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책방, 팟캐스트 중독입니다―우리가 만들어가는 책방 문화

  
  

0. 다양한 글을 쓰는 사람.

  

  산문이 쓰고 싶었다. 오랜만에 드는 기분이었다. 우선 피아노 의자에 앉은 후에 치고 싶은 곡을 고르듯이, 무엇을 쓸지 정해놓지 않고 자동기술법으로 쓰고 싶었다. 이 즐거운 기분을 오래도록 잊고 지냈다. 블로그를 시작해볼까?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 볼까? 구독 서비스부터 웹툰, 유튜브까지, 뭔가를 만들고 창작하고 싶은 마음은 평화로운 정원의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한동안은 이렇지 않았다. 청탁 온 산문을 계속 썼다. 거기에도 또 다른 즐거움은 있었다. 주어진 미션에 맞춤한 글을 써내는 일. 예를 들면 이렇다.
  문화거리에 위치한 가게들의 이야기 쓰기. 한 문화재단에서 주신 일이다. 나는 인터뷰를 되게 좋아한다. 사전에 준비해간 질문에 답을 듣다 보면 대부분 예상 못한 말씀을 해주신다. 그 순간 나는 “됐다” 생각한다.
  인터뷰 때 지참했던 메모지를 펼쳐보면, 가게를 잘 꾸려가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연구가 여전히 고스란하다. 문화거리 조성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은 힘든 일도 많았다고 한다. 주민들의 복잡한 마음을 어찌 헤아릴까. 폭설이 내린 날, 걱정을 안고 출근했을 때 누군가 가게 앞 눈을 쓸어두었더라는 어느 대표님의 추억담은 내게 시처럼 남았다.
  독립출판 작가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위에도 썼지만 나는 인터뷰를 좋아한다. 독립출판도 좋아하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추천하고 싶은 작품을 찾고, 작가님 섭외가 성공하면 인터뷰를 했고, 수록될 사진도 매거진 규격에 맞춰 취합했다.
  인터뷰 중간에 한 작가님이 물었다.
  “작가님은 제가 작가라고 생각하세요?”
  어렵게 섭외해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작가인지’ 확인하고 싶은 그 마음을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2016년 이후로 나름 성실히 활동하고 있는 나도 “내가 정말 작가일까?” 궁금할 때가 있다.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를 볼 때, 청탁이 별로 없을 때, 말투가 거친 작가들이 자조적인 얘기를 너무 오래 할 때 어쩔 수 없이 불안해진다. 앞으로도 계속 겪을 일이라 대응 매뉴얼 같은 걸 생각해 두고 싶다. “누가 작가인가” 같은 질문에 쉽게 위축된다면 내가 쓴 시, 내가 쓴 글들이 슬퍼하지 않을까?
  그럴 때 책방에 가면 좋다. 영감을 주는 작품을 찾으면 분명 기분이 나아질 것이다. 시 모임이나 문학 행사에서 직접 독자님을 만나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내가 쓴 시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실감이 있으면 계속 시를 쓸 수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인터뷰에서 아까의 질문을 던졌던 작가님은 이후로 또 한정판의 특별한 책을 출간하셨고, 출판사와 계약도 하셨다.
  인터뷰 외에도 주문 제작으로 쓴 글들이 다채롭다. 녹차 회사의 브랜드 스토리, 동료 시인의 시집 리뷰, 문화연구소의 유튜브 시나리오, 이메일을 통해 주고받는 시 창작 편지글도 반 년 정도 썼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주문이 있었던 것은 바로 책방에 대한 글이다. 책방 소개, 책방에서 했던 모임 에피소드, 노원책방 여행 등등.
  ‘왜 자꾸 나에게 책방에 대한 글을 쓰라고 하지?’
  돌아보니 내 첫 시집 제목부터가 『책방에서 빗소리를 들었다』이다. 책방지기를 하면서 있었던 일을 산문집으로 내기도 했다. 두 번째 시집은 책방에서 쓴 시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아직 이름 앞에 붙일 ‘호’를 정하지 않았는데 책방 김은지, 어떨지 한번 생각해봤다.
  이렇게 좋아하는 책방에 대한 글이니까 흔쾌히 썼다. 매번 다른 장면, 다른 대화, 다른 분위기를 내기 위해 고심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딱히 산문집으로 엮기 어려운 글들이네.’
  쓸 때도 즐거웠고 원고료도 감사했고 성취감도 컸지만 내가 그토록 공들여 쓴 글들이 한 번에 소용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자 산문 쓰기가 소모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내게 생각을 전환할 계기가 생겼다. 팟캐스트 방송을 듣고 있었는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키의 책은 『잡문집』(『무라가키 하루키 잡문집』, 비채, 2011)이에요. 너무 좋아해서 아껴 읽고 있어요.”
  진행자의 말이었다.
  『잡문집』이라니! 그리고 그 책을 가장 좋아하다니. 나는 당장 책방 대표님께 카톡으로 주문을 부탁드렸다. 오렌지빛 표지가 빛나는 두꺼운 그 책을 수령했을 때, 나는 완전히 충전된 기분이 되었다.
  서문 해설 등, 인사말 메시지 등, 짧은 픽션, 수상소감에서 대담까지. 잡문집다운 차례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잡’이라는 말이 들어간 단어들을 별로 안 좋아해서 잡지라는 단어도 매거진이라고 쓰던 사람이었는데 이 새로운 장르의 책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앞으로 꾸준히 문장을 강화하고 좋은 시를 많이 써서 ‘잡문집’을 낼 수 있을 정도의 훌륭한 작가가 되자고 다짐했다. 본보기가 생기자 기운이 났다. 그동안 쓴 글들의 특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주문 제작의 글, 자동기술법의 글, 그런 경계가 섞이고 움직이면서 산문을 쓰고 싶은 상태가 되었다. 더 많은 주문이 들어오면 좋겠다.
  지금 이 글, ‘문학적 경험의 현재적 변화’,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새로운 방법들에 대해, 60매의 원고도 설레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 미래의 잡문집을 읽을 누군가에게 말을 걸듯이, 담소를 나누듯이.
  
  오늘 글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최근 SNS와 블로그 등 독자를 만나는 채널이 활발해졌다. 독자들의 문학적 경험이 책을 읽고 강연을 듣는 단순한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화되고 있다. 나는 팟캐스트, 구독 글쓰기, 동네 책방 연계를 통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는데 어떤 경험을 했는지, 작가와 독자가 소통하는 방식이 다양해지는 경향에 대해 내가 느낀 점을 말할 것이다.
  
  

1. 새로운 경험을 기획합니다

  

  책방에서 있었던 다양한 행사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경매’다. 책방 ‘지구불시착’에서 가끔 여는 프로그램이다. 책방 손님들이 자신의 작품 혹은 소장품을 책방에 낸다. 대표님과 지인이 진행을 맡아 인스타 라이브나 유튜브에서 물건을 멋지게(혹은 웃기게) 소개한다. 시청자들의 제시 가격은 경쟁이 붙고 낙찰을 받은 사람은 책방에 입금하면 된다. 만약 내가 낸 그림이 3만 원에 낙찰되어 팔렸다면 나는 책방에서 3만 원어치 책으로 가져가는 방식이다.
  한번은 커다란 부엉이 장식품이 나왔다. 두 마리였다. 부엉이는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하는데 좁은 집에 두기엔 부담스러워서 그냥 보고만 있었다.
  “은지, 우리 이거 한 마리씩 나눠 갖자.”
  선배 시인의 말이었다.
  “좋아요!”
  나는 재물 운을 바라며 경매에 참여했다.
  “은지 5,000원”
  “현아 10,000원.”
  “선배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저랑 나눠 갖자면서요.”
  “응?”
  “그럼 제가 낙찰되게 해주셔야죠.”
  “그냥 부르는 거지, 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부엉이는 선배님이 낙찰받으셨고 나는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이때를 생각하면 매번 웃음이 나온다.
  엉뚱하고 경쾌한 경매를 통해 작품도 발표하고, 책방에 어떤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지 알게 되고, 책방 매출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방 사람들과 친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 밖에 독특한 행사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탁구 치고 시 쓰기’ 말 그대로 탁구를 친 후에 책방으로 돌아와 시를 쓰는 모임이다. 탁구인들을 시의 세계로 이끄는 효과는 물론 참가자들의 건강까지 돌보기를 희망하며 기획했다. 탁구를 쳐서 그런지 서로의 문장을 받아치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었고, 너무 재밌지만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지만 인기 프로그램이다.
  ‘물물교환’은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트레이 위에 올려두고, 그 물건에 대한 짧은 글을 쓰는 방식이다. 친환경 손 세정제가 갖고 싶으면 가방 속에 여분의 사과를 내놓으면 된다. 에코이즘과 미니멀리즘의 실천은 물론이고, 이 세계를 구성하는 작은 사물들에 관심을 보낼 수 있는 멋진 프로그램이다.
  
  어떤 신념이 있어서 이런 기획들을 하냐고 물으면 ‘지구불시착’ 대표님도 나도 멋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대표님은 “재미있게 글쓰기”의 수호자처럼, 너무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모임을 지양하신다. 나도 시 모임에서 진행만 맡고, 내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참가자들의 이야기로 시간을 채운다. 인권을 침해하는 글이 아닌 이상은 글의 장점에 주목하고 서로를 응원한다. 더 좋은 작품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진지한 말들은 글쓰기를 괴롭게 한다. 새로운 작품은 지속적으로 써야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유연한 태도로 꾸준히 쓰는 쪽을 선호한다. 이런 비슷한 성향 덕분에 책방 대표님과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하는 것 같다.
  
  

2. 계속 진화하는 팀 〈분리수거〉, 강혜빈 김은지 임지은 한연희

  

  이번 주에는 서른 개의 문장을 썼다. ‘유리’ ‘플라스틱’ ‘캔’의 물성을 생각하며 각 열 개씩 문장을 쓴 것이다. 시도 아니고, 앞으로 사람들과 함께 완성될 시의 재료가 될 문장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엄청 힘들었다. 차라리 시를 쓰는 게 쉬운 거 같다!
  다 쓰고 나니까 너무 뿌듯했다. 한글(hwp) 문서 속에 이 낯선 문장들은 대체 무엇이지? 문장마다 후광이 비친다.
  
  나는 팀 〈분리수거〉에서 ‘종이’로 활동하고 있다. 강혜빈 시인은 유리, 임지은 시인은 플라스틱, 한연희 시인은 캔이다. 11월 7일 월요일 12시, 문학주간 작가스테이지에서 우리 팀은‘우연과 필연 42’라는 행사를 한다. 한연희 시인의 주도로 그동안 해왔던 낭독회와 또 다르게 진행될 예정이다.
  우리가 준비한, 연결되지 않은, 무의미한, 우연한 문장들을 독자들이 주워가고 마흔두 개의 문장을 읽으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4편의 시로 완성되어가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창작의 기쁨과 낭독의 기쁨, 둘 사이의 아름다움을 목격하는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팀 〈분리수거〉는 처음엔 책방 지구불시착의 공간에서 뭔가를 해보자는, 소박한 이유로 모였다. 특별한 낭독회를 해보고 싶어서 재활용품을 테마로 기획했는데, 찾아주시는 곳이 늘어서 4년째 낭독회를 이어가고 있다. 문예지에 특집으로 시를 발표하기도 하고, QR코드를 이용해 ‘지면 낭독회’라는 것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 번씩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마다 작품이 남는 것이 가장 좋다. 준비한 서른 개의 문장들에서 비롯하는 시를 써보고 싶다. 평소 쓰던 것과 다른 호흡의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3. 이소연 시인의 시 팟캐스트 〈도심시〉

  

  올해 도봉구에서 시를 몇 편 썼다. 김근태기념도서관, 평화문화진지, 원당마을 한옥도서관.
  이소연 시인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 〈도심시〉에 출연하기 위해서였다. 주문 제작 산문만 많이 쓴 게 아니라 주문 제작 시도 많이 쓴 한 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소연 시인은 ‘돼지감자’라는 별명을 사용하고 거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나는 ‘잎파랑이(엽록소라는 뜻의 우리말)’라는 별명을 골랐지만 어쩐지 ‘돼지고구마’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책방의 감초, 팟캐스트의 감초라는 뜻에서 ‘돼지감초’라는 이름까지 얻어 별명 부자가 되었다.
  
  〈도심시〉는 ‘도무지 지나칠 수 없는 심정으로 시를 쓴다’는 뜻으로 올해는 도봉구의 여러 장소를 다루고 있다. 이서하, 유현아, 권창섭, 주민현 등 많은 시인들이 1편의 시를 쓴 후 방송에 출연했다. 그리고 이소연 시인은 그 모든 장소에 1편씩 시를 쓰고 있다.
  먼저 시를 낭독한다. 이어서 한 줄 한 줄, 어떻게 썼는지, 어떻게 읽었는지 편하게 떠든다. 이소연 시인은 이런 과정을 통해 현대시에 익숙하지 않은 청취자들이 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실제로 〈도심시〉를 듣고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은 구독, 좋아요, 댓글, 후원을……)
  나는 앞으로 함석헌기념관에 대해서도 써야 한다. 함석헌기념관에 대해 거의 모르는 상태다. 예전에 김근태기념도서관을 쓸 때도 꽤 부담을 느꼈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쓴 시가 더 좋을 수도 있어. 즉각적으로 느낀 점을 시로 써 봐.”라는 이소연 시인의 말에 바로 문장을 쓸 수 있었다.
  함석헌기념관에 대해 어떤 시를 쓰게 될까? 생각하니 조금 떨린다.
  
이소연 시인은 매일같이 시를 쓰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시인이 시를 쓰는 건지, 시가 이소연을 쓰는 건지 알 수 없었던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많은 시가 쌓여 있었다.
그런데 가장 급하게 쓴 시가, 너무 좋은 것이 아닌가?
  

  노을은 두 개의 저녁을 닦으면서 걸어온다
  나는 책방에서 밖을 내다본다
  작은 빗방울에도 어둠이 깨어질 것 같다
  
  저녁은 둥근 발자국마다 빗소리를 심고
  도도봉봉 뚫린 숨구멍을 내고
  
  여기 있으면 밤과 낮이 서로 마주보고
  웃는다
  

─이소연, 「읽기만 해도 뭔가 쓰고 싶다」 중에서
  

  앓는 소리를 하며 후다닥 쓴 시. 하지만 또한, 매일같이 시를 쓴 사람이 역시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예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이지만 나는 심각한 팟캐스트 중독자이다. 아침에 3편 정도, 밤에 3편 정도를 듣는 것 같다. 너무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오십 번 넘게 다시 듣는다. 〈세너힘〉이라는 팟캐스트도 진행했었고, 『팟캐스터』라는 책의 공저자이다.
  지금 글을 쓰며 듣고 있는 방송에서 갑자기 시인 이야기가 나왔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에 너무나 공감한 슈만이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을 만들었다. 사촌을 사랑한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는 내용도, 시와 음악도 모두 흥미롭다. 그런데 나는 무엇보다 다른 예술가의 작품에 감동한 슈만이 당장 그 예술가, 즉 하이네를 찾아갔다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영감을 받고 협업하는 그 적극성이 놀랍다. 나의 시를 읽고 협업 제안을 하는 음악가를 상상해본다. 너무 좋을 거 같다. 더욱 열심히 시를 써야겠다.
  
  다시 〈도심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문학 작가가 출연하는 팟캐스트 방송은 보통 책을 소개하고, 작가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자리가 되는 것 같다. 〈도심시〉처럼 이렇게 원고료도 따로 주고 신작 발표의 장을 마련한 방송은 처음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이소연 시인은 동료 시인들이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사람들 챙기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곁에서 보고 감동할 때가 많다.
  나도 신진예술인지원에 선정되어 〈도봉낭독회〉라는 사업을 했었다. 개인적으로 멀미가 심한 나는 낭독회를 보기 위해 머나먼 홍대나 강남으로 가야 하는 게 힘들었고, 인근에 멋진 낭독회가 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달 작가님을 초청해서 낭독회를 열었다. 첫 번째 출연자로 도봉구에 거주하는 이소연 시인을 초대했고 지금처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책방 행사도 그렇고, 낭독회, 팟캐스트 방송, 모두 오래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우리 스스로 환경을 조성하고 길을 만들어가기 때문은 아닐까?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우리 작품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
  
  

4. 책방 시 모임

  

  오늘 시 모임의 풍경. 카카오톡이 작동하지 않아 당황한 모습들이다.
  “아니, 프린트할 시를 보내드려야 되는데 카카오톡이 안 되네요.”
  “좀 늦는다고 톡을 드려야 되는데 대신 디엠했는데 보셨어요?”
  “카카오톡이 안 돼요? 전 몰랐어요.”
  “우린 너무 카카오톡에 의존하고 산 것 같아요.”
  “네이버는 지금 좋겠네요.”
  개인 정보 보호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열리지 않는 다음 메일에 대해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카카오톡에 근무하는 지인이 이야기해준 정보도 나누고 주식은 어떻게 될지도 이야기한다.
  
  카카오톡으로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몇 번 쓴 적이 있다. 새로운 소통 플랫폼의 풍경, 관계의 양상, 비롯되는 감정 시로 다루어보고 싶었다.
  곧 복구가 되겠지만 카톡이 없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나랑 친한 임지은 시인은 내 주변에서 카톡을 안 쓰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은 언니와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페이스북 메신저라는 것을 사용했다. 생일에 카카오 선물하기도 쓸 수 없었다. 그래도 불편함에 지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언니를 멋지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다 한다고 해도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왠지 다행스럽다. 반전은 지은 언니가 지금은 카톡을 쓴다. 예술 사업을 같이 했는데 ‘단톡방’에 들어올 필요가 있었다. 쓰긴 쓰는데 아주 조금 쓴다. 아무튼 자신의 의사에 따라 카카오톡을 오래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카카오톡과 관련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본다. 카카오, 톡, 단톡, 읽씹, 관련 단어들을 잘라보고 굴려본다. 시 모임이 있는 날은 ‘뭐 쓰지?’ 하는 상태로 지낸다. 정기적으로 비정기적으로 시 모임이 쓰기 모드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책방 ‘책인감’ 대표님은 참가자 분들의 시를 흔쾌히 출력해주신다. 오늘은 카카오톡 고장 때문에 문자나 네이버 메일로 취합하느라 더 고생이시다. 항상 신세를 진다며 감사의 말씀이 오가서 오히려 훈훈하다. 한 인문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진행 중인 모임이라 참가비는 무료이다. 책방이 이 자리에서 오래 있어주길 바라며 사람들은 음료도 드시고 책도 구매한다.
  
  시 모임 1부에서는 좋은 시들을 읽고 시와 관련된 산문도 읽는다. 이슬아 작가의 『심신 단련』에서 「양의 있음과 없음」을 같이 읽었다. 작가는 먼저 쉼보르스카의 시를 소개하고 자신의 친구 ‘양’의 이야기를 한다.
  쉼보르스카의 시는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고마운 점들을 보여준다. 그들을 너무 사랑하지는 않은 덕분에, 편하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던 순간들을 그린다. 음악회에 동행해서도 음악회를 가장 잘 감상하고 올 수 있었다든지.
  이를 읽기 전에 나는 한 번도, 나와 되게 되게 친하지는 않은 사람의 소중함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많은 인연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멋진 글을 6명의 참가자분들과 같이 읽는다.
  ‘두 번째 읽어도 좋은가?’
  참가자분들이 소리 내어 읽어줄 때 나는 항상 이 생각을 한다. 참가자 분들은 쉼보르스카의 시도 마음에 들어 했지만 이슬아 작가의 문장에도 푹 빠져들었다.
  “아무래도 나보다는 네가 낫겠지.”
  “별 수 있겠냐.”
  같은 문장에 머무른 사람도 많았고 텀블러를 물통이라 표현한 점도 밑줄을 그었다. 두 번째 읽을 때 더 좋은 글이었던 것으로,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충분히 글을 감상한 후, 우리는 시인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쉼보르스카의 작품처럼 ‘삶을 다르게 감각하게 하는’ 시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2부에서는 각자 써온 시를 낭독하고, 감상한다. 쉼보르스카의 작품을 읽을 때와 같은 방식이다. 오탈자가 보이면 찾아주고, 어디가 좋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글쓴이에게 말해준다. 내가 쓴 시에 감탄이 터지거나 박수가 나오면 물론 좋다.
  현대시와 친해질수록 다른 사람의 시에 대해서도 잘 말해줄 수 있다. 쓰기엔 큰 관심이 없지만 감상을 점점 더 잘 말할 수 있게 되어 좋다는 분도 있다.
  모르지만, 책방 시 모임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매번 빠르게 마감되고, 꾸준히 신청하시는 분들도 많다. 이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시도 많이 쓴다. 그 외에도 삶에서 새롭고 따뜻한 것들을 더 자주 발견한다는 얘길 들으면 참가자분들의 삶이 조금은 더 즐거워진 게 아닌가 싶다.
  
  문학과 관련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지만, 나는 목소리가 작고 낯을 가린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행사를 핑계로 얘기하는 게 훨씬 편하다. 그래서 자꾸 새로운 기획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활동들이 독자님께 모쪼록 시를 가까이 할 수 있는 경험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더 바라는 건 좋은 시를 써서 독자님을 만나는 일이다.
  
  문장이 필요한 다양한 삶의 면면을 듣고, 책방에서 독자들과 소통하고, 동료들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내 삶만을 재료로 쓰는 것보다 더 진솔하고, 친근하고, 파격적인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싶다. 독자들을 위하는 다채로운 시, 새로운 시를 쓸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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