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소통하는 새로운 경로, 독립출판
들어가며
인간세계에서 ‘소통’이 중요하다는 말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학 상품 생산자가 문학 경험을 조직하는 방식, 다시 말해 창작집단이 대중(독자)과 만나는 방법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그야말로 전통적인 방식에 의존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방식이라고 한다면 쉽게 말해 작가는 작가의 역할을, 출판사는 출판사의 역할을, 서점은 서점의 역할만을 그대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각 영역에서 각자의 역할만을 묵묵히 수행하는 방식은 시시각각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던 출판시장 상황에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매년, 매시기마다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던 출판시장.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던 시기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이 위기의 정점에는 시장의 니즈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한몫을 차지했던 게 아닌가 추정해본다.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충분히 대중에서 문학을 공급할 수 있었던 시절은 오래전에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출판시장은 점점 세분되고 취향은 다양해지고 개별화되었다. 문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혜 자체를 선호하는 경향성도 날이 갈수록 약화되었고,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규모도 점차 축소되었다.
책 이외에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지던 시기와 맞물려 ‘작가는 오로지 글만 쓰면 된다.’라는 마인드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던 일부 등단 작가들을 비롯한 권위 있는 문필가들의 태도는 작가와 대중(독자)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전방위적으로 활발하게 소통하던 작가들 역시 신작이 나온 직후에만 반짝하고 홍보활동을 진행하는 사례가 빈번했고, 홍보활동이 어느 정도 끝났다 싶으면 글을 쓰기 위해서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돌아가 세계와 단절한 채 두문불출하기도 했다. 물론, 2022년 현재까지도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작가들이 적잖게 있을 정도다. 작가에 대해, 작가의 작품 세계에 관해 알고 싶어도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 자체가 드물었고,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작가와의 만남 시간은 시간과 열정을 겸비한 소수의 독자에게만 돌아갔다. 언론을 통한 작가 인터뷰는 수박 겉핥기의 신변잡기 위주의 질의응답으로 이뤄진 경우가 보통이었고, 심도 있는 인터뷰는 상대적으로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문학 상품 생산자가 대중(독자)과 깊이 있게 소통할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문학을 생산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권위의 굴레를 벗어던진 일부 작가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평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움직임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고, 스스로 작가 타이틀을 부여한 집단, 등단이라는 제도권 바깥의 작가군도 가파르게 성장을 거듭했다. 일부 작가들은 전문가로 대변되는 평론가들의 필터링된 견해를 거부하고 독자들(소비자층)의 날 것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자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했다.
문학 상품 생산자의 변화를 목격하다
1995년,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한 김영하 작가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중반까지 젊은 작가의 표상으로 오랜 기간 군림하고 있었다. 필자가 김영하 작가를 처음으로 목격한 건 2007년 겨울, 모 인터넷 서점에서 주최한 장편소설 『퀴즈쇼』 출간 기념 ‘김영하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당첨되었을 때다. 연우소극장에서 조촐하게 열렸던 낭독회에서 김영하 작가는 약 20명 남짓한 독자들을 앞에 두고 사회자도 따로 없이 강렬한 조명 한가운데 무대에서 덩그러니 홀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마치 1인 연극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소설을 선망하며 활자로만 좋아하던 게 전부였는데, 작가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취해 그저 신기했고 들떠 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무래도 필자에게 있어 소위 말하는 문학 상품 생산자와 직접적으로 소통했던 최초의 순간을 상기해보면 자연스럽게 그를 처음 목격한 때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김영하 작가는 역시 젊은 작가답게 2시간도 색다르게 채웠었다. 원래 낭독회로 계획되어 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무대의 주인인 양 여유만만했던 그는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을 처음부터 당황하게 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김영하 작가는 아마도 다음과 비슷하게 말했을 것이다. ‘소설은 집에서 그냥 각자 읽고, 우리는 사는 얘기나 합시다.’라고.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충실하게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소설의 원형이었던 최초의 씨앗, 그가 좋아했던 소설 작품들까지 유려한 말솜씨로 막힘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마지막에는 질의응답 시간까지 충실하게 진행했다. 그 당시 내어놓았던 얘기 중 몇 가지는 몇 년 뒤에 출간되었던 산문집에도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수록된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진정 바람직한 소통의 좋은 예가 아니었을까 싶은 정도로 작가나 독자가 다 만족했던, 밀도가 높았던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로부터 약 10여 년이 흐른 뒤 김영하 작가는 또 한 번의 경계를 넘어섰다. tvN의 예능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시즌1, 시즌3 출연. 그 전에 라디오 방송의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거나 DJ를 맡은 적은 있었지만,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파격적인 행보에 가까웠다. 아무리 시즌제라고 하더라도 소설가가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관찰 예능의 틀 속에서 널리 알려진 달변가답게 김영하 작가는 다른 게스트들과의 방대한 대화를 독자들에게 공개하였다. 기존의 독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예비 독자들 역시 생소한 작가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방송에 나오는 편집본은 검증을 거친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이토록 작가를 친근하게 볼 수 있게 한 방송은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뭔가 은둔할 법한 이미지로 고착되어 있던 전통적인 작가의 이미지를 확 바꿔놓은 예능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문학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상식을 광범위하게 풀어놓으며 순식간에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방송 출연 이후 2019년 출간한 그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는 같은 해 교보문고 선정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실제로 필자는 2022년 국제도서전 첫날 주제강연에서도 질의응답 시간에 한 팬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후 작가님의 거의 모든 작품을 읽게 되었다’며 팬심을 드러냈던 독자의 눈빛을 목격하기도 했다.
김영하 작가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탁월한 게 분명하다. 그의 행보를 보자면 등단한 작가가 대중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전방위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김영하 작가는 2019년 복복서가를 설립, 자신의 지난 작품을 정비한 후 재출간하여 기존 독자와 새로운 독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을 비롯해 작가가 자신의 취향과 안목이 반영된 책, 그러니까 직접 선별한 책의 판권을 확보하여 국내에서 출간하는 등의 공격적인 행보를 꽤 안정감 있게 이어오고 있다. 코로나19가 막 창궐할 때쯤인 2020년 12월부터 SNS를 통해 ‘김영하북클럽’을 런칭한 후 정기적인 라이브 방송을 통해 다수의 독자와 책으로 소통하는 행보를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는데, 김영하북클럽에 선정된 책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당월에 품절이 되는 등 그의 엄청난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21년에는 『자기결정』 『어린이라는 세계』 『완벽한 아이』 등의 선정 도서가 인기를 끈 바 있다.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상위 1퍼센트의 대표적인 작가가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한편으로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조차 힘들었던, 무명으로 존재하는 이들도 있었다. 글을 읽는 사람만큼이나 글을 쓰고 있는, 문학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작가’라는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작가라는 이름의 무게
SNS 프로필은 익명으로 존재하는 다수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드러내는 무의식적인 지표 중 하나일 것이다. 플랫폼에서 제시하는 범주 안에 개인의 욕망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그 언저리 어딘가에 그래도 자신과 유사하거나 혹은 닮고 싶은 무언가를 찾아서 고심한 끝에 용기를 내어 호칭을 선택하거나 이내 소심한 마음에 자신이 갖고 싶은 호칭과 비슷한 무언가를 에둘러 선택하기도 한다.
필자가 SNS의 프로필에 작가라는 두 글자를 쓴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는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는 필자 역시 이상한 편견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스스로 ‘작가’라는 호칭을 부여하는 건 과도한 나르시시즘에 빠진 게 아닐까 하는 의심. 세상 부정적인 시선의 소유자가 바로 필자였다. 필자 역시 작가라는 호칭에 필요 이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작가는 아무나 되나? 근데, 책을 내고 나니 스스로를 소개할 때 ‘작가’만큼 적절한 게 없었다. 성취와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별다른 이력 없는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찾아왔고, 극소수지만 필자를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물론, 필자를 작가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과 사람이 훨씬 더 많겠지만 말이다.) 필자가 대단한 업적을 이룬 거 같아서 작가라는 말을 서슴없이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필자가 되고 싶은 바로 그 사람에 가까워지기 위한 욕망을 한마디로 압축한 외침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삶에서 마지노선이 다 다르다. 필자에게는 작가라는 그 두 글자가 개인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의 상징과 비슷하다. 그 희망을 노래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나를 작가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지 작가는 아니다.’
‘작가라고 불리는 게 민망하다.’ 등등.
많은 작가가 ‘겸손’의 마음을 담은 비슷한 듯 다른 문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필자가 그들의 책을 읽은 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적이 딱히 없다. 필자에게 그들은 언제나 그저 작가일 뿐이다. 필자 역시 사석에서 ‘작가라고 하기에는 아직 멀었죠’, ‘나도 작가긴 작가야. 알아주는 사람이 많진 않지만’과 같은 문장으로 어설프게나마 스스로를 낮추는 연습을 종종 하곤 했다. 그렇지만, ‘쓰는 사람’으로 살고자 결심한 순간부터 마음속에서 ‘작가’라는 단어를 지운 적은 없다.
작가 :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
이렇듯 작가의 사전적 정의는 간단하다. 개인적인 의견을 보태 좀 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문학 작품 등의 무언가를 창작하여 결과물을 ‘생산’해내는 사람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고, 조금 느슨하게 말하자면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라는 호칭이 대중(혹은 평단)으로부터 인정받은 예술적·문학적 성취를 이룬 소수의 사람에게만 허용되던 시대가 길게 이어져 왔다면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미 주목받은 지 오래인 ‘유튜버’ 역시 새로운 직업군으로 분류할 수 있겠으나, 넓은 의미로 바라보면 틀림없는 작가다. 꽤 늦었지만, 한때나마 자기 자신을 작가라고 칭하던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필자의 편협한 시선을 반성한다. 지금은 ‘작가’가 갖는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삶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작가가 아니었던 사람이 과연 있을까. 누군가 혹 타인을 작가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건 자유겠지만, 스스로 작가임을 선언하는 사람에게 불편하거나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그런 사람이 되어보니 더욱 그래서는 안 될 거 같았다.
굳이 작가에 대한 개인적이고 내밀한 견해를 이렇듯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문학 상품 생산자의 최전선에 위치한 작가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졌다는 것을 에둘러 말하고 싶어서였다. 그중에서도 필자와 같은 부류가 있다. 독립출판 제작자, 독립출판 작가, 독립출판 창작자라고 미묘한 뉘앙스 차이로 다르게 불리기도 하지만, 결국 작가라는 이름으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필자는 2019년부터 독립출판으로 책을 쓰고 펴냈지만, 이미 독립출판은 대략 2010년 초반부터 활발하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기성출판에 비하면 규모는 턱없이 작을지 모르겠으나, 그 파급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게 보편적인 견해다. 필자처럼 등단 제도를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작가 타이틀을 부여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심지어 기성 출판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지닌 독립출판 창작자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독립출판과 크라우드 펀딩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름만 들어도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이 두 책의 다른 점은 아무래도 에세이와 소설이라는 장르의 차이일 것이고, 유사한 점은 크라우드 펀딩(텀블벅)을 통해 초반 인기몰이를 했던 것이 기성 출판으로 이어져 큰 성공을 이뤘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의 치료 일기를 담은 에세이로 2018년 2월, ‘텀블벅’에서 최초 공개되어 1,200명이 넘는 예비 독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이 기세를 몰아 독립출판으로 3쇄를 찍은 후에도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았고, 같은 해 다시 한번 정식으로 출판이 진행되었는데 정식 출판 역시 텀블벅을 통해 최초 공개했다. 그리고, 거의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으로 같은 해에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 7위를 기록하였다. 현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은 후속작과 합본판까지 나와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독립출판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유사 장르 범람’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지만, 독립출판의 가능성을 실제 큰 성공으로 일궈낸 대표적인 사례라는 측면에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독립출판 에세이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있다면 소설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있다. 이 책 역시 2019년 10월에 텀블벅에서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로 예비 독자들에게 먼저 공개된 바 있다. 1,000여 명에 육박하는 후원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이 소설책 역시 2020년에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간되었고, 후속작까지 발간되어 누적 100만 부 넘게 팔리는 메가 히트작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이미예 작가는 부산대에서 재료공학을 공부하고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로 입사해 반도체 생산설비 관리를 담당하다가 전세금 대출까지 다 갚은 후에 퇴사하고 전업 작가가 된 후 소설 쓰기에 집중한 케이스이다. 한 번도 등단에 도전하지는 않았지만, 독립출판 강좌를 듣다가 텀블벅을 통한 출판을 권유받았다가 실행에 옮겼고 입소문으로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미예 작가는 ‘리디’가 만난 작가 인터뷰에서 ‘텀블벅’의 목표 대비 1,800퍼센트라는 놀라운 펀딩 성과의 뒤편에는 후원자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피드백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하였다고 했다. 이미예 작가가 소통하려고 애쓴 그들의 정체는 전문적인 리뷰어가 아니다. 즉, 비평 권력과 거리가 먼 평범한 독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문체를 보고 책을 구매하고 싶긴 한데, 소개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예비 독자의 이야기에 미리보기 페이지를 여섯 장 정도를 펀딩 프로젝트 소개 페이지에 바로 올렸다고 한다. 그 이후로 후원자 수가 빠르게 상승하였다고 했다. 이는 독자의 니즈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반영한 구체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미예 작가가 만약 전통적인 문학 상품 생산자였다면 절대 상상할 수도 실행할 수도 없었던 피드백 반영 사례가 아닐는지.
사실상 두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문학의 범주로 넣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독립출판이라는 카테고리의 성과로 볼 때 2018년에 이미 독립출판 창작자 닷텍스트(덕질장려단행본 레이블 『The Kooh』의 편집장)가 텀블벅에서 『검은 사전』 『동이귀괴물집』이라는 프로젝트를 연달아 선보여 각각 139,121,000원과 145,376,000원이라는 억대 후원 금액이라는 기록을 세운 바 있으니까. 닷텍스트는 텀블벅에서 지금까지 총 열아홉 개의 프로젝트를 선보였는데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섯 개의 프로젝트를 제외하고 모두 천만 원을 훌쩍 상회하는 후원 금액을 달성했다. 가히 가공할 만한 기록이다. 닷텍스트의 성과가 더 돋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많은 프로젝트를 기성 출판에 원고를 투고하는 방식으로만 도전했다면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사장되었을 확률이 농후하다는 것. 기성 출판의 특성상 특이하고 마니악한 기획보다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성격의 프로젝트에 우선 순위를 둬서 투자를 했을 테니까 말이다. 필자가 최근 조우했던 독립출판 창작자 이스안 작가는 창업 전 초창기에 스무여 개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작품성은 있어 보이지만, 시장성이 없어 보인다’는 비슷한 이유로 수차례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스안 대표는 이에 굴하지 않고 ‘토이필북스’라는 1인 독립출판사를 차리고 자신만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책들을 지속해서 발행하고 있으며, 2022년 현재까지 거의 30종에 육박하는 책을 쓰고 펴냈다. 이스안 작가 역시 텀블벅을 통해 제작비를 마련한 적이 있다.
크라우드 펀딩 텀블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들의 가능성을 직관적으로 간단하게 해석하자면 콘텐츠를 직접 접하고 판단한 예비 독자들의 입소문이 출판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사실이다. 문학 상품 생산자가 선보일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콘텐츠가 나올 수 있게 창작자를 물심양면으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창작자 역시 투고를 통해 한차례 검증해서 시장에 내놓는 것보다 직접 예비 독자와 소통하겠다는 의지와 성실이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텀블벅 공식 홈페이지 보도자료에서1 염재승 텀블벅 대표는 “과거에는 데뷔 혹은 등단을 위해서는 대형 플랫폼에 탑승해야 했지만, 이제는 독립적으로 연재하던 창작자들도 텀블벅을 통해 유저와 접점을 만들고,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앞으로 텀블벅도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창작자들이 더욱 쉽고, 편하게 자신의 창작물을 알릴 수 있도록 서비스 고도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학 상품 생산자와 대중의 직접적인 소통이 이뤄지는 플랫폼이 자리를 잡았고, 그러한 교류가 곧 돈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독자와 오프라인으로 소통하기, 북페어
전통적인 문학 상품 생산자가 기성출판(작가, 서점, 출판사) 영역이라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충분히 반영하는 문학 상품 생산에 앞서 말한 독립출판 창작자가 있다. 기성출판에 비해 좀 더 개인적인 문제에 몰두하는 성향이 짙은 독립출판 창작자는 그야말로 여러 채널을 이용해 스스로를 플랫폼화하는 경향을 가장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는 문학 상품 생산자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직장을 다니던 시절, 대표의 버킷 리스트인 ‘자신의 저서 출판하기’의 전 과정을 책임졌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독립출판이라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였고, 독립출판 창작자가 다수 모인 ‘북페어’라는 형식의 장이 곧잘 열린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필자가 처음으로 독립출판으로 출간된 책들을 처음으로 직접 목격했던 것은 2019년, 2월에 열렸던 제1회 커넥티드북페어다. 날씨가 꽤 추웠던 날, 세운상가 중정과 세운홀에서 열렸던 독립출판 북마켓 행사. 필자에게 북페어의 첫 기억은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선 페어의 규모였다. 무려 120여 팀이 넘는 창작자들이 본인들의 부스를 정성스럽게 꾸며 자신의 창작물을 사줄 예비 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작자를 ‘셀러’라고 지칭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북페어에서는 작가가 역할을 변경하여 만든 콘텐츠를 스스로 직접 파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독립출판 제작자가 다양한 역할을 혼자 소화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간 상태이긴 했지만, 창작물을 직접 팔고 있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좀 더 자세히 그때 그 장면을 묘사하자면 이렇다. 필자가 관심이 가는 책 앞에 서서 책을 펼쳐 들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 책을 쓴 창작자가 필자의 눈치를 보다가 괜찮다 싶으면 어떤 이유로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지,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등에 대해서 풀어놓기 시작했다. 리액션이 조금 우호적이다 싶으면 더 신나서 책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러다 책에 조금 집중하는가 싶으면 다시 조용해졌다. 책을 자세히 봐줬으면 바람과 배려가 뒤섞인 행동이었다. 대체로 이러한 행동 패턴이 반복되었다. 어쨌거나 필자가 책을 보는 동안 그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는 창작자. 작가와 독자가 이렇듯 묘한 긴장감 속에서 대치하고 있는 모습은 기성 출판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희귀한 광경일 것이다. 그 뒤로 더 큰 규모의 북페어에 가보기도 했고, 필자 역시 독립출판 제작자가 되어 셀러가 되기도 했다.
셀러가 되어 여러 북페어에 참여하면서 가장 보람 있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던 것은 역시 독자와의 소통이었다. 책에 대해서 정성스럽게 소개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다 흡수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 책 한 권 주세요’라며 무명 작가의 책을 망설임 없이 사는 독자도 여럿 있었다. 처음 만들었던 서명을 해주며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라고 말을 건네고 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이에 반해 아무리 간절하게 설명하더라도 그저 씩 웃으며 자리는 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창작자가 만든 세계를 독자에게 고스란히 이전시키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아무튼, 창작자가 직접 셀러가 되어 독자를 최전선에서 직접 만나는 북페어의 문화는 독립출판의 특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북페어에서 독자였던 자가 ‘나도 한번 책 써 볼까?’라고 다짐하며 독립출판 제작자로 변신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할 정도로 깊은 소통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다년간 북페어를 겪다 보니 또 좋은 점은 독립출판 씬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진 제작자들을 역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에세이를 쓰는 가랑비메이커 작가, 김현경 작가, 손현녕 작가, 오수영 작가, 최유수 작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는 강민선 작가, 김봉철 작가, 김종완 작가, 오종길 작가, 우세계 작가 등등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자신만의 독립출판 스타작가들을 북페어에만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올해 중하반기부터 코로나가 어느 정도 사그라들면서 지난 2년간 난항을 겪었던 독립출판 북페어들이 앞다투어 열렸다.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퍼블리셔스 테이블, 리틀프레스 페어, 커넥티드 북페어, 제주 북페어 등 특색 있는 네이밍의 여러 북페어를 비롯해 지역 독립서점이나 지역 문화재단과 연계한 작은 북마켓까지 전국적으로 열리는 행사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북페어는 창작자들과 예비 창작자들, 예비 독자들이 오프라인에서 서로 깊게 교류하는 소통의 산실이다. 이러한 흐름은 당분간 계속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제도서전에서도 독립출판 부스가 따로 마련되었는데 폭발적인 대중의 관심으로 문전성시를 이뤄, 굴지의 유명 출판사 못지않게 큰 관심과 사랑을 누렸다. 어떤 부스는 거의 1년에 걸쳐 판매될 만큼의 부수를 3, 4일만에 다 팔아서 소진했다는 소식을 SNS에 알리기도 했다. 인기를 의심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독자와 온라인으로 소통하기, 구독 서비스
오프라인에 북페어가 있다면 온라인은 구독 서비스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은 독립출판 창작자들이 실행하고 있는 흔한 방법의 하나로 여겨질 수 있으나, 이 방식이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해도 성공 여부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혁신적인 소통의 형태였다. 2018년 2월, 이슬아 작가는 2,500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이 구독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동료 만화가가 뼈대가 될 수 있는 최초의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이슬아 작가는 ‘일간 이슬아’라는 타이틀의 구독 서비스를 고안했다. 이 서비스의 골자는 간단하다. 이슬아 작가 자신의 글을 원하는 독자에게 이메일로 보내주는 것. 월, 화, 수, 목, 금 일주일에 다섯 번, 한 달에 스무 번의 글을 보내는 대가로 구독료 만 원을 받는 것이다. 매일 밤 정해진 시간에 메일이 전송되는 시스템. 이슬아 작가는 한 달에 무려 스무 번의 마감을 지켜내는 방식으로 글을 생산해낸 것이다. 출판사나 매체를 통하지 않고 작가의 따끈따끈한 글을 글값을 미리 지불한 독자들에게 누구나 쓸 수 있는 메일로 보내는 방식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이자 시장이었고, 이렇듯 새로운 글의 생산이나 소비 형태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하였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무엇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달에 스무 번의 마감을 지켜낸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결국 〈일간 이슬아〉는 상업적으로도 초대박을 친 성공적인 사례로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다. 생각해 보면 보통 한 권의 단행본 책이 만원에서 2만 원 사이임을 고려할 때, 월 만 원의 구독료는 결코 저렴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누군가에게는 1편당 500원이라는 금액이 또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소액일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들은 이 패기 넘치는 도전에 열렬한 반응을 보여줬고, 많은 독자가 지속해서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했다. 매일의 성실한 글쓰기의 결과물인 글들을 묶어 추후 작가 자신이 설립한 헤엄출판사에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필자 역시 제주의 한 동네서점에서 이 책을 목격한 바 있는데 572페이지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에 놀란 적이 있다.
지금은 많은 네임드 독립출판 작가들뿐만 아니라 처음 독립출판을 시작하는 작가들 역시 이 방식을 많이 활용한다. 많은 창작자가 주로 에세이를 연재하지만, 드물게 소설을 연재하는 창작자들이 필자의 시선을 붙잡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 방식은 자신의 글이 어떤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을지 수요를 예측해 볼 수 있고, 구독료를 책정한다면(팬을 유입시키기 위해 무료로 글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경제적으로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며, 예비 독자들의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추후 구독 서비스가 끝나면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제작할 경우, 이미 구독했던 독자들의 일부는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책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책으로 소장하고 싶은 수집 욕구를 자극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쩌면 구독 서비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면서 독립출판 창작자들이 자신의 창작물을 대중들에게 지속해서 선보일 수 있게 하는, 효과적인 소통 방식의 하나일 수도 있으리라.
독립서점의 급성장
독립출판 창작자들이 북페어와 구독 서비스를 통해서 다수의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에 앞서 창작자들의 콘텐츠 판매를 대행해줄 플랫폼이 필요했는데, 바로 독립서점이다. 2010년 초반을 기점으로 전국에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독립서점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는 전국에 칠백여 개가 넘는 독립서점이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서울와 경기도에 수적으로 압도적이긴 하지만, 지역별 독립서점 분포를 살펴보면 전국적인 규모라고 보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긴 하다. (상대적으로 창업이 쉬운 만큼 폐업하는 독립서점도 종종 눈에 띄어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다만, 요즘엔 순수하게 독립출판물만을 취급하는 서점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건물주가 아닌 이상 대부분 영세한 규모인 경우가 많아서 월세를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므로 독립서적뿐만 아니라 기성 출판과 함께 서가를 꾸리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무명 독립작가들을 독자와 만나게 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몇 해 전부터 독립출판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커지면서 기성 출판에서도 ‘동네서점 에디션’으로 다른 표지의 디자인으로 독립서점에 책을 공급하고 있는 형국이다. 김영하 작가, 문보영 시인, 박준 시인, 신형철 평론가, 이병률 작가, 이슬아 작가, 한강 작가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형 작가들의 책이 동네서점 에디션으로 동시 출간되기도 했다.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문학동네에서는 동네서점의 서점지기를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해 선정된 소설들을 엮어 ‘동네서점 베스트셀러 컬렉션’이라는 작품집 시리즈를 발간하기도 했다. (동네서점 베스트셀러 컬렉션 소설집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투표에 참여한 동네서점 리스트까지 실려 있어 간접적인 홍보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다양해진 동네서점 에디션 책들은 대형서점에서는 구매할 수 없고, 독립서점을 포함한 동네서점에 가야만 구매할 수 있다. 독자들은 뜨거운 반응으로 화답했다. 이러한 방식은 기성 출판과 동네서점의 상생을 추구하는 방식의 좋은 기획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작은 규모의 독립서점은 책 판매만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다. 독립출판 서적을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에세이/소설 쓰기 클래스, 시 낭독회, 독서 모임 등 다양한 행사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복합문화 소비장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의 취향은 광범위하고 다양한데 이를 충족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독립서점인 것이다. 자본과 규모로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서점과는 결이 다른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으면서 소감으로 인용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명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독립서점은 ‘가장 개인적인 대중의 취향을 가장 섬세하게 만족시키고 있는 역할을 한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수원 망포에 위치한 작은 독립서점 ‘서른책방’에서 소설 쓰기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등단한 적은 없지만, 독립출판으로 세 권의 소설집을 냈을 뿐인데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평생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것도 문예창작학과나 국어국문학과를 나오지도 않는 필자가 소설 쓰기 클래스를 2년째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 클래스를 진행하는 가장 큰 목적은 ‘내가 무슨 소설을 써?’라고 두려워하고 있는 일반 대중들에게 ‘나도 한번 소설 써볼까?’라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클래스를 통해 쓴 수강생들의 소설을 묶어 앤솔러지 소설집도 출간하기 때문에 작가가 되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자신의 책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독립출판 창작자인 강사를 보며 독자들이 창작 당사자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독립출판의 특성상 작가와 독자의 거리가 무척 가까운 편이다. 작가와 직접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대형 작가들보다는 독립출판 작가와 소소한 교류가 더 인상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오며
아무래도 필자가 독립출판으로 문학 상품을 생산한 당사자다 보니 독립출판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했던 것이 사실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독립출판의 장점이 더 부각되고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독립출판 생태계에서 작가가 독자가 되고, 독자가 작가가 되는 선순환의 소통 사례는 매시기 불황과 싸우고 있는 출판업계가 참고해야 할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쨌거나, 문학 상품 생산자의 중심에 서 있는 작가들은 예전과 달리 더 많은 플랫폼에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한 김영하 작가와는 어쩌면 이유는 다를 수 있다. 사실상 등단한 많은 작가들조차 청탁을 받아서 원고를 마감하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워 별개의 직업을 갖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물며 독립출판 창작자는 오죽할까. 더 많이 알려야 하는 작가의 노력. 대중과 통하기 위한 그 노력은 기성 출판과 독립출판의 구분과 상관없이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가 된 것이다. 문학 상품 생산자들은 대중으로부터 잊히지 않기 위해서 지속적인 소통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작품에 대한 날카로운 피드백이 담긴 댓글을 작품에 반영하는 방식, 그 어떤 방식보다 적극적인 소통으로 독자와 함께 작품을 완성하는 ‘웹소설’ 분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시대가 점점 빠르게 변하고 문학 상품도 다양해지고 있고, 소통의 방식도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필자가 앞서 언급한 여러 소통의 예 역시 언젠가 수명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방식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그렇듯 새로운 방법을 찾을 것이다. 문학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 역사 속에서 유구하게 살아 숨 쉬고 있고, 앞으로도 다수의 창의적인 생산자들에 의해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