운 사고의 발생 원인은 간단히 말해 나빠지는 지구 환경 때문이다. 사람들이 공기가 맑은 숲속에 휴식처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인공절개지가 위험 지구를 표시하는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숨은 곡절도 포함된다. 인공절개지는 홍수 대비 별도의 관리 지구로 포함되어야 하는데 변화하는 이상 기온만큼 성급하게 들어온 사람들과 산림을 훼손하고도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는 사람들로 인해 본인은 물론 산마을 사람들이 끔찍한 홍수와 산사태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자연이나 도시 어디서나 불균형적인 삶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안과 밖이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상황이 시작될 때 불편한 감정이 생겨나고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 불안한 마음은 가중된다.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될 때 인간이 가진 자율성은 점차 파괴되고 실존의 양감은 흐려지거나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김림은 이번 시집 『미시령』에서 ‘가난’ ‘분실’ ‘벽’ ‘실종’ ‘블랙홀’ ‘폭설’ ‘줄’ ‘휴전선’과 같은 ‘고립’을 드러내는 개인적 상징어를 많이 사용한다. 이를 통해 전쟁과 죽음을 떠올리는 불모의 공간과 타인과의 단절된 상황을 핍진하게 그려 나간다. 삶의 경험 속에 여실하게 드러나는 타자들을 견지하면서 작가의 현실 지향 의식을 역동적인 시 정신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삶의 현실에 부조화를 느낄수록 시대 상황을 형상화하는 시인의 언술 방식은 대체로 직접적이며 객관적으로 진술되고 있다.
    “누가 계급을 나누는가/ 우리는 모두 바닥이다”(「우리가 바닥이다」)와 같은 시인의 단언적 어조는 자칫 선언적選言的인 구호로 들려 독자들의 관심을 주저하게 할 수 있다. 나아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소지를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이나 이태원 사건에서 보았듯이 상호 불통의 시간이 일률적으로 회귀할 때 이런 비장한 어조는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 의식을 드러내면서 문제를 직시하게 하는 방향표지의 역할을 한다.
    인간성 상실 문제나 본질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김림의 두 번째 시집 『미시령』은 총 4부로 나누어져 1부에서는 중층적 시간 속 존재자들의 죽음과 연루된 불안을 대상화하고 2부에서는 아슬아슬 줄을 타는 타자들의 정황이나 타자와의 상호문제를 리얼리티한 표현과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또 3부에서는 2014년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내용을 이중 서사의 방식으로 드러내면서 개인과 집단의 특별한 삶을 다룬다. 4부에서는 참고래의 주검이나 황사주의보와 같은 우리 시대 또 다른 타자의 시간과 공간을 다루면서 동질적인 화자 기억의 서사를 기술하고 있다.
    먼저 시집 첫 장에 실린 「콩밭 너머」는 시적 화자의 정체성이나 가족을 비롯한 타인과의 관계론적 삶을 연상케 하는데 이 시는 ‘시간의 인식’을 바탕으로 존재론적 방식으로 쓰였다.

    콩밭 매러 간 서방님/ 오십 년째/ 그 세월 끌어안은/ 새댁 머리엔// 어느새/ 무성한 서리//콩밭엔 그저/ 눈길만 보낼 일이지// 그도 아니면 마음만/ 아예/ 신 벗고 콩밭 매러 가신 님// 울타리 너머/ 잡초밭

─「콩밭 너머」 전문

    시인이 이 시집에서 자신의 삶을 객관적, 주관적으로 재구성할 때 심리적인 섬세함보다 총체적인 문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쓴 시가 많은데 대개는 시인의 원적原籍과 연관된 신원身元을 기록한다. 이때는 자신의 생래적生來的인 결핍과 더불어 불안한 생존의 양식을 담담한 진술체의 어조로 그려낸다. 그런데 유독 1부에서는 몽타주 방식으로 구성된 시가 눈에 띄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파편적인 이미지가 그의 전 생애를 집약하는 의미로 드러나는 것이 인상적이다.

    2부에서의 시들은 대체로 타자와의 상호관계와 문제들에 대해 사회학적 관점에서 다룬다. 시인은 오늘날의 전체주의가 과거처럼 대중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물리적인 억압보다는 일상에서 경제적·사회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에게 미시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논리를 견지한다. 가려진 세계의 부조리를 윤리적 차원에서 사유하는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1906~1995)는 일찍이 “주체와 주체가 마주하는 곳은 얼굴이다”라고 언급했다.
    2020년~2022년도에 세계적인 팬데믹이 왔을 때 우리는 거리두기를 하였고 코로나19 격리기간 동안 문을 닫는 상점들이 늘어났다. 정부에서 이때부터 각종 지원금을 주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보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가난을 입증해야 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했고 최종적으로 가난이 증명되었을 때 정부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풍족하게 가난하지 못”하고 “가난을 입증하지 못한 일가족은 스스로 퇴거를 택”하기도 했다.
    영국을 배경으로 2016년도에 개봉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나오는 주인공 ‘다니엘’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한 이야기가 40여 년이 지난 우리의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이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복잡한 관료적 절차와 까다로운 요건 때문에 번번이 실패한 후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 것처럼 정부 지원 신청 조건에 부합하지 못해 죽음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의 모습을 김림 시인은 이번 시집 『미시령』에서 다루고 있다. 사회 제도와 구조가 이렇게 작동되므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어떤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인간적인 모욕을 삭제하거나 스스로의 수치심을 감춘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책임 의식’이란 “우리가 마주하는 얼굴”이고 자신이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명 의식의 다름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인터넷 창에서 검색하면서 까다로운 정부 지원금 신청 절차를 거쳐야 하는 얼굴들과 마주하는데, 이때 시인의 마음을 끝없이 불편하게 만드는 문서들(이자지연 명세서 / 채무이행통지서 / 개인회생 안내문 / 교통통행료 미납고지서 / 법적 예고장 / 강제집행착수통지서 / 신체포기각서)은 그 낱낱이 우리가 마주하는 “슬퍼 보이고 외로워 보이는” 얼굴, 얼굴들인 셈이다. 그런데 “가난을 증명하는 일이라니” 대뜸 질문을 제기하는 김림의 「가난 증명서」는 복지수급의 자격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 불편한 분위기를 ‘계층 간 괴리’로 파악한 시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자기보다 잘사는 빈민과 그렇지 않은 빈민’으로 구분하여 빈민끼리도 연대하기 힘든 사회적 구조가 존재함을 드러낸다.

    ‘타자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과 사유를 앞당기는 김림의 시는 두 개 이상의 서사를 병행하는 이중 서술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시집 3부에 나오는 「비밀의 바다」가 그러하다.
    시적 화자는 먼저 세월호 이야기를 현재적 관점에서 발화한다. 그다음 새로 문을 연 물속 학교 이야기를 소문의 형식으로 시화하면서 점층적으로 환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물속 학교에서 걸어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은 눈썹이 하얗게 센 아버지 선잠 속으로 들어간다.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 사이를 오가며 전개하는 이러한 이중 서사성은 현실과 상상의 괴리감을 드러내지만 안과 겉, 어둠과 빛, 부정과 긍정이라는 이원적 양상으로 인간의 고독을 나타낸다. 시인의 이러한 시적 전략은 결과적으로 독자의 관심과 공감을 얻고 나아가 분열된 공동체의 연대감을 이루게 한다.
    서로 다른 시간, 장소, 인물 등의 요소를 병행하여 다양한 상황과 관점을 보여주는 이중 서사 용법으로 쓰인 시는 제1부 「아버지의 등」이나 「홍어무침」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비밀의 바다」가 현실과 환상의 이중 서사였다면 이 작품들에서는 현재와 과거라는 시간적인 이중 서사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아버지의 등」에서 화자는 어린 날 보았던 아버지의 등을 삼일빌딩만큼 견고하고 높게 비유한다. 그만큼 전적으로 의지했던 존재가 아버지였음을 밝히는 것인데 예고도 없이 그 튼튼한 관계의 끈이 끊어짐으로 인해 상실과 결핍의 까마득한 벽이 생겼음을 드러낸다.
    「홍어무침」 역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드러내는 이중 서사라 할 만하다. 소녀 시절의 화자가 엄마의 부음을 전하려고 미로 같은 골목을 찾아 나선 기억을 시화한 것이지만 이 시를 쓰는 시점은 현재이고 이 시의 마지막 구절 “그래도/ 산 자는 밥을 먹는다”에서 현재 시제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에서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이 현재 화자 자신의 행동과 결정에 어떤 대단한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과거의 이야기가 앞으로 전개될 시인의 결핍이나 외로움, 가난에 얽힌 개인적인 문제와 연루되고 나아가 사회적 문제로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이중 서사 기법은 시 읽기의 향방에서 중요한 요건이 된다.

    4부에서 시인은 문명의 속도와 그에 따르지 못해서 생기는 뭇 생명들의 고립과 고통을 지나치지 않는다. 환경적 차원에서 시인의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시들은 각각의 현실을 암시하는 알레고리 기법으로 쓰였다. 문명과 대비되는 불모의 공간을 형상화하는 「미구에」와 같은 시가 특히 그러하다.

    비양도 인근/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이동하던/ 참고래의 주검이 수습되었다./ 태어난 지 고작 1년, 어린 몸을 열고/ 끝없이 발굴되는 것들,/ 식도를 꿰고 있는 낚싯줄/ 위장 속을 둥둥 떠다니는 스티로폼 조각./ 여린 수염에 엉켜있는 초록색 나일론 끈/ 작은 몸의 내장을 가득 채운 플라스틱/ 박제된 새끼 참고래였다.

─「미구에」 부분

    위의 시는 문명의 잔재들로 희생당한 새끼 참고래를 통해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문제적인 삶을 풍유한다. 원관념은 제시하지 않고 보조관념만 드러내어 풍자와 암시의 효과를 가져오는 표현 기법을 통해 시인은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를 현재의 일원론적이고 단편적인 서사에서 벗어나 통합된 이미지로 드러내고자 한다. 물질이나 동물도 그 스스로 생명과 활력을 갖는다는 자연관을 무시하는 이 개별적이고 상이한 사건 속에 등장하는 이질적 표상들은 김림의 시집 전반에 걸쳐 시인의 주관 경험과 상관관계를 맺으면서 나타나고 있다.

    시집의 제목이면서 한 편의 시가 되는 「미시령」에서 ‘미시령’은 강원도 인제군과 고성군 사이에 있는 고개이지만 어쩌면 시적 화자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타자로서의 시간과 공간을 모두 지우고 화자의 의식 안에 또렷하게 떠오르는 ‘미시령’은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입체적인 공간으로 묘사된다. “바다를 배회하다 극한에서 일어서는 유빙, 미시령은 혹독한 추위 앞에서야 제 높이를 회복한다.”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의 무의식에서 늘 불일치하던 미시령(시인의 몸)이 인식의 작용을 통해 대화적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자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한 미시령과 거리를 두고 시작한 대화는 결국 자신의 공간을 확장하고 나아가 시간의 순환성을 갖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동안 꼭꼭 막혀 있기만 하던 화자의 공간이 이쯤에서 조금씩 열리는 느낌을 갖는 이유는 직선으로만 흐르던 과거의 기억이 현재 화자의 경험 속에서 낯설지만 새롭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물(미시령)의 일부인 몸(화자)의 사유가 시작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파른 고립이고 단절이었던 미시령이 화자의 상징 질서 속에 들어와 의미를 발생한다는 것은 어쩌면 몸(화자)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사물(미시령)이 제 높이를 드러내면서 몸(화자)과 일체화를 이루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만물은 죽음이라는 공간에 의해 창조된다.”는 라캉의 투체Tuch 의식은 “모든 생명체는 무로 돌아가고 무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의식을 드러낸다. ‘미시령’으로 대변되는 화자 자신은 그동안 고립이었고 동시에 억압적인 존재였다. 이런 감정(죽음)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는 계기를 찾지 못한다면 그 누구와도 대화의 상호공간을 찾을 수 없을 것이고 그 전에 화자는 이미 질식사할 수도 있다. 독재나 파시즘이라는 증오의 감정으로 뭉쳐 있는 무거운 바윗덩이(미시령)는 존재의 본질처럼 화자의 기억 한가운데를 차지해왔기 때문이다. 스스로 인정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 먼저 자신의 숨 쉴 공간을 열어두어야 하듯, 미시령이라는, 객관적인 거리로 바라볼 수 있는 자아를 설정하고 그 사물성을 통찰하듯 대화적 상호 공간을 열어갈 때 인식의 확장이 일어나고 성찰의 시간이 도래한다.

    일찍이 크로노토프는 “하나의 이야기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끝없이 변모”한다고 하였다. 금단의 선을 그어놓고 다가오지 말라고 버티면서 불화를 일으켜온 미시령은 사실은 이 세계 인물들 누구나 추구하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가 바로 자기 자신일 때는 갈등이고 허무의 이름이 된다. 이(미시령) 앞까지 와서 발길을 돌리는 자가 있고 끝까지 선을 넘는 이들도 있다. 제 몸 가득 묘비명을 새기는 이곳에서 화자는 어떤 타자와도 대화적 공간을 열 수 없었다. 그래서 시인 역시 비생산적인 공간이라고 미뤄놓기만 했던 곳이다. 그런 미시령을 화자 스스로 새롭게 응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비관적이고 저항적으로만 대하던 자아와 세계에 대해 이제야 반성과 살핌의 시간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림의 제2 시집인 『미시령』은 이 시집의 표제이면서 현재 의식을 사유하고 숙성시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표시하는 존재의 내비게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정민나

1998년『현대시학』으로 등단. 평론집 『정지용 시의 리듬 양상』 『시는 언어의 예술, 파동이 신체를 주파한다』 『유동과 생성의 문학』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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