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소녀
허투루 들었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흘려들었다. 삼짇날 흰나비 보면 상복 입고 호랑나비, 노랑나비 보면 웃을 일 생긴다. 외할머니는 장독대에서 독을 닦다 치맛자락에 앉은 흰나비를 쫓으며 말했다. 벌써 나비가 있네요, 사월인데. 날이 덥긴 덥네요. 내 키만 한 독에 붉은 고추장을 퍼 담은 외숙모는 붉은 물로 더럽혀진 앞치마를 벗고 새 앞치마를 둘렀다. 구름에 헹군 것처럼 희고 빳빳했다. 누가 본다고. 외할머니는 앞치마 허리끈을 묶고 있는 외숙모를 못마땅한 듯 쳐다봤다. 누가 봐야 하나요? 제 천성이 그런걸. 고와, 고와서 그러지, 더 늦기 전에 내 니를 쫓아내야 할 텐데. 가라, 가. 할머니는 툭하면 외숙모를 쫓아낸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지르는 목청에 내 손을 피해 장독을 타 넘던 흰나비가 바람 속으로 달아났다. 나는 조청 묻은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그럼, 흰나비 봤을 때 얼른 눈 가리고, 민들레 번지는 들판으로 호랑나비 노랑나비 찾으러 가야 하나. 나는 나비 흉내를 내며 할머니 앞에서 팔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뱀 밟지 마라.”
할머니가 물앵두나무 그늘진 우물가에서 고춧물 든 붉은 손을 씻으며 하는 말을 허투루 들었다. 그래서 뱀을 밟았다, 뒤란 장독대에 핀 진달래를 꺾다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은 기지개를 켜듯 녹색 몸을 일자로 늘렸다. 홀쭉하고 가느다랬다, 파처럼. 무심결에 밟았다. 꾹. 물컹하면서도 단단한 야릇한 감촉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어어, 할머니. 나 뱀 밟았어.”
꿈틀거리던 녹색 뱀은 흙을 누르며 꽃나무 그늘로 사라졌다. 할머니는 내 발목을 잡고 이리저리 돌리며 살폈다. 그르게 새겨듣지그랬어. 할머니, 뱀을 밟으면 어떻게 되나? 어?
할머니는 대답 없이 주먹으로 허리를 두들기며 먼 하늘에 몰려 있는 구름의 위치를 가늠했다.
외할머니는 장독의 낡은 덮개를 죄 벗겼다. 독에 빠질 듯 허리를 숙이고 독 안에서 하얗게 굳은 소금을 걷어내고 검은 액체를 국자로 펐다. 니 시할머니 되는 양반이 지은 간장이다. 요건 재작년 니랑 같이 해 담은 더덕장아찌네, 이거 빨리 먹어 치워야 하는데. 이게 니 서방 군에 가던 해 담근 고추장, 그때 입이 써 조청을 많이 넣었더니 달아. 할머니는 숟가락으로 검은 흙을 퍼내듯 퍼 옆에 밀쳐두고 안쪽에서 붉은 고추장을 떠 외숙모에게 내밀었다. 외숙모는 검지로 간장, 고추장을 콕콕 찍어 먹었다. 깊네요, 색이 고와요, 진하네요, 다디달아요, 했다. 간장, 묵은 고추장, 된장, 막장, 짠지, 젓갈 등 각각 독에서 올라온 곰삭은 내가 장독대를 묵직하게 떠돌았다.
외할머니와 외숙모는 크고 작은 스무 개 남짓한 독에 새로 만든 옥양목 덮개를 덮고 무명실로 묶었다. 외숙모는 독 뚜껑을 독에 비스듬히 세워뒀다. 옥양목을 싸맨 장독이 흰 앞치마를 두른 외숙모처럼 단정했다.
할머니는 장독대 설거지를 한 후 아랫목에 엎드렸다. 나에게 허리를 밟으라고 했다. 할머니 허리는 나무 도마처럼 딱딱했고 편평했다. 나는 손바닥으로 벽을 짚고 등허리 위로 올라섰다. 할머니는 고춧물이 가시지 않은 손을 이마에 대고 엎드렸다.
할머니, 나 외탁했나? 그런 것 같아, 근데 왜? 그럼, 나도 일찍 죽나? 뭐? 누가 그래?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어? 골말 사람들이. 다들 일찍 죽어서 각성바지 여자 셋만 남았다고 했어. 각성바지가 뭐야? 할머니는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가능한 힘을 빼고 밟다가 중심을 잘못 잡아 할머니 팔을 밟았다. 꾸욱. 순간, 뱀을 밟았던 감촉이 되살아났다.
그날 밤 내 얼굴에 열꽃이 피어올랐고 홍역을 앓았다. 꿈에 흰나비를 봤다. 상복을 입은 나는 흰나비를 잡아 내 머리에 핀처럼 꽂았다. 할머니는 삼짇날 고추장을 담가놓고 열흘 후에 돌아가셨다. 깨끗한 옥양목처럼 말끔하게 아픈 곳 없이 앓지도 않고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산벚나무에 꽃잎이 펼쳐지던 때였다.
소녀는 파란색 플라스틱 들통을 들고 바닷물 빠진 갯벌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통을 들고나왔다. 한쪽 어깨가 기울어져 보기에도 무거워 보였다. 소녀는 들통 밑을 잡아 내 곁에 놓인 빨간 고무 함지에 들이부었다. 들통 안에 들어 있던 우럭, 도다리, 돔. 물고기가 쏟아졌다. 물고기가 펄떡거려 물방울이 튀었다. 넋 놓고 웅크려 앉아 있던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이게 다 뭐니? 갯벌 흙이 묻은 물고기는 함지 안을 이리저리 돌았지만 몇 마리는 검은 돌처럼 바닥에 가라앉았다. 물고기예요. 아침에 외지 사람들이 방생하고 간 게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다시 밀려온 거예요. 같이 좀 가보실래요?
소녀는 함지에 뜰채를 넣고 휘젓다 물고기를 건져 갯벌 바닥에 꺼내놓았다. 다섯 마리는 너끈히 찾으실 수 있을 텐데요. 오늘은 물때가 기막히게 잘 맞았어요. 아니, 난 괜찮아. 흙바닥에 꺼내놓은 물고기 한 마리는 이미 죽었고 다른 한 마리는 아가미를 달싹거리며 죽어가는 물고기였다. 소녀는 대수롭지 않게 청색 장화 발로 물고기를 함지 그늘로 쓰윽 밀어두었다. 맨손으로 함지에서 검은 물고기를 한 마리 잡았다. 물고기는 제법 활기차게 펄떡거렸다. 이것 봐요, 이렇게 고르게 점무늬가 있고 색이 검은 우럭은 양식이에요. 바다에서 살았던 애들은 지느러미도 거칠고 파도에 휩쓸려 색이 빠지거든요. 물에 휩쓸려오지도 않아요, 자연산은 값도 두 배로 쳐줘요. 이번엔 전부 양식이네.
소녀는 양손으로 잡은 물고기 몸통을 쓰다듬고 조심스레 함지에 담았다. 이렇게 잡은 물고기를 활어차가 와서 가져간다고 했다.
“오늘 저녁에는 우럭구이 해드릴게요.”
소녀는 파란 들통을 들고 다시 갯벌로 내려갔다. 함지 그늘에 있던 물고기가 파닥거리며 몸통을 뒤집었다. 소녀는 이걸 구워주겠다는 거였다. 흙바닥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물고기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몸도 뒤틀리는 것 같았다.
바닷길을 걸어 지금은 뭍과 연결된 암자를 향해 걸어갔다. 물이 빠진 곳에 빨간 보트가 묶여 있었다. 암자는 공사 중이었다. 알루미늄 비계가 설치되었고 공사를 알리는 안내판에는 요사채 석축 보수공사 일정이 적혀 있었다.
다행히 암자는 개방되었다. 나지막한 돌계단 몇 개를 올라 일주문을 지나자 눈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암자에서 보이는 바다에는 수위가 낮아도 물이 차 있었다. 바다와의 경계 난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 기둥이 서 있었다. 나무 기둥에는 부처 얼굴과 좌상이 그려져 있었다. 나무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줄이 연결되어 있었고 줄에는 빨강, 노랑, 녹색, 파란색 작은 등이 달려 있었다. 소원을 빼곡하게 적은 등이 바다를 향해 바람에 흔들렸다. 용왕각 앞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이곳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을 거였다. 외숙모, 제가 너무 늦게 왔어요.
할머니 묘는 외가 뒤에 있는 선산 외할아버지 묘 바로 곁자리였다. 외가 선산에는 꼭대기에서부터 차례차례 두 개씩 묘가 나란히 있었다. 외삼촌 묘만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마치 죽은 자들끼리 숨바꼭질하는 것 같았다. 2명씩 웅크려 숨어 있고 외삼촌은 술래.
외숙모도 나중에 삼촌 곁에 묻히나요. 속으로만 생각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외숙모는 묘를 손짓했다.
“네 외삼촌이 얼른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 나 혼자 두고 가버린 사람, 오래 기다려보래지.”
그때까지는 외숙모가 젊은 나이에 죽은 남편에 대해 애틋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여겼다. 실제로 외숙모는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말을 걸듯 혼잣말을 했다.
“비가 오네요, 모란이 지고 나니 작약이 폈네요, 저는 작약을 더 좋아합니다만.”
외숙모는 연분홍 작약 앞에 웅크리고 앉아 커다란 꽃송이에 코를 비비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어린 내 눈에도 연분홍 작약처럼 고왔다.
‘고와, 고와서 그러지, 더 늦기 전에 내 니를 쫓아내야 할 텐데. 가라, 가.’
장독대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난 할머니가 냅다 소릴 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외숙모 곁으로 가 무릎을 접고 앉았다. 작약 꽃잎을 손으로 비볐다.
“나 혼자 두고 가지 말아요.”
외가에 외숙모와 나만 남았다. 외가 뒤 선산에 외가 어른들이 웅크리고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했다. 그렇지만 외숙모가 켜두었던 라디오를 끄면 산부엉이가 기괴한 소리로 울었다. 세 칸 사랑채와 바깥채 문이 동시에 덜컹거렸다. 마른 나뭇잎이 바람에 뒤집히는 소리가 크게 바스락거렸다. 검은 물체가 안채 마당으로 들어와 저벅저벅 나뭇잎을 밟는 것처럼 여겨졌다. 비라도 내리면 산 여기저기서 만들어진 물줄기로 밤새도록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면 나는 붙어 있는 두 개의 묘처럼 외숙모 곁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외숙모, 무서워요.”
“괜찮아, 한잠 자고 나면 아침이란다.”
“그건 그래요.”
외숙모 말처럼 아침이면 부엉이 울음 대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밤새 바스락거리며 두렵게 만들었던 마당의 낙엽에도 빛이 바글거렸다.
우리는 대청마루에 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분합문을 걸쇠로 고정시켜놓는 여름이면 저수지까지 내려다보였다.
“저수지에서 연기가 올라와요.”
“물안개란다.”
“산에서도 연기가 내려와요.”
“그것도 안개야, 산안개.”
외숙모는 대청마루 끝에 앉아 숱이 많은 내 머리카락 가운데를 양쪽으로 갈랐다. 머리카락을 꼭꼭 누르며 양 갈래로 땋아주었다.
책가방을 메고 외숙모와 함께 계곡 따라 산길을 내려갔다. 마을회관 마당에는 피아노학원 봉고차가 시동을 건 채 기다렸다. 골말에 사는 아이들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학교로 갔다. 외숙모는 마을회관에서 그날그날 일거리를 찾았다. 상추밭, 딸기 비닐하우스, 감자밭, 블루베리 농장, 버섯농장. 그것도 저것도 없으면 할머니들을 따라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산더덕이나 두릅, 도라지를 찾아 나무 밑을 뒤적거렸고 파헤쳤다.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피아노학원으로 갔다. 학원에는 피아노가 두 대밖에 없었다.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원탁에 앉아 숙제를 했다. 원탁은 크레용 자국으로 얼룩덜룩했다. 옷소매를 접고 조심해도 어딘가에서 얼룩이 묻어 더러워졌다. 피아노학원 봉고차를 타고 마을회관으로 돌아가면 외숙모가 산나물을 다듬으며, 더덕 껍질을 벗기며 기다리고 있었다. 간혹 외숙모가 농산물 경매장에 간 날이면 마을회관에서 기다렸다.
마을회관 안 경로당에는 늘 화투판이 벌어졌다. 정작 경로당에 있어야 할 할머니들은 산으로, 밭으로 갔다. 화투 패거리들은 할머니라 부르기엔 조금 애매했다. 나를 보면 화투패를 돌리며 정가네 외손녀네,라고 말했다. 번갈아 돌아보며 소곤거렸다. 한마디씩 말을 보탰다. 열린 문틈으로 그들이 내 얘기를 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다 들렸다.
애초에 나는 인사성이 아주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화투 패거리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는 대놓고 눈이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았다. 그날도 열린 문틈으로 그들이 나를 힐긋거리며 쳐다보았다. 그걸 알고도 나는 그들이 보이는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뻣뻣해, 지 엄마도 그랬잖아, 까무러친 산모를 들쳐업고 시내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가망이 없었대, 배를 가르고 꺼냈잖아. 나를 낳다 죽은 엄마 얘기를 했다. 그르게 왜 산에 집터를 잡아가지구선, 죽은 사람한테나 명당이지, 산 사람들에겐 귀신 붙은 집턴데, 기화도 참 딱해, 나 같으면 버리고, 착해 그래, 너무 예쁘지 곱고, 농산물 경매 담당 총각이, 기화를, 눈만 맞았겠어, 배도 맞춰보고, 그럼 가야지, 피붙이도 아니고, 대가 끊겼어, 산 밑 집을 누가 사, 산에는 죄 정가네 귀신들이.
나는 문을 밀치고 들어가 화투판을 뒤엎고 싶은 충동을 누르느라 손톱이 손바닥 살을 파고들었다. 당신들은 뭐 그렇습니까, 남의 일에 무슨 관심이 그리 많습니까, 당신들은 잘살고 있습니까, 왜 매일 경로당에서 대낮부터 화투를 칩니까.
“안녕들 하세요?”
외숙모가 마을회관으로 들어서며 누가 있는지 확인도 안 하고 인사부터 했다. 화투 패거리 중 한 명이 일어나 외숙모 손을 잡고 쓰다듬었다. 공판장 다녀왔어? 기화 새댁은 언제 봐도 사근사근해, 얼굴도 예쁜데. 그러곤 나를 돌아보았다.
“아이고 많이 컸네? 아장아장 걷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마치 이제야 나를 본 듯 알은체를 했다. 그들 중 한 명이 화투판을 들었다 밑에 깔린 지폐 만 원짜리 한 장을 집어 나에게 줬다.
“옜다, 과자 사 먹어라.”
그 지폐 한 장이면 피아노학원 1층 분식점에서 떡볶이랑 만두를 세 번은 사 먹을 수 있었다. 만화책을 실컷 빌려볼 수도 있었다. 나는 벽에서 등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지폐를 든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을 노려보았다. 받아, 받고 고맙습니다, 해야지. 당황한 외숙모가 대신 지폐를 받아들었다.
푸성귀를 담은 천 가방을 든 외숙모가 화가 난 듯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나는 홀쭉해진 배와 입술을 내밀며 뒤따라 걸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조금 더 올라가자 계곡이 보였다. 앞서 걷던 외숙모가 걸음을 멈추고 내가 올라오길 기다렸다.
“왜 그랬니?” 나는 대답하지 않고 가방끈을 만지작거렸다.
“왜 그랬어?” 외숙모가 가방을 들지 않은 손으로 내 팔을 잡고 흔들었다.
“외숙모 오지 않았을 때, 우리 흉봤어요. 귀신 붙은 집이라고, 엄마 흉도 보고, 경매 총각이랑 외숙모 배가 맞아 떠날 거랬어요.”
외숙모는 푸성귀가 든 가방을 바닥에 풀썩 내려놓았다. 그래, 뭔가, 있을 줄 알았어. 우리가 이런 일도 겪는구나. 그래도 돈은 받지그랬어. 외숙모는 무릎을 접고 앉아 눈에 맺힌 눈물이 넘치지 않게 하려 이를 악물고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흙에 손바닥을 짚고 풀숲을 뒤적거리다 제법 큰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었다. 지폐로 돌멩이를 감쌌다. 옜다, 화투판에서 굴러먹던 돈 나도 싫다. 돌멩이 싼 지폐를 계곡에 냅다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고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은 꺼칠꺼칠한 외숙모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할머니가 담근 고추장을 퍼먹으며 자랐다. 부엉이 울음소리를 무서워하던 일곱 살 소녀가 열한 살, 열일곱 살이 되어 외가를 떠날 때까지도.
“외숙모, 장독대 고추장 독, 버리지 마세요.”
새색시였던 외숙모는 내가 숙모 키를 훌쩍 넘게 자라도록 여전히 단정했다.
“나도 여길 떠날 거야.”
외삼촌은요? 언제 돌아오실 거죠? 나는 묻지 않았다. 물을 수가 없었다. 농산물 경매 담당 총각은 추수 때면 쌀 한 가마니를 짊어지고 왔다. 별채 앞마당까지 트럭을 몰고 왔다. 내가 열일곱 살이 되도록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경매 삼촌, 경매 총각이라 불렀다. 작은 키에 몸이 왜소한 그는 뭔가를 가져올 때면 늘 땀을 흘렸다.
김장철에는 배추와 무, 고춧가루를 가져다주었다. 여름 감자, 옥수수, 사과, 밤. 외숙모가 손짓하는 곳에 가져온 걸 부려놓고 마루에 앉은 내 곁에 앉았다. 소매를 끌어당겨 젖은 이마를 닦으며 그는 내게 말을 걸거나 질문을 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은 듣기만 했고 질문에는 네, 아니오, 짧게 답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외숙모는 유독 경매 총각한테는 쌀쌀맞게 굴었다. 곁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의혹 가득한 시선으로 외숙모를 관찰했다. 경매 총각이 올 때면 나는 마루에 나가 앉아 있었다.
외숙모도 떠나겠다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외숙모는 내 짐을 싸다가 손을 멈추고 뒤돌아 산의 어느 지점을 가늠하다 손짓했다. 자신이 죽으면 저기 묻지 말고 불에 태운 후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다. 왜요?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물을 수 없었다. 대신 엉뚱한 질문을 했다.
“뜨겁지 않을까요?”
“뜨겁겠지. 그래도 바다를 떠다니고 싶어.”
외숙모는 서쪽 바다에 어떤 절이 있는데 만월이면 암자와 뭍 사이로 바다가 들어와 암자가 바다에 솟아나는 것 같다고 했다. 그곳에서 공양주 일을 할 것이라 했다.
‘달이 뜨면 솟아나는 절.’
‘환상이네.’
나는 믿지 않았다. 허투루 들었다.
외가는 빈집이 되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외할아버지의 아버지, 내가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 묘가 있는 선산 앞 산중의 검은 기와집. 가계의 내력을 알 순 없지만 대대로 단명했다. 대청마루에 앉으면 저수지가 보이고 산안개가 여름 마당을 적시는 빈집을 나는 가끔 떠올렸다.
초여름이었다. 기술고등학교 운동장 담 밑 수돗가에서 손을 씻다가 화단에서 커다란 꽃잎을 활짝 펼치고 있는 연분홍 작약을 보았다. 곧바로 외가 뒤란의 작약과 작약에 코를 비비던 외숙모가 떠올랐다. 목을 꺾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쪽 허공이 외가가 있는 방향인지 알 수 없었다. 충동적으로 세수를 했다. 뺨에서 물이 흘러 턱과 목덜미를 적신 줄도 모르고 작약 앞에 무릎을 접고 앉았다. 그리운 것을 대하듯 두 손으로 작약 꽃받침을 받쳐 들었다. 노란 수술을 들여다보며 코를 대고 은은하게 번지는 향을 들이마셨다.
차륵차륵. 물소리가 들려 고개를 듦과 동시에 내 얼굴과 목덜미, 어깨에 물줄기가 쏟아졌다. 나는 화단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돗가에 용접 보안 헬멧을 쓴 남학생이 손을 씻고 있었다. 보진 않았지만 그가 손으로 수도 구멍을 막아 물줄기가 나를 겨냥하도록 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남학생 앞에 섰다.
“저기요. 젖었거든요?”
키가 큰 남학생이 용접 보안 헬멧 앞 유리를 걷어 올리고 헬멧을 벗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그는 나를, 어깨와 교복 셔츠가 젖어 달라붙은 가슴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젖었구나. 너, 일 학년이지?”
“아, 네. 선배님.”
나는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잊고 고개를 숙였다. 선후배 위계질서가 엄격했고 학생들 사이 폭력과 다툼이 잦은 학교였다.
“그래, 일 학년. 잘 말려라. 여름 감기가 무서우니.”
그는 용접 보안 헬멧을 쓰며 휙 돌아서서 걸어갔다. 그의 몸을 닮은 가늘고 긴 그림자가 여름 운동장을 할퀴며 따라갔다. 남은 점심시간 내내 운동장 햇빛 속에 서 있었다. 컴퓨터 수업을 듣기 위해 컴퓨터실에 갔을 때야 젖은 셔츠가 거의 말라갔다. 지정석에 앉아 워드 프로그램을 켜놓고 제시된 서류를 옮기고 있을 때, 비어 있던 내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수돗가에서 만난 남학생이었다. 옷 잘 말랐구나, 난 석영이야. 선배인 줄 알았는데 같은 학년이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같은 교실에 있으면 자주 눈이 맞았다.
정보처리과인 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였고 산업설비과인 그는 자전거를 타고 통학했다. 철공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철공소 안쪽에 딸린 집에서 단둘이 살았다. 기술고등학교 학생들 대부분은 억지로 학교를 다녔다. 다니기 싫은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다니기 싫은데 인문계 고등학교 떨어져서, 다니기 싫은데 돈을 벌어야 하니깐, 취업해야 하니깐. 우리는 좀 달랐다. 석영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할아버지 철공소에서 쇳가루를 가지고 놀았다. 그는 선반 작업, 밀링, 드릴링 작업을 신나게 배웠다. 유리, 알곤, 특수용접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오래된 기와집에서 장독대에 떨어진 벚꽃 수를 세며 외로운 시간을 보냈던 나는 4명이 함께 방을 쓰는 것이 좋았다. 심플한 철제 프레임 침대에 장날 시장에서 산 자잘한 꽃무늬 차렵이불을 펼쳐놓았다. 주말이나 휴일, 방학이면 학교 측에서 아르바이트 혹은 견습 채용을 주선해주었다. 나는 쉬는 날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외숙모는 입학 전 은행에서 내 명의의 통장을 만들어줬다. 외숙모는 매달 기숙사비, 식비, 생활비로 돈을 보내주었다. 1년여 동안 규칙적으로 보내주던 돈을 두세 달에 한 번씩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예 보내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매달 기숙사비와 식비, 실습 재료비 등이 빠져나가는 월말이면 간당간당한 통장 잔액을 확인했다. 얄팍한 금액으로 지출내역을 계산했다. 통장을 펼쳐볼 때마다 외숙모를 떠올렸고 걱정했다. 입금자명에 외숙모 이름이 없는 것은 외숙모 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거였다. 경매 총각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농협 공판장에 찾아가겠다 마음먹었지만 차일피일 미뤘다. 졸업하자마자 시내에 있는 정형외과 병원 원무과에 3개월 수습 후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병원에서 가까운 석영철공소 안쪽에 있는 살림집 방 한 칸을 얻었다.
석영의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선반 앞에 서서 오토바이 제조업체에 납품하는 직렬용 나사를 깎아 만들었다. 마치 선반 작업대에 맞춘 듯 키가 작고 어깨가 다부진 그는 석영이 나를 여자 친구라 소개하자 주먹으로 석영의 옆구리에 펀치를 날렸다. 숱 많은 머리카락을 새카맣게 염색해 할아버지가 아닌 아버지뻘밖에 안 돼 보였다. 오랜 세월 부엌일을 해와서인지 손끝이 야무졌고 어떤 반찬이든 무조건 칼칼하게 만들었다. 내가 도울라치면 지저분한 부엌살림 들키기 싫다며 내쫓았다. 그가 거절했지만 나는 매달 월세를 냈다. 그래도 내 통장에는 쇳가루처럼 돈이 조금씩 쌓였다.
내가 휴무일 때, 할아버지는 바람 쐬러 어디론가 가셨다. 나와 석영은 철공소를 쓸고 털어냈다. 철공소 구석구석에 쇳가루와 먼지가 쌓였다. 쇳가루처럼 석영과 나의 사랑도 철공소 여기저기 쌓였다. 석영은 쇳가루 묻은 손으로 내 뺨을 만졌다. 그의 손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입술에서도 쇳내가 났다. 뜨거웠다.
외가 북동리 이장은 잊을 만하면 병원 원무과로 전화했다. 외가 인근 산에 군 사격장이 들어오니 반대 서명을 하라고 했다. 어떤 때는 골프 연습장이 생길 것이다, 리조트가 들어선다, 고 했지만 산 초입과 중턱에 거대한 철탑이 몇 개 세워졌을 뿐이었다.
여름 장마가 지나가면 유독, 빈집으로 남겨진 외가가 떠올랐다. 눅눅한 장독대 뚜껑을 열어둬야 하는데. 웃자란 묘의 잔디와 잡풀이 눈에 밟혔다. 석영은 철공소 쇠문을 닫고 예초기를 파란 트럭 뒤에 실었다. 외숙모 손을 잡고 걷던 계곡 길은 제법 넓게 여겼는데 실제로는 트럭이 겨우 지나갈 폭이었다. 게다가 막 자란 풀이 길을 가려 석영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트럭 바퀴를 확인하며 산길을 올라갔다. 그는 자신과 상관도 없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죽은 자의 묘에 돋아난 잔디를 깎았다. 짙은 풀냄새가 났다. 멧돼지가 파헤쳐놓은 묘를 삽으로 다졌다. 다듬은 묘에 막걸리를 부었다. 외할아버지 묘인지, 할머니 묘인지 헷갈렸다. 빈집에 들렀다. 뒤란 장독대로 가서 뚜껑을 열었다. 외숙모와 외할머니가 덮어놓은 옥양목 덮개를 벗겼다. 미리 챙겨간 통에 고추장, 된장, 막장을 퍼 담았다. 막장은 워낙에 큰 독에 담겼고 아래로 푹, 내려가 있어 독을 잡고 허리 숙여 팔을 쭉 뻗어야 했다. 석영이 말했다. 아예 장독을 가져가지그래.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장독마저 없으면 정말 빈집이 될 것 같았다.
목탁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인 목탁 소리와 함께 염불 소리도 들렸다. 소리는 바다 쪽에서 들려왔다. 침대에서 일어나 바다로 면한 테라스로 나갔다. 내가 머무는 펜션 2층 테라스에선 간월사와 주차장이 동시에 보였다.
1호 차, 2호 차, 7호 차, 10호 차. 대형 버스와 승합차, 승용차가 주차장 가득 들어왔다. 버스는 사람을 내려놓고 타일 쌓듯 차곡차곡 붙여 주차했다. 각 버스마다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이 내렸다. 대부분 여성이었다. 회색 바지를 입었거나 개량 한복을 입은 그들은 두 손을 모으고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움직이거나 혼자 움직이는 사람들 모두 가만가만히 말해서 시끄럽지 않았다. 모자를 썼거나 선글라스를 썼거나 아무것도 쓰지 않은 여성들도 목이나 손에 염주를 들고 있어 불교 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갯벌에 천막이 쳐지고 단이 세워지고 자리가 깔렸다. 누군가 단 위에 불상을 가져다 놓았다. 촛불에 불을 붙였고 향로에 향을 피웠다. 나무로 만든 불전 함까지 놓였다. 물이 빠진 갯벌은 순식간에 수백 명의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물 빠진 바닷속 법당이 되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일어나셨어요? 소녀는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가 내가 있는 테라스까지 나왔다. 소녀는 테라스 난간에 손을 짚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와아, 많이들 왔네. 뭐 하는 거니? 방생기도법회 하는 거예요. 아유, 버스가 몇 대야, 하나, 둘, 열다섯. 한 버스에 45명 타면, 가족 수 대로니깐 물고기는 더 많겠고. 참, 식사하세요. 나는 소녀가 숫자 세고 계산하는 소리에 골치 아파 테라스 탁자를 손으로 짚고 일어났다. 소녀는 족히 물고기 2천 마리가 바다로 흘러들겠다며 1층으로 내려갔다. 소녀는 식탁에 놓인 밥상보를 들었다. 밑반찬이 차려져 있었다. 소녀는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수저를 놓아주고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주었다.
“엄마는 어디 가셨니?”
“방생 끝나면 저 사람들이 단체로 식사하고 올라가거든요. 예약된 식당에 일 도우러 갔어요. 이맘때는 식당이랑 건어물전에 불티나요.”
압력밥솥에서 밥을 퍼서 내 앞에 내려놓았다. 바글바글 끓고 있는 냄비가 놓인 가스 불을 끄고 국자를 들었다. 매운탕처럼 붉은 국물을 담은 스테인리스 국그릇을 내 앞에 놓았다.
“이게 뭐니?”
“우럭 어죽이에요,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이거 방생으로 풀어줬다가 되돌아온 거 아니니? 난 안 먹을래.”
“아유, 어제저녁에도 우럭구이 잘만 드셔놓고. 세 마리나 드셨잖아요.”
그랬을 리가 없다. 흙바닥에서 몸통을 뒤틀고 있던 물고기를 봤는데 내가 그걸 먹었다고? 나는 소녀를 노려보곤 밥과 밑반찬을 먹었다. 파래무침은 시큼했고, 젓갈은 짰다. 구운 김은 눅눅했고 김치와 나물에서 젓갈 냄새가 났다. 나도 모르게 어죽을 한 숟갈 떠먹었다. 칼칼한 첫맛에 꾸들꾸들 씹히는 식감이 쫄깃했다. 스테인리스 그릇을 내 앞으로 바짝 당기고 퍼먹는 나를 보며 소녀는 거봐요, 맛있죠? 했다. 소녀는 2천 마리 중 되돌아오는 몇 마리 물고기를 제외하고 바다로 나가 알을 낳는다고 생각해보면 엄청난 거라고 말했다.
“제가 어렸을 때는요, 물이 빠진 갯벌에 청거북이 기어 다녔어요. 등에는 붉은 글씨가 적혀 있었는데, 꼭 무당집에서 보는 부적처럼 기묘하기도 하고 무서웠어요.”
“청거북 방생은 금지시킨 지 오래되지 않았어? 너, 몇 살이야?”
소녀는 자신이 서른세 살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소녀를 상대하기 싫어 식탁에서 일어났다. 오늘 아드님이 모시러 오시는 날이에요, 멀리 가지 마세요. 흰 자갈을 깔아놓은 마당으로 나서자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나는 천천히 마당을 벗어나 해안을 따라 걸었다. 간월사로 가는 길 초입에 물때가 적힌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주차장에는 대형 버스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흰 면티에 파란 모자를 쓴 청년들이 지휘봉을 들고 길 안내를 했다. 갯벌에는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바다 둑길을 걸어 식당과 건어물전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갔다. 파란 비닐을 깐 좌판 위에 말린 우럭 세 마리씩 담은 플라스틱 바구니를 내려놓던 할머니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왕새우 튀김 다섯 마리 포장해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머리를 잘라내고 반을 갈라 말린 분홍 볼락 대여섯 마리를 담아 좌판에 두곤 손을 앞치마에 쓱쓱 닦았다.
나는 궁금했다. 왜 유독 볼락은 머리를 잘라내고 말리는 것일까. 가자미, 명태, 조기, 우럭은 머리까지 말렸다. 어떤 것은 통째 말리고 어떤 것은 머리를, 배를 가르고 말립니까. 이렇게 머리를 떼어내고 배를 갈라 꾸들꾸들 말린 것을 왜 물고기라 부르지 않습니까. 바다에서 갓 잡은 물고기를 생선이라고 부릅니까. 바다에 살아 있는 우럭을 왜 생선이라 부르지 않습니까. 나는 오랫동안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긴 나무 막대기에 주름 잡아 꽂아놓은 어묵을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먹었다. 어묵은 미지근했던 것이 두세 입에 차갑게 식었다.
“새우, 저 펜션 가서 데워 잡술 거지유?”
“네.”
할머니는 새우를 흰 종이봉투에 담아줬다. 나는 금세 기름이 스며든 종이봉투를 받아들고 어묵을 하나 더 먹었다.
“일이 없을 때면 늘 암자로 가서 바다 끝에 앉아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물때 상관없이 드나들던 때였지. 허공에 연결해놓은 줄을 잡아당겨 움직이던 갯배가 있었는데. 그이 땜에 없애버렸잖아.”
할머니는 손을 허공에 올렸다 옆으로 휙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그냥, 휙, 바다로 떨어지더라고.”
나무 널빤지를 연결해 만든 갯배에 올라탄 이들 중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비구니 한 명, 공양주 보살 할머니, 지금은 건어물전 할머니가 된 젖가슴을 풀어헤치고 햇 아기에게 젖을 물리던 여자. 그리고 바다에 휙, 빠져버린 여자.
나는 스웨터 주머니에서 끝이 나달나달 해진 사진을 꺼내 보였다.
“아유, 몇 번을 말해유? 나랑 같이 요 횟집에서 일했다니깐. 방도 같이 썼시유. 매번 올 때마다 물어보고 그러우?”
할머니의 투박해진 말투에 놀라 나는 사진을 얼른 스웨터 주머니에 넣고 돈을 지불했다.
“그이가 댁네 외숙모라면서유? 엊그제 아드님이 그러시더구만.”
정형외과 병원 원무과 대기 공간에는 늘 대형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연일 무섭게 비가 쏟아졌던 여름 장마가 끝날 무렵, 병원 세무 조사를 받았다. 세무서 직원들이 원무과를 돌아다니며 서류와 컴퓨터 하드를 떼어냈다. 원무과 직원들은 대기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가볼 만한 여행지,라는 프로그램을 했다. 내가 텔레비전 화면을 돌아봄과 동시에 바닷물에 위에 섬처럼, 유람선처럼 떠 있는 절이 보였다. 소개하는 아나운서가 말했다. 달이 뜨면 솟아나는 절입니다.
그제야 나는 외숙모가 환상이 아닌, 실제 저곳으로 갔구나, 생각했다. 석영에게 말했더니 그는 곧바로 가보자고 했다. 석영은 이리로 내려오면서 중간중간 운전대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임신으로 봉긋한 내 배를 문질렀다. 배가 뭉치지 않냐, 허리가 아프지 않냐, 배고프지 않냐 물었다. 석영과 내가 서산 간월사에 도착했을 때 달이 뜬 저녁이었고 절은 바다 위에 덩그러니 솟아 있었다.
나는 물이 찰박찰박거리는 갯벌을 걸어 간월사 쪽으로 갔다. 바다 위로 흰나비 떼가 날아다녔다. 나는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가 왜 눈을 가렸는지 까먹었다. 손을 내렸을 때, 내 앞으로 흰 바닷새들이 날아다녔다. 나는 검은 바위에 앉아 뭍을 바라보았다. 탐스러운 작약이 핀 장독대가 떠올랐다. 외숙모, 너무 늦게 왔어요. 소녀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은 어제의 일처럼, 아니 지금 이 순간처럼 또렷했다. 고추장을 푸러 가야 하는데.
“할머니이, 물때에요, 어여 건너오세유. 아드님 오셨시유.”
소녀는 파란 들통을 들고 나를 향해 팔을 흔들었다. 소녀의 뒤에 검은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석영이 손을 흔들며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늘 입던 목이 늘어난 기름때에 전 작업복을 벗고 똑떨어지게 차려입으니 요즘 청년들 같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석영을 할머니 아드님이라 한다. 검은 양복이 꼭 상복처럼 보였다. 나는 목을 꺾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쪽 허공의 크기를 헤아릴 수 없듯 밀려오는 물의 양을 헤아릴 수 없었다. 떠오르는 숱한 기억 속에서 슬픔을 골라내 헤아릴 수 없었다. 다만 검은 돌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