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과 비등단 사이에서 문학하기 ─ 『베개』를 운영한다는 것에 대한 고충과 한국문학의 가능성

  

1. 개인의 눈높이와 조감도 사이

  1940년 5월에 독일군의 공격에 몰려 영국군이 프랑스 해안 덩케르크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해야 했던 전쟁상황을 그린 극영화 〈덩케르크〉를 본 뒤, 다큐멘터리 〈덩케르크〉까지 보았다.
  한 역사적 사건을 상이한 장르의 서사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는데, 이 만족감은 극영화가 제한된 시점의 개인들을 통해 생생하게 제시하는 경험을 다큐를 통해서는 거시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평가하며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왔을 것이다.

  전쟁터의 개인들에게 눈높이에 맞추면 불안과 막막함이 펼쳐진다. 언제 적기가 나타날지 모를 바다 위 하늘을 바라보는 그들의 심란한 얼굴들. 다큐는 얼굴들 위에 해도海圖를 오버랩시키며 흰색 점선과 숫자로 곧 벌어질 공습의 전개를 요약해 써넣을 수도 있다. 개인들의 생생한 경험은 역사서에서는 아득한 점으로 작아지고 무감하게 박제된다.

  때때로 우리는 개인들인 ‘나’의 제한된 시계視界를 훌쩍 넘어서는 커다란 그림 속에서 삶을 이해하고 싶어진다. ‘내가 하는 이 일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자문할 때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이해는 쉽게 혹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한 응시는 문득 삶의 정조가 된다.
  나는 이 글에서 나의 경험과 객관적 자료들을 오가고 또 현재와 과거의 내 경험들 사이를 오가면서 주제에 관해 요청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2. 이 일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밀레니엄 이전부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대학교에서 많은 학생들과 문학 수업을 해왔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문한 적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불현듯 떠오를 때마다 아직 그 뜻을 되새길 무언가가 있는 듯 여운이 남는 기억이 있다.
  훗날 작가로서 멋진 삶을 살기를 꿈꾸고 그러기 위한 절차로서 등단을 염두에 둔 학생들의 얼굴을 쉬는 시간에 무심코, 물끄러미 바라본 어느 야간 수업의 한 순간이다. 미래를 향해 간절하게 무언가를 바라며 노력하는 사람의 얼굴이 그렇듯 학생들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저들이 가고자 하는 어느 미래의 장소들은, 질서는 과연 생각만큼 아름다울까, 만일 꼭 그렇지만은 않다면, 비유컨대 여행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여행 준비를 시켜주는 수업을 한다면서 내가 실제로 하는 일을 무엇인 걸까? 이런 자문이 떠올랐던 어느 밤의 대학교 운동장이 생각난다. (쉬는 시간이면 잠시 운동장으로 나가 학교 담장 너머 불빛들이나 밤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왜 그러는지는 그래본 분들이 아실 것이다.)
  문학 아래에서, 문학 안에서, 나는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는 시간만을 충분히 누리고 만족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종의 정거장인 작은 문학교실들을 떠나, 더 나아가, 언젠가 학생들이 도착하게 될 한국 문단의 질서는 과연 어떠한가? 소망을 품고 피곤한 몸으로 캄캄한 밤에 모여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어떤 대우를 겪게 될까? 나는 무턱대고 염려하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학생들의 얼굴을 멍하니 건너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가장 방심한 순간에 퍼뜩 깨닫는 일들이 있지 않은가.

  “문단이라는 곳은 등단 과정과 서열, 지명도, 세대, 각종 인맥 등에서 매우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곳이며 그 안에서 문인들 간에 권력 격차가 매우 큰 곳”(김명인 비평가)이었다는 것은 굳이 발화자를 명기하지 않아도 될 사실이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 전체가 그렇게 위계적인 구조와 정서로 짜여 있었기 때문이다.
  장강명 작가가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 2018)에서 고발한 문학계의 모습도 ‘당선과 합격이라는 제도가 사회적 신분을 결정하는 계급화’된 시스템이라는 것이었다. 차별과 서열의 구조가 눈에 보이지 않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지배하는 사회 속 사회가 문단이라는 것이다.
  훨씬 이전인 1980년대에는 어땠을까? 한 신예 시인이 첫 시집을 냈을 때 해설에 쓰인 “그들에게 잘 보여야 살 수 있다”는 문단의 실정에 관한 냉소의 문장은 때이른 만큼 비체계적인 누설의 뉘앙스였던 게 생각난다. 비판의 추세를 보면, 문단의 권력구조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내부적인 대립에서 점차로 시스템에 대한 문단 경계선상 혹은 외부로부터의 비판으로 변해온 듯하다.
  문학을 한다고 했는데 살다 보니 현실에서 실제로 하게 되는 일이 어떤 권력과 위계를 수용하며 왜소해지고 마는 것이라면, 만일 그렇다면, 내가 문학 수업을 한다면서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자문하게 되는 것이었다.
  어느 분야든 사회 전체의 일반성에 부기附記해 그 분야 특유의 세부 규범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 규범들이 사회의 평균적인 수준에 비해 더 진보하였거나 낙후되었거나,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1980년대의 ‘민중’에 이어 ‘시민’이라는 키워드가 부상하고 ‘시민 주도’라는 개념이 통용되던 무렵부터인가, 문학계가 상대적으로 낙후된 사회영역이라는, 특히 집단 내 위계와 서열 같은 기준에 대한 일반 사회의 평균적 감수성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듭 말하지만 『베개』의 창간호에 쓴 비유처럼 여행을 갈 사람들의 준비를 돕는 내가 정작 여행의 목적지에 대해 환상도, 좋은 기대도 그다지 갖고 있지 않다면, 내 수업의 뜻은 무엇일까,라는 막연한 질문이 오랜 시간에 걸쳐 자꾸만 내 안에서 떠올랐다.
  그런데 문단 질서의 부정적인 일면은 멀리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무참하게 드러난 시기가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이루어진 2016년 말이었다. 언젠가 도달해 알게 될 멀리 있는 문학가들의 사회가 아니라 이미 학교와 그 주변에서 교수자와 학생, 선배 문인과 문학지망생들 사이, 동등하지 않은 관계 구도에서 무례함, 추행, 심지어 폭력 등이 다양한 수위로 발생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즉, 내가 강의실에서 언젠가 저 학생들이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일들은 이미 학생들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한 학생은 유부남 지도교수의 부적절한 요구를 거절한 일을 내게 이야기하며 실망과 냉소가 뒤섞인 표정을 지었는데, 이 경우와 같은 많은 경우들이 남기는 불쾌감의 한 가닥은 문학이 개인적 욕망을 풀려는 일종의 미끼로 사용된다는 맥락에서 온다. 이름 있는 대학의 문창과마다 떠올리게 되는 추문들이 있었다.
  고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한겨레》 신문에 실린 칼럼(2016년 11월10일자)에서 추행자들의 행태에 대해 그것은 “인간의 선의를 배반하는 죄”이며 “문학 그 자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요약하고, 또한 그런 만행이 벌어질 수 있었던 기반은 “평등한 합의를 바랄 수는 없”는 위계 구도라고 보았다.
  모든 것의 배경엔 암묵적인 위계주의가 있기에 무례나 폭력을 겪는 이들은 ‘이 바닥에서 잘 되려면’, ‘여기서 무사하려면’ ‘꿈을 이루려면’ 그걸 감수해야 하는 식의 장면들이 만들어지곤 했다. 그것은 긍정적인 ‘교환’이기 어려운 것, 사기나 착취라는 최하와 최악의 지점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평등한 합의를 바랄 수는 없”을 것 같은 경력자, 권위자, 기득권자와 신진, 지망인, 초보자의 관계가 과연 그럴 수밖에 없는지 질문하면서 나는 위계를 짓지 않는 다른 관계 모델은 가능하지 않은지를 묻게 되곤 하였다. 개인적인 허욕을 좇지 않고 오로지 최상의 문학만을 사랑[敬愛]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텐데. 그런 이상을 나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산을 향해 오르는 일의 비유로 생각한 적이 있다. 위계가 있다면 오직 산의 위대함과 그것을 향하는 유한한 개인들이라는 구도 속의 비개성적 위계가 있을 뿐인데.

  2016년 말은 SNS를 통해 그간의 문학장文學場 및 다른 예술계의 성폭력 비리가 폭발적으로 폭로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베개』를 함께 창간하게 될 학생 나하늘씨의 제안으로 고양예고 문예창작과 졸업생 연대인 ‘탈선’의 기자회견을 보러간 때도 2016년 말이었다. 문예창작학과 문학강사 성폭력 사건을 고발하고 요구사항을 밝히는 자리였다. 나눠준 입장문에 쓰인 (우리를 모욕하고 억압한 선생이란 이름의 너희들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 필자 삽입) “우리가 문학이다”라는 선언이 더할 수 없이 감동적이었다. 그것은 위계질서의 폐혜에 희생되지 않겠다며, 추악함을 아름다움으로 갚는 젊음의 패기라고 느꼈다.
  몇 주 뒤 해가 바뀌었고 『베개』를 창간하기 위한 첫 모임을 가졌다. 필자는 『베개』를 창간하며 취지를 밝히며

  누구든 문예文藝하기 위해 어디 험한 데 가서 줄 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식탁 위 배고픈 손들의 평등만큼 위계 없는, 이성적이고도 다정한 그런 식탁은 없을까.

─ 『베개』 창간호에서

라고 썼는데, 그러자 독립문예지 씬에 있던 누군가가 트위터에서 ‘문창과에서 오래도 해처먹었다는 자가…’라고 내 글에 짧은 논평을 흘렸다. 나는 그 정서와 표현의 맥락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문창과에서 선생이었다고 스스로 밝힌) 내 쪽을 염두에 둔 모욕의 말을 전송한 것 같았는데, 나 역시 문학을 둘러싼 기득권과 신진, 지망인들 사이의 기존 셈법이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을 거듭해오던 터였다. 다른 셈(교환)이 필요한 시기였다. 위계에 근거한 무례와 폭력이 아니라 밝고 풍부한 것을 불러내는 다른 교환의 현실이 필요했다. 그 매개체를 『베개』는 다정함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다소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다정함으로 갚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치유의 문법이며, 엄밀한 등가적 교환이 아니라 부등가성의 교환, 증여적 교환의 한 방식이다.

  

3. 등단제도가 없으면 ‘위계 없음’이 가능할까

  『베개』의 방향은 처음부터 위계 없이 평화롭고 다정한 문예 공동체로 설정되어 있었다. 모토는 “등단이라는 인정절차 없이도 얼마든지 문학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독립문예지를 운영하는 고충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재정적인 취약함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베개』에게 중요한 것은 1권의 책밖에 못 내고 말지라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문학하는 ‘자세와 장면’이 가능함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었다. 『베개』의 문을 두드리고 접촉하는, 대부분 비등단자인 어느 누구도 등단 경력의 여부나 부가적인 위계질서로 인한 위축감을 경험하지 않기를 바랐다. 사람은 부정적인 질서를 접하고 불가불 학습하기 전에는 누구나 자세를 낮추고 위축될 까닭이 없다. 길가의 산수유나 배롱나무 앞에서 누가 마음을 조심할까? 『베개』는 기쁘고 당당하고 다정한 소통을 소망했다.

  『베개』의 창간을 준비한 멤버는 세 사람으로 1990년대에 태어난 시인 두 사람(권경욱, 나하늘), 과 1960년대에 태어난 필자, 그리고 소설을 쓰는(김가을) 1980년대생 이렇게 네 사람이었다. 젊은 두 시인은 등단을 시도해본 적도 없었고 등단에 연연할 생각도 없었지만 좋은 시를 쓰고 시를 사랑했으며 제도의 모욕을 받아들인 적이 없는 당당함 같은 것이 있어 보였다.
  기존의 관행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저들을 시인으로 부르기 전에 우선 등단 여부를 따졌겠지만, 『베개』는 시를 쓰는 모든 사람을 시인이라고 불렀고, 이것은 『베개』뿐만 아니라 이후 독립문예지와 출판의 무대에서 새로운 관행으로 이어질 흐름이었다.
  『베개』를 창간했을 때 의외로 큰 호응을 경험했다. 시 원고를 공모했을 때 매우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추정컨대 비등단 응모자들의 원고 비율은 90퍼센트 정도였다.
  이때 『베개』의 창간 멤버 네 사람이 마음먹고 한 일은 응모작들에 대해 다정한 피드백 답장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 일을 젊은이들은 훌륭하게 해냈다. 원래는 나까지 네 사람이 일을 똑같이 분담하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적은 작업량밖에는 해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 안에서 응모작에 대해 단점을 찾아내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려고 드는, 교수자 모드의 자아가 방해를 했기 때문이었다. 응모자가 답장을 받고서 낙심하거나 위축될 수도 있을 문장들을 써내려가다가, 아니지, 『베개』의 취지를 생각하며 자기검열을 하고, 그러다 보니 답장을 보내는 자괴감과 피로가 있었다. 더 수평적인 마음과 어조로 응모작에 반응하려는 수행이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지금은 훨씬 나아졌다. “아직 시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계십니다.”로 요약될, 내가 차마 쓰지 못하거나, 혹은 썼다가 지운 문장들이 있었다.
  그런 나에 반해 두 젊은 시인들이 쓴 답 메일들을 읽어보니, 예의 바르게 응모작의 장점을 발견해 감상을 전하고, 굳이 더 나은 안목과 통찰을 입증하려는 강박 없이 시를 읽으며 좋았던 마음을 서술하고 있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응모자에게 문학에 관한 일로 다정한 답장을 보냈다. 그러니까 그들의 마음이 내 마음보다 더 훌륭했다. 『베개』의 마음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각각 수 십통의 피드백 메일을 보냈고, 나도 스스로 절제하며 몇 통의 답 메일을 보냈다.
  이 즈음에 첫 번째 의혹이 떠올랐다. ‘우리는 당신을 환영하지만 당신의 작품은 책에 실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 작품이 충분히 좋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잘 납득되고 수용될 수 있었을까? 그러기를 바라지만, 위계 없는 문예공동체의 정경으로서 납득되고 수용되어줄지 자신이 없었다.
  독립문예지 『베개』의 고충이란 의외로(?) 이런 것이다. 하나의 좋은 자세와 입장을, 아주 미미한 규모여도 괜찮으니 한번 실현해 보고 싶었는데, 환대를 기대하며 다가오는 손님들에게 판정을 내리는, 그것도 대부분 거절하는 입장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고, 그것이 첫 번째로 실감한 이상함 혹은 고충이었다.
  물론 『베개』는 변명의 말을 갖고 있다. 응모한 작품이 실리든 말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문에 대한 경의 마음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것이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나, 더 새로운 나로 깨어나도록 나를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면 문예라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을까? 이런 엄숙주의는 요즘 통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이것은 한갓 『베개』의 지나친 자기도취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다시 앞선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과연 『베개』는 위계를 구성하지 않는 매체인가? 논리적으로 당연히 하나의 문예지는 모든 응모작을 실을 수는 없다. 그러나 『베개』와 글을 싣기를 원하는 응모자들이 일대다一對多의 구도라면, 어느덧 문턱이 생기고, 응모자들이 스스로를 아쉬운 입장이나 약자로 느끼기라도 할까봐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언젠가 인터뷰에서 다만 “비교적 위계적인 구도에서 오는 괴로움 같은 것이 없이 마음이 편했다. 이 정도가 사람들이 독립문예지에 관해 소박하게 기대할 수 있는 바가 아닐까” 한다고 밝혀본 적이 있다.

  

4. 100년 전과 오늘

  2017년 이래 다양한 독립문예지들의 출간은 문학장 안에서의 뉴웨이브인 듯 여겨져 조명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독립문예지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오래가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니, 독립문예지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기성의 유명한 매체들도 적자로 말미암아 종간이나 무기한 휴간을 선언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기존 매체의 소멸과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SNS 문학장에서 순식간에 회자된다. SNS는 오늘날 새로운 문학 세대에게 매우 중요한 활동 공간이다. 자본력이 있는 매체들은 SNS를 상호소통보다는 일방적인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는 반면, 온라인 공간의 숱한 문학장 구성원들에게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는 24시간 이어지는 정보교환, 토론과 논쟁, 친교와 ‘정서적 산책’의 장이다. 그곳에서 오가는 말들을 ‘청취’하면 새로운 문학세대(실제 연령은 많을 수도 있다)의 화두와 눈높이를 가늠할 수 있다.
  본 글의 서두에서 뜬금없게도 영상물인 〈덩케르크〉를 불러와 다큐적 조감鳥瞰에 대해 언급했다. 멀리서 조감하건대, 근래의 독립문예지들의 활성화는 100년 전 일제강점기 시대의 동인지 및 문예지 운동이 거대한 매체 변동의 흐름 속 뉴미디어 환경을 토대로 재현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SNS 공간에서 문학인들의 삶을 정말 가깝게 접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누가 어디에 무슨 작품을 실었는지, 마감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머리가 아픈지 소화는 잘되는지, 그녀/그가 키우는 고양이가 뭘 하고 있는지까지 전달받는다. 새벽 3시, 4시에 깨어 적적한 김에 접속하면 나와 마찬가지로 깨어 있는 누군가가 방금 전에 남긴 생각과 감정의 흔적을 본다. 정말 경계가 유동적인 작고도 커다란 문학마을에서의 삶이다. 이는 제한 시점 앞에 펼쳐지는 근거리의 생활세계이다. 일상의 세부와 문학적인 행동들이 뒤섞여 나타난다. 누군가의 새로운 문학적 기획을 접하고 자신과의 연관성을 따져볼 수도 있다.
  조감컨대 100년 전에도 문학에 마음을 뺏긴 이들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친연성으로 연결되어 거듭해서 새로운 문학적 시도들을 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동인지를 중심으로 문학 활동이 전개되었던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를 일컬어 동인지 문단 시대라고 한다. 한국의 초기 현대 문단 형성은 전적으로 동인지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특히 현대문학사의 출발 기점도 이 무렵 전후로 잡는다.
  최남선이 펴낸 계몽적인 성격을 띤 초기의 잡지 『소년』(1908), 『청춘』(1914)는 순문학지라고는 할 수 없었고, 최초의 본격적인 문학동인지로서 김동인이 주도하여 1919년에 창간한 것이 『창조』였다. 이어 『폐허』(1920), 『장미촌』(1921), 『백조』(1922), 『금성』(1923), 『영대』(1924) 등이 잇따라 창간되었다. 경성구락부가 주도한 잡지 『신청년』(1919), 1920년대 중반의 현실참여적 면모를 지닌 『개벽』(1920)과 이광수가 주재한 『조선문단』(1924) 등도 있다. 또한 오늘날의 독립출판처럼 단행본을 통해 스스로 작가임을 선언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동인지와 문예지들은 재정난 등의 이유로 몇 호를 내고 말았거나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된 예가 많다. 그러나 이들 동인지가 현대문학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컸다. 그리고 동인지 문단 시대는 193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퇴조하기 시작했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등단 제도의 권력적 변환의 양상을 추적”한 박헌호 연구자의 논문 「동인지同人誌에서 신춘문예新春文藝로─등단제도의 권력적 변화」(2006)는 문학 제도사적 맥락에서 창작가가 명실상부한 작가가 되는 경로, 작가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제도적 권위로서 스스로를 창출한 동인지와 문예지를 조명한다.
  동인지들은 “선배들의 권위와 주도성을 인정하지 않기에 그들 ‘속으로’ 들어가기를 꺼렸으며, 차별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을 특권화시”키며 참여와 대화의 양식이었던 현상문예를 통해 “독자의 투고를 부추기는” 경향 등 당시 새로운 문학 주체들의 특성을 띠었다. 크게 보면 여기서 100년 후인 오늘의 독립출판과 독립문예지들의 현상과 많은 부분 겹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100년 전에도 지금의 우리와 같았습니까?
  당연히 똑같지는 않았다. 한국의 100년에 압축된 엄청난 사회문화적 격변을 어찌 쉽게 가늠할까만, 다시금 오늘날은 뉴미디어 시대라는 거대한 매체적 토대의 차이에서 비롯된 차이가 있고, 또한 문예지와 동인지 운동의 주체들이 문학에 관해 취하는 에토스와 구성원들의 아비투스의 차이도 있다.
  당시에는 학연과 지연을 통해 구성원이 결속하고 “동인지의 가장 큰 목적은 무명 동인들이 이름을 얻는 데 있다”(김동인)는 태연한 말이 보여주듯 일종의 문학적 입신이라는 목표를 당연한 듯 내보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전문 작가들의 사회인 문단이 구성되고 작가 집단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며 때로는 여론을 주도하는 역할까지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비해 오늘날의 독립문예지들에서는 폐쇄적 권위와 출세 그리고 위계라는 것에 대해 지난 100년간 한국 사회가 경험했을 사회적 사실들에 대한 일종의 태도를 읽어낼 수 있다. 『베개』가 독립문예지의 고충을 말할 때 자금 사정부터 거론하지 않는 맥락이 여기에 있다. 과연 『베개』는 한국의 현대문학 100년의 연속선상에서 새로운 에토스와 아비투스의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인가? 질문은 이러하지만, 염두에 둔 것은 포괄적인 주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2017년을 전후하여 폭로된 문학장의 열악한 일면(문학을 미끼로 삼고 위계구도에 의존한 무례와 폭력)에서 문제시되는 ‘위계주의’를 탈피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고충이다.
  조감하면 우리는 100년 단위의 시공간 안에 있다. 눈앞을 바라보면 문학에 애정을 바친 적이 있는 새로운 세대의 열정과 실망의 하루와 또 하루가 있다.
  ‘신춘문예’의 권력화 이전에 동인지와 문학잡지의 시대가 있었음을 생각할 때, 오늘날 신춘문예와 유력한 자본을 가진 문예지들, 그리고 취약한 재정의 독립문예지들은 영향력의 차이는 있으나 문학인들이 사회적 위치를 획득하는 다양한 경로로서 공존할 수 있음이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필자는 지금 영향력이 매우 적은 신생 독립문예지의 고충에 대해, 우리는 다를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관해 쓰고 있다.

  

5. 수평적 관계, 다정한 감정

  몇 호쯤인가, 한 응모자와 작품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메일을 교환하였다. 『베개』는 응모작을 수정, 개선하여 실을 수 있다면, 상호간에 기쁘고 뜻깊은 소통이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었는데, 필자의 판단 착오로 실수를 하였다. 메일로 의견을 주고받는 간격이 다소 답답하게 생각되어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드릴 수 있겠느냐고 물었는데, 이후로 연락이 단절되고 말았다. 그 응모자분은 어떻게 카톡 연락이 가능한지 짐작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베개』 창간호부터 3호까지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홍보하고 자금을 확보하였다. 그 과정에서 후원자의 목록이 만들어졌고, 후원에 감사하는 심정으로 목록을 간수하고 있었다. 응모자는 그동안 『베개』를 후원한 분이셨기에, 리스트에 그분의 전화번호가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트위터에서 그때 일에 관해 ‘오십 대의 한남 시인 편집자가 수상쩍은 연락과 접근을 시도했다’는 트윗을 읽게 되었다. 앞서는 내가 ‘문창과에서 오래 해처먹은 자’였는데 이번엔 ‘추근거릴 수도 있는 한남 시인 편집자’가 되고 말았다. 나는 절차를 건너뛴 실수를 반성하며, 아, 즉각적이고 가깝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거리distance가, 먼 거리가 필요하구나, 마음에 새겼다.
  작은 사례 두 가지이지만, 생각은 이어졌다. 내가 받은 다소 모욕적인 오해 두 가지는 사람들이 겪는 어떤 교환관계의 내력을 상상하게 만든다. ‘나쁜 교환’을 경험한 사람은 이후에 맞게 되는 교환관계에서 이전의 부정적 경험을 보상하고자, 혹은 갚아주려고 방어하고 투사하게 된다. 이는 멜라니 클라인의 정신분석 개념을 응용한 것이다. 공포와 적개심의 투사는 자기를 지키려는 마음의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들의 공포와 적개심을 맞닥뜨린 적이 있다. 내가 상상하는 것은 그들이 했을 어떤 나쁜 교환의 경험이다. 교환이라 했지만, 최악의 경우, 교환을 가장한 모욕과 폭력에 가까운 경험들 말이다. 그런 교환이 발생하는 커다란 틀은 위계적인 한국문학장의 오랜 구조이다.
  공포와 적개심을 치유하는 것은 멜라니 클라인에 따르면 충분히 좋은 어머니이고 『베개』의 언어로 말하면 ‘다정함’이다. 수평저울의 한편에 위계적인 관계의 어려움과 모욕, 폭력이나 착취의 경험이 있다면, 다른 편에는 수평적인 감정인 다정함과 착취를 보상하는 증여의 경험이 있다.
  

  
  다정함과 증여에 대해 차례대로 말하려 한다.
  『베개』는 2017년 창간 당시에 ‘느슨함과 평화로움, 위계 없는 다정함’을 말했다. 이런 것을 기치로 내거는 문예지도 있나? 『베개』 창간호를 본 독자들 일부에게서 내용은 기존의 문예지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충분히 그랬을 수 있겠다. 『베개』에게 중요했던 것은 물론 작품 자체이기도 했지만 작품이 오가는 소통을 둘러싼 감정과 태도였다. 다정한 감정과 태도. 그것은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질서의 반대편에 있는 가치이다.
  종종 『베개』는 매매되고 문학상이 수여되기도 하는 작품만이 아니라 문학에 대한 태도까지가, 어쩌면 더 중요한 문학이라는 입장을 밝히곤 했다. 이런 입장은 문학 따로 삶 따로의 이중적이고 기만적인 행태 속에 폭력이 발생하곤 했던 저간의 사정을 생각하면 타당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좀 이상한걸? 문예지가 ‘다정함’을 기치로 내걸 수 있나?
  이를테면 1929년 5월에 창간된 순문예지 『문예공론文藝公論』은 창간호에서 “본지는 한 문단의 권위를 총망라하여 현대 조선 문예의 일대 조감도를 전개하고자 한다. 문단의 총체적인 발표기관으로서 문예상 모든 의견과 주장을 불편부당의 태도로써 포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천명하였다. 이런 입장이 바람직한 시대가 있었다.
  이를테면 1931년에 창간된 월간 문예지 『문예월간』은 창간호에서 “내외 문예 동향의 신속한 보도와 비판, 일상생활과 문예와의 접근, 고상한 취미의 함양”을 지향한다고 하며, “어서 바삐 어깨를 세계 수준에 겨루어보지 않으려는가? 남부끄럽지 않은 우리다운 문학을 가지기에 노력하자. 그리하여 세계 문학의 조류 속에 들어가 서자”고 했다.
  그런가 하면, 1926년에 창간된 종합문예지 『문예시대』는 “본지는 순 문예잡지가 아니고 (중략) 무엇이든 희망하시고 교시하실 것이 있거든 주저치 말고 아르켜 주기를 바란다”는 자세를 낮춘 입장을 취하였다.
  오랜 시간이 흘러,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이후 창간된 『젤리와 만년필』은 문학장 안에서 터져 나왔던 다양한 위계 폭력에 대한 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독립문예지였는데 ‘귀여운 것은 강하다!’라며 귀여움과 강함을 내세우는 재미있는 신선함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어디 100년 전과 오늘 두 지점뿐일까? 다시 조감하듯 멀리서 바라본다면, 가능한 모든 톤과 형태의 문예하는 입장들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정함은 그 입장들 가운데 하나인데, 그 의의는, 문학장 안에서의 ‘정상적인 교환’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쁜 교환’에 상처 입은 마음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 어떤 태도이려는 것이다. ‘나쁜 교환에 상처 입은 마음’, 그리하여 분노와 원한을 갖게 된 마음들에게 필요한 것은 버텨주는 다정함이다. 버틴다는 것은 정합적이지 않은, 부등가적인 교환의 긴장상태를 견딘다는 것이다.
  나쁜 교환을 경험한 이들은 종종 평범하고 정상적인 교환에조차 서툴거나 긴장하게 된다. 나쁜 교환이란 받을 것을 받지 못하는 경험, 결핍과 후유증의 부정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문학장 안의 억압과 폭력의 경험을 굳이 ‘나쁜 교환’이라고 부른 까닭은, 지속적으로 풍요와 풍부함을 향해 가는 또 다른 교환의 형태인 ‘증여’ 개념을 끌어오기 위해서였다.
  증여의 문법은 선물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등가적이지 않은 교환인 점에 있다. 강제성은 없지만 부등가성 때문에 의무가 남아 교환이 종결되지 않는 묘함이, 교환과 관계를 지속시키는 풍요가 발생하는데, 이를 마르셀 모스는 ‘하우’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하였다. ‘하우’란 마오리족의 언어로 영을 뜻하는데, 교환된 사물에 새겨진 위력이다. ‘하우’란 선물이 강제적인 답례의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데도 여전히 갚아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하는 영향력이다. (어쩐지 학자들이 쉬운 걸 굳이 어렵게 설명한다는 느낌이 든다!)
  선물이란 요구한 적이 없는 풍요로움이다. 선물을 받으면 대개는 그보다 못하거나 더한 선물로 갚는다. 정확한 등가성의 교환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끝없이 선물을 주고받게 될 것’이라는 아스라한 지평이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이 증여의 세계이고, 이는 착취와 사기의 세계 정반대편에 있는 세계이다.
  증여란 범박하게 말하면 느슨한 교환이다. 그것은 인간학적인 관점에서 이해가 가능한 것인데, 데리다는 마르셀 모스의 상호성에 기반한 증여 이론을 비판하며, 증여란 보상에 대한 의도나 욕망 없이 주는 것으로 비대칭적이고 비교환적이며 따라서 현전할 수 없는 것이란 입장을 취한다. 『베개』의 다정함이란 마르셀 모스의 맥락에서의 증여라고 할 수 있다. 데리다가 말하는 증여는, 일본의 종교철학자 나카자와 신이치가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에서 제안한 개념에 따라 “순수증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즉, 사람이 아니라 신이나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것으로 상상될 수 있는 절대적 선물이라면, 데리다의 맥락에서의 증여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증여는, 선물을 주면서도 받는 느낌을 받는 내면성을 동반한다. 그것이 『베개』가 이해하는 증여이다. 『베개』의 젊은 시인들이 다정한 피드백 메일을 보내면서 기뻐했던 것, 더군다나 그 메일이 친절하고 따스해서 고마웠다는 답 메일을 받았을 때 더 기뻐했던 것, 이 일련의 순환은 증여적 교환과 소통의 방식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문학장 안의 ‘나쁜 교환’의 경험으로 상처받은 마음들을 『베개』의 젊은 마음들은 요구받은 적이 없는 선물로 마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은 멜라니 클라인이 가르쳐준 바, 공포에 사로잡혀 투사하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강하고 다정한 마음이다.
  그러나 『베개』가 가진 증여의 한계는 분명하다. 『베개』는 다소 결이 다른 교환으로서의 증여의 문법을 염두에 둘 뿐, 결코 순수증여를 흉내 내거나 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비교우위를 향한 경쟁과 경쟁의 경쟁이며, 『베개』와 『베개』를 거쳐가는 창작가들 역시 그런 질서 속에 있다. 『베개』에 작품을 보낸 시인 몇 분을 실제로 만나게 되었을 때, 『베개』에 계시다가 더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말했다. 막상 그때가 되자 어떤 상실감이 있었는데, 『베개』는 ‘베개의 마음’을 지킨다.
  어떤 독립문예지에서는 ‘메이저리그에 선수를 공급하는 역할’ 따위는 맡지 않겠다고 했는데, 만일 선수(시인)를 붙들어두려고 하면, 이는 그를 사회의 지배적 문법에서 이탈시켜 구속하는 결과가 된다. 미약한 독립매체로서의 『베개』는 참여했던 작가들로부터 개인적 경력 관리의 차원에서인 듯 『베개』와의 관련성을 삭제하는 등의 차가움을 겪기도 하는데, 모두가 위로, 앞으로, 더 화려하게 달려가고자 하는 사회에서 그것 역시 탓할 수는 없다.
  매체는 정거장이다. 여행객들에게 어떤 규칙을 강요할 수 없다. 다만 어떤 여행객들을 더 기억하고 어떤 이들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하는 차이 정도가 있을 것이다. 베개는 시골 역사처럼, 혹은 근처 산기슭의 배롱나무처럼 남아, 그렇지만 자꾸만, 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베개』의 고충을 말하라면, 과연 『베개』는 이런 마음을 내내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의혹과 소망 사이에서 진동하는 과정의 불확실성이라고 답할 것이다.

  

6. 재정적 어려움

  『베개』를 운영함에 있어 고충 가운데 하나는 분명 재정이 넉넉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바라보면 즉시 눈에 띄는 물의 현실이다. 희망 사항으로 1년 내내 무언가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실감을 주는 계간지 정도를 내고 싶은데, 1년에 한두 권을 간신히 낼 정도의 돈 밖에는 없고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때 돈이 모자란다는 말에는 원고료를 넉넉히 지급하기 어렵다는 사정도 포함된다. 창작가와 적절한 교환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시중의 평균보다는 더 많은 원고료를 지급해야 한다. 이런 여론을 트위터를 위시한 SNS에서 접해 학습하게 되었다. 창작가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을 벌려면 날마다 원고료 6~7만원 정도의 원고를 써야 한다. 만일 원고료가 3,000원인 산문을 쓴다면, 날마다 원고지 20매 이상을 써야 한다. 이런 말이야 누구든 못하겠고 또 해서 무엇할까 싶지만, 원고료에 적어도 0 하나씩은 덧붙여 지급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엄두를 못낸다는 점이 아쉽다. 그게 현재 한국의 순 문예 시장의 현실인 것을.
  『베개』를 1권 내는 데는 원고료 약 400만 원, 제작비(디자인, 종이, 인쇄) 400만 원, 해서 최소 800만 원 안팎이 든다. 판매 부수는 적게는 200부, 많을 땐 500부 정도였는데, 1쇄를 완판해도 총 비용의 절반도 회수하지 못한다. 『베개』의 경우엔 『베개』 사무실에서 1년 내내 ‘창작강좌’를 열어왔으나 여전히 적자를 온전히 메꾸지는 못했다.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베개』를 5년간 운영하며 6권의 문예지와 3권의 시집, 1권의 산문집을 낸 결과를 공개하며 어떻게 하면 적자를 면할 수 있을지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창작강좌를 열어 약간의 운영비를 얻고, 선정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우수문예지 발간지원기금’도 신청하고, 좀 더 폭넓은 대중에게 흥미로울 수 있는 흥행성 있는 기획을 고려해본다는 등의 방안에 동의하는 정도를 알고 싶었다. 모두 무난한 발상이지만 결과는 올 한 해를 지내고 연말까지 가보아야 안다.
  창작강좌를 연다면 문예창작의 경험이 있는 분들을 위한 고급 강좌와 문외한이라 할 초보자를 위한 체험 강좌, 두 트랙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베개』는 2호와 3호를 출간할 때 ‘우수문예지 발간지원기금’을 받아 원고료를 지출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는데, 독립문예지라면 역시 독립적으로 자생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기금을 받았으니 실은 ‘독립’이란 접두어를 떼어야하는 것 아닌지, 등의 생각이 없지는 않다. 또 책을 내고 결과를 증빙하는 명확한 일정이 주어지는 방식에 대해 『베개』는 스스로 쫓기지도 참여자에게 독촉하지도 않고 물 흐르듯이, 시시때때로의 내적 필연성에 따라 움직이기를 원해서 마음 편히 포기하는 쪽에 가깝다. 매우 소극적이고 안일한 일면이 있다.
  그러나 『베개』가 적극적인 면을 보일 때는 초연한 듯 숨어 왕성히 글을 써가는 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 작품 발표와 출간을 도모해볼 때이다. 프로 문학가일수록 어쨌든 쓰고 또 쓴다는 면모가 있다. 나 자신도 문학에 인생을 걸었던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정말 하고픈 말이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게 아닐 수 있는데, 프로 작가들은 좋건 싫건 너무 많은 말을 해야 한다는 게 어쩌면 함정이 아닐까? 각자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때에 정말 필요한 말을 한다는 것은 당사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런 의미를 지닌 말이야말로 다른 사람에게도 값진 무언가로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맥에서 맥을 이어주는 그런 장면은 외부적인 시간표에 따라 작위적으로 만들어질 수가 없고 저마다의 내적 필연성이 발현되는 때라는 모호한 시간표에 따를 수밖에 없다. 요는 외적인 시간표에 따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특별한 만남들을 기다린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얘기하던 중인 것을 잊고 있었다. 『베개』에 호감을 가진 분들 가운데서 후원금을 받으면 어떠냐고 하시기도 한다. 『베개』는 주고서 돌려받을 수 있으면 받는다는 입장이고 싶다. 받고서 돌려줄 수 있으면 준다는 입장에서는 초조할 수밖에 없고, 느긋함을 사랑하는 『베개』로서는 초조해지고 싶지가 않다.
  『베개』의 고충은 주로 마음의 일이다. 『베개』에 연을 대고 자신의 문학 인생을 도모해가는 분들을 생각하면, 운 좋게 계속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좋겠다.

  

7. 한국문학의 가능성?

알렉산더 칼더의 〈Rouge triomphant〉 (1963)

  『베개』는 눈처럼 내리고 녹아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독립문예지들의 하나이고, 이는 한국문학장의 견고하지 않은 일부이다. 한국문학의 가능성이란 제목 하에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비유하면 커다란 모빌의 한 켠에서 약간의 무게를 가진 잎사귀 하나, 어쩌면 가지 하나 정도의 시야를 갖고 있다.
  모빌의 창시자인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을 비유적 형상으로 삼아 문학장 속의 독립출판 주체들, 그리고 그 안의 『베개』로 상상해본다.
  개체들(문학장의 개별주체들)이 자신의 무게로 장 안의 누군가에게 이미 영향을 주어오고 있었고, 현재에도 서로를 조건 지으며 영향을 주는데, 어느 개체도 전체를 통제하거나 전체의 움직임을 기획할 수는 없다. 통제의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역학 그 자체이며, 개체는 심지어 자신이 받게 되는 영향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운동조차 통제하지 못하곤 한다. 그래서 개체에겐 오늘과 내일이 거듭 새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단지 그렇게 느껴질 뿐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조감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베개』를 움직이는 것은 『베개』가 꼭 그렇게 움직여야 할 것 같다고 느끼는 어떤 내적 필연성의 힘인데, 구조주의자라면 그런 필연성의 표현조차 더한 심층, 전체구조, 혹은 무의식에 조종된 환상에 따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예컨대 사회학자 뒤르켕이 “바깥으로부터 강제된 것을 우리 자신이 공들여 구상해냈다고 믿게 해주는 환상”에 대해 말했을 때 이는 사회적 압력에 의한 자살과 같은 어두운 맥락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구조 혹은 심층의 영향력이 꼭 어두울 필요는 없기 때문에, 『베개』는 밝은 환상에 이끌리는 무엇이고 싶다. 앞서 언급한 ‘다정함’이 바로 밝은 환상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상처 입고 거칠어진 우리 안의 우리를 우리가 치유한다는 자가치유의 모델이다.
  2017년을 전후하여 다시 활성화된 독립출판과 독립문예지의 흐름은 문학장 안의 소통의 방식과 구조를 변경하려는, 문학장 자체의 무의식적 결정과 영향력에 따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것 같다. 내가 어느 야간 대학의 수업 시간에 느낀 물끄럼한 순간의 낯선 연민 때문에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어느 날 독립문예지를 만들고 싶어진 것처럼 다른 많은 젊은 분들 각자의 동기와 배경과 어떤 내적 필요 때문에 독립출판, 독립문예지에 참여하게 되었을 것이다.
  문학과 예술의 감동은 갚아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일방적인, 순수한 증여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증여를 둘러싼 일을 한다고 하면서 폭력이나 착취가 발생하는 나쁜 교환을 하면 안 된다. 그것을 거부하는 새로운 관계 설정과 소통 경로의 창출이 지난 몇 년간 독립문학이 추구해온 일이다.
  기존의 구조나 윗사람에게 수용되고 허용되기 위해 조아리던 젊은이들이 또래와 모여 설레고 기뻐하며 세상의 처음 있는 일처럼 책을 만들고 행사를 기획하고 만나 편안히 소통하는 장면들을 접하면, 과연 저간의 변화는 문학장의 소통 경로와 방식을 변경하려는 긍정적 사건들로 보인다. 그런 시도를 하게끔 하는 근본적인 힘은 문학 그 자체일 것이다.
  독립문예지들이 인정투쟁의 각축전을 벌인다는 관점도 접한 적이 있으나, 각축전을 벌일 만큼의 명예나 이권이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대체로는 사실이 아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미소한 독립문예지들은 동류인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태도일 때가 많았다. 이것이 새로운 관계설정이다.
  문학장 전체의 지도를 놓고보면 독립문학의 시도들은 지속성이 없기도 한데, 개별적으로는 숱하게 명멸하며 사라지곤 하지만, 다시금 전체로서는 구조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수평적이어서 밝은 교환(증여)이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오늘 내가 사라지면 내일 네가 눈을 뜨고 깨어나는 방식이다.
  순수증여의 경험을 선사하는 문학, 그 빛과 희열을 바라보며 수많은 지망인과 독립창작인들이 자기 삶의 시간을 바치고 있다. 『베개』는 그들과의 느슨하지만 지속할 결속을 꿈꾸며 버티고 있다. 한국문학의 가능성, 나아갈 길이라면, 위계와 억압 없는 밝은 교환의 문법이 확산되는 방향일 것이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