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는 험난한 길

  

* 이 글은 ‘한국 문단의 등단 제도’에서 소설가의 등단과 관련하여 살펴보고 있음을 밝힌다.

  
  

1. 등단, 작가의 탄생일까?

‘문청’ 시절, 신춘문예에 원고를 투고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미 당선 여부는 알고 있었지만 혹여나 심사위원들이 심사 중에 내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을까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신문을 들춰보던 기억이 생생히 남아서, 신년이 되면 의례처럼 신문을 들춰본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춘문예 수상자는 누구인지, 어떤 글을 썼는지 확인했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신인 작가의 수상 소감을 읽으며 그들의 열정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작가로의 시작을 마음으로 축하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신춘문예 당선이 진정 작가로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지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다.1
  지금 시대는 굳이 등단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작가(소설가)’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잘한다면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황유미 작가를 통해서도 보았다. 그녀는 문학상·신춘문예 등 전통적이라고 믿는 등단 방식이 아닌 독립출판을 통해 스스로 책을 내고, 독립서점가의 입소문을 통해 작가가 되었다. 황유미 작가의 첫 소설집 『피구왕 서영』(빌리버튼, 2019)에서 작가가 언급하는 것처럼 “작가가 아니면 글을 쓸 수 없다는 금기”가 도사리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자비로 책을 출판하고, 한 달 만에 2쇄를 찍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소설집 『오늘도 세계평화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언유주얼, 2019)를 발간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최근에는 황유미 작가처럼 출판을 통한 등단이나, 웹진을 운영하거나, 블로그2에 글을 업로드하는 방법으로 꾸준히 글쓰기를 하는 작가들을 자주 만난다. 문학 현실이 변화하고 있으니, 작가가 되는 방법도 다양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은 작품을 평가받기보다는 취미쯤으로 치부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로 인해 여전히 많은 예비 작가들은 등단을 통해 작가가 되는 오래된 방법을 고수해왔는데, 이는 글쓰기를 욕망하는 사람들의 것이라기보다 제도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등단이라는 그 어려운 관문(제도)을 통과해 작가라는 명칭을 부여받았음에도, 문단이 인정하는 작가가 되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이는 2000년대 중반부터 뚜렷이 나타나는 경향 중 하나로 신춘문예 등단보다 문예지 등단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발생하는 문제로 보인다. 거대 출판사와 밀접하게 관련된 신인상 또는 문학상을 받은 작가는 출판사의 체계화된 관리 시스템에서 움직이는 데 그로 인해 신춘문예 등단자들의 설 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먼저 출판사가 작가를 관리한다는 뜻은 작가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문예지로 등단할 경우 지면을 얻기도 쉬울 뿐더러, 작가를 관리하는 소속사, 신인의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그로 인해 신인 작가들은 신춘문예보다 문예지의 신인상, 문학상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하기를 원한다. 잘 알고 있듯이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신춘문예 등단은 가문의 영광이나 다름없었지만 이제 신춘문예의 위상이나 권위가 하락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신춘문예는 단지 지금까지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데 그것은 신춘문예 심사위원의 고정성, 작품의 정형성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3
  매체는 다양해지고, 작품 수준은 날이 갈수록 새로워지고 있지만 신춘문예는 변화 없이 그 자리에 멈춰져 있기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들의 후속 조치가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그래서 신춘 등단자들은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 『문학동네』, 『자음과모음』 등의 주요한 문학 잡지에 ‘재등단’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예지 편집위원들이 청탁을 하는 작가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들이 발굴한 작가에게 기회를 먼저 준다.4 그렇다면 신춘문예 등단자들은 어디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까? 등단의 길이 열렸다고 해서, 모두 같은 신인이 아님을, 작가로 살아가는 길이 어려움을 확인한다.

  

2. 신춘문예 작가들의 고군분투

  일찍이 작가로 인정받는 ‘제도’ 중, 능력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는 의미에서 추천 제도가 있었다. 작년 부산 예술가를 조명하는 부산문화재단의 첫 번째 사업에서 윤정규尹正圭 작가(1937~2002)의 작품을 아카이브한 적이 있었다. 현실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소설을 쓰며 1980~90년대를 대표할 만한 윤정규 작가는 부산뿐 아니라 전국에서 기억해야 하는 작품들을 썼지만 요산(김정한)이나 향파(이주홍)에 비해 덜 알려진 작가이기도 한데, 그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의 등단 과정 때문이다. 윤정규 작가는 1957년 계용묵 선생에게 ‘초회 추천’(「축생도」)을 받았는데, 5년 뒤 오영수 작가에 의해 추천 완료를 했다. 사실 추천 제도는 2~3회 정도를 하는데, 대체로 1회 때 추천한 작가가 추천을 완료하는 게 관례라고 한다. 하지만 윤정규 작가는 중간에 추천자가 바뀌었기에 그 이유를 추측하는 과정에서 연구원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누군가를 추천한다는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자신의 명예(이름)를 거는 일이기에, 함부로 추천하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추천 제도는 1960년대로 들어서면서 폐지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으며,5 현재는 『현대문학』만이 이어가고 있다.
  다음으로 앞서 언급했던 신춘문예와 문예지를 통한 등단이 있다. 황유미 작가처럼 1인출판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지만, 출판사에 바로 투고하여 등단하는 경우는 거의 드문 편이다. 출판사들이 우후죽순 만들어지고 또 출판사에서 문예지를 발간6하면서 신춘문예의 위상이 떨어지게 되고, 많은 신인 작가들이 문예지 등단을 목표로 하면서 다양한 등단 방법은 더욱 어려워졌다. 문예지로 등단을 했다고 해도 또 다시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이 신인들의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신춘문예보다, 문예지 등단자들의 현실이 아주 조금이나마 나아 보인다.

표1. 2021년 신문사 신춘문예 소설 당선 목록

  신춘문예 등단자들이 지면 확보가 어렵다는 사실은 2021년 신춘문예 소설 부문 등단자들의 2021년 한해 활동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만드는 〈문장 웹진〉에 글을 게재한 몇 명의 작가는 확인할 수 있었으나, 대부분 지면 확보가 어려웠음을 알 수 있었다.7 등단 이후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서울신문》과 《조선일보》 두 군데서 당선을 한 윤치규 작가다. 대부분 바로 지면을 얻지 못하는 당선자들과 다르게, 윤치규 작가는 등단하고 『악스트』(3/4월호)에 「친애하는 나의」와 월간 『현대문학』(4월호)에 「완벽한 밀플랜」을, 〈문장 웹진〉(2021. 7.)에 「그래비테이션」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악스트』는 작가와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신인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문예지이며, 『현대문학』의 경우 월간잡지이기에 작가 발굴이 시급한 문예지로 윤치규 작가에게 청탁한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동아일보》로 등단한 이소정 작가의 경우,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을 했으나 재등단한 케이스다. 그는 〈문장 웹진〉(2021.7.)에 게재된 「수영장에서」가 제13회 현진건문학상의 추천작으로 선정되며 작가로 또 다시 호명받는다. 그녀의 글을 읽어보면 오랫동안 자신의 글을 꾸준히 써온 작가임을 단번에 알 수 있는 문체이지만8 지면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작가로 호명받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현재 스무 군데가 넘는 신문사가 주최하는 신춘문예는 과하게 말해 작가가 되는 예비 관문으로 여겨지거나 시상금만 존재한다. 신문사는 작가로 만들었지만 그들의 미래보다는 완벽히 준비된 신인 작가를 선정하는 것을 목표에 두는 것이다. 물론 예비 작가들 또한 작가가 되는 관문으로서 등단을 준비한다. 등단을 목적으로 하는 그들은 신문사의 경향 혹은 매년 심사를 맡는 심사위원들에 맞는 맞춤식 글쓰기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원하던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자유롭게 글을 쓰던 습작 시절보다 더 힘든 현실과 마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등단을 준비하거나 장편소설로 문학상을 준비하는 작가들을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젊은 작가상과 스타작가

  매년 당선되는 신춘문예 등단자들, 그리고 각종 문학상과 신인상을 받는 작가들이 쏟아지고 있다. 매해 수많은 신인들이 발굴됨에도,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또 누가 도대체 소위 말하는 메이저 문예지에 글을 게재하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스타 작가 시스템은 문학동네가 2010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9을 발간하면서 본격화된다. 이후 문학과지성사는 2018년 『소설 보다』10를 발간하면서 “젊은 작가의 엄선된 신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들 젊은 작가의 발굴은 스타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동시에 출판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3대 출판사(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에서 소설집을 내는 작가들을 보면,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등단하고, 젊은작가상, 웹진문학상 등을 수상한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스타 작가’는 문예지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문예지 등단-문예지 게재-문학상 수상-작품집 발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공식을 밟는다면 스타 작가로의 반열에 올라서기 쉬워지고 대중들에게도 실력 있는 작가라고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집을 발간하는 출판사는 메이저 출판사의 영향력도 얻게 된다.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장류진 작가를 보자. 장류진 작가의 행보는 주류 출판사에서 주목받는 신인들의 행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표2. 장류진 작가의 작품 발표 목록(2018~2021)

  장류진 작가는 2018년 가을 『창작과비평』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후, 그해 겨울 (윤치규 작가처럼) 월간 『현대문학』에 작품을 발표했다. 그후, 2019년에만 무려 8편의 작품을 발표한다. 계절마다 2편씩 소설을 쓴 것인데 이는 신인에게는 엄청난 기회를 준 것이며, 더불어 그가 가진 작가로의 재능(역량)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작가의 글쓰기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기회를 잘 살릴 수 없음은 분명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장류진 작가의 능력은 이미 검증받은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작가의 소설에 대해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창비나 문학동네로 등단한 작가들 중 글쓰기를 검증받은 작가들의 이후 행보가 비슷한 여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메이저 출판사로 등단(문학상 수상)한 작가는 한 해 동안 『악스트』나, 『릿터』, 『문학3』, 〈문장 웹진〉 등의 읽기 편하고 접근하기 쉬운 문예지에 지면을 할당(검증) 받은 후, 3대 출판사의 권위 있는 문예지에서 작품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들 문예지에서 발표한 작품이 문학동네에서 주관하는 ‘젊은 작가상’ 수상작에 포함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형 출판사가 매년 신인상 공모를 통해 자사 출신의 신인을 배출하고는 있으나,이는 문학장文學場에 인재를 발굴하는 동시에 새로운 세대의 스타 작가를 물색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표3. 2015~2022년의 ‘젊은작가상’ 수상자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이 모두 문예지로 등단한 것은 아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의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창비로 등단한 경우는 최정화, 정영수, 장류진 작가와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한 전하영, 김지연 작가로 5명이다. 강화길, 최은영, 최은미, 김지연, 서이제, 김혜진, 김멜라 작가는 젊은작가상을 2회 수상했고, 김금희, 백수린 작가는 3회 수상했다. 이들의 등단을 살펴보면, 강화길 작가는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등단 후, 2017년 장편소설 『다른 사람』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백수린 작가의 경우에도 2010년 『자음과모음』에 추천 형식으로 소설을 발표한 뒤,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재등단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예지 등단으로는『작가세계』(김희선, 박민정, 김병운 작가, 최은영 작가의 경우 중편소설 신인상), 『현대문학』(최은미, 천희란, 임현 작가), 『자음과모음』(김멜라 작가), 『문학과사회』(서이제 작가) 문예지 순이고, 신춘문예는 《동아일보》(장희원, 김혜진 작가)와《한국일보》(김금희 작가), 《문화일보》(최정나 작가)가 유일했다.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경우는 임솔아 작가(문학동네 대학소설상)와 서수진 작가(한겨레문학상)가 있었으며, 이미상 작가의 경우 2018년 웹진 〈비유〉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앞의 수상자들과 다른 행보라서 눈에 띈다.
  젊은작가상 수상자들이 등단한 곳을 보면 문예지와 유착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수상자들이 수상 직후 또는 다음 해에 문학동네에서 작품집을 출간11했다는 사실은 이 상이 출판 자본과 암묵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케 한다. 뿐만 아니라 젊은작가상이 제정된 이후 지역 신문으로 등단한 경우나, 지역 문예지에서 선정된 작품이 수상작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4. 신인 작가의 부재와 지역 문단의 노쇠화

  스무 개가 넘는 신문사에서 신춘문예를 시행하고 있지만, 신춘문예의 권위도 모두 동일하지는 않는 것 같다. 특히 서울을 벗어난 지역 신춘문예 등단자들의 경우 더 힘든 문단 현실과 마주한다. 지역 출판사에서 문예지를 발간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지역신문사의 필자는 이미 고정되어 있으니 지면을 할당받는다는 건 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신인들의 어려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인들의 활동 반경이 넓지 않다는 건 지역 문단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역의 신춘문예 등단자들은 작가회의나 소설가협회 등에서 발간하는 문예지12에 작품을 수록하는 것으로 첫 활동을 시작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작가회의의 역할이 미비하기에 지면이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다. 《영남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들 중 42퍼센트가 등단한 지 10년이 지났으나 책 한 권 내지 못했으며 당선 10년 뒤 3분의 1정도가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그중 절반은 어린이 출판 시장에서 활동 중이라고 한다.13 출판사가 문예지를 가진 환경에서 신춘문예는 등용문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가 어려운 실정임을 알 수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유명 작가를 꾸준히 배출하던 신춘문예와는 확연히 달라진 현실이다.
  이처럼 지역 신문사로 등단한 신인작가들은 기회가 많지 않으니, 출판사와 문예지가 많은 서울로 이동하는 작가의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글쓰기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으니 생계를 위해서 이동하는 경우도 많은데, 지역보다 서울에 글쓰기 강좌 등이 더 많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기회가 열려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서울(중앙)로 활동지를 옮기게 되는 것은 지역문단의 쇠퇴를 의미한다. 젊은 작가들이 활동할 장이 없으니, 지역 작가회의, 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예총)에 소속된 문인들의 연령대는 고령자가 많다. 미래를 이끌어야 할 젊은 작가들이 활동을 이어갈 수 없다면 지역문단의 미래 또한 밝지 않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학평론가들을 언급하고 싶다. 부산의 젊은 평론가들을 보면 대부분 등단 여부와 상관없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14 신춘문예의 경우, 문학평론을 뽑는 신문사도 많지 않고 또 그 지역에 거주하는 평론가가 당선되는 것도 아니기에 지역의 평론 또한 사정은 어렵다. 2000년 초반 이를 고민했던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들은 2006년 3월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학문 후속 세대들과 ‘해석과판단’이라는 비평공동체를 시작했다. 처음 1년에서 3년 정도는 등단한 지 20년이 넘는 평론가와 공부를 막 시작한 대학원생까지 선후배라는 이름으로 모여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한 해 동안 공부(활동)한 결과로 1권의 평론집을 출간했다. 3년 정도가 지난 후에는 인원이 많아져 초기 멤버들이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부산 문단은 그곳에서 공부한 젊은 평론가들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물론 이 공동체에서 긍정적인 부분만 보려는 건 아니다. 탈영토화하려던 구축의 노력이 다시 재영토화될 수 있는 것처럼, 문단의 권력적 방식을 해체시키던 방식이 ‘유일무이한’ 집단으로 되면서, 또다시 견고해진 하나의 권력으로 작동할 여지는 남기 때문이다. 해석과판단은 처음 만들어진 의도대로 등단 여부와 관련 없이 비평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2013년 사라지면서 (등단하지 않은/못한) 후속 세대와의 만남도 끊어졌다.15 평론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은 학연, 지연, 전공마저도 무관하게 ‘함께’ 공부했던 장이 사라지니, 미래의 부산 또한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말하고 싶은 바는 해석과판단의 좋은 선례가 있었듯이, 등단 여부를 묻지 않고도 글쓰기와 문학 활동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평론가의 역량(공부의지와 인성 등)을 검증할 만한 다양한 제도의 필요성과 지면을 확보할 수 있는 매체, 선배들의 노력 또한 필요하겠다.
  또한 지역에서 등단한 문인들의 활동이 지역 문단의 미래라면 지역 출판사 또한 함께 발전해야 한다. 자본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중·소형 문예지는 자신들의 자본을 창출해낼 수 있는 작가가 필요하고 신인들에게는 성장할 수 있는 문학장이 필요하다.하지만 지역의 중·소형 문예지, 출판사, 신인은 서로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없다. 그러므로 지역의 문예지와 출판사는 ‘등단자’만을 기다리지 않고, 글을 쓰고 있는 준비된 작가 발굴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5. 또 다른 시도들

  2021년 ‘창비부산’이란 이름으로 창비는 부산에 도서문화공간을 개관했다. 서울의 ‘클럽 창작과비평’에 이어 부산에도 문학 행사 등 독서 관련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특히 부산 시민들에게는 또 하나의 문화공간이 생기는 것으로 기대치가 높았다. 일례로 창비부산 공간에는 부산 문인들의 서적을 전시하고, 문학 행사나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부산 시민과 문인들이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순수문학이 잘 안 팔리는 시대,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창비부산의 노력이 반갑지만 사실 한편으론 염려스럽다. ‘원 북 원 부산’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며, 작가회의나 문협에서 발간하는 문예지 외에 자체적으로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문예지도 많은 편이다. 그런 부산 문단의 분위기를 창비의 작가와 작품이 잠식하는 건 아닌지, 막강한 출판 권력이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을 주변부로 밀려가게 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물론 부산 문단과 창비의 건강한 협업이 노후화된 지역 문단에 활기를 그리고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창비부산에서 등단 여부를 떠나 새로운 작가의 발굴, 지역 문인들에게 출판 기회를 주는 등의 방향성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에서야 밝히지만 청탁을 받은 글의 주제가 “한국문단의 등단 제도에 대한 비판 및 가능성”이었다. 너무 큰 주제이기에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할지 난감했는데, 등단과 가능성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박서련 작가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16 그녀는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며, 이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후 장편소설집을 3권이나 발간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점이 매우 독특하게 보였다. 신인 작가의 경우 문예지에 단편 소설을 발표하고 이를 모아 소설집을 발간하는 게 관례였는데, 박서련 작가에겐 그 흔한 단편을 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물으니 작가는 머뭇거리며 답했다. 문예지 청탁이 없었기 때문에 장편을 준비한 것이란다. 한때 그녀는 “원고 청탁이 없어 꿈을 포기할까 생각”을 하거나, “타워크레인 운전 자격증을 따려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몇 번의 ‘포기’를 생각했지만 자신이 기획하고 쓰는 장편 특유의 매력으로 글쓰기에 매진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주목받지 않았지만 간간히 단편소설도 썼고, 인터뷰 당시 단편소설집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박서련 작가에게 장편소설은 글을 쓸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었을까 싶다.17
  흥미롭게도 그녀의 단편소설은 문학플랫폼 ‘던전’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2020년 2월, ‘문예지를 경유하지 않으면 최신 문학작품을 접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박서련 작가와 서호준 시인 등 몇 명의 문인들이 온라인 지면 ‘던전’을 만들었다. 이 플랫폼은 누구든지 작품을 게재할 수 있는데, 청탁이 아닌 투고를 기반으로 한다고 한다. 독자들에게 한 달에 7,000원의 구독료를 받고 있으며, 글 쓰는 사람들의 생계 또한 글쓰기로 이루어질 수 있게끔 하는 방안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등단 작가뿐 아니라 미등단 작가들이 글을 보내오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등단 여부와 상관없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작가들의 투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등단(제도)라는 것이 무의미해진 시대, 글을 쓰고 싶다면 누구나 문예지(웹진, 블로그)를 만들거나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이 힘든 경로임을 알고 있다. 더 많은 황유미·박서련 작가를 만나기를 바라지만 그들이 지나온 길이 쉬운 길이 아님을 알고 있다. 다른 작가들의 행보도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견고한 제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언제나 문단, 출판 권력이라는 단어 주변에서 맴돌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안 없는 말이지만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생적인 방안이 생겨나길 기대해본다.

  

  

주석

  1. 필자는 2016년 「등단 제도를 통해 본 소설가 그 이후 ─ 2005년 이후 등단한 젊은 작가들의 활동을 중심으로」라는 글을 『오늘의 문예비평』 101호(2016년 여름호)에 쓴 적이 있다.
  2. ‘브런치’는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글쓰기에 최적화된 블로그 플랫폼으로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는 곳이다. 일반적인 블로그 형식이지만 아무나 운영할 수 없다는 점과 칼럼, 소설, 시, 수필 같은 글을 위주로 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브런치 북이라고 해서 책을 발간해 주는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3. 이청, 「등단시스템의 변화와 복수 등단의 의미」, 『로컬리티 인문학』 제19호, 2018, 263~264쪽.
  4. 이런 논란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논의되고 있는 문제로, 문학 권력과 언론 권력의 유착, 곧 ‘문언유착’으로 이용되어 왔음을 주장한다. 강준만·권성우, 『문학 권력』, 개마고원, 2001, 124쪽.
  5. 이봉범, 「1950년대 등단제도 연구 ─ 신춘문예와 추천제를 중심으로」, 『한국문학연구』 36호, 2009, 414~415쪽.
  6. 2015년도 출판사 은행나무에서 격월간 『악스트』와 문학동네 임프린트 엘릭시르에서 『미스테리아』가 창간되었고, 2016년에는 민음사에서 『세계의문학』 종간 후 『릿터』를, 2017년 1월에는 창비에서 『문학3』을 창간했다. 이들 문예지는 기존 문예지의 편형을 바꾸고, 서체나 편집 등을 바꾸면서 시대적 감각에 맞는 문예지로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문예지들이 늘어났으니 신인들에게도 기회가 더 부여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거대출판사가 만든 문예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 출판사에서 관리하는 신인들에게 우선적으로 기회를 줄 것임을 짐작케 한다.
  7. 지역에서 발간되는 문예지나 블로그, 웹진 등에 게재된 작품까지는 모두 확인할 수 없었음을 밝힌다.
  8.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김대갑 작가의 경우는 이미 2018년 소설집을 발간하며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작가이다.
  9. 2010년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제정한 ‘젊은작가상’은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이 된다. 등단 10년 이하의 젊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중단편 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7편을 선정해 수여하는 이 작가상을 받는 작가는 스타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며, 대중과 평단으로부터도 주목받는다. 수록된 작품은 모두 의미 있는 작품이 분명해 보이나, 지역에서 발간하는 문예지의 작품까지도 모두 선정 대상에 포함되는 것인지 등의 의문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집이 대부분 문학동네나 창비에서 발간되는 데도 그 의문은 한몫한다.
  10.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새롭게 개편한 『소설 보다』는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 홈페이지에 그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문지문학상 후보로 삼았던 방식을 유지하되, 선정작들을 수상작품집으로 묶지 않고 계절마다 앤솔러지로 엮어 1년에 4권씩 출간하는 단행본 시리즈이다.
  11.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작가에게 게재, 출간과 같은 문학 활동 기회를 최대한 제공함과 동시에 자사 계간지의 비평을 통해 자사가 발굴한 젊은 작가들의 문학적 의미를 소개하고 홍보했던 셈이고, 부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자사를 통해 등단한 작가를 상대적으로 더 우대하고 밀어준 것을 다른 계간지를 통해서 분석한다. 전봉관·김병준·이원재, 「문예지를 매개로 한 한국 소설가들의 사회적 지형: 1994~2014」, 『현대소설연구』 61호, 한국현대소설학회, 2016, 183쪽.
  12. 지역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신인 작가들은 대부분 지역 작가회의에 가입을 한다. 이후 지역 작가회의에서 발간하는 문예지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며 지면을 얻기 시작한다. 한국작가회의는 『내일을여는작가』, 인천작가회의는 『작가들』, 전북작가회의는 『작가의 눈』, 부산작가회의 『작가와사회』, 제주작가회의는 『제주작가』 등을 발간하며 신인들에게 지면을 부여한다. 하지만 신인 작가가 그 지역 출신이 아니거나,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 기회마저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13. 육선민, 「신인작가의 생존투쟁」, 『리터러시연구』 11권 4호, 한국리터러시학회, 2020.
  14. ‘부산작가회의’ 홈페이지에 기재된 문학평론가 37명 중 8명은 등단 제도를 거치지 않고 활발하게 평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들은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비평공동체 ‘해석과판단’에서 공부를 했으며, 대부분 『오늘의문예비평』을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15. 정확하게 몇 년도부터 ‘해석과판단’의 활동이 멈춘 것인지 파악할 수 없으나, 2013년 12월 평론집을 발간 이후부터 활동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16. 박서련·김필남, 「이메일 대담: 그 이름들에게」, 『오늘의문예비평』 119호, 2020년 겨울호.
  17. 그녀는 『자음과모음』(2020년 가을호)에 실린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을 통해 2021년 문학동네가 주관한 ‘젊은작가상’ 수상자가 되었다. 3권의 장편소설과 1권의 소설집이 발표되고 난 이후였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