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한 사람들과 외면된 이야기

  

    2022년 6월 22일, 오전 8시. 경복궁역 승강장. 출근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시민들 사이에서 이영애는 삭발을 했다. 무심한 사람들과 울먹이는 사람들이 오고 가며, 공간은 북적였다.

    “아침 7, 8시에 어머니,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고, 동생이랑 오빠가 학교 가는 그때부턴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근처에서 일하는 엄마가 잠깐 와서 밥 먹이고 대소변 치워주고 가면 다시 오빠가 올 때까지 혼자 울다 잠들고 울다 잠들고. 매일 눈이 팅팅 불었었습니다. 이렇게 서른한 살 때까지 집에서만 살았습니다. 집 안에만 박혀 살면서 ‘그냥 죽고 싶다’, ‘누가 와가지고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죽는 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57번째 삭발자 이영애)

    2021년 12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햇수로 두 해 넘게 진행되면서 장면은 반복된다. 매일 아침 8시, 출근하는 비장애 시민들이 서둘러 자신들의 일터로 향하는 순간, 장애인들만이 승강장에 멈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일상적 공간인 출근길에 장애의 몸을 드러내고, 외면된 이야기를 꺼내고, 질문을 던지는 날들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1〉 2021년 12월 20일 승강장에서 ⓒ 비마이너

    노동 가능한 비장애인들로 가득한 출근길 지하철에 장애인이 등장한 것은 최초의 사건이 아니었음에도, 많은 주목과 평가를 받았다. 공론장에 오를 자격조차 없었던 장애 의제는 다양한 모습으로 다뤄졌다. 그럼에도 진지한 토론은 너무 적었고, 왜곡과 선동, 혐오는 난무했다. 어떤 이들은 투쟁의 방식이 잘못됐다며 우아하게 질책했고, 어떤 이들은 무차별적으로 욕설과 혐오를 드러냈다.
    대다수 언론과 정치는 운동의 폭력성만 강조했다. 무용한 장애인들이 47차례나 열차를 지연시키며, 생산성 높은 이들의 시간을 빼앗은 행위로만 그 의미를 축소했다. 이동권 문제에 대한 공감과 문제의식이 일부 나오긴 했지만, 측은한 마음이었을 뿐,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교육받고, 노동하고, 일상의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전망과 상상은 부재했다.
    장애인들은 왜 지하철을 멈춰 세워야만 했는가. 이는 곧 ‘출근길 지하철에 왜 장애인은 없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볼 수 있다. 물론 ‘출근길 지하철’이라는 단어는 이동의 공간, 노동의 현장, 지역사회 내 일상 공간 등으로 바꿀 수 있다. 일상의 공간에 왜 장애인은 없었는가. 그리고 배제된 이들의 일상은 어떠했는가. 1년 8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했음에도, 이야기는 널리 퍼지지 않은 듯하다. 생존과 연대를 요청하는 언어는 고작 아집, 일부 장애인 단체의 무리한 주장 정도로 폄하되고 있다. 거친 투쟁의 방식이 오히려 메시지를 감추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석할 수 없다. 우리는 400일간 이어졌던 장면들과 그 속의 이야기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1년과 2021년, 반복되는 장면들

    400일간의 투쟁은 사실 역사가 더 길다. 2001년 1월 22일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참사를 계기로 일어났던 이동권 투쟁이 시초라면 시초다. 당시 장애인들은 지하철 선로와 버스를 수차례 점거하며 열악한 장애인 이동권 현실을 알렸다. 그럼에도 2002년 발산역에서 또 한 명의 장애인이 떨어져 죽었고, 이후 장애인들은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 점거와 39일간의 단식 투쟁, 지하철 선로 점거 등의 투쟁을 통해 이동권 보장에 대한 서울시의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2004년 서울에 저상버스가 처음 도입되었고, 2005년도에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
    이후에도 2006년 맨몸으로 한강대교를 6시간 동안 기는 투쟁을 통해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도화되었고, 2009년 마로니에공원 농성 투쟁 등을 통해 탈시설 정책이 최초로 만들어졌다. 제도는 정치를 통해 독립적이고 선제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사회는 늘 누군가 죽거나, 극렬한 투쟁이 일어났을 때야 그 힘에 이끌려 움직였다.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등 비장애인과 동등한 일상을 얻기 위한 투쟁이 이어졌음에도 사회는 더디게 변화했다. 이동권 투쟁이 시작된 지 20년이 흘렀음에도 저상버스 도입률이 30퍼센트에 불과한 현실만 보아도 그렇다. 2001년과 2021년은 시작점이 이동할 권리에 대한 투쟁이었을 뿐, 기본권에 대한 모든 요구를 내포하고 있었다.
    다시 2021년도로 돌아와보자. 그해에도 이동권, 교육권, 탈시설에 대한 내용을 담은 3대 법안의 제·개정 투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법안 통과 가능성이 있었던 것은 버스 대·폐차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대한 국비 지원 등을 핵심으로 하는 교통약자법 개정 사안이었다. 당시에도 기자회견과 집회 등 다수의 현장 투쟁이 진행되었지만, 국회는 움직이지 않았다. 12월 초면 정기국회가 종료되므로, 또다시 해를 넘길 거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변화의 국면은 차기 연도에 있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있었다. 시위를 통해 대통령 후보를 직접 압박하자, 표 계산을 하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이 움직였고, 12월의 마지막 날 마침내 법이 개정되었다. 15년 만에 이뤄진 의미 있는 법 개정이었다.
    물론 2021년도 교통약자법 개정은 법 개정 취지를 온전히 담아내진 못하였다.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조항의 경우, 도로 사정에 따라 일정 절차를 거쳐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 조항이 달렸고,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대한 국비 지원 또한 의무 조항이 아니라 임의 조항(‘지원할 수 있다’)으로 통과됐다. 임의조항은 사실상 국비 지원을 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보수적으로 예산을 책정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법 개정 한계와 함께, 삶의 실제적 변화를 위해선 충분한 예산이 필요했다. 2001년도부터 투쟁을 통해 제도 변화를 만들어냈음에도 예산이 보장되지 않아 늘 권리는 후퇴하거나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싶다’는 기본적 요구는 ‘장애인권리예산’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며, 예산 투쟁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국회를 통과한 2023년도 예산안은 고작 (요구안 대비) 0.8퍼센트(106억 원) 증액이었다.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예산은 요구안 대비 51퍼센트(6,653억 원) 정도였으나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최종 결과가 뒤틀렸기에 절망감은 더 심했다. 정치권은 강경했다. 주호영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무려 106억 원이나 반영됐다. 전장연은 더 이상 시민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고 명분 없는 투쟁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으며,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장으로서 더는 시민의 피해와 불편을 방치할 수 없다”며 모든 법적 조치를 다 하겠다고 겁박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시민의 자리에 장애인은 없었다.
    장기화된 투쟁 앞에서 이야기는 쉽게 희석되곤 했다. 지하철을 멈춰 세우면서까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결국 배제된 일상의 경험과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었다. 그럼에도 정치와 언론은 외면했으며, 능수능란하게 사실을 왜곡하며 언어를 오염시켰다.
    장애인들은 왜 지하철을 멈춰 세워야만 했는가. 이 글 또한 반복되는 질문 앞에서 충분히 대답하였던 이야기의 동어반복이다. 그럼에도 되짚는 것은 삶을 걸었던 투쟁과 삶에서 끌어온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외면된 이야기들

〈사진2〉 2022년 3월 29일 윤석열 당선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면담이 있었던 날 ⓒ 비마이너

    출근길 시위가 격화되었던 2022년 3월 중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당시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사들을 만나 요구안에 대해 ‘검토해보겠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3월 30일 지하철 투쟁은 일시 중단되었고, 그날부터 1~2명의 장애·비장애 활동가들은 머리를 밀며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답변을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었다.

    추경진은 시설에서의 삶에 대해 말하며 머리를 밀었다.

    “나는 시설에서 15년을 살았습니다. 그때는 행복을 몰랐습니다. 주면 주는 대로 먹고 입으라면 입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살다 보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변변한 꿈도 없이 그냥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삶을 15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탈시설한 동생 친구를 보면서 ‘나도 나가서 살 수 있겠구나’라고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탈시설한 지 7년째, 내 평생 지금처럼 잘살고 있는 날도 없었습니다.” (33번째 삭발자 추경진)

    고작 머리를 미는 행위가 투쟁이 되었던 날들이 이어졌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개별적이면서 공통적이었다. 삭발 투쟁은 141일간 이어졌고, 총 177명의 장애·비장애 시민들이 머리를 밀었다.

〈사진3〉 2022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던 날,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장애인 활동가의 모습 ⓒ 비마이너

    같은 자리엔, 장애를 이유로 초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한 이가 있었고, 교통편이 없어 고향에 계신 노모를 보러 갈 수 없다고 눈물 흘리던 이도 있었다. 새벽 4시부터 지방에서 올라와 머리를 밀던 사람도 있었고, 수십 년 시설에서 살았던 이가 시설에서의 삶을 증언하고, 지금은 지역사회에 나와 그나마 잘 살고 있다며, 삶을 긍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지하철을 탔음에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무관심하거나 욕설을 뱉었다.

    “몇 달 전, 지하철 타기 투쟁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시민분이 내리면서 저희를 향해 저주를 퍼부으시더군요. ‘지옥에나 떨어져라!’라고요. 네. 그러지 않아도 저는 이미 지옥에서 살아왔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마저도 누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 버티듯이 살아내야만 하는 이 세상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2번째 삭발자 김동예)
  

탄압과 무용한 사람들

〈사진4〉 2022년 5월 20일 삭발하고 있는 활동가의 모습 ⓒ 비마이너

    지하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삭발을 하는 동안, 정치와 행정은 무책임한 언어와 협박만 내뱉었다. 2022년 3월 25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SNS를 통해 “(시민들이) 특정 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탑승 제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글을 올렸고, 6월 20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전장연에 대해 지구 끝까지 찾아가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2023년도 들어, 장애인 권리 투쟁에 대한 탄압은 더욱 극심하고 세밀해졌다. 무정차 등을 통해 시위를 원천 차단하고 있으며, 전장연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일삼고 있다.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가 지난 6월 9일, 전장연을 ‘권력유착형 시민단체 3대 카르텔’로 지목하며 거액의 보조금을 유용하고 있는 것처럼 왜곡 선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윤 정부가 상반기 시민단체 국고보조금 사업에 대한 일제 감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시민단체 때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해당 감사 결과, 보조금 부정 사용액은 전체의 0.46퍼센트에 불과하나, 정부는 시민단체에 지급되고 있는 전체 보조금이 부정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과장하여 공격에 나서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장애인 정책의 후퇴이다. 서울시는 3월 중순, 활동지원서비스 추가급여 대상자 전수조사를 진행하여, 이 중 48명은 시간을 삭감하고, 300명에 대해선 지원을 중단해버렸다. 또한 7월 1일부터 최중증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약칭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권익옹호 직무를 일방적으로 삭제했다. 정부 여당과 일부 보수 언론이 권익옹호 직무에 대한 이해 없이 ‘노동자들을 시위에 동원한다’는 식의 공격에 나선 이후였다. 권익옹호 직무는 애초 서울시가 설계한 직무에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논란 때문에 일자리의 성격 자체가 바뀐 것이다. 그 과정에서 토론은 없었으며, 노동자들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도 없었다.
    또한 서울시는 비용 대비 효율성 그리고 당사자 선택권이라는 교묘한 논리로 탈시설 정책을 뒤흔들고 있다. 서울시는 앞서 8월부터 탈시설 장애인 700명을 전수조사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제3차 탈시설화기본계획 등 정책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 보도자료를 보면, 전수조사의 의도가 명백히 드러난다. 7월 20일,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38명을 대상으로 예비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히며 “조사 결과, 의사소통이 심하게 곤란한 장애인 20명은 어떻게 의사표시를 하고 자립생활을 하게 됐는지 의문”이라며 노골적으로 중증장애인을 폄하했다.
    또한 ‘시설장애인이 탈시설하여 자립정착할 때 소요되는 비용은 장애인 1인당 연 1억 4,100만 원인 반면, 시설거주 장애인에게 전문적인 돌봄서비스를 지원하는 비용은 연 6,100만 원 수준’이라며 탈시설장애인에게 2배에 가까운 비용이 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장애인 당사자 권리의 측면에서 시설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비용의 논리로 장애인을 바라보고, 판단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시설이든, 시설이 아니든 당사자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로 탈시설 정책을 외면하고, 시설화 정책을 옹호하는 것은 기만이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실태조사에서 67.9퍼센트에 달하는 장애인들이 비자발적으로 시설에 입소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또한 본인의 뜻에 의해 시설에 입소했다 하더라도, 이는 다양한 외부요인(지역사회 내 인프라 미비, 이로 인한 가족 돌봄 부담 등)에 의한 강제적 선택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애당초 국가 주도의 시설수용 정책은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설계되지 않았을뿐더러,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격리하여 효율적, 집단적으로 관리·통제하기 위한 야만적 제도에 불과하다.

〈사진5〉 2022년 10월 7일 혜화역 ⓒ 비마이너

    자기결정권이 부재한 중증장애인이라는 프레임, 그리고 무용한 장애인에게 너무나 많은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는 논리로 인해 늘 소수자의 권리는 지연되고 퇴행한다. 2023년도 예산안 수립 과정에서 장애인권리예산이 대부분 잘려나간 것과 서울시와 정부 여당의 탄압, 그리고 장애인 정책의 후퇴는 사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정책을 기본권에 대한 권리 보장의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았으며, 늘 시혜와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법으로 정해놓은 기본 계획조차 늘 지키지 않았음에도(예를 들어, 정부는 2007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을 발표하며 2011년까지 저상버스를 31.5퍼센트 도입하겠다고 공언하였지만, 이 목표치는 현재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에 항의하고 저항하는 목소리는 손쉽게 불법으로 규정했다.
  

절박함의 끝에서

〈사진6〉 지하철을 타고 있는 장애인 활동가의 모습 ⓒ 서재현

    “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도와주십시오. 함께해주신다면 우리의 투쟁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며 투쟁의 산물이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닌 모든 교통약자와 시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5번째 삭발자 정명호)

    지하철을 타다 보면, 성난 시민들에게 늘 듣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먹고살면서 왜 시민들을 괴롭히냐’라는 말이다. 이들의 언어 속에는 무용한 장애인과 무관한 비장애인 시민만 있다. 정치와 언론 또한 시민과 장애인을 구분하며 사회 내 모든 이들 간의 연결성을 가린다.
    장애인의 투쟁이 모든 이들의 투쟁이라는 말은 사실임에도 일부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모호함은 아마도 그 연결성이라는 부분일 것이다.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비장애인은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압도적으로 많은 편리와 편의를 누리고 있다. 이 편리와 편의성은 누군가(장애인)의 배제를 통해 만들어졌음이 명백하고, 이 폭력의 구조 앞에서 무관한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투쟁은 무용한 장애인이 무관한 비장애인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이 문제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권리 투쟁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늘 그래왔다. 그럼에도 명백한 것은 2001년의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과,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절박함은 소진될 수 없고, 이야기는 사라질 수 없다. 늘 그래왔듯 지난한 투쟁 속에서도 이야기는 이어질 것이다.
  
  

서재현

전 《옥천신문》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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